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하는 박유하 명예교수 <사진=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대법원은 "학문적 주장이나 의견 표명으로 평가함이 타당하다"며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6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명예교수의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고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2017도18697).
박 교수는 지난 2013년 출간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매춘'이고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다고 기술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박 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은 "기소된 35개 표현 중 5개 표현은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나, 나머지 30개 표현은 의견 표명에 불과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5개 표현 중 3개 표현은 명예훼손적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지 않고, 2개 표현은 집단표시에 의한 것으로 피해자가 특정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박 교수에게 고소인들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고의가 없다"고 봤다.
또 "박 교수의 견해에 대한 판단은 학문의 장에서 전문가들이, 사회의 장에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상호 검증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2심은 무죄 판결을 파기하고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2심은 검찰이 문제로 지적한 표현 35개 중 11개는 의견 표명이 아닌 사실 적시라고 인정하고, 각 표현이 허위사실 및 명예훼손적 사실 적시에 해당하며 피해자도 특정됐을 뿐 아니라 명예훼손의 고의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2심은 "기존과 다른 시각에서 연구하고 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왜곡을 했고 피해자들을 비방하거나 고통을 줄 목적은 없었다"며 "명예훼손죄로 학문의 자유가 위축되면 안 된다"는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은 각 표현이 박 교수의 학문적 주장이나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고,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 적시'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재판부는 "박 교수는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의 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제국주의 사조나 전통적 가부장제 질서와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가 기여한 측면이 분명히 있으므로 전자의 문제에만 주목해 양국 간 갈등을 키우는 것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주제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사건 각 표현이 피해자 개개인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의 진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일본군 위안부의 전체 규모나 조선인 비율에 비추어 조선인 위안부를 구성원 개개인이 특정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이거나 균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고 보기 어렵고, 이 사건 각 표현이 피해자 개개인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의 진술에 해당한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했다.
아울러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은 그것이 주관적 요건이든 객관적 요건이든 증명 책임이 검사에게 있다"며 "해당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학문적 표현물로 인한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성립 판단 시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법리를 최초로 설시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