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시사항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된 것) 제307조 제1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소극)
◇ 결정요지
오늘날 매체가 매우 다양해짐에 따라 명예훼손적 표현의 전파속도와 파급효과는 광범위해지고 있으며, 일단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어렵다는 외적 명예의 특성상, 명예훼손적 표현행위를 제한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지게 되었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자를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함으로써 개인의 명예, 즉 인격권을 보호하고 있다. 명예는 사회에서 개인의 인격을 발현하기 위한 기본조건이므로,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우열은 쉽게 단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며,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입법례와 달리 우리나라의 민사적 구제방법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효과를 확보하기 어려우므로 입법목적을 동일하게 달성하면서도 덜 침익적인 수단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형법 제310조는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처벌하지 아니’하도록 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형법 제310조의 적용범위를 넓게 해석함으로써 형법 제307조 제1항으로 인한 표현의 자유 제한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명예훼손죄가 공적인물과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만약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를 고려하여 형법 제307조 제1항을 전부위헌으로 결정한다면 외적 명예가 침해되는 것을 방치하게 되고, 그로 인해 어떠한 사실이 진실에 부합하더라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성적 지향·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수 있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의 ‘사실’을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는 사실’로 한정하는 방향으로 일부위헌 결정을 할 경우에도,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는 사실’과 ‘그렇지 않은 사실’ 사이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또 다른 위축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사정과 더불어, 헌법 제21조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타인의 명예와 권리를 그 한계로 선언하는 점, 타인으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법률상 허용된 민·형사상 절차에 따르지 아니한 채 사적 제재수단으로 명예훼손을 악용하는 것을 규제할 필요성이 있는 점, 공익성이 인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타인의 명예가 허명임을 드러내기 위해 개인의 약점과 허물을 공연히 적시하는 것은 자유로운 논쟁과 의견의 경합을 통해 민주적 의사형성에 기여한다는 표현의 자유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아니한다.
[재판관 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의 반대의견 요지]
1. 다양한 사상과 의견의 교환을 보장하고 국민의 알권리에 기여하는 표현의 자유는 우리 헌법상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핵심적 기본권이므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불가피하더라도 그 제한은 최소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헌법 제21조 제4항 전문은 ‘타인의 명예’를 표현의 자유의 한계로 선언하고 있으나 같은 항 후문에서 명예훼손의 구제수단으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명시할 뿐이므로, 헌법이 명예훼손에 대한 구제수단으로 형사처벌을 당연히 예정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표현의 자유의 중요한 가치는 공직자에 대한 감시와 비판인데, 감시와 비판의 객체가 되어야 할 공직자가 표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의 주체가 될 경우 국민의 감시와 비판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형사처벌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행위반가치와 결과반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법질서에 의해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행위로 보기 어려워 행위반가치를 인정하기 어렵고, 진실한 사실의 적시로 손상되는 것은 잘못되거나 과장된 사실에 기초한 허명에 불과하므로 결과반가치도 인정하기 어렵다. 사실 적시 표현행위로부터 외적 명예를 보호할 필요성이 있더라도, 피해자로서는 형사처벌이 아니더라도 정정보도와 반론보도 청구, 손해배상 청구와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 한편, 형법 제307조 제1항은 반의사불벌죄이므로, 피해자가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3자가 공적인물·공적사안에 대한 감시·비판을 봉쇄할 목적으로 고발을 통해 진실한 사실 적시 표현에 대해서도 형사절차가 개시되도록 하는 ‘전략적 봉쇄소송’마저 가능하게 되었다. 향후 재판절차에서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조각사유에 해당된다는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일단 형법 제307조 제1항의 구성요건에 해당되는 것이 확실한 이상, 자신의 표현행위로 수사·재판절차에 회부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축효과는 발생할 수 있으며, 이후 수사·재판절차에서 마주하게 될 공익성 입증의 불확실성까지 고려한다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진실한 사실이 가려진 채 형성된 허위·과장된 명예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를 야기하면서까지 보호해야 할 법익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2. 진실한 사실은 공동체의 자유로운 의사형성과 진실발견의 전제가 되므로, ‘적시된 사실이 진실인 경우’에는 허위 사실을 바탕으로 형성된 개인의 명예보다 진실한 사실에 관한 표현의 자유 보장에 중점을 둘 필요성이 있다. 또한 헌법 제17조가 선언한 사생활의 비밀의 보호 필요성을 고려할 때, ‘적시된 사실이 사생활의 비밀에 관한 것이 아닌 경우’에 허위 사실을 바탕으로 형성된 개인의 명예보다 진실한 사실에 관한 표현의 자유 보장에 중점을 둘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사정과 함께, 법률조항 중 위헌성이 있는 부분에 한하여 위헌선언하는 것이 입법권에 대한 자제와 존중에 부합하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형법 제307조 제1항 중 ‘진실한 것으로서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지 아니한’ 사실 적시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