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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⑥ 독서실 남녀좌석 구분을 강제하는 조례의 위헌성
대상판례는 학교 밖의 교육영역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여 우선적으로 결정할 것이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개입할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국가 등의 후견적 간섭에 대한 한계(기준)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Ⅰ. 사실관계 원고는 전주시에서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및 같은 법 시행령에 따른 ‘학습장소로 제공되는 학원인 시설’에 해당하는 독서실을 등록하여 운영하였다. 원고는 이 사건 독서실 등록 당시 이 사건 조례 제3조의3 제2호에 따라 남녀 좌석이 구분 배열된 열람실 배치도를 제출하였다. 피고는 이 독서실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하여 열람실의 남녀좌석 구분 배열이 준수되지 않고, 남녀 이용자가 뒤섞여 있는 것을 적발하였다. 피고는 2017. 12. 6. 원고에 대하여 학원법 제17조, 이 사건 조례 조항에 따라 10일간 교습정지를 명하는 처분(‘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이에 원고는 교습정지처분이 근거한 조례가 위헌, 위법하다는 이유로 이 사건 처분은 취소되어야 한다며 이 사건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전라북도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 【제3조의3】 법 제8조에 따른 학원의 단위시설별 시설기준은 다음과 같다. 2. 열람실 : 열람실은 60제곱미터 이상으로 하되, 1제곱미터당 수용인원이 0.8명 이하가 되도록 하고, 남녀별로 좌석이 구분되도록 배열할 것. Ⅱ. 대상판결의 요지 이 사건 조례 조항은 학원법상 학원으로 등록된 독서실의 운영자로 하여금 열람실의 남녀 좌석을 구분하여 배열하도록 하고 위반 시 교습정지처분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독서실 운영자는 자신의 영업장소인 독서실 열람실 내의 좌석 배열을 자유롭게 할 수 없게 되므로 직업수행의 자유를 제한받는다. 한편 독서실 이용자는 독서실 열람실 내에서 성별의 구분 없이 자유롭게 좌석을 선택하는 등 학습방법에 관한 사항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되므로 자기결정권을 제한받는다. 먼저 목적의 정당성이 있는지 보면, 이 사건 조례조항은 독서실 내에서 이성과 불필요한 접촉을 차단하여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고 성범죄를 예방하는 것을 입법목적으로 하지만 열람실의 남녀좌석을 구분하여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고 학습효과를 높인다는 것은 독서실 운영자와 이용자의 자율이 보장되어야 하는 사적 영역에 지방자치단체가 지나치게 후견적으로 개입하는 것으로서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또한 수단의 적합성 역시 같은 열람실 내에서 남녀좌석을 구별하는 것이 그 목적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인지는 의문이다. 열람실 자체를 분리하지 않으면서 동일한 열람실에서 남녀의 좌석 배열만 구별하는 경우, 남녀가 바로 옆자리에 앉을 수 없을 뿐 앞뒤의 다른 열 책상에는 앉을 수 있고, 동일한 출입문을 사용하므로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다.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 역시 이 사건 조례 조항은 독서실 운영자에게 남녀좌석을 구분 배열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별도의 경고 조치 없이 바로 10일 이상의 교습정지 처분을 하면서도, 독서실의 운영 시간이나 열람실의 구조, 주된 이용자의 성별과 연령, 관리감독 상황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아니하여 독서실 운영자의 직업의 자유를 필요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다. 반면, 독서실의 남녀좌석을 구분 배열함으로 인해 달성할 수 있는 면학분위기 조성이나 성범죄 예방이라는 효과는 불확실하거나 미미하다. Ⅲ. 평석 1. 법원의 명령, 규칙, 조례에 대한 부수적 규범통제 명령·규칙이나 조례가 개별 사건의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 문제된 명령·규칙이나 조례가 모법에 위배되는지 여부 등에 대한 위법 심사, 평등원칙이나 신뢰보호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나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 등 위헌 심사를 행한다. 처분은 법령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데, 처분의 취소 등을 구하는 항고소송에서 법원은 근거법률에 위헌의 합리적 의심이 있으면 헌재에 심판제청을 하여야 하지만(헌법 제107조 제1항), 명령, 규칙, 조례 등의 위헌, 위법 여부는 직접 심사를 하게 되고(헌법 제107조 제2항), 심사결과 대통령령 등이 위헌, 위법이라고 판단되면 그러한 행정입법과 조례 등은 효력이 없고, 일반적인 효력을 부정하는 설도 있으나 통상 당해 사안의 적용 배제에 그친다는 설이 다수설이다. 대통령령 등은 대법원 판결로 위헌·위법이 확정되어야 관보에 게재된다(행정소송법 제6조) 그에 근거한 처분 또한 위헌, 위법한 처분이 된다. 2. 자기결정권과 자기책임의 원리 자기결정권은 이성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의 자기의 운명에 관한 결정·선택권을 존중하되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부담함을 전제로 하는 자기책임의 원리에서 비롯된다. 개인이 자유의사에 따라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때만 원칙적으로 자기결정에 따른 책임과 위험부담이 부과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에서 파생되는 자기결정권은 사람의 자기의 운명에 대한 결정·선택을 존중하되 그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부담함을 전제로 한다. 자기책임의 원리는 이와 같이 자기결정권의 한계논리로서 책임부담의 근거로 기능하는 동시에 자기가 결정하지 않은 것이나 결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책임을 지지 않고 책임부담의 범위도 스스로 결정한 결과 내지 그와 상관관계가 있는 부분에 국한됨을 의미하는 책임의 한정원리로 기능한다. 이러한 자기책임의 원리는 법치주의에 당연히 내재하는 원리로서, 자기책임의 원리에 반하는 제재는 그 자체로서 위헌이다(헌재 2001헌가25).”라고 판시하여 자기책임의 원리는 자기결정권의 한계 논리 내지 책임부담의 근거일 뿐만 아니라 책임의 한정 원리로 기능한다고 보고 있다. 3. 국가 후견주의의 한계 국가 후견주의의 구체적인 유형 구분은 학자마다 상이하나, 결국에는 자기 결정권의 제약원리로서 개인의 자율영역에서 자신의 이익이나 보호를 위하여 자기 결정권에 대해 국가권력이 개입·간섭하는 경우를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일치한다. 드워킨은 후견주의와 관련하여 “강제를 받는 사람의 복지, 행복, 필요, 이익 또는 가치와 관계하는 이유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과 같은 어떤 사람의 행동의 자유에 대한 간섭”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파인버그는 강한 후견주의와 약한 후견주의로 구분하고 있는데 강한 후견주의는 개입·간섭을 받는 자의 선택이나 행동이 완전히 임의적이라 하더라도 개입·간섭을 하는 데 반해, 약한 후견주의는 개입·간섭을 받는 자가 어떤 이유에 의해 적절한 판단 능력을 결여하여 실질적으로 비자발적이거나 그렇다고 추정될 경우에만 간섭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또한 데블린은 신체적·물질적 후견주의와 정신적·도덕적 후견주의로 구분하기도 한다. 결국, 자기결정권에도 내재적 한계가 있으므로 인격적 자율 그 자체를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영속적으로 해치는 경우 국가가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견주의라는 명목하에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간섭이 지나치게 확대됨은 경계하여야 한다. 4. 평등원칙 위반 대상판결에서 검토된 것은 아니나, 이 사건 조례조항은 평등원칙위반 소지도 있다. 1970년 10월부터 시행된 사설강습소에 관한 법률 시행령부터 “남녀공용인 독서실에 있어서는 열람실을 남녀별로 구분하고, 출입문도 따로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되다가 1985.5. 해당 조항은 없어졌으며 1996.1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부터 “남녀별로 좌석이 구분되도록 배열할 것“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후 2007.3. 시행된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규정이 삭제되었고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열람실 남녀 구분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사설 열람실의 경우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성인인 경우라도 남녀좌석을 의무적으로 구분하여야 하며 이를 위반 할 경우 교습정지 등 행정처분의 대상이 된다. 반면 스터디카페, 공공도서관, 공동주택 독서실 등은 남녀좌석을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사설 열람실의 경우와 차이가 있다. 여기서 평등원칙 위반의 소지가 발생하는데, 스터디카페, 공공도서관, 공동주택 독서실 등도 면학분위기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학원법에 따라 등록된 열람실과 실질적으로 차이는 없다. 그런데 위 공간들은 남녀좌석을 구분하여 운영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 않는 반면 이 사건 조례조항에 따르면 남녀좌석을 구분하여 운영할 의무를 부과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1회 적발시 10일간 교습정지, 2회 적발시 폐쇄명령을 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명백히 차별 대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평등원칙이 의미하는 상대적 평등, 즉 실질적으로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근거 없이 차별을 위반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상당하다. 5. 결론 급변하는 사회상을 반영하여 법령을 적시에 변경할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조례조항은 1970.10.27. 사설강습소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규정된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여 유지해 왔다. 대상판결은 사적 공간에서 학습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타인의 법익과 특별한 관련이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므로 이용자 각자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 미성년 학생이라도 학교 밖의 교육영역에 속하는 경우에는 부모가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여 우선적으로 결정할 것이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개입할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힘으로써 국가 등의 후견적 간섭에 한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국가 후견주의가 인정된다고 할지라도 헌법상 보장된 자기결정권의 본질을 침해해서는 아니되며, 필요 최소한도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 사건 조례조항은 학원법에서 규율하는 장소를 스터디카페 등 학원법에서 규율하지 않는 장소와 비교하여 볼 때 실질적인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고 있다. 이 사건 판결로 유사 조항을 두고 있는 다른 지자체의 지방자치단체의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 역시 헌법에 위반되는 것으로 추후 관련 소송이나 조례 개정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상판례는 학교 밖의 교육영역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여 우선적으로 결정할 것이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개입할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국가 등의 후견적 간섭에 대한 한계(기준)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성중탁 교수(경북대 로스쿨)
남녀구분
과잉금지원칙
독서실
열람실
성중탁 교수(경북대 로스쿨)
2023-08-30
노동·근로
민사일반
파산·회생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파견법상 권리에 미치는 영향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영향도 검토해야 1. 사안의 개요 A 회사는 1993. 9. 17. 설립되어 원청인 주식회사 삼표시멘트 및 그 자회사인 D 회사로부터 광산 채광업무를 하청받아 수행한 회사이고, 근로자 갑은 2012. 3. 1. A 회사에 입사해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위한 파견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다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당시 계열사의 경영난으로 인해 2013. 10. 17. 회생절차개시결정, 2014. 3. 18. 회생계획인가결정을 각 받았다. 갑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의 위 회생절차에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하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고용청구권 및 금전채권(파견법위반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 회생채권신고를 하지 아니하였고, 피고의 관리인 역시 원고를 채권자목록에 기재하지 아니하였다.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의 위 회생절차는 2015. 3. 6. 종결되었다. 한편 B회사는 2008. 5. 22. 컴프레서 운전용역 등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로, 역시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로부터 원청 사업장 내 컴프레서, 펌프, 보일러 등의 운전 및 점검업무 등을 하청받아 수행한 회사이다. 근로자 을은 2008. 6. 1. 에, 근로자 병은 2014. 12. 26.에, 근로자 정은 2016. 8. 13.에 각각 B회사에 입사해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위한 파견업무를 수행하였다. 근로자 갑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직접고용청구와 더불어, 원청 소속의 비교대상 근로자에 비해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한 것이 파견법 제21조 제1항의 차별에 해당하고 이는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이유로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 관련 소송의 개요) 근로자 을, 병, 정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직접고용청구 및 고용의무 불이행(즉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각 제기하였다. (대법원 2021다229601 판결 관련 소송의 개요, 다만, 원고 정의 경우 위 직접고용청구 부분에 대해 항소심에서 소일부취하 하였다. 이하 위 근로자 갑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함께 ‘대상판결’이라 한다. ) (사안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평석 주제와 직접 관련없는 당사자 및 사실관계는 요약 내지 생략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이 사건의 원심판결(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 2020나1108 등 판결)은, 위 파견근로자들의 직접고용청구권은 형성권이 아닌 청구권이기는 하지만 재산상의 청구권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의 회생채권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고,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에 기해 직접고용청구권이 불성립하거나 소멸한다는피고 주장에 대해서는, 사용사업주에 대해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었더라도 이후 회생절차 종결결정의 효력이 발생하면 파견근로자는 다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은 파견근로자가 명시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같은 조 제1항의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의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고, 그 시행령 제2조의2는 사용사업주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을 위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바, 그 입법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면, 사용사업주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은 발생하지 않고, 회생절차개시결정 전에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하여 직접고용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고, 다만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파견근로자는 그때부터 새로 발생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같은 법리에 기해 대법원은, 1) 원고 을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기 전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 파견근로자이므로 위 원고의 직접고용청구권은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해 소멸하였고, 더 이상 회생절차개시 전에 발생한 직접고용의무에 터잡아 회생절차개시 후의 직접고용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무 역시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고, 2) 원고 병의 직접고용청구권의 성립요건은 피고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 충족되었으므로 위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원고 병의 직접고용청구권은 발생하지 않고, 이를 전제로 한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 3) 다만 원고 정은 회생절차가 종결된 후인 2016. 