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판결은 여러 중요한 법적 논점을 포함하고 있지만, 계약당사자 아닌 자를 원상회복의무자로 볼 수 있는지는 특히 중요한 문제라 생각된다.
때문에 본 판결의 판결문을 읽고 한 번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웃거리는 정도로 넘어갈 수는 없을 것임에도, 본 판결 결론의 당부에 대한 본격적인 언급이 별로 없었을 뿐 아니라, 결론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한 글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은 무척 이상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족한 필자라도 본 판결 결론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무용한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Ⅰ. 사실관계
1. 원고는 건설업자들인 소외인으로부터 상가 건물의 일부를 매수받기로 하는 계약(실제 사안에서는 분양계약이나, 민법상 매매계약으로 보고 논의하기로 한다)을 체결하고 그 대금의 일부를 지급하고 건물 일부를 명도 받았으며, 소유권 이전등기는 원고가 대금을 완납함과 동시에 하여주기로 하였다.
2. 그 후 소외인은 매매계약상의 잔대금 채권을 피고에게 양도하고 원고에게 통지하였으며 원고는 피고에게 잔대금의 일부를 지급하였다.
3. 그 후 소외인은 자금사정이 악화되어 동건물에 근저당권설정등기와 수 개의 가압류 또는 압류등기가 설정됨으로써 원고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 의무가 이행불능이 되었고, 이에 원고는 피고에게 소외인의 이행불능을 이유로 해제통고를 하였다.
4.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피고가 채권을 양수한 후 원고로부터 지급받은 금원을 반환할 것을 청구하였다.
Ⅱ. 판결 요지
민법 제548조 제1항 단서에서 규정하고 있는 제3자란 일반적으로 계약이 해제되는 경우 그 해제된 계약으로부터 생긴 법률효과를 기초로 하여 해제 전에 새로운 이해관계를 가졌을 뿐 아니라 등기·인도 등으로 완전한 권리를 취득한 자를 말하고, 계약상의 채권을 양수한 자는 여기서 말하는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것인 바, 계약이 해제된 경우 계약해제 이전에 해제로 인하여 소멸되는 채권을 양수한 자는 계약해제의 효과에 반하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나아가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채무자로부터 이행 받은 급부를 원상회복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Ⅲ. 검토
1. 서
본 판결은 매매계약상 잔대금채권을 양수 받은 자는 채무자로부터 그 채무 일부 변제를 받은 후 매매계약이 해제된 경우 채무자에게 일부 변제 받은 것을 반환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였다. 이는 계약당사자가 원상회복의무자라는 민법 제548조 제1항 규정의 예외를 인정한 것이나, 계약당사자가 아닌 채권양수인을 원상회복의무자로 인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하여는 의문이 있다.
이하에서는 채무자, 채권양수인 및 채권양도인 사이의 이해관계를 검토함으로써 본 판결의 결론의 타당성을 살펴보고, 나아가 양도된 채권이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인 경우의 처리도 아울러 살펴보고자 한다.
2. 3자간의 이해관계
가. 채무자의 측면
채무자(원고, 이하 채무자라 한다)로서는 채권양도인(소외인, 이하 양도인이라 한다)과 매매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스스로 설정하고 예상한 계약상 위험, 특히 본 사안에서 일부 이행한 매매대금의 원상회복과 관련하여서는 양도인의 무자력 위험을 부담할 뿐이고, 채권양도가 있다는 이유로 갑자기 채무자가 채권양수인(피고, 이하 양수인이라 한다)의 무자력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자기 의사에 기하지 아니한 무자력 위험 변경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문제가 있다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채무자가 양수인에게 이행한 것을 두고 양도인의 무자력 위험을 부담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거나, 양수인이 채권양도를 통해 채무자의 무자력 위험을 부담하게 되었으므로 채무자 또한 양수인의 무자력 위험을 부담하는 것이 공평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으나, 채무자가 양도인과 양수인 중 누구에게 이행할 것인지 선택할 권리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채무자가 자기 의사에 기하여 양수인에게 이행하기로 한 것도 아니라는 점, 양도인과 양수인의 의사에 채무자의 법적 지위가 좌우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점에서 그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또한 채권 양도 이후 양도인의 자력이 급격히 나빠진 경우에는 채무자가 채권양도 시까지 예상했던 바와 다르므로, 양도인을 상대로 원상회복을 청구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채무자에게 불리한 결과가 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애초에 채무자가 채권자의 급부를 반환할 자력이 나빠졌다는 이유로 급부를 거부할 권리는 인정되지 않는 것이며, 채권양도 이후 양도인의 자력이 급격히 나빠졌다는 것도 채무자가 당초 예상한 위험 범위(채권관계의 종결 시까지 원 채권자인 양도인의 자력이 변동하는 것) 내에 있으므로, 채무자에게 양도인으로부터 원상회복을 청구하도록 하는 것을 두고 불리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아가 채무자가 양도인과 양수인 쌍방을 상대로 원상회복을 청구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는, 채무자가 채권양도가 없었던 경우 이상으로 유리하게 될 이유도 없으므로 부정적으로 볼 것이다.
