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사안의 개요
甲은 乙과 함께 丙으로부터 丙 소유 토지를 매수하기로 하면서, 甲과 乙 사이의 명의신탁 약정에 따라 당해 토지 중 甲 매수지분에 대해서도 그 계약명의를 乙로 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전체 등기를 乙 앞으로 하였다. 당시에 丙은 甲과 乙 사이의 명의신탁 약정을 알지 못하였다. 甲은 당해 토지 매수 당시부터 현재까지 이를 계속 점유·경작하여 왔다.
甲은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하 '부동산실명법') 제11조에서 정한 유예기간이 경과함에 따라 乙이 위 지분에 관한 완전한 소유권을 취득한 1996. 7.1.로부터 10년이 경과한 2006. 10.12. 乙을 상대로 당해 토지 중 위 지분 상당의 부당이득 반환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Ⅱ. 판결 요지
[1] 부동산실명법 시행 전에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 약정에 따라 부동산에 관한 소유명의를 취득한 경우 위 법률의 시행 후 같은 법 제11조의 유예기간이 경과하기 전까지 명의신탁자는 언제라도 명의신탁 약정을 해지하고 당해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었던 것으로, 실명화 등의 조치 없이 위 유예기간이 경과함으로써 같은 법 제12조 제1항, 제4조에 의해 명의신탁 약정은 무효로 되는 한편, 명의수탁자가 당해 부동산에 관한 완전한 소유권을 취득하게 된다 할 것인데, 같은 법 제3조 및 제4조가 명의신탁자에게 소유권이 귀속되는 것을 막는 취지의 규정은 아니므로 명의수탁자는 명의신탁자에게 자신이 취득한 당해 부동산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
[2] 이와 같은 경위로 명의신탁자가 당해 부동산의 회복을 위해 명의수탁자에 대해 가지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은 그 성질상 법률의 규정에 의한 부당이득반환청구권으로서 민법 제162조 제1항에 따라 10년의 기간이 경과함으로써 시효로 소멸한다. 명의신탁계약 및 그에 기한 등기를 무효로 하고 그 위반행위에 대하여 형사처벌까지 규정한 부동산실명법의 시행에 따라 그 권리를 상실하게 된 위 법 시행 이전의 명의신탁자가 그 대신에 부당이득의 법리에 따라 법률상 취득하게 된 명의신탁 부동산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의 경우, 무효로 된 명의신탁 약정에 기하여 처음부터 명의신탁자가 그 부동산의 점유 및 사용 등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하여 위 부당이득반환청구권 자체의 실질적 행사가 있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만약 명의신탁자가 그 부동산을 점유·사용하여 온 경우에는 명의신탁자의 명의수탁자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권에 기한 등기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면, 이는 명의신탁자가 부동산실명법의 유예기간 및 시효기간 경과 후 여전히 실명전환을 하지 않아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경우임에도 그 권리를 보호하여 주는 결과로 되어 부동산 거래의 실정 및 부동산실명법 등 관련 법률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Ⅲ. 검토
1. 부동산실명법상 유예기간 경과시 법률관계 구성에 대한 이의
대상판결은 부동산실명법 시행 전에는 계약명의신탁 약정에 따라 명의수탁자가 당해 부동산에 관한 소유명의를 취득하는데, 부동산실명법상 유예기간 경과시 계약명의신탁 약정이 무효화됨으로써 명의신탁자는 명의수탁자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청구권으로서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취득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이미 대법원 2002. 12.26. 선고 2000다21123 판결을 통해 처음으로 나타났고, 대법원 2008. 11.27. 선고 2008다62687 판결에서도 계속되었는데(다만, 이들 판결은 부동산실명법의 문제점을 피하기 위한 부득이한 것이었다는 느낌을 주었으나, 대상판결은 부동산실명법의 입법취지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두 차례에 걸친 판결과 '실질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판례'에 대하여는 동의하기 어렵다.
