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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경천 변호사(법무법인 가족)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원칙적으로 '불가'… 예외사유는 '확대'
-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3므 568 전원합의체 판결- 1. 들어가면서 대법원은 1965년 혼인파탄에 책임 있는 배우자(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한 이후 엄격한 유책주의를 유지해 왔다. 대법원은 유책배우자가 청구한 이혼사건을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에 회부하여 판례변경 여부를 검토하기 위하여 지난 6월 공개변론까지 열었다. 이번 대법원 선고에 나타난 대법관들의 입장은 팽팽하게 나뉘었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6명의 대법관 등 7명은 유책주의 입장에서 종전 판례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다수의견)이었고, 주심 대법관을 포함한 6명은 파탄주의 입장에서 종전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반대의견)이었다. 2. 전원합의체 판결의 사실관계 원고와 피고는 1976년 3월 9일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부부로서 그 사이에 성년인 자녀 3명을 두고 있는데, 원고는 2000년 1월경 집을 나와 원고의 딸을 출산한 여자와 동거하고 있고, 피고는 원고가 집을 나간 후 혼자서 세 자녀를 양육하였다. 피고는 직업이 없고 원고로부터 생활비로 지급받은 월 100만 원 정도로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그나마 2012년 1월경부터는 원고로부터 생활비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었다. 피고는 원심 변론종결 당시 만 63세가 넘는 고령으로서 위암 수술을 받고 갑상선 약을 복용하고 있는 등 건강이 좋지 아니하며 원고와의 혼인관계에 애착을 가지고 혼인을 계속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3. 유책주의의 예외 대법원은 "상대배우자도 이혼의 반소를 제기하고 있는 경우 혹은 오로지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표면적으로는 이혼에 불응하고 있기는 하나 실제에 있어서는 혼인의 계속과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행위를 하는 등 그 이혼의 의사가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에는 비록 혼인의 파탄에 관하여 전적인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라 할지라도 이를 인용함이 상당하다"고 판시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1987.4.14. 선고 86므28 판결 등). 4. 이른바 '유책성 풍화론'을 적용한 판결 대법원은 가출한 처(A녀)가 기형인 혼외자를 출산한 후 이혼청구를 한 사례에서 'A녀와 남편의 혼인관계는 11년이 넘는 장기간의 별거 등 A녀로 하여금 현 상황에까지 이르게 한 남편의 책임이 경합하였다고 할 것인 점, A녀와 남편 사이의 부부공동생활 관계의 해소 상태가 장기화 되면서, A녀의 유책성도 세월의 경과에 따라 상당 정도 약화되고, A녀가 처한 상황에 비추어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법적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현 상황에 이르러 A녀와 남편의 이혼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파탄에 이르게 된 데 대한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의 법적·사회적 의의는 현저히 감쇄되고, 쌍방의 책임의 경중에 관하여 단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 역시 곤란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이는 점, A녀와의 이혼을 거절하는 남편의 혼인계속의사는 일반적으로 이혼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반드시 참작하여야 하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A녀와 남편이 처한 현 상황에 비추어 이는 혼인의 실체를 상실한 외형상의 법률혼관계만을 계속 유지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보이고, 남편의 혼인계속의사에 따라 현재와 같은 파탄 상황을 유지하게 되면, 특히 A녀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계속 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참작하여 보면, A녀와와 남편의 혼인은 혼인의 본질에 상응하는 부부공동생활 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그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고 할 것이며, 혼인제도가 추구하는 목적과 민법의 지도이념인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혼인관계의 파탄에 대한 A녀의 유책성이 반드시 A녀의 이혼청구를 배척하지 않으면 아니 될 정도로 중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A녀와 남편의 혼인에는 민법 제840조 제6호에서 정한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라는 이혼원인이 존재한다'고 판결함으로써(대법원 2009.12.24. 선고 2009므2130 판결) 유책주의의 완화하였다. 5.