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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2020. 6. 26. 선고 2016두55896 판결 -
납품업자와의 특약으로 대규모유통업법 적용을 배제할 수 있는지 여부
1. 사실관계 및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 대규모유통업자와 납품업자 사이에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대규모유통업법') 조항과 다르게 정한 특약이 존재하는 경우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으로 볼 수 없는지에 대한 쟁점을 살펴보기 위하여 최근 선고된 홈쇼핑사업자의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에 대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0. 6. 26. 선고 2016두55896 판결)의 내용을 소개하겠다.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홈쇼핑사업자인 A사는 납품업자로부터 생활용품 등을 납품받아 판매한 후 상품판매대금을 월 판매마감일부터 40일(법정지급기일)이 지난 후에 지급하면서 그에 따른 지연이자를 지급하지 아니하였다. A사는 납품업자들과 표준거래계약을 체결하면서 "법원, 세무당국 또는 연금관리공단 등으로부터 지급정지요청, (가)압류, (가)처분, 추심 등의 결정이나 명령이 있는 경우(제1호) 등에는 A사의 납품대금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고 약정을 하였는데, A사에게 납품업자들에 대한 채권가압류 결정 등이 송달되었기 때문이다. 즉, A사는 위 약정에 따라 지급을 보류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A사의 행위가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대규모유통업자는 해당 상품의 판매대금을 월 판매마감일부터 40일 이내에 납품업자 등에게 지급하여야 한다) 위반이라고 판단하였다. 2. 대법원 판단 서울고등법원은 A사의 행위가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는데, 대법원은 해당 부분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였다. 대법원은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규모유통업자가 그 지위를 이용하여 특정 조항을 계약에 편입시킬 우려가 항시 존재하는 거래현실을 아울러 고려하면 대규모유통업자와 납품업자 사이에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 제1항, 제2항에서 정한 법정지급기한과 지연손해금률과 다른 내용의 약정이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 위 규정의 적용을 곧바로 배제할 수 없고, 그 약정이 납품업자의 자발적 동의하에 체결되었다는 사정까지 인정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 제1항, 제2항보다 불리한 내용의 계약 조항이나 약관 조항에 관하여 납품업자로부터 자발적 동의를 얻지 못하였음에도 이를 근거로 납품업자를 상대로 위 규정 위반행위를 하는 것은 그 계약 조항이나 약관 조항이 사법상 유효한지 여부와 관계없이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이러한 경우 납품업자는 대규모유통업자를 상대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하여 대규모유통업자의 위반행위가 없었더라면 지급받을 수 있었던 지연손해금 상당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즉, 대법원은 당사자 간의 사적자치를 존중하여 사법적 약정의 효력을 인정하되, 거래상 열위에 있는 납품업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납품업자가 자발적으로 동의한 경우에만 사법적 약정의 효력 및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에 대한 정당화사유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으로, 납품업자의 구제를 위하여 일정한 요건 하에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여 시정명령으로서 지급명령을 부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다. 3. 쟁점별 검토 가. 납품업자와의 특약으로 대규모유통업법 적용배제가 가능한지 본 사건에서 대법원은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를 단속규정으로 판단하였는데, 법 조문의 규정방식이 그 위반행위에 대하여 무효라고 명시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있는 점, 거래를 무효로 할 경우 거래의 안정성이 침해된다는 우려 등을 고려한 하도급 공정화에 관한 법률 규정에 관한 선례가 다수 존재하는 점, 법 위반행위에 대하여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조치 등을 하면 사법상 효력을 무효로 하지 않더라도 납품업자에 대한 보호가 충분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추측된다. 대규모유통업법의 적용대상이 대규모유통업자와 납품업자라는 상인간의 거래인 점, 대규모유통업법에서 정한 내용과 다르다고 하여 당사자 간의 합의가 존재함에도 그러한 합의의 효력을 일괄적으로 무효로 하는 경우 상황에 따라서는 납품업자에게 불리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대규모유통업법의 모든 규정을 효력규정으로 보거나 대규모유통업법과 내용이 다른 모든 약정의 효력을 무효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법원의 판단에 일반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대규모유통업법 조문 중 제8조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할 때 효력규정으로 볼 여지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대규모유통업법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규모유통업자의 횡포로부터 열세적인 지위에 있는 납품업자 등을 보호함으로써 그들 사이에 대등한 지위에서 상호보완적으로 균형있게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입법취지로 하고 있다. 특히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는 납품업자에 비해 거래상 우월적 지위가 있는 대규모유통업자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대금지급기일을 늦추어 납품업자에게 피해를 야기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조항으로 법문상 특별한 예외사유를 규정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해당 위반행위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강력하게 규제하겠다는 입법취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규모유통업자가 납품업자와 합의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대금지급기일을 늦추는 행위는 납품업자의 현금흐름을 원활하지 못하게 하여 납품업자의 영업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법에서 예외조항을 두고 있지 않음에도 법정지급기한을 회피하기 위한 사업자간 약정을 유효하다고 본다면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를 의무규정화한 취지 자체가 몰각될 여지도 있다. 실제적으로 해당 법률행위의 사법상 효력을 유효로 할 경우 피해자인 납품업자는 법 위반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민사규제를 받기 어려워진다. 행정법상으로는 납품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존재하나 민사상으로는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시정명령으로서 지급명령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납품업자의 권리구제가 복잡해 질 수 있다. 다만, 대법원은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면 민사상 권리구제의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고 보는 듯하다. 또한, 가압류 결정이 송달되더라도 이행지체 책임은 면제되지 않는데 이러한 지체책임을 면제하여 주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표준계약서상 이 사건 지급보류조항은 A사에게는 이득인 반면 납품업자에게는 불리한 조건이고, A사는 공탁을 통하여 이중변제 등의 위험을 쉽게 회피할 수 있으므로 대규모유통업자와 납품업자 간 이익을 형량하더라도 해당 약정을 반드시 유효로 해야 할 필요성이 높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나.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 위반에 해당되는지 대규모유통업법의 규정 내용과 다른 약정이 존재하는 경우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는지 여부가 문제되는데, 대법원은 대규모유통업자와 납품업자 사이의 지위를 고려하여 대규모유통업자가 자발적인 동의여부를 입증하도록 절충안을 두면서 자발적인 사법상 약정이 존재하면 정당화사유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는 듯하다. 대규모유통업자와 납품업자의 거래는 상인간의 거래이고, 상인간의 거래에는 경쟁당국의 개입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당사자 간 사법상 효력을 인정하면서도 납품업자를 보호하려는 대규모유통업법의 취지를 반영한 대법원의 판단은 타당하고, 다른 대규모유통업법 위반행위의 위법성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 문언의 형식은 정해진 유형의 행위가 이루어진 경우 정당한 사유를 입증하지 못하는 한 위법성을 인정하거나 혹은 부당성을 위법성의 요건으로 정하고 있는 대규모유통업법의 다른 규정과 다르다. 즉, 법 문언에서 위법성 판단기준으로 부당성 및 정당화사유를 규정하지 않고 그 지급기일을 명확히 특정한 제8조의 입법취지 등을 고려할 때 당사자 간 사법상 약정의 존재만으로 정당화사유를 인정하여 법 위반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또한, 본 사안에서 문제가 된 당사자 간 합의는 대규모유통업자의 입장에서는 제8조와 달리 정하지 않을 경우 발생하게 될 손해가 명확하지 않은 반면, 납품업자의 입장에서는 가압류 결정 등이 송달되었다는 사정만으로 납품대금지급이 보류되는 불이익을 입게 된다는 점에서 해당 약정의 존재가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하여야 할 불가피한 사정(특단의 사정)에 해당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론적으로 당사자간 사법상 약정을 근거로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 위반이 아니라는 판단은 대규모유통업법의 위법성 판단방식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불공정거래행위와 달리 정한 취지, 제8조의 문언에서 법 위반행위에 대한 판단기준을 명확히 규정한 취지와는 맞지 않아 보인다. 다만, 대법원의 입장과 같이 납품업자의 자발성을 판단함에 있어 엄격하고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다면 실제 법 적용에 있어서는 조화로운 해석이 가능하나 실제 거래관계에서 형식적인 자발성을 이유로 대규모유통업법 규정의 취지를 몰각할 여지도 있다는 점에서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와 같은 형식으로 규정된 법 위반행위의 예외를 일반적으로 인정함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주현영 변호사(법무법인 광장)
대규모유통업법
납품
하도급
특약
주현영 변호사(법무법인 광장)
2021-06-21
형사일반
대법원 2018도10823 판결
망인의 생전의사에 부합하는 처분의 횡령죄 성립여부
1. 사실관계 A는 2004년 12월 경부터 B와 동거하면서 그와 사실혼 관계에 있었는데, B는 2015년 1월 암 진단을 받았다. B는 2016년 3월 간암으로 부산대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자 그 무렵 A에게 “트랙터 등 차량 2대를 팔아 내가 죽고 나면 생활비로 사용하라”고 말하는 한편, 차량매매상인 C에게 전화하여 “차량을 매도하여 대금을 A에게 주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A를 통해 차량의 매도위임장과 신분증 등 서류를 전달해주었다. B는 그 직후인 2016년 4월 사망하였다. B의 사망 다음날 C는 위 차량 3대를 4200만원에 매도하였고, 그 대금은 A의 통장으로 입금되었으며, A는 위 돈을 생활비 등으로 소비하였다. 한편, B의 상속인으로 딸 D가 있었는데 B는 암 진단을 받고 딸 D에게 간 이식 절차를 요청하였으나 D는 이를 거절하였다. D는 B의 병문안을 오지 않았으며 장례식장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A는 D의 상속재산인 차량 매매대금을 보관 중 임의로 사용하여 횡령한 혐의로 공소 제기되었다. 위 사건에서 1심은 횡령혐의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으나, 항소심은 유죄를 선고하였는데, 대법원은 다시 무죄의 취지로 파기환송하였다. 2. 판결 요지 가. 1심 판결(무죄) 망인(B)이 생전에 C에게 차량의 매도를 위임한 것으로 볼 수 있어, C의 차량 매도와 그 대금의 처분행위는 유효한 것으로 보일뿐만 아니라 피고인(A)이 망인으로부터 위 차량 대금을 증여받은 것이거나 사인증여받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므로,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의 횡령행위나 불법영득의사의 존재를 단정하기 어렵다. 나. 2심 판결(유죄) 이 사건 차량 매도에 관한 망인의 위임이 있었다거나 위 차량 매도가 망인의 생전 의사에 합치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위임은 민법 제690조에 의하여 망인의 사망으로 종료되고, 위 차량을 포함한 망인의 재산은 상속인인 피해자에게 상속됨으로써 C 내지 피고인은 더 이상 이 사건 차량을 매도할 권한이 없으므로, 이 사건 차량에 대한 매도대금을 송금받아 보관 중이던 피고인이 상속인에게 이를 반환하지 아니하고 위 돈을 인출한 것은 상속인에 대한 횡령행위가 된다. 다. 대법원(무죄) (1) 불법영득의 의사의 판단기준과 증명의 정도 횡령죄에서 불법영득의 의사는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꾀할 목적으로 임무에 위배하여 보관하고 있는 타인의 재물을 자기의 소유인 것과 같이 사실상 또는 법률상 처분하는 의사를 의미하는데, 이는 내심의 의사에 속한다. 피고인이 이를 부인하는 경우에, 이러한 주관적 요소로 되는 사물의 성질상 그와 상당한 관련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증명할 수밖에 없다(대법원 2014. 6. 26. 선고 2014도753 판결 등 참조). 그리고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정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며, 이와 같은 증명이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유죄로 판단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1. 8. 21. 선고 2001도2823 판결, 대법원 2006. 3. 9. 선고 2005도8675 판결 등 참조). 나. 