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머리에
헌법재판소는 2002. 7. 18.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의 위헌여부에 관한 2002헌바57 헌법소원사건에서 한정위헌결정을 내렸다. 그 결정 주문은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은 퇴직 후의 사유를 적용하여 공무원연금법상의 급여를 제한하는 범위내에서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인데, 위 결정이 갖는 특징은 대법원 2002. 5. 31. 선고 2000두4514 판결에서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의 의미에 관하여 같은 취지의 해석이 이미 내려진 상태에서 한정위헌결정을 하였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위 판결에서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에서 제1항의 규정과 달리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라든가 ‘재직중의 사유로’라는 표현을 빠뜨리고 있다고 하여도 이는 제1항의 기본 규정에서 말하는 위 요건을 당연히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새겨야 할 것이므로, 같은 법 제64조 제3항은 공무원이 재직중 그에 열거된 죄를 범하고 그로 인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확정된 경우에 한하여 퇴직급여를 지급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으로서 퇴직 후 그와 같은 죄를 범한 경우에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확정된다 하더라도 이에 해당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지금까지 한정위헌결정을 하더라도 대상 법률조항의 해석에 대한 대법원의 선례가 있는 경우, 그 해석을 전제로 판단하였고 대법원이 이미 내린 해석과 같은 취지를 나타내는 한정위헌결정을 한 적은 없다(대법원의 해석을 전제로 합헌이라고 한 예는 헌법재판소 1995. 5. 25. 91헌바20 결정, 2001. 1. 18. 99헌바63 결정, 2001. 12. 20. 2001헌가6 결정 등, 대법원의 해석을 전제로 그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하여 한정위헌결정을 한 예는 1994. 12. 29. 93헌바21 결정).
한정위헌이라는 결정형식의 인정 여부에 대한 논란이 없지는 않지만, 이 글에서는 대법원 판례와 동일한 취지의 한정위헌결정이 가능한지 여부에 관하여만 검토하기로 한다.
2. 관련 법률조항
공무원연금법 제64조
①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퇴직급여 및 퇴직수당의 일부를 감액하여 지급한다. 이 경우 퇴직급여액은 이미 납부한 기여금의 총액에 민법의 규정에 의한 이자를 가산한 금액이하로 감액할 수 없다.
1. 재직중의 사유로 금고이상의 형을 받은 때
2. 탄핵 또는 징계에 의하여 파면된 때
② (생략)
③ 형법 제2편 제1장(내란의 죄), 제2장(외환의 죄), 군형법 제2편 제1장(반란의 죄), 제2장(이적의 죄), 국가보안법(제10조를 제외한다)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금고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에는 이미 납부한 기여금의 총액에 민법의 규정에 의한 이자를 가산한 금액을 반환하되 급여는 지급하지 아니한다.
3. 사건의 경과
헌법소원 청구인은 공무원으로 재직하였다가 퇴직하여 퇴직연금과 퇴직수당을 지급받았는데, 퇴직후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실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되자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은 청구인에 대하여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과 동법 제31조 제1항 제2호를 적용하여 기지급된 퇴직급여금에서 청구인에게 반환할 기여금(청구인으로부터 납부받은 기여금 및 이에 대한 민법 소정의 이율에 의한 이자)을 공제한 금원을 납부(반납)하라는 처분을 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서울행정법원에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퇴직급여환수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청구기각되었고,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여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에 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였으나 서울고등법원이 이를 기각하자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의하여 헌법소원을 청구하였다. 한편, 서울고등법원은 당해사건에 대한 청구인의 항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였고, 청구인이 상고를 하지 않아 그 판결은 확정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퇴직 후의 사유를 적용하여 공무원연금법상의 급여를 제한하는 범위내에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였다.
