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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부담금
행정사건
서울고등법원 2023. 11. 10. 선고 2023누44759 판결
위탁자와 수탁자가 합의한 목적신탁 해지의 위법성
[ 요 약 ] 원고는 B 법인을 2020년에 흡수합병한 법인으로서, B의 주주였던 C는 2017년 3월 B 명의의 계좌로 중소기업 지원을 목적으로 100억 원을 기부했다. 이 자금은 B에 의해 2017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21개 중소기업에 총 38억 원이 지급되었고, 나머지 62억 원은 2019년 12월 C에게 반환됐다. 과세관청은 이 100억 원을 B의 익금으로 간주하여 2017년도에 26억 원의 법인세를 부과하였고, 반환된 62억 원을 B가 C에게 배당한 것으로 간주하여 2020년에 소득금액변동통지를 하였다. 원고는 불복하여, 기부된 자금이 B의 실질적인 자산으로 귀속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익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기부금 100억 원이 B의 자산으로 회계 처리되지 않고, 외부에 공시된 바도 없으며, B가 자체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 기부금이 B의 익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한, 기부금은 목적에 따라 집행되었으며, 남은 정산금도 C와 B의 합의해지에 따라 반환되었으므로, 신탁재산의 귀속을 재단하는 기준에 따라 원고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원고에 대한 2017년도 법인세 26억 원의 부과처분과 2020년도 62억 원의 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을 모두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기부금이 특정 목적을 위해 신탁된 것으로 보아, 신탁법과 신탁법리를 적용하여 법률관계를 판단한 중요한 사례다. Ⅰ. 사건의 개요 1. 원고는 2020년 5월 B를 흡수합병한 법인이다. C는 B의 주주이었던 자이다. 피고는 과세관청이다. C와 B는 중소업체 사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C는 2017년 3월 B 명의의 H라는 계좌로 100억 원을 기부하였다. B는 2017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총 6회에 걸쳐 21개의 중소업체에 38억 원을 지급하였다. C와 B는 2019년 12월 양해각서를 합의해지하고, B는 같은 날 C에게 100억 원 중 중소업체에 지급된 38억 원을 공제한 나머지 정산금인 62억 원을 반환하였다. 2. 피고는 위 100억 원은 B의 익금에 해당한다고 보아 원고에게 2017년도 법인세 26억 원을 경정·고지하였고, 정산금으로 반환한 62억 원도 B의 익금에 산입할 금액으로서 B가 C에게 배당한 것으로 보아 원고에게 2020년도 62억 원의 소득금액변동통지를 하였다. 이에 원고는 위 100억 원은 B에 실질적으로 귀속되었다고 볼 수 없어 익금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26억 원의 부과처분은 위법하고, 반환금 62억 원이 익금에 산입할 금액임을 전제로 한 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도 위법하다고 주장하였다. 3. 제1심은 피고에게 법인세 26억 원의 부과처분과 62억 원의 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하였다. 제2심도 원고의 청구를 모두 인용하여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Ⅱ. 법원의 판단 1. 양해각서의 성격 양해각서에 ‘신탁’, ‘수탁’, ‘수익자’라는 형식적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양해각서에 따른 법률관계가 신탁의 성질을 가졌음을 부인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또한 양해각서는 수익자가 없는 이른바 ‘목적신탁’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유형의 신탁은 신탁법 제3조 제1항 단서에 의하여 허용되고 있으므로, 양해각서와 같이 수익자가 구체적으로 지정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신탁의 본질에 반하지는 않는다. 결국 양해각서의 형식과 실질이 모두 신탁 또는 그와 유사한 법률관계에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2. 기부금 100억 원이 익금에 해당하는지 여부 기부금 100억 원은 B가 대내외적으로 이를 소유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B의 자산수증이익이나 그 밖의 수익 등 익금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B는 양해각서에서 정한 목적에 따라 100억 원을 관리·집행할 수 있었을 뿐이고, 자기를 위한 용도로는 이를 사용할 수 없었다. 또한 100억 원은 B의 고유재산과 분리되어 별도로 집행·관리되었고, B의 자산으로 회계 처리되지도 않았으며, 그와 같은 사실이 외부로 공시되어 표시되었다. ② 구법인세법 제5조(2020. 12. 22. 법률 제1765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는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소득에 대해서는 그 신탁의 이익을 받을 수익자(수익자가 특정되지 아니하거나 존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신탁의 위탁자 또는 그 상속인)가 그 신탁재산을 가진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③ 100억 원은 양해각서에 따라 중소PP를 위하여 지출되었고, 남은 정산금도 B와 C의 합의해지에 따라 C에게 반환되었다. 당사자의 합의로 양해각서를 해지하는 행위가 신탁의 성질에 반한다거나, 단지 일방의 임의해지를 제한하는 취지의 양해각서 제4조(발효)의 문언을 위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Ⅲ. 대상 판결에 대한 평석 1. 묵시적인 법률관계를 신탁 법률관계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 대상 판결은 ‘신탁’, ‘수탁’, ‘수익자’ 등과 같은 신탁을 나타내는 형식적 표현이 양해각서 어디에도 사용되지 않았음에도 양해각서의 내용이 신탁 법률관계가 가지는 성격인 ‘소유권의 이전’, ‘수탁자의 배타적 관리·처분권’, ‘신탁재산의 분별관리의무’라는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보아, 양해각서에 따른 법률관계를 신탁법 제3조 제1항 단서의 ‘수익자가 없는 특정의 목적을 위한 신탁’ 이른바 ‘목적신탁’으로 보았다. 즉 C가 B에게 기부한 100억 원은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C가 B에게 신탁한 것으로 보았고, 기부금 100억 원에 관한 법률관계에 신탁법과 신탁법리를 적용 또는 유추적용하여 판단하고 있다. 2. 신탁법상 목적신탁의 설정 신탁법은 신탁의 설정방식으로 계약, 유언, 신탁선언 3가지 유형을 정하고 있다(제3조 제1항). 이 3가지 방식 모두 위탁자의 신탁설정 의사표시를 필수요건으로 하고 이러한 신탁설정행위(당사자 간에 신탁이라는 법률관계를 성립시키는 행위)를 신탁행위라고 한다. 법률행위에서와 마찬가지로 신탁행위에 있어서도 의사표시는 명시적으로도 묵시적으로도 가능하다. 또한 의사표시가 명시적인지 묵시적인지에 따라 신탁행위의 종류를 구분하지는 않으며, 그 효과에서도 차이가 없다. 당사자들의 언어를 통해서 신탁설정의사를 명확히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전체 정황을 통해서 당사자들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고, 이때 신탁설정의사는 특정 용어의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행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목적신탁은 공익신탁이 아닌 한 신탁선언에 의해서는 설정할 수 없다(제3조 제1항 단서). 신탁선언에 의해 목적신탁을 설정할 수 있게 한다면, 채무자인 위탁자가 종래 자신의 채권자의 책임재산에 속하던 재산을 이제부터는 독립한 재산으로서 직접 관리하게 된다. 그래서 채무자가 집행면탈 등의 목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신탁선언의 방식으로는 목적신탁을 설정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3. 목적신탁에서 법인세 납세의무자 구법인세법 제5조 제3항에 의하면,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소득에 대해서는 수익자가 특정되지 아니하거나 존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신탁의 위탁자가 법인세를 납부할 의무가 있다. 즉 수익자가 없는 목적신탁의 경우 법인세 납세의무자는 위탁자이다. 따라서 위 100억 원의 거래가 B의 익금이 될 수 없다는 원고의 주장은 정당하다. 4. 신탁법상 목적신탁의 종료 신탁이 종료되기 위해서는 우선 종료의 원인이 있어야 한다. 신탁법은 여러 유형의 종료사유를 정하고 있는데, 위탁자가 신탁이익의 전부를 누리는 경우 위탁자는 언제든지 신탁을 종료할 수 있다(제99조 제2항). 신탁의 설정자이면서 신탁재산의 이익을 모두 향수하는 위탁자 겸 수익자가 신탁의 종료를 의욕하는 이상 이를 금지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밖의 경우에 위탁자가 별도로 해지권을 유보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위탁자에게 신탁의 해지권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신탁계약을 통해 독립된 신탁재산이 구성되고 이를 중심으로 새로운 법률관계가 형성되므로, 신탁을 설정한 위탁자라고 하더라도 이를 자의적으로 종료시킬 수는 없다. 또한 신탁행위로 달리 정함이 없는 한 위탁자와 수익자는 합의에 의하여 언제든지 신탁을 종료할 수 있다(제99조 제1항, 제4항). 그러나 이들 규정은 수익자신탁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수익자가 없는 목적신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목적신탁의 경우 위탁자의 임의해지와 위탁자와 수익자의 합의에 의한 종료는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신탁관리인이 선임된 목적신탁의 경우 위탁자와 신탁관리인의 합의에 의한 종료는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당사자의 의사에 기한 신탁의 종료에서 어느 경우에 의하건 수탁자는 종료의 합의권자의 범위에서 제외된다. 신탁은 수익자의 이익 또는 특정의 목적을 위하여 신탁재산을 관리하는 제도이므로 수탁자는 합의에 의한 신탁종료시 관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다면 신탁 법률관계를 해석함에 있어 위탁자가 별도로 해지권을 유보하거나 신탁법상 종료사유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위탁자와 수탁자가 임의로 합의하여 목적신탁을 해지할 수는 없다. 대상판결은 C와 B의 합의로 양해각서를 해지하는 행위가 신탁의 성질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으나, 사안에서 해지 당사자는 위탁자와 수익자가 아닌 위탁자 C와 수탁자 B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 양해각서는 C와 B 사이의 합의해지로 종료될 수 없으므로, B가 C에게 지급한 62억 원은 신탁재산의 반환이나 잔여재산의 귀속이 아니라 B의 자산을 C에게 지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피고가 원고에게 한 2020년도 귀속 62억 원의 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은 정당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Ⅳ. 대상 판결의 의미 대상 판결은 법인이 아닌 재단을 갈음할 수 있는 목적신탁의 실제 활용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현행 우리법체계에서는 사익 또는 영리를 도모할 목적으로 재단법인을 설립하거나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사익을 위하여 재단법인에 버금가는 독립재산체를 신탁의 이름으로 창설할 수 있다. 신탁재산의 독립성을 본질로 하는 신탁은 재단법인과 기능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대상 판결을 계기로 목적신탁의 스킴이 제공하는 장점과 매력을 활용하여 그 이용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안성포 교수(전남대 로스쿨)
익금
목적신탁
법인세
기부금
신탁
양해각서
안성포 교수(전남대 로스쿨)
2024-04-14
조세·부담금
행정사건
- 대법원 2022. 11. 17. 선고 2018두47714 판결 -