8. 13.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하였으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 동법 시행령 제2조의2 제1호가 적용되지 않고,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원고 정에게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원고 갑의 경우 항소심에서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의 권리소멸 등 주장을 명시적으로 하지는 아니하였으나, 대법원은 원심이 이에 대한 석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갑의 직접고용청구를 인용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다만 사용사업주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주의를 기울였으면 이를 알 수 있었는데도 파견근로자가 비교대상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이러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이는 구 파견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대법원은, 이러한 사용사업주에 대해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관리인은 차별적 처우를 해소함으로써 위법행위를 시정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차별적 처우를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며 그 손해는 날마다 발생한다고 전제한 다음, 관리인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 제5호의 공익채권이라는 이유로, 상기 손해배상청구권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의 회생채권 또는 동법 제181조의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본안전 항변을 배척한 원심 판단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3. 평석 가. 파견법 제6조의2의 권리장애 및 권리소멸 효과 현행 파견법 제6조의2 조항은 2006. 12. 21.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도입된 것이다. 본래 1998년 제정된 파견법(구 파견법) 제6조 제3항은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함으로써 고용관계를 간주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의제조항에 대해 사용사업주의 계약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있었고, 이에 위 개정법 시행일인 2007. 7. 1. 이후부터는 사용사업주에게 파견근로자를 직접고용‘하여야 한다’는 고용의무 규정이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위 개정법의 적용 대상인 파견근로자는 직접고용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같은 권리는 청구권인가 형성권인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학계에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현재는 사용사업주는 물론 파견근로자 역시도 아래에서 살펴볼 이른바 ‘10년 손해배상’을 주장하기 위해 대부분 청구권설을 지지하는 듯하다. 다만 이같은 파견법상 권리가 청구권이라면 다른 일반채권과 마찬가지로 이행의 문제가 남게 되고, 특히 이 사건과 같이 고용의무 이행이 완료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한 경우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을 포함한 파견근로자의 제 권리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바, 적어도 대상판결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필자가 알기로는 이에 대한 학계 및 실무상의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먼저 파견근로자의 고용청구권 자체가 회생절차 개시 이전에 발생한 것이라면 (즉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 각호의 사유가 회생절차 개시결정일 이전부터 있었다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에 기해 회생채권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 사건 원심은 직접고용청구권은 단순히 근로계약관계 형성의 법률효과를 가져올 뿐인 점,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가 공익채권에 해당하는 점 등을 근거로 직접고용청구권이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설시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미 채권양도인인 회생채무자에 대해 채권양수인이 갖는 양도통지 이행청구권(대법원 2016마5082 결정), 골프회원권(대법원 89다카4113 판결)과 같은 계약상 급여청구권(비금전채권)에 대해서도 회생채권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한 점,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는 고용의무가 이행된 후 그에 터잡아 발생하는 것이므로 임금채권이 공익채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보다 선행하는 고용청구권 자체의 성질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이는 직접고용청구권이 회생채무자의 재산감소와 직결되는 권리임을 더욱 명확히 보여줄 뿐인 점 등을 종합하면, 이 부분 원심의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 개정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 동법 시행령 제2조의2 제1호는 직접고용청구권 자체의 회생절차상 취급에 대하여 입법적으로 해결한 조항이라고 평가된다. 대상판결은 위 파견법 조항이 직접고용의무의 예외규정을 둔 이유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파탄에 직면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사용사업주에 대하여도 일반적인 경우와 동일하게 직접고용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사업의 효율적 회생을 어렵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뿐만 아니라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정책적 고려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앞서 살핀 바와 같이 ①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하지 않고, ② 회생절차개시결정 전에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하여 직접고용청구권이 소멸하고 ③ 다만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파견근로자는 그때부터 새로 발생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정리하였다. 요컨대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은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결정 이후의 직접고용청구권에 대해서는 권리장애적 항변이 되고, 회생개시 이전에 이미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사용사업주는 위 조항을 근거로 권리소멸 항변을 할 수 있음이 명확해졌다.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영향도 검토해야 나. 회생개시결정 전부터 고용의무 불이행 또는 차별이 반복되어 온 경우 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법적 성질 한편 고용청구권 자체의 법적 성질과는 별개로,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하기 전부터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해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의 고용의무 또는 동법 제21조의 차별이 계속되어 온 경우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해당한다면 이를 원인으로 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채권은 회생채권 또는 개시후기타채권(채무자회생법 제181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파견법이 제정된 1998년 당시만 해도 하청 소속 근로자들은 주로 원청과의 묵시적 근로관계(소위 위장도급)를 주장하면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파견법에 기한 권리주장은 묵시적 근로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 대비한 예비적 주장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2006년 파견법이 개정되면서 고용 의제가 아닌 고용의무 규정이 도입되자, 이에 착안해 고용의무 불이행 또는 비교대상 정규직 근로자와의 임금 차별(불법행위)을 원인삼아 파견근로기간 동안 차별받은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이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다. 대법원은 이미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로 하여금 비교대상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이러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파견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 2020. 5. 14. 선고 2016다239024 등 판결) 사용사업주가 파견사업주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 파견근로자에 대한 임금지급의무 일부가 이행되지 않은 것이 채무불이행 내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입장에는 다소의 의문이 있다. 파견근로자 입장에서는 계약상 권리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 외에 달리 침해된 법익이 없는 바, 이같은 경우에도 불법행위와의 경합을 인정한다면 계약법 영역과의 준별이 분명치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회생절차개시 전부터 사용사업주의 재산상 청구권(즉 고용의무 또는 차별해소의무)의 불이행이 있기 때문에 파견근로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할 관계에 있는 때에는 그 계속으로 회생절차개시 이후에 발생하고 있는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채권은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에서 말하는 ‘회생절차개시 후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문제되는 것이다. (대법원 2004. 11. 12.선고2002다53865 판결 참조) 이 문제에 대해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은,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여 온 사용사업주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관리인은 그 차별적 처우를 해소할 의무를 부담하고, 함으로써 위법행위를 시정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차별적 처우를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며 그 손해는 날마다 발생하는 것이므로, 관리인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제179조 제1항 제5호의 ‘그 밖의 행위로 인하여 생긴 청구권’에 해당하므로 공익채권이라는 이유로, 원고 갑의 손해배상채권이 회생채권 내지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본안전 항변 등을 배척한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였다. 또한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29601 판결)은, 앞서 본 원고 을, 병의 고용의무가 소멸하거나 발생하지 아니한 이상 피고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회생채권 내지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본안전 항변 등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하였다. 파견근로자 손해배상청구권의 근거를 고용의무 불이행(채무불이행)에서 찾든 차별해소의무 위반(불법행위)에서 찾든 간에, 그 요건사실인 근로자파견관계가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 이전부터 성립해 있었다면 청구권의 주요한 발생원인은 회생절차개시 전에 갖추어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상판결은 원고 갑과 주식회사 삼표시멘트 간의 근로자파견관계가 회생절차개시결정 이전에 성립해 그 이후까지 계속되었다고 보았음에도, 회생절차 관리인이 위 원고를 차별 처우한 것이 회생절차 이전의 차별과 별개인 ‘새로운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한 바, 이 부분 판시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채무자회생법 제251조 본문에서 이른바 실권제도를 둔 것은, 절차참여의 기회를 보장하였음에도 절차에 참여하지 아니한 권리자는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점과 뒤늦게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는 권리자로 인하여 회생계획의 수행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한 결과이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 주식회사 삼표시멘트가 회생절차에 돌입한 사정은 하청업체인 A, B 회사 직원이라면 누구나 알았거나 알 수 있었고, 다만 당초에는 묵시적 근로관계 주장에 집중한 나머지 파견법상 권리주장에 소홀하였던 것이므로, 구체적 타당성의 측면에서 보아도 보호받을 필요가 없다. 다. 보론 - 파견법위반(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의 요건 및 소멸시효 백보를 양보하여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개시 이전부터 계속된 파견관계에 기해 그 후에도 임금을 차별한 것이 ‘새로운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점만으로는 사용사업주가 당연히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는 회생절차개시 여부를 불문하고, 사용사업주가 파견법 제21조의 차별금지를 위반한 사안이라면 일반적으로 짚어보아야 할 문제이다. 사용사업주가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 책임을 지려면 파견관계 내지 임금 차별에 대해 사용사업주(또는 관리인)의 귀책사유 내지 고의·과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특히 불법행위를 청구권원으로 삼는다면 고의·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당연하게도 피해자인 파견근로자에게 있다. 한편 전술한 바와 같이,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파견근로자의 권리주장은 점차 직고용에서 손해배상청구로 그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용사업주와의 고용관계가 의제된 경우에는 임금채권의 소멸시효(3년) 범위 내에서 임금차액 자체를 청구할 수 있을 뿐이지만, 고용의무 내지 차별금지의무에 터잡아 불법행위로 구성할 경우 민법 제766조 제2항에 따라 불법행위일로부터 10년의 범위 내에서 소급해 임금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할 여지가 있다. 즉 파견근로자는 동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도과만 면한다면, 계약상 권리보다 불법행위책임을 추궁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여기게 된다. (심지어는, 구 파견법에 기해 고용관계가 의제된 파견근로자조차 파견법 제21조,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위 3년 이전에 발생한 임금 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한다.)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의 원심에서는, 이 사건 소제기일로부터 역산하여 3년 이전의 기간에 발생한 원고 갑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로 인해 소멸하였는지 여부도 쟁점이 되었다. 원심 및 대상판결은 원고 갑이 위 소제기일로부터 3년 전 당시에 차별적 처우를 당하고 있음을 인식하였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는 취지로 피고 회사의 위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하기는 하였다. 