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서가 교묘히 위조돼 위조사실을 쉽게 알 수 없었다면 등기신청을 한 법무사나 등기를 수리한 등기관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최근 위조된 소유권이전등기 판결서를 믿고 소유권이전등기 비용을 빌려준 A(40)씨가 국가와 법무사 B(52)씨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2007다87979)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등기관은 제출된 서면을 검토해 위조된 서면에 의한 등기신청이라고 인정될 경우 이를 각하해야 할 직무상 의무가 있지만 대량의 등기신청사건을 신속하고 적정하게 처리해야 하는 등기관의 업무상, 제출된 서면이 위조된 것임을 간과하고 등기신청을 수리한 모든 경우에 대해 등기관의 과실을 인정할 수는 없다”면서 “평균적 등기관이 보통 갖춰야할 통상의 주의의무만 기울였다면 제출서면이 위조됐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음에도 이를 간과하고 적법한 것으로 심사해 등기신청을 각하하지 못한 경우에 과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확정판결에 기한 등기신청을 접수한 등기관으로서는 등기신청에 필요한 서면이 모두 제출됐는지 여부, 서면 자체에 요구되는 형식적 사항이 구비됐는지 여부, 특히 확정된 판결서의 당사자 및 주문의 표시가 등기신청의 적법함을 뒷받침하고 있는지 여부 등을 제출된 서면과 등기부의 상호대조 등의 방법으로 모두 심사한 이상 형식적 심사의무를 다했다”며 “판결서의 외형과 작성방법에 비춰 위조된 것으로 쉽게 의심할만한 객관적 상황이 없다면 등기관이 판결서의 기재사항 중 신청된 등기의 경료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사항까지 일일이 검토해 재판서양식의 관행에 벗어난 것인지 여부를 파악한 뒤 위조여부에 관해 보다 자세한 확인을 해야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법무사에 대해서도 “법무사의 경우 의뢰인의 일을 자신의 일과 동일하게 처리해야 할 고도의 주의의무가 요구되지만 판결문의 위조여부까지 자세히 확인해야 할 주의의무는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 2004년 5월께 토지사기꾼 김모씨 일행은 소유권이전등기소송에서 승소한 판결서를 들고 법무사 B씨를 찾아왔다. 그러나 이 판결서는 교묘히 위조된 것이었다. 위조사실을 모르는 B씨는 판결서를 근거로 서울 강남의 대지를 김씨 명의로 하기위해 등기소에 소유권이전등기를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A씨는 이자 5,0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김씨에게 등기비용 2억5,000만원을 빌려줬다. 판결문이 교묘히 위조된 바람에 등기관도 이를 파악하지 못해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졌다.
그러나 곧 꼬리가 밟혔다. 부동산을 팔기 위해 공범 명의로 또다시 소유권이전을 하려다 김씨 명의의 등기필증이 누락된 사실을 의심한 담당 등기공무원에 의해 위조사실이 들통났다. 적법한 소유권이전등기라 생각하고 2억5,000만원을 빌려준 A씨는 토지사기꾼 김씨 일당 및 판결서 위조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국가와 법무사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1심은 “김씨 등 일당은 2억5,000만원을 지급하고, 국가와 법무사는 이 가운데 1억1,100여만원을 연대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등기공무원과 법무사에게 위조여부까지 확인할 주의의무는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