무상 수입물품에 대한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Ⅰ. 서론 대법원은 2003. 사업자등록명의를 대여해 준 형식상 수입신고 명의인이 관세납부의무자인 ‘물품을 수입한 화주’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면서 관세법에도 실질과세 원칙이 적용된다고 판시한 이래(대판 2003. 4. 11. 2002두8442), 실질과세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하지 않은 관세법에도 동 원칙이 적용됨을 거듭 밝혀왔다(대판 2010. 4. 15. 2009두21260, 2016. 9. 30. 2015두58591 등). 실질과세 원칙이 헌법상 기본이념인 평등의 원칙을 조세법률관계에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대판 2012. 1. 19. 2008두8499) 조세법률관계의 일종인 관세법률관계에도 적용됨은 당연하다. 최근 대법원은 관세의 과세표준인 수입물품의 가격에 실질과세 원칙을 적용하여 과세가격을 재구성한 판결(대판 2022. 11. 17. 2018두47714. 이하 ‘대상판결’)을 선고하였는바, 이를 살펴본다. 이하 필자의 사견임을 밝힌다. 대상판결은 실질과세 원칙을 관세법상 과세표준인 수입물품의 가격 결정에 적용한 많지 않은 판결 중 하나로서 그 의의가 있으나, 본건 물품의 무상계약으로서의 실질을 고려하지 않고 특약의 이행에 따른 사후적 결과만을 중시함으로써, 대법원이 그간 거듭 밝혀 온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한다는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기준에 벗어난 판시를 한 아쉬움이 있다. Ⅱ. 사실관계 및 소송의 경과 1. 사실관계 의약품 원료 등을 수입하여 의약품을 제조·판매하는 원고는 2004년 일본법인 A사와 효소계 원료의약품에 관한 독점구매계약(이하 ‘본건 계약’)을 체결하면서 연간 기준물량 이상을 구매하면 구입물량의 일정비율을 ‘무료샘플(Free Sample)’로 무상제공 받는 특약(이하 ‘본건 특약’. 원고는 그 후 4차에 걸쳐 무료샘플 제공 수량을 변경하는 내용으로 본건 특약을 갱신하였다.)을 하고, 2014년 무상제공 받은 원료의약품(이하 ‘본건 물품’)에 관하여 임의의 가격인 5000엔/BU(Billion Unit)을 수입신고가격으로 하여 수입신고를 하였다. 피고는 2015년 원고에 대한 관세조사 후 본건 물품이 무상 수입물품으로서 관세법 제30조 제1항의 ‘우리나라로 수출하기 위하여 판매되는 물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위 수입신고가격을 부인하고, 동법 제31조에 따라 유상구매한 원료의약품의 거래가격을 과세가격으로 하여 원고에 대하여 관세 등 합계 1억8291만4840원을 경정, 고지하였다(이하 ‘본건 과세처분’). 원고는, 본건 계약이 1년 단위로 잠정적인 기본가격을 설정하고 일정 수량 이상을 구입한 경우 사후적으로 할인물량을 추가 공급함으로써 최종 가격이 결정되는 연간 구매계약이고, 본건 특약은 ‘가격조정약관’으로서 ‘수량할인’을 규정한 것으로서, 본건 물품의 실제지급가격은 유상구매물량의 대가인 ‘총 지급액’을 유상구매물량과 무상제공물량(본건 물품)을 합한 ‘총 구매물량’으로 나눈 금액을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본건 과세처분에 불복하였다. 2. 원심판결(서울고판 2018. 5. 11. 2017누82446)의 요지 세계관세기구 관세평가기술위원회 예해 4.1이 규정하는 가격조정약관은, 수입물품의 가격결정 요소인 생산소요비용 등이 사후 변경되어 ‘수입물품의 대가’가 변경되는 경우로서 과세가격의 임의적인 변경을 방지하기 위해 수입 전에 계약상 그 취지가 명시되어 있어야 하는데, 본건 계약상 유상물품의 ‘기본가격(Base Price)’은 한화로 정하고‘실제가격(actual price)’은 기본가격에 발주 당시 환율을 적용한 일본 엔화로 계산하기로 약정하였을 뿐 기본가격이 구입물량에 따라 조정 가능함을 약정하지 않은 점, 그에 따라 유상 수입물품의 실제가격이 수입신고 되었을 뿐 가격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 원고는 본건 물품의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임의의 가격인 5000엔을 거래가격으로 수입신고한 점, 본건 물품의 무상제공으로 총 지급액이 낮아지더라도 이는 본건 특약에 따른 결과일 뿐인 점 등을 고려할 때 본건 특약은 가격조정약관에 해당하지 않는다. 세계관세기구 관세평가기술위원회 권고의견 15.1에 의하면 수량할인은 판매자가 기준연도 동안의 구매수량에 따라 물품가격에서 공제하기로 허용한 금액으로 고정가격표에 따라 물품가격을 책정한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경우에만 인정되는데, 본건 특약상 무료샘플 수량을 제외한 연간 구매수량을 기준으로 무료샘플 제공 수량을 정한 점, 본건 계약상 실제가격이 발주 당시 환율로 계산한 일본 엔화로 확정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본건 특약이 수량할인을 규정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이에 더하여 본건 특약이 본건 물품을 ‘무료샘플’로 표현하여 당사자 간 무상제공에 관하여 합의한 것으로 보이는 점, 본건 계약 무렵 본건 특약에 따라 무료샘플 공급과 선택적·병행적으로 판매사원들에게 무상 일본관광이 제공된 점 등을 보면, 본건 물품을 무상 수입물품으로 보고 관세법 제31조에 따라 동종·동질물품인 유상 구매물품의 수입신고가격으로 과세가격을 결정한 본건 과세처분은 적법하다. 3. 대상판결의 요지 본건 특약은 연간 구매수량이 1688 BU 미만인 경우 연간 구매수량의 10% 또는 11%, 그 이상인 경우 구간별로 더 큰 비율로 추가 공급함을 규정하여 반드시 일정 비율의 물품이 추가 공급됨을 예정하고 있어 본건 계약은 원고 주장과 같은 실제지급가격 산정 방식을 내용을 하는 연간 구매계약에 해당하고, 추가공급 물품이 연간 구매수량의 10% 이상으로 적지 않아 본건 물품이 대가 없이 공급된 무상 수입물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심판결에는 무상성, 실질과세 원칙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Ⅲ. 평석 1. 관세법상 무상 수입물품에 대한 과세가격 결정방법 관세의 과세표준은 수입물품의 가격 또는 수량으로 하고(관세법 제15조), 수입물품의 과세가격은 우리나라에 수출하기 위하여 판매되는 물품에 대하여 구매자가 실제로 지급하여야 할 가격에 구매자가 부담하는 수수료 등을 더하여 조정한 거래가격으로 한다(동법 제30조). 무상 수입물품은 우리나라에 수출하기 위하여 판매되는 물품에 포함되지 않는바(동법 시행령 제17조 제1호), ‘판매(sell)’는 대가를 지급하는 유상계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상 수입물품은 과세가격 결정의 원칙을 규정한 관세법 제30조가 아닌 동법 제31조부터 제35조까지에서 규정한 과세가격 결정방법을 순차적으로 적용하여 과세가격을 결정한다. 2. 본건 계약의 실질 내용 국세기본법 제14조 제2항은 “세법 중 과세표준의 계산에 관한 규정은 소득, 수익, 재산, 행위 또는 거래의 명칭이나 형식과 관계없이 그 실질 내용에 따라 적용한다”고 규정하는바, 관세법 중 ‘과세표준의 계산에 관한 규정’인 동법 제30조 이하의 규정, 특히 무상 수입물품인지 여부가 쟁점인 본건과 관련하여 동법 제30조, 동법 시행령 제17조 제1호의 규정은 본건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관계없이 본건 계약의 실질 내용에 따라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대법원은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기준과 관련하여, 납세의무자가 경제활동을 함에 있어서 동일한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법률관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그것이 가장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과세관청으로서는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하여야 함을 거듭 밝혀 왔는바[대판 1991. 5. 14. 90누 3207, 2009. 4. 9. 2007두26629, 2012. 1. 19. 2008두8499(전합) 등],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대상판결처럼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에 따라 납세자에게 유리한 결과가 될 수 있는 본건에서도 달리 볼 이유는 없으므로 위 판결 취지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본건 특약상 본건 물품은 ‘무료샘플’로서 원고가 이에 대하여 별도의 대가도 지급하지 않았는바, 본건 특약이 형식상 무상 수입물품에 관하여 규정한 것임은 다툼의 여지가 있기 어렵다. 원심판결이 인정한 앞서 본 사실관계에 더하여 원고가 본건 계약 당시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무상 수입물품에 대한 관세 부과 쟁점을 제외하고는, 원심판결처럼 본건 물품을 무상으로 보 든 대상판결처럼 유상으로 보든 원고의 총 지급액은 차이가 없어 원고가 달성하고자 하는 경제적 목적이 동일한 점을 고려할 때, 본건 계약 내지 특약의 실질 내용 역시 본건 물품을 무상제공하는 법률관계임이 명백하다 할 것이다. 아울러 의료법과 약사법은 2010. 경 부당한 경제적 이익 등을 제공한 의약품공급자와 더불어 이를 받은 의료인 등까지 처벌하도록 한 ‘리베이트 쌍벌제’를 시행하면서도 ‘견본품 제공’ 등에 대하여는 예외를 인정하였고(의료법 제23조의5, 제88조, 약사법 제47조, 제94조), 본건 무렵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제약기업에 의한 천문학적 액수의 무료샘플 제공이 이루어졌는바, “무료샘플藥, 결국은 약가부담 가중 ‘부메랑’”, 약업신문 2014. 4. 24.자 참조. 무료샘플의 제공이 제약업계의 오랜 관행임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사정들을 고려하지 아니하는 한편, 원고가 선택하였음이 명백한 본건 물품을 무상제공하는 법률관계를 부인하면서 본건 특약의 이행에 따른 사후적 결과만을 중시하는 판단을 하였는바, 이는 대법원이 그간 거듭 천명해 온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실질과세 원칙의 법리에 반하는 판단으로 보여진다. 3. 본건 물품의 과세가격 결정 위와 같이 본건 계약은 형식으로나 실질 내용으로나 본건 물품을 무상제공하는 법률관계임이 명백하므로, 원심이 적절히 설시한 바와 같이 가격조정약관 또는 수량할인의 법리를 적용하여 본건 물품을 유상물품이라 보기 어렵다 할 것이다. 따라서 관세법 제31조에 따라 동종·동질물품인, 본건 계약에 따라 공급된 유상물품의 거래가격을 기초로 과세가격을 정하여 한 본건 과세처분은 적법하다고 보아야 한다. Ⅳ. 결론 헌법상 기본이념인 평등의 원칙은 관세법률관계에서도 구현되어야 하므로 관세법에 명문 규정이 없더라도 실질과세 원칙이 적용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대상판결은 실질과세 원칙을 관세법상 과세표준인 수입물품의 가격 결정에 적용한 많지 않은 판결 중 하나로서 그 의의가 있으나, 본건 계약의 문언 및 이행 과정 등에서 드러난 본건 물품의 무상제공 계약으로서의 실질을 고려하지 않고 본건 특약의 이행에 따른 사후적 결과만을 중시함으로써, 대법원이 그간 거듭 밝혀 온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한다는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기준에 벗어난 판시를 한 아쉬움이 있다. 이상욱 법무담당관(관세청·변호사)
수입
관세
무료샘플
실질과세
이상욱 법무담당관(관세청·변호사)
2023-05-21
행정사건
- 대법원 2022. 3. 17. 선고 2021두53894 판결 -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③ 이의신청에 대한 거부와 항고소송의 대상적격
대상판결은 ‘이의신청’이라는 제목과 관계없이 당사자의 신청을 새로운 신청으로 선해하여 그에 대한 기각결정의 독자적 처분성을 인정하는 판례의 연장선에서 위 판례의 적용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특히 당사자가 법률에서 정한 이의신청을 한 경우에도 사안에 따라서는 그에 대한 기각결정을 새로운 처분으로 볼 수도 있음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Ⅰ. 사실관계 1. 원고는 당진시에 토지를 소유한 사람이다. 피고(당진시장)는 「지적재조사에 관한 특별법」(이하 ‘지적재조사법’)에 따라 지적재조사사업을 실시하고 토지의 경계를 확정하며 면적 증감에 따른 조정금을 산정하여 토지 소유자에게 징수하거나 지급하는 권한을 부여받은 지적소관청이다. 2. 피고는 지적재조사사업에 따라 원고 소유 토지의 지적공부상 면적이 감소되었음을 이유로, 당진시 지적재조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원고에게 조정금 62,865,000원의 수령을 통지하였다(‘1차 통지’). 3. 원고가 지적재조사법에 따른 이의신청 기간 내에 조정금에 대하여 이의를 신청하였으나, 피고는 원고에게 당진시 지적재조사위원회가 재감정을 거쳐 심의·의결한 내용을 첨부하여 기존과 동일한 액수의 조정금을 수령할 것을 통지하였다(‘2차 통지’). 4. 원고는 충청남도행정심판위원회에 2차 통지의 취소재결을 구하는 행정심판을 청구하였다가 기각되자, 2차 통지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Ⅱ. 대법원 판결 요지 1. 수익적 행정처분을 구하는 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이 있은 후 당사자가 다시 신청을 한 경우에는 신청의 제목 여하에 불구하고 그 내용이 새로운 신청을 하는 취지라면 관할 행정청이 이를 다시 거절하는 것은 새로운 거부처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나아가 어떠한 처분이 수익적 행정처분을 구하는 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해당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의 내용이 새로운 신청을 하는 취지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그 이의신청에 대한 결정의 통보를 새로운 처분으로 볼 수 있다. 2. ① 조정금에 대한 이의신청 절차는 지적재조사법에 따른 법률상 절차이므로 그에 관한 절차적 권리는 법률상 권리로 볼 수 있는 점, ② 원고가 이의신청을 하기 전에는 조정금 산정결과 및 수령을 통지한 1차 통지만 존재하였고 원고는 신청 자체를 한 적이 없으므로 원고의 이의신청은 새로운 신청으로 볼 수 있는 점, ③ 2차 통지서의 문언상 종전 통지와 별도로 심의·의결하였다는 내용이 명백하고, 단순히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내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정금에 대하여 다시 재산정, 심의·의결절차를 거친 결과, 그 조정금이 종전 금액과 동일하게 산정되었다는 내용을 알리는 것이므로, 2차 통지를 새로운 처분으로 볼 수 있는 점, ④ 피고가 1차 통지 시에 이의신청 절차만을 안내하고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에 대하여는 안내하지 않았으며 행정심판절차에서 심판청구의 대상적격에 대하여 전혀 다투지 아니한 이상 원고도 2차 통지를 행정소송의 대상인 처분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2차 통지는 1차 통지와 별도로 행정쟁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다. Ⅲ.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1. 이의신청의 의미 이의신청이란 넓게는 행정작용에 대하여 행정부 내부에 제기하는 불복절차를 통칭하는 것이지만, 이의신청을 일반행정심판 및 특별행정심판에 해당하지 않는 간이한 불복절차로 좁게 이해하는 것이 좀 더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3월 24일 시행된 행정기본법 제36조는 행정처분을 대상으로 하여 처분청에 불복하는 이의신청 절차의 원칙적 구조를 정한 일반법이다. 그러나, 제36조의 시행 이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법률에서 다양한 모습의 이의신청 절차를 두고 있다. 지적재조사법에 따른 이의신청도 그중 하나다. 2. 이의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판례의 변천 (1) 이의신청 기각결정의 처분성 부인 대상판결의 취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의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012년 대법원판결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구 「민원사무 처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거부처분에 대하여 제기하는 이의신청이 문제 된 사건에서 이의신청 기각결정이 “종전의 거부처분을 유지함을 전제로 한 것에 불과”하여 “이의신청인의 권리·의무에 새로운 변동을 초래하는 공권력의 행사나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0두8676 판결). 그런데, 위 판결에 따르면, 이의신청은 행정심판과 성질을 달리하는 것이므로, 행정심판청구를 거친 경우 행정심판재결서 정본을 송달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행정소송법 제20조 제1항 단서는 이의신청을 거쳐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 적용될 수 없다. 