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내용 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다수의견은 유책배우자라도 재판상 이혼이 불가능할 경우 상대방에게 진솔한 마음과 충분한 보상을 통하여 협의상 이혼(2014년 기준 이혼 중 77.7%가 협의상 이혼)을 할 수 있는 점, 이혼당사자에게 재산분할청구권과 면접교섭권이 부여되고 여성의 법적 지위가 개선되었지만 파탄주의 입법례에서 두고 있는 가혹조항이 없고 이혼 후 부양 등 입법적조치가 부족한 점, 간통죄가 폐지된 상황에서 중혼에 대한 형사제재가 없는 점, 우리사회에 여전히 모든 영역에서 양성평등이 실현되었다고 보기에는 아직 미흡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로 인하여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거나 생계유지가 곤란한 경우가 엄연히 존재하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민법 제840조 6호 이혼사유에 관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아니하는 종래의 대법원판례를 변경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나. 그런데,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다수의견은 "①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일방의 의사에 의한 이혼 내지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는 물론, ② 나아가 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③ 세월의 경과에 따라 혼인파탄 당시 현저하였던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되어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 등과 같이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그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아니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다. 전원합의체의 반대의견도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제6호 이혼사유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지만, ㉠ 이혼으로 인하여 파탄에 책임 없는 상대방 배우자가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심히 가혹한 상태에 놓이는 경우, ㉡ 부모의 이혼이 자녀의 양육, 교육, 복지를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 혼인기간 중에 고의로 장기간 부양의무 및 양육의무를 저버린 경우, ㉣ 이혼에 대비하여 책임재산을 은닉하는 등 재산분할, 위자료의 이행을 의도적으로 회피하여 상대방 배우자를 곤궁에 빠뜨리는 경우 등과 같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용한다면 상대방 배우자나 자녀의 이익을 심각하게 해치는 결과를 가져와 정의·공평의 관념에 현저히 반하는 객관적인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과 가족 제도를 형해화할 우려가 있으므로, 그와 같은 객관적인 사정이 부존재하는 경우에 한하여 제6호 이혼사유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혼인을 제도적으로 보장한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고 보았다. 라. 전원합의체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의 차이는 크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다수의견은 원칙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지 않되, 예외 사유(위 ① 내지 ③)가 있는 경우에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반대의견은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제6호 이혼사유에 해당하고, 예외 사유(위 ㉠ 내지 ㉣)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이혼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6.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미 가.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다수의견은 기본적으로 유책주의를 유지함으로써 간통죄 위헌판결 후 혼인과 가족제도에 관한 사회적 수용능력을 고려하면서도 경직된 유책주의의 예외를 사실상 확대함으로써 유책주의적 수요와 파탄주의적 수요를 절충한 제한적 유책주의라고 평가할 수 있다. 나. 또한, 파탄주의를 지지한 반대의견도 이른바 가혹조항이라고 할 수 있는 사유(위 ㉠ 내지 ㉣)를 제시함으로써 파탄주의로 전환되더라도 종전 혼인과 가족제도에 주는 영향이 크지 않음을 시사했다.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허용되는 예외사유에 해석과 적용 단계에서 반대의견도 상당부분 녹아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7. 사견(이혼 후 부양)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모두 현행 민법상 이혼 후 상대방 배우자에 대한 부양에 관한 규정이 없다고 보았다. 그런데, 사견으로는 현행 민법 하에서도 민법 제826조 1항과 제977조의 합리적인 해석을 통하여 이혼 후 부양문제를 해결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다수의견이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혼인은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여 부부의 실체를 이루는 신분상 계약'이기 때문에 혼인해소 전에 부부사이의 협의(협정)나 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부부간 부양의 정도와 방법을 정할 때 '이혼 후 부양'에 관하여 정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 협의이혼을 하면서 이혼 후 자녀의 양육비 명목 또는 배우자의 생활비 명목으로 일정한 재산을 이전해 주거나 일정 기간 금전을 지급하거나 두 가지가 병행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재판상 이혼절차에서도 위와 같은 취지로 조정이 성립되는 경우도 많다.
