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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23. 4. 27. 선고 2021다213477 판결, 2021다229601 판결 평석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파견법상 권리에 미치는 영향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영향도 검토해야 1. 사안의 개요 A 회사는 1993. 9. 17. 설립되어 원청인 주식회사 삼표시멘트 및 그 자회사인 D 회사로부터 광산 채광업무를 하청받아 수행한 회사이고, 근로자 갑은 2012. 3. 1. A 회사에 입사해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위한 파견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다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당시 계열사의 경영난으로 인해 2013. 10. 17. 회생절차개시결정, 2014. 3. 18. 회생계획인가결정을 각 받았다. 갑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의 위 회생절차에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하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고용청구권 및 금전채권(파견법위반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 회생채권신고를 하지 아니하였고, 피고의 관리인 역시 원고를 채권자목록에 기재하지 아니하였다.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의 위 회생절차는 2015. 3. 6. 종결되었다. 한편 B회사는 2008. 5. 22. 컴프레서 운전용역 등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로, 역시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로부터 원청 사업장 내 컴프레서, 펌프, 보일러 등의 운전 및 점검업무 등을 하청받아 수행한 회사이다. 근로자 을은 2008. 6. 1. 에, 근로자 병은 2014. 12. 26.에, 근로자 정은 2016. 8. 13.에 각각 B회사에 입사해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위한 파견업무를 수행하였다. 근로자 갑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직접고용청구와 더불어, 원청 소속의 비교대상 근로자에 비해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한 것이 파견법 제21조 제1항의 차별에 해당하고 이는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이유로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 관련 소송의 개요) 근로자 을, 병, 정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직접고용청구 및 고용의무 불이행(즉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각 제기하였다. (대법원 2021다229601 판결 관련 소송의 개요, 다만, 원고 정의 경우 위 직접고용청구 부분에 대해 항소심에서 소일부취하 하였다. 이하 위 근로자 갑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함께 ‘대상판결’이라 한다. ) (사안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평석 주제와 직접 관련없는 당사자 및 사실관계는 요약 내지 생략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이 사건의 원심판결(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 2020나1108 등 판결)은, 위 파견근로자들의 직접고용청구권은 형성권이 아닌 청구권이기는 하지만 재산상의 청구권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의 회생채권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고,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에 기해 직접고용청구권이 불성립하거나 소멸한다는피고 주장에 대해서는, 사용사업주에 대해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었더라도 이후 회생절차 종결결정의 효력이 발생하면 파견근로자는 다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은 파견근로자가 명시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같은 조 제1항의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의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고, 그 시행령 제2조의2는 사용사업주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을 위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바, 그 입법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면, 사용사업주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은 발생하지 않고, 회생절차개시결정 전에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하여 직접고용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고, 다만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파견근로자는 그때부터 새로 발생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같은 법리에 기해 대법원은, 1) 원고 을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기 전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 파견근로자이므로 위 원고의 직접고용청구권은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해 소멸하였고, 더 이상 회생절차개시 전에 발생한 직접고용의무에 터잡아 회생절차개시 후의 직접고용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무 역시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고, 2) 원고 병의 직접고용청구권의 성립요건은 피고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 충족되었으므로 위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원고 병의 직접고용청구권은 발생하지 않고, 이를 전제로 한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 3) 다만 원고 정은 회생절차가 종결된 후인 2016. 8. 13.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하였으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 동법 시행령 제2조의2 제1호가 적용되지 않고,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원고 정에게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원고 갑의 경우 항소심에서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의 권리소멸 등 주장을 명시적으로 하지는 아니하였으나, 대법원은 원심이 이에 대한 석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갑의 직접고용청구를 인용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다만 사용사업주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주의를 기울였으면 이를 알 수 있었는데도 파견근로자가 비교대상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이러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이는 구 파견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대법원은, 이러한 사용사업주에 대해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관리인은 차별적 처우를 해소함으로써 위법행위를 시정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차별적 처우를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며 그 손해는 날마다 발생한다고 전제한 다음, 관리인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 제5호의 공익채권이라는 이유로, 상기 손해배상청구권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의 회생채권 또는 동법 제181조의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본안전 항변을 배척한 원심 판단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3. 평석 가. 파견법 제6조의2의 권리장애 및 권리소멸 효과 현행 파견법 제6조의2 조항은 2006. 12. 21.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도입된 것이다. 본래 1998년 제정된 파견법(구 파견법) 제6조 제3항은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함으로써 고용관계를 간주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의제조항에 대해 사용사업주의 계약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있었고, 이에 위 개정법 시행일인 2007. 7. 1. 이후부터는 사용사업주에게 파견근로자를 직접고용‘하여야 한다’는 고용의무 규정이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위 개정법의 적용 대상인 파견근로자는 직접고용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같은 권리는 청구권인가 형성권인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학계에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현재는 사용사업주는 물론 파견근로자 역시도 아래에서 살펴볼 이른바 ‘10년 손해배상’을 주장하기 위해 대부분 청구권설을 지지하는 듯하다. 