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 '키코(KIKO, 환헤지 통화옵션상품)'로 큰 손해를 본 중소기업들이 은행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승소했다.
키코로 피해를 본 기업이 700여개사이고 피해금액이 10조원으로 추산되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 기업들의 줄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부(재판장 최승록 부장판사)는 23일 엠텍비전 주식회사 등 4개 기업이 "부당한 키코 계약으로 피해를 봤다"며 한국씨티은행과 스탠다드차타드, 하나은행 등 3개 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소송(2011가합7340 등)에서 "은행은 기업들이 청구한 금액의 60~70%를 각각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이번 사건은 법무법인 바른의 김한용(53·사법연수원 15기) 변호사 등이 기업측을 대리했다.
키코 관련 소송에서 법원은 그동안 은행의 피해액 반환 책임을 인정하더라도 은행측의 책임을 20~50% 정도로 한정했다.
은행의 책임을 절반 이상이라고 판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금융계와 산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키코와 관련한 기업들의 첫 승소 사례로 받아들이고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은행이 기업의 이해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중요한 내용인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 발생의 위험성을 은행과 비슷한 수준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기업도 키코에 대한 검토를 게을리 한 채 은행의 권유를 그대로 따라 책임을 부인할 수 없는 점, 키코 계약 당시 금융위기를 예측하기 어려웠다는 점 등을 감안해 은행의 책임을 사건에 따라 손실액의 60~70%로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가 인정한 손실액은 모두 136억원에 달한다.
은행들은 이번 판결이 미칠 영향 등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을 결정할 방침이다.
엠텍비전 등 4개사는 "키코 상품을 계약할 당시 은행이 설명 의무 등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피해를 봤다"며 "손실액 200억여원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키코와 관련한 법정다툼은 2008년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13개 은행이 기업들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오르내리면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외화를 팔 수 있지만 환율이 이 범위를 넘어서 변동되면 계약금액의 2~3배를 시장가격보다 낮은 환율로 팔도록 설계된 통화옵션상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