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형을 강제입원시키고 선거에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 받아 도지사 상실 위기에 놓였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법원 상고심에서 기사회생했다. 대법원은 선거 후보자가 토론회에 참여해 하는 질문이나 답변, 주장과 반론은 해당 토론회 맥락과 상관없이 일방적·의도적·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이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민주주의 보장을 위해 후보자 토론에서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6일 허위사실공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 지사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2019도13328). 선출직 공무원이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선 무효가 된다.
이날 대법관들은 의견은 7(파기환송)대 5(상고기각 원심 확정)로 첨예하게 갈렸다. 과거 이 지사의 다른 사건 변호인이었던 이유로 이번 사건을 회피한 김선수 대법관을 제외하고, 대법관 11명이 파기환송과 상고기각을 놓고 6대 5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실상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것이다. 전원합의체 판결 최종 합의에서 대법관들은 가장 후임 대법관부터 최선임 대법관의 순서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한다. 대법원장은 대법관들의 의견 표명이 끝난 후 맨 마지막에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이 지사는 2018년 5월 경기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하셨죠?"라는 상대 후보의 질문에 "그런 일 없다"며 "제가 (형의 정신병원 입원을) 최종적으로 못하게 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당시 성남시 산하 보건소장 등은 법정에서 "이 지사가 친형의 강제 입원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이 지사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토론회 등에서 '친형을 강제입원 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또 2012년 성남시장으로 재임할 당시 직권을 남용해 친형 재선씨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킬 것을 보건소장,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지시한 혐의와 2018년 6월 지방선거 과정에서 분당 대장동 개발 관련 업적을 과장한 혐의, 2002년 시민운동을 하면서 검사를 사칭한 전력이 있는데도 이를 부인한 혐의 등 총 4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이 지사의 혐의 모두를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이 지사가 토론회에서 한 발언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한다며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상고심에서는 이 지사가 토론회 방송에서 상대 후보 질문에 "친형에 대한 강제입원을 시도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부인하면서 일부 사실을 숨긴 것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활발한 토론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 특히 공적·정치적 관심사에 대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며 "선거 후보자 토론의 경우 질문과 답변, 주장과 반론에 의한 공방이 제한시간 내에 즉흥적·계속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므로 그 표현의 명확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후보자 등이 토론회에 참여해 질문·답변하거나 주장·반론하는 것은 그것이 토론회의 주제나 맥락과 관련 없이 일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드러내 알리려는 의도에서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표명한 것이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이를 판단할 때에는 사후적으로 개별 발언들의 관계를 치밀하게 분석추론하는데 치중하기 보다는 질문과 답변이 이루어진 당시의 상황과 토론의 전체적 맥락에 기초해 유권자의 관점에서 어떠한 사실이 분명하게 발표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표현된 내용에 허위가 없다면 법적으로 공개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사항에 관해 일부 사실을 묵비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체 진술을 곧바로 허위로 평가하는데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토론 중 질문·답변이나 주장·반론하는 과정에서 한 표현이 선거인의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이 아닌 한 일부 부정확 또는 다소 과장되었거나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경우에도 허위사실공표행위로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지사가 토론회에서 한 친형 관련 발언은 상대 후보자의 질문이나 의혹 제기에 대해 답변하거나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며 "이는 토론회의 주제나 맥락과 관련 없이 어떤 사실을 적극적이고 일방적으로 널리 드러내 알리려는 의도에서 한 공표행위라고 볼 수 없다"면서 허위사실공표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했다.
이에 대해 박상옥, 이기택, 안철상, 이동원, 노태악 대법관은 "후보자 토론회에서의 발언에 대해 개별 사안에 따라 허위성 내지 허위성 인식 여부를 엄격하게 판단한 대법원의 기존 해석은 선거의 공정과 후보자 토론회의 의의 및 기능, 정치적 표현의 자유, 선거운동의 자유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공표'의 범위를 제한하는 해석은 자칫 선거의 공정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 사이의 균형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 대법관은 "후보자 토론회에서 후보자들이 예상하지 못하거나 유권자들이 알지 못하는 주제가 즉흥적·돌발적으로 논의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이 선거 현실"이라며 "이 지사에 대한 질문은 즉흥적·돌발적인 것이 아니었고 이 지사도 그 답변을 미리 준비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지사는 질문에 단순히 부인하는 답변만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숨기고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을 덧붙여 전체적으로 '형의 정신병원 입원 절차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취지로 발언했다"며 "이는 이 지사가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해 선거인의 공정하고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전체적으로 보아 진실에 반하는 사실을 공표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선거 후보자가 토론회 토론과정에서 한 발언 중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해 구체적이고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라며 "후보자 토론회에서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더욱 넓게 보장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달 15일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로 결정하고 같은 달 18일 첫 심리를 진행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이 사건을 대법원 형사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에 배당해 4월부터 두 달여간 논의했지만, 소부에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부 판결은 해당 소부 대법관들이 만장일치 합의를 이룬 경우에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