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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진단 보조수단으로 초음파 의료기기 사용<br> 한의사의 ‘면허 외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2022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27) 의료법
[민사판례] 1. 비의료인으로부터 고용된 의료인 의료기관 개설 불가(대법원 2022. 4. 14 선고 2019다299423 판결) 가. 사실관계 종합병원을 개설·운영하는 피고는 소외 회사로부터 운영자금을 차용하면서 병원 운영 등에 대해 합의하였다. 이후 피고는 소외 회사가 지정한 의사인 원고와 병원 시설 일체 등을 양도하기로 예약하고, 원고가 예약완결 의사표시를 하면 피고는 병원 개설자를 피고에서 원고로 변경해야 한다는 자산양수도예약을 체결하였고 병원 부지와 건물은 소외 회사의 자회사에 매도하면서 자회사에 소유권이전등기도 마쳐주었다. 원고는 피고에게 예약완결 의사표시를 하면서 소외 회사로부터 양수한 소외 회사의 피고에 대한 대여원리금채권으로 피고의 양도대금채권과 상계한다는 의사표시를 하였으나 피고가 이에 응하지 않자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의료기관 명의변경 절차 이행을 청구하였다. 나. 사건 경과 1심 및 원심은 장차 의료법인이 병원을 운영하도록 할 계획 아래 일시적으로나마 원고가 개설자 지위를 가질 의사로 자산양수도예약 등을 체결한 것으로서 자산양수도예약 등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하여 무효라는 피고 항변을 배척하고, 원고와 피고 사이의 자산양수도계약에 따라 피고는 병원 개설자를 피고에서 원고로 변경하는 절차를 이행하라는 원고 청구를 받아들였다. 다. 대법원판결 요지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서 금지되는 의료기관 개설행위는, 비의료인이 그 의료기관의 시설 및 인력의 충원·관리, 개설 신고,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그 운영성과의 귀속 등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의료인의 자격이 없는 일반인이 필요한 자금을 투자하여 시설을 갖추고 유자격 의료인을 고용하여 그 명의로 의료기관 개설 신고를 한 행위는 형식적으로만 적법한 의료기관의 개설로 가장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의료인 아닌 자가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에 해당하고, 개설 신고가 의료인 명의로 되었다거나 개설 신고 명의인인 의료인이 직접 의료행위를 하였다 하여 달리 볼 수 없다. 한편 비의료인이 이미 개설된 의료기관의 의료시설과 의료진을 인수하고 개설자의 명의변경 절차 등을 거쳐 그 운영을 지배·관리하는 등 종전 개설자의 의료기관 개설·운영행위와 단절되는 새로운 개설·운영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서 금지하는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행위에 해당한다.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원고가 일시적으로 병원 개설자 지위를 가질 의도로 자산양수도예약 등을 체결하였다는 사정을 들어 병원 운영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려는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비의료인이 형식적으로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을 가장하기 위하여 내세우는 명의인에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원심은 위와 같은 사정만을 내세워 자산양수도예약 등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으니, 그와 같은 판단에는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 라. 평석 의료법 제33조 제2항은 의료기관 개설 자격 제한 규정으로써, 의료인이나 의료법인 등이 아닌 자가 의료기관을 개설하여 운영하는 경우, 소위 사무장 병원에 의해 초래될 국민 보건위생상의 중대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제정된 규정이며, 판례는 이를 강행법규로 보고 이에 위반하여 이루어진 약정을 무효로 판단하고 있다.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서 금지되는 의료기관 개설행위의 의미가 ‘비의료인이 그 의료기관의 시설 및 인력의 충원·관리, 개설 신고,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그 운영성과의 귀속 등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하는 것’임은 다수의 판례(대법원 2020. 6. 11. 선고 2016두52897, 대법원 2018. 11. 29. 선고 2018도10779 등)를 통해 분명히 정리되었다. 그러나 실제 의료기관 개설행위를 살펴보면, 실질은 비의료인이 의료인의 명의를 빌리거나 의료인을 고용한 것으로서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행위이나 형식적으로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행위로 가장하기 위해 여러 가지 편법적인 방법이 성행하고 있으며 여러 사람이 금전 관계 등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 그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사실관계를 파악하여 불법적인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행위 여부를 명확히 판단함으로써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행위를 방지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대상판결은 수사기관의 소외 회사 관계자들과 원고에 대해 의료법 위반 혐의없음 처분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비의료인의 개설행위임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증거를 충분히 살펴 원고와 피고 사이의 자산양수도예약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 위반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다. 2. 의사의 과실과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과실로 인한 결과 발생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 필요 (대법원 2022. 12. 29. 선고 2022다264434) 가. 사실관계 다발성 간농양 진단을 받은 망인(갑)을 상대로 피고 병원 의료진이 경피적 배액술만 시도하고 외과적 배액술을 시도하지 않다가 사망에 이르게 한 사안에서 유족들인 원고들의 의료과실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나. 사건 경과 1심에서는 피고들의 과실을 인정하지 아니한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으나, 원심에서는 간농양 배농 방법 중 외과적 배액술을 고려할 만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 망인에 대한 외과적 수술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인정할 만한 피고의 입증이 부족한 상태에서 피고에게 외과적 배액술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보아 원고들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였다. 다. 대법원판결 요지 갑이 발열, 오한, 근육통 등을 이유로 피고 병원 응급실에 내원하였고, 피고 병원 의료진이 다발성 간농양으로 진단 후 농양에 배액관을 삽입하는 경피적 배액술을 계속 시도하다가 갑이 사망한 사안에서, 피고 병원 의료진이 망인에게 경피적 배액술을 계속 유지한 것이 갑의 증상이나 상황에 따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최선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라거나, 갑의 상황, 당시의 의료수준, 의사의 지식·경험에 따라 선택 가능한 진료 방법 중 합리적인 재량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서 과실로 볼 만한 정도라고 평가하기 어렵고, 특히 경피적 배액술로도 갑의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을 당시를 기준으로 갑에 대한 외과적 배액술의 실시가 실제 가능한 상태였는지, 수술기술이나 방법, 수반되는 위험성은 무엇인지, 수술적 조치를 받았더라면 사망의 결과에 이르지 않았을 것인지 등을 해당 분야 전문의의 감정 등을 거쳐 확인한 후, 당시 갑의 임상상태나 의학상식에 비추어 경피적 배액술 외에 외과적 배액술을 실시하는 것이 통상의 의사라면 당연히 선택할 만한 정도였는지를 면밀히 살펴 해당 조치를 취하지 않은 피고 병원 의료진의 과실 유무를 판단하였어야 했음에도, 갑에 대한 외과적 수술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였다는 피고 병원의 입증이 부족하다면서 수술적 배농을 실시하지 않은 것에 곧바로 과실이 있음을 인정한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의 잘못이 있다. 라. 평석 대상판결은 의사가 진찰·치료 등의 의료행위를 할 때 요구되는 주의의무의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의사가 행한 의료행위가 그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최선을 다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환자를 진찰·치료하는 등의 의료행위에 있어서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점, 의사의 질병 진단 결과에 과실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그 요법으로서 몇 가지의 조치가 의사로서 취할 조치로서 합리적인 것인 한 그 어떠한 것을 선택할 것이냐는 해당 의사의 재량의 범위 내에 속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또한 대상판결은 환자에게 발생한 나쁜 결과에 관하여 의료상의 과실 이외의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간접사실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그 경우에도 의사의 과실로 인한 결과 발생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정들을 가지고 막연하게 중한 결과에서 의사의 과실과 인과관계를 추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의사에게 무과실의 입증책임을 지우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인과관계 추정의 한계를 밝힘으로써 기존 판례(대법원 2004. 10. 28. 선고 2002다45185 판결, 대법원 2007. 5. 31. 선고 2005다5867 판결 등)의 법리를 다시 확인한 것이다. [형사판례] 3. 한의사의 초음파 의료기기 사용은 한의사의 면허 외 의료행위가 아니므로 의료법 위반죄 성립되지 아니함 (대법원 2022. 12. 22. 선고 2016도21314 전원합의체 판결) 가. 사실관계 한의사인 피고인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여 한 한의학적 진단행위에 대하여 무면허 의료행위로 인한 의료법 위반죄로 기소되었다. 나. 사건 경과 1심 및 원심은 한의사가 현대적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0도10352 판결 법리에 따라 한의사인 피고인에 대해 의료법 제27조 제1항 위반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다. 대법원판결의 요지 한의사가 의료공학 및 그 근간이 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개발, 제작된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기기의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해당 진단용 의료기기의 특성과 그 사용에 필요한 기본적·전문적 지식과 기술 수준에 비추어 의료전문가인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의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전체 의료행위의 경위·목적·태양에 비추어 한의사가 그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하여 이를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이는 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0도10352 판결의 ‘종전 판단기준’과 달리, 한방의료행위의 의미가 수범자인 한의사의 입장에서 명확하고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관점에서, 진단용 의료기기가 한의학적 의료행위 원리와 관련 없음이 명백한 경우가 아닌 한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됨을 의미한다(이하 ‘새로운 판단기준’). 한의사가 의료공학 및 그 근간이 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개발·제작된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는 앞서 본 ‘새로운 판단기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이와 달리 진단용 의료기기의 사용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을 따지지 않고 ‘종전 판단기준’이 적용된다는 취지로 판단한 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0도10352 판결을 비롯하여 같은 취지의 대법원판결은 모두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변경하기로 한다. 한의사가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새로운 판단기준에 따르면,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여 환자의 신체 내부를 촬영하여 화면에 나타난 모습을 보고 이를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대하여 ‘한의사가 서양 의료기기인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하여 진료행위를 한 것은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반대의견이 있었다. 라. 평석 대상판결은 의사와 한의사를 구별하는 이원적 의료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의료행위의 가변성, 과학기술의 발전, 교육과정의 변화, 의료소비자의 합리적 선택 가능성 및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 관점 등을 고려하여,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의 허용 여부에 관하여 위와 같은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대상판결은 한의사로 하여금 침습 정도를 불문하고 모든 현대적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취지는 아니라 의료법 등 관련 법령이 한의사에게 명시적으로 사용을 금지하지 않은 것이고 본질이 진단용인 의료기기에 한정하여, 그 특성 및 사용에 관한 기본적·전문적 지식과 기술 수준에 비추어 한의사가 사용하더라도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의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전체 의료행위의 경위·목적·태양에 비추어 한의사가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하여 이를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함이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한의사가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 수단으로 이를 사용하더라도 구 의료법 제27조 제1항 본문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4. 죽음이 예상되는 환자들이 입원한 호스피스 의료기관이라 하더라도 간호사의 사망진단은 무면허 의료행위로서 의료법 위반 (대법원 2022. 12. 29 선고 2017도10007 판결) 가. 사실관계 호스피스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의사인 피고인이 부재중에 입원환자가 사망한 경우 간호사인 피고인들에게 환자의 사망 여부를 확인한 다음 사망진단서를 작성하여 유족들에게 발급하도록 하여 무면허 의료행위로 인한 의료법 위반 및 이에 대한 교사로 기소되었다. 나. 사건 경과 1심에서는 간호사인 피고인들이 죽음이 예정되어 있던 환자가 야간에 사망한 경우, 사망을 확인(검안)하고, 그 사망 얼마 전 의사인 피고인이 미리 작성해 놓은 그 환자의 사망원인에 따라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는 행위는 의사 면허가 없는 자가 의료행위를 하였다는 구성요건에는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사회상규에는 위배되지 아니하는 정당행위로 보아 무죄를 선고하였으나, 항소심에서는 이를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피고인들에 대하여 선고유예(벌금 각 30만 원 또는 각 100만 원)를 선고하였다. 다. 대법원 판결 요지 환자가 사망한 경우 사망 진단 전에 이루어지는 사망징후관찰은 구 의료법 제2조 제2항 제5호에서 간호사의 임무로 정한 ‘상병자 등의 요양을 위한 간호 또는 진료 보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망의 진단은 의사 등이 환자의 사망 당시 또는 사후에라도 현장에 입회해서 직접 환자를 대면하여 수행하여야 하는 의료행위이고, 간호사는 의사 등의 개별적 지도·감독이 있더라도 사망의 진단을 할 수 없다. 사망의 진단은 사망 사실과 그 원인 등을 의학적·법률적으로 판정하는 의료행위로서 구 의료법 제17조 제1항이 사망의 진단 결과에 관한 판단을 표시하는 사망진단서의 작성·교부 주체를 의사 등으로 한정하고 있고, 사망 여부와 사망 원인 등을 확인·판정하는 사망의 진단은 사람의 생명 자체와 연결된 중요한 의학적 행위이며, 그 수행에 의학적 전문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어떠한 시술행위가 무면허로 행하여졌을 때에는 그 시술행위의 위험성 정도, 일반인들의 시각, 시술자의 시술 동기, 목적, 방법, 횟수, 시술에 대한 지식수준, 시술경력, 피시술자의 나이, 체질, 건강상태, 시술행위로 인한 부작용 내지 위험발생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그 배후에 놓여 있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 간호사인 피고인들의 행위가 전체적으로 의사 등이 하여야 하는 사망의 진단에 해당한다고 보아 피고인들을 유죄로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 라. 