다만 대상판결은 파견법위반의 불법행위에 대해 민법 제766조 제2항의 장기 소멸시효 규정까지 적용된다고 판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파견근로자가 파견법 제21조,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10년간의 임금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단정하여서는 곤란하다. 다른 법률에 특별히 그보다 단기의 소멸시효기간을 정한 경우에는 그 단기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입찰 담합을 원인으로 한 국가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서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 규정이 적용되지만, 장기 소멸시효는 국가재정법 제96조에 따라 5년으로 적용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4. 결론 및 향후 과제 그간의 불법파견 소송에서는 주로 원청과 하청, 하청근로자 간의 법률관계가 진성 도급관계인지 아니면 근로자파견관계인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었고, 특히 원청회사 사업장 내에서 원청의 일을 도급주는 형태인 소위 사내하청이 파견관계인지 여부, 컨베이어벨트 바깥의 이른바 간접공정에 속한 경우에도 파견관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자주 문제되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사실인정의 문제이므로 산업분야 및 사업장마다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설령 원청 회사에서 파견으로 볼 만한 기준 내지 요소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이를 시정하기 위해 생산라인 내지 인력구조 자체를 하루아침에 개선하기도 어렵다. 결국 사내도급 방식으로 운영되는 중견기업 및 대기업이라면 앞으로도 불법파견에 관한 리스크를 일정 부분 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받은 파견근로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그 권리행사의 효과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학계 및 실무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아니하였다. 대상판결은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한 경우 파견법상 권리 역시 변경 내지 소멸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비단 대상판결의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뿐 아니라, 불법파견이 문제되는 완성차업계 및 조선업계 등에서는 장기간 업황부진 등으로 회생을 면하기 어려운 회사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파견법상 직접고용청구권 및 그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법적 성질에 대해 보다 명확히 판단하였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있다고 사료된다. 다만 파견법 제21조에서 말하는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를 충족해야 하는지, 특히 회생절차에서 선임된 관리인의 고의·과실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파견법위반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면 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채권의 장기 소멸시효는 무엇인지 여부는 향후 해명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대상판결을 계기로, 파견법상 권리의 법적 성질 및 그 효과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변재휘 변호사(법무법인 동헌)
소멸시효
임금채권
임금차별
불법파견
변재휘 변호사(법무법인 동헌)
2023-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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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사건
소프트웨어 도입대가의 구별기준
I. 서론 대상판결에서는 '내국법인이 외국법인으로부터 수입하는 소프트웨어 대가의 법적성격'이 무엇인지 문제되었다. 이는 최근 납세자와 과세관청 간 다툼이 첨예하게 발생하는 쟁점이다. 대법원은 2000. 1. 21. 선고 97누11065 판결 등을 통해 그 판단기준을 제시한 바 있는데, 대상판결은 그 판단기준을 적용한 최근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Ⅱ. 대상판결의 개요 1. 사실관계 원고는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인 미국 PTC 그룹의 자회사로서 PTC와 소프트웨어 배급계약을 체결한 다음 PTC에 PTC가 개발한 소프트웨어(이하 '쟁점 소프트웨어'라 한다)의 국내 판매 및 유지보수 용역 수입에 대하여 소프트웨어 도입대가 및 라이선스 수수료 명목으로 지급하였다(이하 '쟁점 지급금'이라 한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원고는 쟁점 지급금이 범용화된 것으로서 불특정 다수인에게 판매되는 '상품'의 수입대가라고 주장하였다. 이 경우 PTC의 사업소득이 되어 PTC의 고정사업장이 없는 국내에서는 과세권이 없게 된다. 반면 피고는 소프트웨어에 포함된 '노하우'에 대한 도입대가로 보고 원고에게 원천징수세액 및 그 가산세를 부과하는 과세처분을 하였다. 이 경우 PTC의 국내원천 사용료소득이 되므로 국내에서 15%의 세율로 원천징수 되기 때문이다. 제1심 판결은 쟁점 소프트웨어 도입이 노하우를 도입한 것이므로 피고의 처분은 적법하다고 보았다. 대상판결은 제1심판결의 결론을 정당한 것으로 수긍하였다. Ⅲ. 평석 1. 소프트웨어 도입대가의 소득 구분 기준 가. 관련 법리 법인세법 제93조 제8호 나목에서는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으로 '산업상·상업상·과학상의 지식·경험에 관한 정보 또는 노하우'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통상 '노하우'라 일컫는 발명, 기술, 제조방법, 경영방법 등에 관한 비공개 기술정보를 사용하는 대가를 말하므로 내국법인이 외국법인으로부터 도입한 소프트웨어의 기능과 도입 가격, 특약 내용 기타 제반 사정에 비추어 그 소프트웨어의 도입이 단순히 상품을 수입한 것이 아니라 노하우 또는 그 기술을 도입한 것이라면 그 도입대가는 그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인 사용료소득에 해당하여 법인세법 제98조에 정한 원천징수의무자인 내국법인에 대하여 법인세를 징수할 수 있다(대법원 97누11065 판결 등). 나. 구체적인 판단기준 1) 핵심적 판단기준 가장 핵심적인 판단기준으로서 소프트웨어에 노하우가 '포함'되어 있어야 하고 도입자가 노하우를 '전수'받아 사용하여야 한다(조인호, 대법원판례해설 제34호, 594쪽 참조). 사용료소득은 '노하우 전수에 대한 대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선 해당 소프트웨어에 노하우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노하우란 '공개되지 아니한 고도의 기술적 정보'를 의미하므로 다른 업체가 통상적으로 보유하는 전문적 지식, 특별한 기능 정도에 불과한 경우에는 사용료소득이 아니다(대법원 1986. 10. 28. 선고 86누212 판결 등). 소프트웨어에 노하우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 위해서는 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국내 기술수준으로는 불가능한지 여부가 '일응'의 기준이 되지만 그러한 이유만으로 노하우 전수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고도의 기술로써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라 하더라도 수입하는 자가 '상품'으로 사용하는 데 그친다면 노하우의 전수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소프트웨어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것이나 제작자의 노하우가 반영되어 있게 마련이므로 단순히 제품을 정하여진 용법에 따라 '사용'하였다는 이유만으로는 노하우를 '전수'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앞의 판례해설 594, 595쪽 참조). 따라서 완성된 소프트웨어를 공개된 기능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상품의 수입'으로 보아야 하고 소프트웨어 제작기법 또는 일반에 공개되어 있지 않은 산업상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노하우의 전수'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국내도입자가 공급자와 판매대리점 계약을 체결하여 공개된 기능 그대로의 소프트웨어를 수입하여 불특정 다수의 고객들에게 판매한 정도에 그친 경우에는 노하우의 전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대법원 1997. 12. 23. 선고 97누2986 판결 참조). 판매대리점은 수입된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역할만을 수행하므로 그 과정에서 비공개 기술정보 등 노하우가 전수되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비공개원시코드 자체의 이전이 이루어져 해당 소프트웨어의 제작기법이 전수되는 경우에는 노하우 전수에 해당할 수 있다. 또한 특정 고객의 특수한 요구에 맞게 소프트웨어를 개작하여 수입하는 경우 노하우 전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노하우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채 개별적으로 전수되었을 가능성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수입대가가 사용료소득에 해당한다고 보아 과세하려면 과세관청으로서는 먼저 해당 소프트웨어에 '어떤 노하우가 포함되어 있는지'를 밝히고 그 노하우가 수입자에게 '전수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2) 부수적 고려사항 소프트웨어 대가가 고가라는 이유만으로 노하우 도입의 근거로 볼 것은 아니다(앞의 판례해설, 595쪽). 소프트웨어가 단순 상품으로 거래되는 경우에도 고가인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밀준수의무 존재만으로는 노하우 전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없다(대법원 97누2986 판결 참조). 소프트웨어 제품 거래계약에 비밀준수의무 등을 포함시키는 이유는 노하우 도입과 무관하게 불법복제 또는 역전환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공급자 입장에서 구매자의 권리를 제한하는데 그 취지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앞의 판례해설, 595, 596쪽). 교육, 유지보수, 컨설팅 용역이 제공되었다는 사정 역시 소프트웨어를 상품으로서 수입하는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으므로 노하우 도입의 독자적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교육 용역은 사용방법이 복잡한 소프트웨어의 경우에도 고객의 필요에 따라 제공될 수 있다. 유지보수 용역 또한 소프트웨어에 대한 업데이트, 패치, 오류시정 등을 위한 목적에서 제공되는 것이므로 상품으로 수입되는 경우에도 제공될 수 있다. 컨설팅 용역은 고객의 컴퓨터 환경을 점검하여 필요한 환경설정 등을 해주는 것으로서 소프트웨어에 내장된 기능을 활용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는 상품 수입 시에도 가능하다. 2.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 대상판결은 ① 노하우 전수에 관한 입증이 영업비밀에 해당하여 어렵다는 이유로 '어떤 노하우 도입이 있었는지'에 관한 입증책임을 전도하고 ② 상품 수입 시에도 나타날 수 있는 부수적·지엽적 사정들만을 이유로 노하우 도입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타당한지 의문이 있다. 대상판결은 과세관청의 입증책임과 관련하여 "쟁점 소프트웨어의 도입이 단순한 상품의 수입과는 구별되는 노하우 또는 그 기술의 도입에 해당한다는 점을 주장·증명하면 충분하고 해당 노하우 또는 기술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 주장·증명하여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그와 같이 노하우 또는 기술의 구체적인 내용은 일반적으로 영업비밀로 분류되어 과세관청이 이를 정확히 밝히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과세관청은 각 소프트웨어별로 어떠한 노하우가 '포함'되어 '전수'되었는지 여부를 입증하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이다. 만약 이러한 입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상품 수입시에도 나타나는 사정들만 존재한다면 입증책임을 다하지 못한 과세관청을 패소시켜야 하고 영업비밀에 해당하여 밝히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그 입증책임을 면책시켜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또한, 대법원 판례법리에서 과세관청에게 입증을 요구하는 '노하우의 포함 및 전수'는 결코 납세자의 영업비밀까지 침해하라는 것이 아니다. 과세관청으로서는 지사와 본사 사이에서 '어떠한 노하우가 전수'되었는지 입증하면 충분하고 이는 영업비밀과 무관하다. 뿐만 아니라 대상판결이 노하우 도입으로 본 논거를 살펴보면 모두 상품 수입 시에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거나 판단 근거가 불분명해 보인다. 대상판결이 주된 근거로 든 국내에서의 개발·공급이 힘들다는 사정, 교육·유지보수·컨설팅 용역이 제공된 사정, 비밀유지약정이 존재하는 사정 등은 노하우 도입 시에만 나타나는 사정이 아니고 상품 수입 시에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사정에 해당한다. 오히려 쟁점 소프트웨어는 사전 제한 없이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상대로 공개된 기능 그대로 판매된 것으로 보이는데 사용료소득의 개념에 해당하는 산업상 노하우에 관한 '비공개' 기술정보가 전수되었다고 볼 수 없다. Ⅳ. 결론 최근 해당 쟁점과 관련한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동일한 쟁점임에도 사실관계 또는 어떤 판단기준에 중점을 두는지에 따라 그 판단이 엇갈리는 사례들이 병존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대법원의 판시법리가 워낙 간략한 탓에 기인한 것으로서 구체적인 판단기준들을 중심으로 한 대법원의 새로운 법리(세부법리) 판시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임한솔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법인세
노하우
사용료소득
임한솔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2021-04-12
행정사건
사법상 계약에 의거한 행정처분의 성립가능성 문제
Ⅰ. 사안의 개요 자사제품에 대해 조달청장으로부터 ‘우수조달물품’으로 지정된 다음, 갑은 조달청과 사이에 갑이 각 수요기관으로부터 해당 제품에 대한 납품요구를 받으면 계약금액의 범위 안에서 해당 제품을 실제로 그 수요기관에 납품한 후 조달청장으로부터 대금을 지급받기로 하는?물품구매계약(제3자를 위한 단가계약 방식)을 수의계약으로 체결하였다. 이?물품구매계약에는 ‘갑은?물품구매계약 추가특수조건(이하 ‘추가특수조건’이라 한다)을 충실히 이행한다’는 취지와 ‘이 사건 제품의 규격은 우수조달물품(모자이크스톤블록) 규격서와 같다’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조달청장이 "甲이 이 사건 수요기관에 공급하고 있는 제품에 대한 계약이행내역 점검 결과 계약 규격과 상이한 점이 있다"는 이유로 추가특수조건 제22조 제1항 제16호에 따라 갑에 대하여 6개월의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거래정지 조치를 취하였다(이하 ‘이 사건 거래정지 조치’라 한다). 이에 갑은 거래정지조치에 취소소송을 제기하여 제1심(서울행정법원 2014.11.6. 선고 2014구합60924판결)은 인용판결을 내렸지만, 항소심(서울고등법원?2015.9.4.?선고?2014누71469?판결)은 이 사건 거래정지 조치는 계약상 의사표시에 불과하므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 사건 소를 각하였는데, 상고심은 항소심과 정반대의 입장에서 파기환송하였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조달청이 계약상대자에 대하여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서의 거래를 일정기간 정지하는 조치는 전자조달의 이용 및 촉진에 관한 법률,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하여 보호되는 계약상대자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법률상 이익인 나라장터를 통하여 수요기관의 전자입찰에 참가하거나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서 등록된 물품을 수요기관에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지위를 직접 제한하거나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위 거래정지 조치는 비록 추가특수조건이라는 사법상 계약에 근거한 것이지만 행정청인 조달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의 공권력의 행사로서 그 상대방인 갑 회사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므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하고, 다만 추가특수조건에서 정한 제재조치의 발동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에는 위 거래정지 조치가 위법하므로 갑 회사의 행위가 추가특수조건에서 정한 거래정지 조치의 사유에 해당하는지, 추가특수조건의 내용이나 그에 기한 거래정지 조치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령 등을 위반하였거나 평등원칙, 비례원칙, 신뢰보호 원칙 등을 위반하였는지 등에 관하여 나아가 살폈어야 하는데도, 위 거래정지 조치가 사법상 계약에 근거한 의사표시에 불과하고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소를 각하한 원심판결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 Ⅲ. 