따라서, 이의신청의 결과를 기다리다 종전 처분이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이 지나버리면 이의신청인은 어떠한 불복도 불가능하게 된다. 종전 처분에 대한 취소의 소는 제소기간을 도과하였고, 이의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취소의 소는 대상적격이 부인되어 부적법하기 때문이다. 판례의 이러한 태도는 행정소송법 제20조 제1항 단서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여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를 방해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2) 이의신청 기각결정의 처분성을 인정한 판례의 등장 대법원은 이후 위와 같은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대법원은 2016년, 피고(LH공사)가 생활대책대상자 부적격통보에 대한 이의신청을 재심사하여 재심사 결과로도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재심사통보’를 한 사건에서, 위 재심사통보가 단순히 종전 처분을 유지하는 의사를 표시함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청에 대한 처분으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적격이 인정된다고 보았다(비교판례 1, 대법원 2016. 7. 14. 선고 2015두58645 판결). 위 사건에서는 ① 피고가 원고들의 신청 없이 직권으로 원고들에게 최초의 처분을 하였고, 원고들이 이의신청을 통하여 비로소 생활대책대상자 지정 신청권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 ② 피고가 원고들이 새로이 제출한 자료를 고려하여 선정기준 충족 여부를 다시 심사하였다는 점, 그리고 ③ 피고가 재심사통보에 대하여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취지로 불복방법을 고지하였기에 위 고지에 따른 원고들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중요한 고려요소가 되었다. 대법원은 2019년 및 2021년, “거부처분이 있은 후 당사자가 다시 신청을 한 경우에는 신청의 제목 여하에 불구하고 그 내용이 새로운 신청을 하는 취지라면 행정청이 이를 다시 거절하는 것은 새로운 거부처분”으로 본다는 일반적인 법리를 근거로 ‘이의신청’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거부를 새로운 거부처분으로 보는 두 건의 판결을 선고하였다. 첫 번째는 예방접종 피해보상 기각결정을 받은 원고가 피고(질병관리본부장)의 내부절차에 따라 이의신청을 하였다가 기각된 사안이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①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및 그 시행령 등에 이의신청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없고 권리 행사기간의 제한에 관한 규정도 없으므로 원고가 언제든지 재신청을 할 수 있다는 점, ② 원고의 이의신청이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상 이의신청기간이 도과된 후에야 제기되어 위 법률에 따른 이의신청으로 볼 수도 없는 점 등을 들어 원고의 이의신청을 새로운 피해보상신청으로 보았다(비교판례 2, 대법원 2019. 4. 3. 선고 2017두52764 판결). 두 번째는 이주자택지공급대상자 선정 신청이 거부된 원고가 이의신청을 하였으나 이의신청 또한 기각된 사안이다. 대법원은 ① 공급대상자 선정 신청기간을 제한하는 특별규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규정이 있더라도 재신청이 신청기간을 도과하였는지 여부는 본안에서 재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이 적법한가를 판단하는 단계에서 고려할 요소이지 소송요건 심사단계에서 고려할 요소가 아닌 점, ② 피고 스스로도 이의신청을 수용하지 아니하는 결정이 별도의 처분에 해당한다고 보아 그에 따른 불복절차를 안내한 점을 들어 이의신청 불수용처분의 처분성을 인정하였다(비교판례 3, 대법원 2021. 1. 14. 선고 2020두50324 판결). 3. 대상판결이 주는 함의 대상판결은 ‘이의신청’이라는 제목과 관계없이 당사자의 신청을 새로운 신청으로 선해하여 그에 대한 기각결정의 독자적 처분성을 인정하는 판례의 연장선에서 위 판례의 적용범위를 확대하였다는 점에서 이의를 찾을 수 있다. 비교판례 1, 2, 3은 모두 수익적 처분의 발급을 구할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신청권이 인정되는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원고들의 신청은 ‘이의신청’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종전 처분에 대해 불복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적 처분의 발급을 구하는 새로운 신청을 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원고들이 이전에 신청권을 행사한 적이 없거나(비교판례 1), 이미 이의신청기간이 도과하였기 때문에 이를 새로운 신청으로 볼 수밖에 없거나(비교판례 2), 원고가 신청의 사유를 구체적으로 주장하고 증빙자료를 첨부하여 피고에게 새로운 심사를 촉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피고도 그에 따른 결정을 새로운 처분으로 보고 불복방법을 안내하였다는 점(비교판례 3)이 근거가 되었다. 이와 달리 대상판결에서는 원고에게 조정금의 지급을 신청할 법률상의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 지적재조사법은 지적소관청이 직권으로 지적재조사지구를 지정하고, 경계를 결정하고, 조정금을 산정하여 지급 또는 징수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고는 단지 지적소관청의 조정금산정 결과에 대해 이의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원고의 이의신청을 그 제목에도 불구하고 이의신청이 아닌 별개의 신청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피고가 최초의 조정금산정 시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조정금을 재산정하고 필요한 절차를 거쳤다는 점이 비교판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대상판결은 법률에서 정한 이의신청을 한 경우에도 종전 처분과 동일한 심사절차를 거쳤다면 이의신청에 대한 결정을 새로운 처분으로 볼 수 있다고 선언한 셈이다. 대상판결은 2012년 판결이 가져온 불합리한 결과를 완화하고 원고의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판결로 보인다. 대법원이 2012년 판결에서 제시한, 이의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은 종전의 거부처분을 유지함을 전제로 한 것으로서 별도의 처분으로 볼 수 없다는 법리가 폐기된 것은 아니지만, 비교판례에서 대상판결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위 법리의 적용범위를 상당부분 축소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4. 보론: 행정기본법상 이의신청 제도와 대상판결의 관계 행정기본법 제36조가 시행됨에 따라 이의신청절차를 거쳐 불복하는 경우의 제소기간 문제는 해결되었다. 제4항에서 이의신청인이 이의신청에 대한 결과를 통지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을 명시하였기 때문이다. 이의신청이 기각된 이후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다툼의 대상을 특정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굳이 이의신청 기각결정의 처분성을 인정할 필요성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행정심판위원회나 법원으로서는 석명권을 적절히 행사하거나 종전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것으로 원고의 의사를 선해하는 등으로 청구취지의 특정에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처분청으로서도 이의신청에 대한 결과를 통지할 때에 불복의 대상을 명확히 특정함으로써 이에 관한 논란을 방지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박현정 교수(한양대 로스쿨)
이의신청기각결정
이의신청
지적재조사
박현정 교수(한양대 로스쿨)
2023-04-26
행정사건
- 대법원 2022. 2. 11. 선고 2021두40720 판결 위반차량운행정지취소 등 -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① 행정쟁송에서 집행정지의 종기를 둘러싼 법적 쟁점
한국행정법학회가 법률신문 독자들을 위해 주요 행정사건 판례를 분석한 행정판례평석을 연재합니다. 김용섭 회장을 시작으로 학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학계·실무계 전문가들이 필자로 참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I. 사실관계 1. 원고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서 정한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을 영위하는 주식회사이다. 피고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인 군수이다. 피고는 2015. 6. 8. 원고에 대하여 각 화물자동차를 불법증차하였다는 이유로 구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2021. 7. 27. 법률 제1835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9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60일(2015. 7. 13.부터 2015. 9. 10.까지)의 운행정지 처분을 하고, 각 화물자동차를 불법증차하고도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유가보조금을 지급받았다는 이유로 같은 법률 제44조의2 제1항 제5호에 따라 6개월(2015. 7. 13.부터 2016. 1. 13.까지)의 유가보조금 지급정지 처분을 하였다. 2.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관할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하였다. 행정심판위원회는 2015. 7. 13. 위 각 처분의 집행을 행정심판 청구 사건의 재결이 있을 때까지 정지하는 내용의 이 사건 집행정지결정을 하였다가 2015. 8. 31. 유가보조금 지급정지 처분의 취소 청구는 기각하고, 위 운행정지 기간은 30일로 감경하는 이 사건 재결을 하였다(이하 위 유가보조금 지급정지 처분과 위와 같이 감경되고 남은 운행정지 처분을 합하여 ‘선행처분’이라 한다). 원고는 선행처분에 대하여 법원에 별도로 취소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3. 피고는 2015. 9. 22. 선행처분의 집행을 피고와 A주식회사 사이의 이와 유사한 사건의 관할 행정법원 2015구합1245 판결 시까지 유예한다는 내용의 이 사건 유예 통지서를 작성하여 원고에게 발송하였다. 관할 행정법원은 2016. 1. 13. 위 사건에 관하여 판결을 선고하였다. 피고는 2020. 3. 5. 원고에게 선행처분과 동일한 사유로 각 화물자동차에 관하여 30일(2020. 3. 6.부터 2020. 4. 4.까지)의 운행정지, 6개월의 유가보조금 지급정지를 하겠다고 통보하였다(이하 ‘이 사건 통보’라 한다). Ⅱ. 대법원 판결 요지 1. 행정소송법 제23조에 따른 집행정지결정의 효력은 결정 주문에서 정한 종기까지 존속하고, 그 종기가 도래하면 당연히 소멸한다. 따라서 효력기간이 정해져 있는 제재적 행정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에서 법원이 본안소송의 판결 선고 시까지 집행정지결정을 하면, 처분에서 정해 둔 효력기간(집행정지결정 당시 이미 일부 집행되었다면 그 나머지 기간)은 판결 선고 시까지 진행하지 않다가 판결이 선고되면 그때 집행정지결정의 효력이 소멸함과 동시에 처분의 효력이 당연히 부활하여 처분에서 정한 효력기간이 다시 진행한다. 이는 처분에서 효력기간의 시기(始期)와 종기(終期)를 정해 두었는데, 그 시기와 종기가 집행정지기간 중에 모두 경과한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법리는 행정심판위원회가 행정심판법 제30조에 따라 집행정지결정을 한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행정심판위원회가 행정심판 청구 사건의 재결이 있을 때까지 처분의 집행을 정지한다고 결정한 경우에는, 재결서 정본이 청구인에게 송달된 때 재결의 효력이 발생하므로(행정심판법 제48조 제2항, 제1항 참조) 그때 집행정지결정의 효력이 소멸함과 동시에 처분의 효력이 부활한다. 2. 효력기간이 정해져 있는 제재적 행정처분의 효력이 발생한 이후에도 행정청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대방에 대한 별도의 처분으로써 효력기간의 시기와 종기를 다시 정할 수 있다. 이는 당초의 제재적 행정처분이 유효함을 전제로 그 구체적인 집행시기만을 변경하는 후속 변경처분이다. 이러한 후속 변경처분도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의사표시에 관한 일반법리에 따라 상대방에게 고지되어야 효력이 발생한다. 위와 같은 후속 변경처분서에 효력기간의 시기와 종기를 다시 특정하는 대신 당초 제재적 행정처분의 집행을 특정 소송사건의 판결 시까지 유예한다고 기재되어 있다면, 처분의 효력기간은 원칙적으로 그 사건의 판결 선고 시까지 진행이 정지되었다가 판결이 선고되면 다시 진행된다. 다만 이러한 후속 변경처분 권한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초의 제재적 행정처분의 효력이 유지되는 동안에만 인정된다. 당초의 제재적 행정처분에서 정한 효력기간이 경과하면 그로써 처분의 집행은 종료되어 처분의 효력이 소멸하는 것이므로(행정소송법 제12조 후문 참조), 그 후 동일한 사유로 다시 제재적 행정처분을 하는 것은 위법한 이중처분에 해당한다. Ⅲ. 이 사건 판결에 대한 평석 1. 집행부정지 원칙과 집행정지제도 행정심판법 제30조와 행정소송법 제23조는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집행이 정지되지 않는다는 집행부정지 원칙을 표방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이나 프랑스처럼 집행부정지 원칙을 채택하고 있는 반면 독일은 집행정지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어느 제도를 채택할 것인지는 각국의 실정에 따른 입법정책의 문제이다. 