평석 대상판결은 의사가 간호사로 하여금 의료행위에 관여하게 하는 경우에도 그 의료행위는 의사 등의 책임 아래 이루어지는 것이고 간호사는 그 보조자로 보면서, 간호사가 의사 등의 진료를 보조하는 경우 모든 행위 하나하나마다 항상 의사 등이 현장에 입회하여 일일이 지도·감독하여야 한다고 할 수는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사 등이 진료의 보조행위 현장에 입회할 필요 없이 일반적인 지도·감독을 하는 것으로 충분한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의사 등이 그의 주도로 의료행위를 실시하면서 그 의료행위의 성질과 위험성 등을 고려하여 그중 일부를 간호사로 하여금 보조하도록 지시 내지 위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기존 판례(대법원 2012. 5. 10. 선고 2010도5964 판결, 대법원 2015. 6. 23. 선고 2014다15248 판결 등)의 법리를 다시 확인하였다. 대상판결은 사망진단이라는 의료행위의 성질 및 간호사에 의한 사망진단이나 검안행위를 허용하지 않는 의료법 취지를 고려하면 사망진단은 의사 등이 환자의 사망 당시 또는 사후에라도 현장에 입회해서 직접 환자를 대면하여 수행하여야 하는 의료행위이고, 간호사는 의사 등의 개별적 지도·감독이 있더라도 사망의 진단을 할 수 없음을 밝힘으로써, 의료행위의 성질, 위험성, 관련 법령의 취지 등을 고려하여 어떠한 의료행위의 경우 간호사로 하여금 이를 보조하게 할 수 없으며, 이와 같은 의료행위를 판단함에 있어서 일정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5. 진단서 발급 의료기관을 소개하고 그 비용을 환자로부터 지급받은 경우 의료법 제27조 제3항 위반죄 성립되지 아니함(대법원 2022. 10. 14 선고 2021도10046 판결) 가. 사실관계 손해사정사가 보험금 청구·수령 등 보험처리에 필요한 후유장애 진단서 발급의 편의 등 목적으로 환자에게 특정 의료기관·의료인을 소개·알선·유인하면서 그에 필요한 비용을 대납하여 준 후 그 환자가 수령한 보험금 중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지급받았다. 나. 사건 경과 1심 및 원심은 의료법 제27조 제3항 위반죄는 성립하지 않으나, 변호사법 제109조 제1호 위반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다. 대법원판결 요지 의료법 제27조 제3항의 규정·내용·입법 취지와 규율의 대상을 종합하여 보면, 위 조항에서 정한 ‘영리 목적’은 환자를 특정 의료기관·의료인에게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에 대한 대가로 그에 따른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것으로, 이때의 ‘대가’는 간접적·경제적 이익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적어도 소개·알선·유인행위에 따른 의료행위와 관련하여 의료기관·의료인 측으로부터 취득한 이익을 분배받는 것을 전제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러므로 손해사정사가 보험금 청구·수령 등 보험처리에 필요한 후유장애 진단서 발급의 편의 등 목적으로 환자에게 특정 의료기관·의료인을 소개·알선·유인하면서 그에 필요한 비용을 대납하여 준 후 그 환자가 수령한 보험금에서 이에 대한 대가를 받은 경우, 이는 치료행위를 전후하여 이루어지는 진단서 발급 등 널리 의료행위 관련 계약의 성립 또는 체결과 관련한 행위이자 해당 환자에게 비용 대납 등 편의를 제공한 행위에 해당할 수는 있지만, 그와 관련한 금품수수 등은 환자의 소개·알선·유인에 대하여 의료기관·의료인 측이 지급하는 대가가 아니라 환자로부터 의뢰받은 후유장애 진단서 발급 및 이를 이용한 보험처리라는 결과·조건의 성취에 대하여 환자 측이 약정한 대가를 지급한 것에 불과하여, 의료법 제27조 제3항의 구성요건인 ‘영리 목적’이나 그 입법 취지와도 무관하므로, 위 조항이 금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라. 평석 의료법 제27조 제3항은 “누구든지 「국민건강보험법」이나 「의료급여법」에 따른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거나 할인하는 행위, 금품 등을 제공하거나 불특정 다수인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행위 등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 및 이를 사주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위 조항은 환자와 특정 의료기관·의료인 사이에 치료위임계약의 성립 또는 체결에 관한 중개·유도 또는 편의를 도모하는 행위에 대하여 그 대가 지급 원인 및 주체를 불문하고 대가를 지급받는 경우를 모두 의료법 제27조 제3항 위반행위가 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고,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위반행위의 범위가 매우 넓어져서, 환자의 필요에 따라 치료 위임계약의 편의를 도모하고 환자로부터 그 비용을 지급받는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 제공 행위가 모두 위 의료법 위반행위에 해당될 수 있으므로 위반행위의 범위를 명확히 확정할 필요가 있었다. 대상판결은 의료법 제27조 제3항의 ‘영리목적’ 및 그 ‘대가’의 의미를 동 조항의 입법 취지와 규율 대상을 고려하여 합목적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의료법 제27조 제3항이 금지하는 행위의 태양을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행정판례] 6.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은 대물적 성격을 가지므로 폐업한 요양기관에서 발생한 위반행위를 이유로 폐업한 요양기관 개설자가 새로 개설한 의료기관에 대하여 업무정지 처분은 위법 (대법원 2022. 1. 27. 선고 2020두39365 판결) 가. 사실관계 의사인 원고는 병원을 개설·운영하다가 폐업하였고, 폐업 후 두 달 뒤에 새로운 병원을 개설·운영하였다. 원고는 폐업한 병원에서 병원이 아닌 곳에서 진료하고 원외처방전을 발급한 것이 문제가 되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새로 개설한 병원에 대해 10일의 업무정지 처분을 받게 되자 해당 처분을 취소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나. 사건 경과 1심 및 원심은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은 요양기관의 영업 자체에 대한 것으로서 대물적 처분의 성격을 갖고 요양기관이 폐업한 때에는 폐업한 요양기관에 대하여는 업무정지 처분을 할 수 없고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은 처분의 대상이 아닌 다른 요양기관에 대한 것이므로 처분이 위법하다고 보아 처분을 취소하였다. 다. 대법원판결의 요지 요양기관이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자에게 요양급여 비용을 부담하게 한 때에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85조 제1항 제1호에 의해 받게 되는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은 의료인 개인의 자격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요양기관의 업무 자체에 대한 것으로서 대물적 처분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자에게 요양급여 비용을 부담하게 한 요양기관이 폐업한 때에는 그 요양기관은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그 처분대상도 없어졌으므로 그 요양기관 및 폐업 후 그 요양기관의 개설자가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에 대하여 업무정지 처분을 할 수는 없다. 라. 평석 대상판결은 침익적 행정행위의 근거가 되는 행정법규는 엄격하게 해석·적용하여야 하고 그 행정행위의 상대방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해서는 안 되며, 그 입법 취지와 목적 등을 고려한 목적론적 해석이 전적으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해석이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서는 아니 된다는 기존 법리에도 부합하는 타당한 판결이다. 한편, 대상판결에서는 구 의료법 제66조 제1항 제7호에 의하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인이 속임수 등 부정한 방법으로 진료비를 거짓 청구한 때에는 1년의 범위에서 면허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고 이와 같이 요양기관 개설자인 의료인 개인에 대한 제재 수단이 별도로 존재하는 이상, 위와 같은 사안에서 제재의 실효성 확보를 이유로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85조 제1항 제1호의 ‘요양기관’을 확장 해석할 필요도 없다는 사유를 기재하고 있다. 그러나 설령 제재의 실효성이 확보되지 않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이는 별도의 입법을 통해 해결하여야 할 문제로 보이며 단지 제재의 필요성을 이유로 하여 해당 처분의 성격과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는 해석은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차효진 변호사(법무법인(유) 세종)
의료법제33조제2항
의료기관개설
사무장병원
차효진 변호사(법무법인(유) 세종)
2023-11-26
행정사건
- 대법원 2020. 6. 4. 선고 2015두39996 판결 -
국민건강보험법 부당이득의 징수규정이 과연 재량규정인가
Ⅰ. 판결요지 구 국민건강보험법(2011년 12월 31일 법률 제11141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52조 제1항은 "공단은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자 또는 보험급여비용을 받은 요양기관에 대하여 그 급여 또는 급여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한다"라고 규정하여 문언상 일부 징수가 가능함을 명시하고 있다. 위 조항은 요양기관이 부당한 방법으로 급여비용을 지급청구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바람직한 급여체계의 유지를 통한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데 입법 취지가 있다. 그러나 요양기관으로서는 부당이득징수로 인하여 이미 실시한 요양급여에 대하여 그 비용을 상환받지 못하는 결과가 되므로 침익적 성격이 크다. 법 규정의 내용, 체재와 입법 취지, 부당이득징수의 법적 성질 등을 고려할 때,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이 정한 부당이득징수는 재량행위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요양기관이 실시한 요양급여 내용과 요양급여비용의 액수, 의료기관 개설·운영 과정에서의 개설명의인의 역할과 불법성의 정도, 의료기관 운영성과의 귀속 여부와 개설명의인이 얻은 이익의 정도, 그 밖에 조사에 대한 협조 여부 등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의료기관의 개설명의인을 상대로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징수하는 것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 것으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Ⅱ. 논의현황 통상적으로 기속규정인지 재량규정인지 여부는 가능규정(Kann-Vorschriften)인지 의무규정(Muß-Vorschriften)인지 여부에 따른다. 그런데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 부당이득의 징수 규정은 '징수한다'고 하여 논란이 생긴다. 일각에서는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경우 입법 취지, 입법 목적, 행위의 성질을 고려하여 재량행위, 기속행위를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박균성, 행정법론(상), 2021, 328면), 다른 한편으로는 판례가 법정외 거부사유에 따른 거부가능성을 인정하는 상황을 기속재량행위로 받아들여 요양급여처분, 그 거부처분과 환수처분을 기속재량행위로 보고서, 요양급여 기준 위반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도 예외적 정당화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 그 초과한 금액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징수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견해(선정원, 행정법연구 제29호, 2011, 19면)가 있으며, '속임수 기타 부당한 방법'을 형식적·기계적으로 해석하는 상황에서 기속행위로 본다면, 형평과 정의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어서 '일부 징수'의 차원에서 재량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견해(현두륜, 의료법학 제8권 제2호, 2007, 108면~109면)도 있다. Ⅲ. 대상판결의 재량적 접근 및 그에 대한 비판 대상판결은 해당 규정이 일부 징수의 가능성을 두고 있으며, 부당이득의 징수 자체가 침익적 성격이 크다는 점이 든다. 그밖에 법 규정의 내용, 체제와 입법취지를 드는데, 구체적인 논거는 문현호(48·사법연수원 33기) 부장판사의 글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문 부장판사의 글(사법 제54호, 2020, 846면 이하)에서 전개된 논의를 중심으로 검토한다. ⅰ) 먼저 문언적 해석의 차원에서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의 '일부'라는 표현이 사용된 이상 재량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전액 징수만 가능하다면 굳이 '일부'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하는데, 과연 '일부 징수'의 가능성을 지적하였다고 이를 재량의 논거를 삼을 수 있는지 수긍하기 힘들다. '부당이득의 징수'를 규정한 실정법의 현황을 보면, 부당이득의 징수를 의무로 설정할 때 징수권이 부당이득에 한하여 행사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하면 그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속행위로 접근하는 것이 '일부'의 어의와 배치된다는 지적도 수긍하기 힘들다. 그리고 여기서의 '징수한다'의 표현을 중립적이라 지적하는데, 오히려 종래 민사적 방법으로 부당이득환수를 도모하는 것을 공법적으로 대체한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ⅱ) 체계적 해석의 차원에서 동 규정은 적용 범위가 넓은 일반조항이기에 실질적 부당이득징수사유를 포착하기 위해서 재량규정이어야 함을 내세우는데, 이는 실제적인 부당이득이 되는지 여부의 문제이고 부당이득의 적정성의 물음이기에, 재량규정의 논거가 될 수 없다. ⅲ) 목적론적 해석의 차원에서 요양급여비용 중 일부 금액만 부당하면 그 금액만큼 행정청의 증명책임이 경감되는데, 만약 기속행위로 보면 부당한 일부 금액 특정의 증명책임까지 행정청이 부담하여 엄격하게 보면 처분이 불가능하게 된다고 지적하였는데, 과연 이것이 목적론적 해석의 접근방식인지 의문스럽다. ⅳ) 엄격해석의 차원에서 요양급여비용이 유상급부에 대한 대가이어서 그것의 징수는 무상 보조금 환수보다 침익성이 가장 강하기에 재량이라는 것인데, 통상적으로 침익행위를 애써 재량행위가 아닌 기속행위로 보는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논증이다. 침익성이 크기에 행정청의 자의가 기속행위의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개재될 가능성이 큰 재량행위로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있다. ⅴ) 합헌적 해석의 차원에서 과잉금지의 원칙에서 재량행위로 보아야 한다면서 헌재 2014헌바298 등의 결정이유(심판대상조항들은 '급여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당이득으로 징수하도록 정하고 있어, 구체적 사안에 따라 그 금액 전부의 징수가 부당한 경우에는 일부만 징수할 수 있으므로, 부당이득금 징수처분으로 인한 의료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가 해당 규정을 재량행위설을 전제로 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일부'의 의미와 관련해서 헌법재판소가 수급한 요양급여비용 가운데 부당이득에 해당하는 것만을 징수하도록 입법자가 배려한 것임을 지적한 데 불과하다.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더해서 다양한 일률적인 전액징수가 불공평 또는 책임초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절차적·형식적 규정만 위반한 경우에는 요양급여기준위반보다 징수금액이 더 크게 될 수 있으며, 그리하여 회생파산절차에 의한 면책이 불가능한 의사들이 경제적 불능상태에 삐지게 되어 사회 전체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음을 든다. 그런데 과도한 징수의 경우는 기속행위인 과세처분에서 일부취소와 같은 방법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부당결부와 같은, 이런 식의 논증이 과연 재량행위적 접근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든다. ⅵ) 다른 법령과의 비교에서 부당이득 성격이 있다고 하여 반드시 기속행위로 볼 수는 없고, 입법정책적 문제일 뿐이라고 지적하는데, 이는 동 규정의 재량행위성 여부의 논거와는 무관하다. 재량행위라도 전부 징수가 가능하며, 부당이득의 징수(박탈)의 성격이 징수의 재량행위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지적과 관련해서는 과연 본 사안에 통용될 수 있는 논증인지 의문스럽다. Ⅳ. 맺으면서-결과적으로 사무장병원이 사실상 용인된 셈이다 대상판결이 해당규정을 재량규정으로 접근하기 위해 내세운 논거 모두가 전혀 수긍하기 힘들다. 비록 익숙한 규정방식(…하여야 한다)을 취하지 않아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법 규정의 내용, 체재와 입법취지(동 규정의 원형은 일본 건강보험법 제58조 제1항이다. 일본의 경우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기속행위로 접근하는데, 이는 '할 수 있다'의 의미를 일종의 권한규정의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다)를 감안할 때 부당이득의 징수규정은 기속규정일 수밖에 없다. 징수(환수)처분규정을 기속규정으로 둔 것은 입법자가 연금지급의 적법성을 다른 여지 없이 실현하기 위함이다. 침익적 처분을 재량에 맡겼을 때 생길 수 있는, 공평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법집행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하기 위함이다. 부당이득 징수제도의 정당성을 고려하면, 애써 그것을 이익형량의 틀속에서 징수권자의 자의가 개재될 가능성이 있는 재량행위로 접근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대상판결은 의도하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사무장병원을 사실상 용인한 셈이다(김중권, 행정판례연구 제26집 제1호(2021.6.30.), 3면 이하). 법령에서 규정하지 않은 장애를 바람직스럽지 않게 예시적 접근으로 등록장애종류로 확대 인정한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6두50907 판결이 보여주듯이 최근 법원은 사회보장행정 분야에서 권리구제확대를 내세워 이해하기 힘든 전개를 한다(김중권, 사법 제55호(2021. 3. 15.), 955면 이하). 아무리 사회보장행정법이 일반행정법의 실험장인 동시에 혁신의 원동력이라 하더라도, 민주적 법치국가원리를 넘어갈 수는 없고, 사회적인 것 그 자체가 결코 민주적 법치국가원리의 예외를 정당화시키지도 않는다. 김중권 교수 (중앙대 로스쿨)
