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 조달청 입찰계약상 직접생산 의무 조건을 위반해 하청업체에서 생산한 제품을 납품했더라도 1년간 입찰자격을 제한한 것은 과도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납품한 물품에 특별한 하자가 없고 다른 계약조건들을 위반한 사실이 없는데도 업체의 존립을 흔들 수도 있는 처분을 내린 것은 지나치다는 이유에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 부장판사)는 최근 A사가 조달청장을 상대로 낸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 취소소송(2021구합62324)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전자기기 제조업체인 A사는 2019년 서울지방조달청이 실시한 입찰에 참가해 낙찰자로 선정돼 같은 해 3월 국가와 리튬배터리 시스템 제작 및 설치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입찰 공고문과 계약서에는 '하청생산, 타사제품 납품 등 직접생산 조건을 위반해 계약을 이행할 경우 부정당업자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후 A사는 2020년 5월 서울지방조달청이 실시한 또다른 입찰에도 참가했는데, 적격심사 과정에서 앞선 계약에 따른 납품실적을 이행실적으로 제출한 뒤 낙찰자로 선정돼 같은 해 7월 또다시 국가와 리튬배터리 시스템 제작 및 설치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이 입찰의 차순위자인 B사가 서울지방조달청에 "A사는 C사에 하청을 줘 물품을 제작·납품해 직접생산의무를 위반했다"는 내용의 신고를 하면서 문제가 됐다. 서울지방조달청은 선행계약 이행과정에 관한 조사를 진행한 후 2020년 12월 A사가 선행계약을 이행하면서 직접생산의무를 위반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A사에 입찰참가자격을 1년간 제한하는 처분을 내렸다. 이에 반발한 A사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C사가 자기의 계산과 책임 하에 조립에 필요한 장소·인력을 확보하는 등 조립공정을 전체적으로 주도해 수행한 이상 A사가 C사와 의견을 교환하거나 일정을 조율하는 등으로 공정 진행에 일부 관여한 사정이 있더라도 A사가 해당 물품을 직접 생산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면서도 "실제 A사가 선행계약과 후행계약을 이행하면서 공급한 배터리 시스템 등 물품에 하자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 외 A사가 다른 계약 조건을 위반했다고 볼 만한 사정도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반면 해당 처분으로 인해 매출의 상당 부분을 공공입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업종의 중소기업인 A사로서는 사실상 사업의 지속 여부가 좌우될 정도의 중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입찰참가자격 1년간 제한은) 실제 그 위반행위의 위법성 정도에 비해 A사에 지나치게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울지방조달청의 처분은 도모하고자 하는 공익상 필요에 비해 A사에게 미치는 불이익이 지나치게 커 그 균형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사회통념에 비춰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은 처분으로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