다만 이같은 파견법상 권리가 청구권이라면 다른 일반채권과 마찬가지로 이행의 문제가 남게 되고, 특히 이 사건과 같이 고용의무 이행이 완료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한 경우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을 포함한 파견근로자의 제 권리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바, 적어도 대상판결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필자가 알기로는 이에 대한 학계 및 실무상의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먼저 파견근로자의 고용청구권 자체가 회생절차 개시 이전에 발생한 것이라면 (즉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 각호의 사유가 회생절차 개시결정일 이전부터 있었다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에 기해 회생채권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 사건 원심은 직접고용청구권은 단순히 근로계약관계 형성의 법률효과를 가져올 뿐인 점,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가 공익채권에 해당하는 점 등을 근거로 직접고용청구권이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설시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미 채권양도인인 회생채무자에 대해 채권양수인이 갖는 양도통지 이행청구권(대법원 2016마5082 결정), 골프회원권(대법원 89다카4113 판결)과 같은 계약상 급여청구권(비금전채권)에 대해서도 회생채권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한 점,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는 고용의무가 이행된 후 그에 터잡아 발생하는 것이므로 임금채권이 공익채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보다 선행하는 고용청구권 자체의 성질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이는 직접고용청구권이 회생채무자의 재산감소와 직결되는 권리임을 더욱 명확히 보여줄 뿐인 점 등을 종합하면, 이 부분 원심의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 개정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 동법 시행령 제2조의2 제1호는 직접고용청구권 자체의 회생절차상 취급에 대하여 입법적으로 해결한 조항이라고 평가된다. 대상판결은 위 파견법 조항이 직접고용의무의 예외규정을 둔 이유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파탄에 직면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사용사업주에 대하여도 일반적인 경우와 동일하게 직접고용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사업의 효율적 회생을 어렵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뿐만 아니라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정책적 고려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앞서 살핀 바와 같이 ①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하지 않고, ② 회생절차개시결정 전에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하여 직접고용청구권이 소멸하고 ③ 다만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파견근로자는 그때부터 새로 발생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정리하였다. 요컨대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은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결정 이후의 직접고용청구권에 대해서는 권리장애적 항변이 되고, 회생개시 이전에 이미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사용사업주는 위 조항을 근거로 권리소멸 항변을 할 수 있음이 명확해졌다.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영향도 검토해야 나. 회생개시결정 전부터 고용의무 불이행 또는 차별이 반복되어 온 경우 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법적 성질 한편 고용청구권 자체의 법적 성질과는 별개로,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하기 전부터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해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의 고용의무 또는 동법 제21조의 차별이 계속되어 온 경우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해당한다면 이를 원인으로 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채권은 회생채권 또는 개시후기타채권(채무자회생법 제181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파견법이 제정된 1998년 당시만 해도 하청 소속 근로자들은 주로 원청과의 묵시적 근로관계(소위 위장도급)를 주장하면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파견법에 기한 권리주장은 묵시적 근로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 대비한 예비적 주장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2006년 파견법이 개정되면서 고용 의제가 아닌 고용의무 규정이 도입되자, 이에 착안해 고용의무 불이행 또는 비교대상 정규직 근로자와의 임금 차별(불법행위)을 원인삼아 파견근로기간 동안 차별받은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이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다. 대법원은 이미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로 하여금 비교대상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이러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파견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 2020. 5. 14. 선고 2016다239024 등 판결) 사용사업주가 파견사업주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 파견근로자에 대한 임금지급의무 일부가 이행되지 않은 것이 채무불이행 내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입장에는 다소의 의문이 있다. 파견근로자 입장에서는 계약상 권리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 외에 달리 침해된 법익이 없는 바, 이같은 경우에도 불법행위와의 경합을 인정한다면 계약법 영역과의 준별이 분명치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회생절차개시 전부터 사용사업주의 재산상 청구권(즉 고용의무 또는 차별해소의무)의 불이행이 있기 때문에 파견근로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할 관계에 있는 때에는 그 계속으로 회생절차개시 이후에 발생하고 있는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채권은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에서 말하는 ‘회생절차개시 후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문제되는 것이다. (대법원 2004. 11. 12.선고2002다53865 판결 참조) 이 문제에 대해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은,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여 온 사용사업주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관리인은 그 차별적 처우를 해소할 의무를 부담하고, 함으로써 위법행위를 시정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차별적 처우를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며 그 손해는 날마다 발생하는 것이므로, 관리인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제179조 제1항 제5호의 ‘그 밖의 행위로 인하여 생긴 청구권’에 해당하므로 공익채권이라는 이유로, 원고 갑의 손해배상채권이 회생채권 내지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본안전 항변 등을 배척한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였다. 또한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29601 판결)은, 앞서 본 원고 을, 병의 고용의무가 소멸하거나 발생하지 아니한 이상 피고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회생채권 내지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본안전 항변 등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하였다. 파견근로자 손해배상청구권의 근거를 고용의무 불이행(채무불이행)에서 찾든 차별해소의무 위반(불법행위)에서 찾든 간에, 그 요건사실인 근로자파견관계가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 이전부터 성립해 있었다면 청구권의 주요한 발생원인은 회생절차개시 전에 갖추어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상판결은 원고 갑과 주식회사 삼표시멘트 간의 근로자파견관계가 회생절차개시결정 이전에 성립해 그 이후까지 계속되었다고 보았음에도, 회생절차 관리인이 위 원고를 차별 처우한 것이 회생절차 이전의 차별과 별개인 ‘새로운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한 바, 이 부분 판시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채무자회생법 제251조 본문에서 이른바 실권제도를 둔 것은, 절차참여의 기회를 보장하였음에도 절차에 참여하지 아니한 권리자는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점과 뒤늦게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는 권리자로 인하여 회생계획의 수행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한 결과이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 주식회사 삼표시멘트가 회생절차에 돌입한 사정은 하청업체인 A, B 회사 직원이라면 누구나 알았거나 알 수 있었고, 다만 당초에는 묵시적 근로관계 주장에 집중한 나머지 파견법상 권리주장에 소홀하였던 것이므로, 구체적 타당성의 측면에서 보아도 보호받을 필요가 없다. 다. 보론 - 파견법위반(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의 요건 및 소멸시효 백보를 양보하여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개시 이전부터 계속된 파견관계에 기해 그 후에도 임금을 차별한 것이 ‘새로운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점만으로는 사용사업주가 당연히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는 회생절차개시 여부를 불문하고, 사용사업주가 파견법 제21조의 차별금지를 위반한 사안이라면 일반적으로 짚어보아야 할 문제이다. 