나. 양수인의 측면양수인에게 채무자로부터 이행받은 것을 반환하도록 하는 것은, 자기 채권의 종국적 만족을 얻어 더 이상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는 양수인을 다시 채무자와 양도인 사이의 채권관계에 끌어들이고(가분채권인 금전채권에 있어 일부 이행이 있는 경우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양도인의 무자력 위험을 부담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된다.
계약의 해제로 인한 원상회복 시 일방 당사자의 무자력 위험은 어디까지나 타방 당사자가 부담하여야 할 것이고,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채권양도가 있었다고 하여도 채무자가 양도인의 무자력 위험을 부담하는 것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양수인을 원상회복의무자로 만들어 양도인의 무자력 위험을 전가하는 것은 그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또한 판례의 태도에 따르면 매매계약이 먼저 해제된 경우에는 양수인이 채무자에 대한 원상회복의무자임에도, 채권양도의 원인계약이 해제되고 최소한 그 원상회복이 이루어진 후에 매매계약이 해제된 경우에는 양도인이 채무자에 대한 원상회복의무자가 됨으로써, 채권양도의 원인계약의 해제 시점과 해제 의사표시의 시점의 선후라는 우연한 사정에 의하여 원상회복의무자가 변경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다. 양도인의 측면양도인은 애초에 채권양도가 없었을 경우 채무자에 대하여 원상회복의무를 지는 계약당사자이므로 자기 의사에 기한 채권양도 후에 여전히 채무자로부터 원상회복청구를 받는다고 해도 불측의 손해를 입는 것이 아니다. 또한 채무자가 양수인으로부터 원상회복을 받으면 양도인은 여전히 양수인에게 채권양도의 원인계약상의 채무를 이행해야 하므로, 양수인이 채무자에 대한 원상회복의무자가 된다고 해도 양도인의 지위가 더 유리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즉, 양도인의 입장에서는 채무자의 원상회복의무자가 자신이든 양수인이든 크게 관계가 없다고 할 것이다.
혹시 본 판결은 양도인은 양수인에게 채권을 양도했기 때문에 더 이상 채무자로부터 매매계약상 잔대금을 수령할 권리가 없고, 받은 것이 없는 이상 채무자와의 계약이 해제된 현 상황에서도 채무자에게 반환할 것은 없다는 논리를 취한 것은 아닌지 하는 느낌도 든다.
이에 대하여는 ‘채권의 처분’이라는 채권양도의 효과에 대한 ‘재검토’ 없이 단정적으로 주장하는 데 주저함이 생기기도 하나, 필자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관계로 자세한 논의는 피하도록 하겠다.
다만, 원상회복이 부당이득반환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통설의 태도(가령 대법원 1995. 3.24. 선고 94다10061 판결을 보면 판례도 동일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를 받아들여, 부당이득반환에 있어서의 설명을 차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즉, 양도인은 채무자의 양수인에 대한 변제로 인해, 양수인에 대하여 부담하는 채무가 소멸하는 이익을 얻었다고 할 것이고, 매매계약이 해제된 경우에는 이러한 이익은 적법한 원인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채무자에게 반환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이다.
