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피의자의 공범에게서 받은 진술을 진술조서 형식으로 법원에 제출했더라도 이는 사실상 피의자신문조서와 같으므로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고 받은 공범의 진술을 기재한 진술조서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지난 20일 국가보안법위반과 집시법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모(36)씨에 대한 상고심(☞2008도8213) 선고공판에서 일부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의자의 진술을 녹취 내지 기재한 서류 또는 문서가 수사기관에서의 조사과정에서 작성된 것이라면, 그것이 '진술조서, 진술서, 자술서'라는 형식을 취하였다고 하더라도 피의자신문조서와 달리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피의자의 진술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형사상 자기에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 자기부죄거부의 권리에 터잡은 것이므로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신문함에 있어서 피의자에게 미리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때에는 그 피의자의 진술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서 진술의 임의성이 인정되는 경우라도 증거능력이 부인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검사가 (피고인의 공범) 최모씨를 소환해 피고인 등 공범들과의 조직구성 및 활동 등에 관해 신문하면서 피의자신문조서의 형식이 아니라 일반적인 진술조서의 형식으로 조서를 작성했더라도 내용은 피의자신문조서와 실질적으로 같다"며 "그런데도 기록상 검사가 최씨에게 미리 진술거부권이 있음을 고지한 사실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으므로 진술의 임의성이 인정되는 경우라도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어 피고인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정책국장으로 활동하면서 한총련과 함께 수차례 한미 FTA반대집회를 주도하고,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 집단 몸싸움을 벌이는 등 불법시위를 벌인 혐의로 기소됐다. 박씨는 또 북한의 사상, 정치노선 및 과제 등을 기록한 문건을 보관하고, 방대한 양의 이적물들을 단체사람들과 공유한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공범 최씨를 수사하면서 공범들과의 조직구성과 활동에 대해 신문했으나, 최씨가 진술을 거부하자 최씨를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기소한 뒤 재차 소환해 일반적인 진술조서 형식으로 진술조서를 작성해 박씨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법원에 제출했다.
1심은 불법집회에 따른 집시법위반 및 일반교통방해에 대해서는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국가보법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북한관련 문건을 소지한 것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으며, 공범으로부터 받은 진술조서는 위법하게 수집된 것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2심은 "박씨가 소지한 북한관련 자료가 방대하고 북한의 체제, 노선, 사상 등을 비판없이 추종했으며 북한의 사상을 깊이있게 학습했다는 점은 대한민국의 안전 및 기본질서에 충분히 위협을 가할 수 있다"며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취득, 소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박씨가 이적활동을 찬양·동조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로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