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관계]
피고인은 1996. 9월초경 김 0 외 9인과 함께 태백시 황지동 산 10 임야 43,737 평방미터 중 43,737분의 7,237지분을 매수하되 다만 편의상 피고인이 단독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그 등기명의인도 피고인의 단독명의로 하여 두기로 약정을 한 사실, 피고인은 소유자인 정0수와 매매대금을 3억4천만원으로 약정하여 이 사건 토지지분을 매수하기로 약정을 한 다음 매매대금을 지급하고 1996.10.25. 피고인 단독명의로 이전등기를 경료한 사실, 위 매매계약 당시 피고인은 자신이 단독으로 이 사건 토지 지분을 매수하는 것으로 계약을 체결하였고, 소유자도 피고인이 단독으로 이 사건 토지 지분을 매수하는 것으로 안 사실, 한편 피고인은 1997.6.19. 피고인을 채무자로 하여 제일은행 보라매지점에 채권한도액 2억원, 제일은행 화곡 2동 출장소에 채권최고액 4억 6천만원인 근저당권을 각 설정하였다.
[판결이유]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인 바,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에관한법률 제2조제1호 및 제4조의 규정에 의하면 신탁자와 수탁자가 명의신탁 약정을 맺고, 이에 따라 수탁자가 당사자가 되어 명의신탁 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소유자와 사이에서 부동산에 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그 매매계약에 기하여 당해 부동산의 소유권이전등기를 수탁자 명의로 경료한 경우에는, 그 소유권이전등기에 의한 당해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은 유효하고, 한편 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의 약정은 무효이므로, 결국 수탁자는 전소유자인 매도인 뿐만 아니라 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도 유효하게 당해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따라서 그 수탁자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고 볼 수 없다.
[평 석]
1. 본 判決의 意義
이번 판결은 1995.7.1.부터 不動産實權利者名義登記에관한법률(이하 ‘不動産實名法’이라 함)이 시행된 이후 비록 契約名義信託의 경우에 관한 것이지만 명의수탁자의 부동산 처분행위에 대한 형법적 평가를 분명히 한 최초의 판결이다. 부동산실명법 시행 이전까지 대법원은 명의신탁약정에 의한 부동산 취득시 부동산의 대외적인 소유자는 명의 수탁자이지만 실질은 보관자에 해당한다고 보아 이를 처분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보았으므로(대판 1971.10.30, 71도740(전원합의체); 1996.11.29, 96도1755) 사실상 대내적인 실권리자인 명의신탁자의 소유권이 보호되었다.
그러나 부동산실명법의 시행 이후에도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 필자는 1997.10. 형사판례연구회에서 발표한 판례 평석을 통하여 새로운 결론도출이 불가피한 점을 지적하고, 계약명의신탁의 경우 수탁자의 임의처분행위에 대해서 횡령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힌바 있다(박상기, 부동산명의신탁과 횡령죄, 형사판례연구(6), 266면 이하; 박상기, 형법각론(박영사), 347면 이하). 그 후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었으며, 그 가운데는 필자의 견해와 다른 견해가 주류를 이루었다(백재명, 부동산명의신탁과 횡령죄, 형사판례연구(7), 367면(이 판례 평석은 본 평석 대상 판례의 원심법원 판결에 대한 것으로서 검사가 항소한 내용과 같이 수탁자의 횡령죄를 인정); 장영민, 명의 신탁된 부동산횡령행위의 죄책, 고시계 1997/12, 37면 이하(수탁자의 배임죄를 인정). 손동권, 명의신탁부동산의 처분행위에 대한 횡령죄의 성립여부, 고시연구 1997/12, 46면 이하는 계약명의신탁의 경우에는 필자와 견해를 같이 한다). 또한 이후에 개진된 학설도 부동산실명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탁자에게 명의신탁유형에 따라 횡령죄나 배임죄와 같은 형사책임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 다수설이다(이재상, 각론, 336면 이하; 배종대, 각론, 476면 이하; 백형구, 각론, 202면).
그러나 이번의 대법원 판결은 기본적으로 명의신탁에 의한 부동산 취득시의 법률관계에 대한 다수설의 입장을 취하지 않은 것으로서 이 문제에 관한 한 대법원의 입장은 분명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번 판결은 부동산실명법의 입법취지에 부합되는 것임은 물론 동 법의 논리구조에도 합치되는 타당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이 판결은 명의신탁이라는 畸形的 方式에 의한 불법적인 부동산거래를 차단하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며, 사회적 파장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2. 契約名義信託과 橫領罪 성립여부
대상판결이 내용으로 하고 있는 명의신탁은 소위 契約名義信託에 해당하는 것이다. 즉 피고인은 김 0 외 9명과 함께 당해 부동산을 매입하기로 하고 다만 편의상 피고인 단독명의로 매매계약을 체결하기로 약정하였다. 그리고 피고인은 매도인 정0수와 단독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 부동산실명법의 명의신탁약정에는 위임 내지 위탁매매의 형식에 의한 경우도 포함하고 있으므로(동법 제2조 1호) 사안과 같은 경우는 계약명의신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소유자인 정0수는 피고인이 김 0외 9인과 공동으로 매수하지만 형식적으로 피고인이 단독명의로 계약을 체결하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으며, 피고인이 단독으로 이 토지지분을 매수하는 것으로 알았다.
