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설
대법원은 대상판결을 통해 부동산 등 소유권 이전을 위하여 등기나 등록을 요하는 물건(이하에서는 편의상 "부동산"이라 하고, 그 외의 물건을 "동산"이라 한다)의 경우 정지조건부 소유권이전 합의의 하나인 소유권유보부매매가 허용되지 아니함을 명확히 하였다. 그러나 우리 법은 정지조건부 소유권이전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이에 비하여 독일 민법은 토지 소유권이전의 합의에 조건을 붙일 수 없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에 대하여 쉽사리 부정적인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특히 판례나 통설은 해제조건부 법률행위의 효력을 그대로 인정해 왔는데(그에 따라 부동산등기법에서도 해제조건부 물권변동을 허용하고 있다), 정지조건부 소유권이전을 달리 볼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의 당부에 대한 논의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대상판결의 타당성에 대하여 간략하게나마 검토해 보고자 한다.
2. 대상판결의 요지
부동산과 같이 등기에 의하여 소유권이 이전되는 경우에는 등기를 대금완납시까지 미룸으로써 담보의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소유권유보부매매의 개념을 원용할 필요성이 없고, 일단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여 준 이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수인에게 소유권이 귀속된다.
자동차, 중기, 건설기계 등은 비록 동산이기는 하나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등록에 의하여 소유권이 이전되므로, 역시 소유권유보부매매의 개념을 원용할 필요성이 없다.
3. 검토
가. 조건과 물권변동에 대한 판례의 태도 개관
(1) 정지조건과 물권변동
먼저, 대법원은 대상판결에서 부동산의 경우 정지조건부 소유권이전의 하나인 소유권유보부매매를 허용하지 아니하였다.
이에 비하여 판례는 동산의 경우 소유권유보부매매가 허용된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1999. 9. 7. 선고 99다30534 판결, 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9다93671 판결 등 참조. 참고로 2009다93671 판결의 판시사항을 부동산에 대한 것으로 적절히 바꾸면, 가령 동산을 부동산으로, 인도를 등기로, 선의취득을 허위표시의 선의의 제3자 보호 등으로 적절히 변경하면 부동산의 경우 소유권유보부매매가 인정된다는 무척 그럴듯한 문장이 만들어지는데, 직접 해보시길 권한다).
(2) 해제조건과 물권변동
해제조건부 법률행위의 경우 해제조건 성취 시 이미 발생한 물권변동의 효력이 어떻게 되는지 문제되는데, 판례는 해제조건 성취 시 동산과 부동산의 소유권이 원래의 소유자에게 곧바로 복귀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대법원 1976. 12. 28. 선고 76므41, 76므42 판결, 대법원 1992. 5. 22. 선고 92다5584 판결 등 참조).
참고로 학설도 해제조건부 처분행위의 해제조건이 성취된 경우, 독일이나 일본과 같이, 그 처분행위는 효력을 잃고, 물권은 곧바로 처분행위자에게 돌아간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다만, 독일에서는 민법에서 토지 소유권이전의 합의인 Auflassung에 조건이나 기한을 붙일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에 대한 해제조건부매매도 인정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변동열, 실권약관부 매매계약-해제조건부 법률행위의 효력, 민사판례연구XX, 167면 및 173면 이하 참조).
나. 대상판결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
(1) 대상판결의 논리 전개에 대한 의문
대상판결의 근본적인 문제는 단지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부동산의 경우 소유권유보부매매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는 데 있다고 생각된다. 대상판결이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소유권유보부매매라는 측면에서 동산과 부동산을 달리 취급할, 양자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에 대한 설시가 있었어야 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상판결로 인하여 소유권유보부매매가 허용되지 않게 된 자동차는 종래에 소유권유보부매매의 설명에 단골로 등장하였는데, 이는 자동차에 대한 소유권유보부매매의 필요성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소유권유보부매매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논리는 실제적인 측면에서도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2) 부동산의 소유권유보부매매의 허용 여부
부동산의 소유권유보부매매가 허용될 수 있는지 여부는 쉽게 결론을 내기에 조심스러운 문제임은 분명하지만, 결론적으로 부동산의 소유권유보부매매(보다 일반적으로 정지조건부 소유권이전 합의)가 허용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가) 우리 민법상 법률행위에 의한 부동산 소유권이전의 효력이 (a) 법률행위(물권행위)와 (b) 그에 합치하는 등기에 의하여 발생하는 이상, 정지조건부 소유권이전 합의의 경우 정지조건이 성취될 때까지는 등기가 행해졌다고 하더라도 소유권이 이전되었다고 볼 수가 없고, 따라서 정지조건 성취 시에 해당 이전등기는 비로소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등기가 되어 이때에 소유권이 이전된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허위표시에 따른 등기가 있는 경우 소유권이전은 효력이 없더라도 그 후 허위표시의 당사자들이 새로이 소유권이전에 대한 합의를 하면 그때부터 유효하게 소유권이 이전된다는 점을 부인할 이유가 없을 것인데, 그렇다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하나로 합하여 정지조건부로 소유권이 이전된다는 합의를 하는 것을 불허할 합리적인 이유도 없다고 생각된다(정지조건부 소유권이전 합의를 허용하는 경우에는 당사자 사이에서 더 세밀한 법률관계를 정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을 수 있다).