문제의 제기 행정처분의 개념적 징표 가운데 하나가 ‘공권력의 행사’인데, 이는 공법영역에서의 일방적 조치이어야 비로소 행정처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상판결도 인정하듯이, 이 사건 거래정지 조치는 추가특수조건이라는 사법상 계약에 근거한 것이다. 사법계약에 따른 조치를 행정처분으로 본다는 것은 사법상 계약에 의거한 행정처분의 성립가능성을 시인한 셈이 된다. 대상판결 및 그와 동지인 대법원 2018.11.15. 선고 2016두45158판결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Ⅳ. 항소심의 논거 항소심(서울고등법원?2015.9.4.?선고?2014누71469?판결)은 다음의 논거로 소를 각하하였다: ① 추가특수조건 제22조 제1항 제16호 등은 계약의 일부로서 원고가 그 적용에 동의한 경우에만 당사자 사이에서 구속력이 있을 뿐 법규로서의 효력이 없으므로 이 사건 거래정지 조치는 법령이 아니라 계약에 근거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 점, ② 이 사건 거래정지 조치는 민간의 일반 종합쇼핑몰에서 계약상 의무위반에 대하여 계약에 부가된 조건에 따라 권리를 행사하는 것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는 점, ③ 피고가 이 사건 거래정지 조치를 하는 과정에서 원고에게 보낸 문서에도 계약위반에 따라 거래정지를 한다고만 기재되어 있을 뿐 달리 이 사건 거래정지 조치를 행정처분으로 볼 수 있는 외형이 보이지 않는 점. 판례는 공기업과 준정부기업이 입찰참가자격제한조치를 함에 있어서 법령이나 계약에 근거하여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다고 본다(대법원 2018.10.25. 선고 2016두33537판결). 아울러 판례는 정부투자기관이 공공계약을 체결하면서 부가한 입찰참가제한 특약을 사법상 계약으로 보며, 아울러 그에 의한 입찰참가제한조치 역시 사법상의 조치로 본다(대법원 2014.12.24. 선고 2010다83182판결 등). 이런 맥락에서 원심은 이 사건 거래정지 조치를 전적으로 추가특수조건이라는 사법상 계약의 차원에서 접근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입찰참가자격제한조치가 국가계약법 제27조 제1항 등과 같이 법률에서 직접 규정한 것이어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보아, 이 사건 거래정지 조치를 입찰참가자격제한조치와는 구별되게 접근하였다. Ⅴ. 대상판결의 논증상의 문제점 사법상 계약인 추가특수조건에 의거한 이 사건 거래정지 조치가 공법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민사논리를 수정하는 논거가 필요하다. 사법관계를 수정시키는 명문의 규정을 통해 그 사법관계는 공법관계가 된다. 대표적으로 국유일반(잡종)재산의 대부료 징수는 국세징수법상의 체납처분규정의 준용으로 인해 민사소송의 방법으로 관철할 수 없다(대법원 2014다203588판결 등). 명문의 규정이 없다면, 강한 공익상의 요청이 있거나 공권력주체로서의 우월적 지위가 확인되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전자조달법 및 구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종합쇼핑몰운영규정(조달청 고시), 구 다수공급자계약 업무처리규정(조달청훈령)에 의거해서 처분성을 논증하였다. 전자조달법은 처분성 논증에 아무런 착안점을 제공하지 않는다. 구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종합쇼핑몰운영규정(조달청 고시)과 구 다수공급자계약 업무처리규정(조달청훈령)은 국가계약법과 조달사업법의 단가계약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규정이다. 따라서 이들 규정은 -판례가 행정처분으로 보는 국가계약법상의 행정청의 입찰참가자격제한조치의 경우를 제외하고- 사법상의 계약인 단가계약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대상판결이 이들 규정에서 공법적 착안점을 구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Ⅵ. 처분성인정에 따른 후속 물음: 법률유보의 물음 단가계약이 사법계약인 이상, 그것을 집행하는데 특별한 공법적 메커니즘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국가계약법의 차원에서 그런 점이 규정되어야 한다. 이 사건 거래정지조치를 처분으로 볼 때, 제기될 수 있는 물음이 법률유보의 원칙이다. 일찍이 필자는 근거규정의 성질과 처분성인정여부는 연관되지 않음을 강조하였는데 판례가 이를 채용하였다(이런 사정은 김중권, 행정법 제3판, 2019, 210면 이하). 그리하여 대법원 2005.2.17. 선고 2003두14765판결은 처분성 여부를 논증한 다음, 법률유보의 원칙을 적용하여 여신전문금융회사의 임원에 대한 금융감독원장의 문책경고가 위법하다고 판시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대법원 2016두45158판결의 원심((대전고등법원 2017.1.26. 선고 2016누11801판결)은 처분으로서의 이 사건 거래정지조치가 아무런 법률상 근거 없이 추가특수조건이나 쇼핑몰운영고시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서 법률유보의 원칙에 위배되어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공히 이 사건 거래정지조치의 처분성을 인정한 대상판결과 대법원 2005.2.17. 선고 2003두14765판결이 본안판단에서 법률유보의 물음을 제외하다시피 하는 식의 논증을 한 것은 처분성 및 위법성의 논증에서의 앞선 판례의 기조와는 맞지 않는다. 이런 논증상의 모순은 실은 이 사건 거래정지조치를 처분으로 본 데서 비롯되었다. Ⅶ. 맺으면서-처분성인정이 능사가 아니다. 처분성의 확대는 행정상의 권리구제가 여의치 않을 때 강구할 수 있다. 민사적 권리구제가 주효한 경우에는 처분성의 확대가 동원될 상황이 아니다. 처분성의 인정의 裏面에는 행정의 우월적 지위가 합리화되고 제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불가쟁력의 존재나 공익과 사익의 형량과정 등의 차원에서 보면, 국민의 권리구제의 측면에서 행정소송이 민사소송보다 항상 더 유리하다고 확신할 수 없다. 대상판결은 자칫 공법과 사법의 구별 시스템을 무색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생각건대 대상판결은 부정당업자에 대한 입찰참가제한 및 행정계약의 해지와 관련해서 부당하게 처분성을 인정한 판례가 빚은 결과로 여겨진다. 김중권 교수 (중앙대 로스쿨)
나라장터
조달청
거래정지
김중권 교수 (중앙대 로스쿨)
2019-05-27
유해정보사이트에 링크해 놓은 경우의 형사책임
I. 사실관계의 요지 피고인 甲은 1998.5경부터 1998.6.23.경까지 사이에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아이뉴스(Inews) 상에 개설한 인터넷 신문인 ‘팬티신문’에, 원심 공동피고인 乙, 피고인 丙이 개설한 각 홈페이지들 및 공소외 丁이 미국 인터넷 서비스업체 지오시티스(geocities) 상에 개설하여 수십개의 음란소설을 게재한 홈페이지에 바로 연결될 수 있는 링크사이트를 만들고, 이를 통해 위 乙, 丙, 丁이 음란사진과 음란소설을 게재하고 있는 사이트에 접속되도록 하여 위 ‘팬티신문’에 접속한 불특정 다수의 인터넷이용자들이 이를 컴퓨터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 음란한 영상 및 문언을 공연히 전시하였다는 공소사실이다. <판 결 요 지> 인터넷상의 링크를 이용하여 별다른 제한 없이 다른 웹사이트로부터 전송되어 오는 음란한 부호 등에 바로 접할 수 있는 상태가 조성되었 다면, 그러한 행위는 전체적으로 보아 음란한 부호 등을 공연히 전시 한다는 구성요건을 충족한다고 봐야한다. II. 원심판결의 요지 원심판결은 이 사건과 같이 다른 웹사이트의 초기화면을 링크한 경우에는 웹사이트의 주소를 전시하거나 알려준 것에 불과하여 음란한 부호 등을 공연히 전시한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다만 원심은 명확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나 다른 웹사이트에 속하는 개개의 문서나 파일에 직접 링크한 경우에는 음란한 부호의 전시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 평 석 요 지 - 대법원 판결이 정범인정의 근거로 삼은 것은 링크의 기능에 대한 잘못된 평가와 정범과 공범의 구별에 대한 범행지배론 의 철저하지 못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원심의 견해가 타당하다 링크를 한 사람은 정범의 음란물 전시행위를 방조한 자라고 봐야 한다 III. 대법원 판결의 요지 구 전기통신기본법 48조의2(현행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제65조 2항 2호)는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 음란한 부호·문언·음향 또는 영상을 반포·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인터넷상의 링크란 하나의 웹페이지 내의 여러 문서와 파일들을 상호 연결하거나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웹페이지들을 상호 연결해 주면서 인터넷이용자가 마우스클릭이라는 간단한 방법만으로 다른 문서나 웹페이지에 손쉽게 접근 검색할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서 초고속 정보통신망의 발달에 따라 그 마우스 클릭행위에 의하여 다른 웹사이트로부터 전송되어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매우 짧기 때문에 인터넷이용자로서는 자신이 클릭함에 의하여 접하게 되는 정보가 링크를 설정해 놓은 웹페이지가 아니라 다른 웹사이트로부터 전송되는 것임을 인식하기조차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링크를 이용하여 별다른 제한 없이 음란한 부호 등에 바로 접할 수 있는 상태가 실제로 조성되었다면, 그러한 행위는 전체적으로 보아 음란한 부호 등을 공연히 전시한다는 구성요건을 충족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IV. 판례평석 (1) 정보고속도로인 인터넷의 대표적 역기능은 바로 유해정보의 유통이다. 현재 인터넷상에는 각종 음란물뿐만 아니라 이적 표현물, 자살이나 폭력을 부추기는 글, 개인의 사적 비밀, 기업의 영업비밀, 개인과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는 각종 음해성 정보 등이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다. 더구나 인터넷상의 정보유통은 공간적 한계의 초월성, 전파의 신속성, 피해의 광범위성 등을 본질적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그 피해의 파장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에 따라 인터넷상의 유해정보유포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본 사건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에서 금지하고 있는 음란물의 유포·전시에 대한 법적 책임의 문제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상 유해정보의 유포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행위자의 책임이 문제된다. 즉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의 형사책임, 유해정보를 직접 제공·유포한 자의 형사책임 그리고 유해정보사이트에 링크해 놓은 자의 형사책임이 그것이다. (2)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의 형사책임: ISP가 스스로 유해정보를 제공·유포했을 때에는 직접 유해정보 제공자로서의 책임을 지게되어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ISP가 인터넷이용자에 대해 유해정보 사이트에의 접속을 가능케 한 경우와 자신이 관리하는 사이버공간을 통해 유해정보가 저장·유포·전시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했을 경우에 어떤 형사책임을 물어야 할지가 문제된다. 구체적으로는 ISP에 대해 작위 또는 부작위의 책임을 물어야할 것인지, 책임을 묻는다면 정범 또는 방조범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부가적으로는 ISP에게 엄격한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법정책적으로 반드시 바람직한 것인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기준과 범위 내에서 면책의 가능성을 허용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지면의 제약으로 ISP의 형사책임을 상세히 논하기는 어려우므로 간략히 결론을 말한다면, ‘유해정보의 저장을 목적으로 하는 서버의 운영’, ‘서버에 저장된 정보 중 유해정보를 골라 공지하거나 다운로드를 가능케 하는 경우’, ‘직접 유해사이트에의 접속가능성을 제공하는 경우’ 등에는 ISP의 작위행위를 문제삼을 수 있고, 기타 다른 경우 특히 인터넷접속서비스를 제공한 경우에는 부작위를 문제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해정보유포에 대한 부작위범의 책임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보증인적 지위’ ‘유해정보통제의 기술적 가능성’ ‘결과귀속의 가능성’ ‘정보차단의 합리적 기대가능성’이라는 전제조건들이 충족되어야만 하다. 나아가 ISP에게 유해정보유포에 대한 형사책임이 인정된다면 과연 그 책임은 정범으로서의 책임일지 아니면 방조범으로서의 책임일지가 문제된다. ISP가 유해정보를 스스로 저장하여 관리·유포하거나 인터넷이용자의 유해정보에의 접속을 조장·촉진하는 경우에는 정범으로 볼 수 있지만, 기타의 경우 특히 단순한 네트워크중재만으로는 항상 방조범으로서의 책임만이 문제된다고 해야 한다. (3) 유해정보를 직접 제공한 경우: 실정법상 유포·전시가 금지된 유해정보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 정보의 제공자가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책임을 진다. 이때 정보제공자는 유해정보를 인터넷에 적극적으로 유포한 경우뿐만 아니라 홈페이지·공개사이트 등에 유해정보를 단순히 ‘등재’(upload)하여 누구든지 그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상태에 두는 경우에도 같은 정도의 책임을 진다. 엄밀하게 말해 후자의 경우는 적극적인 교부행위는 아니나 ‘공연히 전시하는 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이버공간에서는 정보의 검색과 정보원에의 접속이 용이하여 적극적인 유포와 단순한 등재 사이에 사실상 큰 차이를 인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규범적 평가에 있어서도 유포와 등재의 양 행위간에 차별적 평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개별 법규정에서 적극적인 유포행위와 소극적인 등재행위(upload)를 모두 규정하고 있지 아니한 경우에는 형법규범의 엄격한 해석의 요청에 따라 양 행위를 동등하게 평가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이는 입법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 유해정보사이트에 링크(links)해 놓은 경우: 본 사례와 같이 정보제공자가 스스로 유해정보를 직접 제공하지 않고 유해정보가 담겨 있는 다른 사이트에 접속(links)하게 해주는 경우의 형사책임은 어떻게 되는가. ① 우선 링크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에게 유해정보 유포에 대한 정범성(T terschaft)이 인정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엄밀하게 평가할 때 링크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는 연결행위를 통해 사실상 유해정보가 소재하는 곳의 주소만 알려주는 것이지 직접 그 유해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이용자가 링크를 클릭할 필요가 없고 직접 주소를 입력하여 그 유해정보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명백해 진다. 이렇게 본다면 링크의 역할은 유해정보가 담겨있는 사이트를 불특정 다수의 인터넷이용자에게 ‘선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유해정보유포·전시에 대한 직접적 책임, 즉 정범으로서의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단순한 링크서비스만으로는 유해정보의 유포·전시에 대한 정범성이 인정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② 그 대신 링크를 해 놓은 자에 대해 타인의 유해정보유포·전시에 대한 방조책임을 묻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 경우도 링크서비스가 항상 방조행위가 된다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이다. 링크서비스를 하는 자에게 유해정보유포에 대한 방조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링크에의 클릭을 통해 ‘직접적’(in nachster Nahe)이고 ‘강제적’(zwingend)으로 유해정보에 도달하고, 즉 one-click으로 유해정보에 도달하는 경우, 링크서비스 제공자에게 이러한 가능성과 결과에 대해 최소한 미필적 고의가 있어야만 한다. 반면 유해정보가 담겨있지 않을 것으로 신뢰할만한 사이트에 링크를 해 놓은 경우에는 설사 기대에 반하여 유해정보가 담겨있었다 할지라도 방조책임은 인정되지 아니한다. 다만 링크서비스 제공자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링크가 된 다른 사이트에 유해정보가 담겨있지 않은지 수시로 점검해야할 의무를 가지며 이러한 주의의무를 해태할 경우에도 역시 부작위에 의한 방조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5)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판단하건대 본 사건에서 피고인 甲에게는 인터넷에 음란물을 공연히 전시하였다는 구성요건행위에 대한 직접 정범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음란물이 게재된 타인의 웹사이트에 단순히 링크해 놓는 행위는 그 웹사이트에 대한 일종의 선전행위에 불과하고, 문제의 웹사이트에 대한 인터넷이용자의 접속이 용이하도록 도와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오히려 타인의 음란물 전시행위를 방조하는 행위로 보는 것이 올바른 평가가 될 것이다. 본 대법원 판결이 '링크가 단순 연결기능을 넘어서 실질적으로 링크된 웹페이지의 내용을 이용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거나 '링크를 통해 다른 웹사이트를 사실상 지배&#8228;이용함으로써 실질에 있어서는 그 내용물을 직접 전시하는 것과 같다'라는 주장을 정범인정의 근거로 삼은 것은, 링크의 기능에 대한 잘못된 평가와 정범과 공범의 구별에 대한 범행지배이론의 철저하지 못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히려 원심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본다. 다만 원심과 같이 타인의 웹사이트에 담긴 음란문서나 파일에 직접 링크시킨 경우와 웹사이트의 초기화면에 링크시킨 경우를 구분하여 전자의 경우에는 음란물 전시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견해도 타당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음란물 전시에 대한 직접 정범의 책임을 져야하는 자는 인터넷상에 음란문서나 파일을 직접 등재한 사람에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에 링크한 사람은 정범의 음란물 전시행위를 방조한 자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방조책임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링크를 통해 음란문서나 파일이 담긴 웹사이트 또는 문서&#8228;파일자체에 직접 연결이 가능해야 하고, 그러한 문서&#8228;파일의 열람&#8228;이용을 가능하게 한다는 - 최소한 미필적으로라도 - 인식과 의사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결론적으로 피고인 甲의 행위는 乙, 丙, 丁의 음란물 전시행위를 방조한 혐의로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참고로 丁의 경우 음란문서가 담겨 있는 서버의 위치가 미국이라는 점은 원칙적으로 丁과 甲의 죄책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국내의 행위자가 외국에 소재한 컴퓨터서버에 유해정보를 저장&#8228;공개하는 경우에도 행위지는 국내가 되어 국내법의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003-09-25
