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을 입은 경찰로부터 불심검문을 받을 경우 경찰이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정황상 경찰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 경우에는 검문에 응해야 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윤재식 대법관)는 지난 14일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배모씨(35)에 대한 상고심(2004도4029)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상해사건 현장에서 경찰관들이 정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직무수행중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았고, 신분확인요구도 안했다는 점 등에 비춰보면 경찰관들이 피고인에게 인적사항을 질문한 것은 직무수행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 의문이 없는 상황이었다”며 “피고인은 경찰관들에게 공무원증 제시를 요구하거나 답변을 거부하면 충분한 것임에도 욕설과 함께 폭력을 행사해 경찰관에게 상해를 입힌 이상 경찰관들이 공무원증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공무원의 직무집행을 방해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따라서 당시 불심검문은 경찰관이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아 절차적·실체적 요건을 결여했기 때문에 적법한 공무집행이라고 할 수 없고, 피고인의 폭행은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소극적인 저항행위로서 정당행위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배씨는 지난해 9월 대전시동구 도로에서 상해사건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하모 경장 등 경찰들이 인적사항을 묻자 욕설을 하고 하경장을 폭행해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6월이 선고됐으나, 2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29일 미대사관 주변에서 불심검문을 당한 사진기자 김모씨 등 4명이 낸 진정사건에서 “경찰이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는 등의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불심검문을 한 것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며 경찰청장에게 자체 인권교육실시를 권고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