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 동안 범죄를 저질러 구속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들의 상고율이 두배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가 미결구금일수 산입에 대한 형법 제57조1항에 대해 위헌결정(☞2007헌바25)을 내린 영향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미결구금일수 전부가 형기에 산입되자 구속된 피고인들이 강제노역의무가 없고 면회가 보다 자유로운 미결상태를 장기간 유지하기 위해 상소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밑져야 본전'식의 남상소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상고사건의 증가는 대법관들의 업무가중으로 이어져 상고심 재판의 부실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하지만, 헌재가 '전부산입'이 아닌 다른 형태의 미결구금일수 산정은 위헌이라고 선언한 만큼 마땅한 대책이 없어 대법원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 미결구금일수 '일부 산입' 위헌결정 이후 형사구속사건 상고율 2배 껑충= 2일 대법원에 따르면 헌재가 미결구금일수관련 형법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지난해 6월25일부터 올 6월24일까지 1년 동안 대법원에 상고된 형사구속사건은 모두 7,933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위헌결정이 나기전 1년간 상고된 사건 3,802건에 비해 무려 2.1배나 증가한 수치다. 대법관 1인당 연간 구속사건만 344건씩이 늘어난 셈이다. 구속사건 항소심판결 대비 상고율도 같은 기간 14.8%에서 29.3%로 두배나 뛰었다.
이에 비해 불구속 형사사건의 상소율은 거의 변화가 없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같은 기간동안 대법원에 상고된 형사불구속사건수는 모두 1만3,437건이었다. 이는 2008년 6월25일부터 지난해 6월24일까지 대법원에 상고된 사건이 1만1,809건인 점을 감안하면 12% 정도 증가한데 그친 셈이다. 특히 판결대비 상고율은 같은 기간 32.5%에서 35.8%로 3.3% 포인트 늘어난 데 머물러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헌재 위헌결정 이후 구속피고인들 사이에 상고해도 손해볼 것 없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상고율이 크게 높아졌다. 상고이유에 '미결수로 좀 더 오래 있고 싶다'고 기재하는 경우도 많다"며 "실형이 선고되면 거의 100% 상고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구속피고인 '밑져야 본전'식 남상소 현실화= 불구속사건의 상고율이 변화가 없는데 반해 구속사건의 상고율이 가파르게 상승한 것은 구속피고인들의 남상소가 현실화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미결수는 판결이 확정된 기결수와 달리 형의집행및수용자의처우에관한법률상 각종 제한을 받지 않아 상소를 통해 가능한 미결상태를 장기간 지속하는 것이 본인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미결수는 원칙적으로 교도소가 아닌 구치소에 수용된다. 교도소에 수용되더라도 관할 법원 및 검찰청 소재지의 교도소에 수감된다. 결국 가족과 가까운 거주지 인근에 수용되는 셈이다. 또 무죄추정원칙에 따라 교정교육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본인이 신청하지 않는한 노역이 부과되지도 않는다. 기결수에 적용되는 10㎝ 이하의 두발제한 규정 등도 적용되지 않아 머리나 수염을 짧게 깎지 않아도 된다. 특히 가족 등과의 면회도 통상 월 4회로 규정된 기결수와 달리 미결수는 매일 한 차례의 접견이 가능하다. 더구나 변호인접견은 시간과 횟수에 제한을 받지 않아 기결수에 비해 자유로운 면회가 가능하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미결수와 기결수는 접견횟수나 노역문제 등에서 차이가 많아 구속피고인들의 경우 미결수로 계속 머물기 위해 소환이 어려운 증인을 신청하는 등 재판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 대법원, 인적·물적 한계 뾰족한 대책없어 시름= 형사사건 상고율이 높아지면서 가뜩이나 상고사건 증가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법원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재판연구관 증원 등 인적·물적 자원확충에는 한계가 있는데다 민사사건과 달리 형사사건의 경우 심리불속행제도가 없어 원칙적으로 모든 사건을 심리하고 판결로 선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관들의 업무를 돕기 위해 조사·연구업무를 수행하는 재판연구관 수를 95명까지 늘렸지만 늘어나는 상고사건에 완벽하게 대처하는데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며 "10년 미만의 징역형을 선고받고도 양형부당을 주장하는 등 법률상 상고이유를 벗어난 것이 명백한 경우 상고기각을 통해 판결선고를 줄이는 방법도 가능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사건이 가장 중요한만큼 사건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형사사건 상고기각률이 95% 이상인 상황에서 지나친 남상소는 제한된 사법자원을 낭비하는 측면이 크다"며 "1·2심 등 사실심 심리과정을 보다 충실히 실현해 재판의 승복률을 높이고 대법원은 법률적 쟁점이 중요한 사건에 집중하는 모범답안 외에 별다른 마땅한 대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상원 서울대 법대 교수는 "대법원이 추진하고 있는 상고심사부 설치가 대안이 될 수 있다"며 "부적절한 상고사건을 미리 한번 걸러준다면 남상소로 인한 상고율 증가폭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이 같은 현상의 근본원인이 미결수와 기결수간의 처우 차이에서 발생하는 만큼 기결수의 처우를 개선해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미결수와의 처우에서 큰 차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정시스템을 개편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