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사실관계와 경과
경찰관들이 피고인을 절도혐의로 긴급체포할 의사로 피고인의 집 부근에서 약 10시간 동안 잠복근무를 한 끝에 새벽에 집으로 귀가하는 피고인을 발견하고 4명이 한꺼번에 차에서 내려 피고인에게 다가가 피고인을 둘러싼 형태로 경찰관들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이에 피고인이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공소외 타인의 진술 외의 보강증거가 없었기에 경찰관들은 피고인에게 임의동행을 요청하여 경찰서로 데리고 갔는데, 경찰관들은 피고인에게 동행 요구에 대해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사전 고지하지 않았다. 경찰관들은 피고인을 경찰서에 동행한 후 대질신문을 진행하였고 임의동행이 이루어진 6시간 상당이 경과한 후 피고인에게 범죄사실의 요지, 긴급체포의 이유, 변호인선임권 등을 고지하고 긴급체포하였다. 이후 피고인은 관리가 소홀한 틈을 이용하여 경찰서를 빠져나가 도주하였다.
원심인 춘천지방법원은 (1) 피고인에 대한 임의동행은 경찰관들의 심리적 압박 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임의성을 결여하였으므로 그 실질은 체포에 해당하며, 당시 영장을 발부받지도 않은 채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선임권 등을 고지하는 등 긴급체포에 필요한 절차적 요건도 준수하지 않은 이상 위 강제연행은 불법체포에 해당한다, (2) 임의동행 이후 경찰서에서 이루어진 긴급체포도 형사소송법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기에 불법이다, (3) 따라서 피고인은 불법체포된 자로서 형법 제145조 제1항 소정의 ‘법률에 의하여 체포 또는 구금된 자’가 아니므로 도주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라고 판시하였다(춘천지방법원 2005.8.26. 선고 2005노429 판결). 그리고 대법원은 평석대상판결에서 이와 같은 원심의 사실인정과 판단과정에 아무 잘못이 없음을 확인하면서, 임의동행의 적법성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II. 형사소송법과 경찰관집무집행법상 임의동행의 요건
형사소송법 제199조 제1항은 ‘임의수사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바, 수사관이 수사과정에서 당사자의 동의를 받는 형식으로 피의자를 수사관서 등에 동행할 수 있다. 그리고 형사소송법 제200조 제1항에 의하여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에 대하여 임의적 출석을 요구하여 진술을 들을 수 있다. 한편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경찰관은 ‘거동불심자’에 대하여 정지시켜 질문할 수 있으며(제3조 제1항), 이 ‘거동불심자’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 “당해인에게 불리하거나 교통의 방해가 된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질문하기 위하여” 부근의 경찰관서로 동행을 요청할 수 있다(제3조 제2항).
형사소송법 제200조 제1항의 피의자신문의 경우 피의자는 출석의무가 없고 진술거부권이 있다는 점에서 임의수사이며, 경찰관직무집행법상의 임의동행의 경우도 질문상대방이 그 의사에 반하여 답변을 강요당하지 않으며 동행요구를 언제든지 거절할 수 있으므로 임의수사임은 틀림없다(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 제2항 단서, 제7항). 형사소송법 제199조 제1항에 의거한 임의동행도 강제수사라는 학계의 소수설이 있지만[신동운, 『형사소송법』 (제3판, 2006), 114면], 학계의 다수설은 이를 임의수사로 파악하고 그 과정을 실질적으로 심사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III. 사안분석
1. 임의동행과 체포의 구별기준와 적법한 임의동행의 요건 제시
대법원은 임의동행에서의 임의성은 동행의 시간과 장소, 동행의 방법과 동행거부의사의 유무, 동행이후의 조사방법과 퇴거의사의 유무 등을 종합하여 객관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93.11.23. 선고 93다35155 판결). 대상판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즉, 동행을 요구받은 “상대방의 신체의 자유가 현실적으로 제한되어 실질적으로 체포와 유사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는가 여부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경찰관 4명이 한꺼번에 차에서 내려 피고인에게 다가가 피의사실을 부인하는 피고인을 동행한 점, 경찰관들이 동행을 요구할 당시 피고인에게 그 요구를 거부할 수 있음을 말해주지 않은 점, 피고인이 경찰서에서 화장실에 갈 때도 경찰관 1명이 따라와 감시했다는 점 등을 주목하면서, “비록 사법경찰관이 피고인을 동행할 당시에 물리력을 행사한 바가 없고, 피고인이 명시적으로 거부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사법경찰관이 피고인을 수사관서까지 동행한 것은 위에서 본 적법요건이 갖추어지지 아니한 채 사법경찰관의 동행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심리적 압박 아래 행하여진 사실상의 강제연행, 즉 불법 체포에 해당한다”라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합리적 인간이 생각하여 자신이 그 자리를 떠날 수 없겠구나 라고 믿는 상황이라면 이는 ‘정지’의 정도를 넘어서는 ‘체포’이며[U.S. v. Mendenhall, 446 U.S. 544 (1980)], ‘임의동행’된 시민의 행동의 자유가 “공식적인 체포의 정도로까지 제약되는 순간”[Berkemer v. McCarty, 468 U.S. 420 (1984)] 당해인은 체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과 동일하다.