사용사업주가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 책임을 지려면 파견관계 내지 임금 차별에 대해 사용사업주(또는 관리인)의 귀책사유 내지 고의·과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특히 불법행위를 청구권원으로 삼는다면 고의·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당연하게도 피해자인 파견근로자에게 있다. 한편 전술한 바와 같이,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파견근로자의 권리주장은 점차 직고용에서 손해배상청구로 그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용사업주와의 고용관계가 의제된 경우에는 임금채권의 소멸시효(3년) 범위 내에서 임금차액 자체를 청구할 수 있을 뿐이지만, 고용의무 내지 차별금지의무에 터잡아 불법행위로 구성할 경우 민법 제766조 제2항에 따라 불법행위일로부터 10년의 범위 내에서 소급해 임금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할 여지가 있다. 즉 파견근로자는 동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도과만 면한다면, 계약상 권리보다 불법행위책임을 추궁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여기게 된다. (심지어는, 구 파견법에 기해 고용관계가 의제된 파견근로자조차 파견법 제21조,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위 3년 이전에 발생한 임금 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한다.)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의 원심에서는, 이 사건 소제기일로부터 역산하여 3년 이전의 기간에 발생한 원고 갑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로 인해 소멸하였는지 여부도 쟁점이 되었다. 원심 및 대상판결은 원고 갑이 위 소제기일로부터 3년 전 당시에 차별적 처우를 당하고 있음을 인식하였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는 취지로 피고 회사의 위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하기는 하였다. 다만 대상판결은 파견법위반의 불법행위에 대해 민법 제766조 제2항의 장기 소멸시효 규정까지 적용된다고 판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파견근로자가 파견법 제21조,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10년간의 임금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단정하여서는 곤란하다. 다른 법률에 특별히 그보다 단기의 소멸시효기간을 정한 경우에는 그 단기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입찰 담합을 원인으로 한 국가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서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 규정이 적용되지만, 장기 소멸시효는 국가재정법 제96조에 따라 5년으로 적용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4. 결론 및 향후 과제 그간의 불법파견 소송에서는 주로 원청과 하청, 하청근로자 간의 법률관계가 진성 도급관계인지 아니면 근로자파견관계인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었고, 특히 원청회사 사업장 내에서 원청의 일을 도급주는 형태인 소위 사내하청이 파견관계인지 여부, 컨베이어벨트 바깥의 이른바 간접공정에 속한 경우에도 파견관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자주 문제되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사실인정의 문제이므로 산업분야 및 사업장마다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설령 원청 회사에서 파견으로 볼 만한 기준 내지 요소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이를 시정하기 위해 생산라인 내지 인력구조 자체를 하루아침에 개선하기도 어렵다. 결국 사내도급 방식으로 운영되는 중견기업 및 대기업이라면 앞으로도 불법파견에 관한 리스크를 일정 부분 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받은 파견근로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그 권리행사의 효과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학계 및 실무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아니하였다. 대상판결은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한 경우 파견법상 권리 역시 변경 내지 소멸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비단 대상판결의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뿐 아니라, 불법파견이 문제되는 완성차업계 및 조선업계 등에서는 장기간 업황부진 등으로 회생을 면하기 어려운 회사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파견법상 직접고용청구권 및 그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법적 성질에 대해 보다 명확히 판단하였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있다고 사료된다. 다만 파견법 제21조에서 말하는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를 충족해야 하는지, 특히 회생절차에서 선임된 관리인의 고의·과실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파견법위반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면 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채권의 장기 소멸시효는 무엇인지 여부는 향후 해명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대상판결을 계기로, 파견법상 권리의 법적 성질 및 그 효과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변재휘 변호사(법무법인 동헌)
소멸시효
임금채권
임금차별
불법파견
변재휘 변호사(법무법인 동헌)
2023-08-13
민사일반
- 대법원 2019. 12. 27. 선고 2015다78857 판결 -
헬스클럽의 회비 임의변경조항에 관한 약관법적 문제
[사안의 개요] 1. 피고는 1985년경부터 종합 스포츠센터(이하 '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원고들은 센터 개관 무렵 또는 그 이후 피고와 사이에 특별회원 가입계약을 체결하면서 입회비 및 보증금을 납부하거나, 입회비 및 보증금을 납부한 자로부터 회원권을 양수받아 이용권한을 취득한 특별회원들이다. 피고는 2011년 2차례에 걸쳐 센터 회원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실시한 후 센터 본관 건물의 리모델링 공사를 시행하였고, 위 리모델링 공사가 완료된 2012년 초 원고들을 포함한 특별회원을 대상으로 2차례의 공청회를 실시하여 위 리모델링 공사의 실시 및 물가상승 등 제반 경제적 여건의 변화로 인하여 센터의 특별회원에 대한 보증금을 추가로 부과할 것임을 통지하였다. 이 사건 관련 센터 회칙(이하 '이 사건 회칙') 규정은 아래와 같다. 제17조(회비의 변경조정) 스포렉스의 각종 회비는 공과금의 증액과 물가 및 기타 경제적 여건의 변동 등을 고려하여 조정할 수 있다. 단, 기 납부된 회비에 대하여는 그 권리를 인정한다. 제20조(발효) 본 회칙은 1984년 11월 20일부터 그 효력을 발생한다. 원고들은 이 사건 회칙 제17조가 약관으로서 피고로 하여금 채무의 이행에 관하여 상당한 이유 없이 급부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조항이자, 고객에 대하여 부당하게 불리하고 고객이 예상하기 어려운 조항이므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법'이라 한다)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원고들은 설령 피고가 이 사건 회칙 제17조에 기하여 원고들에게 추가 회비를 청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고지한 금액이 지나치게 과다하여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대법원은 센터가 클럽시설 이용의 대가인 회비를 임의 조절할 수 있도록 클럽규약에 규정되어 있더라도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만 그 회비의 인상 여부 및 인상 범위를 정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 사건에서 시설주체가 특별회원들에게 추가로 부과한 회비는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하였다. [연구] Ⅰ. 들어가며 가격조정조항에 따른 사업자의 가격조정은 일방적 급부변경에 해당하고 계약법의 대원칙인 계약준수(pacta sunt servanda)의 원칙을 훼손하면서 고객에게 부당한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다. 사업자가 가격조정을 통해 계약적 등가관계를 훼손하면서 후발적으로 급부와 반대급부의 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오남용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격조정조항에 대하여는 일정 한계가 설정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법') 제10조 제1호는 채무의 이행과 관련하여 "상당한 이유 없이 급부의 내용을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을 무효로 선언하고 있다. 대상판결에서는 센터 회비 임의변경조항(가격조정조항)의 약관법적 유효성 여부에 관해 다툼이 있는바, 특히 그것의 유효성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이 문제된다. Ⅱ. 가격조정조항이 약관 내용통제의 대상인지 여부 센터 시설의 회비는 회원제 센터이용계약의 급부 또는 반대급부에 해당하므로 약관법에 따른 내용통제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닌지가 문제된다. 계약체결 당시의 회비는 이용자의 회원제 센터이용에 대한 반대급부에 해당하고, 따라서 내용통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격조정조항에 기반하여 새롭게 형성된 회비는 원래의 계약과는 내용을 달리하는 가격에 관한 부수적 약정이며, 그에 관한 조항은 부수적 대가조항으로서 항상 약관법에 따른 내용통제의 대상이 된다. 