2015-09-21
조국 교수 (서울대 로스쿨)
불법체포와 2차 증거(소변검사)
1. 사실관계 및 하급심 판결의 경과 피고인의 지인인 공소외인은 2012년 5월5일 01시경 피고인이 투숙하고 있던 '○○○모텔' 업주를 통하여, 전날 피고인이 정신분열증 비슷하게 안절부절 못하는 등 정신이 이상한 것 같은 행동을 목격하여 피고인이 마약을 투약하였거나 자살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경찰에 신고하였다. 이에 경찰관들이 피고인이 있던 위 모텔 방에 들어갔는데, 당시 피고인은 마약 투약 혐의를 부인하는 한편 모텔 방안에서 운동화를 신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경찰관 앞에서 바지와 팬티를 모두 내리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경찰관들은 피고인에게 마약 투약이 의심되므로 경찰서에 가서 채뇨를 통하여 투약 여부를 확인하자고 하면서 동행을 요구하였고, 피고인이 "영장 없으면 가지 않겠다"는 취지의 의사를 표시하였음에도 피고인을 북부경찰서로 데려갔다. 피고인은 같은 날 03시25분경 위 경찰서에서 채뇨를 위한 '소변채취동의서'에 서명하고 그 소변을 제출하였는데(이하 '제1차 채뇨절차'), 소변에 대한 간이시약검사결과 메스암페타민에 대한 양성반응이 검출되어 이를 시인하는 취지의 '소변검사시인서'에도 서명하였다. 경찰관들은 같은 날 07시50분경 피고인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하였고, 23시경 피고인에 대한 구속영장과 피고인의 소변 및 모발 등에 대한 압수ㆍ수색ㆍ검증영장을 청구하여 2012년 5월6일경 영장이 발부되었다. 경찰관들은 2012년 5월7일 피고인에게 압수 영장을 제시하고 피고인으로부터 소변과 모발을 채취하였다(이하 '제2차 채뇨절차'). 이를 송부 받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피고인의 소변과 모발에서 메스암페타민에 대한 양성반응이 검출되었다는 내용이 담긴 이 사건 소변 감정서 및 모발 감정서(이하 '이 사건 각 감정서'라고 한다)를 제출하였고, 피고인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공용물건손상죄로 기소되었다. 제1, 2심 모두 유죄판결을 내리고 징역 1년6월, 추징금 10만원을 선고했다. 2. 대법원 판결 먼저 대법원은 동행을 거부하는 의사를 표시한 피의자를 수사기관이 영장에 의하지 아니하고 강제연행 한 행위는 위법하고, 위법한 체포상태에서 '제1차 채뇨절차'도 위법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영장에 기하여 이루어진 '제2차 채뇨절차' 및 그 결과를 분석한 '이 사건 각 감정서' 등 2차 증거는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판단한다. "설령 수사기관의 연행이 위법한 체포에 해당하고 그에 이은 제1차 채뇨에 의한 증거 수집이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은 이후 법관이 발부한 구속영장에 의하여 적법하게 구금되었고 법관이 발부한 압수영장에 의하여 2차 채뇨 및 채모 절차가 적법하게 이루어진 이상, 그와 같은 2차적 증거 수집이 위법한 체포·구금절차에 의하여 형성된 상태를 직접 이용하여 행하여진 것으로는 쉽사리 평가할 수 없으므로, 이와 같은 사정은 체포과정에서의 절차적 위법과 2차적 증거 수집 사이의 인과관계를 희석하게 할 만한 정황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 국민과 사회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심각한 해악을 야기하는 중대한 범죄 … 의 수사를 위하여 피고인을 경찰서로 동행하는 과정에서 위법이 있었다는 사유만으로 법원의 영장 발부에 기하여 수집된 2차적 증거의 증거능력마저 부인한다면, 이는 오히려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형사소송에 관한 절차조항을 마련하여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규명의 조화를 도모하고 이를 통하여 형사 사법 정의를 실현하려 한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점도 아울러 참작될 필요가 있다." 그 근거로는 (i) 피고인의 비상식적 행동을 고려할 때 "피고인에 대한 긴급한 구호의 필요성"이 있었다, (ii) 위와 같은 상황에서는 피고인을 마약 투약 혐의로 긴급체포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었고, 실제로 경찰관들은 그 임의동행시점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 선임권 등을 고지하면서 피고인에 대한 긴급체포의 절차를 밟는 등 절차의 잘못을 시정하려고 하였던 바 "관련 법규정으로부터의 실질적 일탈 정도가 헌법에 규정된 영장주의 원칙을 현저히 침해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 (iii) 경찰관들로서는 피고인의 임의 출석을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시일의 경과에 따라 피고인의 신체에서 마약 성분이 희석·배설됨으로써 "증거가 소멸될 위험성이 농후"하였으므로 달리 적법한 증거수집 방법도 마땅하지 아니하였다, (iv) 수사기관은 법원에 피고인의 소변과 모발 등에 대한 압수영장을 청구하여 이를 발부받았다, (v) 메스암페타민 투약 범행은 "국민과 사회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심각한 해악을 야기하는 중대한 범죄"이다 등을 제시했다. 3. 평석 '제1차 채뇨절차'의 위법성과 그에 따른 '소변검사시인서'의 증거능력 배제는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의 당연한 요청이다. 문제는 '제2차 채뇨절차'의 위법성과 그 결과를 분석한 '이 사건 각 감정서'의 증거능력이다. 