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적성검사 미필을 이유로 정기적성검사 대상이 아닌 운전면허까지 취소했다면 국가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첫 판결이 나와 피해자들의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최근 3년간 정기적성검사 미필을 이유로 일괄취소처분을 받은 사람의 수는 전국적으로 1만4620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돼 이번 판결 확정으로 국가가 수백억원의 배상책임을 질 가능성도 생겼다. 원고를 대리해 소송한 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그동안 운전면허 취소가 위법하다는 행정판결은 나온 적이 있지만,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최근 개인택시 운전자 진모(45)씨가 "제1종 보통운전면허에 대한 정기적성검사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2종 면허까지 취소한 것은 위법하므로 위자료 등 940만원을 지급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2010가소12299)에서 "국가는 54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1심사건을 맡았던 제주지법은 2010년 11월 "특정 면허의 취소 또는 정지에 의해 다른 운전면허에까지 당연히 그 취소 또는 정지의 효력이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운전면허 취소에 관한 판례가 수십년 동안 누적돼왔고, 행정심판위원회에서도 같은 취지의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며 "행정청으로서는 면허취소처분 당시 적성검사기간이 도래하지 않은 제2종 보통면허를 취소하는 것이 위법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으리라고 보이므로, 담당 공무원이 객관적 주의의무를 잃어 행정처분에 객관적 정당성이 없다"고 밝혔다. 당시 재판부는 "국가는 진씨에게 일실수입과 위자료 등 54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2심도 국가의 항소를 기각했다.
제 1,2종 보통운전면허를 소지하고 개인택시 운전 영업을 하던 진씨는 2009년 5월 제주지방경찰청이 제1종 보통면허에 관한 정기적성검사를 받지 않고 1년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1,2종 면허를 모두 취소해 택시영업을 못하게 되자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진씨는 2010년 1월 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취소처분을 제1종 보통운전면허 취소처분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의 재결을 받은 뒤 법률구조공단 제주지부를 통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률구조공단 관계자는 "내부 지침에 따라 처분을 내린 경우에 담당 공무원에게 객관적 주의의무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게 난점이었지만, 이미 확립된 대법원 판례와 동일한 사건에 대한 행정심판 재결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고 이를 근거로 삼아 승소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