이 사건 처분행위의 법적 성격 망인이 이 사건 차량 또는 처분대금을 피고인에게 무상으로 수여하는 의사를 표시하였고, 피고인 또한 이를 승낙함으로써 그 무렵 망인과 피고인 사이에 증여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증여계약에 따라 망인에게는 이 사건 각 차량이나 그 처분대금에 관한 소유권을 피고인에게 무상으로 이전할 의무가 발생하였고, 망인이 2016년 4월 사망함에 따라 망인의 상속인인 D가 이사건 차량의 소유권을 취득하기는 하였지만, 이와 동시에 D는 이 사건 증여계약에 따라 망인이 피고인에게 부담하는 의무도 함께 승계하였다. 3. 평석 가. 판결의 쟁점 이 사건 판결은 언뜻 보면 망인의 사망 다음 날 이루어진 차량 매매행위가 법적으로 위임행위인지 증여의 이행인지 여부가 쟁점인 듯 보인다. 왜냐하면 그 결과에 따라 매매대금이 피고인 자신의 돈인지 아니면 상속인을 위한 보관금인지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위임에 해당한다면 보관금을 횡령한 것이 되고 증여에 해당한다면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와 같이 본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1심과 대법원 판결은 이 부분을 분명히 하지 않고 오히려 불법영득 의사의 존부와 형사판결에서 입증의 정도를 언급하였을까 하는 점이다. 법리적으로 증여에 해당한다면 그것으로 횡령이 성립하지 않음이 충분하고, 다른 이유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A가 차량의 매매대금을 수령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속인인 D에게 망인으로부터의 증여를 원인으로 대금지급 청구를 민사소송으로 제기하였다면 법원에서 이를 과연 증여로 인정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기는 하다. 민사소송에서의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는데 이 사안은 증여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았고, 매도위임장과 차량매매업자 C의 진술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통상 이 정도의 증거로 민사소송에서 증여사실을 인정받기는 어렵다. 항소심 판결은 아마도 이를 고려하여 피고인에게 유죄를 인정하였을 것이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부분은 이런 점을 형사재판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사사건은 권리의 입증책임이 원고에게 있지만, 형사사건에서는 범죄의 입증책임이 검사에게 있다. 그리고 범죄사실의 입증의 정도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를 요구한다. 즉 “차량을 매도하여 대금을 A에게 주라”는 말의 의미는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에서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을 수 있다. 나. 판결의 의미 이 사건은 제출된 증거자료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이 망인으로부터 이 사건 차량 또는 그 매매대금을 증여받은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피고인에게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횡령 혐의에 대하여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정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명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죄가 되어야한다는 취지이다. 이 판결은 형사재판에서의 증명력과 내심의 의사에 대한 평범하지만 중요한 시각을 제시한다고 생각된다. 피고인의 주장에 대한 직접적이고 확실한 증거가 없더라도 피고인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경우에는 이를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는 피고인이 망인과 10여년간 사실혼 배우자로 생활한 점, 망인이 딸에게 간이식을 요청하였으나 딸이 거절한 점, 사망 당시 망인의 곁에는 피고인만이 남아 있었던 점 등의 정황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4. 결어 어떤 사건이 민사냐 형사냐에 따라 그 결론이 달라지는 것은 사건의 구조적 일체성에 반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결국 하나의 사실관계에서 도출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은 그 목적과 취지가 전혀 다른 별개의 절차이고, 사건의 정확한 진실을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그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을 필요도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피고인의 이익과 재판제도의 목적이다. 그런 점에서 대상 판결은 형사재판의 정의(正義)에 부합하는 올바른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현곤 변호사 (새올 법률사무소 대표)
횡령
사실혼
증여계약
이현곤 변호사 (새올 법률사무소 대표)
2019-01-14
부동산·건축
김용태 변호사(태원 종합법률사무소)
집합건물 대규모점포관리자의 미납 관리비 청구권
- 대법원 2016. 3. 10. 선고 2014다46570 판결- 1. 사안의 개요 원고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 소재 지하 5층, 지상 9층 규모의 판매시설, 교육연구 및 복지시설, 운동시설의 집합건물인 유경데파트(이하 ‘이 사건 상가’라고 한다)의 구분소유자 전원으로 구성된 관리단이고, 피고들은 이 사건 상가점포에 입점하여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원고가 2012년 8월 23일 피고들에게 미납관리비의 지급을 청구하자, 피고들은 체납한 관리비를 임의로 산출한 다음, 원고의 수령 거절을 이유로 같은 해 9월 11일 서울북부지방법원에 이를 공탁하였다. 한편 주식회사 파라다이스시티(피고 보조참가인)는 이 사건 상가의 입점상인 3분의 2이상의 동의를 받아 2013년 10월 30일 설립되어 같은 해 11월 1일 노원구청에 대규모점포관리자로 신고를 하였고, 같은 해 12월 30일 노원구청장으로부터 이 사건 상가의 대규모점포관리자 확인서를 교부받았다. 2013년 3월경 기준으로 피고 등이 원고에게 납부하지 아니한 각 관리비에서 피고들이 공탁한 금액을 공제한 나머지 미납 관리비를 청구한 사건이다. 2. 대법원의 판단(2016. 3. 10. 선고 2014다46570 판결)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 제1항 제3호는 대규모점포개설자가 수행하는 업무로서 ‘그 밖에 대규모점포 등을 유지·관리하기 위하여 필요한 업무’를 규정하고 있고, 제4항은 “매장이 분양된 대규모점포에서는 제1항 각 호의 업무 중 구분소유와 관련된 사항에 대하여는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대규모점포관리자의 업무에서 제외되는 ‘구분소유와 관련된 사항’이란 대규모점포의 유지·관리 업무 중 업무를 대규모점포관리자에게 허용하면 점포소유자들의 소유권 행사와 충돌되거나 구분소유자들의 소유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사항이라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볼 때 대규모점포관리자가 대규모점포의 구분소유자들이나 그들에게서 임차하여 대규모점포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상인들을 상대로 대규모점포의 유지·관리에 드는 비용인 관리비를 부과·징수하는 업무는 점포소유자들의 소유권 행사와 충돌되거나 구분소유자들의 소유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구분소유와 관련된 사항’이라기보다는 대규모점포의 운영 및 공동시설의 사용을 통한 상거래질서의 확립, 소비자의 보호와 편익증진에 관련된 사항으로서 대규모점포 본래의 유지·관리를 위하여 필요한 업무에 해당하여 대규모점포관리자의 권한에 속한다. 대규모점포의 효율적이고 통일적인 유지·관리를 통하여 상거래질서 확립, 소비자 보호 등을 도모하려는 유통산업발전법의 입법 목적과 취지 등에 비추어 보면,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의 집합건물인 대규모점포에 관하여 관리단이 관리비 부과·징수 업무를 포함한 건물의 유지·관리 업무를 수행하여 오던 중 대규모점포관리자가 적법하게 설립되어 신고절차를 마치는 등으로 새로이 관리비 부과·징수권한을 가지게 된 경우에는 그때부터 대규모점포관리자의 권한에 속하게 된 범위에서 관리단이 가지던 관리비 부과·징수권한은 상실된다. 그러나 이전에 보유한 관리인의 관리비징수권은 계속 보유한다. 3. 평석 가. 관리비징수권의 소재 관리인의 관리비징수권이 대규모점포관리자에게 이전되는 근거는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 제4항에서 대규모점포관리자의 업무 중 구분소유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집합건물법에 따르는데 여기서 구분소유와 관련된 사항이라 함은 대규모점포의 유지·관리 업무 중 업무를 대규모점포관리자에게 허용하면 점포소유자들의 소유권 행사와 충돌되거나 구분소유자들의 소유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사항이라고 해석되는데, 관리비를 부과·징수하는 업무는 점포소유자들의 소유권 행사와 충돌되거나 구분소유자들의 소유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구분소유와 관련된 사항’이라기보다는 대규모점포의 운영 및 공동시설의 사용을 통한 상거래질서의 확립, 소비자의 보호와 편익증진에 관련된 사항으로서 대규모점포 본래의 유지·관리를 위하여 필요한 업무에 해당하여 대규모점포관리자의 권한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거는 2011. 10. 13. 선고 2007다83427 판결에서 최초로 설시되었는데 이 이후에 모든 판결들이 위 논거를 그대로 원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 관리비의 성격 집합건물법 제25조 제1항에 의하면 관리인의 업무 중 공용부분의 보존 관리 및 변경을 위한 행위가 있고 이러한 관리단의 사무집행을 위한 비용을 청구 수령하는 행위를 관리인의 업무로 열거하고 있다. 그런데 대규모점포관리자도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 제1항에서 대규모점포를 유지 관리하기 위하여 필요한 업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 업무 중 중요한 업무가 이에 따른 비용을 징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관리인이 공용부분의 보존 관리 및 변경을 위해 징수하는 비용과 대규모점포관리자가 대규모점포의 유지 관리를 위해 징수하는 비용이 상가현장에서 모두 관리비라는 명칭으로 징수한다는 점이다. 즉 상가의 실제현장에서 징수하는 관리비를 자세히 분석해보면 공용부분의 보존 관리 및 변경과 이러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사무집행비용이 있고 대규모점포의 유지 관리를 위한 비용이 있는데 대부분의 상가들은 이러한 비용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관리비라는 명칭으로 상인들로부터 징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관리인이 징수하는 관리비의 최종부담자는 구분소유자이고, 대규모점포관리자가 징수하는 관리비는 최종부담자가 임차인 즉 상인이다. 관리인이 징수하는 관리비를 대부분 상인들로부터 징수하나 이것은 구분소유자와 상인간의 임대차계약에 따라 편의상 상인들로부터 징수하는 것이고 만일 상인이 관리비를 납부하지 않은 경우에는 구분소유자가 부담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관리비의 최종부담자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의 판결은 이러한 관리비의 성격을 세세히 살피지 아니하고 마냥 관리비징수권을 관리인을 배제하고 대규모점포관리자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다. 구분소유와 관련된 사항 위 판결에서 관리비징수권이 관리인에게 있지 않고 대규모점포관리자에게 있다는 논거로 ‘구분소유와 관련된 사항’ 을 해석함에 있어 매우 협소하게 해석하여 규모점포의 유지·관리 업무 중 업무를 대규모점포관리자에게 허용하면 점포소유자들의 소유권 행사와 충돌되거나 구분소유자들의 소유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사항이라고 해석하고 관리비징수업무는 구분소유자들의 소유권행사와 충돌하거나 구분소유자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사항이 아니므로 관리비징수권은 집합건물법에 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 제4항의 구분소유와 관련된 사항을 너무나도 협소하게 해석한 나머지 집합건물법의 입법취지를 완전히 몰각하고 있다. 관리인이 공용부분의 보존 관리 변경을 위하여 관리비를 징수하는 업무가 무엇 때문에 구분소유와 관련이 없는 행위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구분소유자가 상가를 구입하는 이유는 오로지 상가의 가격을 올려 이를 매각하거나 임대료를 높게 받아 돈을 벌려는 것이다. 예컨대 엘리베이터는 상가의 공용부분인데 엘리베이터의 유지보수를 위한 비용을 징수하는 업무는 구분소유자로서는 엘리베이터의 유지 보수를 잘하여 상가의 값어치를 올려 상가를 입점하는 상인이나 상가를 매입하려는 사람으로부터 높은 가격을 받으려는 것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즉 관리비를 징수하여 엘리베이터를 유지 보수를 잘하는 것이 구분소유자의 구분소유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선 현장에서 징수하는 관리비는 대부분 구분소유와 관련된 사항이고 유통산업발전법에서 말하는 대규모점포를 유지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도 구분소유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도 볼 수 없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를 비용의 성격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 어렵고 이를 따로 따로 상인들로부터 징수하는 경우에는 불편할 뿐만 아니라 2중으로 비용을 납부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일선 현장에서는 편의적으로 이를 구분하지 않고 한꺼번에 상인들로부터 징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위 판결에서는 이러한 관리비징수업무가 구분소유와 관련된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모두 대규모점포관리자의 권한으로 규정지은 것은 잘못된 판시라고 본다. 라. 결 어 대법원에서 위와 같이 관리비의 내용을 세심히 살피지 아니하고 관리인의 권한으로부터 배제함으로써 일선 현장에서도 매우 큰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관리인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하고 거의 전부인 업무가 관리비징수업무인데(관리비가 있어야 관리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관리인은 구분소유자의 대표자이고 대규모점포관리자는 임차인들의 대표라고 볼 때 매매는 임대차를 깨뜨린다는 법언이 있듯이 관리비징수권한은 구분소유자들의 대표인 관리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타당하고 실제로 관리비징수업무는 구분소유자의 구분소유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이다. 상인들의 대표인 대규모점포관리자가 상인이 납부하지 않은 관리비를 구분소유자의 대표인 관리인을 배제하고 구분소유자에게 관리비청구소송을 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관리비징수권한을 관리인에게 부여하는 것이 법률 해석상 타당하고 구분소유자들의 위상을 바로잡는 길이다. 따라서 위 판결은 변경되어야 한다.
