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아동·청소년의 성교행위를 표현하는 음란 애니메이션을 배포한 사람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있어 실제 아동·청소년이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컴퓨터 합성 등을 통해 실제 아동·청소년이 참여한 것처럼 조작이 된 경우와 같은 예외적인 때에만 처벌할 수 있다는 취지다. 지난 24일 대법원이 '아동·청소년을 이용한 음란물은 등장인물이 외관상 명백하게 아동·청소년인 경우에만 아청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6단독 신원일 판사는 지난 24일 음란물을 배포한 혐의(아청법 위반,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2014고단285).
아청법 제11조3항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배포·제공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하는 등의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같은 법 제2조5호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정의에 대해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해 법이 정한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영상물로 규정하고 있다.
신 판사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규정한 조항이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어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판결문에서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이라는 법문언 자체가 매우 주관적이고 모호해 표현의 자유의 한계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동·청소년에 관한 인식 기준을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외적 형태를 가지고만 판단할 것인지, 스토리상에 나타난 설정 등을 가지고 판단할 것인지, 애니메이션에 흔히 등장하는 반인반수나 요괴와 같은 상상의 캐릭터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 성적 표현이 불가피한 역사적 사건이나 신화 또는 고전을 원작으로 한 표현물에 대해서도 같은 판단을 적용할 것인지 등에 관해서는 법 조항만으로는 기준을 전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정보통신망법상 일반적인 음란물을 유포한 범죄는 영리 목적의 유무와 관계없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지만, 아청법상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유포한 범죄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영리 목적이 더해지면 10년 이하의 징역만을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아청법 위반 범죄에 대해서는 성폭력 치료프로그램의 이수명령을 필요적으로 병과하고 있고 신상정보 등록, 아동·청소년 관련 시설 등에 취업할 수 없는 제약도 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법체계 하에서 애니메이션과 같은 순수 가공의 표현물을 아무런 제한 없이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포함시켜 해석할 경우 범죄와 형벌 사이에 비례관계를 인정할 수 없고 비난가능성에 현격한 차이가 있는 행위유형에 대해 법관이 차별적인 처벌을 부과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신 판사는 음란물의 등장인물이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경우는 실제 아동·청소년이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한 경우에만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다며 구체적인 예시 3가지를 들었다.
신 판사는 판결문에서 "2011년 9월 개정된 아청법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로 규정했지만, 2012년 12월 전부개정되면서 '명백하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로 제한했다"며 "개정 연혁을 보면 현재의 아청법은 음란물의 제작 과정에 있어 실제 아동·청소년의 성이 직접적으로 착취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 외에 간접적 측면에서 아동·청소년의 성이 이용되는 것을 보호하는 것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아청법의 입법목적과 개정 연혁 등을 고려하면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로서의 표현물은 실제 아동·청소년이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된 경우에만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신 판사는 이 경우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예로 △표현물의 제작에 있어 실제 아동·청소년이 모델 등으로 참여한 경우 △표현물의 제작에 있어 실제 아동·청소년이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컴퓨터 합성 등을 통해 실제 아동·청소년이 참여한 것처럼 조작이 된 경우 △표현물의 제작에 있어 실제 아동·청소년이 참여하거나 참여한 것처럼 조작된 바는 없지만 이미지 또는 스토리 등에 의해 실제 아동·청소년이 특정돼 해당 아동·청소년의 인격권이 침해되는 경우를 들었다.
신 판사는 "A씨가 올린 애니메이션은 앳된 모습을 한 가상의 남녀 캐릭터들이 학교, 집 등에서 성적 행위를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위 구체적인 예에 해당한다고 볼 증거가 없어 아청법 위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다만 A씨는 음란물을 유포해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됐다.
A씨는 웹하드 사이트에 비밀클럽을 운영하며 음란물을 올리고 클럽 회원들이 내려받을 수 있도록 배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가 올린 음란물에는 앳된 모습을 한 주인공들이 등장해 학교 등의 장소에서 성행위를 하는 애니메이션도 포함돼 있었다. A씨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와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A씨의 변호인은 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법원 관계자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기준과 관련해 '외관상 의심의 여지 없이 명백하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되는 경우여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보다 훨씬 구체적인 예시를 판결문에 들고 있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