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事件의 槪要
(1) 피고(서울특별시 강남구청장)는 ‘원고가 택시운전자격정지처분(이하 ‘선행처분’이라 한다)의 기간 중인 1998. 8. 26. 09:00경 택시운전업무에 종사하였다’는 이유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87조 제1항 제6호, 같은법시행규칙 제51조 제1항 [별표 3] 제7호 (가)목을 적용하여, 원고에게 택시운전자자격취소처분(이하 ‘후행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2) 원고는 피고의 선행처분(택시운전자격정지처분)이 무권한의 행위로서 무효임을 전제로 후행처분(택시운전자운전자격취소처분)의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Ⅱ. 原審判決(서울고법 2001. 5. 8, 2000누14650)의 要旨
(1) 선행처분일 당시에 시행되던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78조 제1항에 의하면, 택시운전자격 취소·정지 등에 관한 사무는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사무에 속하고 시·도지사가 위 사무에 관한 권한을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위임하기 위하여는 조례에 의하여야 할 것인데, 선행처분 당시에는 서울특별시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78조 제1항 소정의 사무에 관한 권한을 구청장에게 위임한다는 내용의 조례를 마련하고 있지 아니하였으므로 구청장인 피고가 위 권한을 행사할 근거가 없었다 할 것이다.
(2) 따라서 선행처분은 권한없는 자에 의하여 행하여진 것으로서 위법하며, 이와 같은 하자는 중대하고 명백한 것이어서 선행처분은 당연무효라 할 것이다.
(3) 선행처분(택시운전자격정치처분)이 당연무효인 이상 원고가 1998. 8. 26. 운행한 것을 가리켜 ‘택시운전자격정지의 처분기간 중에 택시운전업무에 종사한 것’이라 할 수 없으며, 이를 이유로 한 이 사건 처분(운전자격취소처분)은 위법하다.
◀ 판 결 요 지 ▶
구청장이 서울시조례에 의한 적법한 위임 없이 택시운전자격정지
처분을 한 경우 그 하자가 비록 중대하다고 할지라도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당연무효 사유는 아니라고 봄이 상당하다
Ⅲ. 上告審判決(2001두4566)의 要旨
(1)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피고의 선행처분은 결과적으로 서울특별시조례에 의한 적법한 위임없이 행하여진 것으로서 그 하자가 중대하다고 할 것이나, 원고의 위 1998. 4. 28.자 위반행위(합승행위 및 검사방해행위) 당시에 시행되던 자동차운수사업법 제33조의4 제3항, 제69조 제1항, 같은법시행령 제9조 제1항 제24호에 의하면 위 법률 제33조의4 제3항 소정의 택시운전자격 취소·정지 등은 국가사무로서 그 권한이 교통부장관에게 있었고 교통부장관은 이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위임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으며, 서울특별시사무위임규칙 제3조 [별표] 제25호는 서울특별시장이 택시운전자격 취소·정지 등에 관한 권한을 구청장 또는 사업소장에게 재위임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원고가 위 1998. 4. 28.자 위반행위를 하였을 당시에는 구청장인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택시운전자격정지처분을 할 적법한 권한이 있었는데, 피고가 선행처분을 함에 있어서 그 처분 당시가 아닌 위반행위 당시에 시행되던 규정에 의하여 선행처분을 할 권한이 피고에게 있다고 오인할 여지가 없지 아니하였고, 현행법상 시·도지사는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와 국가의 기관위임사무를 함께 관장하고 있어 행위의 외관상 양자의 구분이 쉽지 아니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선행처분에 있어서의 하자가 비록 중대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이는 결국 당연무효 사유는 아니라고 봄이 상당하다 할 것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피고의 선행처분은 당연무효이고, 따라서 무효인 선행처분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말았으니, 원심판결에는 행정처분의 당연무효 사유 등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 할 것이다.
