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증도 신분을 증명하는 공문서이므로 신분증 제출을 요구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운전면허증을 제시한 경우 공문서부정행사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신분확인은 운전면허증의 본래의 용도가 아닌 만큼 이러한 경우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기존의 대법원입장을 변경한 것으로, 운전면허증 소지자가 크게 늘고 있고 또 면허증이 신분확인에 자주 사용되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전원합의체(주심 서성·徐晟 대법관)는 19일 경찰로부터 신분증제출을 요구받자 길에서 주운 타인의 면허증을 제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라모씨(25)에 대한 상고심(☞2000도1985)에서 검사의 상고를 받아들여 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취소하고 사건을 서울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운전면허증은 공문서로서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라는 '자격증명'과 이를 지니고 있는 동시에 내보이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동일인증명'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운전면허증을 제시한 행위에 있어 동일인증명의 측면은 도외시하고 그 사용목적이 자격증명으로만 한정돼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합리성이 없다"며 "따라서 제3자로부터 신분확인을 위해 신분증명서의 제시를 요구받고 다른 사람의 운전면허증을 제시한 행위는 그 사용목적에 따른 행사로서 공문서부정행사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우리사회에서 운전면허증을 발급 받을 수 있는 연령의 사람 가운데 절반 이상이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고, 금융기관과의 거래에 있어서도 운전면허증에 의한 실명확인이 인정되고 있는 등 현실적으로 운전면허증은 주민등록증과 대등한 신분증명서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감증명법·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부동산등기법상 등 여러 법령에 의한 신분확인 절차에서도 운전면허증은 신분증명서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으며, 주민등록법 자체도 주민등록증이 원칙적인 신분증명서이지만 운전면허증 등 다른 문서도 신분증명서로서 기능하는 것을 예상하고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따라 운전면허증의 제시행위와 공문서부정행사죄의 성립을 둘러싸고 이번 전원합의체판결과 다르게 판시됐던 ☞99도1237, ☞1996도1733, 91도3269 등 기존 대법원판결들은 모두 변경됐다.
하지만 송진훈(宋鎭勳) 대법관은 이러한 다수의견에 대해 "현실거래와 일부 법령이 정한 분야에서 운전면허증이 그 소지자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는데 사용되고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운전면허증의 사실적 내지 부수적 용도에 불과하고 본래의 용도라고 할 수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공문서가 본래의 사용목적 이외의 용도로 널리 사용된다는 이유를 들어 그러한 사실상 내지 부수적 용도도 본래의 사용목적에 포함된다고 본다면 그 부정행사로 인한 처벌범위가 크게 확대될 것이고 이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도 위배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피고인 라씨는 99년9월 의정부시 모 여관 근처에서 주차문제로 여관주인과 몸싸움을 벌이다 현행범으로 체포돼 파출소에서 조사를 받던 중 경찰이 신분증 제출을 요구하자 일전에 길에서 주운 다른 사람의 운전면허증을 제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과 공문서부정행사, 도로교통법위반, 점유이탈물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1심 재판부는 라씨에 대한 공소사실 모두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8월을 선고했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공문서부정행사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자 검사가 상고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