부동산실명법은 제3조 제1항에서 누구든지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명의신탁약정에 의하여 명의수탁자의 명의로 등기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동법 제4조 제1항은 명의신탁약정은 무효이고, 제2항은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행하여진 등기에 의한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은 무효로 하며, 제2항 단서에 다만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취득하기 위한 계약에서 명의수탁자가 그 일방당사자가 되고 타방 당사자는 명의신탁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않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계약명의신탁의 경우에 부동산의 원소유자인 매도인이 명의신탁사실을 모르는 경우에는 매도인과 수탁자 사이의 물권변동은 유효하며 수탁자 앞으로 경료된 등기는 유효하고, 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에서는 신탁자가 수탁자를 상대로 명의신탁약정에 의한 이전등기청구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의 내부적인 관계에서 신탁자가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을 보유하기로 하는 약정으로 인한 권리·의무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이러한 입장은 원심판결이 판시한 바이다). 그 결과 수탁자의 임의처분행위에 대해서 이번 판결이 판시한 바와 같이 횡령죄를 인정할 수는 없다(반대로 계약의 타방 당사자인 원소유자, 즉 매도인이 명의신탁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동 법의 규정취지에 따라 수탁자 앞으로의 소유권이전등기가 무효가 되기 때문에 소유권은 원소유자에게 복귀한다. 그 결과 명의수탁자의 임의처분행위는 原所有者에 대한 관계에서 橫領罪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에 대해서 수탁자의 행위는 신의칙에 반하며 정의관념에도 반한다는 등의 이유로 수탁자에게 橫領罪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견해(백재명, 위 논문, 381면; 백형구, 각론, 202면) 혹은 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에 사실상의 신임관계를 인정하여 수탁자에게 背任罪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견해(장영민, 위 논문, 40면; 이재상, 각론, 337면; 배종대, 각론, 477면)가 있다. 그밖에도 수탁자의 형사책임을 인정하여야 하는 이유로는 부동산실명법의 목적은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실체적 권리관계에 부합하도록 실권리자 명의로 등기하도록 하는 것에 있는 것이지 신탁자가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백재명, 위 논문, 383면 참조).
이러한 주장이 전면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부동산실명법의 입법취지와 명문규정에는 반하는 해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법적 논란의 원인제공자는 어디까지나 명의신탁자이지 수탁자가 아니다. 또한 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의 신임관계는 동 법의 취지상 법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신임관계에 해당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다수설이 수탁자에게 횡령죄 혹은 배임죄를 인정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신탁자가 신탁부동산의 진정한 소유권자인 것과 같은 외관을 여전히 남겨둠으로써 부동산실명법의 입법취지를 무색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3. 맺는 말
명의신탁이라는 방식에 의한 부동산 거래의 필요성을 전면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부동산실명법도 예외적으로 명의신탁방식에 의한 부동산거래를 합법화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이다(동 법 제8조 참조).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명의신탁방식에 의한 부동산거래를 통하여 검은 돈의 은닉 내지 세탁방법으로 활용하거나 부동산 투기와 탈세의 수단으로 악용되어왔던 것이 현실이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한 부동산거래를 차단할 목적으로 제정된 부동산실명법은 私法的 論理構造에는 정확하게 부합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은 동법이 명의신탁방식에 의한 부동산 취득을 투기나 탈세와 같은 反社會的 行爲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으므로 이를 근절하겠다고 규정한 점이다(동법 제1조). 부동산실명법의 해석은 이러한 입법취지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동법은 이러한 목적달성을 위하여 명의신탁방법을 통한 부동산취득이 신탁자에게 절대적으로 위험한 거래임을 주지시키는 전략적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이러한 선택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에서 刑事政策的 意義까지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이 법 해석의 허용되는 한계 내에 있음은 물론이고 동 법의 입법취지에 반하는 것이 아님은 더욱 더 아니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의 입장은 앞으로 다른 유형의 명의신탁의 경우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이 점에서 대판 1999.11.26, 99도2651 판결은 재고되어야 한다). 즉 2자간 혹은 3자간 등기명의신탁의 경우에도 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이를 임의 처분한 수탁자에게 횡령죄를 인정할 것은 아니다(다만 3자간 등기명의신탁의 경우에는 신탁자가 아니라 원소유자인 賣渡人에 대한 관계에서 수탁자에게 횡령죄를 인정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