의사
병원
사무장병원
불법행위
요양급여
김중권 교수 (중앙대 로스쿨)
2021-09-30
형사일반
의료법 제33조 제8항에 관한 대법원 판결평석
I. 서론 보건의료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법률가라면 한 명의 의료인이 둘 이상의 의료기관의 경영에 참여하는 행위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다양한 법적 그리고 정책적 논쟁이 전혀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한 명의 의료인이 여러 의료기관의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국민의 후생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가 정책적 논쟁이라면, 의료인의 복수 의료기관 경영을 금지하는 법률 규정이 과연 헌법합치적일 수 있는지가 주요 법적 논쟁 가운데 하나라고 할 것이다. 이 헌법 차원의 법적 논쟁에 못지 않은 또 다른 중요한 법적 논쟁은 의료인의 복수 의료기관 개설을 금지하는 의료법 규정의 적용범위에 관한 법해석론 차원의 논쟁이다.1) 그런데 최근 대법원이 내린 2018도3672 판결(이하 “대상 판결”)이 새로운 법해석론 차원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기에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각주1] 물론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의료법 해당 규정의 헌법합치성 판단은 동 규정의 합리적인 해석을 전제로 이루어져야 하므로, 이 두가지 법적 논쟁은 완전히 독립되고 분리된 논쟁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접촉면을 갖고 있는 논쟁이라고 하겠다. II. 복수개설금지 조항의 변천 및 법원의 해석 이 글에서 분석하려는 판결을 살펴보기에 앞서, 의료인의 의료기관 복수 개설 금지를 규정한 의료법 제33조 제8항의 변천 과정을 가볍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2012년 개정 이전의 복수개설 금지 조항 및 법원의 해석 해당 규정인 의료법 제33조 제8항은 2012년 2월 1일 현재의 내용으로 개정이 되었는데, 개정되기 직전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기술의 편의를 위하여 이하에서는 이를 “구법상의 복수개설 금지조항”이라고 부른다.) 제33조 (개설 등) ⑧ 제2항 제1호의 의료인은 하나의 의료기관만 개설할 수 있다. 다만, 2 이상의 의료인 면허를 소지한 자가 의원급 의료기관을 개설하려는 경우에는 하나의 장소에 한하여 면허 종별에 따른 의료기관을 함께 개설할 수 있다. 1994년 1월 7일 의료법 개정을 통하여 처음 등장한 위 조항은2) 의사가 개설할 수 있는 의료기관의 수를 1개소로 제한함으로써, 의사가 의료행위를 직접 수행할 수 있는 장소적 범위 내에서만 의료기관의 개설을 허용하고, 의사 아닌 자에 의하여 의료기관이 관리되는 것을 그 개설단계에서 미리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3) [각주2] 의료기관 중복개설 금지 조항의 위치는 의료법 제30조 및 제33조 제2항을 거쳐 지금의 제33조 제8항에 이르고 있다. 의료기관 복수개설 금지 규정의 변천에 관하여는 김준래, “네트워크병원과 의료기관 복수 개설ㆍ운영 금지 제도에 관한 고찰,” 의료법학, Vol. 17, No. 2 (2016), pp.281–313 [각주3] 대법원 2003. 10. 23. 선고 2003도256 판결 위 조항에 담긴 “개설”의 의미에 대하여 대법원은 “자신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고 있는 의사가 다른 의사의 명의로 또 다른 의료기관을 개설하여 그 소속의 직원들을 직접 채용하여 급료를 지급하고 그 영업에 따라 발생하는 이익을 취하는 등 새로 개설한 의료기관의 경영에 직접 관여한 점만으로는 다른 의사의 면허증을 대여받아 실질적으로 별도의 의료기관을 개설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나, 다른 의사의 명의로 개설된 의료기관에서 자신이 직접 의료행위를 하거나 무자격자를 고용하여 자신의 주관 하에 의료행위를 하게 한 경우는 비록 그 개설명의자인 다른 의사가 새로 개설한 의료기관에서 직접 일부 의료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미 자신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한 위 의사로서는 중복하여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았다.4) [각주4] 대법원 2003. 10. 23. 선고 2003도256 판결, 대법원 2008. 9. 25. 선고 2006도4652 판결. 대법원의 이러한 입장에 대하여는,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의 명의만 빌리고 자신의 자본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는 경제적 의미에서 의료기관의 중복개설이라고 할 여지가 있을지 모르나, 타인의 명의를 빌린 의료인이 자신의 명의로 개설한 의료기관에서의 의료행위에만 전념하고 있다면 이를 의료기관 이중개설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본 것이라고 분석한 견해가 유력하다.5) [각주5] 장연화, “의료법상 의료기관의 개설제한에 관한 고찰,” 법학연구, Vol. 12, No. 2 (2009), pp.279–300 2. 2012년 개정 법률 및 법원의 해석 의료인의 의료기관 복수개설 금지 조항은 1994년 제정 이후 실질적인 내용의 변화 없이 조문번호나 문구의 변경과 같은 형식적인 개정만을 거쳐오다가, 제11대 국회에서 변화를 겪게 된다. 당시 양승조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의료법에 대한 다른 개정안과 통합 가결되어 2012년 2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기술의 편의를 위하여 이하에서는 이를 “신법상의 복수개설 금지조항”이라고 부른다.) 제4조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장의 의무) ② 의료인은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 제33조 (개설 등) ⑧ 제2항 제1호의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 다만, 2 이상의 의료인 면허를 소지한 자가 의원급 의료기관을 개설하려는 경우에는 하나의 장소에 한하여 면허 종별에 따른 의료기관을 함께 개설할 수 있다. 가. 2016년 대법원 판결 신법상의 복수개설 금지조항을 적용한 리딩 케이스로는 2016도11407 판결 (이하 “2016년 대법원 판결”)이 있다. 판결문에 나타난 사실관계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병원을 운영하던 甲과 B병원을 운영하던 乙 2인의 의사가 각자의 병원을 교환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개설자 명의 변경을 통하여 甲은 B병원을, 乙은 A병원을 각자 자신의 명의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악화된 乙의 부채사정으로 인하여 A병원의 재산에 대하여 乙의 채권자들이 강제집행을 해오자 A병원의 개설자를 다시 乙에서 미국에 거주하는 丙으로 변경하였다. 그런데 이후 丙은 A병원에 출근하여 진료업무를 전혀 수행한 바 없고, 乙은 甲과 고용계약을 체결하고 A병원에서 의료행위를 하면서 甲으로부터 일정한 급여를 지급받았으며, 甲은 자신의 B병원 직원을 A병원에 출근하도록 하여 자금관리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고, 임금지급, 물품 구매 등 지출에 관한 의사결정 권한을 행사하였으며, 직원을 통하여 A병원의 수익을 취득하였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A) “이미 자신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면서 의료행위를 하고 있는 의사가 다른 의사를 고용하여 그 의사 명의로 새로운 의료기관을 개설하고 그 운영에 직접 관여하는 데서 더 나아가 그 의료기관에서 자신이 직접 의료행위를 하거나 비의료인을 고용하여 자신의 주관 하에 의료행위를 하게 한 경우에는 이미 자신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고 있는 위 의사로서는 중복하여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에 해당”하고, (B) “이미 자신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면서 의료행위를 하고 있는 의사가 다른 의사가 개설·운영하고 있는 기존 의료기관을 인수하여 의료법 제33조 제5항 등에 따른 개설자 명의변경 신고 또는 허가를 받지 아니한 채 또는 다른 의사의 면허증을 대여받아 그 의사 명의로 개설자 명의변경 신고 또는 허가를 받아 종전 개설자를 배제하고 그 의료기관의 시설과 인력의 관리,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그 운영성과의 귀속 등 의료기관의 운영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는 등 종전 개설자의 의료기관 운영행위와 단절되는 새로운 운영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이미 자신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고 있는 위 의사로서는 중복하여 의료기관을 운영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보다시피 (A) 부분은 앞에서 본 이전 대법원 판례와 차이가 없다.6) 그러나 (B) 부분은 신법상의 복수개설 금지조항에 신설된 의료기관 중복 운영 금지조항을 적용한 첫 대법원의 판결이므로 선례로서의 의미가 큰데, 대법원은 이 판결을 통해 신법상의 복수개설 금지조항에 새로 추가된 행위 태양인 의료기관 중복 운영이란 종전 개설자의 의료기관 운영행위와 단절되는 새로운 운영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라는 기준을 제시하였다.7)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사실관계 하에서 대법원은 甲이 A병원을 자신의 B병원과 함께 중복하여 운영하였다고 보아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하였다. 2016년 대법원 판결의 이와 같은 기준은 신법상의 복수개설 금지조항에 대하여 처음 제시된 기준이지만,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금지 규정8) 위반사건에서 이미 제시된 바 있는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운영” 기준과 같은 내용이다.9) [각주6] 실제로 이 판결에서도 대법원 2003. 10. 23. 선고 2003도256 판결, 대법원 2008. 9. 25. 선고 2006도4652 판결을 인용하고 있다. [각주7] 김준래, “네트워크병원과 의료기관 복수 개설ㆍ운영 금지 제도에 관한 고찰,” 의료법학, Vol. 17, No. 2 (2016), pp.285는 동 판결의 의미를 “추가 운영하는 의료기관에서 직접 의료행위 등을 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주도적으로 의료기관을 운영하였다면, 이는 의료법 제33조 제8항에 위반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동 판결이 요구하는 “종전 개설자 배제”라든가 “종전 개설자의 의료기관 운영행위와 단절되는 새로운 운영행위”의 요소를 생략하고 있으므로 동의하기 어렵다. [각주8] 의료법 제33조 제2항 [각주9] 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09도2629 판결 (“비의료인이 이미 개설된 의료기관의 의료시설과 의료진을 인수하고 개설자의 명의변경절차 등을 거쳐 그 운영을 지배·관리하는 등 종전 개설자의 의료기관 개설·운영행위와 단절되는 새로운 개설·운영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의료법 제30조 제2항에서 금지하는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행위에 해당한다.”) 나. 2018년 대법원 판결 그런데 대상 판결은 2016년 대법원 판결과 비교하여 신법상의 복수개설 금지조항의 범위를 확대하여 해석하고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이 사건의 상고심과 하급심 판결문에는 나타난 사실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12년부터 A치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던 甲은 2013년경 乙과 지분투자 및 공동 운영 합의를 맺고 乙이 자금을 투자하여 B치과를 개설하여 진료를 하되 甲은 회계와 마케팅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甲은 또한 2014년경 丙과 동업계약 및 지분 협의 계약을 맺었는데, 그에 따라 丙이 C치과를 개설하여 운영하였고 갑은 C치과에 30% 정도의 지분만 보유하였다. 이러한 사실관계 하에서, 1심은 甲이 乙이나 丙의 명의를 대여하여 B치과 또는 C치과를 개설 및 운영하였다거나, B치과 또는 C치과에서 직접 의료행위를 하거나 비의료인을 고용하여 자신의 주관 하에 의료행위를 하게 하였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신법상의 복수개설 금지조항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甲이 乙의 명의를 빌려 B치과를, 丙의 명의를 빌려 C치과를 각 개설하여 운영하였고, 각 치과를 운영함에 있어 그 시설과 인력의 관리,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그 운영성과의 귀속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 사건의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가) “의료기관의 중복 개설이란 ‘이미 자신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한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 등의 명의로 개설한 의료기관에서 직접 의료행위를 하거나 자신의 주관 아래 무자격자로 하여금 의료행위를 하게 하는 경우’”라고 판시하였고, (나) “그와 구분되는 의료기관의 중복 운영이란 ‘의료인이 둘 이상의 의료기관에 대하여 그 존폐·이전, 의료행위 시행 여부, 자금 조달, 인력·시설·장비의 충원과 관리, 운영성과의 귀속·배분 등의 경영사항에 관하여 의사 결정 권한을 보유하면서 관련 업무를 처리하거나 처리하도록 하는 경우’”를 뜻한다고 보았다. 특히 (다) “의료기관의 중복 운영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위와 같은 운영자로서의 지위 유무, 즉 둘 이상의 의료기관 개설 과정, 개설명의자의 역할과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고 지목된 다른 의료인과의 관계, 자금 조달 방식, 경영에 관한 의사 결정 구조, 실무자에 대한 지휘·감독권 행사 주체, 운영성과의 분배 형태, 다른 의료인이 운영하는 경영지원 업체가 있을 경우 그 경영지원 업체에 지출되는 비용 규모 및 거래 내용 등의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둘 이상의 의료기관이 의사 결정과 운영성과 귀속 등의 측면에서 특정 의료인에게 좌우되지 않고 각자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아니면 특정 의료인이 단순히 협력관계를 맺거나 경영지원 혹은 투자를 하는 정도를 넘어 둘 이상의 의료기관의 운영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기준 하에 대법원은 甲에 대하여 의료기관 중복 개설·운영 금지 원칙 위반을 인정한 항소심의 판단을 지지하였다. 다. 2016년 판결과 대상 판결의 비교 의료기관 중복 “개설” 금지에 관한 2016년 대법원 판결의 (A) 부분과 대상 판결의 (가) 부분을 비교하면 아무런 변화가 없다. 반면 양 판결에 나타난 의료기관 중복 “운영”의 기준은 외견상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2016년 대법원 판결은 (위 (B) 부분) 의료기관 중복 운영의 핵심을 이미 자신의 의료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가 다른 의료기관에서 종전 개설자의 의료기관 운영행위와 단절되는 새로운 운영행위를 한 것에 둔 반면, 대상 판결은 (위 (나) 부분) “종전 개설자의 의료기관 운영행위와 단절”이라는 요소를 명시하지 아니한 채 “의료인이 둘 이상의 의료기관에 대하여 경영사항에 관한 의사결정 권한을 보유하면서 관련 업무를 처리한 경우”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대상 판결은 또한 제반 사정을 바탕으로 둘 이상의 의료기관이 의사 결정과 운영성과 귀속 등의 측면에서 특정 의료인에게 좌우되지 않고 각자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아니면 특정 의료인이 단순히 협력관계를 맺거나 경영지원 혹은 투자를 하는 정도를 넘어 둘 이상의 의료기관의 운영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다 (위 (다) 부분). 이와 같이 2016년 대법원 판결은 의료기관의 중복 운영에 해당하기 위하여는 새로운 운영자로 인하여 종전 개설자가 배제되고 종전 개설자의 의료기관 운영행위가 단절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반면, 대상 판결은 종전 개설자의 운영이 배제되는 정도에 이르지 않더라도 제반사정을 기초로 여전히 의료기관의 중복 운영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대상 판결은 의료기관의 중복 운영에 대하여 2016년 대법원 판결이 제시한 기준을 완화하고 있는 것인가? 