신용장개설의뢰인의 서류검사 및 하자통지의무 인정여부
I. 사실의 개요 원고(대한민국)는 1990. 11. 22 국방군수본부를 통하여 프랑스회사(에피코사로 표기함)부터 고폭탄을 수입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피고(한국외환은행)는 원고를 위하여 에피코사를 수익자로 하는 취소불능신용장을 개설하였다. 원고는 피고은행에 신용장대금의 결제에 사용할 목적으로 대금 상당액 3,617,880불을 예치하였다. 피고는 1992.12.16 통지은행인 피고의 파리지점으로부터 이 사건 신용장에 따른 선적서류가 첨부된 환어음을 매입하였다는 통지를 받고 같은 달 21일 선적지연으로 인한 지체상금 미화 약 18만불을 공제한 나머지 금원을 위 에피코사 앞으로 지급하도록 지시하고 원고로부터 예치 받은 금원으로 지체상금을 제외한 금액을 위 파리지점에 상환하여 주었다. 그런데 피고가 같은 달 16일 파리지점으로부터 팩스로 송부 받은 서류에는 선적통지, 도착항, 수하인이 신용장조건과 일치하지 않았고 이행보증서도 특수조건상의 기간이 지난 후 발행되는 등 하자가 있었다. 피고는 같은 달 21일 원고의 담당직원에게 하자의 일부를 통보하면서 지체상금을 제외하고 지급할 것인지 여부를 문의한 바, 지체상금을 제외하고 지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결국 이 사건 무기는 선적된 바가 없었고, 원고는 1992.12.29 경 피고로부터 선적서류를 받은 지 약 8개월이 지난 1993. 8.11 피고를 상대로 예치금의 반환을 구하게 된 것이다. II. 대법원의 판결요지 본 판결의 원심은 대법원의 환송판결인 1998. 6. 26선고 97다31298판결에 따른 서울고법 1999.7.21선고 98나37226판결이다. 이건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하여는 송진훈 대법관의 반대의견과 손지열 대법관의 별개의견이 있었고, 이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개설은행이 수익자나 매입은행 등으로부터 지급을 위하여 제시받은 선적서류에 불일치가 있으면, 그것이 사소한 것이어서 그 서류에 의하더라도 충분히 신용장조건이 의도하는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설의뢰인의 명시적인 지시가 없는 한 신용장대금을 지급하지 말아야 하고, 개설은행이 이에 위반하여 신용장대금을 지급한 것이라면 개설은행은 원칙적으로 개설의뢰인에 대하여 그 대금의 결제를 청구할 수 없고, 개설의뢰인으로부터 신용장 금액에 해당하는 자금을 이미 예치 받았다면 그 예치금의 반환을 거절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이러한 경우, 개설은행이 일방적으로 신용장대금을 미리 지급한 다음 개설의뢰인에게 선적서류를 점검·확인하고 상당한 기간 내에 개설은행에게 선적서류가 신용장조건과 불일치 하는 점을 통지하여 이의를 제기하여야 할 의무가 있어 개설의뢰인이 이를 게을리 하였을 때에 개설은행에 대하여 선적서류와 신용장조건의 불일치를 이유로 신용장대금의 상환을 거절하거나 신용장대금 예치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게 된다고 볼 수는 없으며, 또 그렇게 보아야 할 신용장거래상의 관행이 존재한다거나 혹은 신의칙에 기하여 위와 같은 의무와 그 해태에 따른 효과를 인정하여야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결하였다. 2. 반대의견(송진훈 대법관)은 개설의뢰인이 개설은행으로부터 선적서류를 인수하였다면 그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그 서류들을 조사하여야 하고, 거기에 신용장의 문면이나 조건과 일치하지 않는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그 하자를 바로 개설은행에 통지하여야 하고, 이러한 통지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개설의뢰인으로서는 더 이상 서류의 하자를 이유로 신용장대금의 상환을 거절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신의칙에 합당하다고 하였다. 또한 별개의견(손지열 대법관)은 개설의뢰인에게 의무가 없다고 한 다수의견의 결론에 동의하면서 개설의뢰인이 선적서류를 받고서 상당한 기간 내에 서류의 하자를 통지하지 아니한 과정에 그 자신에게 책임을 돌릴 만한 사정이 있고 그밖에 개설의뢰인의 행동이나 용태 등을 고려할 때 개설의뢰인이 서류의 하자를 이유로 예치금의 반환을 청구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행사로서 허용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III. 평석1. 본 판결의 의의 평석의 대상이 된 본 전원합의체 판결은 몇 가지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첫째, 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리 흔치 않은 개설의뢰인의 서류검사·하자통지의무인정여부가 주된 쟁점이었고, 이에 대하여 일국의 최고법원이 엇갈렸던 자신의 견해를 명확히 한 점 둘째, “큰 사건은 나쁜 법을 만든다”는 논리를 무색하게 한 점 셋째, 대법원이 의식하였던가 여부에 관계없이 신용장과 관련하여 문제가 되었던 몇 가지 부분들에 대하여 대법원의 견해를 피력한 점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개설의뢰인의 서류검사·하자통지의무와 관련한 것만을 다루기로 한다. 2. 쟁점에 대한 논의 1) 문제의 소재 신용장거래의 기본적인 특성이 독립·추상성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신용장이 거래계에서 가장 신속하고 안전한 결제수단으로 호평을 받고, 국제거래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바도 이 독립·추상성이라는 특성에 기인한 것이다. 독립성은 신용장거래는 그 원인거래는 물론이고 신용장거래 당사자간의 개별거래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고, 추상성은 신용장거래는 그 원인거래가 물품거래이더라도 서류에 의한 거래라는 것이다. 신용장거래는 서류에 의한 거래이므로 신용장대금의 지급이나 상환여부도 오직 서류만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즉 지급이나 상환을 위한 전제조건은 신용장조건과 지급이나 상환을 위하여 제시된 서류의 일치성이다. 그러므로 서류의 검사는 지급이나 상환단계에서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문제이나 신용장과 관련한 규범들은 은행의 서류검사의무와 관련한 것만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개설은행이 신용장대금의 상환을 구하는 단계에서 해석상 개설의뢰인에게도 서류검사 및 하자통지의무를 인정하여 이를 해태한 경우에는 개설은행에게 상환의 거절 또는 예치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는지가 본 사안과 같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2) 개설은행의 서류검사 및 하자통지의무 개설의뢰인의 의무인정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의무를 긍정하는 견해들의 논거가 주로 개설은행 등이 부담하는 서류검사 및 하자통지의무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이와 관련하여 종전에 문제가 되었던 것들은 언급하면, 신용장조건과 서류의 일치성의 정도, 서류검사기간, 하자의 통지 및 자동적 배제의 원칙 등을 들 수 있다. 1990년대에 신용장과 관련한 규범들의 제정 및 개정작업에서 위의 문제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진보가 있었고 간략히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일치성의 정도와 관련하여 엄격일치의 원칙에 의할 것이라는 것이 재확인되었지만 아직도 그 일치의 정도에 대하여는 견해의 차이가 있다. 본 사안에서의 불일치점은 어떤 견해에 의하더라도 지급이 정당화될 수 없는 중대한 불일치이므로 원칙적으로 상환청구의 전제요건이 충족되어 있지 못하다. 서류검사기간에 관한 문제는 본 사건 신용장의 준거법인 UCP 400에서는 상당한 시간(reasonable time)을 갖는다고 되어 있었고, UCC는 제3은행영업일을 갖는다고 되어 있어 ‘상당한 시간’의 의미에 관하여 논란이 있었으나 지금은 양자 모두 ‘상당한 시간’을 갖되 제7은행영업일(UCP 500, Art. 13 (b)) 또는 제7영업일(UCC 5-108(c))을 초과할 수 없는 것으로 통일되었다. ‘은행영업일’(banking days)과 ‘영업일’(business day)의 의미는 같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은행이 서류의 검사 및 하자통지(개설의뢰인에게 하자승인여부를 문의하는 경우에는 그것을 포함)를 함에 있어서 언제나 제 7은행영업일을 갖는 것이 아니고, 실제의 기간은 서류의 복잡성 등을 고려하여 결정되는 것이고 단지 그 최대한이 7은행영업일임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서류검사기간의 의미는 서류의 검사에 소요되는 ‘상당한 시간’ 내에는 은행이 지급을 하지 않아도 이행지체에 빠지지 않고, 하자통지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은 수익자 등에게 하자를 정정할 기회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어느 정도의 하자를 통지하여야 하는 것에 관하여 UCP 500은 ‘모든’ 불일치한 점을 통지하여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UCP 500 14 (d)). UCC상 하자통지의무를 인정한 규정에 ‘모든’이라는 표현은 없으나 UCP와 마찬가지로 ‘모든’ 하자를 통지하여야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통지하지 아니한 하자에 대하여 후에 그것을 이유로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자동적 배제의 원칙: UCC 5-108(c));UCP 500 14(e)). 3) 개설의뢰인의 서류검사 및 하자통지의무인정 여부 (1) 개설의뢰인이 개설은행으로부터 서류를 받은 경우, 개설은행에게 서류를 검사하여 하자가 있는 경우 이를 통지할 의무가 있는가? 이를 긍정하는 견해들은 주로 ‘상당한 시간’ 내에 서류의 검사 및 하자통지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개설의뢰인은 개설은행의 상환청구를 거절하거나 예치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일부 견해는 개설의뢰인이 신의칙상 이러한 의무를 부담한다고 하거나 또는 의무는 부정하면서 신의칙상 예치금의 반환청구를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2) 그러나 신용장의 개설의뢰인이 개설은행에게 서류검사 및 하자통지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 신용장개설의뢰인과 개설은행간의 권리·의무는 신용장개설약정과 그들이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시킨 신용장통일규칙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고, 신용장거래의 본질에 의하더라도 그러한 검사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 신용장거래의 핵심은 수익자가 신용장조건과 문면상 일치하는 서류를 제시하면 개설은행 등은 지급을 하는 것이고, 은행의 의무는 그 자신의 1차적인 의무(primary obligation)이지 2차적인 의무(secondary obligation)가 아니다. 즉 개설의뢰인을 대신하여 지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의무로써 지급을 한다는 것이다. 그 이외의 개설은행과 매입은행, 개설의뢰인과 개설은행간의 상환관계는 엄밀한 의미에서 신용장거래의 핵심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장통일규칙이 서류의 검사와 관련하여 수익자에게 지급을 담당할 은행뿐만 아니라 은행간의 상환관계도 같은 취급을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원인거래에 익숙하지 못한 은행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즉 개설은행 등의 은행에게 그러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지급의 신속성에 기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류만을 판단하여 지급 또는 상환(매입은행 등이 개재한 경우)하게 하여 원인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은행들이 원인거래상의 항변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는 측면도 고려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용장통일규칙은 개설의뢰인에게 그러한 의무를 부과하지 아니한 것이다. (3) 개설은행에게 개설의뢰인에 대한 하자승인여부를 문의할 재량권을 부여한 UCP의 규정도 개설의뢰인의 개설은행에 대한 검사·통지의무의 인정근거 될 수 없다. 개설은행이 하자를 발견하면 개설의뢰인에 대하여 하자승인여부를 문의하는 것이 종전의 관행이었고, Maulella의 조사(1991)에 의하면 이 경우 개설의뢰인의 99%는 하자를 승인한다고 한다. 이러한 관행이 UCP 500에 명문화 된 것이다. 만일 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설의뢰인에 대하여 하자승인여부에 대하여 문의하지 아니하고 개설은행이 지급을 한다면 그 위험은 개설은행이 부담하여야 할 것이지 개설의뢰인이 부담할 것은 아니다. 위에 언급한 관행이 국제적으로 성립되어 있고, 거의 대부분의 개설의뢰인이 하자를 승인하는데 그러한 문의를 하지 않은 개설은행을 보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추상성에서 비롯되는 엄격일치의 원칙은 개설은행을 포함한 모든 신용장거래의 당사자에게 예측가능성을 부여한다. 즉 적어도 신용장조건과 문면상 엄격히 일치하는 서류라면 지급 또는 상환을 받을 수 있고, 개설의뢰인에게는 수익자의 의무이행이 서류에 의하여나마 담보된다는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본 사안과 같이 신용장 조건과 엄격히 일치하지 아니한 하자가 있음에도 개설의뢰인에 대하여 중대한 부분에 대한 하자승인여부를 문의하지도 않고 신용장 대금을 지급한 개설은행은 엄격하게 일치한 서류에 대하여만 지급을 하여야 하는 자신의 기본적인 권리이자 의무를 행사 또는 이행하지 않은 것이고, 자신이 지급한 대금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전제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4) 개설은행과 같은 서류의 검사·통지의무를 개설의뢰인에게 정면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신의칙상 그러한 의무를 인정하는 견해에도 찬성할 수 없다. 신의칙상의 의무도 법적 의무이므로 결국은 그러한 의무를 정면으로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구체적인 경우에 개설의뢰인이 상환을 거절하거나 예치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즉 개설의뢰인이 하자를 승인하였거나 또는 하자를 이유로 한 항변권을 포기(waiver)한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도 ‘하자의 승인’이나 ‘항변권의 포기’이론으로 접근하여야지 신의칙상의 의무가 있다고 하여서는 아니 된다. 더욱이 본 사안과 같이 극히 예외적으로 개설의뢰인이 서류를 받고 7-8개월 후에야 예치금의 반환을 요청한 경우에 개설의뢰인이 개설은행과 같은 서류검사·통지의무가 있다고 인정하거나 신의칙상 그러한 의무가 있다고 인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상환청구나 예치금의 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은 구체적인 경우에 개설의뢰인의 용태 등을 고려하여 ‘하자의 승인’이나 ‘항변권의 포기’에 해당하는가를 따져 결정할 문제이다. 만일 개설은행의뢰인에게 신의칙상 그러한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신용장거래의 안전은 오히려 깨어지고 만다. 엄격히 일치하는 서류들에 대한 지급 또는 상환은 독립성의 원칙과 함께 신용장의 상업적 효용에 초석이 되는 것이고 개설은행이 자의적으로 지급을 하고 그 다음 개설의뢰인의 검사·통지의무 이행여부에 따라 상환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은 더더욱 교섭력이 약한 개설의뢰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신용장거래의 기본인 엄격일치의 원칙을 준수하지 않은 개설은행이 하자를 통지하지 않은 개설의뢰인에 대하여 오히려 권리남용주장을 하여 신의칙상의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주장의 남용’이고 ‘신의칙 법리의 남용’에 해당하는 것이다. IV. 결 언 본 판례는 과거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국방부 무기수입사건과 관련한 몇 개의 대법원 판결에 나타난 의견의 불일치를 해결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개설의뢰인의 서류검사·하자통지의무를 부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에 찬성한다. 다만, 개설의뢰인의 행위 등을 고려하여 그의 행위가 하자의 승인(본 판결에서도 하자를 승인하였다는 것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배척하였음)이나 알고 있는 권리를 의도적으로 포기하는 항변권의 포기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상환청구의 거절이나 예치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는 점을 언급하였다면 더욱 바람직하였을 것이다.