오히려 '등기에도 불구하고 매매대금이 완납된 때에 소유권이 이전되는 것'으로 하는 합의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여 무조건의 소유권이전을 인정하는 것은, 매도인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기대한 것과 달리 소유권을 상실하는 결과를, 매수인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기대한 것과 달리 소유권을 취득하는 결과를 인정하는 것인데, 당사자 쌍방이 합치하여 의도한 바를 무시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다.
(나) 더욱이 이러한 정지조건을 두는 것을 허용한다고 하여 누가 부당하게 불리하게 되는 것도 아니라고 보인다. 즉, 정지조건이 성취되기 전에 해당 부동산을 매수하는 등 부동산의 정지조건부 소유권이전 합의에 따라 외관상 형성된 법률관계를 토대로 새로운 법률상 이해관계를 가진 선의의 제3자는, 당사자의 의사에 의한 법률행위 무효의 경우에 외관을 보호하는 기본 제도인 허위표시에서의 제3자 보호 규정(민법 제108조 제2항)의 적용(또는 유추적용)을 받을 수 있을 것이어서, 정지조건부 소유권이전 합의의 효력을 인정한다고 하여 제3자가 불측의 손해를 입게 되는 문제도 발생하지 아니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 또한 가령 매매대금의 지급을 담보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매매대금을 납입하지 않는 것을 해제조건으로 하여 부동산을 매매하고 등기를 이전하는 방식'을 허용하면서, '매매대금 완납을 정지조건으로 하여 그 성취 시 그 소유권이전의 효력이 발생하도록 하는 합의를 하고 미리 등기를 이전하여 주는 방식'을 허용하지 아니할 이유는 무엇인지 의문이다.
(라) 결국 법령에 명시적인 금지 규정이 없는 이상, 부동산의 경우에도 동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소유권유보부매매를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다. 대상판결을 위한 논리 제공의 시도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정지조건부 소유권이전의 합의가 허용되어서는 아니 될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보이지만, 부동산의 정지조건부 소유권이전을 인정하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우려(물론 이러한 우려가 정말로 있는지, 그 우려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를 고려하면, 대법원의 태도가 변경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대상판결의 태도를 변호할 수 있는 논리 구성을 생각해 보는 것도 무용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일단 대상판결에서 전제된 것으로 보이는, '물권변동은 그 성립요건인 등기나 인도가 갖추어진 시점에 발생하여야 하므로, 물권변동의 성립요건인 등기나 인도가 갖추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조건이 성취된 때로부터 비로소 소유권이 이전된다고 약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규범'으로 설정하자(그 타당성은 논외로 한다).
이제 기존의 동산의 소유권유보부매매를 "매매대금이 완납될 때까지, 담보를 위하여, 매도인이 매매대금의 완납 전에 매수인으로 하여금 해당 동산을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현실인도(간접점유의 설정으로서, 소유권이전을 위한 인도가 아니다)하여 주되, 매수인이 매매대금을 완납하는 것을 정지조건으로 하여 '간이인도' 방식으로 소유권이전을 위한 인도가 이루어지는 매매계약"으로 해석하여 보자(당사자의 의도를 고려하면, 이러한 구성은 법률행위 해석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보면, 대금이 완납된 때에 소유권을 이전하기로 하는 물권적인 합의가 있고, 동산 소유권이전의 성립요건인 '인도' 또한 대금 완납 시에 이루어지며, 그 소유권이전은 인도 시에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대금 완납 시에 소유권이 이전된다는 정지조건부 소유권이전의 목적도 그대로 달성할 수 있으면서도, 위 규범에 따라 물권변동 시점을 인도 시점과 동일하게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구성이 가능한 것은, 근본적으로 인도가 그 목적에 따라 달리 표현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의사표시에 의한 인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등기의 경우에는 '이미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졌음에도 매매대금의 완납 시에 비로소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지는 것'으로 구성할 수가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대법원이 동산과 부동산을 구분하여 규율한 것은 어느 정도 합리성이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