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수사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범죄를 종용한 자가 수사기관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범의를 가지지 않은 사람에 대해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써서 범의를 유발, 범행을 저지르게 한 뒤 범죄인을 검거하는 것을 '함정수사'로 정의하고, 이를 위법으로 판단해온 기존 판례를 다시금 확인한 것이다. 단순히 범의를 유발시켜 범죄를 저지른 것만으로는 '함정수사'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고, '수사기관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어야 필요하다고 해석해 함정수사의 범위를 좁게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필로폰을 구입해 전달한 혐의(마약관리법위반)로 기소된 허모(39)씨에 대한 상고심(2008도5328)에서 징역8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수사기관과 직접 관련이 있는 유인자가 피유인자와의 개인적인 친밀관계를 이용해 피유인자가 범의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해 허용되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유인자가 수사기관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지 않은 상태에서 피유인자를 상대로 단순히 수차례 반복적으로 범행을 부탁했을 뿐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사용했다고 볼 수 없는 경우에는 설령 그 행위로 인해 피유인자의 범위가 유발됐더라도 위법한 함정수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손모씨가 피고인에게 필로폰 구입의 범행을 종용하기 이전에 수사기관이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수사기관이 직접 손씨에게 피고인을 범죄행위를 유인하도록 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해 함정수사에 해당된다는 허씨의 주장을 배척한 원심은 옳다"고 판단했다.
허씨는 지난해 10월께 손씨로부터 필로폰을 매수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필로폰 10g, 시가 100만원어치를 구입했다. 허씨는 손씨의 승용차에 탑승해 필로폰을 전달하려는 순간 손씨가 미리 이 사실을 제보한 경찰관들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돼 1심에서 징역1년, 2심에서는 징역8월을 각각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