2차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근거를 차례로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피고인에 대한 긴급한 구호의 필요성"이 있었다는 것은 피고인이 경찰관직무집행법 제4조 제1항 제1호 "정신착란을 일으키거나 술에 취하여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에 해당되어 경찰관에 의한 '보호조치'가 가능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신분열증 유사 행동을 보이고 자살 우려가 있다는 제보가 있었고, 모텔 안에서 비상식적 행동을 보였다는 점에서 이 지적은 타당하다. 둘째, 모텔에서 피고인의 행동은 긴급체포의 '상당한 이유'(형사소송법 제200조의3 제1항)를 제공한다는 점, 동의한다. 그리고 경찰관들이 임의동행의 불법을 깨닫고 이 흠결을 시정하려 했다는 점도 인정할 수 있다. 이상의 점에서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주관적 선의를 강조하고 있다. 생각건대, 대법원은 미국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의 "선의의 신뢰의 예외"(good faith exception)의 취지를 원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예외는 원래 판사가 발부한 영장에 대하여 수사기관이 선의를 가지고 신뢰하면서 획득한 증거는 이후 그 영장에 문제가 있음이 확인되더라도 증거능력을 인정한다는 예외였는데, 이후 텍사스주 등에서 영장 없는 대물적 강제처분 상황에까지 확장·적용되었다[조국,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중판, 2006), 322-327면].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긴급체포의 '상당한 이유'가 존재했다면 임의동행의 불법성이 사후적으로 제거된다는 예외 원리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수사기관은 일단 위법한 임의동행을 감행하고 사후 긴급체포하거나 영장을 청구하는 전략을 쓰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영장 없으면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표시했지만, 경찰관들은 이를 묵살하고 강제로 경찰서로 데려갔다. 이를 영장주의 원칙을 현저히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안이하며, 이후 경찰관들이 이 불법을 시정하려 시도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이 사후적 조치로 '오염'이 제거된다고 볼 수 없다. 당시 경찰관들은 경찰관직무집행법상 '보호조치'를 하거나 긴급체포의 절차를 밟을 수 있었고, 또 밟았어야 했다. 셋째, "시일의 경과에 따라 피고인의 신체에서 마약 성분이 희석·배설됨으로써 증거가 소멸될 위험성이 농후하였다"는 판단도 동의하기 어렵다. 마약 성분은 1~2주일 내 체외로 배출되므로 그 이후에는 소변검사로 투약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모발감식을 하면 투약 이후 6개월~1년이 지난 후에도 확인될 수 있다. 즉, 수사기관은 합법적 긴급체포 후 영장을 발부받아 증거를 확보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넷째 논거는 수사기관이 법원으로부터 피고인의 소변과 모발 등에 대한 압수영장을 발부받았던 바, 불법체포의 '오염'이 희석되었다는 것이다. 법관의 영장에 따라 이루어진 '제2차 채뇨절차'에서는 그 이전의 '오염'과의 단절이 이루어진다는 점, 동의한다. 다섯째, 메스암페타민 투약이 "국민과 사회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심각한 해악을 야기하는 중대한 범죄"라는 점 동의한다. 그런데 여기서 대법원이 거론한 "범죄의 중대성" 기준은 주의를 요한다. 이는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을 인정한 200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별개의견이 주장한 기준이었기 때문이다[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7도3061 판결(대법관 양승태, 김능환, 안대희의 별개의견). 별개의견의 기준은 다수의견의 "적법절차의 실질적 내용 침해" 기준에 비하여 증거능력 배제의 범위가 좁아져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조국,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재론', 사법발전재단, 『사법』제3호(2008.3), 214면]. 평석대상 판결이―필자가 동의하지 않는―상술 두 번째, 세 번째 논거를 제시하면서까지 2차적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것은 이러한 "범죄의 중대성" 기준이 작동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요컨대, 필자는 법관이 발부한 압수영장에 의하여 이루어진 '제2차 채뇨절차'를 통해 획득된 이 사건 각 감정서는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는 대법원의 결론에 동의하지만, 그 몇몇 논거에는 동의할 수 없다.
2015-03-23
심희기 교수 (연세대 로스쿨)
스탠딩 법리의 부정