관리비징수권
대규모점포
관리비
김용태 태원 종합법률사무소
2017-06-27
민사일반
이헌묵 교수(경북대 로스쿨)
준거법의 범위와 준거법의 합의가 주요사실인지 여부
- 대상판결: 대법원 2016.3.24. 선고 2013다81514 판결 - I. 대상판결의 요지 당사자자치의 원칙에 비추어 계약 당사자는 어느 국제협약을 준거법으로 하거나 그중 특정 조항이 당해 계약에 적용된다는 합의를 할 수 있고 그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소송절차에서 비로소 당해 사건에 적용할 규범에 관하여 쌍방 당사자가 일치하는 의견을 진술하였다고 해서 이를 준거법 등에 관한 합의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II. 국제협약이 준거법의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 1. 쟁점 대상판결에서는 계약의 당사자가 국제협약을 준거법으로 하는 합의를 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국제사법 제25조 제1항에서는 “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법’이 ‘특정 국가의 법’에 한정되는지 아니면 상인법(lex mercatoria 또는 law merchant)과 같은 국제적 관습, UNIDROIT 국제상사계약규칙(UNIDROIT Principles of International Commercial Contracts 1980)과 같은 법원칙 또는 국제물품매매협약(UN Convention on the International Sale of Goods)과 같은 국제협약 등 비국가적 규범도 포함되는지 문제된다. 2. 논의의 실효성 비국가적 규범이 준거법으로서 지정될 수 있다면 이는 ‘저촉법적 지정’이 되지만, 만일 준거법으로서 지정될 수 없다면 당사자의 합의는 그러한 비국적 규범을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시키는 ‘실질법적 지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저촉법적 지정은 준거법의 지정이므로 법정지의 단순한 강행규정의 적용은 배제되고 국제적 강행규정만이 적용된다. 그러나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규범을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시키는 것에 불과하므로 법정지의 단순한 강행규정의 경우에도 적용이 배제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저촉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계약이 체결된 후에 법이 개정되었다면 개정된 법이 적용되지만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개정되기 전의 법이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된 것으로 봐야 하므로 그 적용이 배제된다. 또한 저촉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법원이 규범의 내용을 직권으로 조사해야 하지만,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편입된 법규가 계약의 내용이 되므로 당사자가 편입된 법규의 내용에 대하여 주장하고 증명할 책임을 부담한다. 3. 대상판결에 대한 비판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준거법은 특정국가의 법에 한정된다고 본다. 국제사법의 전반에서 언급하고 있는 ‘법’의 전통적 그리고 사회적 의미는 특정국가의 법이고, 제5조에서 ‘법원은 이 법에 의하여 지정된 외국법’이라고 규정하고 제7조나 제33조 등에서 ‘대한민국법’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종합하여 보면 준거법은 외국법이거나 대한민국법으로서 특정국가의 법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수 있다면 준거법의 분열의 한계와 관련하여서 문제가 발생한다. ‘준거법의 분열’이란 하나의 법률관계의 실체적 내용에 대하여 여러 국가의 법이 적용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국제사법 제25조 제2항에서는 “당사자는 계약의 일부에 관하여도 준거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준거법의 분열을 허용하고 있다. 대법원 2016.6.23. 선고 2015다5194 판결에서는 당사자가 계약의 일부에 관하여만 준거법을 선택한 경우, 선택된 준거법이 적용되지 아니하는 영역에 대하여는 국제사법의 규정에 따라 지정된 소위 객관적 준거법이 적용된다고 보고 있으므로, 비국가적 규범만을 준거법으로 지정하고 있거나 비국가적 규범과 특정국가의 법을 모두 지정하는 경우 모두 준거법의 분열이 발생한다. 그러나 준거법의 분열이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법의 내용에 차이가 있고, 한 국가의 국내법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하나의 사안에 대하여 여러 국가의 법이 동시에 적용되면 적용되는 법률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거나, 생소한 다른 국가의 제도를 국내의 제도에 맞춰야 하는 복잡한 적응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지정된 복수의 준거법이 적용되는 부분이 다른 부분과 분리가능하여 상호 모순저촉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한계 내에서만 준거법의 분열이 허용된다. 그런데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수 있다면 위와 같은 한계를 완전히 무시하고서 준거법의 분열을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부당하다. 대상판결에서 국제협약이 준거법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한 점에 비추어 보건대, 위와 같은 문제점에 대한 깊은 고려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하는 저촉법적 지정은 할 수 없다고 본다. 참고로 우리의 국제사법의 바탕이 된 유럽공동체(EC)의 ‘계약상 채무의 준거법에 관한 협약’(‘로마협약’) 에서는 당사자가 준거법으로 선택할 수 있는 법이 특정 국가의 법이라고 해석되어 왔다. 그런데 위 로마협약을 개정한 ‘계약상 채무의 준거법에 관한 규칙’을 제정되는 과정에서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준거법은 특정 국가의 법으로부터만 도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아니하였다. III. 준거법의 합의가 주요사실인지 여부 1. 쟁점 대상판결에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주요사실에 대하여만 변론주의가 적용되어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대상판결에서는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여 그러한 사실이 주요사실이란 점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대상판결과 같이 준거법의 합의를 주요사실로 본다면 당사자가 그러한 합의의 존재를 주장 및 증명해야 비로소 법원이 그러한 합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을 뿐이고, 당사자의 주장이 없는 한 법원이 직권으로 준거법의 합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 2. 대상판결에 대한 비판 (1) 주요사실의 의미에 따른 비판 주요사실이라 함은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실체법상의 구성요건 해당사실을 말한다(대법원 1983. 12. 13. 선고 83다카1489 전원합의체 판결). 즉 권리와 의무의 발생, 변경, 소멸이라는 실체법적 효력을 가져오는 요건사실이 주요사실에 해당한다. 국제사법을 소송법으로 분류하는 견해도 있지만 ‘절차법-실체법’과 ‘저촉법-실질법’이 대비되고 있는 바와 같이, 저촉법인 국제사법은 ‘법선택을 위한 법’으로서 절차법과 실체법의 구분과 그 영역을 달리한다(석광현, ‘국제사법 해설’, 법문사, 2013, 4쪽). 그런데 국제사법을 소송법으로 보던지 저촉법으로 보던지 상관없이 국제사법이 실체법이 아니란 점은 명백하므로 국제사법 제25조에 따른 준거법의 지정의 합의를 주요사실로 보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2) 적용될 법률의 발견은 법원의 전권사항 국제사법은 법선택을 위한 법으로서 국제적 분쟁사건을 심리하는 법원으로서는 당사자의 주장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이를 당연히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사법에 따르면 계약에 적용되는 준거법은, 1차적으로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지정한 국가의 법이 되고(제25조 제1항), 이러한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2차적으로 그 계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의 법이 된다(제26조). 따라서 법원은 직권으로 계약의 1차적 준거법인 당사자의 합의의 존재를 조사해야 한다. 게다가 대상판결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적용할 법률의 발견은 법원의 전권사항이고, 준거법에 관한 당사자의 합의는 적용할 법률을 결정하는 합의이므로, 법원은 준거법의 합의의 존재를 조사하는데 있어서 당사자의 주장에 구속받지 아니한다. 덧붙여 대상판결은 당사자가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는 계약의 내용이 되고 계약의 내용은 주요사실이라는 이유로 준거법에 관한 당사자의 합의를 주요사실로서 자백의 대상으로 본 듯하다. 그러나 당사자의 합의라고 하더라도 모두 주요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대법원 판례에서는 소송상 합의인 부제소의 합의를 채권계약으로 보고 있으면서도(대법원 2004. 12. 23. 선고 2002다73821 판결), 이러한 부제소의 합의가 소송법적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이를 법원의 직권조사사항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80449 판결). 따라서 당사자의 합의라는 이유만으로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까지 주요사실로 보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IV. 결론 이상으로 대상판결과 달리, 사견에 따르면 국제협약을 포함한 비국가적 규범은 준거법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의 존재는 법원의 직권조사사항으로서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한편 대상판결 중 문제된 판시내용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이 이에 대하여 아무런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한 채 위와 같은 결론에 이른 아쉬움이 있다. 적지 않은 국제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좀 더 많은 국제사법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국제협약
준거법
국제사법
2017-02-20
행정사건
성중탁 교수 (경북대 로스쿨, 法博, 변호사)
대형마트 영업제한
대법원 2015. 11. 19. 선고 2015두295 Ⅰ. 대상 판결 1. 사실관계 피고 동대문구청장은 2012. 11. 14. 원고 롯데쇼핑, 이마트 등에 대하여 그들이 운영하는 동대문구 내 대형마트 및 준대규모점포의 영업제한 시간을 오전 0시부터 오전 8시까지로 정하고,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일요일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하는 처분을 하였다. 이 처분은 2012년 제정된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 2 유통산업발전법(2013. 1. 23. 법률 제1162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12조의 2 ①시장· 군수·구청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대규모점포와 준대규모점포에 대하여 영업시간제한을 명하거나 의무휴업일을 지정하여 의무휴업을 명할 수 있다. ②영업시간 제한은 오전 0시부터 오전 8시까지의 범위에서 할 수 있으며, ③의무휴업일 지정은 매월 1일 이상 2일 이내의 범위에서 할 수 있고, ④위와 같은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에 필요한 사항을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다. 에 기한 것이다. 1심 서울행정법원은 위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하여 원고들이 항소하였고, 2심 서울고등법원은 위 영업제한이 위법한 처분이라며 1심을 취소하여 피고 측이 다시 상고한 사건이다. 2. 원심 서울고등법원 2014. 12.12. 선고 2013누29294 사건 판결 요지 원심은, 원고들 운영 대규모점포는 소비자의 주문에 따라 점원이 제품의 양을 덜거나 계량하여 포장해주고 있고, 제품을 즉석에서 가공?손질하여 제공하고 있는 등의 영업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사실, 대규모점포 내에 임대매장이 입점 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병원, 미용실, 식당 등 서비스 용역을 제공하는 매장이 포함되어 있는 사실을 토대로, 영업시간 제한 등 규제의 대상이 되는 '대형마트로 등록된 대규모점포'에 해당하려면 대규모점포가 형식상 대형마트로 등록되어 있음은 물론, 점포의 실질이 법에서 정한 요건에 부합하여야 함을 전제로, 원고 대규모점포는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의 집단으로 보기 어렵고, 나아가 용역제공 장소 부분은 그 성격상 용역의 제공 장소일 뿐 상품을 소매하는 대규모점포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대규모점포 내에 입점 된 임대매장들에 대해 피고가 처분사전통지, 청문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 행정처분 절차상 하자가 있다. 마지막으로, 피고가 처분을 함에 있어서, 공?사익의 이익형량을 전혀 하지 아니하거나 이익형량의 고려대상에 포함시켜야 할 사항을 누락함으로써 재량권을 행사하지 않았거나 해태하였고, 원고들의 영업의 자유 침해 등 불이익이 처분에 의해 달성되는 공익보다 중대하여 비례원칙을 위반하였으며,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S) 및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의 시장접근 제한금지 조항을 위반함으로써, 재량권을 일탈·남용하여 위법하다. 3. 대법원 판결요지 (1) 다수의견 요지 대규모 점포가 그 형식상 대형마트로 등록되어 운영되고 있는 이상, 대규모점포에 속한 임대매장 등 개별 점포의 실질을 따로 살필 것 없이 대규모점포는 영업시간 제한 등 규제의 대상인 '대형마트로 등록된 대규모점포'에 해당하고, 그에 따라 원고들이 직영하는 준대규모점포도 그 처분요건에 해당하게 된다. 또한, 대규모점포 중 임대매장이 존재하더라도 대규모점포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 등 처분의 상대방은 오로지 대규모점포 개설자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절차도 원고들을 상대로 거치면 충분하고, 임차인을 상대로 별도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 나아가, 비례원칙 위반 등 재량권 일탈·남용의 위법이 있는지 여부와 관련하여, 이 사건 조항은,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의 규제가 일반적?