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없어진다면서요 … 조사를 왜 받아요?"
“조만간 없어지는 죄 아닌가요? 조사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정부·여당이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고 대체 입법을 추진하자, 일부 배임 혐의 피의자들이 수사기관에 이같이 대응하고 있다. 이들은 법이 개정되면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를 대며 조사를 차일피일 미루거나 사실상 거부까지 하고 있다. 개정 논의만으로도 수사 자체를 회피하는 피의자들이 생겨나면서 수사기관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였다.배임죄 폐지는 기업의 경영 활동이 과도하게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로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실제 통계를 보면 배임죄가 적용된 사건은 기업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법무부가 최근 5년간의 배임죄 관련 판결 3300여 건을 분석한 결과, 배임죄는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납품 대금·용역 수수료를 과다하게 책정하는 등의 기업형 범죄 외에도 부동산 이중매매나 곗돈 사기 등 소위 ‘생활형 배임’이 상당수였다. 과도한 대출이나 가족 명의로 회사 자금을 빼돌린 사건 등이 늘며 금융권의 2024년 배임 피해 규모는 1221억 원에 달했다.대검찰청 발간 범죄분석에 따르면 배임죄 사건은 2019년 5443건, 2020년 4768건, 2021년 3727건, 2022년 4058건, 2023년 4594건 발생했다. 2021년 1095명이 배임죄로 기소됐고 2020년은 1062명, 2021년 513명, 2022년 499명, 2023년 667명이 기소됐다.재계 전반은 배임죄 폐지에 찬성한다. 혁신적인 투자 실패까지 배임죄가 적용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정상적인 기업 활동 자체가 위축된다고 주장한다. 독일처럼 ‘경영 판단 원칙’을 명문화해 경영자가 충분한 정보를 갖고 선의로 기업 이익을 위해 내린 판단에 대해서는 형사 책임을 면제하거나, 일본처럼 ‘손해를 가할 목적’의 고의성을 입증해야 처벌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반면 배임죄는 일반 국민이 일상적인 재산 피해에 대해 형사적 구제를 받을 장치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를 폐지하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법조에서 나오고 있다. 서울 소재 로스쿨의 한 형사법 전공 교수는 “형법상 배임죄가 없어지면 개인은 민사로 해결해야 하는데, 심적·물적 고통이 상당해질 것”이라며 “배임과 밀접하게 연결된 횡령죄는 어떻게 다룰지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