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가 지역주민들과 충분한 협의를 하는 조건으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사업허가를 받은 뒤 합리적인 합의안을 제시하는 노력을 했다면, 합의가 되지 않았더라도 지자체는 공사를 중지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부산고등법원 창원제1행정부(재판장 진성철 부장판사)는 지난달 15일 산림골재 채취업을 하는 주식회사 성호개발이 고성군을 상대로 낸 공사중지명령 해제신청거부처분 취소청구항소심(2013누10086)에서 원심을 취소하고 원고 승소판결했다.
재판부는 "허가조건인 '주민과의 충분한 협의'는 쌍방의 의사가 합치하는 합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성실에 비춰 합의에 이르도록 성실하고 진지하게 협의할 것을 의미한다"며 "성호개발은 진입도로 사용 방법, 우회도로 개설 등 합리적 합의안을 제시하는 등 합의를 위한 성실하고 진지한 노력을 했지만, 주민들은 토석채취 사업 자체를 반대함으로써 최종적인 합의가 불가능한 점을 볼 때 고성군의 처분은 이유 없어 위법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행정처분의 조건은 내용이 적법·이행가능해야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며 "그러나 사업 허가 조건 중 하나인 '민원 발생에 따른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은 그 내용이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호개발이 아닌 주민들의 태도에 따라 이행 가능 여부가 좌우되므로 적법한 조건이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2009년 성호개발은 고성군으로부터 땅 2필지에서 토석을 채취하는 사업의 허가를 받았다. 고성군은 주민과의 충분한 협의를 통해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조건으로 사업 허가를 내줬다. 2011년 성호개발이 주민들에게 "마을 주민 의견대로 우회도로를 개설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후 성호개발이 다른 우회도로안을 제시해 합의가 결렬되자 고성군은 공사중지명령을 했다. 성호건설은 계속 협의를 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공사중지명령 해제를 신청했다. 그러나 고성군은 2011년 성호개발이 주민과 한 약속을 이행한 뒤 해제신청을 하라고 통보했다. 계속 합의에 실패하자 성호건설은 소송을 냈으나 1심은 "협의를 추진한 것은 인정되나 충분한 협의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