2002-03-25
팀 의료(醫療) 관여자의 형사책임
I. 판결요지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한 수혈을 담당하는 의사로서, 수혈을 하기에 앞서 그 혈액봉지가 피해자의 것인지 여부를 확인하여 다른 환자의 혈액봉지를 잘못 수혈함으로써 피해자에게 위해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는 바, 이 사건에서와 같이 피고인이 피해자와 崔某 두 명의 환자에 대한 수혈을 동시에 담당한 관계로 그들에게 수혈할 혈액봉지를 같은 장소에 구분 없이 준비해 둔 경우라면, 피고인으로서는 혈액봉지가 바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직접 피해자의 혈액봉지를 교체하거나, 간호사에게 혈액봉지의 교체를 맡기는 경우에도 그와 같은 사정을 주지시켜 간호사로 하여금 교체하는 혈액봉지를 반드시 확인하게 하고, 스스로 사후점검을 하여 혈액봉지가 바뀜으로 인하여 피해자에게 위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고, 피고인이 피해자와 최모의 혈액봉지를 구분 없이 함께 놓아두고서도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만연히 간호사에게 혈액봉지의 교체를 맡긴 후 현장을 떠나 간호사가 추가로 2개의 혈액봉지를 교체하여 마지막 혈액봉지의 혈액이 피해자에게 상당량 수혈될 때까지 돌아오지 아니함으로써, 간호사가 혈액봉지가 피해자의 것인지 여부를 확인하지 아니하고 피고인도 피해자의 혈액봉지가 잘못 교체된 것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한 것이라면, 피고인에게 그에 대한 과실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피고인이 근무하는 병원에서는 인턴의 수가 부족하여 수혈의 경우 두번째 이후의 혈액봉지는 인턴 대신 간호사가 교체하는 관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이 혈액봉지가 바뀔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피고인이 그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취함이 없이 간호사에게 혈액봉지의 교체를 일임한 것이 관행에 따른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고, 간호사가 혈액봉지를 교체한 것이 주치의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주치의로부터 피해자에 대한 수혈임무를 부여받은 이상 위와 같은 조치를 소홀히 함으로써 혈액봉지가 바뀐 데 대한 과실책임을 면할 수 없다. II. 논 점 이 판결은 간경화 등으로 대학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의 치료에 관여한 주치의, 인턴, 간호사 등이 수혈과실로 그 환자를 사망케 한 사건에 관한 것으로서, 여기서는 담당인턴과 간호사 사이의 책임분배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의료과실의 법적 책임에 관한 판단은 의료행위의 제반 특수성 때문에 많은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오늘날 의료행위의 많은 경우는 다수의 의료인의 관여하에 이른바 팀(team)醫療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며, 그 관여자들의 분업적 협동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응급환자의 처치나 외과수술에 있어서는 그런 점이 특히 두드러진 바, 그에 수반하여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책임의 귀속을 판단하는 문제가 크게 대두하고 있는데, 형법상의 과실범규정들로부터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에 관한 아무런 시사도 얻을 수가 없는 실정이므로, 일반적인 과실범이론을 분업적 의료행위에 적용할 경우의 그 적용범위와 개개 관여자의 책임의 범위에 관한 해결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게 된다. 의료과실에 관한 분석을 위해서도 형법상의 일반적인 과실이론이 토대가 되어야 함은 당연한 이치인 바, 의사 등 의료인의 주의의무위반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는 의료관행 등의 醫學的 基準도 고려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法的 基準에 입각하여야 할 것이다. 또 의료행위 자체의 고도의 전문성과 의술의 수준에 기하여 의사에게 일정한 범위 내에서 자신의 판단에 따라 소신껏 의료행위를 하도록 재량권을 부여함으로써 법적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診療忌避(萎縮醫療)의 현상을 막아 의료의 본래 목적을 도모하는데 기여할 것이며, 의료행위는 의사에 의하여 개인적으로 수행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팀워크(teamwork)에 의한 분업적 의료행위에 있어서는 관여된 개개의 의료인들에게 특수한 의무가 더 부과되는 바, 동료의료인의 선택이나 감독, 그들과의 협력, 정보교환 등의 의무가 그것이다. III. 分業的 팀醫療行爲와 신뢰의 원칙 오늘날의 거의 모든 의료행위는 상호 영향을 미치는 수 많은 개별적 행위의 연속이고, 더구나 여기에서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이 문제되고 있으므로 제때에 적절한 조치가 수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수술 등의 분업적 의료행위의 경우에는 보통 개개의 의료행위를 통할하는 책임자가 있게 되고, 그 밑에서 각 참여자는 상호신뢰에 기초하여 자기가 맡은 직무에만 전념하면 된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이 경우 의료행위의 긴급성이나 위험성에 비추어 일부의 사소한 실수가 전체적인 영향을 미쳐 법익침해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고 있다. 醫療過失 특히 수술 등의 분업적 의료행위의 실패에 대한 형사책임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는 한편으로는 의료행위의 사회적 중요성을, 다른 한편으로는 그 행위에 내재하는 위험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공동행위로 수행되기 때문에 인과관계의 확정과 객관적 귀속의 판단이 곤란하다는 점, 공동행위로 인한 상호신뢰 및 그에 따른 위험의 증가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의료사고에는 보통 다수인이 개입되어 과실의 경합으로 인하여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료관계자 상호간에 있어서는 서로 상대방의 사려 깊은 적절한 행위를 기대·신뢰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위험의 분배가 고려될 수 있다고 보지만, 의사에 대해서는 그 감독하에 있는 다른 의사나 간호사들에 대해 항상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指導와 助言을 할 의무가 인정된다 하겠다. 공동의료행위의 공동작업자 상호간의 신뢰의 범위는 구체적 사안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수술 중의 의사는 수술 자체에만 전념하여야 할 것이므로 다른 보조자들을 신뢰하는 범위도 자연히 넓게 인정된다고 보겠다. 그리고 의사의 간호사에 대한 신뢰보다는 간호사가 의사를 신뢰하는 것이 더 넓게 허용되어야 함도 당연한 이치이다. 예컨대 注射는 의사 스스로 놓아야 하고 부득이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에게 주사케 하는 경우에도 주사할 위치와 방법 등에 관한 적절하고 상세한 지시를 함과 함께 스스로 그 장소에 입회하여 施注過程에서의 환자의 징후 등을 계속 주시하면서 주사가 잘못 없이 끝나도록 조치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대판 1990.5.22, 90도579). 분업적 의료행위에 있어서 그에 따른 위험의 분배는 관여자들 상호간의 관계에 따라 달리 해결된다. 오늘날 종합병원의 임상현실에 있어서는 의료전문인들이 팀을 이루어 각자가 자신의 전문영역에 속하는 의료활동을 할 수 밖에 없으므로, 分業은 이미 하나의 規範的 原理로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업에는 예를 들어 분만수술에 함께 참여하는 마취과전문의와 산부인과전문의의 관계와 같은 水平的 分業과 전문의와 수련의 또는 의사와 간호사 등의 관계와 같은 垂直的 分業의 두가지 유형이 있는데, 전자의 경우엔 관여자들이 동등한 진료상 주의의무를 부담하는 반면에 후자의 경우엔 업무의 위임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지시와 복종의 관계에 토대하여 上位의 의료인에게는 危險源管理義務가 그리고 下位의 의료인에게는 患者經過觀察義務가 부과된다. 우리 사회에선 환자들이 1, 2차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아야 할 질병의 경우에도 바로 3차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으려고 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3차 의료기관의 의사들의 업무가 과중하여 의사의 업무 중 상당 부분이 간호사에게로 이양됨으로써 수직적 분업이 많이 행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위 판례에서도 의사와 보조자인 간호사간의 위험분배가 문제되고 있다. 의사 혼자서 의료행위의 전과정을 맡는 경우보다는 다수의 참가에 의한 분업적 의료행위에 있어서 위험발생의 가능성이 더 큰 것이 일반적이다. 의사는 보조자의 선택에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며, 그 의무의 정도는 보조자의 자질과 능력 그리고 상호의존관계 및 각자의 업무의 중요성 등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간호사 또는 임상병리사와 같은 熟練補助者와의 관계에 있어서 의사는 자격을 갖춘 보조자를 채용하고 또 치료시에는 의사 자신의 의견과 의료관례를 주지시키고, 특히 위험한 업무를 위임할 경우에는 의사 자신의 지시내용을 정확히 준수할 것을 주지시킬 의무를 부담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판례(대판1994.12.22,93도3030;대판1994.4.26,92도3283)상으로도 의사와 간호사, 조수 등의 보조자 사이의 수직적 분업에서는 의사의 특별한 조치가 존재하지 않는 한은 기본적으로 신뢰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IV. 평 석 평석대상판결사건의 원심(고등군사법원 1997.9.2, 97노315)에서는 간호사가 피해자에게 수혈할 당시에 피고인은 회진에 대비하여 다른 업무를 보고 있던 관계로 간호사로부터 수혈한다는 보고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간호사를 현장에서 지도·감독할 수 없었고 또 그 수혈 당시 간호사는 주치의에게 직접 알리고 그의 지시에 의해 관행에 따라 수혈하였으므로 피고인의 과실은 인정되기 어렵다 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하지만 피고인이 간호사로부터 수혈한다는 보고를 받았는지 여부와 관계 없이 피고인은 그 수혈에 관하여 시종 업무상의 주의의무를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피고인이 두번째 혈액봉지를 교체해준 후 다른 환자(최모)에게 수혈할 봉지를 간호처치대에 놓아두고 다른 일을 보러 가면서 간호사에게 그 봉지는 피해자가 아니라 최모에게 수혈할 것임을 주지시키지 않았음은 업무상 주의의무위반이고 또 회진에 대비하여 다른 업무를 본 점에 있어서도 회진은 (끝난 시간은 불확실하지만) 13:30경부터 시작되었는데 사고를 낸 네번째 혈액봉지는 14:40경 간호사에 의해 교체되었으므로 피고인이 회진에 대비하여 다른 업무를 보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수혈업무를 인수한 이상은 그 중요성에 비추어 수혈업무를 항시 염두에 두고 있었어야 하는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과실의 인정 소지는 크다 하겠다. 또 간호사에게 수혈을 맡길 때 수혈환자가 두명 있다는 점 등을 주지시켜 주의를 환기시켰어야 한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점이다. 피고인이 다른 업무를 보고 있던 상황에 관한 상세한 언급은 없지만, 판시내용에 따라서만 본다면 그 과실은 당연히 인정된다고 보아 대법원판결의 判旨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 판결에서의 문제는 의사와 간호사의 책임배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도 특히 인턴 등의 초심의사와 노련한 간호사 사이에서 문제가 생겨날 소지가 크다고 하겠는데, 기본적으로 간호사는 어디까지나 의사의 보조자에 그친다고 할 것이다. 병원의 크기나 의사·간호사의 수효가 천차만별한 의료현실에 있어서 현실적 관행에 의존하여 법적 책임의 소재를 달리 파악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뢰의 원칙은 팀의료의 관여자가 기울여야 할 주의의 量을 감경시키는 것은 아니다. 의사에게 과실이 인정되는지의 여부는 궁극적으로 그 의사가 법적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업무상의 주의의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했느냐의 여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며, 팀의 다른 관여자가 개입하는 경우엔 그 의사의 주의의무의 내용이 변경될 뿐이지 그의 업무상 주의의무가 감경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오늘날의 사회생활에 있어서 인간의 본래적인 注意能力의 有限性에 비추어 볼 때 신뢰의 원칙의 등장은 당연한 필연적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이 원칙이 우리 판례에서도 차츰 그 적용범위를 넓혀가고는 있지만, 의료행위의 경우에는 그 업무의 중요성이나 전문성에 비추어 그 원칙의 만연한 확대적용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며, 대법원이 의료사고에 관한 판례에서 이 신뢰의 원칙과 관련하여 신중하고도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2000-02-21
신용장개설의뢰인의 선적서류확인의무
Ⅰ.사 안 피고 한국주택은행은 원고 국방부가 영국 에피코사로부터 무기를 수입할 수 있도록 취소불능신용장을 개설하였고, 원고는 피고에게 신용장대금을 예치하였다. 신용장에는 ① 수익자의 선적통지를 선하증권 발행 30일 전에 개설의뢰인과 개설은행에 보내야 하고, ② 신용장 개설의뢰인을 위하여 신용장 개설일부터 50일 이내에 이행보증서가 발행되어 피고를 통하여 통지되지 않은 한 신용장은 효력을 발하지 아니하며, ③ 수익자는 신용장 개설의뢰인이 지정항 운송주선인과 운송계약을 체결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①에 대하여는 원고와 피고가 수익자로부터 선적통지를 받지 못하였고, ②에 대하여는 이행보증서가 신용장개설일부터 50일이 지나서야 발급되었으며, ③에 대하여는 선하증권의 발행인이 지정된 운송주선인이 아니었고, 신용장과 선하증권, 상업송장, 포장명세서상 도착항의 기재가 일치하지 아니하였다. 피고는 ①은 원고에게 통고하고 ②는 통고하지 아니하였으며, ③에 대하여는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원고는 통고 받은 ①에 대하여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여 선적서류의 인수를 지시하였고, 수익자에 대하여 신용장대금의 예치금이 지급되었다. 원고는 1992. 12. 말 선적서류를 인수하고 아무런 확인조치없이 방치하던 중, 수익자가 화물을 선적하지 아니한 사실을 알고 난 1993. 8. 11.에서야 선적서류와 신용장 조건이 불일치함을 이유로 하여 피고에 대하여 신용장대금 예치금의 반환을 청구하였다. Ⅱ. 판결 요지 신용장 개설은행이 수익자나 매입은행 등으로부터 선적서류를 인수하고 신용장 대금을 지급한 경우, 개설은행으로부터 선적 서류를 인수한 개설의뢰인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선적서류를 점검·확인하고, 선적서류가 신용장 조건과 불일치하는 경우에는 상당한 기간 내에 이를 개설은행에 통지하여야 한다. 개설의뢰인이 불일치사항에 대하여 개설은행에 통지하는 등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때에는, 당해 불일치로 인하여 개설의뢰인의 수익자와의 계약 및 신용장 거래의 목적 달성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한데도 개설은행이 이를 간과하였거나 신용장 개설약정에서 달리 정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개설의뢰인은 개설은행에 대하여 선적서류와 신용장 조건의 불일치를 이유로 신용장 대금의 상환을 거절하거나 신용장대금 예치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 Ⅲ. 평 석 1. 신용장 거래의 특징 신용장 거래의 특징은 독립성과 추상성이다. 독립성이란 신용장이 일단 개설된 이후에는 신용장 거래는 발생의 원인이 된 거래와는 독립한 거래로서 독자적 법률관계에 의하여 규율된 의미이다. 또 추상성이란 신용장 거래관계에 관여하는 당사자는 서류에 의하여만 거래의 가부를 결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제5차개정 신용장통일규칙(「UCP500」)과 제4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UCP 400」)도 이를 규정하고 있다. 2. 선적서류 점검 확인의무 (1) 개설은행의 선적서류 점검 및 확인의무 UCP 400 제15조와 UCP 500 제13조는 개설은행이 상당한 주의로써 신용장조건과 모든 서류의 일치 여부를 검토하도록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용장이 요구하는 서류는 상업송장, 선하증권, 보험증서, 원산지증명, 포장명세서, 검사증 등이다. 위 신용장통일규칙은 은행이 이러한 서류들이 신용장 제 조건과 일치하는지 여부와 서류간에 상호모순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은행은 상당한 주의로서 검토하여야 한다. 대법원은 「상당한 주의라 함은 상품거래에 관한 특수한 지식경험에 의함이 없이 은행원으로서 일반적인 지식경험에 의하여 기울여야 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주의」라고 하고 있다. 또 「문면상의 일치」에 대하여 「자구에 약간의 차이가 있더라도 은행이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면 그 차이가 경미한 것으로서 문언의 의미가 같고 또 신용장조건을 전혀 해하는 것이 아님을 문면상 알아차릴 수 있는 경우에는 신용장 조건과 합치하는 것으로 보아야」한다고 판시하였다. 이 사건에서는 신용장조건과 서류들간에 문면상의 불일치가 있었고, 개설은행이 상당한 주의로 검토하였다면 충분히 신용장 조건과 합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피고 은행은 ①에 대하여만 불일치점을 원고에게 통고하고 ②에 대하여는 불일치점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였고 ③에 대하여는 내용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원고에게 통고하였으므로, ②, ③에 대해서는 신용장 규칙이 부과하는 은행의 서류검토 및 확인의무를 해태한 과실이 있다. 이 사건에서는 ①의 불일치점에 대하여는 피고가 원고에게 통고하였는데, 원고가 별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여 신용장대금예치금의 지급을 지시하였으므로 이는 개설의뢰인이 피고에 대하여 신용장대금 및 기타 비용의 상환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였거나 피고의 신용장대금의 지급을 신용장 개설계약상의 위임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①의 불일치 점에 대하여는 개설의뢰인인 원고가 피고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하고 이 사건 선적서류를 인수한 것으로 보는 판례의 태도는 타당하며, 원고는 피고에 대하여 신용장대금 예치금의 반환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2) 개설의뢰인의 선적서류 점검 및 확인의무 UCP 400 제14조는 은행에 대하여 상당한 주의로써 모든 서류가 신용장조건과 합치하는지 여부를 검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은행이 이러한 검토의무를 해태한 경우에는 개설의뢰인이나 지급, 인수, 매입은행에 대하여 대항하지 못한다. 특히 개설의뢰인과의 관계에서 모든 서류가 신용장조건과 상이한 경우에는 비록 개설은행이 이 서류에 대하여 대금을 지급하였다고 하더라도, 개설의뢰인은 서류인수를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UCP 500은 개설은행과는 달리 개설의뢰인에 대하여는 명시적으로 서류들을 점검하고 확인할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개설의뢰인은 제시된 서류가 신용장조건과 일치하는 경우에는 서류를 인수하고 개설은행에 대한 신용장개설약정서에 의하여 그 대금을 상환하여야 한다. 개설의뢰인의 인수조건과 의무는 신용장 개설시에 개설은행과 개별약정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신용장거래는 개설의뢰인이 직접 지급, 인수, 매입은행 및 수익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은행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 개설은행과 개설의뢰인 간에 발생하는 문제는 양자간의 약정에 의하여 해결하면 되고, 신용장통일규칙에 의하여 규율할 필요성이 적기 때문에 따로 개설의뢰인의 서류검토에 대한 의무를 두지 아니한 것 같다. 개설은행과 개설의뢰인간의 약정은 특정 지역이나 국가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처음 신용장개설시 당사자간에 체결한 개별약정은 특정국가나 지역에 존재하는 사법원리에 의하여 규율받게 된다. 따라서 사법의 일반원리인 신의성실의 원칙에서 개설의뢰인이 제시된 서류를 점검 및 확인하여야 할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며, 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타당하다. 미국 판례도 개설은행의 잘못으로 신용장 조건과 상이한 서류를 고객에게 인도하고, 고객은 부주의로 내용을 상세히 검토하지 않고 인수했다면 사후에 그러한 하자가 발견되어도 고객은 개설은행에 항변하지 못한다고 한다. 개설의뢰인은 선적서류를 인수받은 후 어느 정도의 기간 내에 선적서류를 점검하고 확인하여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신용장통일규칙에는 어떠한 규정도 없다. 은행에 대하여는 UCP 400제16조 c항에서 「개설은행은 서류를 심사하고 그 인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상당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규정하는 바, 서류의 점검 및 확인에 상당한 기간을 허락하고 있다. 우리 은행 실무상으로는 서류의 접수일로부터 1주일을 검토기간으로 하였으므로 1주일을 상당한 기간으로 보았던 것 같다. 한편 UCP 500에서는 이를 서류접수 다음날로부터 7영업일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상당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조항을 둔 취지는 개설은행이 제출된 서류의 인수를 거부하기로 결정할 경우 개설은행이 오랫동안 서류를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결정을 한데 대하여 지급/인수/매입은행이 항변함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개설의뢰인이 상당한 기간 내에 검토하여야 할 의무도 신의성실의 원칙에 근거를 두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개설의뢰인은 도착한 물품이 처음에 수입을 의도하였을 때와는 달리 시장성이 떨어진다고 판단이 되면 사소한 신용장상 하자에도 인수를 거절할 것이나, 만일 시장성이 높아진 경우라면 신용장상의 하자가 크더라도 인수를 하려고 할 것이다. 선적서류를 인수한 개설의뢰인에게 서류에 대한 점검 및 검토의무가 없다면, 독립성과 추상성에 의하여야 할 신용장거래가 상품의 시장성이라는 신용장 외의 시장상황에 의하여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신용장거래에 대한 은행의 신뢰를 배신하고 개설의뢰인의 권리남용을 허락하는 결과가 되어 부당하다. 따라서 개설은행이 위 ②, ③의 불일치점에 대하여 정당한 조사의무를 해태한 과실이 있는 경우라도, 개설의뢰인이 상당한 기간내에 선적서류와 신용장 조건간의 불일치사항에 대하여 개설은행에 통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개설의뢰인은 개설은행에 대하여 불일치 사항을 이유로 하여 신용장대금의 상환을 거절하거나 신용장 대금의 예치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 이에 대한 판례의 태도는 타당하다. 다만 위 판결은 상당한 기간 내에 조사하여야 할 의무를 인정하고 있는 반면, 상당한 기간에 대한 명시적 언급이 없으므로 상당한 기간에 대한 해석상 논란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Ⅳ. 결 론 대법원은 개설의뢰인이 개설은행으로부터 하자있는 서류를 인수한 경우에도 신의칙에 근거하여 선적서류와 신용장조건간의 불일치에 대하여 점검 및 검토할 의무를 부과하였다. 실무에서는 하자있는 신용장의 거래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신용장의 50%정도) 개설의뢰인의 위 의무를 인정하지 아니하면, 신용장거래가 개설의뢰인의 자의와 시장상황에 영향을 받으므로 은행의 개입을 억제하여 국제간 거래의 원활과 거래규모의 확대라는 신용장 제도의 목적이 상실될 것이다. 따라서 신의칙에 근거하여 개설의뢰인에 대한 선적서류의 점검 및 검토의무를 부과한 이 판결은 신용장제도의 취지를 살린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나, 상당한 기간에 대하여 명시적 유권해석을 하지 아니한 아쉬움이 있다.
