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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04 ]
역지사지(易地思之)
한호형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역지사지(易地思之)는 공자가 제자 안회(顔回)를 칭찬하면서 하우(夏禹) 성인과 비교하여 처지나 경우를 바꾼다 하여도 역시 같은 행동을 하였을 것이라고 한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 말이라고는 하나, 입장을 바꾸어 상대방의 처지에서 헤아려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법정에 온 당사자들은 자기의 억울한 입장만을 주장한다. 재판장이 제지를 해도 자기 말만 한다. 상대방의 주장은 말도 안 된다며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 당사자를 설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로가 양보하여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조정이야말로 분쟁을 원천적으로 해소하는 최상의 분쟁 해결 방법이나, 이는 기본적으로 양보를 전제로 한다. 자기의 이익과 억울함만 생각하며 권리를 주장하다가 보면 상대방의 입장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다가도 상대방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를 설득하다보면 의외로 손쉬운 양보를 해 화해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세상사가 시끄러운 것도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부족한 탓이 아닐까? 입장을 바꾸어서 서로를 이해한다면 해결점이 있을텐데도 모두가 자기 입장만 고수하다보니 대립하고 싸울 수 밖에 없다.

화해에 집착하다 보면, 자기 이익만 내세우며 화해를 거부하는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이미 양보한 사람에게 이왕 양보하는 김에 조금만 더 양보를 하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소송을 계속하여 2심, 3심 가는 것보다 그것이 더 낫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판결을 한다면 불리할 것이 없는 당사자에게 양보를 요구하기도 한다. 사실 소송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더라도 그 판결이 확정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마음고생이 뒤따르고 집행 단계까지 간다면 그 후유증 또한 만만치가 않으니 그래도 화해한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 결과 싸움을 선호하며 자기 이익만 고집을 피운 사람이 이득을 보게 된다. 이래서 권리는 투쟁의 산물이라고 하였던가?

수 많은 분쟁에서 당사자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분쟁의 실체를 다시 들여다 본다면 서로가 양보를 할 수 있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자기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경우까지 상대방의 입장만을 존중하여 주어야 하는 것일까? 역지사지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를 하여 양보의 선을 결정하라는 것이지 자기 쪽을 무시하는 상대방의 부당한 주장까지 수용하라는 것은 아니다. 서로가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는 당사자라면 법정에 와서까지 다툴 리가 없다. 상대방의 무리한 요구에 자기의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법정을 찾아 온 당사자에게 그 최소한의 권리마저 양보하라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법은 다양한 상황을 예측해 분쟁을 해결할 가장 합리적인 기준을 설정하여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준까지 무시하면서 상대방에 대하여만 역지사지를 강조하고 자기는 역지사지하지 않는 당사자가 늘어가는 것 같다. 법마저 무시하는 상대방의 무리한 요구와 욕심에 맞서 내키지 않는 송사를 수행하는 당사자는 이런 면에서 정의의 수호자로 도움을 받아 마땅하다. 상대방의 입장과 이익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주장이 통용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정은 상호의 양보를 권하는 것이지 한편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새해에는 모두가 역지사지의 자세로 서로를 이해하되, 무리한 요구에는 용감하게 맞서 정의를 세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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