Ⅰ. 사안 D(S유흥주점의 영업실장), D2(S유흥주점의 업주)는 식품위생법(제44조, 제97조)위반혐의로 기소되었다. D는 2008. 1. 30. 22:25경 위 S유흥주점 4호실에서 위 업소 종업원인 O2로 하여금 손님으로 온 O와 함께 일명 티켓영업을 나가도록 한 후 그 대가(20만 원으로 추정)를 받은 혐의로, D2는 종업원인 D가 위와 같은 위반행위를 하지 않도록 주의·감독의무를 다하지 못한 혐의였다. 괴산경찰서 생활안전계는'S유흥주점'에서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소속 경사 2명이 2008. 1. 30. 21:30경부터 같은 날 22:25경까지 위 유흥주점 앞에서 잠복근무를 하던 중, 같은 날 22:24경 위 유흥주점 입구에서 O(남, 손님)와 O2(여, S유흥주점의 종업원)가 같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미행하여 위 남녀(O, O2)가 위 주점에서 100미터 정도 거리에 있는 M여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였다. 경사로부터 위와 같은 연락을 받고 출동한 경위 P등 4명의 경찰관은 여관 카운터에 있던 업주를 상대로 위 남녀가 몇 호실로 들어갔는지를 문의하며 협조를 요청하였고, 여관 업주는 예비열쇠를 이용하여 O, O2가 들어간 여관방의 문을 열어 주었다. 당시 O와 O2는 침대에 옷을 벗은 채로 약간 떨어져서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경찰관들은'성매매의 현행범으로 체포한다'는 점과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음'을 고지하고(다만, P는 제1심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당시 본인이 미란다원칙을 고지하였는데, 진술거부권은 고지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위 둘을 서로 분리하여 상호간의 관계 및 여관에의 입실 경위 등을 구두로 조사하였다. O와 O2는 경찰관들의 위 질문에 '성행위를 한 사실은 없다'고 답하였다. 당시 O와 O2가 실제 성행위를 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었고, 방 내부 및 화장실 등에서 성관계를 가졌음을 증명할 수 있는 화장지나 콘돔 등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관들은 위 둘을 성매매의 현행범으로 체포 하지 못하고(성매매 미수는 그 처벌규정이 없으므로, 성교행위에 나가지 않은 이상 성매매로는 처벌할 수 없다), 괴산경찰서 증평지구대로 임의동행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동행을 거부할 수도 있으나, 거부하더라도 강제로 연행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이에 대하여 경위 P는, O와 O2를 분리하여 조사할 당시 O와 O2는'성행위는 아직 안하였으나 2차를 나온 사실'은 인정하였기 때문에 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여 '거부하더라도 강제로 연행할 수 있다'고 고지한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O와 O2는 증평지구대로 가서 각 자술서를 작성한 후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자술서에서 O는'양주 1병을 같이 먹고 여관에 들어가 누워서 서로 이야기 하던 중이었고, 대금은 45만 원을 결제하였으며, 그 내역 확인은 안 했으나 2차비가 포함된 것으로 안다'고 기재하였다가,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는'성행위는 안하였고, 양주 2병을 마시고, 대금 45만 원을 결제하였으며, 아가씨를 데리고 나가는 비용이 얼마인지는 모르나 45만 원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하였다. 한편, O2는 일관하여 '양주 2병을 마시고 서로 맘에 들어 여관에 온 것일 뿐, 대가를 받고 여관에 온 것은 아니고, 성행위는 안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경찰은 술값과 테이블 봉사료 이외에 대가를 수수하였는지에 관하여 보완수사를 하였으나, 추가 증거를 더 이상 발견하지 못하였다. 검사는'양주를 1병만 시켰다'는 O 작성의 자술서와 경찰이 O를 상대로 작성한 참고인진술조서를 주된 증거로 삼아 공소를 제기하였다(공소사실에는'시간적 소요의 대가가 약 20만 원으로 추정된다'고 되어 있다. 이는 O가 계산한 45만 원 중 양주 1병 값 20만 원과 테이블 봉사료 5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그 대가로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O 작성의 자술서와 경찰이 O를 상대로 작성한 참고인진술조서의 증거능력 여부'가 주요쟁점이 되었다. 제1심과 항소심은 "이 사건 당시 경찰관들이 O와 O2를 임의동행 함에 앞서 '동행을 거부할 수도 있다'고 고지한 사실은 있으나, 그에 부가하여 '동행을 거부하더라도 강제로 연행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O2가 화장실에 가자 여자 경찰관이 O2를 따라가 감시하기도 하였으므로, 사법경찰관이 O, O2를 수사관서까지 동행한 것은 적법요건이 갖추어지지 아니한 채 사법경찰관의 동행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심리적 압박 아래 행하여진 사실상의 강제연행에 해당"하여 "위 각 증거들은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하였다. 검사가 상고하였다. Ⅱ. 쟁점 절차적 기본권을 침해(O)당하지 아니한 자(D, D2)에게도 위법수집증거는 배제되는가?(긍정) Ⅲ. 재판요지(상고기각) 형사소송법 제199조 제1항은 '수사에 관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다. 다만, 강제처분은 이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며,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 안에서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임의수사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는바, 수사관이 수사과정에서 당사자의 동의를 받는 형식으로 피의자를 수사관서 등에 동행하는 것은, 상대방의 신체의 자유가 현실적으로 제한되어 실질적으로 체포와 유사한 상태에 놓이게 됨에도, 영장에 의하지 아니하고 그 밖에 강제성을 띤 동행을 억제할 방법도 없어서 제도적으로는 물론 현실적으로도 임의성이 보장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직 정식의 체포·구속단계 이전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헌법 및 형사소송법이 체포·구속된 피의자에게 부여하는 각종의 권리보장 장치가 제공되지 않는 등 형사소송법의 원리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므로, 수사관이 동행에 앞서 피의자에게 동행을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 주었거나 동행한 피의자가 언제든지 자유로이 동행과정에서 이탈 또는 동행장소로부터 퇴거할 수 있었음이 인정되는 등 오로지 피의자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하여 수사관서 등에의 동행이 이루어졌음이 객관적인 사정에 의하여 명백하게 입증된 경우에 한하여, 그 적법성이 인정되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대법원 2006. 