행정소송에서의 집행부정지 원칙은 남소를 억제하여 행정의 원활한 집행과 행정목적 달성을 위한 현 상태(status quo)의 존속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행정쟁송을 통하여 제재적 행정처분을 다투려고 하는 당사자는 그 제재적 처분기간이 경과하면 일반적으로 본안에서 소각하 판결을 받을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당사자는 가구제의 일종인 집행정지제도를 활용하여 본안판결의 실효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2. 실무관행과 대상 판결의 문제점 현행 행정심판법이나 행정소송법에서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에 관해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행정법원의 일반적 실무 관행은 “본안판결 선고시까지”로 하고 있다. 법원은 개별적인 사건을 고려하여 “본안판결 확정시까지” 또는 “본안판결 선고일부터 1월까지” 등으로 신축적으로 재량에 따라 집행정지결정을 내리고 있다. 한편, 행정심판위원회의 경우에는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를 재결이 있을 때까지로 하는 것이 실무관행이고, 재결일로부터 30일이 되는 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에 관한 실무관행과 판례의 법리에 따르면 당사자가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경우 본안에서 승소하였음에도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인 판결선고일에 집행정지결정의 효력이 소멸함과 동시에 처분의 효력이 당연히 부활하여 처분에서 정한 효력기간이 다시 진행하게 된다. 따라서 법원에서 직권으로 집행정지 결정을 하지 않으면 판결선고일에 영업정지처분의 효력이 되살아나 그 다음 날부터 바로 영업을 중단하여야 하는 문제가 있다. 또한 본안에서 패소한 경우 당사자는 영업중단에 대비하는 조치를 곧바로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판결선고시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 도래로 곧바로 종전 처분의 효력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선 처분청은 별도의 의사표시로 처분의 시기와 종기를 다시 정하고 심지어 집행정지의 효과를 지니는 처분까지 행하는 실정이다. 대상판결은 이와 같은 편법을 정당화해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대상판결은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가 판결선고일인 경우 처분에서 정해 둔 효력기간은 판결 선고일까지 진행하지 않다가 선고일 다음 날부터 다시 진행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법리는 행정심판위원회가 행정심판법 제30조에 따라 집행정지결정을 한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고 있다. 다만, 대상판결은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를 재결시로 한 경우 그 시점은 재결을 한 날이 아니라 재결서 정본이 청구인에게 송달된 때로 보고 있다.(행정심판법 제48조 제2항, 제1항 참조) 그러나 이러한 행정심판법의 법문을 확장하는 대법원의 해석은 당사자의 권익을 고려하는 측면이 있지만, 재결서의 정본이 청구인에게 송달된 시점을 행정청이 정확히 알기 어려워 처분 효력의 재개 시점이 불명확하여 행정처분의 원활한 집행을 통한 공익실현에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 3.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에 관한 입법방향 가. 입법론과 비판 : 학계 일각에서 법원의 실무관행인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를 ‘판결선고시까지’로 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판결확정시까지’로 행정소송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목할 만한 입장이 개진된 바 있다. (류광해, “행정처분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에 대한 검토”, 인권과 정의 통권 제446호, 2014. 65-77면, 제20대 국회 오제세의원 대표발의 행정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 참고). 그런데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를 판결확정시까지로 법제화할 경우에는 법원이 집행정지제도를 보다 신중하고 엄격하게 운영하게 되어 당사자인 국민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를 판결확정시로 정하는 경우 승소한 원고를 보호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으나, 승패가 명확하지 않은 사건에 있어서 1심법원이 항소심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권한을 선취하는 결과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행정소송법에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를 판결확정시 까지로 명문화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나. 결론 및 대안 : 따라서 행정소송의 경우 판결선고 후 30일까지로, 행정심판의 경우 재결 후 30일까지로 각각 실무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적 검토사항이다.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에 관하여 법제화하려면 국민의 권익구제와 원활한 행정목적 실현의 조화 측면에서 행정소송의 경우 판결선고 후 30일까지로, 행정심판의 경우 재결 후 30일까지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바람직하다. 김용섭 교수 (전북대 로스쿨)
집행정지
행정소송
김용섭 교수 (전북대 로스쿨)
2023-02-16
정보통신
헌법사건
- 헌재 2022. 7. 21. 2016헌마388 등 결정 -
전기통신사업법상 통신자료 제공요청 규정의 위헌성
1. 사안의 개요 청구인들은 검사 또는 군수사기관의 장을 포함한 수사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의 요청에 따라 자신들이 가입한 전기통신사업자가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가입일 등의 통신자료를 제공하였음을 알게 되자 1) 위 수사기관 등의 각 통신자료 취득행위(이하 ‘이 사건 통신자료 취득행위’라 한다)와 2) 그 근거법률인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 중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군 수사기관의 장을 포함한다), 정보수사기관의 장의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 방지를 위한 정보수집을 위한 통신자료 제공요청”에 관한 부분(이하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결정의 요지 헌법재판소는 1) 이 사건 통신자료 취득행위에 관한 심판청구는 각하하였고, 2) 심판대상조항에 대하여는 2023. 12. 31.을 시한으로 잠정적용을 명하는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였다. 3. 평석 가. 결정의 배경 헌법재판소는 2012년 유사한 사건에서 통신자료 취득행위와 구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에 관하여 모두 각하결정을 한 바 있다(헌재 2012. 8. 23. 2010헌마439). 그러나 그 이후에도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도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한 수사기관 등(여기에는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수사처 등이 포함된다)의 통신자료 취득에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계속하여 제기되었다. 대상결정은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2016년 및 2022년 청구된 합계 4건의 헌법소원심판 사건을 병합하여 판단에 이른 것이다. 대상결정은 심판대상조항이 통신자료 제공 이후에도 정보주체에게 이를 통지하는 절차를 두고 있지 않아 적법절차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였다. 심판대상조항이 적법절차원칙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은 타당하나 대상결정에 따른 후속입법에 있어서는 쟁점이 되었던 다른 위헌사유들도 진지하게 검토하여 헌법적으로 최적화된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나. 적법요건 대상결정은 적법요건에 관한 중요 쟁점을 몇 가지 포함하고 있으므로 먼저 이에 관하여 본다. 헌법재판소는 우선 이 사건 통신자료 취득행위 부분은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았고 이 점은 2012년 결정과 같은 취지이다.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국가기관이나 공공단체의 고권적 작용으로 인하여 청구인의 법률관계 내지 법적 지위를 불리하게 변화시켜야 하는데 통신자료를 제공요청하고 전기통신사업자로부터 이를 자발적으로 제공받은 것은 임의수사에 불과하여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지만 권리보호이익 흠결을 이유로 각하해야 한다는 별개의견도 제시되었다). 2012년 결정과 달라진 부분은 통신자료 제공과 취득의 근거규정인 심판대상조항의 직접성에 관한 판단으로서 이로 인하여 대상결정의 본안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헌법소원의 적법요건 중 기본권침해의 직접성만큼 논란이 많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배경에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명시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 외에 경우에 따라서는 판례의 태도에서 일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작용한다고 보인다. 법률조항은 구체적인 집행행위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그 자체에 의하여 자유의 제한, 의무의 부과, 권리 또는 법적 지위의 박탈을 일으키는 경우 그 직접성이 인정될 수 있다. 사안에서는 공권력주체인 수사기관 등의 통신자료 제공요청과 사적 행위자인 전기통신사업자의 제공행위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 집행행위의 실행이 있어야 비로소 기본권 제한이 발생하므로 원칙적으로는 기본권침해의 직접성이 없게 된다. 2012년 선행결정은 특히 전기통신사업자의 통신자료 제공행위가 재량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취지로 판시하였다. 그러나 ‘사인(私人)의 행위’는 공권력작용이 아니므로 집행행위로 볼 수 없다는 판례들(가령 헌재 1996. 4. 25. 95헌마331)에 비추어 보더라도 직접성 판단에 있어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반면 대상결정은 적어도 영장주의나 사후통지 등 절차와 관련하여서는 법률에서 그 제도를 두지 않아 기본권 침해가 직접 문제 된다고 할 수 있고, 집행행위로 인하여 비로소 기본권 제한이 발생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더라도 “통신자료 취득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불복수단이 존재하는지가 불분명”하고, “이용자는 수사기관 등의 통신자료 제공요청의 직접적인 상대방이 아니어서 다른 절차를 통해 권리구제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직접성의 예외가 인정될 수 있다고 보아 기존 판례를 변경하였다. 공권력작용과 사인의 행위가 결합된 형태의 집행행위에 이러한 법리가 향후 일관되게 적용될 것인지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일부 청구인들은 통신자료 취득시점으로부터 1년이 도과한 이후에 심판청구를 하였으나, 사후통지를 받지 못한 이상 기간도과에 청구인들이 책임질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본 점도 눈에 띈다. 다. 기본권 침해 여부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조항에 의하여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제한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심판대상조항의 통신자료는 정보주체의 동일성을 식별할 수 있는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기입일·해지일’을 뜻하므로 사안에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제한이 발생한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청구인들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외에 통신의 비밀 제한도 발생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헌법재판소는 이에 관하여 명시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다. 이는 전기통신사업법상 통신자료가 “구체적인 통신관계의 발생으로 야기된 모든 사실관계, 특히 통신관여자의 인적 동일성·통신장소·통신횟수·통신시간 등 통신의 외형을 구성하는 통신이용의 전반적 상황(헌재 2018. 6. 28. 2012헌마538)”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일 수 있으나 더 명시적인 논거와 판단기준이 드러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심판대상조항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 여부는 명확성원칙, 과잉금지원칙, 영장주의, 적법절차원칙을 기준으로 검토되었다. 명확성원칙과 관련하여서는 심판대상조항 중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 부분만이 문제 되었으나 일반인도 그 취지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보아 명확성원칙 위반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과잉금지원칙과 관련하여서는 통신자료로서 제공되는 정보의 범위, 제공요청의 사유, 통신자료의 사전·사후 관리 등이 집중적으로 고려되었는데, 법정의견은 이 모든 사항과 관련하여 필요 이상의 기본권 제한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반면, 별개의견(재판관 이종석)은 통신자료로서 ‘만능키’와 같은 주민등록번호도 수집할 수 있고, 개인정보에 관한 보관기간이나 폐기절차 등 사후관리방법도 부재하는 이상 과잉금지원칙 위반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필자는 선행정보가 후속정보의 대규모 수집,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오늘날의 정보통신환경을 고려할 때 별개의견이 제시한 논거들에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상결정은 절차적 통제원칙들인 적법절차원칙과 영장주의의 관점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적법절차원칙의 ‘절차적’ 요청으로 적절한 고지와 의견 및 자료 제출의 기회 부여를 들고 있고 제도와 사안에 따라 그 구체적 요구의 정도가 달라진다고 보고 있다. 