통상적 시장상황 아래에서는 위와 같은 공익 목적 달성에 유효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정책적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 규제입법에 해당하고, 행정청에게는 매우 제한된 범위 내에서 규제 수단의 선택재량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행정청은 대체로 유사한 내용의 규제에 이를 수밖에 없으므로, 피고들이 재량권을 행사하지 않거나 해태한 위법, 이익 형량에 관한 비례원칙 위반 등의 위법,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및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등을 위반한 위법이 없다. (2) 소수의견 요지 대형마트 개설 등록의 범위와 영업시간 제한 등의 규제의 범위를 반드시 일치시킬 필요는 없고, 영업시간 제한 등의 규제는 대규모점포 개설자 등의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침익적 처분이므로 그 근거 규정을 엄격히 해석·적용하여야 한다. 대형마트 내 용역제공 장소는 대형마트 개설자가 아닌 중소상인들에 의해 임대매장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대형마트 개설자와는 달리 이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이 사건 조항에 따른 영업시간 제한 등 규제의 대상은 '대형마트로 등록된 대규모점포'의 매장 중 상품판매 장소라고 봄이 타당하고, 용역제공 장소에 대하여는 그 실질이 상품판매 장소에 해당하는 경우 등과 같이 이를 상품판매 장소와 마찬가지로 규제하여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그 규제의 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행정청이 이 사건 조항에 따라 상품판매 장소와 함께 용역제공 장소까지 영업시간 제한 등 규제의 대상으로 모두 삼았다면, 이를 정당화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러한 처분은 규제의 대상 내지 그 재량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으로서 위법하다. Ⅱ. 대상 판결에 대한 평석 1. 쟁점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법률적 쟁점은 처분대상의 오인 여부, 절차상 하자, 재량권의 일탈, 남용 여부 등 3가지이다. 그 중 처분대상의 오인여부와 절차상 하자 문제는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와 관련하여 내부에 입점한 임대점포도 대형마트와 동일하게 영업규제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지가 쟁점이다. 즉, 대형마트의 개설자가 아닌 임대점포는 영업규제를 통하여 보호하고자 하는 중소유통업자로서 그 규제대상에서 제외하여야 한다는 임대점포 측과 그 배후의 대형마트의 요구가 거센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 보호를 위해서는 임대점포 역시 대형마트에 입점하여 있는 이상 규제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소상공 사이에서 고민하던 지자체가 결국 이들을 포함하여 규제하기에 이르렀고, 원심은 이를 위법하다고 보았다가 대법원에서 파기당한 것이다. 2. 검토 다수의견은 다음과 같은 논거에서 영업제한 처분이 적법하다고 보았다. 먼저, 임대점포 제외 여부와 관련하여, 법상 지자체장에게 부여된 재량의 범위는 영업시간 범위와 의무휴업일 지정에 관한 것일 뿐, 대형마트는 그에 포함되지 아니하므로 그 제한대상을 임의로 구분할 할 수 없다고 보아 법규에 '대형마트의 전부나 그 일부에 대하여'라고 규정하지 아니한 이상, 일부 점포를 제외하고 영업제한을 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문리 해석의 범위를 벗어난다. 만약 임대점포를 제외하면 대기업으로서는 임대점포 형식을 취하여 실질적으로 영업규제를 회피할 수 있으며, 임대점포주가 중소유통업자라고 하더라도 대형마트에 입점하여 있는 이상 그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재량권의 일탈·남용여부와 관련하여, 대형마트에 대해 밤 12시 이후에는 영업하지 말고, 한 달에 이틀을 쉬라는 정도의 제한만으로는 비례원칙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 이는 외국과 다른 우리나라의 특이한 사정을 감안한 것으로서, 자영업자 비율이 미국은 6.8%, 독일과 일본도 각 11%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28%나 되고, 생활밀착형 업종의 인구 천 명 당 업체수도 미국의 10배 이상으로 이미 과도한 경쟁 중인 상황에서 몇몇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와 SSM은 이들 자영업자에게 생존의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반면 대형마트가 창출하는 고용이나 창업효과는 그리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전통시장과 주변 상권 파괴로 인한 일자리 상실을 감안하면 고용 측면에서 대형마트 진출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곧 빈곤층의 증가를 의미하여 장기적으로 국가 재정의 근원이 되는 세금은 줄고, 의료·실업 등 복지비용은 증가하게 된다. 결국, 다수의견이 설시한 재량권의 일탈·남용 여부에 관한 판단 기준으로서 이익형량이란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한 것이다. Ⅲ. 결론 이상의 엇갈린 판결은 대형마트의 임대점포를 둘러싼 법해석에 관한 것으로서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 등 중소유통업의 보호라는 정책을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규제 방식으로 실현함으로써, 보호받는 업자와 보호받지 못하는 업자가 나뉘게 되고, 이는 곧 영업규제의 범위로 이어져 그에 관해 원심과 대법원 상호간에 서로 다른 법해석을 한 것에 기인한다. 이와 같이 서로 다른 법해석을 한 이유는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이 체계적이지 못한 업태 분류와 그 기초가 되는 매장의 정의 등 기본적으로 고민하여야 할 부분이 여전히 정리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란 의견이 많은바, 다시 한 번 체계적인 매장의 정의를 비롯하여 소매업태의 분류 등의 정비작업이 조속히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동지; 김천수, '대형마트의 임대점포가 영업규제 대상에서 제외되는지 여부', 유통법연구, 2014. 8, 70면 이하 참조)
대규모점포
대형마트
의무휴업
영업시간제한
2016-02-01
성중탁 교수(경북대 로스쿨)
대형마트 영업규제에 대한 찬반양론을 지켜보며
1. 서설 지난 연말 서울고등법원은 대형마트에 대한 의무휴업일 지정과 영업시간 제한 처분 등을 규정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려 큰 파장을 낳았다. 2012년 1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지정에 관한 조항이 신설되면서 지자체와 대형마트 간에 영업시간 제한을 둘러싼 소송이 지속적으로 벌어졌다. 법원이 2012년 6월 유통산업발전법이 지자체장에게 영업시간 제한 등 재량권을 부여했는데도 의무적으로 제한을 명하도록 강제한 것은 위법하다며 서울 강동구와 송파구 등의 조례는 위법하다는 첫 판결(서울행정법원 2012. 6. 22. 선고 2012구합11966 판결)을 내린 이후 지자체들은 법원 판결에서 문제된 조례 부분을 개정하여 다시 영업제한에 나섰으나 이번에는 항소심에서 패소한 것이다.(1심에서는 원고가 패소했으나 항소심에서 취소되었다.) 2. 판결요지 법원은 처분 대상이 된 점포들이 대형마트로 등록은 돼 있지만 유통산업발전법상 대형마트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즉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할 수 있는 처분대상인 대형마트는 점원의 도움 없이 소매하는 점포의 집단인데 롯데쇼핑 등 대규모 점포에서 점원이 구매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행위들에 비춰 법령상 대형마트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의 요건으로 매장면적의 합계 3000제곱미터 이상인 점포의 집단으로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의 집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영업제한 처분 등으로 달성되는 전통시장 보호 효과는 뚜렷하지 않고 아직도 논란 중인 반면, 맞벌이 부부의 경우 실제로 야간이나 주말이 아니면 장을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특히 아이가 있는 가정의 경우 주차공간·편의시설 등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며 소비자 선택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으로 비례의 원칙에 반하고, 경쟁제한을 위한 수단으로 볼 여지도 크다"고 판결 이유를 밝히고 있다. 3. 평석 가.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2에 의한 영업규제에 대한 찬반양론 (1) 규제 찬성론은 먼저, 건전한 유통질서의 보호를 주장한다. 대형마트(SSM)의 출점으로 2011년도 기준 인근 지역 상인들의 평균 매출액이 47.6% 감소하고, 고객 수는 50.5%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대형마트 평균 매출액은 9.2조원 증가한 반면, 재래시장 매출액은 같은 기간 9.3조원 줄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직원들의 건강권 보호다. 대형유통업체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근무환경이 열악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통산업 근로자는 물건을 끊임없이 판매하는 서비스업의 특성상 실질적으로 휴게시간이 따로 없어 근로기준법상 보장된 4시간마다 30분 동안 휴식권을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 주부사원의 경우 늦은 시간까지의 근로로 건전한 가정생활에도 지장을 주고 있다. 다음으로, 대형유통업체 주변주민의 생활환경권 침해문제다. 심야시간과 공휴일에도 대형유통업체에 승용차들이 출입하여 교통 혼잡과 소음 등을 유발함으로써 대형유통업체 주변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적절한 규제는 필요하다. (2) 규제 반대론은 먼저, 대형마트업자들의 헌법상 영업의 자유와 평등권 침해주장이다. 이러한 영업제한으로 인해 고용감소 초래 및 지역상권 침체 유발 등 피해를 줄 수 있다. 또한 자유롭게 영업이 가능한 편의점, 오픈마켓, 인터넷쇼핑 등 온라인 쇼핑과 대형전통시장, 백화점, 전문점, 개인 중대형 슈퍼마켓, 소형 슈퍼마켓은 제외되어 합리적이지 못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물가상승 초래 및 농어민과 중소협력업체 등 피해를 꼽는다. 강제휴무 및 영업시간 제한은 대형마트의 운영효율성을 저해함으로써 대형유통업체를 운영하는 비용을 증가시키고 이는 제품의 판매가에 반영되어 결국은 소비자 물가를 상승하게 한다. 특히 농수축산물의 유통의 경우 신선함을 유지해야하는 제품의 특성상 대형유통업체가 농수축산물에 대한 취급 자체를 꺼려, 결국 농어민, 축산인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또한 대형유통업체에 입점하고 있는 안경점, 식당, 약국, 김밥코너, 꽃집 등 중소협력업체도 피해를 입는다. 다음으로 소비자주권 침해를 꼽는다. 맞벌이 부부나 자영업자들의 경우 대개 주말에 쇼핑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격주이긴 하지만 일요일 휴무로 인하여 이들에게 불편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고용사정 악화를 든다. 판촉사원, 단기 아르바이트, 주말 파트타이머, 주부사원 등 수많은 공급협력회사, 건설사 등 유관산업의 고용유발 효과가 큰데 영업규제로 인하여 직간접적으로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나. 해결방안 먼저,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사이의 법을 새로 제정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라파랭법'처럼 재래시장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가 도시 외곽에 위치하게 하는 것과 같은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법을 우리나라에 맞게 제정해야 한다. 그 일례로 대형마트 입점절차의 엄격화이다. 법률 개정 가능성의 저조, 유통업체의 강력한 저항 등으로 인하여 허가제로의 법 개정이 사실상 어렵다면, 일본에서 시행했던 '사전심사부 신고제'의 도입도 고려할 만하며, 대점포입지법에서 채택한 '신고제로 하되 엄격한 절차제를 보완한 제도'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의 예와 같이, 대형유통업을 신설하고자 하는 자는 지역주민설명회를 반드시 개최하고, 주민과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을 수렴하여, 입점으로 인하여 야기될 수 있는 지역민들과의 문제점들을 사전에 엄격하게 진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지방자치단체의 조정능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의 조정의무를 제도화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둘째로, 재래시장의 가격은 대형마트와는 달리 하나로 가격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점은 소비자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시장 전체 공통 상품의 가격을 통일하여 통일성을 갖게 하고, 대형마트와는 다른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며, 전국 시장의 조직화로 대기업 대형마트에 맞설 경쟁력을 갖추게 하여야 한다. 따라서 재래시장이나 중소상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서비스 강화, 점포 구성원에 대한 유통 관련 교육을 함과 동시에 쾌적한 점포분위기 조성, 부대시설 개편 등 나름의 치밀한 해결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셋째로 범정부 차원의 유통통계 DB의 구축 및 활용이 요청된다. 소매업 전반 및 소매업태 별 점포수, 매출액 추이, 종업원 수, 시장점유율, 영업이익 등의 기본 항목에 대한 자료가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며 특히 소매업태 별 매입 유통구조에 대한 자료는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있지 않아 정확한 유통구조의 파악이 안 되고 있어 정확한 통계에 따른 대책 수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있다. 따라서 소매업 자료 수집에 대한 총괄적 관리기관을 설정하여, 이 기관을 중심으로 자료 수집 항목의 선정, 조사 내용 및 방법의 일관성과 보완성을 유지하는 한편, 유통통계 DB의 구축 및 활용방안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방자치단체 법무능력의 향상도 중요하다. 지금과 같이 자치권의 향상에 따라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적인 행정이 행해지는 현실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일선 공무원 특히 법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에 대한 자치법무역량 향상을 위한 방안 마련은 시급한 과제다. 최근 연간 2000명 가까운 변호사가 배출되면서 일선 지자체에서 법무담당관으로 변호사 출신을 채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고 하겠다. 요컨대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 지정은 경제적 약자인 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로서 필요성이 인정되지만, 경제행정법의 규율대상 및 보호대상과 관련하여 다양한 이해관계인들이 서로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어느 일방적인 규제만으로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즉, 정부 당국은 기존 유통산업발전법의 미비점을 보완하되, 그 과정에서 어느 일방에 대한 규제의 방식이 적절한 것인지 및 그 규제로 인한 피해가 과도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함께 해야 한다.