이 글은 결론적으로 그렇게 보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 - 즉, 대상 판결은 여전히 의료기관 중복 운영 금지 조항에 관하여 2016년 대법원 판결과 동일한 해석을 한다는 입장 - 을 취한다. 그 논거는 뒷부분에서 더 자세히 제시하기로 하고, 그렇게 보지 않을 경우, 즉 대상 판결이 2016년 대법원 판결을 변경하여 의료기관 중복 운영의 기준을 완화하고 있다고 볼 경우에 생기는 문제점들을 먼저 지적하겠다. III. 대상 판결이 판례 변경이라고 볼 경우의 문제점 1. 판결의 시점 우선 대상 판결이 내려진 시점이 법률 실무가들에게 상당히 의아하게 느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의료기관 중복개설 금지조항과 관련하여 국내 사법부 최고심급의 결정 또는 심리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다른 의사를 병원장으로 고용해 여러 개의 병원을 운영한 의료인이 의료법 제33조 제8항 위반을 이유로 기소된 형사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어 심리를 앞두고 있다.10) 또한 의료법 제33조 제8항에서 둘 이상의 의료기관 개설·운영을 금지한 것이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원칙, 평등원칙에 반하고 수규범자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함을 이유로 헌법소원이 제기되어 지난 2016년 3월 10일 공개변론이 열린 바 있고 그 결정이 머지않아 내려질 것으로 기대되는 상태이다.11) [각주10] 법률신문 뉴스 2016.6.14.자 “'월급 병원장 고용' 여러 병원 개설한 의사 유·무죄…대법원 전합 회부” [각주11] 2015헌바34 의료법 제4조 제2항 등 위헌소원 상황이 이러하다면 피고인 구속 사건도 아닌 마당에 머지않아 내려질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지금 시점에서 의료법 제33조 제8항 적용 대상인 판결을 굳이 내릴 필요가 없었다. 잠재적인 재심의 대상을 늘려 오히려 소송경제를 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지어는 2016년 대법원 판결을 변경하는 취지의 판결이라면 지금 시점에서 이와 같은 판결을 내릴 필요가 과연 있었는가 의문이 생긴다. 2. 소부(小部)에서의 판례 변경 대상 판결이 합의체를 통하지 않고 소부에서 기존 판례를 변경하고 있다는 점도 커다란 문제이다. 법원조직법 제7조 제1항에 의하면 대법원의 심판권은 대법관 전원의 3분의 2 이상의 합의체에서 행하되, 다만 같은 항 각 호의 경우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면 대법관 3인 이상으로 구성된 부에서 사건을 먼저 심리하여 의견이 일치된 경우에 한하여 그 부에서 심판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같은 항 제3호는 ‘종전에 대법원에서 판시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법률 등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이 그 전에 선고된 대법원 판결에서 판시한 의견을 변경하는 것임에도 대법관 전원의 3분의 2에 미달하는 대법관만으로 구성된 부에서 심판하였다면 이는 법원조직법 제7조 제1항 위반이고,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1호의 ‘법률에 의하여 판결법원을 구성하지 아니한 때'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12) [각주12] 대법원 2011. 7. 21. 선고 2011재다199 전원합의체 판결 즉, 전원합의체가 아닌 소부에서 이루어진 대상 판결이 기존 판례를 변경하는 취지라고 본다면 이는 법원조직법 제7조 제1항 위반을 면하기 어렵다. 3. 피고인에게 불리해진 판례의 소급 적용 만약 대상 판결이 신법상의 복수개설 금지조항의 해석에 관한 대법원 판례의 변경이라고 볼 경우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결과적으로 확대된 처벌 기준의 소급효이다. 대상 판결은 2016년 대법원 판결에 비하여 복수개설 금지조항 위반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기존에는 의료법 제87조 제1항 제2호, 제33조 제8항에 따라 처벌 대상이 대상이 아닌 행위가 대상 판결 이후에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판례의 변경으로 인하여 범죄의 구성요건이 확대되는 경우, 판례 변경 이전에 이루어진 행위가 변경된 판례 하에서 비로소 범죄 구성요건을 충족하게 되는 것은 마치 형벌조항을 소급적으로 입법하는 것과 비교하여 그 효과가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므로 판례 변경의 소급효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판례변경은 헌법 제13조 제1항과 형법 제1조의 소급효 금지가 준용되지 않아 피고인에게 불리한 형사판례 변경도 허용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므로,13) 대법원은 자신의 종전 2016년 판결을 수규범자들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대상 판결을 충분히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각주13] 대법원 1999.7.15. 선고 95도2870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99.9.17. 선고 97도3349 판결. 그러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판례 변경이 소급효 금지의 원칙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이를 비판하는 형법학자들의 지적이 이어지는 것은14) 변경 이전의 판례를 신뢰하여 행동에 옮긴 수규범자의 신뢰이익이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부당하고 헌법질서와도 배치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사판례 변경이 소급효 금지 원칙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2016년 대법원 판결을 신뢰한 수규범자의 신뢰이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각주14] 예컨대 조기영, “판례변경과 소급효금지의 원칙”, 「동북아법연구」, 제11권 1호 (2017. 5). 물론 종전판례를 근거로 자신의 행위가 불가벌이라고 믿었던 수규범자의 신뢰가 늘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위조한 문서를 복사한 문서는 문서위조 및 동행사죄의 객체가 아니라는 기존 판례를 변경하는 경우에는15) 문서를 위조한 행위 자체의 비난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존 판례를 신뢰한 행위를 보호해야 한다고 보기 어렵고, 준강도죄의 기수 여부를 폭행·협박행위 기준에서 절취행위 기준으로 변경하는 경우에도16) 마찬가지로 기존 판례를 신뢰한 행위에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형사판례 변경의 소급효와 관련하여 독일에서의 논의를 촉발시킨 음주운전의 처벌기준 강화 판결17) 역시 수규범자들이 기존 판례의 혈중알콜농도 기준에 맞춰 음주를 한 후 운전하는 상황을 상정하기 어려우므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피고인의 신뢰이익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즉, 수규범자가 변경 이전의 판례를 신뢰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신뢰가 늘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18) [각주15] 대법원 1989. 9. 12. 선고 87도506 전원합의체 판결 [각주16] 대법원 2004.11.18. 선고 2004도5074 전원합의체 판결 [각주17] BGHSt 37, 89. 당시 독일 형법 제316조는 음주로 인하여 자동차를 안전하게 운전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전한자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는데, 이때 혈중알콜농도가 어느 정도 이상일 때 운전불능상태인지에 대하여는 명문 규정 없이 의학적인 연구 등을 기초로 판례가 기준을 정해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990년 독일연방법원은 1966년 이래로 0.13%로 유지해 온 혈중 알코올 농도의 기준치를 0.11%로 하향 조정하면서 판례 변경 이전에 혈중알콜농도 0.12%인 상태에서 운전하다 적발된 사람들의 처벌 여부가 문제가 되었다. 서보학, “형사판례변경과 신뢰보호”, 「경희법학」, 제34권 (1999), pp.345–346 [각주18] 이동진, “판례변경의 소급효,” 民事判例硏究, No. 36 (2014), pp.1168. 그렇다면 신법상의 복수개설 금지조항에 관한 2016년 대법원 판결에 대한 신뢰는 어떠한가? 실제로 수규범자인 의료인이 동 판결을 인식하고 이를 신뢰하였다는 전제하에, 그러한 신뢰는 별로 의문의 여지 없이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위반시 형사처벌이 따르는 행정법규는 재판규범이자 행위규범이다. 그러나 수규범자들이 평소 모든 관련 법규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있지는 아니하므로, 개개의 행정법규 및 그에 대한 법원의 해석이 수규범자에게 동등한 정도의 규범력을 갖는 행위규범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어떤 행정법규 및 그에 대한 법원의 해석은 법률가도 아닌 수규범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고 준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반면, 어떤 행정법규는 규제기관에 의하여 적용되기 전까지 수규범자들이 그 존재를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의료기관 중복 운영 금지 조항은 2012년 의료법 개정 시 처음 삽입되기는 했으나 그 모태가 되는 의료기관 중복개설 금지조항은 2000년대에 들어와 그 위반을 이유로 많은 의료인들이 기소가 되는 바람에 복수의 의료기관을 경영하고자 하는 다수의 의료인들이 이미 인식하고 신중히 분석하고 있었던 규정이고, 동 조항을 해석한 판례19) 역시 복수 의료기관의 경영에 참여하려는 의료인들에게 합법적인 경영방식의 준거로 작용했음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 2012년 의료법 개정 이후 신법상의 중복개설 금지조항에 대하여는 마찬가지로 2016년 대법원 판결이 그러한 지위를 차지했을 것임이 당연하다. 즉 2016년 대법원 판례의 취지에 따라 일선에서의 다수의 의료인들은 합법적이라는 믿음 하에 진료는 의료기관 개설 명의자에게 맡기고 자본 투자나 컨설팅 등 다양한 형태로 복수 의료기관의 경영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신법상의 의료기관 중복 개설·운영의 기준을 제시한 2016년 대상판결을 신뢰한 의료인들의 신뢰이익은 마땅히 보호되어야 한다. [각주19] 위 각주 4의 판례. 그런데 의료기관 중복개설 금지조항의 위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기존 2016년 대법원 판결을 신뢰한 의료인이 입을 수 있는 불이익은 비단 형사처벌에 그치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의료법을 위반한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지급받은 요양급여비용을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에 근거하여 환수하는 조치를 기계적으로 취하고 있는데, 그 환수액은 의료기관이 거둔 수익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지급받은 급여금액 전액이고 심지어는 환자 본인부담금마저 포함되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의료인이 파산에 이를 정도로 커다란 금액이 되기도 한다.20) [각주20] 예컨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급여비용환수처분 취소를 구한 2014구합11526사건에서는 환수급액이 74억원에 달하여 의료인인 원고가 파산에 이를 수 있으므로 환수처분이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의료기관 중복개설 금지조항의 수규범자들인 의료인들이 2016년 대법원 판결을 신뢰하여 동 판결이 허용하는 형태로 복수 의료기관을 운영해 왔다면, 그러한 수규범자들의 신뢰이익은 더더욱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데, 대상 판결은 그러한 신뢰이익을 보호할 아무런 장치 없이 신법상의 중복개설 금지조항의 위반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기존 판례를 신뢰한 의료인들을 형사처벌은 물론이거니와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에 새로이 노출시키고 있으므로 부당하다. 4. 자기 모순적인 기준 제시 서로 다른 의료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의료인들이 맺을 수 있는 협력의 형태를 개념적으로 분류해보면, 아무런 자본 투자 없이 수수료를 목적으로 자문제공이나 경영지원을 제공하는 형태가 있을 수 있고, 한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의 의료기관에 자본 투입을 통하여 지분을 취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지분투자가 이루어질 경우, 피투자 의료기관의 운영에 관한 투자자의 관여에는 다양한 정도와 형태가 있을 것이다. 투자자와 피투자자가 예컨대 학연이나 혈연으로 이어진 경우에는 피투자자의 병원 운영에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자신의 투하자본이 이윤과 함께 회수되기를 바라는 투자자의 입장에서 어떤 형태로든 피투자 의료기관의 운영을 모니터하고 너무 모험적인 운영을 방지하고자 하는 유인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기업에 대한 투자의 경우에도 일정 규모 이상의 지분 투자를 하는 투자자는 이사 선임 등을 통하여 피투자 기업이 건실한 경영을 하는지 감독하고자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다면 의료기관에 대한 투자 자체를 금지하고 있지 않는 이상 - 지금까지 우리 대법원의 판결은 의료기관 이중 개설·운영 금지 조항이 투자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거니와, 대상 판결 자제도 의료법상 허용되는 동업의 형태로서 “단순히 헙력관계를 맺거나 경영지원 혹은 투자를 하는 정도”를 언급하고 있다 -, 자신이 자본을 투자한 의료기관에 대한 일정 수준의 감시 또는 감독권한을 보유하는 것 역시 허용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대상 판결은 “경영사항에 관하여 의사 결정 권한을 보유하면서 관련 업무를 처리하거나 처리하도록 하는 경우”는 위법한 복수 의료기관 운영이라는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의료기관 개설명의자를 배제하지 않더라도 예컨대 개설 명의자와 공동으로 경영사항에 관한 의사결정 권한을 보유한 경우조차 의료법에 위배되는 의료기관의 중복 운영에 해당할 여지를 만들었다. 대상 판결 스스로가 합법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경영지원 혹은 투자”에 통상 수반되는 행위를 위법이라고 보는 모순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IV. 대상 판결의 올바른 이해 지금까지 나열한 대상 판결의 문제점들은 대상 판결이 2016년 대법원 판결을 변경하는 취지라고 볼 때 발생하는 문제점들이고, 간단하게 치유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법기교적 조치로서가 아니라, 이 사건의 하급심 판결과 대법원 판결을 나란히 놓고 보면 대상 판결은 2016년 대법원 판결을 변경하려는 취지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이 사건에서 의료기관 중복 운영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1심과 이를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한 2심의 결론은 상반되지만, 1심과 2심의 판결문을 보면 각 법원이 적용한 의료기관 중복 운영의 법리는 다르지 않다. 즉, 1심과 항소심은 동일하게 의료기관의 중복 운영이란 “이미 자신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면서 의료행위를 하고 있는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이 개설·운영하고 있는 기존 의료기관을 인수하여 … 종전 개설자를 배제하고 그 의료기관의 시설과 인력의 관리,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그 운영성과의 귀속 등 의료기관의 운영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는 등 종전 개설자의 의료기관 운영행위와 단절되는 새로운 운영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라고 설시하면서 2016년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21) [각주21] 2016.12.22.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고단4214 및 2018.2.6.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노9. 다만 1심은 피고인이 위와 같은 행위를 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반면, 항소심은 증언 등을 바탕으로 피고인 甲이 乙의 명의를 빌려 B치과를, 丙의 명의를 빌려 C치과를 개설하여 운영하고, 위 각 치과를 운영함에 있어 그 시설과 인력의 관리,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그 운영성과의 귀숙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한 사실을 인정하여 의료기관 중복 운영에 대하여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즉, 1심과 2심 결론이 상반되는 것은 의료법 제33조 제8항의 해석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증거에 기반한 사실인정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검사의 항소이유도 법리오해가 아니라 사실오인이었다. 