1998-11-30
개정상법 부칙 제2조1항의 의미
法律新聞 第2447號 法律新聞社 改正商法 부칙 제2조1항의 의미 金星泰 〈延世大法大敎授 法學博士〉 ============ 14면 ============ 大法院95年7月25日宣告, 94다52911判決 [사실개요] 대원특수운수는 자신을 피보험자로 하여 자기소유 복사차량의 운행에 관하여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보험자가 보상하기로 하는 내용의 자동차종합보험계약을 보험자와 체결하였다. 위 보험기간 중인 1992년1월29일 보험사고(피용자가 피보험자소유 차량운행 중 마주오던 프라이드승용차를 들이받아 사망케 함)가 발생하였다. 그 후 피해자에게 직접청구권을 인정한 개정상법이 시행되었고(1993년1월1일), 피해자의 유가족이 보험자를 상대로 직접 보험금청구를 하였다(1심 변론종결 1993년12월7일). 주요쟁점(상고이유) 보험계약이 체결되고 나아가 보험사고가 발생한 시점이 피해자에게 직접청구권을 인정한 개정상법 시행이전이므로, 이러한 경우에 피해자에게 보험자에 대한 직접청구권을 인정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관하여 개정상법은 부칙 제2조 1항을 두어, 「이 법 제4편의 규정은 이 법 시행전에 성립한 보험계약에도 이를 적용한다」고 소급효를 인정하는 한편(제1항 본문). 그 단서에서 「종전의 규정에 의하여 생긴 효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므로 본건 직접청구권에 관하여 부칙 제2조 1항의 본문을 적용할 것인가, 아니면 단서를 적용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대법원 판시 「…보험사고인 교통사고가 개정상법 시행이전에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는 위 상법 제724조 제2항 본문의 규정에 의하여 자동차보험을 인수한 보험회사에 대하여 직접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할 것이며 개정상법 부칙 제2조 1항 단서의 규정이 위와 같은 해석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評 釋] 1. 경과규정의 중요성 이 판결은 개정상법 시행이전에 체결된 책임보험계약상의 피해자가, 피해자의 직접청구권을 전면적으로 인정한 개정상법에 따라 보험자를 상대로 직접청구권을 행사한 사건이다.(그밖에도 가해자측에 과실이 없다는 점등도 항변으로 제출되었으나, 인정되지 아니하였고, 이 점은 사실인정의 문제이어서 검토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따라서 본건은 상법 부칙조항이 문제된 비교적 예가 드문 사례이다. 비록 사안이 단순하다고는 하나, 이 판결은 평소 우리의 관심의 대상에서 소외되어 있는 경과규정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입법자가 얼마나 면밀하게 입법작업에 임하여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절감케 해준다. 입법기술원론에 입각하여 볼 때에, 경과규정은 신제도(법령) 그 자체의 규정화 못지 않게 중요하고, 어려운 대목이다. 경과조치는 신·구법령의 교체기에 구법하에서의 지위나 이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고 나아가 국민의 법적 지위가 급격히 변동되지 않게 급격히 변동되지 않게 배려함으로써, 법질서의 변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강구된다. 2, 소급적용의 타당근거 원칙상 법률의 효력은 소급하지 않는다. 법이념의 한 기둥인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특히 형벌법규에 있어서는 이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므로(헌법 제13조 참조), 구법은 이른바 추급효를 갖게 된다. 그러나 私法법규 특히 합리성을 위주로하는 상법의 영역에 있어서 관계자에게 유리한 신법의 이익을 균점시키기 위한 경우나 신법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또는 법률상태 내지 법적용의 획일·단순화를 위한 경우 등 여러 가지의 목적에서 법률정책적으로 신법의 소급효를 인정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최기원, 신정증보판 상법총칙·상행위, (경세원, 1994년, 73-74면), 정동윤, 상법총칙·상행위법, (법문사, 1993), 65-66면, 반면 민법은 대체로 소급효를 갖지 않는다. 민법의 1977년12월31일 부칙과 1990년1월13일 부칙은 불소급을 원칙으로, 1984년4월10일 부칙은 소급을 원칙으로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특히 1984년 부칙의 제2항은 본건에서 문제된 1991년 상법 부칙 제2조1항과 거의 동일한 내용의 규정이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상법은 신법에 소급효를 인정하고 있다(상법시행법 제2조). 그러나 소급효는 본질적으로 법적 안정성 내지 기득권보호 요구와 충돌하므로, 사법법규라하여 소급효를 무제한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고, 다음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할 일이다. 첫째, 신법을 소급적용하더라도 일반국민의 이해에 직접 관계가 없는 경우, 둘째 일반인의 이익을 증진할 수 있는 경우, 셋째 기득의 권리나 그 지위를 다소 침해하더라도 제도개혁이 공공의 복리에 합치하거나, 그 침해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이다. 이를테면 현재의 법률상태가 계속되는 것이 국민의 법관념에 위배되어 시급한 법제도개혁이 필요한 경우로서 기득의 권리 또는 이익을 변화 시키는데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경우가 그러하다. 개정상법 부칙 제2조 1항이 본문에서 소급효를 규정하면서도 그 단서에서 「그러나 종전의 규정에 의하여 생긴 효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것은, 신법의 소급효가 미치는 범위에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한 데에 그 의의가 있다. 3, 판결의 타당성 1)부칙 단서의 해석 문제는 본건 1991년 개정상법 부칙 제2조1항이 개정된 제4편의 소급효를 인정하면서도, 「종전의 규정에 의하여 생긴 효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서를 달아둔 대목이다. 그런데 이 대목을 문리 해석하면 구법에 의하여 생긴 보험계약의 효력을 뜻하게 되는 바, 보험계약의 효력이란 계약의 성립으로 쌍방당사자가 취득하고 부담하는 권리·의무 바로 그것이다, 개정전 상법상으로는 책임보험계약의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므로, 비록 가해자의 책임보험계약에 의하여 반사적·사실적 구제가능성은 높아지지만, 법령이나 약관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험자에 대하여 아무런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였다. 특히 본 사건을 검토함에 있어서 고려하여야 할 사항은 보험금청구권의 특성이다. 보험계약이 성립하였다고 해서 계약상의 모든 권리가 확정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사행계약이라는 특성 때문에 보험금청구권은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비로소 생긴다. 더구나 본건에서는 신법 시행 이전에 보험사고가 발생하였으므로, 보험금청구권은 당시의 법률에 의하여 「피보험자」에게 확정적으로 발생하였고, 결과적으로「피해자」의 법적지위(직접청구권)는 더 이상 거론할 여지가 없는 상태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부칙 제2조 1항 단서가 의미하는「종전의 규정에 의하여 생긴 효력」은 그 문리상 이렇게 해석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본건은 신법이 책임보험의「피해자」에게 새로운 권리를 설정한 경우로서, 이러한「수익권·권리창설적」규정의 소급효는 일단 인정하더라도 무리가 없을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본건 계쟁권리는 私法관계인 보험계약법상의 권리관계로서 이에 상응하는 의무자로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상반된 이해관계를 가지는 당사자가 있는 경우에는 신법의 소급적용에 신중을 기함이 마땅하다. 2)대법원의 법정책적 판단 한편 보험법과 동일한 시기에 대폭 개정·시행된 상법 5편(해상)에 관하여, 개정상법 부칙 제2조 2항은 신법 소급적용의 범위를 다소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즉「이 법 시행전에 발생한 사고로 인하여 생긴 손해에 관한 채권」은 신법적용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부칙 제2조 2항을 염두에 둔다면, 이러한 구체적 규정을 두지 아니한 제1항의 해석상 본건 대법원판결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부칙 제1항 단서의 의미는 퇴색하고 만다는 문제점은 여전히 남는다. 어떻든 대법원이 책임보험 피해자보호에 관한 획기적규정을 마련한 신법의「개혁적 정신」을 과감히 수용하기로 하고, 이를 본건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면, 그 한도에서 이 판결의 결론은 수긍이 간다. 그러나 문제는 당사자들이 상고이유와 답변서에서 이 점을 상세히 다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론만 내렸을 뿐 이에 대한 이유는 전혀 내비치지 아니하였다는 점이다. 상고인(보험자)은 「…개정상법조항은 피해자에 대한 직접청구권을 인정하고 있고, 같은 법 부칙 제2조 제1항은 이 법 제4편의 규정은 이 법 시행전에 성립한 보험계약에도 이를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위 부칙 제2조의 규정은 개정상법의 시행일을 불구하고 개정전의 구상법을 적용하여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위 시행일 이전에 성립한 보험계약의 경우에도 개정상법의 시행일인 1993년1월1일부터는 개정된 신상법을 적용한다는 취지에 지나지 아니하고, 이 규정으로서는 개정상법 시행전에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에까지 피해자에게 보험금의 직접청구권을 인정하는 근거가 되지는 아니한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직접적인 청구는 이유없음이 법률상 명백하다」고 주장하였다(상고이유 제1점), 이에 대하여 피상고인은「피해자의 보험금청구권을 인정한 취지는 사회현실의 ============ 15면 ============ 실질에 맞게 함으로써 절차의 경제를 도모한다는 뜻과 아울러 그렇게 하더라도 보험자에게는 하등 불이익 내지 불편이 없다는 점도 고려되었다」고 전제하고, 「상법이 그 개정을 통하여 피해자의 보험자에 대한 직접청구권을 인정한 경위가 위와 같고, 나아가 그 시행시기를 특별히 앞당겨 그 시행전에 성립한 보험계약에도 적용하도록 확대하더라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임이 분명하므로 그 시행시기에 관한 특칙으로서 부칙 제2조 제1항을 신설」하였다고 보아, 보험자가 임의적으로 이미 보험사고가 발생한 계약과 아직 보험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계약으로 구분하고, 그 중 후자의 경우에 대해서만 같은 법 부칙 제2조 1항을 적용하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론을 편다(그러나 양측 소송대리인들이 부칙 제2조 제1항에 단서가 있다는 사실조차 찬찬히 살피지 아니한 채 공방을 벌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록 충분하지는 않으나 논거로 삼을 만한 관련 국내문헌이 상당수 있음에도 이들 자료도 제대로 검토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음은 심히 유감이다). 이처럼 다른 쟁점판단의 선결문제로서 당사자간에 첨예하게 다투어지는 문제에 대하여 대법원이 별다른 이유설시도 아니한 채, 결론을 내린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 본문/단서의 적용기준 즉 소급 적용의 근거를 좀 더 적극적으로 제시하였어야 마땅하다. 「이유」는 판결의 권위를 세우는 기둥이다. 6, 남는 문제 돌이켜 보면 1991년 상법 보험편·해상편의 개정은 물론 그 범위는 상법전의 일부(제4, 제5편)에 그친다고 하나, 당해분야 전반에 걸친 대폭적인 개정이었다. 보험편만 하더라도 ①보험산업의 대중화에 다른 保險加入者保護 ②保險의 善意性의 保護 ③당사자간의 利害調整 ④보험거래현실에 부적합한 規定의 整備등을 입법의 주안점으로 하여, 광범위한 구법의 일부삭제, 변경 및 조문신설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정작 개정작업만큼 중요하다는 경과조치는 제4편을 하나로 뭉뚱거려 부칙 1개항으로 처리하고 말았다. 말하자면 길을 새로 뚫고 닦은 다음 도로표지판을 달지 않은 것처럼, 끝마무리를 너무나 허술히 한 셈이다. 따라서 부칙제정시에 입법주안점을 다시 한번 상기하여 각각의 개정취지를 개별적으로 검토하여 신법의 소급효가 미치는 범위를 따로 정함으로서, 그 시간적 적용범위를 분명히 하였어야 한다. 상법시행법이라는 선례가 있음에도 이런 졸속처리가 이루어진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불필요하게 해석상의 논란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당대의 법해석론 발전에 역설적으로 공헌할 수는 있을 지언정, 사려깊은 입법자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한걸음 더나아가 입법실무 차원에서는 법무부-법제처간의 협력부족이 그 원인이었을 터인 바 시급히 개선되어야 하리라 본다. 특히「법안의 심사와 기타 법제에 관한 사무(정부조직법 제27조)」를 관장하고 입법기술적 점검을 사명으로 하는 법제처의 직무태만도 비판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95-10-16