일방적 급부변경권은 채권관계의 발생 또는 내용 변경을 위해서는 법률에 정함이 없는 한 당사자 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문의 법원칙인 '계약준수의 원칙'을 일탈하는 급부변경조항 내지 가격조정조항은 내용통제를 받아야 한다. Ⅲ. 약관법 제10조 제1호의 '상당한 이유' 상당한 이유의 존부를 판단하기 위해 4가지 기준을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가격조정조항이 투명해야 한다. ② 고객이 원래 약정된 급부를 제공받는 것에 대해 (보호의 가치가 있는) 이익을 가져서는 안 된다. ③ 사업자 측에 변경을 정당화하는 실체적 사유가 있어야 한다. ④ 변경이 결과적으로 본래적 급부와 반대급부의 등가성을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 1. 가격조정조항의 투명성 상당한 이유의 존부와 관련하여 투명성이 요청되는 이유는 가격'조정'이라는 미명 아래 약관사용자가 나중에 일방적으로 이익을 실현하지 못하도록 하여 본래의 계약적 급부와 반대급부의 등가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투명성과 관련하여 법학 교육을 받지 아니한 평균적인 고객이 '계약체결 시'에 약관조항의 문언을 통해 어려움이 없이 언제 변경을 예상해야 하는지, 약정된 급부의 어떠한 변경이 허용되는지를 쉽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급부변경을 위한 사정이 어느 정도로 구체적으로 언급되어야 하는지는 개별 분야의 특수한 사정과 계약기간의 장단을 고려해 판단할 문제이다. 다만 계속적 계약관계에서는 변경의 사유 및 범위를 확정적으로 정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대상판결의 사안처럼 센터 개장 후 25년여가 지난 시점의 비전형적인 장래사를 약관조항을 통해 사전에 정밀하게 규율하기는 어렵다. 그러한 점에서 가격조정조항의 투명성과 관련하여 모든 경우의 수를 다 포괄할 수 있고 개별 사안에서 전혀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구체화할 필요는 없다고 할 것이다. 2. 고객의 본래적 급부수령에 대한 이익 사업자가 계속적 계약관계에서 시장 여건의 변동으로 인해 급부의 사양(仕樣)을 일관하기 어려운 경우 급부변경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반면 고객은 여하한 변경 없이 계약상의 급부를 그대로 받는 것에 대한 이익을 가질 수 있다. 급부내용이 변경되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가 그러하다. 3. 실체적 변경사유 약관법상의 일반적 투명성 요청과 급부내용의 변경유보는 계약준수의 원칙 및 그로부터 파생되는 계약적 합의는 양 당사자의 합의로만 변경할 수 있다는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이룬다는 점으로부터 약관에 실체적 변경사유가 추상적이나마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 4. 등가관계의 유지 가격조정이 계약체결 당시에 존재하던 급부와 반대급부의 등가성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계속적 계약관계에서 사업자는 가격조정을 통해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없다. 가령 계약체결 당시에 고객이 누렸던 가격 관련 유리한 지위는 특약이 없는 한 사용자에 의한 후발적이고 일방적인 가격 인상으로 박탈되어서는 안 된다. 등가관계의 파괴는 계약당사자의 이익의 균형을 도모하고자 하는 계약법적 메커니즘을 교란함과 동시에 계약의 실체적 정당성을 위태롭게 한다. 따라서 사업자 측의 원가변동 및 그 밖의 가격변동요인의 기회와 위험은 계약의 양 당사자에게 동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Ⅳ. 나오며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계속적 계약관계로서의 성질을 가진 회원제 센터이용계약에서 사정변경에 따른 가격조정이 문제되었다. 거래당사자는 특약이 없는 한 계속적 계약관계에서 애초의 가격이 영구적으로 고정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대상판결의 사안처럼 특별회원에 대한 평생무료이용계약이 체결된 바 없다면, 센터의 증·개축으로 인한 회비 인상은 기본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 사건 회칙에서는 급부변경의 기본적 요건이 명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회비 인상에 즈음하여 수차례의 공청회를 통해 변경의 사유 및 범위가 통보되었다. 따라서 센터의 일방적 급부변경을 위한 약관조항의 투명성 요청은 물론 실체적 사유도 충족된 것으로 평가된다. 나아가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원고들이 원래 약정된 급부를 제공받는 것에 대해 특별히 보호의 가치가 있는 이익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센터 시설의 증·개축으로 인한 시설의 편리성 증가는 일반적으로 그 회원에게 이익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센터 시설의 증·개축 관련 비용은 센터와 회원이 분담해야 하고, 회원의 부담부분은 애초의 계약적 등가관계에 해당하는 비율적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회비 인상은 가능하지만, 특별회원에 대한 회비 인상의 범위가 과도하여 본래의 등가관계를 해치고 있다. 결국,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센터 측의 회비조정조항 자체는 약관법적으로 무효라고 할 수 없지만, 센터 측은 특별회원이 부담부분을 잘못 산정하여(실제로 발생한 비용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특별회원에게 전가함으로써) 애초의 계약적 등가관계가 파괴되었다. 필자는 대상판결의 결론에 대하여는 대체로 공감하는 바이다. 다만 대법원이 센터 시설의 증·개축과 이로 인해 특별회원이 새롭게 누리게 된 이익을 고려해 적정히 인상된 회비의 '테두리'를 정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이에 관한 아무런 언급이 없이 파기환송한 것은 아쉽게 생각한다. 회비변경조항에 의해 인상된 회비는 본래의 반대급부라고 할 수 없고 부수적 대가이기 때문에 법원에 의한 적정한 회비 인상분 결정은 가능하다고 하겠다. 김진우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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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2021-09-27
정보통신
행정사건
- 서울고등법원 2019. 11. 1. 선고 2018누56291 판결 -
해킹과 인과관계 없는 취약점도 과징금 부과 대상인가
2016년 2,500만 건의 고객정보를 유출 당한 인터파크에게 방통위는 44억 8,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는 개인정보 유출 관련 정부가 부과한 과징금액으로는 역대 최고 금액이다(참고로 민사에서 최대 배상금액을 기록한 소송은 단연 신용카드 3사 개인정보유출 사건이다). 인터파크는 방통위의 과징금 처분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 서울행정법원 및 항소심 서울고등법원에서 패소했다. 소송에서는 인터파크의 법위반행위와 해킹 간 인과관계 여부가 주된 쟁점이었다. 법원은 방통위 처분을 지지하면서 “유출사고가 난 이상 이것과 법위반행위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본고에서는 이 쟁점에 대해 살펴본다. 인터파크가 당한 해킹의 유형은 APT(Advanced Persistent Threat) 공격이다. 이는 해커가 특정 목표 대상을 정한 후 그 허점을 집요하게 노려 침입하는 기법이다. 해커는 인터파크 직원 A의 가족사진을 가지고 화면보호기(SCR 파일)를 만들고 여기에 악성코드를 심어 A에게 이메일로 전송하면서, 마치 A의 친동생이 보내는 것처럼 발신 이메일 주소를 위장하고 동생의 어투까지 흉내냈다. A는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었다. 화면보호기의 확장자가 EXE가 아니라 SCR이라서 A는 별 의심을 하지 않고 첨부파일을 열었을 것이나, SCR 파일도 악성코드 유포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 특정 공격을 위해 특별 제작된 악성코드는 백신에도 탐지되지 않는다. 해커는 악성코드를 감염시킨 A의 PC를 거점으로 삼아 DB 관리자 직원 B의 PC에 원격 데스크탑 접속했다. 당시 B가 퇴근한 시간이었는데, 그때까지 DB 서버와의 접속이 유지된 터미널이 B의 PC에 그대로 떠 있었다고 한다. 자동 로그아웃(이하 ‘idle timeout’) 설정이 제대로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해커는 DB 서버에 손쉽게 침입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서 인터파크 회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이 바로 이번 사고이다. 정보통신망법의 위임을 받아 개인정보의 기술적·관리적 보호조치의 내용을 정한 방통위 고시는 개인정보처리시스템에 idle timeout 설정을 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한 법상 의무를 위반하면 그 자체로 과태료, 개인정보 유출까지 되면 과징금 부과 대상이다. 부수적으로, A의 PC를 손에 넣은 해커가 인터파크 사내 네트워크를 스캔했더니 업무용 파일서버가 발견되었다. 거기에는 패스워드 장부 엑셀파일이 있었다. 직원들이 수많은 인터파크 서버들의 접속계정을 외우기 어려워 이를 메모해둔 것이었다. 다만, 개인정보가 유출된 DB 서버의 접속 패스워드는 여기에 없었다고 한다. 즉, 패스워드 장부 노출이라는 법위반행위와 개인정보 유출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음이 분명했다. 그런데 방통위는 idle timeout 미설정은 물론 및 패스워드 장부 노출까지 모두 처분원인사실로 삼아 과징금을 부과했다. 인터파크는 행정소송에서 idle timeout 미설정은 APT 해킹의 핵심 원인이 아니다, 나아가 패스워드 장부 노출과 개인정보 유출은 인과관계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인터파크를 패소시킨 1심 및 항소심 법원은 인과관계 자체가 과징금 부과 요건이 아니라고 근거법률을 해석했다. 개정 전 법조문은 “법상 '조치'를 하지 아니하여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경우에는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구조로서 '미조치'가 '유출'의 원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명확했다. 이와 달리 2014년 개정된 법조문은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유출' 한 경우로서 법상 '조치'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이를 근거로 법원은 '유출'이라는 결과와 '미조치' 행위가 인정되기만 하면 둘 사이의 인과관계는 요구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해킹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즉 ‘인과관계’ 없는 사업자의 위반행위까지 과징금 처분사유가 될 수 있다고 본 법해석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사료된다. 