2014-01-19
권형필 변호사(법무법인 소명)
유치권 그리고 신의칙
1. 사실관계 대법원 2011. 12. 선고 2011다 84298 사건 채무자 甲 주식회사 소유의 건물에 관하여 乙 은행 명의의 1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었는데, 2순위 근저당권자인 丙 주식회사가 甲 회사와 건물 일부에 관하여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건물 일부를 점유하고 있던 중 乙 은행의 신청에 의하여 개시된 경매절차에서 丙이 유치권 신고를 한 사안에서 丙의 유치권이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 서울고등법원 2004. 1. 15. 선고 2002나 5475 판결 채무자는 이 사건 공사 당시 거액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유치권자)로 하여금 무리하게 인테리어 공사를 하도록 도급을 주어 공사대금을 발생시켰고, 결국 피고는 위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해 건물을 점유하면서 유치권 주장을 한 사안. 2. 서설 위 사건들의 공통점은 유치권자로서 유치권의 형식상 성립요건은 모두 갖추었으나 법원이 민법 제2조 신의칙을 원용하여 낙찰자의 손을 들어준 사건이다. 이하에서 법원은 어떠한 이유로 민법 일반조항에 해당하는 신의칙 법리까지 동원하면서 유치권 주장을 배척하였는지 살펴본다. 3. 유치권 제도의 취지 유치권은 공평의 원칙에 기하여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고자 발생한 제도이다. 즉 타인의 물건에 용역 등을 투여하여 가치를 상승시킨 자가 채권을 변제받기 전에 목적 물건의 점유를 이전해야 한다면 용역을 투여한 자 입장에서는 추심이 곤란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반면 물건의 소유자는 상승된 가치만큼 부당이득 할 수 있는 불공평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상사 유치권은 민법의 유치권의 요건 중 물건과 채권사이에 견련관계를 요구하지 않고 단지 채권의 성립과 물건에 대한 점유의 취득이 쌍방적 상행위로부터 발생한 것이라면 성립하며, 상사 유치권이 민사 유치권과 다르게 비교적 용이하게 유치권을 인정하는 이유는 거래마다 담보의 설정을 요구하였을 경우 절차상 번잡하여 거래의 신속을 해하며 그 실행을 용이하지 않게 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상인간의 신용을 유지하면서도 안전하고 확실한 거래관계를 지속하고자 만들어졌다. 4. 유치권 제도의 현실적 문제점 그러나 문제는 위와 같이 공평의 원칙에서 출발한 유치권이 시중에서는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유치권의 피담보채권 금액은 당사자만 알 수 있고 담보물권의 불가분성으로 인하여 유치권의 효력은 물건 전체에 미치기 때문에 정확한 채권금액을 파악할 수 없는 낙찰자는 유치권자가 주장하는 채권금액 전부를 변제하지 않은 한 점유를 이전 받을 수 없다(즉 현행법상 유치권자는 현행법상 경매절차에서 유치권 및 채권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유치권의 효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더욱이 정확한 채권 금액이 파악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유치권은 다른 담보물권 보다 사실상 최우선변제를 받을 수 권리이므로 "시간에서 앞선 사람은 권리에서도 앞선다."라는 담보물권의 기본취지를 완전히 몰각시킬 위험성이 다분하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고려하여 법원은 다음과 같이 형식상 유치권이 성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치권을 제한적으로 해석하여 왔다. 5. 유치권의 요건 여기서 간단히 유치권의 요건을 살펴보자. 민법상 유치권은 민법 제320조에 규정되어 있는 것과 같이 타인의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점유한 자가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에 관하여 생긴 채권이 변제기에 있는 경우에는 변제를 받을 때까지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유치할 권리가 있는 것으로서, ① 피담보채권, ② 채권과 목적물의 견련성, ③ 목적물의 점유 및 변제기 도래의 요건이 충족되면 당연히 성립하는 법정 담보물권이다. 이에 반하여 상사유치권은 상인간의 상행위로 인한 채권이 변제기에 있는 경우 채권자가 변제를 받을 때까지 그 채무자에 대한 상행위를 통하여 그가 점유하고 있는 채무자 소유의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유치할 수 있는 권리로서 ① 양 당사자가 상인이어야 하고 ② 당사자 쌍방의 상행위로 발생한 피담보채권임을 요구한다. 다만 민법과 다르게 목적물과 채권간의 견련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6. 유치권 성립과 관련된 판례의 경향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치권은 위 요건들만 충족하면 당연히 성립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4.항에서 언급한 현실적인 문제점을 인식하고 다음의 사안에서 유치권 주장과 관련하여 그 성립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즉 ⒜ 채무자 소유의 부동산에 강제경매개시 결정의 기입등기가 경료되어 압류의 효력이 발생한 이후에 채무자가 부동산에 관한 공사대금 채권자에게 그 점유를 이전함으로써 유치권을 취득하게 한 경우는 당해 유치권의 취득은 압류의 효력에 반하여 유치권자는 대항할 수 없다는 판결(2005다 22688), 최근 고등법원에서 선고된 ⒝ 유치권자가 종전 소유자의 승낙을 받아 임차물을 타인에게 임대하고 있었다가 소유자가 바뀐 경우 사용수익하고 있는 유치권자가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종전의 승낙으로서 새로운 소유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서울고등법원 2011. 12. 21. 선고 2011나 27983 판결)는 판례, 그 외 하급심 판례로서 ⒞ 소멸시효가 완성된 공사대금 채권의 채권자가 자신이 점유하고 있던 채무자 소유의 부동산에 경매개시 결정 기입등기가 경료되어 압류의 효력이 발생한 이후에 채무자가 공사대금 채권의 시효이익을 포기하여 채권자로 하여금 유치권을 취득하게 하는 것도 목적물의 교환가치를 감소시킬 우려가 있는 처분행위로서 앞의 점유 이전의 경우와 같이 보아 압류의 처분금지효에 저촉되므로 점유자로서는 위 유치권을 내세워 그 부동산에 관한 경매절차의 매수인에게 대항할 수 없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10가합 15029)는 판결, ⒟ 거주목적으로 공사를 하였을 경우 유치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부동산 인도명령 결정 사례 등 형식상 유치권 관련 법률요건은 갖추어져 있으나 유치권의 요건과 관련된 법률요건을 엄격히 해석하거나 유치권 이외의 법리를 원용하여 유치권의 성립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7. 대상판결 그리고 대상판결들은 민법의 일반조항으로서 최후 수단인 신의칙까지 동원하면서 유치권 주장을 배척하였던 것이다. 고등법원은 위 대상판결에서, '… 이러한 경우에는 위 피고가 전 소유자와 사이에 위 건물 부분에 관한 공사도급계약을 하고 그 계약에 따른 공사를 일부라도 실제로 진행하여 상당한 공사비용을 투하하였다고 하더라도, 만약 이러한 경우에까지 유치권의 성립을 제한 없이 인정한다면 전 소유자와 유치권자 사이의 묵시적인 담합이나 기타 사유에 의한 유치권의 남용을 막을 방법이 없게 되어 공시주의를 기초로 하는 담보법질서를 교란시킬 위험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위 피고의 공사도급계약 전에 가압류등기와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마친 자의 신청에 의한 경매절차의 매수인(낙찰자)인 원고에 대한 관계에서는, 민법 제320조 제2항을 유추 적용하여 위 피고가 위 공사대금채권에 기초한 유치권을 주장하여 그 소유자인 원고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하거나, 그 유치권을 행사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위 대상 판결의 대법원(2011. 12. 선고 2011다 84298) 역시 '…丙 회사는 상사유치권자로서 甲 회사에 대한 채권 변제를 받을 때까지 유치목적물인 건물 일부를 점유할 권리가 있으나, 위 건물 등에 관한 저당권 설정 경과, 丙 회사와 甲 회사의 임대차계약 체결 경위와 내용 및 체결 후의 정황, 경매에 이르기까지의 사정 등을 종합하여 보면, 丙 회사는 선순위 근저당권자인 乙 은행의 신청에 의하여 건물 등에 관한 경매절차가 곧 개시되리라는 사정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그에 따라 유치목적물을 이전받았다고 보이므로, 丙 회사가 선순위 근저당권자의 신청에 의하여 개시된 경매절차에서 유치권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하여 유치권 주장을 배척하였다. 특히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다음과 같이 판시함으로서 담보물권의 기본원칙을 지키고자 고심하였던 흔적을 내비치고 있다. "유치권제도와 관련하여서는 거래당사자가 유치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고의적으로 작출 함으로써 앞서 본 유치권의 최우선순위담보권으로서의 부당하게 이용하고 전체 담보권질서에 관한 법의 구상을 왜곡할 위험이 내재한다. 이러한 위험에 대처하여, 개별 사안의 구체적인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평가되는 유치권제도 남용의 유치권 행사는 이를 허용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8. 결어 지난 경매 통계를 살펴보면 2006년 평균 낙찰률은 71.83%이었으나 유치권이 신고 된 물건의 평균 낙찰률은 불과 56.41%로서 평균을 거의 15%p이상 하회하고 있고, 2007년 연간 평균 낙찰률은 74.43%이나 유치권 신고 된 물건의 평균 낙찰률은 62.23%로서 일반적인 물건보다 12.2%p나 하회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과 더불어 담보물권의 기본원칙 및 이해당사자간의 형평성 등을 모두 고려한 최근 대법원 판결은 타당하다고 본다.
