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동안 프로그램의 일부가 일시적으로 컴퓨터 메모리에 저장되는 '일시적 저장'은 저작권법이 금지하는 복제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4부(재판장 이균용 부장판사)는 20일 메리츠화재와 벽산엔지니어링 등 80여개 기업이 컴퓨터 화면캡쳐 프로그램인 '오픈캡쳐' 저작권사 ISDK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소송 항소심(2014나19631)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인터넷 화면을 캡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오픈캡쳐는 당초 무료로 배포됐지만 2012년 버전 업데이트 과정에서 비상업용·개인용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단서가 붙었다. 기업 등이 업무용으로 사용할 때는 별도의 라이선스를 구매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80개 기업 직원들이 무단으로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자 오픈캡쳐 측은 저작권료로 14억여원을 요구했고, 기업들은 돈을 줄 수 없다며 소송으로 맞섰다.
이 소송에서는 무료이던 소프트웨어가 유료로 전환된 경우 프로그램을 실행할 때 메모리에 잠깐 저장되는 '일시적 저장'을 저작권법에서 금지한 복제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컴퓨터 운영체계상 프로그램을 실행할 때에는 메모리로 불러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시적 저장이 발생하는데 이런 부분까지 복제로 본다면 프로그램을 단순 실행한 것만으로도 저작권 침해가 된다. 기업 측에서는 메모리에 저장되는 것은 찰나에 불과하고 전원이 꺼지면 저장됐던 내용도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복제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은 "일시적 저장도 저작권 침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업무용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한 계약을 위반한 것에는 해당할 수 있어도 저작권 침해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저작권법에서는 원활하고 효율적인 정보 처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 저작물을 컴퓨터에 일시적으로 복제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며 "이 사건의 경우 이런 면책 대상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다만 "업무용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정한 약관을 무시한 데 대한 계약상 책임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밝혀 저작권자가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