대상결정은 심판대상조항이 사전고지절차를 마련하고 있지 않은 것은 물론, 통신자료 제공 이후 사후통지절차조차 두고 있지 않아 적법절차원칙상 요구되는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보았으며 이는 타당하다고 평가된다. 재판관들도 이 점에 있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영장주의에 관하여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대상결정은 심판대상조항에 따른 통신자료 제공요청은 통신비밀보호법상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헌재 2018. 6. 28. 2012헌마191)과 달리 임의수사에 불과하여 영장주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간략히 판시하는 데 그쳤으나, 기실 이는 상당한 논쟁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특히 대상결정이 나오기 이전에 통신자료 취득에 관하여 영장주의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상당수 발표되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오동석, 황성기, 차진아, 임규철. 반대견해로는 이기수, 유주성). 영장주의 적용론은 정보제공 여부를 결정할 지위에 있는 전기통신사업자가 당해 개인정보의 주체가 아니라는 점과 제3자인 전기통신사업자조차 정보제공 여부의 타당성을 실질적으로 심사할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대법원 2016. 3. 10. 선고 2012다105482 판결 참조)을 주된 논거로 한다. 위와 같은 논쟁의 배경에 행정상의 인신구속 등에 관하여도 영장주의의 적용이 검토되고 있는 상황(헌재 2020. 9. 24. 2017헌바157 등 보충의견 참조)을 더하여 보면, 대상결정 중 영장주의에 관한 판시와 논증은 충분치 못하였다고 보인다. 통신자료의 취득이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 등 보다 강력한 기본권제한조치들과 빈번하게 결부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라. 향후의 과제 대상결정은 사후통지절차의 흠결에 초점을 두고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였는바, 적용시한인 2023. 12. 31. 이전에 개정입법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기통신사업법에 관한 개정안은 이미 수차례 제안된 바 있고 전기통신사업법 자체의 전면개정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입법자는 개정과정에 있어 헌법재판소가 직접적인 헌법불합치사유로 거론한 ‘최소한의 사후통지절차’를 마련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통신자료의 범위, 적절한 사전적 통제수단의 필요성, 보관기간이나 절차의 마련 등 대상결정에서 검토되었던 다른 위헌사유들을 진지하게 검토하여 헌법적으로 최적화된 대안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조동은 교수(서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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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조동은 교수(서울대 로스쿨)
2023-02-01
민사일반
- 대법원 2021. 6. 17. 선고 2018다257958, 257965 전원합의체 판결 -
소극적 확인하는 소에서 '확인하는 이익'에 관한 법리
1. 사실 및 쟁점 (가) 이 사건 보험계약의 계약자 겸 피보험자인 소외인이 2016년 10월경 사고로 사망하자, 보험수익자인 피고는 2016년 12월경 보험회사인 원고에게 상해사망보험금의 지급을 청구하였다. 원고는 2017년 2월경 소외인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이 사건 보험계약을 해지함과 동시에 이를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그 무렵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보험계약에 기한 보험금 지급채무의 부존재 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본소를 제기하였다. (나) 쟁점은, 보험회사가 보험수익자를 상대로 소극적 확인하는 소를 제기할 확인하는 이익이 있는지 여부, 즉 소극적 확인하는 소에서 '확인하는 이익'에 관한 법리이다. 2. 대법원 판결 이유의 요지 (다수의견) 확인하는 소에서 확인하는 이익은 원고의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위험이 있고 그 불안·위험을 제거하는 데 피고를 상대로 확인판결을 받는 것이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일 때에만 인정된다고 할 것이므로 원고의 권리 또는 법률관계를 다툼으로써 원고의 법률상 지위에 불안·위험을 초래할 염려가 있다면 확인하는 이익이 있다. 그러므로 보험계약의 당사자 사이에 계약상 채무의 존부나 범위에 관하여 다툼이 있는 경우 그로 인한 법적 불안을 제거하기 위하여 보험회사는 먼저 보험수익자를 상대로 소극적 확인하는 소를 제기할 확인하는 이익이 있다. (반대의견) 소극적 확인하는 소에서 확인하는 이익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확인하는 이익의 공적인 기능이나 소극적 확인하는 소가 채권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도 고려해야 하므로, 모든 계약 관계에서 계약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항상 채무자가 소극적 확인하는 소를 제기할 수 있는 확인하는 이익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3. 논점의 전개 (가) 확인하는 소의 의의 및 본질 (a) 확인하는 소라 함은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권리 또는 법률관계의 존부를 주장하고 법원에 대하여 그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말한다. 그 존재를 주장하는 것이 적극적 확인하는 소, 그 부존재를 주장하는 것이 소극적 확인하는 소이다. (b) 확인하는 소에 대한 본안판결은 확인을 바라는 권리관계의 존부를 선언하는 확인판결이다. 주문에 '…한다'고 표시하는데 그확인하는 주체는 피고가 아니라 법원이란 점을 주의하여야 한다. 법원이 확인하는 주체가 된 데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법률제도가 완비된 우리나라에서는 실무나 법학연구의 축적에 의해 어느 정도 명확하게 된 내용을 갖는 민법 등 실체법 규범이 존재하여 사람들은 이를 기준으로 사회생활을 하는데 익숙하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재판하여야할 필요성이나 유용성의 비율은 비교적 낮다. 그러나 고대 로마에서 개인은 처음에 자력구제에 의하여 권리실현을 하다가 국가로서의 체계를 갖추면서부터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재판을 통해서만 개인이 권리실현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자력집행의 면허장을 부여하였으므로 그러한 권리 확인하는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면허장을 부여하는 국가였다. 즉 재판으로 적극적으로 확인된 권리만이 실체적 권리로서 존재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법원의 확인재판이 없는 실체적 권리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 후 역사적으로 재판제도가 발달되고 법학이 발전됨에 따라 '부존재한 권리'도 인정되면서 소극적 확인재판도 형성되었지만 그 범위는 적극적 확인의 예외일 수밖에 없었다. (나) 적극적 확인 그러므로 확인하는 소는 자기 권리의 적극적 확인을 구할 수 있을 때에는 상대방 권리의 소극적 확인을 구해서는 안 된다. 특히 소유권의 귀속에 관하여 다툼이 있는 경우에 적극적으로 자기의 소유권확인을 구하여야 하지 소극적으로 상대방의 소유권부존재확인을 구하여서는 그것이 부존재를 구하는 사람의 소유인지 제3자의 소유인지 분명하지 아니하여 그 소유권의 귀속에 관한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대법원 2016. 5. 24. 선고 2012다87898 판결). 판례는 토지의 일부에 대한 소유권의 귀속에 관하여 다툼이 있는 경우에 적극적으로 그 부분에 대한 자기의 소유권확인을 구하지 아니하고 소극적으로 상대방 소유권의 부존재 확인을 구하는 것은, 원고에게 내세울 소유권이 없더라도 피고의 소유권이 부인되면 그로써 원고의 법적 지위의 불안이 제거되어 분쟁이 해결될 수 있는 경우가 아닌 한 소유권의 귀속에 관한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즉시확정의 방법이 되지 못하며, 또한 그러한 판결만으로는 토지의 일부에 대한 자기의 소유권이 확인되지 아니하여 소유권자로서 지적도의 경계에 대한 정정을 신청할 수도 없으므로, 확인하는 이익이 없다고 하였다(대법원 2016. 5. 24. 선고 2012다87898 판결). 그러나 원고에게 내세울 소유권이 없지만 피고의 소유권이 부정됨으로써 원고의 법적 지위에 대한 불안이 제거되어 분쟁이 해결될 수 있는 경우에는 피고의 소유권에 대한 소극적 확인도 확인하는 대상이 된다. 예컨대 원고가 소외A를 대리인으로 하여 소외B로부터 부동산을 매수하였는데 소외 A는 아무런 권한 없이 그 부동산을 원고와 소외 A명의로 지분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을 경우에 소외 A명의의 지분권이전등기는 원인무효이므로 그 지분권은 여전히 소외 B에게 남아있게 된다. 이 경우에 원고로서는 오로지 위 지분권자인 소외 B를 대위하여 소외 A 명의의 지분권이전등기가 실체권리관계와 부합하지 않음을 이유로 무효임을 주장할 수 있을 뿐이고 적극적으로 자기의 지분권을 주장할 수 없는 처지이니, 이와 같은 경우에는 소외 A의 지분권에 대한 소극적 확인을 구할 이익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대법원 1984. 3. 27. 선고 83다카 2337 판결). (다) 보험회사가 보험수익자를 상대로 소극적 확인하는 소를 제기할 확인하는 이익이 있는지 여부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보험회사가 보험수익자를 상대로 소극적 확인하는 소를 제기할 확인하는 이익이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반대의견은, 소극적 확인하는 소에서 확인하는 이익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확인하는 이익의 공적인 기능이나 소극적 확인하는 소가 채권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도 고려해야 하므로, 모든 계약 관계에서 계약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항상 채무자가 소극적 확인하는 소를 제기할 수 있는 확인하는 이익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보험의 공공성, 보험업에 대한 특별한 규제, 보험계약의 내용 및 그에 따른 당사자의 지위 등을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보험계약자 등이 보험금 지급책임의 존부나 범위에 관하여 다툰다는 사정만으로는 확인하는 이익이 인정될 수 없고, 그 외에 추가로 보험금 지급책임의 존부나 범위를 즉시 확정할 이익이 있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비로소 확인하는 이익이 인정되어 소극적 확인하는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다수의견은, 만일 계약 당사자 사이에 계약상 채권채무의 존부나 범위에 관하여 다툼이 있는 경우 채권자는 특별한 제한 없이 채무 이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할 수 있지만 채무자는 채무의 부존재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한적으로만 제기할 수 있다고 한다면, 채무자는 채권자와 다툼이 있음에도 상당 기간 법적 지위의 불안 상태를 계속해서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고, 또한 보험회사가 보험계약자 등을 상대로 소극적 확인하는 소를 제기하는 것은 보험계약자 등에게 반드시 불리하기만 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위법하거나 부당한 보험금 청구를 적극적으로 저지하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보험회사의 공공성에 부합하고, 여기서 만약 보험회사가 소송제도를 악용하는 경우에는 소권 남용의 법리 등으로 적절하게 규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반대의견이 제시한 소극적 확인하는 소의 확인하는 이익인 '특별한 사정'은 그 자체로 추상적이고 분명하지 아니하여 소송요건으로서 직권조사사항인 '확인하는 이익'의 존부를 판단하는 요소로서는 부적절하거나 소송지연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4. 결론 이 사건에서 보험회사는 보험수익자를 상대로 하여 적극적으로 자기의 권리확인을 구할 방법이 없으므로 그의 소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소극적으로라도 확인하는 소를 제기할 확인하는 이익이 있다고 하여야 한다. 결국 이번 전합 판결은 피고를 상대로 자기의 적극적 권리확인을 구할 방법이 없는 자에게는 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소극적 확인하는 소를 허용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할 것인데, 그렇다면 이 판례는 보험회사가 보험수익자를 상대로 한 경우에 국한시킬 필요가 없다할 것이다. 다만 다수의견이 방론(傍論)으로서 반대의견이 설시하는 '특별한 사정'은 직권조사사항인 확인하는 이익의 존부를 판단하는 요소로서는 부적절하거나 소송지연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부분은 다소 이해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직권조사사항은 당사자가 상고이유로 주장하지 아니하여도 상고심의 심판범위에 속하므로(제434조) 여기서 부적절성이나 소송지연의 원인을 따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강현중 고문(법무법인(유) 에이펙스·전 사법정책연구원장)
보험금
보험사
사망
채무