먼저, 판례가 설시하는 바와 같이 '계약명의신탁 약정에 따라 명의수탁자가 당해 부동산에 관한 소유명의를 취득'하였기 때문에 유예기간 경과시 그 소유권이 부당이득반환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면, 즉, 계약명의신탁 약정이 명의수탁자의 소유명의 취득의 원인이라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계약명의신탁 약정이 없는 경우 명의수탁자가 당해 부동산에 관한 소유명의를 취득할 수 없었어야 한다는 '관계'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물론 이러한 '관계'가 인정된다고 하여 당연히 명의신탁자의 명의수탁자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3자간 등기명의신탁에서 유예기간이 경과한 사안에 대한 대법원 2008. 11.27. 선고 2008다55290, 55306 판결 등 참조).
그러나 계약명의신탁의 존부 및 효력과 관계없이(가령 명의신탁 약정이 의사흠결상태에서 체결되어 무효이거나, 사기 또는 착오에 의하여 체결된 후 취소된 경우를 생각해보자) 명의수탁자는 당해 부동산의 원 소유자와의 매매계약에 기하여 당해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으므로, 계약명의신탁 약정이 부동산실명법상 유예기간 경과로 무효가 되었다고 하여 돌연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당해 부동산을 소유할 법률상 원인을 상실하였다고 볼 이유는 없을 것이다.
물론, 계약명의신탁 약정이 무효가 됨으로써 명의수탁자가 계약명의신탁 약정에 따라 명의신탁자로부터 받은 급부는 부당이득으로 반환되어야 할 것인데, 그 급부가 바로 명의신탁자가 명의수탁자에게 제공한 매수자금이다.
따라서 부동산실명법상 유예기간의 경과로 계약명의신탁 약정이 무효가 됨으로써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에게 반환할 부당이득반환의 대상은 당해 부동산의 소유권이 아니라, 명의신탁자가 제공한 매수자금이 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한편 어떤 법률이 새로이 시행되면서 기존에는 유효로 보았던 법률관계를 무효로 보는 경우에 이 법률에서 유예기간을 둔다는 것은, 당해 법률의 시행으로 인하여 발생할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기존의 법률에 기하여 이루었던 사실상태를 새로운 법률에서 요구하는 바에 따라 변경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유예기간이 계속되는 중에는 기존의 관점에 따라 당해 사실상태에 대한 법적 평가를 하지만, 유예기간이 경과한 후에도 기존의 사실상태가 유지되고 있다면 이제는 새로운 법률의 관점에서 당해 사실상태에 대한 법적 평가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부동산실명법 시행 이전에는 명의신탁자는 명의신탁을 해지하고 신탁관계 종료 또는 소유권에 기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함으로써 명의수탁자와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하여 부동산실명법의 시행 이후에 계약명의신탁이 행해진 경우에는,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2항 단서에 따라(즉, 매도인이 선의인 것을 전제로 한다) 명의수탁자가 소유권을 취득하되, 명의신탁자는 명의신탁 약정이 무효라는 이유로 명의수탁자에 대하여 자신이 조달해 주었던 매수자금 상당액을 부당이득으로 반환 청구할 수 있을 뿐 당해 부동산의 반환을 구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5. 1.28. 선고 2002다66922 판결 등 참조).
