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에게 도주의 고의를 인정하려면 피고인이 이 사건 사고로 피해자가 사상을 당하였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였어야 한다. 피고인의 수사기관 및 법정에서의 진술, 이 사건 사고 상황이 촬영된 블랙박스 영상자료 등에 의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사고로 차량이 덜컹거리는 충격을 감지하고도 충격의 정확한 원인이나 차량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갓길에 정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사고현장을 떠난 사실, 피고인이 피해자를 역과하기 전후로 브레이크를 밟았던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황사실, 그밖에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법원이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이 사람을 역과하였음을 인식하였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1) 이 사건 사고 당시 야간이었고 비가 많이 내리고 있어서 가시거리가 길지 않았으며 노면이 젖어 있어서 불빛이 노면에 반사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위와 같이 가시거리상태 및 노면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피고인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전방 3차로에서 시속 약 80㎞의 속도로 진행하는 쏘나타 차량을 추월하여 4차로에서 3차로로 차선을 변경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고속도로에 쓰러져 있는 피해자를 발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피고인은 오른쪽 눈이 실명으로 왼쪽 눈으로만 사물을 인식할 수 있어서 정상인에 비하여 시야가 좁다. 따라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역과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2) 피해자는 이 사건 사고 발생 전에 고속도로를 주행하다가 오른쪽 갓길의 연석과 방음벽을 연이어 들이받는 선행사고를 일으켰는데 피해자의 차량이 회전하면서 전복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조수석 창문으로 튕겨져 나가 고속도로 3차로와 4차로 사이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있으리라 기대되는 운전자가 차량에서 튕겨져 나와 도로에 떨어져 있는 상황이 발생하리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예상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피고인이 선행사고가 있었음을 알았다고 하여 피고인이 이 사건 사고의 충격을 감지하였을 때에 선행사고로 고속도로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역과하였음을 인식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피고인으로서는 선행사고로 고속도로에 흩어져 있던 차량파편 등을 타고 넘은 것으로 생각하고 운행에 별다른 지장이 없다고 판단하여 그대로 진행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피고인이 역과 직후 잠시 브레이크를 밟았다가 다시 진행한 것은 고속 주행하던 차량이 어떤 물체를 타고 넘어갔을 때 운전자가 보일 수 있는 반응으로 피고인이 사람을 역과하였음을 인식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정황으로 보기 어렵다).(중략)
그렇다면 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위 공소사실에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의 점에 대한 공소사실이 포함되어 있고 이에 대하여 유죄를 인정하는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아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