이에 대하여 대상 판결은 1심과 2심 가운데 항소심을 지지하면서 “1의료인 1개설·운영 원칙 위반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의료법 제33조 제8항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설시하고 있는데, 상고이유서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고인이 어떤 법리 오해를 상고이유로 제시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1심과 2심이 모두 동일하게 2016년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따르고 있고 사실 판단만을 달리한 경우라면, 대상판결이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기 위하여 새로운 법리를 제시하였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비록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의료기관 중복 운영에 관한 대상 판결의 위 (나) 및 (다) 판시가 기존 2016년 대법원 판결의 어구를 그대로 옮겨오고 있지는 않지만, 대상 판결은 여전히 2016년 대법원 판결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취지를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대상 판결이 의료기관 중복 운영에 필요한 개념 요소로서 “종전 개설자의 의료기관 운영행위와 단절되는 새로운 운영행위”를 제거한 듯하나, 이는 판결문에 생략되어 있을 뿐, 여전히 2016년 판결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다. V. 향후의 바람직한 절차 진행 지금까지 의료인은 1개의 의료기관만 개설할 수 있다는 의료법 제33조 제8항 소정의 의료기관 복수개설 금지 조항의 해석을 살펴보았는데, 동 조항에 대하여는 이미 이야기한대로 헌법소원이 제기되어 공개 변론까지 열렸고, 이러한 공개 변론이나 다양한 논문을 통해 합헌성 논쟁 및 의료 정책론 차원의 논쟁이22)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법원에 계류된 의료법 제33조 제8항 위반의 형사사건들은 일단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송경제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각주22] 설령 의료인의 의료기관 복수개설 금지가 위헌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책적으로 정당한 정책인가 하는 논쟁이다. 의료인이 1개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하여 너무 영리를 추구하는 것은 환자에 대한 최선의 진료라는 의료인의 책무와 상충할 수 있고, 이로 인한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위협이 의료기관 복수개설 규제가 좋은 정책이라고 보는 견해와 (김준래, “네트워크병원과 의료기관 복수 개설ㆍ운영 금지 제도에 관한 고찰,” 의료법학, Vol. 17, No. 2 (2016), pp.281–313), 1명의 경영인이 여러 개의 의료기관을 운영하면서 업무의 효율, 비용 절감 등 규모의 경제를 도모할 수 있으므로 복수개설 규제는 좋은 정책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가 (김선욱 and 정혜승, “의료인의 의료기관 다중운영 금지 조항의 위헌성 - 의료법 제87조 제1항 제2호, 제33조 제8항을 중심으로 -,” 의료법학, Vol. 16, No. 2 (2015), pp.295–326) 충돌한다. 그 결과 헌법재판소가 단순 위헌 결정을 내린다면 법원에 계류된 제33조 제8항 위반 사건에 대하여 법원은 공소기각의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합헌 또는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다면,23) 법원은 의료법 제33조 제8항의 법리를 섬세하게 다듬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 과정에서 의료기관 중복 개설·운영 기준을 완화할 경우 기존의 대법원 판결을 신뢰하여 합법적이라고 믿고 타 의료기관의 경영에 참여한 의료인이 부당하게 형사상 또는 행정처분을 통한 재산상 불이익을 받는 결과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24) [각주23] 법원은 헌법재판소의 법률 해석에 기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태도이므로 (대법원 2013. 3. 28. 선고 2012재두299판결),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 결정의 영향은 법원이 향후 의료법 제33조 제8항을 해석함에 있어 합헌결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각주24] 형사판례변경의 소급효를 인정하더라도 기존의 판례를 신뢰한 피고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형법 제16조 법률의 착오 규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태영, “被告人에게 不利한 判例變更과 遡及效禁止의 問題,” 동아법학, No. 38 (2006), pp.39–98 등. 이렇게 하면 의료법 제33조 제8항 위반에 대하여 무죄가 인정되므로,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도 면하게 될 것이다. 이원복 교수(이화여대 로스쿨)
의료법제33조제8항
복수의료기관
병원
이원복 교수(이화여대 로스쿨)
2018-12-21
현두륜 변호사(법무법인 세승)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한 원외처방전 발급행위의 위법성
1. 사건의 개요 및 쟁점 - 2000년 의약분업 시행으로 외래 환자들에 대한 약처방은 의사의 권한으로, 약 조제 및 판매는 약사의 권한으로 각각 분리되었다. 그에 따라 외래 환자가 약(전문의약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의료기관에 가서 의사의 진찰을 받은 후, 의사가 발행한 처방전을 갖고 약국에 가야 한다. 이러한 경우 의사의 처방을 '원외처방'이라고 하고, 그 처방전을 '원외처방전'이라고 한다. 그리고 원외처방전에 의해서 환자가 약국에서 구입한 약값을 '원외처방 약제비'라고 한다. 원외처방 약제비는 주로(약 80% 정도) 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이라고 함)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환자가 부담한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고 약을 처방하면 건보공단으로부터 진찰료를 받는데, 그 안에는 약 처방에 소요되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처방료가 처방한 약품의 양이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고가의 약품을 처방하거나 약품을 많이 처방한다고 하여 의사가 요양급여비용을 더 많이 받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의사는 약을 처방만 할 뿐 약을 판매하는 것은 아니므로, 약을 많이 처방한다고 하여 의사가 얻는 이익도 없다. 한편, 의사가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하여 약을 처방한 경우, 의사가 청구한 진찰료 중의 일부가 삭감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건보공단은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하여 약이 처방된 경우 그 약값을 처방한 의사로부터 환수해 왔다. 초기에는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에 근거하여 약제비를 환수해 오다가, 2006년 원외처방 약제비를 처방한 의사로부터 환수할 수 있는 법률상 근거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2006. 12. 8. 선고 2006두6642)이 선고된 이후에는 민법 제750조에 따라 약제비를 환수(전산상계 방식)해 오고 있다. 그에 따라 약제비를 환수당한 의료기관들이 건보공단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이를 '원외처방 약제비 소송'이라고 부르기도 함)을 제기하였다. - 이 소송에는 상당히 다양한 법률적 쟁점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하에서는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한 원외처방전 발급행위가 민법 제750조의 위법행위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관해서만 살펴보기로 한다. 2. 하급심 법원의 판단 1심 법원(서울서부지방법원 2008. 8. 28. 선고 2007가합2036 및 2007가합8006호)은 "요양급여기준의 입법목적, 위 기준에 의한 심사절차의 형식, 의료기관이 가입자에게 부담하는 주의의무의 범위 등에 비추어 볼 때,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처방전의 발급이 보험자에 대하여 위법성을 띠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서울고등법원 2009. 8. 27. 선고 2008나89189)은 "요양기관이 요양급여기준에 정한 바에 따르지 아니하고 임의로 이에 어긋나는 원외처방을 하는 것은, 그것이 환자에 대한 최선의 진료를 위하여 의학적 근거와 임상적 경험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응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하였다. 3. 대상 판결의 요지 대법원 2013. 3. 28. 선고 2009다78214 판결(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함)은 임의비급여에 관한 대법원 2012. 6. 18. 선고 2010두27639 전원합의체 판결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원외 처방은 어느 경우이든 요양급여대상에 포함될 수 없으므로 요양기관은 이를 요양급여대상으로 삼아 처방전을 발급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럼에도 요양기관이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원외 처방을 요양급여대상으로 삼아 처방전을 발급하였다면, 그 처방이 비록 환자에 대한 최선의 진료의무를 다하기 위한 것으로서 가입자 등에 대하여 위법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보험자로 하여금 요양급여대상이 아닌 진료행위에 대하여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하도록 하는 손해를 발생시키는 행위로서, ……보험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민법 제750조의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고 판시하였다. 4. 대상 판결의 문제점 가. 약제비 소송과 임의비급여 사례의 차이점을 간과 소위 말하는 '임의비급여' 사례는 요양기관이 요양급여기준에서 정한 절차(즉, 심평원에 의한 심사절차 또는 신의료기술결정신청절차 등)를 거치지 않고 진료비를 임의로 '환자'로부터 지급받은 경우이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 급여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요양기관이 (심사 삭감을 우려하여)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그 비용을 전부 환자로부터 지급받은 경우, 또는 건강보험 관계법령에서 인정한 (합법적) 비급여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환자에게 진료비를 청구한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구 건보법 제52조 제1항에서 정한 '속임수나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은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고, 만약 부당청구에 해당할 경우에는 요양기관이 받은 진료비는 환자에게 반환해야 한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의료기관이 환자와 건강보험법령에서 정한 기준과 절차를 거치지 않고(즉, 건강보험의 틀 밖에서) 그 비용을 환자가 부담하기로 약정한 경우에 그러한 약정의 효력을 인정할 것인가?'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관해서 201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원칙적으로는 부당청구에 해당되나, 예외적 경우(즉, ① 절차적 시급성, ② 의학적 안정성, 유효성, 필요성, ③ 충분한 설명과 동의)에는 부당청구에 해당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약제비 사건은 의사가 건강보험 급여대상 환자에게 급여대상 약을 건강보험으로 처방하였는데, 심평원에 의한 심사 결과 해당 약에 대한 세부적인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났다고 판단 받은 경우이다. 즉, 본 건은 임의비급여 사례와는 달리 진료와 처방, 요양급여비용 청구가 전부 건강보험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고, 의료기관이 약제비를 건보공단이나 환자로부터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건보법 제52조와는 무관하다. 본 건의 쟁점은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약을 처방한 의사에게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또는 의료인의 진료행위는 요양급여기준에 구속되는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나. 위법성 판단 기준에 관한 기존 대법원 판례와 배치됨 민법 제750조의 '위법성'이란 가해행위가 법질서에 반하는 것을 말하며, 여기서 말하는 '법질서'는 실정법뿐만 아니라 사회공동생활관계를 규율하는 기타 규범도 포함된다. 오늘날 위법성은 피침해이익의 성질과 침해행위의 태양과의 상관관계로부터 판단하여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민법주해 제18권, 박영사 2005년판. 제210면). 그리고 위법성은 관련행위 전체를 일체로만 판단하여 결정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문제가 되는 행위마다 개별적·상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03. 6. 27. 선고 2001다734). 예를 들어, 집단행동이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위법성을 갖는지 여부에 관하여, 대법원 1995. 6. 16. 선고 94다35718 판결은 "그 집단행동의 구체적인 내용, 방법, 정도뿐만 아니라 이에 이른 동기나 목적, 경위, 상황 등을 침해이익과 함께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집단행동이 사회통념상 용인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는지 여부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제3자의 채권침해가 위법행위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관하여 대법원 2003. 3. 14. 선고 2000다32437 판결은 "침해되는 채권의 내용, 침해행위의 태양, 침해자의 고의 내지 해의의 유무 등을 참작하여 구체적, 개별적으로 판단하되, 거래자유 보장의 필요성, 경제ㆍ사회정책적 요인을 포함한 공공의 이익, 당사자 사이의 이익균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따라서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한 원외처방전 발급행위가 위법한지 여부는 요양급여기준 위반 여부만을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약 처방의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 요양급여기준에 위반하여 약을 처방하게 된 동기와 목적, 요양급여기준에 위반하여 약을 처방하게 된 경위와 상황, 그와 관련한 공공의 이익, 관련 당사자들의 사이의 이익 균형 등을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다. 법체계에 혼란을 초래 대상판결에서는 원심에서 의학적 정당성을 이유로 불법행위책임을 부정한 5건의 사례도 예외 없이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였다. 참고로, 2012년 임의비급여 판결에서는 비록 의료기관이 건강보험법령에서 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환자에게 그 비용을 부담시킨 경우라고 할지라도, 예외적 허용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속임수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받은 때'에 해당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대상 판결은 의사가 건강보험법령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원외처방전을 발행하였고 그 처방내용이 아무리 의학적 정당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부적인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한 경우에는 건보공단에 대한 관계에서는 예외 없이 '위법'하다고 판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건강보험법령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약을 처방한 것이 건강보험법령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보다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고,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위법·부당하지 아니한 행위가 민법에 따르면 위법한 것으로 판단될 수도 있다. 또한, 민법 제750조의 '위법성'은 전제 법질서에 반한다는 것인데, 동일한 약 처방 행위가 건보공단에 대해서는 위법하고, 환자에 대한 관계에서는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도 '위법성'의 본질과도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5. 결론 요양급여기준 초과 사실만으로 그러한 원외처방전 발급행위의 위법성을 인정한 대상 판결은 임의비급여 사례와 본 건의 차이점을 간과함으로써 건보법상의 '부당이득 징수' 법리와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책임'의 법리를 혼동한 잘못이 있다. 또한 대상판결은 위법성의 판단기준에 관한 기존의 대법원 판례와 배치될 뿐만 아니라, 의학적 정당성이 인정되는 약 처방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위법성을 인정함으로써 법체계에 혼란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2014-01-09
현두륜 변호사(대외법률사무소)
요양급여기준이 강행법규인가?
