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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12]
고생총량 동일의 법칙
함영주 교수(중앙대 로스쿨)


사람은 누구나 고생은 적게 하고 대가는 많이 받으려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 때문에 연초가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한다. 고생의 양에 비해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기반을 둔 말이 아닌가 한다.

이 때문인지 대학에 입학하려는 수험생들은 원서를 낸 학과의 합격선이 떨어지기만을 고대하고, 졸업생들은 자신이 나온 학과의 인기가 저조하면 언짢아한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사법시험 합격 인원이 너무 적다고 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나서는 합격인원이 시장의 수요에 비해 적지만은 않다고 입장을 바꾼다.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은 변호사가 되기만 하면 기존의 변호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한다. 젊은 변호사들은 자신도 선배변호사와 동일한 업종에 종사하는 ‘변호사’임을 강조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30여 년 전에는 수년에 한두 명 선발하던 특정 분야 교수를 이제는 한 해에도 그것의 수배씩 충원하지만, 여전히 희소성이 있는 직업으로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법무사, 변리사, 공인중개사 등 법률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 의사와 한의사 등의 의료 영역, 건설과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 보면 한결같이 ‘좋았던 옛 시절(the good old days)’을 이야기 한다.

과연 모든 분야에서 과거는 영광이었고 현재와 미래는 어려워지기만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럴 리는 없다. 우리나라의 경제와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각 분야의 경쟁이 격화되었고, 근래 전 세계적 규모의 경제 위기까지 거론되고 있어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보다 크게 보면 많은 변화를 일시에 겪고 있는 것이지 나빠지기만 하는 것이라고 불평할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일생동안 겪게 되는 고생의 양은 크게 보아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돈을 더 열심히 벌어 여유 있는 중년을 보내고 또 노년에 다시 고생을 하기도 한다. 어려서 유복하게 태어났으나 젊어서 가산을 탕진하고 어렵게 노년을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여 과거에 비해 조금 더 쉽게 그 자리나 자격을 갖게 되었다면 고생을 조금 더 할 준비를 하는 것은 어떤가 한다. 늘어난 선발 인원만큼 경쟁이 뒤로 연기되었기 때문이다. 선발인원이 늘어나거나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았다면 자신이 선발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동시에 이른바 기성세대는 극도의 선발인원 제한으로 보다 유능하고 자질이 우수한 사람들이 출발선에 서 보지도 못하고(입구의 통제), 인생을 시험으로 소비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숙연하게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떤가 한다.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는 입구통제방식보다 쥐를 잡는 것이 고양이라는 생각으로 실제 변호사 업무를 잘 하는 사람을 우대하고 그들을 세계시장으로 보내어 다른 나라의 법률가들과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자신이 속한 분야가 진입억제 방식의 시스템 때문에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또 어떨까?

사법시험이나 변호사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을 면담하다보면 대부분 언감생심 판사와 검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변호사는 판사와 검사가 되지 못할 경우에나 할 대안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역력하다. 그런데 이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 보면 판검사를 한 후에 돈을 버는 것을 종국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내심이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실은 판사와 검사, 특히 그 중에서도 법관은 속세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언약하는 신부(神父)님이나 스님과 유사한 특징이 있는 직업이 아닌가 한다. 무엇보다 불편부당(不偏不黨)이 법관에게는 생명과 같은 덕목이어서 소위 ‘속세’와의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판사를 종신제로 하는 외국의 입법례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닌 까닭이기도 하다.

결국 한 번 판사는 영원한 판사로 존경을 받도록 하는 것이 시스템 운용상 불가피한 선택이 아닌가 한다. 대신 국가는 그 역할에 합당한 예우를 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하여 조정시스템을 새로이 구축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필자는 판사와 같은 몇 가지 예외 직업을 제외한다면 크게는 고생총량 동일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대전제는 고생총량동일의 법칙이 적용될 수 있는 국가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고생총량동일의 법칙이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법률가들의 소명에 속한다. 고생총량동일의 원칙이 실제 법률사건이나 현실에서 구현되도록 만드는 것이 사회에서 법률가들의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다만, 이 고생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이다. 때문에 객관적으로 고생을 많이 한 사람도 스스로 그것이 고생이 아니라 보람(예를 들어 타인을 위한 봉사로서의 고생)이었다고 생각하면 고생의 총량은 많지 않을 수 있다. 수십 년을 하는 일 없이 남에게 의존하며 살았어도 자신이 고생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면 고생의 총량은 많을 수 있다. 이래저래 주관적인 고생의 총량은 동일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을 했거나 하고 있는 현재의 젊은 법률가들은 총고생량 중 상당부분을 이미 치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할 고생의 양이 그만큼 적게 남은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고생을 덜 한 법률가들이 있다면 앞으로 고생을 좀 더 할 수도 있겠다.

국가적으로도 동일한 평가가 가능하지 않나 한다. 구한말 이후 경제 개발 시기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이 피땀 흘려 고생을 한 결과 고생의 양이 소진되어 현재의 경제적 번영이 온 것은 아닐까? 선조들이 헐벗고 살면서도 후대를 위해 감수한 그 많은 인고가, 선조들의 사무친 염원이, 현 시대에 와서 꽃이 핀 것은 아닐까? 우리가 현재의 고생스러운 현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장래 세대들의 행복에 영향을 끼치듯이 말이다.

결국 크게 보면 모든 사회와 개인의 변화는 동양고전에서 말하는 궁(窮)-통(通)-변(變)-구(久)이고, 서양식으로 표현하면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이 아닌가 한다. 여기에서 파생된 말이 ‘현재를 잡아라(또는 현재를 즐겨라; Carpe diem)’인가 보다. 고생과 고통마저 즐길 줄 아는 것, 그것이야 말로 전 세대를 관통하는 삶의 지혜가 아닌가 한다.

급격한 시스템의 변화로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 예비 법률가들 중에서 고생을 즐길 줄 알고, 또 고생을 사서 하기 위해 세계무대로 박차고 나가는 진취적인 법률가들이 쏟아져 나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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