지급인의 지급거절선언방법
法律新聞 1455호 법률신문사 支給人의 支給拒絶宣言方法 일자:1982.6.8 번호:81다107 安東燮 檀國大 法政大敎授, 法學博士 ============ 12면 ============ 大判 82年 6月 8日, 81다107 서울高法 80年 12月 4日, 80나1249 法律新聞 1450號 7面(82年 6月 28日) 上告棄却, 手票金 一, 事實關係 被告(파라마운트株式會社 代表理事 신현경)는 1978년 7월 27일에 發行日(1978년 12월 31일), 支給地(株式會社 韓國商業銀行 本店營業部), 支給人(株式會社 韓國商業銀行)으로 된 當座手票를 原告(株式會社 韓一銀行)에게 發行하였다. 手票金額은 1억3백만원으로 추측된다(被告는 去來先인 이성通商株式會社 代表理事 최진무가 船荷證券등을 위조하여 原告에게 입힌 損害 5억1천여만원중 2억3백만원을 변상하기로 약속하면서 현금 5천만원, 유가증권 5천만원은 1978년 12월 31일까지 지급하고 나머지는 被告의 垈地建物에 根抵當權을 設定하기로 하면서(실지는 1978년 8월 4일 設定) 本件手票를 擔保條로 발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原告는 이 手票를 1978년 9월 13일 發行地를 白地로 한채 支給提示하였다가 지급거절되자 1978년 10월 11일 다시 發行地를 補充하여 支給提示하였으나 支給人인 商業銀行으로부터 手票가 아닌 補箋에 支給拒絶宣言을 기재받았다는 것이다. 이 手票를 가지고 原告는 被告에게 遡求權을 행사한 것이며 被告는 原告의 遡求權이(手票法 39條 2號 위반으로) 상실되었다고 주장하면서 支給을 하지 아니한 것이다. 서울高法에서 原告는 敗訴하였으므로 다시 上告하였으나 大法院은 다음과 같은 理由를 내세워 原告의 上告를 棄却하였다. 二, 判決要旨 手票의 所持人이 適法한 期間內에 支給을 위한 提示를 하였으나 그 支給을 받지 못한 경우에 遡求權을 행사하기위하여 그 支給拒絶을 증명하는 方法의 하나로 갖추어야 할 支給人의 支給拒絶宣言은 手票法 第39條 第2號의 規定上 手票自體에 기재한 것이어야만 하므로 手票가 아닌 紙面에 기재한 支給人의 支給拒絶宣言은 비록 그 紙面을 手票에 附着시키고 부착부분에 間印을 하였다하더라도 手票自體에 기재한 것이 아니어서 手票法 第39條 第2號 所定의 支給拒絶宣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할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趣旨의 原審(서울고법 1980년 12월 4일 선고 80나1249 판결)판단은 정당하므로 이와다른 견해를 내세워 거기에 手票法 第39條 第2號의 규정에 관한 해석을 그르친 違法이 있다는 論旨는 채택할 수 없다. 三, 解 說 (1) 手票不渡의 證明方法(遡求權保存手段) 手票가 不到로 되는 事由는 서울어음交換所規約 第41條 補充4에 ① 預金不足, ② 無去來, ③ 形式不備,(인감누락, 서명 또는 기명누락, 인감불선명, 정정인누락 또는 상이, 지시금지, 횡선조건위배, 금액·발행일자오기, 배서불비), ④ 事故屆接受(분실, 도난, 피사취), ⑤ 僞造, 變造, ⑥ 提示期日經過, ⑦ 印鑑署名相異, ⑧ 支給地相違, ⑨ 法的으로 加해진 支給制限으로 限定되고 있다. 提示期間이 長期間에 걸친 어음에서는(예컨대 一覽出給어음은 提示期間이 1年이다. 어음法 34條) 引受拒絶과 無資力(破産, 支給停止, 强制執行不奏效등)으로 滿期前遡求(어음法 43條)라는 것이 있지만, 提示期間이 短期인 手票에서는(예컨대 國內手票는 當座手票이건 自己앞手票이건 發行日로부터 10日內이고 手票는 모두 一覽出給으로 發行되므로 發行日前에도 支給提示된다. 手票法 28·29條) 支給拒絶이 유일한 訴求原因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支給提示期間內에 手票의 所持人이 手票를 支給銀行에 支給提示하였으나 支給을 拒絶당하면 그 所持人은 發行人, 背書人, 保證人등의 前者에 대하여 遡求權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手票法 39條). 그리고 手票法 39條에 의하면 이 遡求權을 행사하기 위하여는 그 原因인 支給拒絶의 事實을 증명하여야 하는데 ① 公證人이나 執達吏가 작성하는 拒絶證書에 의하는 方法이 있다(手票法 39條 1號). 이 拒絶證書는 手票所持人이 提示期間內에 支給提示를 하여 支給拒絶을 당하고 拒絶證書作成期間內에 작성하여야하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溯求權상실의 위험이 많아서 잘 利用하지 않고 있다. 또하나의 方法은 ② 支給銀行의 支給拒絶宣言이 있다(手票法 39條 2號). 이것은 支給銀行이 手票에 提示日을 기재하고 宣言日을 附記하여 不渡宣言하거나(手票法 39條 2號) 手票의 表面에 支給을 拒絶하는 事由와 그 日字를 기재하고 記名捺印을 하는 것이다.(서울어음交換所規約 41條 補充1①) 보통 宣言印을 押捺하고 있다. 이 경우에 不渡事由로 기재되는 사항은 앞에 적은 9개항목에 限定되고 있다. 이 方法은 證明기관이 公證人이나 執達吏가 아니라 支給銀行이라는데서 그 節次가 간단하게 이루어져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③ 세번째의 方法은 어음交換所가 직접 不渡宣言을 하는 것이다(手票法 39條 3號). 그러나 어음交換所는 직접 支給을 담당하는 者가 아니고 不渡手票를 支給銀行에 반환하여 그 銀行으로 하여금 不渡宣言케 하고 이것을 다시 받아서 推尋銀行으로 반환하는 形式을 취하고 있으므로 어음交換所가 직접 不渡宣言하는 方法은 거의 행하여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위의 세가지 方法중에서 支給銀行의 支給拒絶宣言方法만이 현실적으로 手票의 遡求權原因의 證明方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2) 支給拒絶宣言의 記載場所 手票法 39條 2號는 支給銀行의 支給拒絶宣言을 직접 手票에 기재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 表面에 하라든지 裏面에 하라고 明言하고 있지 아니하다. 그러나 서울어음交換所規約 41條 補充1 어음 및 수표不渡에 대한 表示, ① 수표는 그 表面에 아래와같이 표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手票法 39條에 따라 表面·裏面의 어느 面에 하여도 무방하다는 해석이 가능하고 實務界의 規約에 따라 반드시 表面에 하여야 한다는 해석도 가능하게 된다. 이점에 대하여 우리나라 學說은 ① 반드시 手票面上에 하여야 하고 附箋에는 할수없다(徐燉珏, 第二全訂商法講義 下 570面), ② 手票의 裏面에 한 支給拒絶宣言은 유효하지만 手票自體가 아닌 補箋에 한 것은 無效라고 본다(崔基元, 商法講義 下 305面 孫珠瓚, 學說判例어음手票法 632-633面).고 하였으므로 手票에 기재한다는 것을 手票의 表面·裏面의 어느面에 하여도 무방하나 手票이외의 종이(附箋·補箋등)에 기재하면 아니된다는 뜻으로 생각하는것같다. 이와같이 생각한다고 하면 서울어음交換所規約 41條 補充 1項 1號에 규정된 表面은 手票法 39條 2號에 규정한 手票에라는 것보다는 좁은 것이 된다. 이들은 모두 手票法 39條를 확장해석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입장인데 만일 公信機關으로서의 金融機間의 支給拒絶宣言을 手票가 아닌 紙面에 별도로 作成한다고 하면 支給拒絶된 手票는 그대로 流通될 수도 있고 支給拒絶된 手票냐 아니냐에 관하여 다툼이 생길 여지가 있는 때문에 이러한 紛爭을 방지하는 意味에서도 手票法 39條 2號는 엄격하게 해석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手票가 아닌 紙面에 支給拒絶宣言을 하고 그 紙面을 手票에 附着시켜 그 附着部分에 間印을 하거나 또는 補箋에 기재된대로의 支給拒絶宣言을 手票面에 移記하여 그 뜻을 附記한 때에도 拒絶證書에 갈음하는 支給拒絶의 證明方法으로는 效力이 없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굳이 補箋에 한 支給拒絶宣言의 有效性을 인정하려고 한다면 法의 明文規定이 있어야한다는 것인데 그 實質的根據는 ① 手票의 流通安全을 확보하기 위한 手段이 바로 手票法의 要式性原理이며 ② 手票의 意思表示 또는 事實證明은 手票上에 집중표현되어야 權利關係가 명백하여 지는 것이며 ③ 法이 拒絶證書와 다른 簡易方法을 특별히 인정하였으므로 그 要件은 더욱 엄격히 해석하여야 한다는데서 明文이 없으면 함부로 인정할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手票의 要式性을 支給拒絶宣言에서는 엄격하게 보지 않고 附箋을 手票의 一部 또는 그 延長으로 보는 경우에는 支給拒絶宣言을 手票아닌 다른종이에 기재하여도 無效가 되지 않는다. 手票의 法律關係를 해석함에 있어서 要式性의 原理도 중요하지만 合理性의 原理도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手票法에 明文規定이 없는 것은 모두 無效라고 하는 것은 論理를 중시하는 反對解釋의 결과이다. 그러나 手票法 16條 1項, 同 26條 1項, 拒絶證書令 4條등에서 背書, 保證 拒絶證書의 作成을 手票의 補箋에 기재할 수 있는 明文規定이 있으니까 補箋에 支給拒絶宣言을 기재할 필요가 있으면 굳이 手票法에 明文이 없다는 이유로 反對할 것이 아니라 위의 法條를 準用하여 有效하다고 解釋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한다. 手票法이 補箋에 手票行爲를 할 수있다고 規定한 것은 手票用紙의 物理的限界를 인정하고 手票用紙의 餘白이 부족하면 다른 用紙를 이어서 手票要件을 기재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또 支給拒絶宣言은 基本手票의 成立要件과 같이 모든 手票관계자가 이에 의하여 權利를 믿고 義務를 부담하는 것과는 달리 이미 부담하고 있는 遡求義務에 관한 事實證明에 불과하므로 要式性을 엄격히 요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遡求義務者는 反證에 의하여 義務를 免할 수가 있으므로 支給拒絶宣言을 補箋에 기재하였다고 하며 絶對無效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支給拒絶宣言도 支給拒絶證書와 같이 事實證明行爲에 불과함으로 銀行이 하는 것이나 公證人 또는 執達吏가 하는 것이나 手票法 39條에서는 같은 效力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支給人의 支給拒絶宣言에 拒絶證書令 4條 2項의 方式(手票와 補箋의 接目에 間印을 하는 方法)을 準用못할 바도 아닌 것이다. 따라서 手票의 表面이나 裏面에 不渡宣言을 하지 않고 다른종이에 不渡宣言을 하고 이를 手票에 이어서 그 接目에 間印을 한 것도 有效하게 된다. 위의 두가지 생각중 어느것이 타당한 것인가를 점검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四, 評 釋 (1) 本件判例는 아직 우리나라 敎材에는 引用되지 않는 것이어서 注目받을만 하고 法의 論理的解釋을 중시할 것인가 아니면 法의 合理的解釋을 중시할 것인가에 따라 그 結論이 달라지는 法條解釋문제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만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手票에는 多數의 權利者와 義務者가 존재하므로 이들의 權利義務가 證券의 기재에 의하여 결정될 것을 요구하는 要式性의 原理는 절대적으로 去來安全의 요청에 부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要式性의 原理를 어느정도 緩和하는 것이 도리어 去來安全에 기여하고 그 反對의 경우 즉 엄격한 要式性의 原理를 고집하는 것이 도리어 去來安全을 위협할 때도 있다는 점을 是認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면 本件判例의 結論이 手票法 39條 2號의 嚴格解釋 즉 反對解釋에서 나온 것이므로 批判의 餘地가 있다고 본다. 어떤 경우에 要式性의 原理를 상대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手票의 支給拒絶宣言을 補箋에 하였다고 하여 이를 無效라고 보는 本件判例의 結論은 妥當하다고 할 수 있으려면 本件手票에 대한 不渡宣言을 꼭 補箋에 기재하여야 할 理由가 있었는가는 검토되었어야 할 것이다. 原告의 辯護人(송영욱)의 上告理由書나 被告의 辯護人(이종순)의 答辯書에도 이점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기 때문에 裁判部가 이점을 무시하였는가는 모르지만 本件에 대한 判斷의 結論이 달라질 수 있는 점에 대한 無視는 비판받아도 좋은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2) 本件手票는 被告가 原告에게 직접 발행한 것이고 背書讓渡나 保證등으로 手票의 表面이나 裏面에 支給人이 不渡宣言을 기재할 餘白이 없는것도 아닌데(실무에서는 宣言印押捺로 手票表面에 기재하고 있음) 支給銀行인 商業銀行이 굳이 다른 종이(補箋)에다 支給拒絶宣言을 기재한 것이다. 만일 餘白이 있는데도 補箋에 不渡宣言을 기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 本件判旨가 부당하게 될 것이고, 餘白이 없으면 補箋에 기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 本件判旨가 餘白이 있는 여부를 알아보지 않고 판단한 것이라면 반드시 타당한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와같이 생각해볼 때 手票의 支給人이 支給拒絶宣言을 補箋에 기재한 경우를 그 方式如何에 불구하고 絶對無效가 된다는 論旨는 타당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198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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