2012-07-23
이권호 변호사(법무법인 APEX)
MMORPG 게임머니 환전행위는 합법
Ⅰ. 들어가며 최근 언론에서 리니지 게임의 게임머니 환전행위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게임업계 관계자는 물론 일반인들도 향후 게임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본 판결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의 보도 중에는 본 판결의 내용 및 취지를 잘못 전달하는 부분도 있어 필자는 항소심부터 이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로서 동 판결의 의미와 내용을 명확히 밝히고자 본 판례평석을 기고하게 되었다. Ⅱ. 사실관계 개요 및 사건의 경과 피고인 김모씨와 이모씨는 공모하여 2007년경 약 2,000회에 걸쳐 리니지 게임의 게임머니인 '아덴'을 매입하고 환전하는 행위를 했다. 검찰은 김씨와 이씨를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이하 '게진법') 제44조 제1항 제2호, 제32조 제1항 제7호 위반으로 기소하였고, 원심법원(부산지방법원 2008. 12.24. 선고 2008고정1584)은 이를 유죄로 인정하였다. 참고로 이 사건에서는 게진법 위반 여부 이외에 주민등록법 위반, 사기죄 성립 여부가 다투어졌으나 본 판례평석에서는 이러한 논점은 다루지 않도록 하겠다. 항소심 법원(부산지방법원 2009. 7.10. 선고 2009노99판결)은 원심법원의 게진법 혐의에 대한 원심의 유죄판단을 파기하고 이하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의 게임머니는 게진법에서 정한 환전금지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고인들에게 무죄판단을 내렸다. 검찰은 이에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Ⅲ. 판결의 요지 본 대법원 판결은 항소심 판결에 대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 것이므로, 이하에서는 실질적인 판시 내용이 있는 항소심 판결을 위주로 검토하도록 하겠다. 항소심은 게진법 제32조 제1항 제7호 요건 및 게진법 시행령 제18조의3 각호의 요건들을 상세히 분석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했다. 항소심은 주로 위 조항들에 대한 해석론을 전개하여 결론을 도출하였는 바, 이해의 편의를 위하여 관련 조항의 내용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게진법 제32조 제1항 제7호 제32조 (불법게임물 등의 유통금지 등) ① 누구든지 게임물의 유통질서를 저해하는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해서는 아니된다. 다만, 제4호의 경우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특례법」에 따라 사행행위영업을 하는 자를 제외한다. 1.~6.호 생략 7. 누구든지 게임물의 이용을 통하여 획득한 유·무형의 결과물(점수, 경품, 게임 내에서 사용되는 가상의 화폐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게임머니 및 대통령령이 정하는 이와 유사한 것을 말한다)을 환전 또는 환전 알선하거나 재매입을 업으로 하는 행위 -게진법 시행령 제18조의 3 제18조의3 (게임머니 등) 법 제32조 제1항 제7호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게임머니 및 대통령령이 정하는 이와 유사한 것'이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1. 게임물을 이용할 때 베팅 또는 배당의 수단이 되거나 우연적인 방법으로 획득된 게임머니 2. 제1호에서 정하는 게임머니의 대체 교환 대상이 된 게임머니 또는 게임아이템(게임의 진행을 위하여 게임 내에서 사용되는 도구를 말한다. 이하 같다) 등의 데이터 3. 게임제작업자의 컴퓨터프로그램을 복제, 개작, 해킹 등을 하거나 게임물의 비정상적인 이용을 통하여 생산·획득한 게임머니 또는 게임아이템 등의 데이터 항소심은 이 사건 게임머니인 아덴이 게진법 시행령 제18조의 3 제1호 내지 제3호에서 정하는 '게임머니 및 이와 유사한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먼저 동 시행령 제2호의 적용 여부와 관련해서 이 사건 게임머니는 리니지 게임 자체에서 얻어지는 것이므로 '대체교환 수단이 된 게임머니 또는 게임아이템'에 해당하지 않음이 명백하고, 동 시행령 제3호의 적용과 관련해서는 게임 프로그램 자체를 복제, 개작, 해킹하거나 비정상적인 이용을 통하여 이 사건 게임머니를 획득한 것이 아니므로 제3호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동 시행령 제1호의 전문 부분과 관련해서는 리니지 게임의 정상적인 작동방식을 고려할 때, 이 사건에서는 일정한 금액을 먼저 '베팅'한 후 카드, 주사위, 룰렛 등 게임 방법으로 당첨자를 결정하여 당첨자들 사이에서만 게임에 유입된 전체 베팅 금액을 분배하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동 시행령 제1호 후문 부분과 관련해서는 원심은 '우연적인 방법으로 획득된 게임머니'라 함은 게임 내에 명확하게 베팅 또는 배당에 해당하는 요소를 찾아볼 수 없더라도 (마치 그러한 요소가 있는 경우와 같이) 개인의 노력이나 실력 등에 좌우되지 않는 우연적 요소로 게임의 승패가 결정되고 그에 따라 게임에 참가한 일부의 사람만이 자신이 게임참가 당시 본래 가지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은 이득, 즉 게임머니를 획득하게 된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Ⅳ. 쟁점의 분석 1. 게진법 조항의 배경 및 취지 이 사건에서 다투어진 게진법 제32조 제1항 제7호는 2007. 1.19. 게진법 개정을 통하여 새로이 추가된 조항으로서, 2006년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었던 이른바 '바다이야기' 사건이 있은 이후 도박성, 사행성 있는 게임머니의 환전을 금지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이다. 따라서 위 게진법 조항은 원칙적으로 고스톱, 포커 등의 이른바 '보드게임'이나 빠징코 등의 릴게임에 적용되는 것이고, MMORPG를 비롯한 일반적인 온라인 게임의 게임머니 등은 위 규정의 적용대상이라고 할 수 없다. 위 게진법 조항의 배경 및 취지를 고려할 때 도박성, 사행성 게임과는 무관한 MMORPG 게임머니에 대해서는 동 시행령 제3호의 소정의 게임 프로그램 자체를 복제, 개작, 해킹하거나 비정상적인 이용을 통하여 획득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위 게진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이러한 입장을 확인한 항소심 및 대법원 판결은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2. 동 시행령 각호 사유의 의미 동 시행령에 나열된 각호 사유에 대한 문언적 의미와 관련하여 먼저 제1호 사유의 적용대상은 결국 베팅 또는 배당의 수단이 되거나(제1호 전문) 우연적인 방법으로 획득한(제1호 후문) 게임머니를 의미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러한 개념징표가 게진법 제2조 제1호의 2 소정의 '사행성게임물'의 요건과 동일하다는 점이다. 게진법 제2조 제1호 2 가목은 '베팅이나 배당을 내용으로'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동호 나목은 '우연적인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 시행령 규정은 게진법 자체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행성 게임물의 개념 요건을 차용하고 있다고 할 것이고, '베팅 또는 배당의 수단'이나 '우연적인 방법으로 획득'이라는 문언은 결국 '사행성' 혹은 '사행성 있는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행성이란 '실력, 노력에 의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운이나 우연에 의하여 요행을 바라고 금전적 이익을 취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사행성의 개념과 관련하여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특례법 제2조 제1항 제1호는 '사행행위'란 '다수인으로부터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모아 우연적 방법에 의하여 득실을 결정하여 재산상의 이익 또는 손실을 주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고, 독일 민법은 사행성(aleatorisher Charaketer) 있는 노름과 내기에 대하여 제762조 내지 764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사행성의 정의 및 실정법 규정들을 종합한다면 사행성의 요건은 ① 당사자들 모두 재산상 손실의 위험을 부담하고 ② 의무발생이 우연 또는 주관적으로 불확실성과 연결되어 있으며 ③ 이러한 사실이 당사자 합의의 주된 내용이 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추후 게임관련 혹은 사행성 관련 법률 조항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사행성 요건 혹은 개념징표를 하나의 해석기준으로 이용할 수 있으리라 본다. MMORPG 게임머니로 돌아와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게임머니의 거래 혹은 환전에는 재산상 손실의 위험을 부담하는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MMORPG 게임머니는 게임 이용자가 게임 플레이의 일환인 전투, 사냥, 생산 등을 통하여 취득하는 것이고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 게임머니를 지급, 교환 및 이 사건에서 문제된 환전행위에도 상대방은 상호 합의한 대가를 지급 또는 교환하는 것이므로 '우연에 따라 손실 위험을 부담하는 당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취지에서 항소심은 이 사건 게임머니가 우연적 방법으로 획득된 게임머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고, 추가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매우 구체적으로 판시했다. ① 리니지 게임은 이른바 MMORPG로서 스토리 텔링(story-telling)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되고 ② 게임이용자는 5종족 중 하나를 선택하여 자신의 표상하는 캐릭터를 생성한 후 사냥, 대전 등을 통해 아덴, 아이템 등을 획득하고 이를 통하여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방식으로 게임에 참여하며 ③ 게임 내에서 아덴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속칭 '노가다 게임'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여야 하고 ④ 획득하는 아덴에 대해서는 사냥에 성공하기 전에 미리 알 수 없으며 ⑤ 특히 캐릭터와의 싸움을 통한 아덴 획득에 있어서는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무기 등의 아이템에 의지하는 바가 크고 ⑥ 획득된 아덴은 게임내 상인, 이용자들과 교환, 아이템 구입 등의 방식으로 사적 거래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의하면, 우연적인 요소보다는 게임 이용자들의 노력이나 실력, 즉 게임에 들인 시간이나 그 과정에서 증가되는 경험이라는 요소에 의하여 좌우되는 정도가 더 강하므로 아덴을 우연적인 방법에 의하여 획득된 게임머니라 할 수 없다고 설시 하였다. 기타 동 시행령 제2호, 제3호의 의미와 관련해서는 항소심에서 게진법 조항의 문언에 충실한 법 해석을 하였으므로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검토하지 않도록 하겠다. Ⅴ. 마치며 게진법 제정 이전부터 실무계에서는 MMORPG 게임머니나 게임아이템 현금 거래 및 환전행위가 적법한 것인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학계에서도 일부 이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져왔다. 특히 위 게진법 조항이 도입된 이후 동 조항이 다양한 형태의 게임 디지털콘텐츠의 거래행위에 어떠한 영향이 미칠지 불분명한 상황이었으나, 이번 판결을 통하여 MMORPG 게임머니 환전행위에 대한 명쾌한 법리적 판단기준이 제시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국내 게임 디지털콘텐츠 거래시장은 1조원을 훨씬 상회하는 규모로 성장하였고, 전세계적으로는 수천만명의 사람들이 MMORPG를 비롯한 온라인게임을 즐기고 있다. 이러한 국내외 게임업계 현황을 고려할 때 MMORPG 게임머니의 환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을 부인하여 위 게진법 규정의 가벌성 범위를 제한한 이 사건 판결은 매우 적절하다고 평가한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법적 공백상태와 다름 없었던 게임 디지털콘텐츠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법리적 연구가 시작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게임머니나 게임아이템 등의 게임 디지털콘텐츠 및 그 거래행위의 법적 성격, 게임 디지털콘텐츠의 소유권 혹은 권리귀속 관계, 인접 지적재산권과의 관계, 게임회사의 게임 디지털콘텐츠 현금거래 금지 등이 앞으로의 주요 연구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0-01-21
성중탁 변호사(서울)
부분적 포괄대리권 가진 상업사용인에 관한 법률적 쟁점