7. 6. 선고 2005도6810 판결 참조). 또한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수사기관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는 것이 원칙이므로(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7도3061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수사기관이 피고인이 아닌 자(O)를 상대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원칙적으로 피고인(D, D2)에 대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대법원 1992. 6. 23. 선고 92도682 판결, 대법원 2009. 8. 20. 선고 2008도8213 판결 참조). (중략) 비록 사법경찰관이 O와 O2를 동행할 당시에 물리력을 행사한 바가 없고, 이들이 명시적으로 거부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사법경찰관이 이들을 수사관서까지 동행한 것은 위에서 본 적법요건이 갖추어지지 아니한 채 사법경찰관의 동행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심리적 압박 아래 행하여진 사실상의 강제연행, 즉 불법 체포에 해당한다. 따라서 위와 같은 불법 체포에 의한 유치 중에 O와 O2가 작성한 위 각 자술서와 사법경찰리가 작성한 O, O2에 대한 각 제1회 진술조서는 헌법 제12조 제1항, 제3항과 형사소송법 제200조의2, 제201조 등이 규정한 체포·구속에 관한 영장주의 원칙에 위배하여 수집된 증거로서 수사기관이 피고인이 아닌 자를 상대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도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에 의하여 그 증거능력이 부정되므로 피고인들에 대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 Ⅳ. 평석 1. 이 판결은 미국에서 인정되고 있는 스탠딩(standing) 법리를 명시적으로 거부하고 있어 주목되는 판결이다. 사안에서 문제되고 있는 사건은 D, D2의 식품위생법위반피고사건(이하 분석의 편의를 위하여 'D'만 문제삼겠다)이다. O, O2(이하 분석의 편의를 위하여 'O'만 문제삼겠다)는 피고인이 아니다. 피고인 D의 입장에서 볼 때 O는'피고인 아닌 자'이다. 스탠딩(standing) 법리란 '위법수집증거배제규칙은 절차적 기본권이 침해된 자에 대하여만 적용된다' 는 취지의 발상이다. 이 법리를 위 사안에 적용하여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이 된다. 사안에서 경찰의 O에 대한 임의동행이 실질적으로 강제연행이라면 이 강제연행으로 기본권침해를 받은 사람은 O이지 D가 아니다. 따라서 경찰이 O를 조사하여 채집한 진술증거는 O의 형사피고사건에서는 위법수집증거가 될 수 있지만, 스탠딩 법리를 인정하면 O의 형사피고사건과 무관한 D의 형사피고사건에서 O를 조사하여 채집한 진술증거는 위법수집증거가 아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여 D는 자신의 절차적 기본권을 침해당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경찰의 O에 대한 강제연행과 그 이후의 채증활동을 탄핵할 지위(standing)에 있지 아니하고 따라서 경찰이 O를 조사하여 채집한 증거는 D의 형사피고사건에서 위법수집증거가 아니라는 것이 스탠딩 법리의 요점이다. 대법원 1992.6.23. 선고 92도682 판결(이른바 한국형 미란다 판결)은 대법원의 '스탠딩 법리의 불채용' 입장이 간접적으로 표출된 판결인데 본 판결에서 그 취지가 다시 한 번 선명하게 재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2. 위법수집증거배제규칙을 창안해 낸 것은 미국연방대법원인데 1990년대 이후에 모습을 드러낸 한국대법원의 그것은 미국의 그것보다도 훨씬 그 포섭범위가 넓다. 피고인측의 동의가 있어도 증거능력을 배제하고, 사인의 불법수집증거도 경우에 따라 증거능력이 배제될 가능성이 있게 한 것이 그 예이다. 이제 그 목록에 스탠딩 법리의 불채용이라는 지침이 명시적으로 덧붙여진 것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대법원이 주도하는 형사사법혁명이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다. 양승태 신임 대법원장이 이끄는 대법원이 이 형사사법혁명을 지속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2011-11-14
박준영 변호사(법무법인 경기)
공동피고인의 번복진술은 새로운 증거로 봐야
1. 사실관계의 요약(서울고등법원 2011. 6. 30 자 2010재노75 결정) A와 B는 역전에서 노숙을 하던 지적장애인이다. 2007. 5. 14. 역전에서 30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학교에서 노숙인으로 보이는 변사체가 발견되었고, A와 B는 역전에서 살인혐의로 긴급체포되었다. 이들은 체포당시 혐의를 부인하다가, 자백을 하였는데, 자백의 취지는 'A와 B는 꼬맹이들과 함께 변사자를 데리고 고등학교까지 갔는데, 그곳에서 B는 변사자의 뺨을 2대 때린 후 꼬맹이들과 함께 역전으로 돌아왔고, A는 이들이 돌아간 뒤 현장에 남아 변사자를 수십 분 동안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는 것이었다. A와 B는 1심법정에서 자백을 하였고, 1심은 A에게 징역 7년(상해치사혐의), B에게 벌금 200만 원(폭행혐의)을 선고하며, 'A와 B의 법정진술, 사체검안서 등'을 증거로 설시하였다. A는 허위자백을 하였던 것이라며 1심판결에 불복하며 항소를 하였고, B는 항소를 하지 않았다. A에 대한 항소심재판과정에서 B가 증인으로 출석하였고, B는 이전 자백내용과 동일한 증언을 하였다. 