4. 검토
(1) 헌법합치적 법률해석의 원칙
헌법합치적 법률해석의 원칙이란 어느 법률규정이 한편에서는 위헌적인 해석이 가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합헌적인 해석이 가능한 경우에 그 법률규정을 위헌적인 상태대로 해석·적용하여서는 아니되고 합헌적이고 헌법합치적으로 해석하여야 하며, 이를 위헌이라고 판단하여서도 아니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는 모든 법률해석·적용자가 따라야 할 일반원칙으로서, 대법원은 “어떤 법률이 한 가지 해석방법에 의하면 헌법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다른 해석방법에 의하면 헌법에 합치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때에는 헌법에 합치하는 해석방법을 택해야 할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고(대법원 1992. 5. 8.자 91부8 결정), 헌법재판소도 “법률의 개념이 다의적이고 그 어의의 테두리 안에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때 통일적인 법질서의 형성을 위하여 헌법에 합치되는 해석, 즉 합헌적인 해석을 택하여야 하며, 이에 의하여 위헌적인 결과가 될 해석을 배제하면서 합헌적이고 긍정적인 면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일반원칙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다(헌법재판소 1991. 4. 1. 89헌마160 결정 등).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의 위헌 여부에 관하여 퇴직 후의 사유를 적용하여 공무원연금법상의 급여를 제한하는 범위내에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함으로써, 대법원이 퇴직 후 소정의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동 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한 것과 실질적으로 같은 입장을 취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이 대법원이 어떤 법률규정에 대하여 헌법합치적 해석원칙에 따라 합헌적 해석을 하였음에도 헌법재판소가 그와 다른 해석, 즉 헌법불합치적 해석을 전제로 당해 법률규정에 대하여 한정위헌결정을 하는 것은, 합헌적 해석이 가능한 경우 위헌이라고 판단하여서는 아니된다는 헌법합치적 법률해석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된다. 위와 같은 한정위헌결정은 당해 법률규정에 대한 헌법합치적인 해석이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하고 합헌적 해석을 강조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어서 헌법합치적 해석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헌법재판소는 한정위헌결정을 위헌결정의 일종으로 보고 있으므로 이러한 입장에 서는 한 위와 같은 반론은 타당하지 않다.
대법원의 합헌적 해석과 같은 취지를 나타내는 한정위헌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견해를 취하면, 법원 또는 행정기관이 합헌적으로 해석·적용을 하고 있는 법률규정에 대하여도 그와 다른 해석을 전제로 하여 한정위헌결정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고, 이는 합헌적인 해석·적용을 통하여 위헌의 소지가 제거된 법률조항에 대하여도 위헌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부당하다.
이 사건에서는 당해사건의 1심, 2심에서 모두 위헌적인 해석을 하였고, 그후 대법원이 다른 사건에서 동일 쟁점에 관하여 헌법합치적 해석을 한 것이어서 해당 법률규정에 대한 헌법합치적 해석이 확립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으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대법원의 해석과 동일한 취지의 한정위헌결정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이 법령의 해석통일을 위한 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법원의 합헌적 해석을 최종적이고 확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뿐만 아니라 단지 하급심의 잘못된 헌법판단을 바로잡기 위하여 한정위헌결정을 하는 것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또다른 문제점들을 야기하게 되므로 위와 같은 주장을 수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2) 이 사건 한정위헌결정이 야기하는 문제점
① 헌법재판소의 기능변화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에 대한 대법원의 해석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한, 위 조항에는 아무런 위헌적 요소가 없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합헌선언을 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함이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서 굳이 한정위헌결정을 한 이유는, 당해사건이 이미 확정된 상태여서 합헌결정을 하면 청구인이 구제받을 길이 없게 되자 한정위헌결정을 함으로써 재심을 통한 구제의 길을 열어주려 한 것으로 추측된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른 헌법소원(위헌심사형 헌법소원)은 위헌법률을 심사하게 되는 계기만 다를 뿐 위헌법률심판과 동일한 성질의 것이고, 위헌법률심판이나 위헌심사형 헌법소원의 본래의 목적은 모두 위헌법률을 제거하는 규범통제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 하급심의 해석에 따라 권리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당사자를 구제하기 위하여 대법원의 합헌적 해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정위헌결정을 내리는 것은 결국 위헌심사형 헌법소원이 구체적 권리구제를 위하여 기능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위헌법률심사를 통하여 규범통제의 기능을 해야 할 헌법재판소가 구체적 권리구제기관으로 변화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② 한정위헌결정으로 인한 혼란과 갈등
대법원은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한정위헌결정이 선고되었다고 하여 재심사유가 존재하는 것으로도 보지 않는다(대법원 2001. 4. 27. 선고 95재다14 판결).