강현중 고문(법무법인(유) 에이펙스·전 사법정책연구원장)
2021-12-13
조세·부담금
행정사건
- 대법원 2020. 8. 20. 선고 2017두30757 판결-
이른바 과세단위가 다른 경우에 특례제척기간이 적용되는지 여부
I. 대상판결의 개요 1. 사실관계 원고는 B무역 주식회사(이하 'B무역')의 대표이사이자 1인주주인데, 주식 전부를 소외인에게 105억원에 양도하였고, 양도소득세와 증권거래세를 신고납부하였다. 그런데 과세관청은 위 양도계약의 잔금일에 B무역의 유일한 자산인 부동산이 소외인에게 이전되었음에 터잡아, 위 주식양도계약은 가장행위이고 실제로는 B무역과 소외인간에 부동산 양도거래가 있다고 봐서 위 양도가액을 B무역의 2006 사업연도 익금산입해서 2010년 9월 1일 B무역에 2006 사업연도 법인세를 결정·고지하였다. 또한 B무역이 이 법인세를 체납하자 과세관청은 2010년 11월 9일 원고를 이 법인세의 제2차 납세의무자로 한 납부통지를 하였다(이하 '종전 부과처분'). 이후 원고는 2011년 9월 9일 과세관청을 상대로 종전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는데, 1심법원은 앞선 주식양도계약이 가장행위가 아니라고 봐서 종전 부과처분 취소판결을 하였으며 해당 판결은 대법원에서도 확정되었다(이하 '선행 확정판결'). 이에 과세관청은 2015년 4월 15일 선행 확정판결에 따라 원고에 대한 제2차 납세의무자 지정을 취소하였다. 한편, 과세관청은 다시 원고에게 위 주식양도계약과 관련해 2015년 5월과 7월경에 각각 양도소득세와 증권거래세를 결정·고지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 2. 대상판결의 요지 원심법원은 종전 부과처분과 이 사건 처분은 그 과세단위를 달리한다는 등의 이유로 이 사건 처분에 대하여는 선행판결의 확정에 따른 특례제척기간의 적용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여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였는데, 대법원도 이런 원심판단을 수긍하면서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1) 선행 확정판결의 대상인 종전 부과처분은 B무역과 소외인간의 부동산양도거래에 따른 B무역의 양도소득을 과세대상으로 하고 세목이 '법인세'인 반면, 이 사건 처분은 개인인 원고와 소외인간의 주식양도거래에 따른 원고의 주식양도소득과 양도 자체를 과세대상으로 하고 그 세목이 '양도소득세'와 '증권거래세'이므로 이 사건 처분을 선행 확정판결에 따른 경정결정이나 그에 부수하는 처분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은 종전 부과처분과는 다른 새로운 결정이므로 이 사건 처분에는 선행 확정판결에 따른 특례제척기간이 적용 안 된다. 2) 동일한 사실관계하에서 법적 평가만을 달리한 이 사건 처분에 대하여 선행 확정판결에 따른 특례제척기간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본다면, 과세관청으로서는 분쟁이 예상되는 경우 중복하여 과세할 수밖에 없고, 이는 납세의무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조세행정상의 비효율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 피고의 상고이유이지만, 이 사건 처분은 그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단순히 종전 부과처분에 대한 법적 평가만을 달리한 처분이라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과세관청으로서는 올바른 법적 평가에 따라 세법을 적용하여 조세행정상의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 그와 동시에 납세의무자의 재산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Ⅱ. 대상판결의 평석 1. 특례제척기간 규정의 역할 조세법률관계를 조속히 종결지을 목적의 통상제척기간과 달리, 특례제척기간은 일정사유가 있다면 원래의 제척기간을 무시하고 해당 사유가 생긴 뒤 일정기간을 새로운 제척기간으로 삼는 규정이다(국세기본법 제26조의2 제6항). 이런 특례제척기간은 과세관청과 납세의무자의 이해가 상충될 소지가 있어 적용범위를 어떻게 잡을지가 문제가 된다. 일반론으로, 조세소송의 판단대상(소송물)은 원칙적으로 총액주의에 따라 정해지지만 판결 효력범위에는 쟁점주의 영향이 남은 우리 소송구조 하에서는, 재처분(후속처분) 범위를 넓게 적용할 여지가 생긴다. 또한 재처분을 비교적 넓게 허용해온 종래 판례의 흐름을 생각하면 통상제척기간 도과를 이유로 재처분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엄격히 관철하기도 어렵다. 요컨대 공평과세와 납세자 방어권의 조화라는 상반된 목적을 갖는 특례제척기간에 대해 어떻게 적용범위를 설정할지를 쟁점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2. 이른바 과세단위 문제와 특례제척기간 적용범위의 관련성 과세단위는 세금계산 단위인데, 소득세라면 과세물건인 소득을 계산하는 단위를 뜻한다. 소득세 과세단위는 인적 과세단위(납세의무자), 물적 과세단위(세목), 시간적 과세단위(과세기간) 단위로 다시 세분된다. 그런데 조세소송의 판결 효력은 잠재적 심리범위, 곧 소송물 범위 내에서만 미치고 소송물은 과세단위보다 클 수 없으므로, 대상판결에서의 선행 확정판결 효력은 선행처분(종전처분)의 과세단위 바깥으로 미칠 수 없다. 따라서 선행처분 과세단위 밖에서의 재처분이라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만 이런 처분은 제척기간 안이라는 한계 내에서 가능하다. 문제는 과세단위가 달라졌을 때 재처분에 특례제척기간까지 적용할 수 있는가에서 생긴다. 납세자 방어권 행사를 고려하면 통상제척기간 내에서만 후속처분이 된다고 볼 수 하고, 공평과세원칙을 생각하면 특례제척기간을 고려해 후속처분이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처럼 과세단위와 재처분 가능성은 직접 대응관계를 갖지는 않지만 최소한 특례제척기간 적용범위 논의의 출발점은 된다. 대상판결로 검토범위를 좁히면, 비록 '외형상' 재처분의 과세단위가 선행처분과 다르더라도 통상제척기간의 예외, 즉 특례제척기간의 적용을 인정할 필요가 있는가가 실제 쟁점이 된다. 3. 대상판결의 의미 과세연도(시간적단위)가 달라지면 통상제척기간이 지난 재처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종래 판례 입장이었다. 세목(물적단위)이나 납세자(인적단위)가 달라져도 판례가 같은 입장인 것인지는 다소 불분명하였다. 선행처분 및 후속처분상 세목이나 납세자가 다른 사안에서 특례제척기간에 따른 재처분은 안 된다고 한 선례가 있었지만, 이들 처분에서 납세자가 실제 동일인이 아닌 사안처럼 아예 과세처분의 기초인 사실관계가 다른 경우였기 때문이다. 대상판결은 다음의 점에서 이들 종전 선례와는 구별된다. 첫째, 물적 과세단위를 정하는 기초인 사실관계가 같다. 대상판결의 사안은 법인세(종전 부과처분)와 소득세(이 사건 처분)로 형식상 세목이 달라져 물적 납세의무가 다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주식양도계약의 세법적 평가(가장행위인지 여부)에 따라 법인세나 소득세 중 하나를 내야 하는 상황이어서 기초적 사실관계는 같다. 둘째, 선행처분과 후속처분 모두에서 인적 과세단위인 납세자가 동일인인 사안이다.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원고는 제2차 납세의무자(종전 부과처분), 본래 납세의무자(이 사건 처분)였는데, 곧 납세자로서의 지위에 대한 법률적 평가는 다르되 실제 동일인물에 대한 과세가 문제되었던 점에서 선례들과는 구별된다. 요컨대 각 처분의 기초적 사실관계가 같고 납세자가 동일인이더라도 이들 처분의 세목이 다르고 납세자로서의 법적 지위가 다르다면 이를 단순히 법적 평가가 다른 경우라고 할 수 없고 따라서 후속처분에 특례제척기간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한 점에서 대상판결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4. 대상판결의 비판적 검토 하지만 대상판결이 취한 결론이 타당한가는 의문이다. 납세자의 방어권을 고려할 때 공평과세에 터잡은 재처분을 대상판결에서 관철할 수 있는가가 판단기준이 되어야 옳기 때문이다. 우선, 인적 과세단위를 형식적으로 봐서 판단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가에 의문이 있다. 원고로서는 주식양도행위에 대해 사법적, 세법적 평가가 같다면 양도소득세 등을, 이들 평가가 서로 달라진다면 법인세를 낸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즉, 조세법률관계의 기초인 사법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은 있으나 단지 법률적 평가(세법상 평가)만이 달라서 다툼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종전처분에 대한 쟁송이 이미 진행되었기 때문에 후속처분에서 증명을 위한 증거가 일실될 우려도 없다. 그렇다면 세법상 역할이 다른 재처분, 제척기간 두 제도를 조화시킨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인적 단위의 상이함을 들어 대상판결에서 재처분이 어렵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다음으로, 물적 과세단위의 상이가 기준이 되는지에도 의문이 남는다. 물적 과세단위가 다른 경우, 즉 명백히 새로운 세목을 대상인 재처분은 납세자 신뢰보호의 관점에서, 또 납세자 예측가능성 보장의 관점에서 부정된다고 봄이 일반이다. 즉, 신뢰보호나 예측가능성 때문에 물적 과세단위가 중요하다는 생각인데, 그렇다면 형식상 세목이 다른가보다는 납세자가 방어권이 보장될 상황에 있었는가가 재처분 가부의 판단에 있어 핵심이 되어야 옳다. 대상판결에서 문제된 세목들은 각기 다르지만 다툼의 대상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가 같고 이미 쟁송을 진행해온 원고 입장도 고려하면 방어권 보장이나 신뢰보호 혹은 예측가능성에 어떤 문제가 생긴다고 말하기 어렵다. 요컨대, 법인의 1인주주라는 특수사정 하에서 법인세와 소득세가 각 문제된 대상판결 사안에서 '본래 납세의무자나 제2차 납세의무자', '소득세나 법인세'가 왜 법적 평가만이 다른 경우가 아닌지를 밝히는 것이 핵심인데, 대상판결에서는 이들은 법적 평가만이 다른 경우가 아니라는 결론만 선언되었을 뿐 정작 그에 관한 법리적 설시는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양인준 교수 (서울시립대 로스쿨)
법인세
주식양도계약
특례제척기간
소득세
양인준 교수 (서울시립대 로스쿨)
2021-10-28
민사일반
- 대법원 2019. 12. 27. 선고 2015다78857 판결 -
헬스클럽의 회비 임의변경조항에 관한 약관법적 문제
[사안의 개요] 1. 피고는 1985년경부터 종합 스포츠센터(이하 '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원고들은 센터 개관 무렵 또는 그 이후 피고와 사이에 특별회원 가입계약을 체결하면서 입회비 및 보증금을 납부하거나, 입회비 및 보증금을 납부한 자로부터 회원권을 양수받아 이용권한을 취득한 특별회원들이다. 피고는 2011년 2차례에 걸쳐 센터 회원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실시한 후 센터 본관 건물의 리모델링 공사를 시행하였고, 위 리모델링 공사가 완료된 2012년 초 원고들을 포함한 특별회원을 대상으로 2차례의 공청회를 실시하여 위 리모델링 공사의 실시 및 물가상승 등 제반 경제적 여건의 변화로 인하여 센터의 특별회원에 대한 보증금을 추가로 부과할 것임을 통지하였다. 이 사건 관련 센터 회칙(이하 '이 사건 회칙') 규정은 아래와 같다. 제17조(회비의 변경조정) 스포렉스의 각종 회비는 공과금의 증액과 물가 및 기타 경제적 여건의 변동 등을 고려하여 조정할 수 있다. 단, 기 납부된 회비에 대하여는 그 권리를 인정한다. 제20조(발효) 본 회칙은 1984년 11월 20일부터 그 효력을 발생한다. 원고들은 이 사건 회칙 제17조가 약관으로서 피고로 하여금 채무의 이행에 관하여 상당한 이유 없이 급부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조항이자, 고객에 대하여 부당하게 불리하고 고객이 예상하기 어려운 조항이므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법'이라 한다)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원고들은 설령 피고가 이 사건 회칙 제17조에 기하여 원고들에게 추가 회비를 청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고지한 금액이 지나치게 과다하여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대법원은 센터가 클럽시설 이용의 대가인 회비를 임의 조절할 수 있도록 클럽규약에 규정되어 있더라도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만 그 회비의 인상 여부 및 인상 범위를 정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 사건에서 시설주체가 특별회원들에게 추가로 부과한 회비는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하였다. [연구] Ⅰ. 들어가며 가격조정조항에 따른 사업자의 가격조정은 일방적 급부변경에 해당하고 계약법의 대원칙인 계약준수(pacta sunt servanda)의 원칙을 훼손하면서 고객에게 부당한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다. 사업자가 가격조정을 통해 계약적 등가관계를 훼손하면서 후발적으로 급부와 반대급부의 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오남용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격조정조항에 대하여는 일정 한계가 설정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법') 제10조 제1호는 채무의 이행과 관련하여 "상당한 이유 없이 급부의 내용을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을 무효로 선언하고 있다. 대상판결에서는 센터 회비 임의변경조항(가격조정조항)의 약관법적 유효성 여부에 관해 다툼이 있는바, 특히 그것의 유효성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이 문제된다. Ⅱ. 가격조정조항이 약관 내용통제의 대상인지 여부 센터 시설의 회비는 회원제 센터이용계약의 급부 또는 반대급부에 해당하므로 약관법에 따른 내용통제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닌지가 문제된다. 계약체결 당시의 회비는 이용자의 회원제 센터이용에 대한 반대급부에 해당하고, 따라서 내용통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격조정조항에 기반하여 새롭게 형성된 회비는 원래의 계약과는 내용을 달리하는 가격에 관한 부수적 약정이며, 그에 관한 조항은 부수적 대가조항으로서 항상 약관법에 따른 내용통제의 대상이 된다. 일방적 급부변경권은 채권관계의 발생 또는 내용 변경을 위해서는 법률에 정함이 없는 한 당사자 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문의 법원칙인 '계약준수의 원칙'을 일탈하는 급부변경조항 내지 가격조정조항은 내용통제를 받아야 한다. Ⅲ. 