물적 증거가 전혀 없는 사안임에도 항소심은 B의 진술을 신뢰하였고, A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며, 증거는 '1심판결의 기재'를 원용하였다. A는 상고를 포기하였고, 판결은 확정되었다. 그런데, 6개월 후 위 꼬맹이들이 잡혔고, 꼬맹이들은 'A, B와 공동으로 범행을 하였다'는 상해치사혐의로 기소되었다. 꼬맹이들에 대한 재판과정에서 B가 증인으로 출석하여, '자신과 A, 꼬맹이들 모두 사건현장에 간 적 없다. 무서워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라는 취지로 증언하였고, 재판부는 'B의 번복 진술의 태도나 내용에 정신지체나 장애로 인한 문제가 있다고 전혀 느낄 수 없었다'는 표현을 쓰며, 번복진술을 신뢰한 후 꼬맹이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고, 이 무죄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대법원이 'B의 번복진술을 신뢰한 원심의 증거취사선택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최종판단을 하였는데도, 여전히 A는 4년 반가량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한 여타의 문제점은 차치하고, '공동피고인의 진술번복과 재심사유'라는 쟁점만을 놓고 이 사건의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2호의 재심사유는 주장하기 힘든 상황 위에서 B는 A에 대한 항소심법정에서 증인의 지위로 증언을 하였으므로, '원판결의 증거 된 증언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허위인 것이 증명된 때'(형사소송법 제420조 제2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2호상의 '원판결의 증거 된 증언'이라 함은, 원판결의 증거로 채택되어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데 사용된 증언('증거의 요지'란에 설시된 증거)을 뜻하는 것이고, 단순히 증거조사의 대상이 되었을 뿐,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증거로 사용되지 않은 증언은 위 '증거 된 증언'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다(2003도1080 판결, 95모38 결정 등 참조). 이 사건에서 재심대상판결인 항소심판결은, 'B의 항소심에서의 증언'을 증거로 설시한 것이 아니라, '1심판결의 해당란 기재'를 원용하였는데, 1심판결에서는, '피고인들(A, B)의 각 법정진술'이 증거로 채택·인용되었다. 그렇다면, 위 대법원 판결에 따를 때, B를 위증혐의로 고소하고 유죄확정판결을 받아낸다 한들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2호의 재심사유상의 요건을 충족할 수 없다 할 것이다. 3. 공동피고인의 번복진술은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의 새로운 증거로 보아야 가. 대법원의 입장으로 원용되고 있는 판례(93모33결정) 공동피고인의 번복진술을 새로운 증거로 볼 수 있는지 여부와 관련하여 자주 원용되고 있는 대법원의 결정은 18년 전의 결정인 93모33결정으로 그 요지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에서 말하는 '무죄로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발견된 때'란 확정판결의 소송절차에서 발견되지 못하였거나 발견되었어도 제출할 수 없었던 증거로서 증거가치에 있어 다른 증거에 비하여 객관적으로 우위성이 인정되는 증거를 말하는 것이므로 확정판결의 소송절차에서 증거로 조사채택된 공동피고인이 확정판결 후 앞서의 진술내용을 번복하는 것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학계의 동향 학계는, 피고인이나 공동피고인은 좁은 의미의 증거방법이 아니므로 증인의 경우와는 달리 진술을 번복함으로써 증거자료의 내용이 달라진다면 새로운 증거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는 입장도 있으나, 재심대상판결에서 실질적 판단을 거친 증거와 동질의 증거는 새로운 증거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진술번복은 새로운 증거로 볼 수 없다는 입장도 있다. 재심사유에 대한 학계의 논의가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에 집중되어 있긴 하나, 세부적인 쟁점인 '공동피고인의 진술번복과 신규성'의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나 논의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다. 소결 진술번복의 신규성을 부인하는 견해는, 동일인의 상반된 진술에 대한 평가는, 증거의 증명력에 대한 법관의 자유심증주의의 문제라는 점, 실질적인 판단을 거친 증거와 동질의 증거는 새로운 증거로 볼 수 없다는 점, 허위임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판명되지 아니한 번복·변경된 진술에 대하여 단지 법원에 새롭다고 하여 그 신규성을 인정하여 재심을 허용하는 것은 증거의 신규성 요건을 형식적으로만 파악하여 형해화함으로써 형사소송법의 취지와는 달리 재심사유를 부당하게 확대한다는 점 등을 논거로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위 논거들은, 확정판결 전후로 달라진 증인의 진술이나 이를 내용으로 하는 진술서 등을 새로이 증거로 제출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형식적인 면에서 새로 발견된 증거라고 보아 이 사건 조항에서 정한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게 되면, 이는 확정판결에 의하여 종전 증거들이 허위임이 밝혀진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재심을 허용하려고 한 형사소송법 제420조 및 그 제1, 2호의 취지의 기본 정신에 반하는 결과가 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동피고인의 번복진술은, 형사소송법 제420조 1(서류 또는 증거물), 2호(증인, 감정인, 통역인, 번역인)의 적용을 받을 수 없으므로, 진술번복의 신규성을 부인하는 견해에 따르면, 이 사건 사안에서 공동피고인 B의 번복진술을 재심사유로 주장할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다. 