1. 문제의 소재 ‘요양급여기준’이란 국민건강보험법 제39조 제1항 각호에서 정하고 있는 요양급여(진찰·검사, 약제·치료제의 지급, 처치·수술 등)를 행함에 있어 그 방법·절차·범위·상한 등에 대하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정한 기준을 말한다. 동법 제39조 제2항 및 제3항의 위임에 따른 국민건강보험요양급여의기준에관한규칙 제5조 제1항에서는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하여 일반적인 원칙을 정하고 있고, 같은 조 제2항은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을 다시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요양급여기준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대부분 보건복지부장관 고시로 정해지고 있으며, 현재 3,000여개 정도가 존재한다. 이러한 요양급여기준은 의료기관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진료 및 진료비 청구에 대한 지침이 될 수 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입장에서는 심사기준이 된다. 따라서 심평원은 요양기관이 요양급여기준에 위반하여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면, 그 비용을 삭감 또는 조정하고 있다. 또한 이미 요양급여비용이 지급된 경우라도, 건강보험공단은 이를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받은 때’로 판단하여 지급된 요양급여비용을 환수하고 있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보건복지가족부장관으로부터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 또는 과징금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행정처분에 대해서 요양기관이 심평원이나 건강보험공단,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고, 이 때 관련 요양급여기준의 법적 성격이 문제된다. 행정규칙에 대해서 법규성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에 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지만, 우리 법원은 일관되게 보건복지부 고시인 요양급여기준에 대해서 법규성을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1999. 6. 22. 선고 98두17807 판결 등). 그런데 이러한 요양급여기준에 대해서 ‘강행법규성’까지 인정할 수 있을까? 만약, 요양급여기준에 대해서 강행법규성까지 인정하게 된다면, 요양급여기준에 반하는 진료계약은 무효가 된다. 또한 의사가 요양급여기준에 반하는 진료를 하면, 그 자체로 불법행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나 보험공단 역시도 그에 반하는 행정행위를 할 수 없고, 법원도 그에 구속되어 재판을 해야 한다. 2. 대법원 2001. 7. 13. 선고 99두12267 판결의 내용 위 사건의 쟁점은 원고(재단법인)가 설립한 병원이 요양급여기준에서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임의로 비급여 진료행위를 하고, 수진자 본인으로부터 그 비용을 지급받은 행위가 구 의료보험법 제45조의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에 의하여 보험급여비용을 받을 경우’에 해당되는지 여부이다. 위 사건에서 대법원은 “원심이 요양급여기준 … 등과 진료수가기준의 관련 규정 등은 구 의료보험법 제29조 제3항, 제35조 제1항의 위임에 따른 것으로 법률상 위임 근거가 있는 법규명령이고 강행규정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므로, 요양기관이 요양급여를 함에 있어서는 요양급여기준과 진료수가 기준에서 정한 바에 따라 요양급여를 시행하고 진료수가를 징수해야 할 것이고, 비록 수진자의 사전동의하에 임의적 비급여 진료를 시행하고 그 차액을 징수했다고 하더라도 그 동의는 강행법규에 위반되어 효력이 없으며, 그 비용은 법 제33조 제2항 제1호의 ‘요양급여나 분만급여의 비용’, 제45조 ‘보험급여 비용’에 해당하고, 이를 수진자 본인으로부터 받은 것은 법 제33조 제2항 제1호의 ‘요양급여비용나 분만급여의 비용의 청구에 있어서 부정이 있을 때’, 제45조의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비용을 받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조치는 위 법리에 따른 정당한 것이라고 수긍이 가고, 거기에 법 제33조 제2항 제1호, 제45조의 규정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고 판시했다. 위 사건에서 대법원이 직접 ‘요양급여기준이 강행법규에 해당된다’고 설시한 게 아니어서, 위 판결 내용만을 가지고 대법원의 입장을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행정청은 위 판례를 근거로 의사의 진료행위는 요양급여기준에 구속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의사가 요양급여기준에 위반하여 약을 처방한 경우에 그 처방행위는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에 해당된다고 보고, 그로 인한 약값을 의사로부터 환수하고 있다. 행정법원 판례 중에도 위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면서, ‘요양급여기준에 반하는 진료계약은 무효이다’라고 판시한 사례가 종종 있다. 3. 대법원 판례의 문제점 만약, 대법원이 요양급여기준의 강행법규성을 인정하고 있다면, 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 법치주의 원칙 위반 ‘강행법규’란 법령 중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있는 규정을 말하며 따라서 당사자의 의사에 의해서 그 적용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강행법규의 예로는, 사회의 기본적 윤리관이나 가족관계 질서의 유지에 관한 규정, 사회일반의 이해에 직접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규정, 거래의 안전이나 경제적 약자 보호를 위한 규정 등이 있다(민법주해 II, 257~258면 참조). 최근 대법원 판례 중에 강행법규성이 인정된 것으로는, 부동산중개수수료 제한에 관한 구 부동산중개업법 제15조(2007. 12. 20. 선고 2005다32159), 국민주택기금의 운용제한에 관한 규정인 구 주택건설촉진법 제10조의4 제1항(2006. 12. 21. 선고 2004다17054), 중재인의 고지의무를 규정한 중재법 제13조 제1항(2005. 4. 29. 선고 2004다47901) 등이 있다. 위와 같이 강행법규에 해당되기 위해서는 우선 법령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국민건강보험법이나 동법 시행령 어디에도 ‘의사는 요양급여기준에 구속되어 진료를 해야 한다’거나 또는 ‘의사(의료기관)와 환자는 요양급여기준에 반하는 진료계약을 체결해서는 안 된다’는 명시적인 규정은 없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 고시에 불과한 요양급여기준에 대해서 강행법규성을 인정한 것은 국회입법의 원리와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재 운용되고 있는 보건복지부 고시가 무려 3,000여개에 달하고, 그 제정이나 시행 과정에 어떠한 법적인 통제 장치도 없어서 그 내용에 법리적으로나 의학적으로 하자가 많은데, 그러한 모든 요양급여기준에 대해서 ‘강행법규성’을 인정한다면, 이는 사실상 보건복지가족부가 임의로 강행법규를 제정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나. 의사와 환자의 기본권 침해 요양급여기준이 강행법규에 해당된다면, 의사는 요양급여기준에 구속되어 진료를 해야 하고, 의사와 환자는 요양급여기준에 반하는 진료계약을 체결해서는 아니된다. 그런데 요양급여기준은 한정된 보험 재정을 바탕으로 모든 보험 가입자에게 보편적인 진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원하는 최선의 진료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요양급여기준 중에는 의학적으로 불합리한 기준들이 상당수 존재하여, 진료에 제약을 가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경우에까지 요양급여기준에서 정한 진료만을 강요하는 것은 의사의 진료권과 환자의 선택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다. 최선의 진료의무와의 충돌 판례와 의료법은 의료인에게 최선의 진료 의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요양급여기준은 최선의 진료와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요양급여기준에 강행법규성을 인정하게 된다면, 의료인의 요양급여기준 준수 의무와 최선의 진료 제공 의무 사이에 의무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의사에게는 최선의 진료의무가 우선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은 보험 재정 안정보다는 더 우선적인 가치이다. 라. 행정규칙의 법규성의 한계 보건복지부 고시는 행정규칙에 해당되고, 그 법규성은 제한적·예외적으로 인정된다. 대법원 1999. 11. 26. 선고 97누13474 판결도 “고시의 법규성은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효력이므로 특정 고시가 비록 법령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규정 내용이 법령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 것일 경우에는 위와 같은 법규명령으로서의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할 여지는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 고시 역시도 상위 법령의 위임 범위를 벗어나거나 기타 헌법에 위반될 경우에는 법규성이 부정된다. 위와 같이 제한적으로만 법규성을 인정받는 보건복지부 고시에 대해서 강행법규성을 인정하는 것은 법리적으로도 부당하다. 마. 부당청구에 대한 통제 장치 굳이 요양급여기준의 강행법규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건강보험과 관련된 진료비 부당청구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통제할 수 있다. 먼저, 요양급여기준에 위반된 의사와 환자간의 계약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서 민법 제104조(불공정한 법률행위), 제109조(착오에 의한 의사표시), 제110조(사기,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에 따라 그 효력이 부정될 수 있다. 다음,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은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받은 때’에는 그 진료비를 환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부당한 방법’이란 ‘위법한 방법’ 보다 그 개념이 훨씬 넓다. 따라서, 위 규정을 통해서 부당한 진료비 청구를 방지할 수 있다. 4. 결론 건강보험이 한정된 재원으로 최적의 요양급여를 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부담수준, 국가의 재정수준이라는 한계 하에서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하여 보험급여의 우선 순위를 정하게 되고, 사회적·경제적 여건에 따라 적절히 대처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요양급여기준에 관한 사항을 보건복지부 고시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보건복지부 고시는 건강보험법령과 결합하여 법규성을 가지지만, 그 법규성은 건강보험법령의 위임 범위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인정될 수 있을 뿐이다. 이를 넘어서 강행법규성까지 인정하는 것은 의사와 환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의사의 최선의 진료의무와도 충돌되며, 행정규칙의 법규성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어서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2008-08-18
송인권 대구지방법원 판사
보험료 등의 징수순위에 관한 국민건강보험법 제73조의 시적(時的)적용범위
1. 관계법령 국민건강보험법[1999. 02. 08. 법률 제5854호로 제정] 제73조 (보험료 등의 징수순위) 보험료 등은 국세 및 지방세를 제외한 기타의 채권에 우선하여 징수한다. 다만, 보험료 등의 납부기한 전에 전세권·질권 또는 저당권의 설정을 등기 또는 등록한 사실이 증명되는 재산의 매각에 있어서 그 매각대금 중에서 보험료 등을 징수하는 경우의 그 전세권·질권 또는 저당권에 의하여 담보된 채권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부칙 제1조 (시행일) 이 법은 2000년 7월 1일부터 시행한다. 다만, 부칙 제4조 및 제5조의 규정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 (1999. 12. 31. 개정) 제9조 (가입자 및 피부양자의 자격취득 등에 관한 경과조치) ③ 이 법 시행 당시 종전의 의료보험법 및 국민의료보험법에 의하여 납부기한이 경과된 보험료 등의 징수에 관하여는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 제13조 (다른 법령과의 관계) ① 이 법 시행 당시 다른 법령에서 종전의 의료보험법 또는 국민의료보험법을 인용하고 있는 경우에 이 법 중 그에 해당하는 규정이 있는 때에는 종전의 규정에 갈음하여 이 법 또는 이 법의 해당 규정을 인용한 것으로 본다. 의료보험법[1999.02.08 법률 제5854호로 폐지되기 전의 것] 제58조 (보험료의 징수우선순위) 보험료의 징수순위는 국세 및 지방세를 제외한 다른 채권에 우선한다. 구 국민연금법[2000. 12. 23. 법률 제628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1조 (연금보험료의 징수의 우선순위) 연금보험료 기타 이 법에 의한 징수금의 징수의 순위는 의료보험법에 의한 보험료와 동순위로 한다. 2. 사안의 개요 가. 원고(중소기업은행, 이하 원고라고 한다)는 소외 주식회사 와이이통상(이하 소외 회사라고 한다)에 대한 대여금채권을 담보하기 위하여 소외 회사의 소유이던 부동산에 관하여 2001. 9. 7. 채권최고액을 2억 8,000만원으로 하여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마쳤고, 피고(국민연금관리공단, 이하 피고라고 한다)는 2002. 9. 30. 소외 회사가 1998. 10.분 이래로 계속하여 연금보험료를 납부하지 아니하였음을 이유로 위 부동산에 관하여 국세체납처분의 예에 따른 압류등기를 마쳤다. 나. 원고는 위 근저당권에 기하여 위 부동산에 관하여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2003타경5026호로 부동산임의경매신청을 하였고, 이에 따라 위 법원은 임의경매절차를 진행하여 2004. 4. 30. 배당기일에 매각대금 등에서 집행비용을 공제한 실제 배당할 금액 99,422,952원 중 1순위로 교부권자인 피고에게 위 저당권 설정일 이전에 납부기한이 도래한 것으로서 소외 회사가 체납한 1998. 10.분부터 2001. 7.분(납부기한은 매 익월 10일)까지의 국민연금보험료 및 연체금 합계 28,203,590원을, 홍성군에게 805,180원을 각 배당하고, 2순위로 원고에 대하여 70,414,182원을 배당하는 내용의 배당표를 작성하였다. 다. 원고는 위 배당기일에 출석하여 피고에 대한 위 배당액 중 1998. 10.분부터 2000. 5. 분까지의 체납 국민연금보험료 및 연체금 합계 15,676,735원에 관하여 이의를 진술하고 배당이의의 소를 제기하였다. 3. 원심판결 및 대상판결의 요지 가. 원심판결(대전지방법원 2005. 4. 14. 선고 2004나10051 판결)의 요지 국민건강보험법이 시행된 2000. 7. 1.부터는 국민연금법상의 연금보험료 등의 징수의 순위는 국세 및 지방세에는 우선하지 못하지만 국민건강보험법 제73조 단서에 의하여 이미 납부기한이 도래한 경우에는 그 이후에 설정된 전세권·질권 또는 저당권에 대하여 우선하는 반면(대법원 2003. 11. 14. 선고 2003다27481 판결 참조), 위 시행일 이전에 설정된 전세권·질권 또는 저당권에 대하여는 위 국민건강보험법 부칙 제9조에서 이 법 시행 당시 종전의 의료보험법 및 국민의료보험법에 의하여 납부기한이 경과된 보험료 등의 징수에 관하여는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고 하고 있고 구 국민연금법 제81조, 의료보험법 제58조에 의하면 국세 및 지방세를 제외한 다른 채권에 우선한다고 되어 있을 뿐 달리 국세우선에 관한 국세기본법 제35조 제1항 제3호 등을 준용할 수 있는 근거는 두고 있지 아니하였으므로 조세채권, 저당권 등에 의하여 담보되는 채권보다는 후순위로, 일반채권보다는 우선한다. 이 사건의 경우 원고가 배당기일에 이의한 피고의 국민연금보험료 및 연체금 합계 15,676,735원의 납부기한이 국민건강보험법의 시행일 이후인 2001. 