그렇다면 부동산실명법 시행 이전의 계약명의신탁의 경우, 유예기간이 경과하기 전까지 명의신탁자는 명의수탁자에 대하여 ㉠ 명의신탁 약정을 해지하면서 신탁관계 종료 또는 소유권에 기한 ㉡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가진다고 할지라도, 유예기간이 경과한 때부터는 부동산실명법 시행 이후의 계약명의신탁의 경우와 동일하게 당해 계약명의신탁은 무효가 되고, 이제 명의신탁자는 명의수탁자에 대하여 ⓐ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고 그 내용은 ⓑ 매수자금 상당액의 반환청구권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례는 부동산실명법상 유예기간 경과로 계약명의신탁 약정이 무효가 되면 명의신탁자가 명의수탁자에 대하여 ⓐ 부당이득반환청구권으로서 당해 부동산에 관한 ㉡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취득하게 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특이한 교차'에 의한 법률관계 구성은 부동산실명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실명법 시행 전 명의신탁 약정의 효력을 유지시키고자 하는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나 부동산실명법상 허용될 수 없는 법률관계를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2.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소멸시효 진행에 대한 이의
부동산실명법상 유예기간의 경과시 명의신탁자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으로서 당해 부동산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이 인정된다는 판례의 태도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에도 대상판결은 여전히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소멸시효 진행과 관련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대상판결도 인용하고 있는 매매목적 부동산을 점유·사용하는 경우 채권적 청구권인 매매계약에 기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확고한 판례(대법원 1976. 11.6. 선고 76다148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99. 3.18. 선고 98다32175 전원합의체 판결 등)는 매수인은 이미 소유권에 포함되는 사용·수익·처분권능 중 사용·수익권능을 행사하고 있고, 그에 반하여 당해 매매목적물을 매각하여 인도함으로써 매도인은 더 이상 매매목적물에 대하여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게(최소한 매수인보다 그 이해관계가 작게) 되었음에도 매수인이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자체를 행사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소멸시효 진행을 인정하고, 그 결과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오히려 매수인보다 매도인이 보호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명의신탁자가 부동산실명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대내적 소유권에 기하여 적법하게 당해 부동산을 사용·수익해 왔고, 부동산실명법상 유예기간이 경과한 때부터는 명의수탁자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권으로서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에 기하여 여전히 당해 부동산을 적법하게 사용·수익해 왔으며, 명의신탁자에게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이 인정된다는 것은 당해 부동산에 관하여 명의신탁자의 이익이 명의수탁자의 이익보다 크다는 평가가 내려졌음을 의미할 것이므로, 매매계약에 기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과 마찬가지로 계약명의신탁에 기하여 부동산실명법상 유예기간 경과 후 발생하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도 명의신탁자의 당해 부동산에 대한 사용·수익이 계속되는 한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대상판결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계약명의신탁에 기하여 부동산실명법상 유예기간 경과 후 발생하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이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명의신탁을 억제하려는 부동산실명법의 취지에 맞지 않을 것이나, 그러한 문제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소멸시효 진행을 인정함으로써가 아니라, 애초에 명의신탁자의 명의수탁자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권으로서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부정함으로써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기왕에 명의신탁자에게 명의수탁자에 대한 당해 부동산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인정하였다면, 명의신탁자가 당해 부동산을 점유·사용하는 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진행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Ⅳ. 결론
이상에서 간략히 살펴본 바와 甲의 乙에 대한 지분이전등기청구를 배척한 대상판결의 결론에는 찬성하나 그 논리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바, 대상판결은 잘못 끼운 첫 단추를 그대로 둔 채로 왜곡된 법률관계를 바로잡으려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단추를 잘못 끼운 예가 아닌가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처음부터 대법원이 명의신탁 약정이 당사자 사이에 채권적 효력만 가지는 것으로 판단하거나, 부동산실명법이 판례의 '소유권의 관계적 귀속론'을 명의신탁 약정 자체를 무효화함으로써가 아니라 명의신탁 약정에 채권적 효력만을 인정함으로써 극복하는 편이 옳았다고 보는데,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애초에 본 사안과 같은 계약명의신탁뿐 아니라 등기명의신탁에서도 일관되게, 명의신탁자는 명의신탁 약정의 내용에 따라 명의수탁자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할 수 있었을 것이며, 명의신탁자가 당해 부동산을 사용·수익하는 경우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림에도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입법자가 명의신탁 약정을 무효로 보는 극단적인 입법적 결단을 내린 이상, 그리고 그러한 결단을 내린 입법자의 '선의'를 인정할 수는 있는 이상, 부동산실명법의 태도를 충실히 받아들이는 전제에서 당사자 사이의 이익균형을 도모하는 것이, '아쉽지만' 최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