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영 변호사(유엔법률실(UN Office of Legal Affairs))
[로이터(Lawyter)] 국제연합의 손해배상 책임
2010년 반기문 사무총장 재임 당시 아이티 지진 피해 이후 복구를 위하여 파견된 국제연합(이하 ‘유엔’이라고도 함)의 평화유지군이 콜레라 전염병을 전파한 사례로 많은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아이티의 콜레라 피해자들은 미국 법원에 유엔을 상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제기하였으나, 미 법원들은 “국제연합의 특권과 면제에 관한 협약(1946 Convention on the Privileges and Immunities of the United Nations)”에 따라 국제연합은 모든 법적절차로부터의 면제를 향유한다는 이유로 청구를 모두 각하하였고, 미 연방 대법원은 2019년 이와 관련된 Laventure et al. v. United Nations et al. 사건의 상소를 검토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사건을 종결하였다. 그렇다면 유엔이 사인에 대하여 손해를 입힌 경우 유엔의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어떠한 절차를 따라야 할까? 유엔의 활동에는 평화유지군의 교통사고에서 스레브레니차 유엔 안전구역의 보호에 실패한 사례까지 임무수행에 크고 작은 대사인적 위험이 따른다. 그래서 유엔 총회는1946년 유엔 활동의 독립성을 위하여 “국제연합의 특권과 면제에 관한 협약”을 채택하였고 현재까지 162개국이 동 협약에 가입해 유엔의 기본적인 특권과 면제를 인정하고 있다. 이는 협정에 따라 부여된 특권과 면제로 주권 국가의 국가면제(state immunity)가 국제관습법에 따라 인정되고 발전해 온 것과는 결이 다소 다르다. 동 협약의 제2조 제2절에 따르면 국제연합이 명시적으로 면제를 포기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제연합과 그 재산 및 자산은 소재지 및 보유주체에 관계없이 모든 형태의 법적 절차로부터의 면제를 누린다(The United Nations, its property and assets wherever located and by whomsoever held, shall enjoy immunity from every form of legal process except insofar as in any particular case it has expressly waived its immunity). 미 법원들이 인정한 것처럼 국제연합은 각국의 재판작용으로부터의 절대적인 면제를 향유하는 것인데, 결국 국제연합에는 국가의 재판권이 미치지 않아 피해자들은 유엔의 손해배상 책임을 국내 법원에서는 물을 수 없게 된다. “국제연합의 특권과 면제에 관한 협약” 제8조 제29절은 사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 관하여 계약으로부터 발생하는 분쟁 또는 국제연합이 당사자인 사법적 성격의 그 밖의 분쟁을 위해 유엔이 분쟁의 적절한 해결방식에 관한 규정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The United Nations shall make provisions for appropriate modes of settlement of: (a) disputes arising out of contracts or other disputes of a private law character to which the United Nations is a party…). 한편, 이 협약은 가장 기초적인 특권, 면제만을 정하고 있기 때문에 유엔은 특정국에 주재할 때 해당국 정부와 특권 및 면제에 관한 개별 협약을 맺는 것이 확립된 관행이다. 대표적인 예로 평화유지군의 경우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status of forces agreements, SOFA)을, 특별정치임무단(special political mission)의 경우 임무단의 지위에 관한 협정(status of mission agreements, SOMA)을, 사무소나 컨퍼런스의 경우 주재국 협정(host country agreements)을 각 체결하는 것이 그것이다. 각 협정은 분쟁해결방식을 별도로 정하고 있는데, 그 내용에 따라 임시재판소(ad hoc tribunal)나 상설청구위원회(standing claims commission), 중재재판소 등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 상 상설청구위원회는 “국제연합의 특권과 면제에 관한 협약” 제29절의 사법적 분쟁만을 해결하기 위해 유엔과 주재국 정부의 합의로 설립되는 기구인데, 위 아이티의 사례를 포함해 현재까지 상설청구위원회가 만들어진 사례는 없었다. 다만, 평화유지군이나 특별정치임무단의 경우에는 내부적으로 청구검토단이 설립되어 충분한 소명이 있는 손해에 대하여는 그에 관한 청구를 자체적으로 검토하고 그 결과에 따라 손해배상금 지급을 권고하고 있다. 대다수의 SOFA 및 SOMA도 유엔 내부 절차에 따라 협상이 되지 않는 제3자 청구에 관한 분쟁해결 절차를 규정함으로써(Third-party claims for property loss or damage and for personal injury, illness or death…, which cannot be settled through the internal procedures of the United Nations…) 이에 관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평화유지군이 아닌 사무국의 책임이 문제되는 경우에도 내부적인 검토와 협상이 주된 통로가 되고 법률실이 직접 협상안을 검토하고 교섭한다. 이 경우 계약상의 분쟁이 있다면 보통 해당 계약에 따라 국제중재의 통로가 열려 있으나, 유엔의 공식적인 임무수행에 관한 평가를 내려야 하는 경우라면 법적인 청구를 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레바논 특별 재판소의 한 재판관이 Ayyash et al. 사건에서 유엔의 책임을 방론으로 다룬 바 있는데, 이처럼 일상적인 손해가 발생한 경우가 아니라면 비공식적 교섭을 통해 내부적인 검토를 촉구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다. 결국 개별 청구인이 협약 제29절에 따른 청구를 할 수 없는 경우에는 국가의 정치적, 외교적 도움이 필요하다. “국제연합의 특권과 면제에 관한 협약” 제8조 제30절은 협약의 해석 또는 적용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다툼을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된다고 하고 국제연합과 회원국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적 의견을 요청하도록 하고 있으므로(All differences arising out of the interpretation or application of the present convention shall be referred to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unless in any case it is agreed by the parties to have recourse to another mode of settlement. If a difference arises between the United Nations on the one hand and a Member on the other hand, a request shall be made for an advisory opinion on any legal question involved in accordance with Article 96 of the Charter and Article 65 of the Statute of the Court.), 회원국의 개입이 있다면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한 분쟁해결을 도모할 수 있고, 그 국가가 유엔과 SOFA 또는 SOMA를 체결한 당사국이라면 동 협정의 해석 또는 적용에 관한 분쟁으로서도 임시재판소를 구성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한 분명한 한계는 당국의 정무적 판단이 반드시 수반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 국제연합의 특권과 면제에 관한 협약 관련 정보 ]
[ 아이티와 국제연합 사이의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 ]
(이 글은 글쓴이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국제연합의 공식적인 견해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서의영 변호사(유엔법률실(UN Office of Legal Affairs))
2023-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