공동피고인 B는 '자신도 A처럼 사람을 죽였다는 혐의를 뒤집어쓸까봐 무서워서 거짓진술을 하였다'고 실토하였다. B의 거짓진술의 경위와 관련하여, A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할 것이고, A가 자신의 재판 확정 후에 있었던 B의 번복진술을 근거로 재심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정한 형사사법의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일본 형사소송법도 우리나라와 같은 재심사유를 두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공동피고인이 유죄판결확정 후 진술을 번복한 경우나 증언거부권을 행사하던 증인이 새롭게 진술한 경우, 이를 새로운 증거로 보는 견해'가 유력한 학설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피고인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신규성 인정을 제한하는 사례도 보임, 일본형사소송법 주석서 참고). 필자의 사견도 위와 같이 번복진술을 새로운 증거로 보되 명백성 문제에 대한 검토를 통하여 재심사유를 제한하면 된다고 본다. 한편,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대법원 2009. 7. 16.자 2005모472 전원합의체 결정)에서, 위 쟁점과 관련하여 대법관들의 의미 있는 입장표명을 확인할 수 있는바, 번복진술 또는 신용성의 정황적 보장하에 이루어진 번복진술을 새로운 증거로 보는 판례변경을 기대하게끔 한다. 대법원은 위 전원합의체 결정을 통하여, '무죄 등을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법원으로서는 새로 발견된 증거만을 독립적·고립적으로 고찰하여 그 증거가치만으로 재심의 개시 여부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재심대상이 되는 확정판결을 선고한 법원이 사실인정의 기초로 삼은 증거들 가운데 새로 발견된 증거와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되고 모순되는 것들은 함께 고려하여 평가하여야 한다'(종합평가설)면서, 이전의 '새로 발견된 증거의 증거가치만을 기준으로 하여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인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단독평가설)는 판례를 변경하였다. 위와 같이 '명백성의 판단 기준'과 관련한 판례를 변경하면서, 9인의 대법관이 '새로운 증거'의 판단 기준에 대한 의견도 아울러 밝혔는바, 당시 6인의 대법관(대법관 김영란, 대법관 박시환, 대법관 김지형, 대법관 박일환, 대법관 김능환, 대법관 전수안)은, '새로 발견된' 증거인지 여부는 재심대상인 확정판결의 소송절차에서 법원이 유죄의 사실인정을 하면서 그 기초로 삼은 증거자료에 의하여 인식하였던 내용과 다른 것인지 여부를 기준으로 하여 결정되어야 한다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 의견은, 종전 소송절차에서 인식한 진술(번복 전 진술)과 다른 진술(번복진술)을 새로운 증거로 보되, 명백성 인정 여부에 대한 심사도 별도로 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리고 3인의 대법관(대법관 양승태, 대법관 이홍훈, 대법관 안대희)은 '진술서 등이 이전과 비교하여 실질적인 차이 없이 단지 증거의 형식만을 달리하여 반대되는 내용이나 태도로 바뀐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확정판결 당시 이미 발견되어 실질적인 판단을 거친 기존의 진술 등과 동질의 것이라고 보아야 하므로 새로운 증거라고 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는 의견을 밝혔으나, 위 3인의 대법관의 의견을 반대해석하면, '실질적인 차이 있는 진술변경의 경우'에는, 신규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 할 것이다(위 3인의 대법관이 언급한 '실질적인 차이'가 개개 사안에서 어떻게 이해될 것인지 궁금한바, 필자는 '신용성의 정황적 보장 하에 이루어진 진술'로 이해하고 싶다). 이 사건에서 B는 공범사건의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재심대상 소송절차에서의 진술을 번복하였고, 번복진술을 신뢰한 판결은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의하여 지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위 전원합의체 결정에서 '새로운 증거의 판단기준'과 관련하여 의견을 개진한 대법관 9인은 이 사건에서 B의 진술번복을 새로운 증거로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4. 맺음말 형사소송법상의 재심은 피고인에게 한줄기 빛을 제공하는 창의 역할을 하도록 운영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헤르만 헤쎄의 데미안에는 '껍질을 깨고 나오는 새'라는 구절이 있다. 껍질을 깨는 과정을 겪지 않고서는 새로운 탄생이 불가능하다 할 것이다. 확정판결에 기초한 법적 안정성이라는 껍질을 깨트리는 고통 없이는 실체적 진실에 바탕을 둔 실질적 정의를 확보하는 것은 하나의 신기루에 불과하다(권오걸 교수의 논문 인용). '공동피고인의 진술번복만으로는 재심사유로 볼 수 없다'는 단편적이고 형식적인 논의를 이 사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18년 전의 93모33결정은 이 사건을 계기로 변경되어야 하고, 진술번복과 관련한 재심사유에 대한 논의가 깊이 있게 진행되었으면 한다.
201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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