9. 7. 설정된 원고의 근저당권설정등기일자보다 앞서는 이상, 피고의 위 보험료 및 연체금 채권이 원고의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보다 우선하여 배당받아야 할 것이므로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나. 대상판결(대법원 2005. 10. 7. 선고 2005다24394 판결)의 요지 - 파기환송 국민건강보험법 부칙 제9조는 이 법 시행 당시 종전의 의료보험법 및 국민의료보험법에 의하여 납부기한이 경과된 보험료 등의 징수에 관하여는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구 국민연금법 제81조, 의료보험법 제58조(이하 ‘구법'이라 한다)에 의하면 국세 및 지방세를 제외한 다른 채권에 우선한다고 되어 있을 뿐 달리 국세우선에 관한 국세기본법 제35조 제1항 제3호 등을 준용할 수 있는 근거는 두고 있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법률 시행 당시에는 납부기한이 경과된 연금보험료라 하더라도 일반채권에는 우선하나 저당권 등에 의하여 담보되는 채권에 우선하지는 않는다고 해석된다. 구법에 의한 연금보험료 등의 징수우선순위가 위 해석과 같고, 국민건강보험법 부칙 제9조가 위 법 시행 당시 이미 납부기한이 경과된 보험료 등의 징수에 관하여는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 국민건강보험법의 시행일인 2000. 7. 1. 전에 납부기한이 도래한 연금보험료 등은 저당권 등에 의해 담보되는 채권에 우선할 수 없는 것이고, 이러한 법리는 그 저당권 등이 국민건강보험법 시행일 이후에 설정된 경우에도 동일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결국 국민건강보험법 시행일 전에 납부기한이 도래한 연금보험료 등은 저당권 등의 등기, 등록일자가 국민건강보험법 시행일 전인지, 후인지를 불문하고 저당권 등의 피담보채권보다 후순위에 선다. 4. 평석 가. 문제의 소재 (1) 국민건강보험법 제73조, 동법 부칙 제1조, 제13조 제1항, 구 국민연금법 제81조를 종합하면, 납부기한이 2000. 7. 1. 이후인 국민연금법상의 연금보험료(이하 ‘국민연금법상의 연금보험료’를 편의상 ‘보험료’라고만 한다)가 납부기한 전에 설정된 저당권, 전세권 등에 의하여 담보되는 채권(이하 ‘저당권, 전세권 등에 의하여 담보되는 채권’을 편의상 ‘저당권 등’이라고만 한다)에 대하여는 우선하지 못하나, 그 납부기한 이후에 설정된 저당권 등과 기타 일반채권에 우선하게 됨은 의문이 없다. 예를 들면 납부기한이 2000. 8. 10.인 보험료는 2000. 9. 1. 설정된 저당권 등에 대하여는 우선하여 배당받을 수 있으나, 설정일이 2000. 8. 1.인 저당권 등에 대하여는 후순위 권리자로 배당받아야 한다. (2) 납부기한이 2000. 7. 1. 전인 보험료가 2000. 7. 1. 전에 설정된 저당권 등에 우선하는지에 대해서는, 구 국민연금법 제81조, 의료보험법 58조 등이 위 각 법에 의하여 징수하여야 할 보험료 및 징수금의 순위에 관하여 국세 및 지방세의 다음으로 하도록 규정하는 한편, 징수절차는 국세체납처분의 예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이고 달리 국세우선에 관한 국세기본법 제35조 제1항 제3호 등을 준용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실무상 저당권 등이 보험료에 우선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왔고(법원실무제요 민사집행 Ⅱ 496쪽, 497쪽), 판례의 입장도 동일하다(대법원 1988. 9. 27. 선고 87다카428판결). 따라서 납부기한이 2000. 4. 10.인 보험료는 2000. 3. 1. 설정된 저당권 등은 물론, 설정일이 2000. 5. 1.인 저당권 등에 대하여도 우선하여 배당받을 수 없다. (3) 문제는 납부기한이 2000. 7. 1. 전인 보험료가 설정일이 2000. 7. 1. 이후인 저당권 등에 우선하는지 여부이다. 이에 대하여 창원지방법원 2003. 4. 11. 선고 2002나4263 판결은 “보험료 기타 국민연금법에 의한 징수금의 징수의 순위는 국민건강보험법 부칙 제13조가 시행된 2000. 7. 1.부터는 그 이후에 설정된 저당권에 대한 관계에서 그 납부기한이 저당권설정등기일자보다 앞서는 경우에는, 그 납부기한이 2000. 7. 1. 이전에 도래하였는지에 관계없이, 이에 우선한다.”고 판시하였고(위 판결은 위와 같은 법리를 전제로 납부기한이 2000. 3. 10. - 6. 10.인 보험료가 2000. 10. 14.에 설정된 근저당권에 우선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대법원 2003. 11. 14. 선고 2003다27481 판결은 위 2002나4263 판결에 대한 상고를 기각하였다. 그러나 위 2003다27481 판결은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민건강보험법 부칙 제9조 제3항과 조화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법원실무제요 민사집행 편에는 이 부분에 관한 기재가 없어 실무례는 여전히 통일되지 아니한 상태에 있었다. 원심판결은 위 2003다27481 판결을 근거로 납부기한이 2000. 7. 1. 전인 보험료가 설정일이 2000. 7. 1. 이후인 근저당권에 우선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으나, 대상판결은 종전의 판결을 사실상 변경하였다. 나. 검토 (1) 원심판결과 원심판결이 인용한 대법원 2003. 11. 14. 선고 2003다27481 판결(및 창원지방법원 2003. 4. 11. 선고 2002나4263 판결)의 내용에 의하면, 원심판결이 납부기한이 2000. 7. 1. 전인 보험료가 2000. 7. 1. 이후 설정된 저당권 등에 우선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은 다음과 같은 사고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 국민건강보험범 시행 전에는 납부기한이 2000. 7. 1. 전인 보험료가 저당권 등에 우선하지 못하였으나(의료보험법 제58조, 구 국민연금법 제81조 등), 국민건강보험법 제73조 및 동법 부칙 제1조에 의하면 국민건강보험법이 시행된 2000. 7. 1.부터 보험료는 납부기한이 2000. 7. 1. 전인지 후인지에 관계없이(창원지방법원 2003. 4. 11. 선고 2002나4263 판결 중 밑줄 그은 부분 참조) 납부기한 후에 설정된 저당권 등에 우선한다(이를 편의상 ‘제1논거’라고 한다). ? 국민건강보험법 부칙 제9조 제3항은 2000. 7. 1. 전에 설정된 저당권 등에 관한 규정으로(원심판결 중 밑줄 그은 부분 참조) 이에 의하면, 보험료는 설정일이 2000. 7. 1. 전인 저당권 등에 대해서는 우선할 수 없다(이를 편의상 제2논거‘라고 한다). ? 따라서 납부기한이 2000. 7. 1. 전인 보험료는 2000. 7. 1. 전에 설정된 저당권 등에 대하여는 우선하지 못하나, 2000. 7. 1. 이후에 설정된 저당권 등에 대하여는 우선한다. (2) 원심판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비판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어떠한 법이 시행될 경우 그 법이 시행일 이후의 법률관계에 적용되는 것은 당연하므로 국민건강보험법 제73조 및 동법 부칙 제1조를 근거로 납부기한이 2000. 7. 1. 이후인 보험료가 그 납부기한 후에 설정된 저당권 등에 우선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국민건강보험법 제73조는 보험료의 징수순위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을 뿐 그 시적 적용범위에 관하여는 규정하고 있지 않고, 동법 부칙 제1조는 동법의 시행일이 2000. 7. 1.이라는 것을 규정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국민건강보험법 제73조 및 동법 부칙 제1조가 납부기한이 2000. 7. 1. 전인 보험료의 효력에 대하여는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위 각 규정으로부터 곧바로 납부기한이 2000. 7. 1. 전인 보험료가 2000. 7. 1. 이후에 설정된 저당권 등에 대하여는 우선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일종의 논리의 비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떠한 법이 그 시행일 이전의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그에 관한 경과규정을 두고 있는 것이 보통이고, 경과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목적론적, 역사적 해석의 도움을 받아 문언의 흠결을 보충하여야 할 것인데, 국민건강보험법 부칙 제9조 제3항은 바로 납부기한이 2000. 7. 1. 전인 보험료의 효력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과규정에 해당한다. 원심판결이 제시한 ‘제1논거’는 국민건강보험법이 시행되기 이전의 법률관계를 경과규정인 동법 부칙 제9조 제3항을 고려하지 않고 해결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부당하다 할 것이다. 다음으로, 원심판결의 ‘제2논거’는 무엇보다도 법 문언에 반하는 해석이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 원심판결은 국민건강보험법 부칙 제9조 3항이 2000. 7. 1. 전에 설정된 저당권 등에 대한 규정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위 조항에는 저당권 등에 대한 기재가 전혀 없고 2000. 7. 1. 전에 납부기한이 도래한 보험료의 징수에 관하여만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 ‘제2논거’와 같이 해석할 여지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법원 2003. 11. 14. 선고 2003다27481 판결(및 창원지방법원 2003. 4. 11. 선고 2002나4263 판결)이 국민건강보험법 부칙 제9조 3항과 관계없이 원심판결과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것에 비추어 보면 위 ‘제2논거’는 원심판결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불가결의 근거라기보다는 국민건강보험법 제73조, 동법 부칙 제1조와 동법 부칙 제9조 제3항을 분리하여 해석한 것으로 인한 일종의 논리적 부산물이라 할 것이다. (3)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볼 때, 국민건강보험법 제73조, 동법 부칙 제1조, 부칙 제9조 제3항은 상호 연관 하에 해석되어야 한다. 이에 따르면, ? 납부기한이 2000. 7. 1. 전인 보험료는 2000. 7. 1. 전에 설정된 저당권 등에 우선하지 못하고(의료보험법 제58조, 구 국민연금법 제81조 등), ? 납부기한이 2000. 7. 1. 이후인 보험료는 그 납부기한 후에 설정된 저당권 등에 우선하며(국민건강보험법 제73조, 동법 부칙 제1조), ? 납부기한이 2000. 7. 1. 전인 보험료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 이후에도 국민건강보험법 제73조가 적용되지 아니하고, 의료보험법 제58조가 적용되므로(동법 부칙 제9조 제3항) 2000. 7. 1. 이후에 설정된 저당권에 대하여도 우선하지 못한다. (4) 이와 관련하여 원심판결과 원심판결이 인용한 대법원 2003. 11. 14. 선고 2003다27481 판결(및 창원지방법원 2003. 4. 11. 선고 2002나4263 판결)이 어떠한 이유로 대상판결과 다른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먼저 원심판결이 인용한 대법원 2003. 11. 14. 선고 2003다27481 판결 및 창원지방법원 2003. 4. 11. 선고 2002나4263 판결에서는 국민건강보험법 부칙 제9조 제3항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위 각 사건에서는 당사자들이 위 부칙 제9조 제3항을 주장내용에 포함하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 재판부도 그 존재를 간과하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달리 원심 재판과정에서는 원고가 위 부칙 제9조 제3항을 언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원고의 청구원인은 대상판결의 내용과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이와 같이 원심 재판과정에서는 위 부칙 제9조 제3항에 관한 당사자의 실질적인 공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심 판결이 대법원 2003. 11. 14. 선고 2003다27481 판결과 동일한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은 대법원 판결이 하급심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사실상의 영향력이 제3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위 2003다27481 판결과 같이 확립된 원칙이 존재하지 아니하던 영역에 관하여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경우, 그 판결이 전원합의체 판결이 아니고, 법원공보에 수록되지도 않은 판결이라 하여도 하급심의 입장에서 그와 반대되는 판결을 선고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추측에 불과하지만, 만약 위 2003다27481 판결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아니하였다고 가정한다면, 원심판결의 결론은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5. 마치며 민법은 저당권 등에 대하여 설정일 이후의 담보권이나 일반 채권에 우선하여 배당절차에서 배당받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으나, 개별법에서는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예외를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소액임차보증금채권과 최종 3개월분의 임금채권, 최종 3년간의 퇴직금채권은 저당권 등에 우선하고, 당해세는 소액임차보증금채권과 최종 3개월분의 임금채권, 최종 3년간의 퇴직금채권에 대해서는 후순위이나 역시 저당권 등에 대해서는 우선한다. 이러한 특별규정은 경제적 약자인 소액임차인, 임금채권자의 보호, 조세징수의 편의 등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기는 하나 담보권의 본질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 적용에 있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경매절차를 진행하다 보면, 최선순위의 근저당권에 기하여 임의경매절차가 개시되었거나 담보권이 설정되지 않은 부동산에 대하여 강제경매절차가 개시된 경우에도 다액의 임금채권이나 조세채권의 존재로 인하여 신청채권자가 전혀 배당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결과는 명백히 경매신청인에게 가혹하다 할 것이다. 의료보험법 제58조가 보험료의 징수순위는 조세를 제외한 다른 채권에 우선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그 문언에 의하면 보험료가 저당권 등에 우선할 수 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본 바와 같이 종래 보험료가 저당권 등에 우선하지 못한다고 해석되어 왔던 것은 이와 같은 담보권자 보호의 필요성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국민건강보험법 제73조 역시 담보권의 효력에 대한 예외를 규정한 것이므로 그 적용범위를 정함에 있어서는 가능한 한 담보권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해석이 바람직하고, 그 규정내용이 불분명할 경우 보험료가 담보권에 우선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대상판결은 대법원 2003. 11. 14. 선고 2003다27481 판결을 둘러싼 실무상 혼란을 정리하고 보험료의 징수순위 및 국민건강보험법 제73조의 적용범위를 명확히 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특히 2005. 12.경부터는 경매업무의 대부분이 사법보좌관에게 이전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보면, 그 전에 그에 관한 논란이 해소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2005-11-21
박홍우 서울중앙지방 부장판사
확정판결과 한정위헌결정 문제