민사와 형사의 영역에서는 자신의 행위와 인과관계 없는 결과에 대해서 법적 책임을 지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형법 제17조(인과관계) 및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 모두 ‘인과관계’를 법적 책임의 성립요건으로 요구한다. 이것이 법의 대원칙이다. 행정상의 제재 또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마찬가지이다. 행정상 금전제재는 크게 과징금과 과태료로 나뉜다. 일반론적으로, 단지 절차를 위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행정질서벌의 일종인 과태료(가벼운 제재)가 부과되는데 그치는 반면, 행정목적을 침해하는 결과까지 야기한 행위에 대해서는 행정벌의 일종인 과징금(무거운 제재)이 부과된다. 정보통신망법 또한 이 체계에 따라 과태료와 과징금의 각 구성요건이 차등되어 있다. 사업자가 단지 idle timeout과 같은 법상 조치를 불이행한데 그쳤다면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 받지만(제76조 제1항 제3호), 더 나아가 개인정보 유출(해킹)이라는 결과까지 야기했다면 관련매출액에 비례하는 과징금을 부과 받는다(제64조의3 제1항 제6호). 해킹을 당했다는 결과에 대해 사업자에게 과징금이라는 법적 책임을 지우려면, 마땅히 사업자의 행위와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해야 한다. 이것이 법의 대원칙에 부합하는 해석으로 사료된다(만약 해킹과의 인과관계를 불문하고 과징금을 부과하는 쪽으로 제도를 바꾼다면 굳이 행정질서벌을 운영할 필요가 없으니 과태료 조항을 폐지하는 것이 균형에 맞을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부합하도록 개정 전 정보통신망법 제64조의3 제1항 제6호는 ‘조치를 하지 아니하여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누출’이라는 형식으로 규정함으로써 미조치가 해킹의 원인을 제공했어야 한다는 요건을 명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3. 11. 21. 방통위가 입법예고한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안에서 “현재 대규모 개인정보 누출 등 침해사고 발생시 기술적·관리적 보호조치 위반과의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움” 이라는 이유를 들어 과징금 부과요건 중 ‘인과관계’ 요건을 삭제할 것이 제안되었다. 참고로 이때까지는 개인정보 유출(해킹) 사고에 대해 과징금 처분이 내려진 전력이 없었다(2014. 6. 26. 비로소 첫 과징금 사건인 KT 마이올레 사건의 방통위 처분이 내려졌다). 위 방통위가 제안한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제64조의3 제1항 제6호 개정안은 독자적인 법안으로 국회에 발의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고, 대신 2014. 5. 2.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대안법안의 일부로서 반영되었다. 그런데 정작 그 대안법안의 의안원문 및 이에 관한 국회 검토보고서, 소관위 회의록 등 가운데 ‘인과관계’ 입증 없이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는 기재는 어디에도 없다. 즉, ‘인과관계’ 요건을 삭제하는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라도 되었는지 의문이다. 참고로 그 당시는 신용카드 3사 개인정보 유출 사고 사실이 2014. 1. 8.자 검찰 발표에 의해 알려진 이래 국회에서 앞 다투어 개인정보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들이 발의된 시점이어서, 위 대안법안에는 무려 18건의 발의안이 통합되어 있었다(예컨대 300만 원 이하 법정손해배상 규정도 이 때 신설된 것이다). 따라서 입법자의 의도에 ‘인과관계’ 요건 삭제가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는 불명확한 측면이 있으며, 만약 진정한 입법의도가 그러했다면 위헌 소지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과징금 부과요건에서 ‘인과관계’를 뺄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요건과 균형이 맞지 않게 된다. 정작 본인의 정보를 유출 당한 이용자는 사업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사업자의 과실과 해킹 간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못하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 행정청은 피해자인 일반 국민들보다 현저히 강력한 조사권한을 가졌음에도 ‘인과관계’ 요건 입증을 생략하고 과징금이라는 공법적 제재를 손쉽게 부과할 수 있어야 하는지, 응보와 억지가 피해배상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가치인지는 심히 의문스럽다. 향후 만약 행정청이 ‘인과관계’ 요건 입증을 생략하고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이번 판결이 해석한 입법의도와는 오히려 반대로, 피해자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별도로 인과관계 요건을 입증하는데 곤란을 겪어 이용자 구제에 흠결을 낳을 수도 있다. 한편, 만약 본고의 주장에 따라 ‘인과관계’를 여전히 현행법상 과징금 부과요건으로 해석할 경우, 인터파크 사건에서 두 처분사유와 해킹 사이의 인과관계는 존재하는가. 제1처분사유와 해킹 사이의 인과관계 유무는 곧 “Idle timeout 조치를 취했을 때 인터파크가 당한 유형의 APT 해킹을 통상 막을 수 있는가”의 문제로 점철된다. 이는 세부 사실관계에 따라 판단 여지가 있는 문제이다. 인터파크 사건의 경우, 해커가 DB 관리자 B의 PC(관리용 단말기)에 원격 데스크탑으로 접속해보니 마침 B가 퇴근하여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망분리 프로그램 및 DB 서버 접속 터미널이 로그아웃 되지 않고 그대로 떠 있었다. 이와 달리, 위 망분리 프로그램 및 DB 서버 접속 터미널에 최대접속시간이 설정되어 있었고 해커가 B의 PC에 접속했을 때 위 터미널이 로그아웃 된 상태였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해커가 DB 서버에 침입할 수 있었을지 여부가 관건이다. 만약 예컨대 해커가 B의 PC에 키로거 등을 용이하게 설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해커로서는 수고스럽더라도 위 PC에 키로거를 심어 내부망 ID·PW 및 DB 서버 ID·PW를 도청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 경우 idle timeout 조치를 했었더라도 해킹은 막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싸이월드 판결은 DB 서버 계정 ID·PW가 해커에게 이미 도청당한 상태에서 idle timeout 설정은 무용지물이라는 이유로 그 미설정과 해킹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한바 있었다. 달리 가정하여, 만약 해커가 B의 PC 제어권한을 완전히 탈취하지 못했거나, 또는 해커의 관점에서 우연히 접속해 본 B의 PC가 DB 관리자의 것인지조차 알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DB 서버 접속 터미널이 idle timeout 되지 않고 그대로 떠 있었던 것이 해킹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셈이므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적어도 두 번째 처분사유와 해킹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DB 서버의 관리자 비밀번호는 문제된 패스워드 장부 엑셀파일에 쓰여 있지 않았고, 해커는 다른 경로로 DB 서버에 침입했으므로, 위 패스워드 장부 엑셀파일이 노출된 것은 DB 서버 해킹의 원인과 무관하다. 해킹과 인과관계 없는 위반행위는 과태료 부과 대상이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인터파크의 입장에서는 다른 경로로 해킹을 당했다는 우연한 사정으로 인해, 해킹의 원인이 아닌 행위에 대해서까지 경한 과태료 대신 중한 과징금을 부과 받게 된 셈이다. 요컨대, 정부가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이것을 과징금 부과요건에서 뺀다는 것은 근시안적인 접근이다. 정부의 역할은 침해사고 원인조사의 실효성을 높임으로써 해킹과 ‘인과관계’ 있는 취약점이 무엇이었는지를 현장에서 밝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기술적·관리적 보호조치 고시는, idle timeout과 같은 지엽적인 의무를 나열할 것이 아니라, 로그(Log) 보존 등 사고조사에 꼭 필요한 조치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향후 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전승재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바른)
개인정보유출
과징금
인터파크
전승재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바른)
2019-12-23
인터넷
지식재산권
- 대법원 2019. 2. 28. 선고 2016다1608 판결 -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방조책임 성립요건