확정된 당해사건의 결과를 번복하기 위하여서는 재심을 통할 수밖에 없는데, 구체적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이 한정위헌결정을 재심사유로 보지 않는 상태에서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결정을 내리는 것은 당사자에게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국민들에게 혼란을 야기시키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양 기관 사이에서 갈등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이 사건 한정위헌결정은 실질적으로 특정 하급심에 의한 법률해석의 잘못을 지적하고 청구인의 권리가 보호되었어야 함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헌법재판소가 이렇게 개별적인 재판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한 한정위헌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는 반면 그밖의 여러 측면에서 부정적인 효과를 낳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했다고 생각된다.
③ 심급제도에 대한 혼란
대법원에 의한 합헌적 해석의 선례가 있음에도 하급심에서 그 해석을 달리하여 위헌적 해석·적용을 한 경우에,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선례와 동일한 취지의 한정위헌결정을 할 수 있다고 보면, 당사자는 불복에 의하여 교정을 받을 수 있는 하급심의 법률판단에 대하여 상소에 의하지 아니하고 막바로 헌법소원을 제기하게 되어 헌법재판이 통상의 소송절차(상소절차)를 대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이는 헌법재판의 본질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이 사건과 같이 하급심 판결 당시 대법원의 선례가 없던 경우에는 당사자가 통상의 불복절차를 회피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떠한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 판단은 규범적 판단으로서, 당사자의 의도나 당해사건의 확정여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는 없으므로, 헌법소원 결정 시점에서 대법원의 합헌적 선례가 있다면 이를 전제로 위헌 여부에 대한 논리적·규범적인 판단을 하여야 할 것이지 구체적 사건에서의 당사자의 구제 여부를 먼저 생각할 것은 아니다.
이 사건 결정의 논리를 그대로 연장하면, 당사자는 법률해석이 쟁점이 된 사건에서 위헌제청신청을 하고 그것이 기각되면 1심만을 마친 다음 (심지어 그 해석에 관한 대법원 판결이 있는 경우에도) 상소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1심판결을 확정시킨 후 막바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게 될 것인데, 이는 현행 심급제도에 상당한 혼란을 초래하고 나아가서는 우리나라의 사법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는 결과가 될 것이다.
④ 재판소원 금지규정의 잠탈
헌법재판소가 행하는 법률에 대한 규범통제란 일차적으로 입법자에 대한 통제를 의미하는 것인데, 대법원에서 대상 법률에 대한 헌법합치적 해석을 하고 헌법재판소도 그러한 해석을 받아들이는 입장임에도, 그와 다른 입장에 선 하급심 법원의 해석이 잘못이라고 다투면서 그러한 해석에 의하는 한 동 법률조항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헌법소원을 받아들이는 것은 재판에 대한 불복과 다름없고, 이는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금지규정을 피하여 우회적으로 특정 재판의 당부를 다투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가 될 것이다.
이 사건에서 당해사건에 대한 하급심 판결 당시 대법원의 선례가 없었지만, 합헌적 법률해석이 가능한 것이었으므로 청구인은 상고를 통하여 구제를 받았어야 하고,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더라도 그와 별도로 불복절차를 밟아 해석을 통한 구제의 길을 열어 놓았어야만 했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하고 있는 독일에서도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원칙적으로 최종심까지 불복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고, 그러한 불복절차를 거치지 않음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불이익은 당사자가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고 있는바(BVerfGE 63, 45), 이 사건에서도 상소를 하지 않음으로써 생긴 불이익은 청구인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5. 맺음말
어떠한 법률에 대한 헌법합치적 해석이 가능하다면, 그러한 합헌적 해석을 전제로 당해 법률이 합헌임을 선언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이러한 기본원칙을 무너뜨리면 합헌적 법률에 대한 위헌선언(일부 위헌선언도 포함)도 가능한 것이 되어 법률에 대한 합헌판단과 위헌판단의 경계가 불명확해지고 헌법재판권과 일반재판권을 준별한 우리의 사법체계에도 혼란을 가져오게 된다.
물론 당해사건에서의 하급심이 합헌적 법률해석을 하지 않음으로써 당사자의 보호에 미흡하였던 것이 사실이고, 하급심에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헌법합치적 관점에서 사건을 처리하여야 한다는 반성의 계기가 되어야 겠지만, 하급심의 위와 같은 잘못은 대법원에 의하여 교정되어야 할 것이므로 이러한 기회를 놓친 당사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고, 헌법재판소가 이를 바로 잡기 위하여 헌법재판의 기본틀에 어긋나는 한정위헌결정을 내릴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