그리고 대법원은 임의동행이 적법할 수 있는 요건을 제시한다. 즉, “아직 정식의 체포ㆍ구속단계 이전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헌법 및 형사소송법이 체포ㆍ구속된 피의자에게 부여하는 각종의 권리보장 장치가 제공되지 않는 등 형사소송법의 원리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므로, 수사관이 동행에 앞서 피의자에게 동행을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 주었거나 동행한 피의자가 언제든지 자유로이 동행과정에서 이탈 또는 동행장소로부터 퇴거할 수 있었음이 인정되는 등 오로지 피의자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하여 수사관서 등에의 동행이 이루어졌음이 객관적인 사정에 의하여 명백하게 입증된 경우에 한하여, 그 적법성이 인정되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2. 임의동행시 동행거부의 자유를 고지할 의무의 부활
그런데 여기서 대법원이 임의동행시 경찰관이 대상자에게 동행거부의 자유를 고지할 것을 임의동행의 임의성 판단에 있어 핵심적 기준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태우 정부 아래에서 1990년 10월 13일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이후 1991년 3월8일 경찰관직무집행법이 개정되면서, 임의동행시 동행거부의 자유와 동행 후 퇴거의 자유를 경찰관이 사전에 고지해야 하는 의무규정(제3조 4항 후단)이 삭제되고, 임의동행시의 시간적 제한을 3시간에서 6시간으로 연장된 바 있다(제3조 6항).
그러나 노상에서의 ‘정지’와는 달리 경찰관서로의 ‘동행’은 그것이 형식적으로는 피동행인의 동의에 기초하여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시민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의 가능성이 매우 높고 또한 동행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체포에 못지 않다. 피의자신문 전에 진술거부권이 의무적으로 고지되어야 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임의동행이 진정 임의적이 되려면 피동행자가 자신에게 동행을 거부할 자유가 있음을 알고서도 동행을 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1979년 ‘Dunaway v. New York 판결’[442 U.S. 200 (1979)]은 노상에서의 정지와는 달리 경찰관서로의 동행의 경우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가 더욱 심각해지며, 설사 공식적으로 ‘체포’가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수정 헌법 제4조의 통제 하에 들어간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대상판결을 통하여 임의동행시 동행거부의 자유를 고지할 의무를 부활시켰던 바, 헌법적 권리 보호를 위한 ‘사법적극주의’의 모범을 보였다고 평가한다.
3. 임의동행 이후의 긴급체포의 불법성
한편 대상판결은 사법경찰관이 임의동행 후 6시간 상당이 경과한 이후에 행해진 긴급체포의 경우 동행의 형식 아래 행해진 불법 체포에 기하여 사후적으로 취해진 것에 불과하므로 위법하다고 판시하였다.
원심판결이 지적하였듯이, 피고인에 대한 불법한 임의동행 이후 6시간 상당이 경과하여서 비로소 범죄사실의 요지와 긴급체포의 이유 및 변호인선임권 등을 고지하면서 긴급체포의 절차를 밟은 것은 체포 당시에 준수하였어야 할 절차를 뒤늦게 밟는 형식을 취한 것에 불과하며, 그 임의동행의 위법의 정도는 사소한 절차상의 흠을 넘어 중대한 하자가 있고 그와 같은 위법성은 사후적으로 취해진 긴급체포에도 그대로 승계된다. 임의동행 자체가 불법할 경우 사법경찰관이 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 6항의 요구를 고려하여 6시간을 초과하지 않은 채 긴급체포의 절차를 밟았다고 하여 그 긴급체포가 적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긴급체포는 ① 피의자가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② 통상체포 보다 엄격한 사유, 도주 또는 증거인멸의 우려라는 구속사유가 있어야 하며, ③ 긴급을 요하여 지방법원판사의 체포영장을 받을 수 없을 것 등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제200조의 3 제1항). 그런데 이 사안에서 피고인은 임의동행의 형식으로 체포된 후 범행을 부인하고 있었는데 만약 당시의 사정만으로 긴급체포의 요건이 갖추어졌다면 사법경찰관은 바로 적법한 절차를 밟아 검사 또는 법원의 판단을 받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않았다. 이후 검사는 절도혐의에 대한 보강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구속 수사지휘를 했고, 피고인은 수사기관의 조사에 순순히 응해왔다는 점 등을 고려하자면 임의동행 이후 이루어진 긴급체포가 형사소송법이 요구하는 적법성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다 할 것이다.
IV. 맺음말
민주화 이후에도 임의동행의 형식을 빌려 신병확보 기간을 늘리고 수사를 진행하는 실무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임의동행은 피의자의 동의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주장되지만, 수사기관의 동의 요청은 피의자를 사실상 강제하는 효과를 가진다. 대상판결은 임의동행의 적법성은 피의자의 형식적 동의 여부에 위해서가 아니라, 피의자의 신체의 자유가 현실적으로 제한되었는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정식의 체포ㆍ구속단계 이전이라는 이유로 헌법 및 형사소송법이 체포ㆍ구속된 피의자에게 부여하는 권리가 약화되지 않도록 수사관이 동행에 앞서 피의자에게 동행을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 주거나 동행한 피의자가 언제든지 자유로이 동행과정에서 이탈 또는 동행장소로부터 퇴거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어야 함을 명백히 밝힌 획기적 판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