1. 머리말 대법원은 헌법재판소의 소위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의한 헌법소원사건에서 선고된 한정위헌결정은 제75조 제7항 소정의 헌법소원이 인용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확정된 소송사건에 대한 재심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1. 4. 27. 선고, 95재다14 판결). 그런데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3. 12. 18. 구 국민의료보험법(1999. 12. 31. 법률 제6093호로 개정된 국민건강보험법 부칙 제2조에 의하여 폐지되기 전의 것) 제41조 제1항에 관한 2002헌바1 사건에서 “제41조 제1항의 ‘범죄행위’에 고의와 중과실에 의한 범죄행위 이외에 경과실에 의한 범죄행위가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이는 헌법에 위반된다” 라고 하는 한정위헌결정을 8:1로 선고하였다. 이하에서는, ① 구 국민의료보험법 제41조 제1항 소정의 “범죄행위” 부분(이하에서는, “이 사건 심판대상”이라 한다)의 위헌성 문제, ②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 문제 및 ③ 이 사건 한정위헌결정의 현실적 문제점을 검토하기로 한다. - 판 결 요 지 - "구 의료보험법 제41조 1항 '범죄행위'에 고의와 중과실에 의한 범죄 이외에 경과실에 의한 범죄행위가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이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한정위헌 결정 2. 관련법률조항 구 국민의료보험법 제41조 ① 보험자는 보험급여를 받을 자가 자신의 범죄행위에 기인하거나 또는 고의로 사고를 발생시켰을 때에는 당해 보험급여를 하지 아니한다. 3. 사건의 경과 청구인은 1999. 11. 6. 혈중 알콜농도 0.131%의 음주상태에서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자신이 중앙선을 침범하는 사고로 치료를 받고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보험금을 지급받았으나, 그것이 이 사건 심판대상 소정의 범죄행위에 기인한 것이므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2000. 5. 4.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보험금을 환수한다는 처분을 받았다. 이에 청구인은 일단 위 금액을 반납한 다음 자신의 행위가 고의에 의한 것임을 부인하면서 위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고 그 계속 중 위 처분의 근거가 된 이 사건 심판대상에 대하여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하였으나 기각되자 이 사건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한편 청구인은 제1심에서 패소하여(울산지방법원 2001. 12. 19. 선고 2001구2303 판결) 항소하였으나 항소심에서도 항소기각판결을 선고받고(부산고등법원 2002. 12. 6. 선고 2002누417 판결) 상고하지 아니하여 확정되었다. - 평 석 요 지 - 과음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넘어 사고가 발생한 사안이므로 청구인에게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여져서 청구인이 구제받을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나아가 대법원은 한정위헌결정이 재심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으므로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결정을 함으로서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실현시키지도 못하면서 불안정만 야기하는 결과가 되었다 4. 이 사건 심판대상의 위헌성 문제 가. 다수의견의 논거 경과실에 의한 범죄행위에 기인한 보험사고에 대하여 보험급여를 하더라도 이는 의료보험의 공공성에 위반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과실에 의한 범죄행위에 기인한 보험사고에 대하여까지 보험급여를 하지 않는 것은 기본권의 제한에 있어서 준수되어야 하는 피해의 최소성 원칙 및 법익균형의 원칙에 위배하여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한한 경우에 해당한다. 경과실의 범죄로 인하여 우연하게 발생한 사고를 보험사고에서 제외하는 것은 우연한 사고로 인한 위험으로부터 다수의 국민을 보호하고자 하는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의료보험의 본질에 반하고, 의료보험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다수 국민의 우연한 위험에 대하여 그 보호를 거절하는 것이 되어 사회보장의 증진에 노력할 국가의 책임에 역행하는 것이므로 사회적 기본권으로서의 의료보험수급권의 본질을 침해하게 된다. 나. 검토 (1) 재산권 침해여부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과잉금지의 원칙을 적용함에 있어서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을 그 요소로 판시하고 있으나, 기본권의 보호정도는 그 종류와 내용에 따라서 동일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헌법 제37조 제2항을 적용함에 있어서도 기본권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 과잉금지의 원칙은 탄력적으로 적용되어져야 할 것이다. 의료보험제도는 피보험자인 국민이 납부하는 보험료와 국고부담을 재원으로 하여 전 국민의 기본적인 의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보험제도이다. 의료보험수급권은 법률에 의하여 비로소 형성된 재산권으로서 사회적 기본권의 성질도 아울러 갖고 있고, 그 내용은 보험재정의 건전성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제한에 관하여는 피해의 최소성 원칙 및 법익의 균형성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할 것이 아니라, 이를 완화하여 적용함으로써 입법자에게 상당한 정도의 입법형성의 자유를 보장하여야 할 것이다. 이 사건 심판대상이 범죄행위로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 보험급여를 제한한 것은, 의료보험급여 대상자인 자가운전자의 교통법규 위반으로 인한 대형 교통사고가 빈발하여 보험재정에 문제가 발생하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대법원은 “자신의 범죄행위에 기인한 경우라 함은 오로지 또는 주로 자기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라고 해석하여(대법원 1990. 2. 9. 선고 89누2295 판결; 1994. 9. 27. 선고 94누9214 판결) "범죄행위"의 범위를 좁히고 있다. 따라서 경과실에 의한 범죄행위로 인하여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그 책임을 묻는 이 사건 심판대상은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의 원칙에도 반하지 않는 입법형성권의 범위내에 있는 것으로서 재산권을 침해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사회적 기본권 침해여부 중과실에 의한 사고 역시 경과실에 의한 사고와 마찬가지로 우연한 사고에 해당하므로, 경과실에 의한 사고와 중과실에 의한 사고를 구분하여 경과실에 의한 경우에 한하여 의료보험의 본질에 반한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또한 사회적 기본권은 국가의 재정형편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대법원이 "범죄행위" 부분이 적용되는 범위를 제한적으로 해석적용하고 있으므로, 국가의 사회보장증진의 책임을 들어 건전한 보험재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보험공동체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자에 경과실에 의한 경우를 포함하여 그 책임을 묻는 이 사건 심판대상을 사회적 기본권인 의료보험수급권의 본질을 침해하였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3) 결어 이 사건 결정의 소수의견은, 다수의견의 문제점 중의 하나로 중과실과 경과실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지만, 그 점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이 사건 심판대상은 합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5.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 문제 가. 견해의 대립 대법원은, 한정위헌결정에 의하여 법률이나 법률조항의 문언이 변경되는 것은 아니므로 한정위헌결정은 법률이나 법률조항의 의미?내용과 그 적용범위를 정하는 법률해석에 불과하고,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은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서 전적으로 법원에 전속하므로, 한정위헌결정은 법원에 대하여 기속력을 갖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1996. 4. 9. 선고 95누11405 판결 참조).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한정위헌결정은 입법자의 입법형성권에 대한 존중과 헌법재판소의 사법적 자제를 위한 것이고, 헌법불합치결정에 대하여도 기속력이 인정되듯이 헌법재판소결정의 효과로서의 법률문언의 변화와 헌법재판소결정의 기속력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한정위헌결정도 위헌심사의 한 유형으로서 기속력을 갖는다고 보고 있다(1997. 12. 24. 96헌마172?173 결정 참조). 이와 같은 견해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은, 현행 헌법조문과 부속법령에서 추론되는 헌법제정권자의 입법의도를 중시할 것인가, 아니면 이념적으로 바람직하다고도 볼 수 있는 헌법 해석적용의 통일성을 중시할 것인가 하는 점에 기인한다고 보여진다. 나. 검토 (1)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권한분배 현행 헌법상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모두 최고헌법기관으로서 상호 독립적이고 대등한 지위에 있다. 헌법은 법률의 위헌여부에 관련된 헌법해석권을 헌법재판소에 부여하고(헌법 제107조 제1항, 제111조 제1항 제1호), 법원에 계속된 사건에 따른 명령?규칙?처분의 위헌여부에 관련된 헌법해석권을 최종적으로 대법원에 부여하고 있다(헌법 제107조 제2항). 이처럼 최종적인 헌법해석권한이 양분되어 있으나, 그로 인하여 헌법해석내용이 상이한 경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현행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면 이와 같이 헌법 해석적용의 통일성을 보장하지 않으면서 헌법해석권한을 양분한 헌법제정권자의 입법의도는 무엇일까. 이는 양기관이 상호 경쟁?견제를 통하여 헌법을 보장하고 기본권을 수호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함과 아울러 헌법재판소가 종래의 심급제도를 넘어 초상고심화하여 법원의 사법권에 간섭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이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재판을 제외한 것도 바로 위와 같은 헌법제정권자의 입법의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2) 법원의 법률해석권 헌법 제101조에 의하여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속하는 사법권의 본질은 구체적 분쟁사건을 재판함에 있어 법령의 의미와 내용 및 적용범위가 어떠한 것인지를 정하는 권한 즉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이다. 헌법재판소도 위헌법률심판을 하기에 앞서 당해 법률 또는 법률조항에 관하여 해석을 할 수 있지만 이는 위헌법률심판에 부수적인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위헌법률심판의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확인된 법률해석의 위헌성 확인에 기속력이 인정되면 이는 법원의 구체적 법률의 해석적용권한을 제한하게 되어 사법권이 헌법재판소의 통제를 받는 결과가 되므로, 그 기속력의 인정여부는 헌법정책의 문제이다. 헌법 제107조 제1항은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는 경우에 위헌심판제청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법 제45조도 헌법재판소는 “위헌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제47조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아니라 법률의 “위헌결정”에 대한 기속력과 효력상실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대등한 지위를 갖는 우리 헌법하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하여 효력이 상실된 법률만이 기속력을 갖는다고 하는 헌법정책을 확인하는 규정들이라고 할 수 있다. 헌법불합치결정은 그로 인하여 일정한 기간의 경과나 법률의 개정으로 효력의 상실, 즉 법률 문언이 변경되는 점에서 한정위헌결정과는 그 의미를 달리하기 때문에 대법원이 헌법불합치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이를 굳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현행 헌법상 한정위헌결정은 법원에 대하여 기속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겠다. (3) 국회의 입법형성권과 법적 안정성 문제 만약 한정위헌결정에 기속력을 인정하여 위헌으로 해석되는 부분의 제거효를 인정하게 된다면, 추후에 그 법률해석 기준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져도 이를 시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대상황이 변하여 국회가 새로운 입법을 하는 경우에도 입법정책적인 재량권이 제한되어 국회의 입법형성권이 과도하게 제한되거나 침해될 수 있고, 이는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결정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입법형성권의 존중과 사법적 자제에 오히려 역행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6. 이 사건 한정위헌결정의 현실적 문제점 가. 법적 불안정의 야기 이 사건의 경우 청구인이 과음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넘어 사고가 발생한 사안이므로 청구인에게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여져서 결과적으로 청구인이 구제받을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나아가 대법원은 한정위헌결정이 재심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으므로, 합헌으로 결정하였어야 할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결정을 함으로써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실현시키지도 못하면서 법적 불안정만 야기하는 결과가 되었다. 나. 심급제도에 대한 혼란 만약 한정위헌결정도 확정된 당해사건에 대한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게 된다면, 당사자로 하여금 통상적인 불복절차에 따라 상급심에서 교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회피하고 헌법재판소에서 법률해석에 대한 심사를 받으려는 시도를 방임하거나 조장할 수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구체적인 사건에 있어서의 구제는 대법원을 최종심으로 하는 심급제도에 의하여 보장되는 현재의 사법체계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 입법자의 입법형성권 침해 구 국민의료보험법과 의료보험법을 통합하여 2000. 7. 1.부터 시행되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8조 제1항 제1호는 경과실에 의한 경우에는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의료보험재정이 과거보다 건실해졌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의료보험재정 상태는 변경될 수 있는 것이고, 이 사건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하게 되면 장래 의료보험재정이 악화되어 의료보험수급권을 제한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 입법부가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하여,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결정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입법형성권의 존중에 오히려 역행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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