1. 대법원 2009. 5.28. 선고 2007다20440 판결의 사실관계 요약 원고는 1994년 11월경부터 피고로부터 통신기기를 공급받아 왔는데, 1999년 10월경부터는 피고 영업부 직원인 소외인을 통하여서만 피고와 거래하면서 원고가 매월 소외인에게 물품을 주문하여 이를 공급받고 다음 달 소외인이 원고에게 피고의 거래원장을 제시하면 원고가 그 대금을 결제하는 방식으로 거래하여 왔다. 소외인은 2000년경 원고에게 물품대금을 선불로 지급하여 주면 구입수량의 일정비율을 무상공급 하겠다고 제의하였고, 원고가 이를 승낙하여 원고와 소외인 사이에 수시로 무상거래를 수반한 선급금 거래가 이루어졌다. 소외인은 당초 주임으로 원고에 대한 영업을 담당하다가 원고와의 거래량이 늘어남에 따라 실적을 인정받아 2002년 계장을 거쳐 2003년경 팀장으로 승진하였다. 피고는 2000년경부터 2003년 5월경까지 사이에 이루어진 이러한 방식의 거래에 대하여 이를 알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한 바가 없다. 이러한 사실관계 하에서 제기된 원고의 본소 물품인도 청구에 대하여 피고는 소외인의 행위는 무권대리 행위에 기한 것이므로 본인인 피고에게는 그 책임이 없다고 항변하였고 이에 대하여 거래의 상대방인 원고는 상인인 피고에 대하여 표현지배인-부분적 포괄대리권을 가진 사용인-사용자책임의 법리를 전개하여 피고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였다. 2. 부분적 포괄대리권을 가진 상업사용인에 관한 법률적 쟁점 가. 개념 상업사용인(商業使用人)이란 특정한 상인에 종속하여 대외적인 영업상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를 말한다. 상법은 대리권의 유무와 범위의 넓고 좁음에 따라 ① 지배인(법10조 내지 14조), ② 부분적 포괄대리권을 가진 상업사용인(법15조), ③ 물건판매점포사용인(법16조) 등 3가지의 상업사용인을 인정하고 있다. 먼저, 지배인은 영업주의 본점 또는 지점의 영업전반에 관한 포괄적 대리권을 가진 상업사용인으로 통설은 지배인이란 영업주에 의하여 선임되고, 본점 또는 지점에서의 포괄적인 영업대리권이 부여된 상업사용인이라고 하면서, 이와 같은 권한이 부여되고 있는 한 붙혀진 명칭은 지배인뿐만 아니라 영업부장, 지점장 등이라도 상관없다고 본다. 또한, 상법 제16조제1항은 물건을 판매하는 점포의 사용인은 실제로 물건판매에 관한 대리권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그 판매에 관한 모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의제하는데, 이때의 사용인을 물건판매점포사용인이라고 한다. 또한, 상법 제15조의 부분적 포괄대리권을 가진 상업사용인이란, 영업의 특정한 종류 또는 특정한 사항에 관한 재판 외의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권을 가진 상업사용인을 말한다(대법원 2007. 8.23. 선고 2007다23425 판결). 나. 부분적 포괄대리권을 가진 상업사용인의 적용 요건 및 지배인의 대리권과의 구별 상법 제15조에 의하여 부분적 포괄대리권을 가진 상업사용인은 그가 수여받은 영업의 특정한 종류 또는 특정한 사항에 관한 재판 외의 모든 행위를 할 수 있으므로 개개의 행위에 대하여 영업주로부터 별도의 수권이 필요 없으나어떠한 행위가 위임받은 영업의 특정한 종류 또는 사항에 속하는가는 당해 영업의 규모와 성격, 거래행위의 형태 및 계속 반복 여부, 사용인의 직책명, 전체적인 업무분장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서 거래통념에 따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이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그 사용인의 업무 내용에 영업주를 대리하여 법률행위를 하는 것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부분적 포괄대리권을 가진 상업사용인의 선임과 종임은 등기사항이 아닌 점은 지배인과 다르다. 부분적 포괄대리권을 가진 상업사용인의 대리권은 ① 지배인과 같이 영업전반에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영업의 특정한 종류 또는 특정한 사항에만 미치는 점, ② 재판상의 행위에는 미치지 않는 점에서 지배인의 대리권과 또한 구별된다. 다. 상대방 보호사유 부분적 포괄대리권을 가진 상업사용인이 특정된 영업이나 특정된 사항에 속하지 않는 행위를 한 경우 영업주가 책임을 지기 위하여는 그 사용인의 업무 내용에 영업주를 대리하여 법률행위를 하는 것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어야 하고, 민법상의 표현대리(민법 제125조)의 법리에 의하여 그 상업사용인과 거래한 상대방이 그 상업사용인에게 그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대법원 1999. 7.27. 선고 99다12932 판결).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 1990. 1.23. 선고, 88다카3250 사건을 보면, '갑'은 '을' 주식회사의 경리부장으로서, '을'주식회사를 위하여 자금을 대출받는다는 명목으로 '병'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대출받아 개인적으로 횡령하였다. 위 대출이 만기가 되자 '병'은행은 '을'주식회사에 대하여 변제를 청구하였다. 이에 대하여 '을'회사는 위 거래는 갑의 개인적인 횡령행위임을 들어 그 변제를 거부한 사안에서 이에 대하여 '병'은행은 ① 주식회사의 경리부장에게는 자금차용과 관련하여 상법 제15조의 부분적 포괄대리권이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주식회사의 경리부장은 경상자금의 수입과 지출, 은행거래, 경리장부의 작성 및 관리 등 경리사무 일체에 관하여 그 권한을 위임받은 것으로 봄이 타당하나 그 지위나 직책, 회사에 미치는 영향, 특히 회사의 자금차입을 위하여 이사회의 결의를 요하는 등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독자적인 자금차용은 회사로부터 위임되어 있지 않다고 할 것이므로 경리부장에게 자금차용에 관한 상법 제15조의 부분적 포괄대리권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시는 부분적 포괄대리권 자체가 없다는 취지가 아니라 경상자금의 수입과 지출, 은행거래, 경리장부의 작성 및 관리 등 경리사무에 관하여는 부분적 포괄대리권을 가지나 이사회의 결의 사항인 자금차용에까지는 그 대리권이 미치지 않는다는 취지이다. ② 또한 '갑'의 차금행위가 '을'회사와의 관계에 있어서 권한을 넘은 표현대리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대법원은 '병'은행의 직원이 대부담당 사무계통을 통하여 적법한 '을'회사의 차금요청이 있었는가를 확인하는 등 '병'은행 소정의 대출절차를 밟았더라면 '을'회사의 경리부장인 '갑'에게 대리권이 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었던 경우에는 비록 위 은행직원이 '을' 회사의 경리부장에게 자금차용에 관한 대리권이 있었다고 믿었더라도 거기에는 위와 같은 주의를 다하지 아니한 과실이 있었다고 할 것이어서 '병'은행으로서는 '을'회사에게 표현대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③ 마지막으로 '을'회사에 대하여 사용자책임을 주장하였는 바, 대법원은 '병'은행의 직원은 '을'회사의 경리부장인 '갑'에게 자금차용에 관한 대리권이 있었던 것으로 믿고 자기앞수표 발행 등을 하였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을'회사의 경리부장으로서 은행거래, 유가증권의 할인 등에 의한 회사자금조달 등의 사무를 집행하는 자인 '갑'의 차금행위는 외형상 그 사무집행에 관하여 이루어진 것이라 할 것이므로 '을' 회사는 위 경리부장 갑의 사용자로서 '병'은행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부담한다고 판시하였다. 한편 위 사건에서 '을'회사(피고)는 '병'은행(원고)이 '을'의 직원인 '갑'의 행위가 그 직무권한 내에서 적법하게 행하여진 행위가 아님을 알았거나, 알지 못한 데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여 사용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항변하였을 것으로 예상되는 바,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 2007. 9.20. 선고 2004다43886 사건은 "피용자의 불법행위가 외관상 사무집행의 범위 내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도 피용자의 행위가 사용자나 사용자에 갈음하여 그 사무를 감독하는 자의 사무집행행위에 해당하지 않음을 피해자 자신이 알았거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경우에는 사용자 또는 사용자에 갈음하여 그 사무를 감독하는 자에 대하여 사용자책임을 물을 수 없는데, 법인이 피해자인 경우 법인의 업무에 관하여 포괄적 대리권을 가진 대리인이 가해자인 피용자의 행위가 사용자의 사무집행행위에 해당하지 않음을 안 때에는 피해자인 법인이 이를 알았다고 보아야 하고 이러한 법리는 그 대리인이 본인인 법인에 대한 관계에서 이른바 배임적 대리행위를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라고 판시하여 "증권회사 직원이 피해자 회사의 자금담당부분에 대한 포괄적 대리권을 가진 '경리이사'와 공모하여 예금계좌에 입금한 피해자 회사의 자금으로 임의로 주식거래를 한 사안에서, 위 증권회사 직원의 행위가 증권회사의 사무집행행위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위 경리이사가 알고 있었으므로 피해자 회사가 이를 알았다고 보아 피해자 회사는 위 증권회사에 대하여 사용자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시한 사례가 있다. 즉, 대법원의 태도는 피해자 회사의 이사 등 포괄적 대리권을 가진 사람이 상대방 사용자 회사 직원의 불법행위 사실을 안 경우에는 피해자 회사 자신이 이를 알았거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민법 제756조 소정의 사용자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보는 반면, 부분적 포괄대리권을 가진 경리부장 내지, 자금담당 대리, 과장 내지 그 이하의 지위에 있는 직원의 경우에는 회사의 포괄적 대리권을 가지 직원이라고 볼 수 없다고 보아 사용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으로 정리된다. 3. 정리-이 사건의 경우 및 사견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소외인은 피고의 영업부직원으로서 주임, 계장 및 팀장이라는 이름으로 원고와 계속하여 거래를 하여 오면서 물품의 공급과 대금의 회수 등을 전담하여 온 점에서 상법 제15조 소정의 영업의 특정사항에 대한 위임을 받은 사용인으로서 그 업무에 관한 부분적 포괄대리권을 가진 상업사용인으로 봄이 타당하고 그 업무 범위 속에는 판매계약 체결, 상품 및 대금을 수수, 감액, 지급유예 등 상품매매에 수반해서 발생하는 모든 영업상의 행위에 대해 영업주를 대리하는 권한이 포함된다고 보아 소외인이 원고에게 선급금거래의 방식으로 물품을 무상으로 공급한 거래 권한까지 있고 판시하였다. 일반 상거래에서 상업사용인의 선임은 상인의 의사표시로 족하며 이 의사표시는 묵시의 것도 무방하므로 실제 거래에서는 상인의 사용인이 상업사용인에 해당하는지 여부, 해당한다면 어떤 종류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거래 이후에 상인 본인이 사용인의 권한 없음(무권대리)을 이유로 거래의 효력을 부인하는 경우 거래 상대방(원고 측)은 순차적으로, 상인 본인에 대하여, 지배인→표현지배인→부분적 포괄대리권을 가진 사용인→표현대리→사용자책임을 각각 추궁(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대체로 그 단계가 뒤로 갈수록 인용가능성은 높아질 수 있겠으나, 본연의 계약 책임이 아닌 불법행위 책임에 이르게 되므로, 청구하는 원고로서도 손해배상청구의 책임제한 법리에 따라 과실상계를 상당히 당하게 될 염려(인용금액이 낮아지게 됨)가 높아지는 구조라고 할 수 있겠다)해야 할 것이다. 대상 판결들은 그 논리구조와 함께 원고 측과 피고 측이 소송상 유의하여 주장·입증해야 할 사항을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모범사례라고 생각된다.
2009-12-03
고동원 교수(성균관대 법학과)
키코(KIKO) 파생상품 계약 관련 가처분 결정에 관한 검토
I. 서론 2008년 11월경부터 수출 중소기업들이 소위 ‘키코(KIKO)’ 파생상품 계약의 무효, 취소 등을 주장하며 시중은행들을 상대로 본안 소송 및 가처분을 제기하면서, KIKO 계약이 사회적 관심을 끌게 되었다. 특히 가처분 결정은 해당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은행 등 금융 실무계 전체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데, 본 평석은 KIKO 계약과 관련된 쟁점 중 서울중앙지법 2009. 4.24. 2009카합393 결정에서 제기된 적합성 원칙과 설명 의무 쟁점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검토를 하고자 한다. II. 사안의 개요 KIKO 계약은 통상 넉인·넉아웃(knock-in·knock-out) 조건 및 레버리지(leverage) 조건이 결부된 통화옵션계약(풋옵션(put option) 매수와 콜옵션(call option) 매도의 결합)을 칭하는데, 대개는 일반 선물환 계약과 마찬가지로 기업들이 장래 환율 변동과 상관 없이 행사 환율을 고정하여 외화를 매매하기 위하여 은행과 체결하며, 만기의 시장 환율에 따라 구간별로 수익 구조가 달라진다. 즉, KIKO계약에서는 ① 단위 기간(관찰 기간)동안 만기 환율이 행사 환율보다 낮은 경우에는 기업이 행사 환율에 외화를 은행에 매도할 수 있는 풋옵션을 보유하여 환율 하락에 따른 환차손을 방지할 수 있지만 환율이 행사 환율보다 하단에 정해진 넉아웃(knok-out) 환율보다도 더 하락하면 당해 계약은 소멸하게 되어 기업은 환율 하락 위험에 노출되게 되고(넉아웃 조건), ② 관찰 기간 동안 환율이 행사 환율보다 높지만 행사 환율보다 상단에 정해진 넉인(knock-in) 환율보다는 낮은 경우에는 당해 계약은 효력을 발하지 않고 기업은 시장에서 외화를 매도하여 환율 상승에 따른 환차익을 보게 되며, ③ 관찰 기간 동안 환율이 넉인 환율보다 상승하는 경우에는 은행은 기업으로부터 행사 환율에 외화를 매수할 수 있는 콜옵션을 보유하는데, 이 때의 외화 결제 금액은 풋옵션 금액보다 통상 2배로 정해진다(넉인 및 레버리지 조건). 결과적으로 만기 환율이 넉인 환율과 넉아웃 환율 사이에서 형성되는 경우 기업이 이익을 보게 되고, 만기 환율이 넉아웃 환율 이하 혹은 넉인 환율 이상에서 형성되는 경우 손해를 보게 된다. 다만, 만기 환율이 넉인 환율 이상에서 형성되는 경우이더라도 수출로 유입되는 외화의 가치 상승분 만큼은 KIKO 계약에서 입게 되는 손해가 전보되므로, 외화 유입액이 KIKO 계약 금액을 넘는 이상 기업의 실제 손해는 없게 된다. 수출 중소기업들은 KIKO 계약 체결 무렵 환율이 지속적으로 안정적 하락 추세를 보이자 장래 환율도 제한된 범위에서 하락 추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KIKO 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예상과 달리 2008년 하반기부터 환율이 급등하고 경기 침체까지 심화되어 상당한 환차손을 입게 되자 집단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다. 2008. 12.30. 서울중앙지법가처분 재판부는 신청인 기업들의 주장 중 KIKO 계약의 불공정성에 기한 무효 주장, 사기(詐欺) 내지 착오에 기한 취소 주장은 배척하였으나, 환율 및 환율 내재 변동성의 급등으로 인한 사정 변경에 의한 해지권 주장을 인정하여 가처분의 일부 인용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후 2009. 4.24. 새로운 가처분 재판부가 여러 건의 가처분 결정을 내렸는데(2009카합393 결정, 2009카합207 결정 및 2009카합504호 결정 등), 본 평석의 대상인 2009카합393결정(이하 ‘본 건 결정’)에서 법원은 원고의 계약 무효·취소 주장 및 사정 변경에 의한 해지권 주장은 모두 배척하였으나, 은행의 적합성 원칙 및 설명 의무 위반을 인정하고 가처분 일부 인용 결정을 내렸다. III. 적합성 원칙 및 설명 의무 관련 판시 사항 1. 적합성 원칙 관련 사항 법원은 “은행은 기업에게 은행이 갖는 콜옵션의 최대 계약 금액이 기업의 평균적인 외화 순유입액(외화수입액-외화지출액) 또는 기업이 감수할 수 있는 범위를 넘지 않도록 제안해야 하고, 기업이 자신의 외화 수급 현황을 예측할 수 있는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계약 기간을 제안해야 하며 계약의 구조 자체(특히 A/B파트 구조1)에서 환투기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환위험 회피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제안해야 한다”라고 하며, 이 사건 계약에 적용되는 적합성 원칙의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하였다. 