라. 소결
결국 본 사안에서는 매매계약이 해제된 경우 채무자가 양수인에게 이행을 하였다고 하여도, 양도인이 원상회복의무자가 된다고 보는 것이 채무자와 양도인 및 양수인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며, 누구도 그 기대 이상으로 불리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양수인이 원상회복의무를 부담한다는 본 판결의 결론에는 찬성하기 어렵다.
3.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이 양도된 경우의 처리
이제 사안을 달리하여 본 사안과 같이 분양잔대금 채권이 양도된 것이 아니고, 매매계약상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이 양도된 경우의 처리를 생각해 보자.
이 경우 원상회복 시의 3자 사이의 이해관계는 양도된 채권이 금전채권인 경우와 다를 바 없으므로, 매매계약이 해제된 경우 원상회복의무자가 양수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원칙적으로 동일하다 할 것이다.
다만, 채무자가 양수인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한 경우에는 원상회복으로 당해 부동산 자체의 반환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으나, 원상회복이라는 것이 애초에 계약당사자 사이의 관계에서 인정되는 것이고, 채무자는 해제를 통해 소급적으로 회복한 소유권에 기해 당해 부동산의 반환을 구할 수 있으므로(민법 제548조 제1항 단서에 의해 결과적으로 소유권을 회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별개로 검토해야 할 문제이다), 굳이 원상회복을 통해서 해결할 이유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양수인을 원상회복의무자로 보지 않는 경우, 채무자가 과연 당해 부동산의 소유권을 회복할 수 있는지와 관련해서는 채권양수인을 민법 제548조 제1항 단서의 제3자에 해당할 것인지 여부의 검토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기존의 판례와 통설은, ‘해제로 소멸하는 채권의 양수인’은 민법 제548조 제1항 단서의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본 판결은 나아가 양수인이 이행을 받은 경우에도 여전히 그 제3자에 해당하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채무자가 매매계약의 해제에도 불구하고 채권양수인에 대하여 계속 채무를 진다고 보는 것은 계약관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해제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기존의 판례와 통설에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소유권이 양수인에게 이전된 경우 양수인은 더 이상 채무자에 대하여 채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 여전히 “채권양수인은 민법 제548조 제1항 단서의 제3자가 아니”라고 말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이미 양수인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된 경우에도 여전히 “채권양수인”이라는 이유로 원상회복의 효력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가령 부동산이 전매된 경우 전매인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기 전과 마찬가지로 등기가 경료된 후에도 전매인은 민법 제548조 제1항 단서에 의해 보호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이는데, 수긍하기 어렵다.
따라서 양수인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된 경우 양수인의 보호 여부는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기 전과 별개로 검토되어야 할 것인데, 다음과 같이 민법 제548조 제1항 단서의 제3자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생각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판례는 전매인이 등기를 경료한 경우에는 민법 제548조 제1항 단서의 제3자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고(대법원 1980. 8.26. 선고 80다660 판결 등), 교환계약의 일방 당사자로부터 전득한 자가 자신의 앞으로 바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경우 민법 제548조 제1항 단서 소정의 제3자에 해당한다고 명시한 판결도 있다(대법원 1997. 12.26. 선고 96다44860 판결). 이에 따르면 전매인이 중간생략등기를 경료한 경우에도 민법 제548조 제1항 단서에 따라 보호된다고 보게 될 것이다.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양도한 후 그 등기가 경료된 경우의 양수인의 권리를 보호할 필요는, 매도인이 전매인에게 중간생략등기를 해 준 경우에 있어 전매인의 권리를 보호할 필요와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양도는 중간생략등기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미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한 양수인을, 민법 제548조 제1항 단서에서 말하는 제3자에 해당한다고 보아서는 아니 될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다만, 채무자로서는 양도인이 아닌 양수인에게 이행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자기의 부동산 자체를 반환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에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이 양도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양도인은 자신이 직접 소유권을 이전받았다고 하여도 바로 제3자에게 매도하고 소유권을 이전하였을 것이고, 그 경우 채무자가 매매계약을 해제한다고 해도 그 부동산 자체를 반환받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즉, 채무자가 양수인에게 소유권이전의무를 이행한 후 당해 부동산 자체를 반환받지 못할 위험은 채권양도가 없는 상황에서 채무자가 양도인에게 소유권을 이전해 주었을 때 부담하는 위험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