약관법 제10조 제1호의 '상당한 이유' 상당한 이유의 존부를 판단하기 위해 4가지 기준을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가격조정조항이 투명해야 한다. ② 고객이 원래 약정된 급부를 제공받는 것에 대해 (보호의 가치가 있는) 이익을 가져서는 안 된다. ③ 사업자 측에 변경을 정당화하는 실체적 사유가 있어야 한다. ④ 변경이 결과적으로 본래적 급부와 반대급부의 등가성을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 1. 가격조정조항의 투명성 상당한 이유의 존부와 관련하여 투명성이 요청되는 이유는 가격'조정'이라는 미명 아래 약관사용자가 나중에 일방적으로 이익을 실현하지 못하도록 하여 본래의 계약적 급부와 반대급부의 등가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투명성과 관련하여 법학 교육을 받지 아니한 평균적인 고객이 '계약체결 시'에 약관조항의 문언을 통해 어려움이 없이 언제 변경을 예상해야 하는지, 약정된 급부의 어떠한 변경이 허용되는지를 쉽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급부변경을 위한 사정이 어느 정도로 구체적으로 언급되어야 하는지는 개별 분야의 특수한 사정과 계약기간의 장단을 고려해 판단할 문제이다. 다만 계속적 계약관계에서는 변경의 사유 및 범위를 확정적으로 정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대상판결의 사안처럼 센터 개장 후 25년여가 지난 시점의 비전형적인 장래사를 약관조항을 통해 사전에 정밀하게 규율하기는 어렵다. 그러한 점에서 가격조정조항의 투명성과 관련하여 모든 경우의 수를 다 포괄할 수 있고 개별 사안에서 전혀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구체화할 필요는 없다고 할 것이다. 2. 고객의 본래적 급부수령에 대한 이익 사업자가 계속적 계약관계에서 시장 여건의 변동으로 인해 급부의 사양(仕樣)을 일관하기 어려운 경우 급부변경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반면 고객은 여하한 변경 없이 계약상의 급부를 그대로 받는 것에 대한 이익을 가질 수 있다. 급부내용이 변경되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가 그러하다. 3. 실체적 변경사유 약관법상의 일반적 투명성 요청과 급부내용의 변경유보는 계약준수의 원칙 및 그로부터 파생되는 계약적 합의는 양 당사자의 합의로만 변경할 수 있다는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이룬다는 점으로부터 약관에 실체적 변경사유가 추상적이나마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 4. 등가관계의 유지 가격조정이 계약체결 당시에 존재하던 급부와 반대급부의 등가성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계속적 계약관계에서 사업자는 가격조정을 통해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없다. 가령 계약체결 당시에 고객이 누렸던 가격 관련 유리한 지위는 특약이 없는 한 사용자에 의한 후발적이고 일방적인 가격 인상으로 박탈되어서는 안 된다. 등가관계의 파괴는 계약당사자의 이익의 균형을 도모하고자 하는 계약법적 메커니즘을 교란함과 동시에 계약의 실체적 정당성을 위태롭게 한다. 따라서 사업자 측의 원가변동 및 그 밖의 가격변동요인의 기회와 위험은 계약의 양 당사자에게 동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Ⅳ. 나오며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계속적 계약관계로서의 성질을 가진 회원제 센터이용계약에서 사정변경에 따른 가격조정이 문제되었다. 거래당사자는 특약이 없는 한 계속적 계약관계에서 애초의 가격이 영구적으로 고정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대상판결의 사안처럼 특별회원에 대한 평생무료이용계약이 체결된 바 없다면, 센터의 증·개축으로 인한 회비 인상은 기본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 사건 회칙에서는 급부변경의 기본적 요건이 명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회비 인상에 즈음하여 수차례의 공청회를 통해 변경의 사유 및 범위가 통보되었다. 따라서 센터의 일방적 급부변경을 위한 약관조항의 투명성 요청은 물론 실체적 사유도 충족된 것으로 평가된다. 나아가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원고들이 원래 약정된 급부를 제공받는 것에 대해 특별히 보호의 가치가 있는 이익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센터 시설의 증·개축으로 인한 시설의 편리성 증가는 일반적으로 그 회원에게 이익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센터 시설의 증·개축 관련 비용은 센터와 회원이 분담해야 하고, 회원의 부담부분은 애초의 계약적 등가관계에 해당하는 비율적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회비 인상은 가능하지만, 특별회원에 대한 회비 인상의 범위가 과도하여 본래의 등가관계를 해치고 있다. 결국,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센터 측의 회비조정조항 자체는 약관법적으로 무효라고 할 수 없지만, 센터 측은 특별회원이 부담부분을 잘못 산정하여(실제로 발생한 비용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특별회원에게 전가함으로써) 애초의 계약적 등가관계가 파괴되었다. 필자는 대상판결의 결론에 대하여는 대체로 공감하는 바이다. 다만 대법원이 센터 시설의 증·개축과 이로 인해 특별회원이 새롭게 누리게 된 이익을 고려해 적정히 인상된 회비의 '테두리'를 정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이에 관한 아무런 언급이 없이 파기환송한 것은 아쉽게 생각한다. 회비변경조항에 의해 인상된 회비는 본래의 반대급부라고 할 수 없고 부수적 대가이기 때문에 법원에 의한 적정한 회비 인상분 결정은 가능하다고 하겠다. 김진우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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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202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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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2017. 5. 16. 선고 2017므238 판결 -
출산경력의 불고지와 혼인 취소 사유
Ⅰ. 사실관계 피고는 베트남 소수민족 출신의 여성으로, 만 13세 무렵 옆 마을 남성들에 의해 납치당한 다음 A에게 감금, 강간당하여 약탈혼에 이르렀고 아이를 출산하였다. A의 사망 후 A의 부모가 아이를 데려갔고, 피고는 고향을 떠나 아이와 연락 등 일체의 교류가 단절되었다. 피고는 20세 무렵 국제결혼 중개업자들을 통하여 원고와 혼인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베트남 중개업자에게는 자신의 출산경력을 알렸으나 원고에게는 이를 알리지 않았다. 혼인 후 피고는 원고의 계부로부터 수차례 강제추행 및 강간을 당하였고, 결국 집을 나와 고소하여 유죄 판결이 확정되었다. 형사공판 과정에서 피고의 과거 출산경력이 드러나자, 원고는 피고에게 사기에 의한 혼인 취소 및 위자료를 청구하였고, 피고는 반소로 이혼 및 위자료를 청구하였다. Ⅱ. 판결의 요지 1심과 항소심법원은 피고의 출산경력은 원고의 혼인의사 결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피고가 이를 고지하지 않았고 원고가 이러한 사실을 알았더라면 피고와 혼인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들면서, 혼인 취소 청구 및 위자료 청구 일부를 인용하였다. 상고심법원은 불고지의 경우에는 고지의무가 인정되어야 위법한 기망행위로 인정할 수 있는바, 아동 성폭력 범죄에 의하여 출산하였으나 이후 자녀와의 관계가 단절되었다면, 그 출산경력은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당사자의 명예 또는 사생활의 비밀의 본질적 부분에 해당하여 그 불고지를 혼인 취소 원인이 되는 위법한 기망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그러나 환송 후 원심판결은 증거조사를 통하여 새롭게 인정된 사실을 토대로, 피고가 성폭력으로 인해 바로 임신한 것이 아니라 그 후 혼인 생활을 하다가 임신·출산하였는바, 이러한 출산경력이 피고의 명예 또는 사생활의 비밀의 본질적 부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통상 상대방의 출산경력은 혼인에 의한 의사결정에 있어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라는 등의 이유로, 다시 원고의 취소 청구를 인용하였다. 피고는 재상고하였으나 재상고심 판결은 이를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하였다. 원고의 혼인취소청구 인용에 따라 피고는 출입국관리법 등에 따른 결혼이민 자격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어 베트남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Ⅲ. 사기로 인한 혼인 취소 사기로 인하여 혼인 의사표시를 한 때에는 혼인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장래를 향하여 혼인이 해소된다는 점에서 법적 효과는 이혼과 같지만, 대상사건과 같이 혼인관계 파탄에 있어 일방의 취소 사유와 상대방의 이혼 사유가 모두 존재하는 경우 취소 인정 여부에 따라 법 적용 결과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 혼인 취소의 제척기간은 '사기를 안 날로부터 3개월'로서 총칙상 사기 취소와는 달리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기간 제한이 없다. 혼인 기간이 오래되었더라도 사기를 안 지 3개월 내에 취소를 청구하면, 실제 혼인 파탄의 귀책사유가 자신에게 있더라도 상대방의 과거 기망을 이유로 혼인관계를 해소시키고 위자료도 청구할 수 있고, 이혼사유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자신의 위자료 지급 의무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이에 혼인 취소 사유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 혼인의 성립을 희망한 나머지 사실을 과장하거나 불리한 사실을 은폐하거나 거짓약속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사기를 이유로 혼인을 취소하려면 '혼인의 본질적 내용'에 관한 기망이 있어야 하고 직업, 수입 등을 허위로 이야기하였더라도 다소 과장에 불과하다면 취소사유가 되지 않는다(서울가정법원 2004. 1. 16. 선고 2002드단69092 판결 등). 혼인의 본질적 내용에 관한 기망이 있었는지 여부는 개별적 사안마다 판단될 수밖에 없을 것이나, 기망 내용이 혼인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어서 당사자들의 혼인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주고 이로 인해 당면의 혼인생활의 유지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는지, 해당 사항이 과거의 지나간 일에 불과한지 아니면 현재 또는 장래에 영향을 주는 사항인지 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Ⅳ. 출산경력의 고지 의무 피고는 자신의 출산경력에 관하여 원고를 적극적으로 기망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고지를 하지 않은 것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부작위를 기망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고에게 고지의무가 인정되어야 한다. 위 상고심판결은 고지의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항이 당사자의 명예 또는 사생활의 비밀의 본질적인 부분에 해당하는지를 가려 사회 통념상 고지를 기대할 수 있는지, 그 불고지가 신의성실의 원칙상 비난받을 정도라고 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심리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아동기 성폭력 범죄 피해로 인해 출산에 이르렀으나 그 후 자녀와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어 향후 양육이나 교류의 문제가 없는 경우라면, 이를 불고지하였다고 하여 위법한 기망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피기망자의 의사결정의 자유 뿐만 아니라 기망자의 이익을 함께 고려한 것이다. 아동성폭력 피해자에게 그 범죄의 경험은 단순한 정신적 고통을 넘어선 공포이자 내밀한 영역의 수치스러움이 될 수 있는바, 이러한 경우에도 고지의무를 인정한다면 그 여성은 범죄의 피해자일 뿐인데도 혼인하고자 할 때 혼인이 무산되고 자신의 비밀이 외부에 알려질 위험을 각오하고 사전에 자신의 출산경력을 상대방에게 밝혀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것이 싫다면 평생 혼인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범죄 피해자의 인간의 존엄성이나 사생활의 비밀 등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 상고심 판결의 판시는 타당하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출산경력을 불고지한 경우라면 어떠한가? 기존 판례의 입장은 명확하지 않은데, 혼인 취소를 인정한 판결도 있고, 아닌 판결도 있다. 그런데 인정한 판결의 경우 불고지자가 법률혼을 하여 자녀를 두었던 경우로서 출산 경력뿐만 아니라 혼인 경력에 관해서도 불고지한 사안이었고(서울가정법원 2006. 8. 31. 선고 2005드합2103 판결 등), 이와 달리 법률혼 없이 자녀 2명을 출산한 경력을 불고지한 경우 혼인 취소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배우자의 과거의 이성 관계나 학력, 경제적 사정 등에 관하여 혼인 전에 속이거나 묵비하였다는 이유로 손쉽게 혼인의 취소사유로 인정한다면 가정평화와 친족상조의 미풍양속을 유지 향상하기 위한 가사관계법의 기초가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 근거였다(부산지방법원 가정지원 2008. 8. 22. 선고 2007드단30719 판결). 검토컨대 양육책임 등을 제외하고 오로지 '과거에 아이를 낳은 적이 있는지'만을 문제 삼는 출산경력에 관한 묵비 또는 기망은 위와 같은 '혼인의 본질적인 내용'에 관한 중대한 기망이 되지 않아 혼인 취소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된다. 