상기 기준에 따라 법원은 “이 사건 각 계약의 계약 금액은 계약 당시 신청인의 월 수출액이 100만 달러를 상회하고 있었던 점에 비추어 특별히 과다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계약 기간이 모두 2년으로서 장기간인데 그 기간 동안의 수출시장 전망이나 외화수급 현황이 안정적 기조로 유지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는 특별한 사정에 대한 소명이 없다. 또한 위 각 계약은 모두 A/B파트 구조로 되어 있는 바, 신청인은 주로 A파트에서만 환위험을 회피할 수 있을 뿐 B파트에서는 행사 환율과 넉아웃 환율 사이의 간격이 10원 또는 2원에 불과하여 환위험 회피의 효과는 거의 달성할 수 없는 반면, B파트에서의 피신청인들의 콜옵션 계약 금액은 A파트에서의 신청인의 풋옵션 계약 금액의 각 2배이고 제2계약의 경우 계약 기간이 A파트는 8개월인데 B파트는 16개월이나 되어 환율 상승시 신청인의 손실이 크게 확대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위와 같이 이 사건 각 계약은 신청인과 같이 환위험 관리 능력이 부족한 중소 수출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거래 손실의 위험성을 안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위험을 간과할 개연성이 높은 구조적 특징으로 인하여 신청인의 거래 목적에 적합하지 아니한 측면이 있음에도 피신청인들은 그 위험성을 명확히 고지하였다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인 판촉 활동 등을 통하여 신청인의 계약 체결을 조장하였다는 점에서 적합성 원칙을 위반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하여 적합성 원칙 위반을 인정하였다. 2. 설명 의무 관련 사항 또한 법원은 이 사건 계약에서의 설명 대상에 대하여 “은행은 이 사건 각 계약과 같은 통화옵션계약을 체결하려면 계약 체결 이전에 기업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충실하게 설명하고 이해시킬 의무가 있다. ① 통화옵션계약의 기본 구조… ② 통화옵션계약에 의하여 회피되는 환위험의 범위… ③ 기업이 계약 체결로 인하여 새롭게 부담하게 되는 위험의 발생 가능성 및 정도… ④ 계약 관계에서 탈퇴하는 방법… 및 ⑤ 옵션에 대한 가격 정보…”라고 설시하였으며 특히 위 ③과 관련해서는 “기업이 환위험 회피의 대가로 새로운 위험을 부담하게 되고 그 위험의 정도가 회사 재정에 결정적인 부담을 지울 수도 있다는 사정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향후 환율이 상승하는 경우에는 기업에게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며, 특히 계약금액이 기업의 평균적 외화 순유입액을 초과할 경우(소위 ‘오버헤지’의 경우)에는 그 손실 범위가 무제한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인식시켜야 한다”고 설시하고 위 ⑤와 관련해서는 “이 사건 각 계약과 같은 통화옵션계약은 본질적으로 옵션의 상호 매매의 성질을 가지므로 그 거래 목적물의 가격 구조, 즉 기업과 은행이 취득하는 개별 옵션의 평가 가격에 관한 구조와 은행이 취득하는 마진이 그 가격에 반영되어 있다는 점 및 마진의 기본적인 산정 방식(은행이 취득하는 옵션의 계약 금액 총액에 일정 범위의 마진율을 곱하여 산출된다는 점 등)을 알려 주어야 한다”라고 설시하였다. 나아가 법원은 설명 방식에 관해서도 “전화 통화로 계약을 체결한 후 거래 확인서나 위험 고지서를 팩스로 보내는 정도로는 부적절… 관계자를 대면하거나 서면, 전자우편 등 정식의 문서 형태에 의해야 하고, …전화 상담 형식으로 기업측에서 궁금해 하는 사항에 답변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또한 외국어로 되어 있거나 알기 어려운 투자 관련 전문 용어로 되어 있는 문서를 교부하는 것만으로는 설명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시하였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법원은 “피신청인들은 이 사건 각 계약의 구조와 특성, 신청인이 부담할 위험의 내용과 정도 등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사전에 상대방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기록 및 심문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신청인은 이 사건 각 계약 체결 이전에 통화옵션 거래의 경험이 많지 않았고…, 이 사건 각 계약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한 신청인 대표이사… 도 본 건과 같은 장외 파생상품에 관한 전문성이나 사전 지식이 많지는 않았던 점이 인정되므로, 이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 사건 각 계약의 체결 과정에서 피신청인들은 전문 금융기관으로서 해야 할 설명 의무를 다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여 은행의 설명 의무 위반을 인정하였다. IV. 평석 1. 적합성 원칙 2009년 2월부터 시행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에서는 금융투자상품의 투자권유 시 적용되는 적합성 원칙에 대한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다(자본시장법 제46조). 동법 시행 전에는 사법상 책임의 근거로서 명문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지만, 대법원은 금융기관의 고객 보호 의무의 일환으로서 “고객의 투자 상황에 비추어 과대한 위험성을 수반하는 거래를 적극적으로 권유한 경우”에 한하여 적합성 위반을 인정하여 왔다(대법원 2008. 9.11. 선고 2006다53856 판결; 대법원 1994. 1.11. 선고 93다26205 판결 등). 즉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투자자는 자기 책임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투자로 인해 발생할지 모르는 손실을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예외적으로 금융기관이 고객의 투자 상황에 비추어 과대한 위험성을 수반하는 거래를 적극적으로 권유한 경우에 한하여 적합성 원칙 위반에 따른 위법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적합성 원칙에 의하여 금융기관이 투자자에게 지도 조언을 해야 할 적극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적합성 원칙(소위 Suitability Principle)은 미국에서 유래하여 일본에서도 도입된 원칙으로서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적합성 원칙은 명백히 부적합한 상품을 권유해서는 아니 될 소극적 의무로 이해되고 있으며 그 위반으로 인한 손해 배상 책임도 투자 권유 행위가 사기(詐欺)에 준하는 정도이거나 투자자의 판단 능력 등에 비추어 당해 상품의 투자를 권유하는 것 자체가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없어 적합성 원칙의 일탈이 현저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인정되고 있다(일본 최고재판소 2005. 7.14. 판결; 센다이 고등재판소 1997. 2.28. 판결 등 참조). 본 건 결정은 “이 사건 각 계약의 전체 구조로 볼 때 환헤지 상품으로서는 전혀 부적합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단지 상품 구성에 있어서 본래의 계약 목적에 좀 더 충실할 수 있는 거래 조건에 대한 고려를 소홀히 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하면서도, 당해 기업의 외화 순유입액 등에 비추어 볼 때 은행이 수출 중소기업에게 부적합한 상품을 권유한 것이라고 하여 적합성 원칙의 위반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 내용은 적합성 원칙의 내용으로서 최적의 상품을 지도 조언할 의무까지 금융기관에게 부과하는 것이 되어 기존의 대법원 판례의 태도나 국제적 기준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한 결론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즉 KIKO 계약을 포함하여 통화옵션 상품들은 그 구조 및 이용 방법에 따라 다양한 환헤지의 기능을 할 수가 있으므로 환변동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수출 중소기업들에게 통화옵션 상품을 권유하는 것 자체가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없어 적합성 원칙의 일탈이 현저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2. 설명 의무 한편, 자본시장법에서는 금융투자상품의 투자 권유 시 설명 의무에 관한 일반적인 규정을 두고 있다(자본시장법 제47조). 자본시장법 시행 이전에는 금융기관 업종에 따라 각 관련 법령에서 설명 의무에 대한 규정을 달리하였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는 명문 규정이 없어도 신의칙(信義則)에 기하여 금융기관의 고객 보호 의무의 일환으로서 설명 의무를 인정하여 왔다(대법원 2006. 6.29. 선고 2005다49799 판결; 대법원 2003. 7.11. 선고 2001다11802 판결 등). 즉 적합성 원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투자자는 원칙적으로 자기 책임의 원칙에 따라 투자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나, 그 전제로서 투자자가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정보가 주어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금융기관의 설명 의무가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기 책임 원칙과 설명 의무의 관계를 고려하여, 대법원 판례는 설명 의무의 내용으로서 당해 계약의 모든 사항이 아니라 “투자에 따른 위험을 포함하여 특성과 주요 내용”을 설명하면 족하다고 판시하고 있으며 그 이행 수준에 있어서도 실질을 중시하여 거래 경위와 거래 방법, 고객의 투자 상황(재산 상태, 연령, 사회적 경험 정도 등), 거래의 위험도 및 이에 관한 설명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계약의 중요 사항에 관해 설명이 되었다면 설명 의무의 위반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대법원 2006. 5.11. 선고 2003다51057 판결 등). 본 건 결정에서 법원은 위에서 본 다섯 가지 사항을 설명하였어야 한다고 하고 있는데, 그 다섯 가지 중 ‘① 통화옵션계약의 기본 구조 ② 통화옵션계약에 의하여 회피되는 환위험의 범위’는 당연히 설명되어야 할 사항이나 나아가 ‘③ 기업이 계약 체결로 인하여 새롭게 부담하게 되는 위험의 발생 가능성 및 정도’를 위 ①, ②와 구별되는 별도의 설명 의무 대상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즉, 법원의 입장은 넉인 환율 이상으로 환율이 상승할 경우 기업이 외화 매도 의무를 부담하므로 외화 현물이 없으면 그 만큼 환차손을 입게 되고 또한 환율 상승은 이론적으로 무제한이므로 기업이 입을 손실도 무제한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설명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내용은 KIKO 계약의 구조상 자명한 내용인 것이다. 환율이 예측 불가능하고 그 변동폭에 제한이 없다는 것은 경제 활동을 하는 자, 특히 수출기업에게는 주지의 사실이라고 할 것이므로 은행이 기업에게 KIKO 계약 구조를 설명하였다면 기업으로서는 환율 상승 시 손실 가능성(환율의 무제한 상승 시 무제한의 손실 가능성)을 당연히 인식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율의 무제한 상승 가능성’ 및 그로 인한 기업의 ‘무제한 손실 가능성’을 별도의 항목으로 명시적으로 설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설명 의무의 범위를 넘어서서 투자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다시 한번 ‘경고할 의무’까지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이라고 본다. ④의 경우에도 결국은 탈퇴 당시의 손해를 배상하고 당사자간 합의에 따라 계약을 종료할 수 있음을 설명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KIKO 계약의 특징적인 내용이라기 보다 계약 종료의 일반적인 원칙에 불과하여 별도의 설명 의무의 대상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⑤와 관련해서도 상거래에서 고객이 지불해야 하는 ‘가격’과 상인이 취득하는 ‘마진’은 전혀 다른 내용이며 마진에 대한 설명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법적 근거도 없고 상거래 관행에도 어긋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본 건 결정에서 ‘옵션에 관한 가격 정보’를 설명 의무의 대상으로 하면서 나아가 ‘마진 정보’에 대하여서 까지 설명 의무를 부과한 것은 가격과 마진을 혼동하여 설명 의무 대상을 너무 확대한 것이라고 본다. 또한 본 건 결정에서는 전화 상담이나 외국어 서류 교부만으로 부족하다고 하며 설명 방식도 제한하고 있으나, 이와 같이 설명 방식을 일괄적으로 제한할 근거는 없다고 보며 각 계약마다 실질적으로 설명 의무가 이행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본 건과 같은 장외 파생상품 거래에서는 실시간 변화하는 시장 상황을 반영하기 위하여 전화 상담이 오히려 적절할 수도 있으며 영어로 작성되는 수출계약을 업무상 다수 체결하는 수출기업에게 영어 서류가 부적절하다고 단정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V. 결론 본 건 결정에서 법원이 인정한 수준의 적합성 원칙 및 설명 의무는 투자자의 자기 책임의 원칙과의 균형을 깨뜨리고 금융기관에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서 기존의 대법원 판례 및 국제적 기준에도 맞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과도한 의무를 금융기관에 부과하면서 그 위반을 이유로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당장 문제되는 사건에서 수출 중소기업들의 구제 수단은 될 수 있겠으나, 은행 등 금융기관이 향후 법원에서 인정한 수준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거래 비용의 과다한 증가가 불가피하고 이로 인하여 금융기관들이 해당 거래를 회피하게 됨으로써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금융 거래를 할 수가 없게 되고, 거시적으로는 금융시스템의 붕괴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고 보는데, 향후 이에 관한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200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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