◀ 평 석 요 지 ▶
똑같은 사안을 놓고서 '중대.명백설'을 원용하면서 원심은
선행처분으로서의 운전자격정지처분의 무효를 선언하고 있는데
대하여 상고심은 그 반대의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은 '명백설'
의 허점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오히려 사장되어 있는
명백성보충요건설을 적극 확용할 필요가 있다
Ⅳ. 評 釋
1. ‘重大·明白說‘ 虛點의 생생한 사례
행정소송법은 처분의 취소소송과 무효등확인소송을 구분하고 있다(동법 제4조 참조). 이와 같은 실정법규정은 처분에 하자(위법성)가 있는 경우에, 당해 처분은 ‘무효’가 되거나 ‘취소할 수 있는 행위(취소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로 구분됨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행정처분이 ‘무효’인가 아니면 ‘취소할 수 있는 행위(이하에서는 간단히 ‘취소’로 표기하기로 한다)’에 해당하는가에 따라 - 특히 행정구제와 관련하여 -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구태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라 하겠다(이 사건도 바로 그 문제와 관련되어 있음을 想起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 ‘무효’와 ‘취소’를 어떠한 기준에 따라 구분하는가 하는 점에 있다. 행정법의 교재에는 그에 관한 여러 학설(논리적 견해·개념론적 견해·목적론적 견해·기능론적 견해·중대명백설·명백성보충요건설 등)이 소개되어 있다(졸저, 行政法Ⅰ, 제7판, 278면 이하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특히 판례는 ‘중대·명백설(이하 ‘명백설’로 부르기로 한다)만 고수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대판 1993. 12. 7, 93누11432; 대판 1994. 10. 28, 92누9563; 대판 1996. 11. 12, 96누1221 등 참조).
본래 독일에서 명백설(Evidenz-theorie) 의 이름으로 발전된 그 중대·명백설은 한동안 통설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특히 누구(이해관계인·평균인·전문가 등)의 판단을 기준으러 그 ‘명백’ 여부를 정하느냐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음이 비판되어 왔다(이러한 점에 관하여는 vgl. H. Maurer, Allgemeines Verwaltungsrecht, 14. Aufl., 2002, S. 262 f; 졸저, 전게서 279면 참조).
흥미있는 것은, 이 사건에서의 原審과 上告審의 상이한 판결이 바로 명백설의 허점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하는 점이다. 똑 같은 사안을 놓고서, 그리고 ‘중대·명백설’을 원용하면서 原審은 처분(선행처분으로서의 운전자격정치처분)의 무효를 선언하고 있는데 대하여 上告審은 그 반대의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外國에서의 경향
이른바 ‘명백설’의 고향으로 볼 수 있는 독일에서는 그 명백설의 결함을 시정, 보충하려는 노력이 다방면으로 행해져 왔는바, 그의 산물의 하나가 1976년에 제정된 연방의 행정절차법(Verwaltungsverfahrensgesetz) 제44조의 규정이다. 즉, 同條는 [행정행위에 중대한 하자가 있고, 고려될 수 있는 모든 사정을 합리적으로 평가하여 명백한 때에는 무효이다](제1항)라는 말로써 ‘중대·명백설’을 일단 채택하고 있으면서도, 행정행위가 무효가 되는 경우(절대적 무효원인)와 무효가 되지 않는 경우(상대적 무효원인)를 열거해 놓음으로서, 그 중대·명백설의 원칙은 어디가지나 2차적 보충적 기준으로 적용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동조 제2 및 3항. 아울러 졸저, 전게서, 281면 참조).
日本에서도 그 ‘중대·명백설’을 보완, 극복해 보고자 하는 노력이 학설과 판례를 통해 행해져 왔는바,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있는 ‘명백성보충요건설’이 대표적 예이다(이에 관하여는 졸저, 전게서, 280면 참조)
3. ‘소수의견’으로 死藏되어 있는 명백성보충요건설
이른바 ‘명백성보충요건설’이 우리의 판례상으로도 소수의견(반대의견)으로 등장하였다가 사장되어 있는 셈인데, [행정행위의 무효사유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의 명백성은 행정처분의 법적 안정성 확보를 통하여 행정의 원활한 수행을 도모하는 한편, 그 행정처분을 유효한 것으로 믿은 제3자나 공공의 신뢰를 보호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보충적으로 요구되는 것으로서.., 중대한 하자를 가진 행정처분은 당연무효라고 보아야 한다](대법원1995. 7. 11, 94누4615의 반대의견)라고 하는 주장이 그에 해당한다.
아깝게 사장되어 있는 위 ‘반대의견’을 되살려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는바, 이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