통상적으로 출산경력이 혼인 의사 결정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는 하나 이는 결국 가부장적 관습 하에서 과거 출산 경험을 가진 여성에 대한 윤리적 평가절하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관념을 법이 정당한 것으로 승인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출산경력을 불고지함으로 인해 당면에 있어 개인의 존엄을 기초로 한 혼인질서에 합치되는 혼인생활을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혼인 후 사정 변경으로 예기치 않게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한 갈등으로 혼인관계가 파탄되었다면 그 혼인은 이혼으로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Ⅴ. 판결에 대한 검토 위와 같이 상고심법원이 판결을 파기 환송하였지만, 이를 환송받은 원심법원은 부족의 관습 및 피고 부모의 동의에 따라 혼인생활을 하다가 임신·출산한 이상 그러한 출산경위가 알려진다고 하여 피고의 명예 또는 사생활의 비밀의 본질적 부분이 침해된다고 볼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다시 원고의 혼인 취소 청구와 위자료 청구 일부를 인용하였다. 불법적이고 야만적인 풍습일지라도 어쨌든 피고가 속하였던 소수민족 사회의 풍습에 의하여 혼인하여 생활한 이상 이를 '범죄에 의한 피해' 또는 '사생활의 비밀'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피고는 재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심리불속행으로 재상고를 기각하여 혼인 취소 판결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미성년의 여성이 당한 범죄 피해의 의미를 부당하게 축소하거나 왜곡한 것이다. 미성년자 납치 및 강간의 불법적인 의미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처벌하지 않는, 약탈혼 풍습이 있는 소수민족 출신이었다고 하여, 그 범죄 피해자에게 범죄가 가지는 가벌성이나 피해의 의미를 제3자인 법원이 함부로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그러한 출신이라고 하여 야만적인 범죄행위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범죄 피해자로서 느끼는 수치심과 정신적 고통이 적었다고 판단할 수 없다. 피고의 부모는 딸이 순결을 잃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결혼에 동의하였지만 이를 당시 미성년자였던 피고 본인의 진정한 의사로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재상고심 판결은 환송 후 원심법원이 파기 환송 전 원심법원과 같은 결론을 내렸음에도 이유조차 설시하지 않고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하여 위와 같은 결론을 확정시켰다. 유감스러운 판결이라고 생각된다. 김유진 변호사 (서울보증보험)
출산경력
혼인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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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변호사 (서울보증보험)
202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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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일반
- 대법원 2020. 6. 25. 선고 2018도13696 판결 -
미술품거래에서 사기죄의 성립범위
Ⅰ. 공소사실의 요지 검사는 '유명가수인 피고인 甲은 화투를 응용한 그림을 직접 그리다가 2009년부터 2015년 4월경까지는 평소 알고 지내던 직업화가 A에게 그리고 2015년 4월부터 2016년 3월경까지는 대학원 회화과 석사과정생 B에게 자신의 이전 작품과 같이 그려오게 하거나 작품아이디어를 얘기하여 그에 따른 그림을 그려오게 한 뒤 일부 그림의 경우 자신이 배경 덧칠작업 등을 하였고 모든 그림에 자신의 서명을 하여 자신이 직접 그린 작품인 것처럼 전시한 후 2011년 9월경부터 2016년 4월경까지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지 않은 채 총 20명의 구매자(피해자)에게 작품을 판매하여 총합계 1억8000만원 상당을 편취하였다'고 하면서 甲을 일반사기죄로 기소하였다. Ⅱ. 소송경과 및 판결요지 1. 1심법원과 2심법원 1심법원은 "회화에 있어서는 창작적 표현작업을 주로 한 자를 작가로 보아야 하기에 A와 B를 단순히 '조수'에 불과하다고 보기에는 어렵고 그들을 '작가'로 보아야 하고 미술품거래에서 '친작인지 여부'는 구매 여부의 판단이나 가격의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설명가치 있는 정보에 해당되기에 이를 고지하지 않고 판매한 것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구매자들을 부작위에 의하여 기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면서 사기죄 유죄판결을 하고 경합범 가중을 하여 피고인에게 '징역 10월의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서울중앙지법 2017. 10. 18. 선고 2016고단5112 판결). 이에 반해 2심법원은 "미술작품의 컨셉트와 소재를 피고인이 정했다는 것을 이유로 피고인을 작가(저작자)로 보아야 하고 A와 B는 보조자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피고인이 직접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구매하지 않았거나 높은 가격으로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많은 구매자들의 진술이 증거로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팬이라서 甲의 그림을 갖고 싶었고 미술계에서 보조 조수가 있다는 것을 몇 십년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다'는 구매자 X1의 진술 그리고 '작품경향이 독특하고 甲의 작품의 경우 수집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구매한 것이다. 당해 사안과 같은 경우 누구를 작가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아직 미술계에서 확립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구매자 X2(미술관 큐레이터)의 진술을 근거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사건 미술작품에 관한 피해자들의 착오를 제거해 주어야 할 보증인적 지위에 있다거나 보조자 사용 사실에 관하여 피해자들이 착오에 빠져 있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이를 고지하지 아니함으로써 재물을 편취하였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모든 구매자들과의 관계에서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서울중앙지법 2018. 8. 17. 선고 2017노3965 판결). 2. 대법원 항소심판결에 대하여 검사는 ①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저작권은 대작화가인 공소외 1 등에게 귀속되고 피고인 1은 저작자로 볼 수 없으므로 항소심판결에는 저작물·저작자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② 항소심이 피고인 1에게 자신이 직접 그린 친작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지할 의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고 이 사건 공소사실 중에는 고지의무 위반 외에도 이른바 묵시적 기망행위에 관한 부분도 있는데 이에 대하여 판단을 유탈한 것은 위법하다는 것을 이유로 상고하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저작권법에 의하면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기여하지 아니한 자는 비록 저작물의 작성 과정에서 아이디어나 소재 또는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등의 관여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저작물의 저작자가 되는 것은 아니고, 미술저작물의 저작자 아닌 자가 마치 저작자인 것처럼 행세하여 그 미술품을 판매하였다면 이는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일반원칙을 설시하면서도 ① 검사는 이 사건을 사기죄로 기소하였을 뿐 저작권법 위반으로 기소하지 않았기에 이 사건 형사재판에서 미술작품의 저작자가 누구인지가 정면으로 문제 되었다고 볼 수 없고 이제 와서 검사가 항소심에 저작물·저작자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상 심판의 대상에 관한 불고불리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②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그 미술작품에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관한 다툼이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 등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 ③ 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는 사기죄에서의 법률상 고지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였다(대법원 2020. 6. 25. 선고 2018도13696 판결). Ⅲ. 평석 1. 사안의 쟁점 당해 사건에서 검사는 甲을 상습사기죄로 기소하지 않고 일반사기죄로 기소하였기에 일관된 판례태도에 의하면 당해 사안의 경우 각 구매자에 대한 범행 간에 시간적 근접성이 인정되고 범행방법의 동일성이 인정되더라도 피해자(구매자)가 다르기에 연속범(행) 또는 접속범(행)으로(학계에서는 연속범이라고 지칭하고 있고 판례는 접속범이라고 지칭하고 있음) 인한 사기죄의 포괄일죄가 성립할 수 없고 수개 사기죄의 실체적 경합이 문제된다. 따라서 당해 사안의 경우 검사는 원칙적으로 개개 구매자에 대한 거래행위별로 사기죄의 성립여부를 입증해야 하고 법원 또한 개개 거래행위별로 사기죄의 성립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당해 사안을 '설명가치를 가지는 묵시적 기망행위를 통한 작위에 의한 사기죄' 성립여부가 문제되는 사안으로 검토해야 할지 아니면 '부작위에 의한 사기죄' 성립여부가 문제되는 사안으로 검토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차치하고 1심법원과 2심법원의 태도에 따라 당해 사안을 '부작위에 의한 사기죄' 성립여부가 문제되는 사안으로 검토하면 핵심쟁점은 '미술품거래에서 누가 작가(저작자)인지가 거래에 있어서 중요한 사항인지', '중요한 사항이라면 그림을 직접 그리지 않은 甲을 미술품의 저작자로 볼 수 있는가'이다. 왜냐하면 甲이 그림을 직접 그리지 않았을지라도 미술품의 (단독)저작자로 인정된다면 甲이 직접 그리지 않았음을 구매자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 단독저작자인 것처럼 행세한 것)은 기망행위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2. 판단회피를 위한 수단으로 불고불리의 원칙과 사법자제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는 대법원 이 사건에서는 사기죄의 실체적 경합이 문제되기에 개개 거래행위별로 사기죄 성립여부가 입증·판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1심법원은 대부분의 구매자들이 '甲이 직접 그리지 않았다면 구매하지 않았거나 높은 가격으로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한 것을 근거로 일괄적으로 검토하여 전부유죄판결을 하였고 반대로 2심법원은 다른 일부 구매자(X1과 X2)의 진술을 근거로 그 구매자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만 무죄판결을 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모든 구매자(피해자)와의 관계에서 사기죄의 성립요건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전부무죄판결을 하였다. 대법원은 A와 B를 저작자(또는 공동저작자)로 보아야 한다는 뉘앙스로 설시하고 '누가 저작자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법적 평가의 문제'라고 하면서도 '검사는 이 사건을 사기죄로 기소하였을 뿐 저작권법 위반으로 기소하지 않았기에 이 사건 형사재판에서 미술작품의 저작자가 누구인지가 정면으로 문제 되었다고 볼 수 없고 이제 와서 검사가 원심에 저작물·저작자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상 심판의 대상에 관한 불고불리원칙에 반하는 것'이고 '누가 저작자인지에 관한 논란은 미학적인 평가 또는 작가에 대한 윤리적 평가에 관한 문제로 보아 예술 영역에서의 비평과 담론을 통해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고 이에 대한 사법판단은 그 논란이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여 저작권 문제가 정면으로 쟁점이 된 경우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유로 누가 저작자인지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항소심판결에서 나타나는 일괄적 검토의 오류에 대해서는 법리오해의 잘못이 없다고 하면서 상고기각을 하였다. 이 사건에서 '누구를 저작자로 보아야 하는가'는 사기죄 성립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핵심쟁점이었다. 불고불리의 원칙은 심판대상에 관한 것이고 심판대상이 된 행위 및 범죄에서 그 범죄의 성립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어느 쟁점과 관련하여 법질서의 통일성을 위해 다른 법률상의 법리를 참조하여 판단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이 아니다. 대법원이 판결문에서 법적 평가의 문제라고 밝힌 '누가 저작자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당해 사안에서는 저작권법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당해 사안에서 대법원은 '누가 저작자인가'에 대한 판단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부적절하게 불고불리의 원칙과 사법자제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당해 사건에서 대법원이 최상급 법원으로서의 본연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박경규 부연구위원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사기
조영남
대작
박경규 부연구위원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21-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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