[사실관계] 피고는 대형 포털사이트 운영자이다. 원고는, 피고의 회원이 원고의 저작물인 동영상을 피고 사이트 카페에 무단으로 업로드하여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으므로 조치해 달라는 요구서를 보내면서, 해당 카페 주소들을 기재하고, 키워드 검색결과 화면 및 해당 동영상 중 1개의 화면을 캡처한 사진을 첨부하였다. 피고는 원고 제공 자료로 특정 가능한 동영상은 삭제하였으나, 카페 주소만으로는 침해 게시물 특정이 불가능하므로 URL 등 게시물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달라고 답변하였다. 이러한 요청과 답변이 수차례 오간 후 원고는 부작위 방조로 인한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주장하며 피고에게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법원의 판단] 1심은 피고의 책임을 부정하였으나, 항소심은 부작위에 의한 방조책임을 인정하였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고의 방조책임을 부정하며 파기환송하였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운영하는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제공한 인터넷 게시공간에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게시물이 게시되었고 그 검색 기능을 통하여 인터넷 이용자들이 위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곧바로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저작권 침해 게시물에 대한 불법행위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중략) 갑이 을 회사에 회원들의 저작권 침해행위를 알리고 이에 대한 조치를 촉구하는 요청서를 보냈으나 그 요청서에 동영상을 찾기 위한 검색어와 동영상이 업로드된 위 사이트 내 카페의 대표주소만을 기재하였을 뿐 동영상이 게시된 인터넷 주소(URL)나 게시물의 제목 등을 구체적·개별적으로 특정하지는 않은 점 등 여러 사정에 비추어 보면, 갑이 을 회사에 동영상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게시물에 대하여 구체적·개별적으로 삭제와 차단 요구를 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달리 을 회사가 게시물이 게시된 사정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만한 사정을 찾을 수 없으며, 을 회사는 갑이 제공한 검색어 등으로 검색되는 게시물이 갑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인지 명확히 알기 어려웠고, 그와 같은 저작권 침해 게시물에 대하여 기술적·경제적으로 관리·통제할 수 있었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을 회사가 위 동영상에 관한 갑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게시물을 삭제하고 을 회사의 사이트에 유사한 내용의 게시물이 게시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후략)." [평석] 1. 문제의 제기 인터넷을 통한 권리 침해 사안에서 직접 침해자 외에 매개자인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도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그 책임 근거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방조에 의한 불법행위책임으로 이론구성된다. 즉, 서비스의 내용, 구체적인 행위 태양 등에서 온라인서비스제공자를 직접 침해자로 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작위 방조에 의한 공동불법행위를 근거로 책임이 인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일반적 사전적 감시의무는 인정되지 않으며, 피해자로부터 구체적 개별적 침해 사실 통보가 있고 기술적 경제적으로 게시물에 대한 관리·통제 능력이 인정되는 경우, 다시 말해 '인식가능성'과 '통제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한해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인터넷에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새로운 게시물이 등록되고 대량의 정보가 수시로 오고가기 때문에, 어느 범위에서 인식가능성과 통제가능성을 인정할지에 따라 실제 책임 범위나 의무 부담 수준이 크게 달라진다. 온라인서비스제공자 책임 요건에 관하여 대법원에서 여러 차례 판단되었지만, 구체적 요건에 대해서는 불명확한 부분이 남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상판결은 명확하고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2. 온라인서비스제공자 책임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 종래부터 대법원은 '피해자로부터 구체적·개별적인 게시물의 삭제 및 차단 요구를 받은 경우는 물론, 피해자로부터 직접적인 요구를 받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그 게시물이 게시된 사정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거나 그 게시물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음이 외관상 명백히 드러나며, 또한 기술적, 경제적으로 그 게시물에 대한 관리·통제가 가능한 경우'에는 책임이 인정된다고 일관되게 판시해 왔다(대법원 2010. 3. 11. 선고 2009다4343 판결 등). 그러나 구체적인 사안에서 어떠한 경우 책임이 인정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불명확하다. 특히 '피해자가 URL로 적시한 당해 특정 게시물'에 한하여 책임이 인정되는지 아니면 'URL로 특정하지 않았지만 피해자가 제공한 키워드 검색 등을 통해 사실상 발견할 수 있는 게시물'에까지 책임 범위가 확장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판례 중에서도, 예를 들어 명예훼손에 관한 대법원 2009. 4. 16. 선고 2008다53812 판결에서는 이를 긍정한 반면, 상표권에 관한 대법원 2012. 12. 4.자 2010마817 결정에서는 이를 부정하여 결과적으로 상반되는 판단을 내리기도 하였다. 2010년 중반 이후로 저작권법 등에 규정된 통지 및 차단조치(notice and takedown) 절차가 실무상 빈번히 이용되고 있다. 위 규정에 근거해 권리주장자는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URL 등으로 특정된 게시물의 복제·전송 중단을 요구할 수 있고,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당해 게시물에 대하여 즉시 차단조치를 취한다. 피해자가 URL 등으로 특정한 게시물 삭제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키워드 검색 등으로 도출되는 수많은 침해물을 직접 찾아내서 걸러내도록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절차가 해결 방안으로 사실상 정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상판결 사안에서 피해자인 원고는 URL 등으로 게시물을 특정하지 않고, 피고에게 직접 키워드 검색 등을 통해 침해물을 찾아내도록 요구하였다. 항소심 판시에 의하면 키워드 검색시 100건 이하 비교적 소량의 게시물이 검색되었던 것으로 파악되며, 항소심은 URL 제공 없이도 피고 스스로 침해 게시물을 발견·조치할 수 있다고 하며 그 책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고가 URL 등으로 구체적 개별적으로 특정하지 않은 게시물에 대해서는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키워드 검색 등을 통해서 도출되는 게시물 중 어느 게시물이 명백히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불법 게시물인지 곧바로 알 수 없고, 일반적인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규모, 권리침해 신고 건수, 업로드되는 동영상의 수, 동영상의 재생시간 등에 비추어 볼 때 일일이 검색을 통해 게시물을 찾아내 삭제하는 등의 조치를 하는 것은 경제적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이유이다. 즉, 대상판결은, 'URL 등으로 직접 특정하지는 않았으나 피해자가 제공한 키워드 검색을 통해 사실상 발견할 수 있는 게시물'에 대하여 인식가능성과 회피가능성을 모두 부정하며,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 범위에서 제외한 것이다. 대상판결은 종래 판례에서 모호하게 언급하였던 기준을 명확히 정리하였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을 엄격히 제한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3. 시사점 및 향후 전망 대상판결은 URL 등으로 침해물을 특정할 책임은 피해자에게 있고, 피해자는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어떠한 가치판단이나 확인절차 없이 침해물을 확정·차단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를 제공하여야만 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만약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키워드 검색을 통해 불법 게시물을 확인·판단한다면, 이는 일종의 검열이 될 위험이 있다. 또한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이상 불법성을 정확히 판별하기 어려우므로, 가능한 판단의 여지를 두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많은 정보가 오가는 인터넷 특성상 키워드 검색 및 검색 결과에 대한 확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과도한 경제적 부담을 가하는 것으로, 극단적으로는 서비스 존속 자체에까지 위협이 될 수 있다. 대량의 침해물 유통이 전제되는 웹하드나 P2P 등 특수한 유형의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아닌, 포털 사이트 등 일반적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나 정보유통의 자율성을 넓게 존중할 필요가 있으며, 피해자 입장에서도 URL 주소 등만을 특정한다면 언제든지 게시물 삭제 등 조치를 요구할 수 있으므로, 대상판결의 판단이 타당하다고 본다. 다만, 인격모독 게시물이나 불법촬영 음란물 등으로 그 불법성이 심각·명백하고, 게시물 확산이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어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적극적 조력 없이는 피해자 보호가 사실상 불가능한 정도에 이르는 등 극단적인 경우에는, URL 등 특정 없이도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책임을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상판결에서는 일반적인 경우를 상정하여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 성립요건을 엄격히 보았으나, 위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에까지도 대상판결의 책임 기준이 그대로 적용될지 의문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 기준을 다소 완화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타당할 것이다. 한편 대상판결은 저작권에 관한 사안으로,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이 주로 문제되는 상표권이나 인격권 등 다른 법익 영역 분쟁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신지혜 교수 (전북대 로스쿨)
저작권침해
인터넷
온라인서비스제공자
신지혜 교수 (전북대 로스쿨)
2019-11-18
노동·근로
행정사건
학습지교사의 근로자성 판단
