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온라인 슈팅게임 '오버워치'에서 목표물을 자동으로 조준해 공격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정보통신망법 등이 금지하고 있는 '악성 프로그램'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해당 프로그램이 정보통신시스템이나 게임 데이터 또는 프로그램 자체를 변경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5일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및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2019도2862). 대법원은 원심에서 유죄로 판단한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A씨는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약 1년간 오버워치 게임에서 상대방을 자동으로 조준하게 하는 프로그램인 'AIM도우미'를 총 3612회에 걸쳐 1억9900여만원을 받고 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AIM도우미는 게임 이용자가 1회라도 상대 캐릭터 공격에 성공할 경우, 이후 화면에 표시되는 상대 체력 표시를 자동으로 탐색하고 마우스 커서가 상대를 자동으로 따라가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상고심에서는 이 프로그램이 '악성 프로그램'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정보통신망법 제48조 2항은 '누구든지 정당한 사유 없이 정보통신시스템, 데이터 또는 프로그램 등을 훼손·멸실·변경·위조하거나 그 운용을 방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하 '악성프로그램'이라 한다)을 전달 또는 유포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AIM도우미는 이용자 본인의 의사에 따라 해당 이용자의 컴퓨터에 설치돼 그 컴퓨터 내에서만 실행된다"며 "정보통신시스템이나 게임 데이터 또는 프로그램 자체를 변경시키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프로그램은 정보통신시스템 등이 예정한 대로 작동하는 범위 내에서 상대방 캐릭터에 대한 조준과 사격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줄 뿐"이라며 "프로그램을 실행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일반 이용자가 직접 상대를 조준해 사격하는 것과 동일한 경로와 방법으로 작업이 수행된다"고 설명했다. 또 "이 프로그램이 서버를 점거해 다른 이용자들의 서버 접속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접속을 어렵게 만들고, 대량의 네트워크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등으로 정보통신시스템 등의 기능 수행에 장애를 일으킨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 프로그램이 정보통신망법이 정한 '악성 프로그램'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일 뿐 온라인 게임과 관련해 일명 '핵(hack)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등의 행위가 형사상 처벌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게임물 사업자가 제공 또는 승인하지 않은 프로그램을 배포·제작하는 행위는 게임산업법 위반죄 등에 해당될 수 있다"고 했다.
앞서 1심은 "쉽게 상대방을 저격할 수 있게 되기는 하나 게임 자체의 승패를 뒤집기 불가능할 정도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보통신시스템이 예정하고 있는 기능의 운용을 방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되 게임산업법 위반 혐의는 유죄로 봐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해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AIM도우미가 게임의 운용을 방해하는 프로그램에 해당한다고 보고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2심은 "개발자가 예정하지 않은 프로그램을 통해 게임에 중요한 요소를 자동수행으로 대체하도록 하는 것은 운용을 전반적으로 해치는 것"이라며 "다른 이용자들에게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하고, 게임에 대한 흥미와 경쟁심을 잃게 만든다"고 밝혔다. 다만 형량은 1심과 같이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