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범의 기판력에 관한 대법원의 형사판례가 변경됐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여러 상습사기의 범행 가운데 일부 범죄만이 단순사기죄로 확정됐다면 그 기판력은 확정판결의 사실심판결 선고 전에 저질러진 상습사기범죄에는 미치지 않으므로 나머지 범죄가 기소된 경우 법원은 면소판결을 내려서는 안된다는 취지다.
이는 포괄일죄의 관계에 있는 범행 중 가벼운 부분만 발각된채 공소가 제기돼 단순범으로 확정판결을 받게 되면, 후에 그 부분과 포괄일죄를 구성하는 더 중한 부분이 발각되더라도 이를 처벌하지 못하는 그동안의 불합리를 시정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李勇雨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마모씨(49)에 대한 상고심(2001도3206) 선고공판에서 16일 검사의 상고를 받아들여 일부 공소사실에 대해 면소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상습범으로서 포괄적 일죄의 관계에 있는 여러 개의 범죄사실 중 일부에 대해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우 그 확정판결의 사실심판결 선고 전에 저질러진 나머지 범죄에 대해 새로이 공소가 제기됐다면 그 새로운 공소는 확정판결이 있었던 사건과 동일한 사건에 대해 다시 제기된 데 해당하므로 이에 대하여는 판결로써 면소의 선고를 해야 하지만 이런 법리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전의 확정판결에서 당해 피고인이 상습범으로 기소돼 처단됐을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상습범이 아닌 기본 구성요건의 범죄로 처단된데 그친 경우에는, 뒤에 기소된 사건에서 비로소 드러났거나 새로 저질러진 범죄사실과 전의 판결에서 이미 유죄로 확정된 범죄사실 등을 종합해 비로소 그 모두가 상습범으로서의 포괄적 일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더라도 뒤늦게 앞서의 확정판결을 상습범의 일부에 대한 확정판결이라고 봐 그 기판력이 사실심 선고 전의 나머지 범죄에 미친다고 봐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미치는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는 그 확정된 사건 자체의 범죄사실과 죄명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고 비상습범으로 기소돼 판결이 확정된 이상, 그 사건의 범죄사실이 상습범 아닌 기본 구성요건의 범죄라는 점에 관해 이미 기판력이 발생했다고 봐야 할 것이며, 뒤에 드러난 다른 범죄사실이나 그 밖의 사정을 부가해 전의 확정판결의 효력을 검사의 기소내용 보다 무거운 범죄유형인 상습범에 대한 판결로 바꾸어 적용하는 것은 형사소송의 기본원칙에 비춰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과거에 이와 다르게 상습범으로서 포괄일죄 관계에 있는 죄 중 일부에 대해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고, 그 나머지 부분 즉 확정판결의 사실심 선고 전에 저질러진 범행이 나중에 기소된 경우에, 그 확정판결의 죄명이 상습범이었는지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확정판결이 있었던 죄와 새로 기소된 죄 사이에 상습범인 관계가 인정된다는 이유만으로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새로 기소된 죄에 미친다고 판시했던 1978. 2.14 선고 ☞77도3564 전원합의체판결을 비롯한 다수의 대법원 판결들은 이 판결의 견해와 어긋나는 범위 내에서 모두 변경한다"고 덧붙였다.
마씨는 지난 2000년6월 단순 사기혐의로 기소됐으나 종전에 확정판결을 받은 단순 사기죄와 포괄일죄라는 이유로 1,2심에서 면소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피고인에게 8백30만원을 편취했다는 범죄사실에 대해 98년 월 벌금 5백만원을 선고받은 확정판결이 있다는 이유로 그 이전에 범한 1억6백여만원을 편취한 공소사실에 대해 면소를 선고한 것은 부당하다"며 상고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