- 대법원 2018. 6. 15 선고 2014두12598, 12604(병합) 판결 - I. 사건경위 학습지 개발 등의 사업을 하는 주식회사 甲은 학습지교사들인 乙 등과 위탁사업계약을 체결하고 학습지회원에 대한 관리, 모집, 교육을 하여 왔다. 위탁사업 수행의 대가로 甲은 乙 등 학습지교사들에게 수수료를 지급하였다. 위탁사업계약은 매1년 단위로 연장되어 왔는데, 이후 甲이 위탁사업계약을 해지하자 乙 등이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명령을 신청하였다. II. 판결 요지 대상판결은 노동법상 근로자성 인정여부에 관한 것이다. 우선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이나 명칭에 상관없이 근로제공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는 종래 판례법리를 재확인하고, 이 사건 乙 등 학습지교사에 대해 어느 정도 甲의 지휘·감독이 있었지만, 근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다. 한편 노무제공관계의 실질에 비추어 乙 등 학습지 교사에 대해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아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상 근로자에는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III. 평석 1. 학습지 교사의 근기법상 근로자성 판단 (1) 인격적 종속관계와 근기법상 근로자 근기법상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법 제2조 제1항 제1호). 이때 근로계약은, 독일 민법 제611a조에서 보듯 (i) 인격체인 인간의 노동력을 편입시켜 (ii) ‘도구’로 삼아 ‘사용’하는 것을 급부의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관계는 지시와 복종으로 구체화된다. 근로지시를 통해 근로자의 '행동(Taetigkeit)'은 장소, 시간, 방식 등에서 일일이 통제된다. 복종은 인사나 제재에 의해 담보된다. 이처럼 인격체인 사람을 도구로서 사용한다는 점에서, 근로계약은 ‘인격적 종속관계’를 초래한다. 근기법은 인격적 종속관계에 놓인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강행규범이다. 이에 착안하여, 대법원은 근기법상 근로자성 판단에서 “사용자의 업무내용 지정 여부와 업무수행과정에서의 상당한 지휘·감독 여부, 그리고 근무시간과 근로 장소의 지정 여부 등 다양한 지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한다. (2) 평가 대상판결은, (i) 학습지 회원에의 교육에 있어 그 시·종료시간은 물론 장소 등도 학습지교사와 회원 간의 협의로 정해질 뿐 甲사의 개입이 없으며, (ii) 위탁업무 수행 이후에는 자유로이 업무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시·복종관계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사실들이다. (iii) 취업규칙이 적용되지 않고, 승진과 징계 등 인사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편입이 없고, 지시에의 복종을 실현하는 장치도 없다는 의미다. (iv) 학습지도방식의 결정도 중요하다. 학습지도방식이 학습지교사의 자율과 능력에 맡겨져 있다는 것은 곧 업무수행에 따른 경영위험을 교사 스스로 부담한다는 뜻이다. 근로자는 도구로서 지시에 따를 뿐이므로 경영위험을 부담하지 않는다. 乙 등 학습지교사들에 대하여 근기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한 대상판결은 타당하다. 2. 학습지교사의 노조법상 근로자성 (1) 경제적 종속관계와 노조법상 근로자 노조법상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법 제2조 제1호). (i) 노무제공자가 그 대가로 얻어지는 금품에 주로 의존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ii) 당사자 간 힘의 대등성이 결여되면 이른바 경제적 종속관계(대상판결에서는 ‘경제적·조직적 종속관계’)가 발생한다. 노조법은 경제적 종속관계 하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를 보호의 대상으로 한다. 근로이든, 위임이든 노무제공형식은 상관없다. 이에 착안하여 대법원도 “노무제공자의 소득이 특정 사업자에게 주로 의존하고 있는지, 노무를 제공받는 특정 사업자가 보수를 비롯하여 노무제공자와 체결하는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지 등을 고려”하여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판단한다. (2) 평가 대상판결은, (i) 회사로부터 수령하는 수수료가 학습지교사들의 ‘주된’ 수입원이며, (ii) 사실상 당사자 관계가 전속적이면서도 지속적이고 (iii) 보수 등 위탁사업계약의 내용을 회사 측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점 등에 비추어 학습지교사가 경제적 종속관계 하에 있음을 적절히 확인하고,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였다. 3. 회색적 노무제공관계에서의 근로자성 판단 (1) 방법론 대상판결을 통해 노동법상 근로자성 판단의 방법론이 보다 명확해졌다. 노조법상 근로자성 판단은 당사자 간 ‘경제적 종속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편 근기법상 근로자성 판단을 위해서는 (i) 경제적 종속관계를 넘어 (ii) 노무제공(=급부목적)의 실질을 살펴 인격적 종속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2) 회색적 노무제공관계 오늘날 회사 등 단체와 개인사업자 사이의 위탁사무계약관계에는 대부분 근로적 요소와 그 이외의 요소(위임, 도급, 무명계약 등)가 혼재되어 있다. 대상판결에서도 학습지교사에 대한 업무처리지침이 있고, 표준필수업무가 시달되었으며, 관리구역도 회사가 배정하는 점 외에도 주3회 오전에 조회도 하고, 2-3개월에 한번씩 학습지교사들을 대상으로 집필시험을 치르도록 한 사실 등이 있었다. 이로 인해 방송연기자나 보험설계사, 채권추심인 등 다양한 ‘회색적’ 노무제공관계에서 근로자성이 다투어졌거나, 다투어지고 있다. (3) 경제적 종속관계와 위임지시의 결부 회색적 노무제공관계에서 지휘·감독의 존부를 판단함에 있어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근로계약상 지시는 사용자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근로자의 행동을 일일이 제어하는 수단이다. 위임지시는 다르다. 위임계약에서 확정된 사무의 세부내용과 수행방식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제시하는 수단이다. 양자는 개념상 명확히 구별된다. 문제는 위임지시가 경제적 종속관계와 결부될 때다. 위임지시가 ‘경제적 약자’에게 행해지면 일견 근로 지시처럼 비춰질 수 있다. 대상판결에서 학습지교사에 대한 업무처리지침, 표준필수업무 시달, 오전 조회, 집필시험 실시 등의 사실 등이 그런 예다. 미리 정해진 위탁업무의 내용과 방식 그리고 당사자 적격성에 관한 것이지만, 학습지교사와 회사 간 경제적 종속관계가 맞물리면서 모호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 간 경제적 종속성 판단과 노무제공의 실질에 대한 판단은 구별되어야 한다. ‘경제적 약자’의 노무제공이라고 해서 곧 ‘근로의 제공’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상판결은 이 점을 잘 포착하고 있다. 경제적 종속성과 결부되어 단지 근로와 유사하게 보이는 사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휘·감독이 있다고 하면서, 학습지교사의 근기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했다. 최근 방송연기자 사례(대법원 2018.10.12.선고2015두38092 판결)도 마찬가지다. ‘연기’는 연기자의 일정한 재량과 능력에 맡겨질 수밖에 없는 것인 바, 그 속성상 근로로 볼 수 없다. 이때 방송연기자가 경제적 약자로서 경제적 종속관계 아래에 놓인 탓으로, 방송사가 방송연기자의 배역을 지정하고, 연출감독자가 연기 시간과 장소 등을 정한 사실 등이 마치 근로지시처럼 보일 뿐 그 실질을 근로관계로 평가할 수는 없다. 대법원이 방송연기자의 노조법상 근로자성은 인정하면서도 근기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한 이유다. (4) 경제적 약자의 노무제공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 방식 노조법상 근로자성 판단은 당사자 사이의 경제적 종속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급부목적이 근로의 제공인지 여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대상판결도 경제적 종속관계에 있는 노무제공자의 보호를 위해 집단적 단결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헌법 제33조의 취지임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학습지교사, 텔레마케터, 보험설계사, 생명보험사 지점장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수탁개인사업자들이 회사와의 관계에서 경제적 종속관계 아래 놓여 있음을 고려할 때 이번 판결이 주는 의미는 사뭇 크다. 한편 근기법상 근로자성 판단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 경제적 종속관계와 인격적 종속관계를 준별하면서, 제공되는 노무의 실질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경제적 종속관계에 결부되어 외형상으로만 근로로 보이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계약상 급부목적인 업무의 속성을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근로’를 통해 위탁업무가 수행되도록 하는 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하거나 오히려 비효율적인 경우가 있어서다. 또한 계약사항에 대한 제재나 불이익의 결부 여부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인사 제재나 불이익이 결부되지 않으면 근기법상 근로자로 평가하기 어렵다.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인격적 지배관계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노무 제공방식을 지향할 수도 있다. 이를 간과할 경우 자칫 계약의 실질은 물론이고 당사자의 의사에도 부합하지 않는 판단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권혁 교수 (부산대 로스쿨)
근로자
학습지교사
근로자성
위탁계약
권혁 교수 (부산대 로스쿨)
2019-04-15
상사일반
골프장 부동산 공매에서 회원 계약 승계 인정 여부
- 대법원 2018. 10. 18. 선고 2016다220143 전원합의체 판결 - 1. 사실관계 가. 원고들은 A회사에게 회원보증금을 내고 이 사건 골프장에 회원으로 가입한 자들이다. 나. A회사는 이 사건 골프장을 건설하여 운영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B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에 대한 대출금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B은행과 사이에 이 사건 신탁부동산(골프장 부지 및 건물 5동)에 대한 담보신탁계약을 체결하고 B은행에게 신탁을 원인으로 하는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여 주었다. 다. 그 후 A회사가 대출금채무의 이행을 지체하자 B은행은 이 사건 신탁부동산에 대한 공매절차를 진행하였는데, 위 공매절차에서 낙찰자로 선정된 소외인이 매매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자 B은행은 피고1과 수의계약 방식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피고1에게 이 사건 신탁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여 주었다. 라. 피고1은 피고2 등과 피고3을 우선수익자로 하여 이 사건 골프장 부지에 관하여 담보신탁계약을 체결하고, 피고2에게 위 골프장 부지에 관하여 신탁을 원인으로 하는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여 주었다. 마. 원고들은 피고1을 상대로는 입회보증금반환채무의 승계를 주장하면서 그 보증금의 반환을, 피고2와 피고3을 상대로는 위 골프장 부지에 관한 담보신탁계약이 사해행위에 해당함을 이유로 그 취소와 원상회복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2. 이 사건의 쟁점 및 대법원의 판단 이 사건의 쟁점은 체육필수시설에 관한 담보신탁계약이 체결된 다음 그 계약에서 정한 공매나 수의계약에 의해 체육필수시설이 일괄하여 이전되는 경우 이것이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체육시설법’이라고만 한다) 제27조 제2항 제4호의 특정승계 사유에 해당하여 회원에 대한 권리·의무도 승계된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이다. 대상판결은 그 판시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담보신탁을 근거로 한 공매나 수의계약이 체육시설법 제27조 제2항 제4호에서 정한 절차에 해당한다고 보아 입회보증금반환채무의 승계를 인정하였다. 3. 평석 체육시설법 제27조는 아래와 같은 규정을 두어 체육필수시설의 소유권이 바뀌는 일정한 경우 회원에 대한 권리·의무를 승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27조(체육시설업 등의 승계) ① 체육시설업자가 사망하거나 그 영업을 양도한 때 또는 법인인 체육시설업자가 합병한 때에는 그 상속인, 영업을 양수한 자 또는 합병 후 존속하는 법인이나 합병(合倂)에 따라 설립되는 법인은 그 체육시설업의 등록 또는 신고에 따른 권리·의무(제17조에 따라 회원을 모집한 경우에는 그 체육시설업자와 회원 간에 약정한 사항을 포함한다)를 승계한다.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절차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령으로 정하는 체육시설업의 시설 기준에 따른 필수시설을 인수한 자에게는 제1항을 준용한다. 1. 「민사집행법」에 따른 경매 2.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의한 환가(換價) 3. 「국세징수법」·「관세법」 또는 「지방세징수법」에 따른 압류 재산의 매각 4. 그 밖에 제1호부터 제3호까지의 규정에 준하는 절차 체육시설법 제27조 제2항에서 부동산신탁에 따른 공매나 수의계약의 경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이를 동법 제2항 제4호의 특정승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하여 견해가 대립하여 왔는데, 대상판결은 이에 대한 명시적인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고, 그 결론 역시 타당하다고 보인다. 첫째, 법률규정을 해석하기 위하여는 입법 목적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체육시설법은 1994년 1월 7일 법률 제4719호로 전부개정되며 제30조 제1항에서 체육시설업의 승계에 대한 규정을 두었고, 2003년 5월 29일 법률 6907호로 일부개정되며 동조 제2항을 신설하여 자연인의 사망, 법인의 합병, 영업의 양도·양수 외에 ‘필수시설을 인수한 자’도 체육시설업의 등록·신고에 따른 권리·의무를 승계하도록 그 범위를 확정하였으며, 위 규정은 2007. 4. 11. 법률 제8349호로 전부개정되며 제27조로 개정되었는데, 그 기본적인 취지는 체육시설의 회원 등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법률 제6907호 일부개정 이유), 거래의 안전을 해칠 수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부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법제처 역시 2010. 12. 30. 유관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질의에 대하여 ‘부동산담보신탁에 의한 공매절차 역시 체육시설법 제27조 제2항 제4호 소정의 절차에 해당한다’고 유권해석을 하였으며(안건번호 10-0419), 대법원 역시 이러한 취지를 감안하여 체육시설법 제27조 제1항의 영업양도를 폭넓게 인정하여 왔다(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5다5379 판결, 대법원 2009. 7. 9. 선고 2007다50113 판결 등 참조). 둘째, 골프장 등 체육시설법상의 체육시설의 조성 과정에서 자금조달의 일환으로 신탁제도가 많이 활용되고, 이에 따라 신탁법에 의한 공매절차를 통하여 체육시설이 처분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회원제 골프장의 경우 통상 골프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회원을 모집하게 되고(체육시설법 제17조), 회원들이 낸 입회금이 골프장 건축에 사용되고 있는데, 부동산신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회원들이 입회금을 반환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사실상 상실하게 하는 것은 회원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며, 이러한 문제는 체육시설업자가 체육시설 조성에 투입하는 자기자본의 비율을 높임으로써 해결할 문제이지 회원들의 권리를 제한하며 해결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셋째, 신탁법상의 담보신탁계약에 따른 공매나 수의계약의 경우를 체육시설법 제27조 제2항 제1 내지 3호의 담보권 실행 등을 위한 경매절차 등과 구분하여야 할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 대상판결의 반대의견은 절차 자체에 대해 법률에 구체적 규정을 두고 있고 법원 등이 그 절차를 주관하는 등의 근거를 갖추었을 때 체육시설법 제27조 제2항 제4호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나 같은 항에서 명시적으로 이와 같은 요건을 요구하지 않고 있고, 체육시설법 제27조 제2항 제1 내지 3호까지의 절차에서도 이미 임의매각이나 수의계약을 허용하고 있으며, 체육시설에 관한 담보신탁은 위탁자가 자신의 소유권을 수탁자에게 이전하는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하고, 채무자인 위탁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채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채권자의 의사에 따라 신탁재산의 공매 등과 같은 강제환가절차를 거치게 된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저당권과 유사한 기능을 하고 있다. 넷째, 대상판결에 따라 거래의 안전이 침해될 염려도 없다. 체육필수시설을 부동산담보신탁에 따른 공매나 수의계약에 의해 취득하려는 자는 회원권, 입회금반환채무의 존재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체육시설법 제17조, 같은 법 시행령 제17조, 제18조, 같은 법 시행규칙 제17조의2, 제19조는 회원모집의 시기, 방법, 절차와 모집 총금액, 회원모집계획서의 제출, 회원모집결과의 보고 등에 관하여 정하고 있으므로, 체육필수시설을 인수하려는 자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의한 정보공개청구나 체육시설에 대한 실사 등을 통하여 필요한 정보를 확인한 뒤에 손익을 미리 계산하여 인수가격을 정할 수 있다. 이에 대법원이 체육시설법 제27조 제3항, 제1항에 의하여 보호받는 회원은 체육시설법 제17조 등 관련 법령이 정한 소정의 절차에 따라 유효하게 회원의 자격을 취득한 자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대법원 2004다10213 판결, 대법원 99다20513 판결 참조)까지 감안하면, 체육필수시설의 인수자가 예측할 수 없는 손해를 입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체육필수시설에 관한 담보신탁계약이 체결된 다음 그 계약에서 정한 공매나 수의계약으로 체육필수시설이 일괄하여 이전되는 경우에 그 회원에 대한 권리·의무가 승계된다고 본 대상판결은 타당하다. 다만, 입회보증금에 대한 반환을 염두에 두지 않고 대출을 실행한 금융기관이나 입회보증금반환채무의 승계를 고려하지 않고 체육필수시설을 인수한 자(이 사건의 경우 인수대금은 약 14억원이나 승계되는 입회보증금반환채무는 약 500억원에 달한다), 이미 신탁공매처분된 골프장 회원들의 반발이 있을 것으로 보이고, 이로 인한 후속 분쟁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체육시설법 제27조 제2항 제4호가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부동산담보신탁의 경우 대상판결로 정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다른 사례를 놓고 동일한 다툼이 일어날 여지는 여전히 있다. 체육필수시설의 인수자에게 회원에 대한 권리·의무를 승계시키는 것은 인수자, 다른 채권자, 담보권자, 우선수익자 등의 이익을 해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다른 사안에서도 동일한 결론을 유지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결국 입법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를 사전에 근원적으로 해결할 것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체육시설법 제27조 제2항 제4호와 같은 포괄적 규정을 삭제하고, 동항 제1 내지 3호와 같이 회원에 대한 권리·의무를 승계하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입법 형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인다. 조건주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골프장
공매
체육시설의설치및이용에관한법률
입회보증금반환청구
조건주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2018-11-15
형사일반
비트코인의 법적성질과 몰수가능여부
- 수원지법 2018. 1. 30. 선고 2017노7120 판결 - 1. 문제제기 최근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의 각종 블록체인기술을 기반으로 한 이른바 가상화폐가 다수 유통되면서 사기, 법적성질, 투기,환치기, 자금세탁 등의 여러 용도로 사용이 되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 , 법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최근 비트코인의 법적성질과 몰수 가능여부, 비트코인의 법적처리여부에 대한 판결을 최초로 한 수원지방법원 2018. 1. 30. 선고 2017노7120 판결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평석을 하고자 한다. 해당 사건은 음란물 등을 제공한 사건이지만 이 판례 평석에는 주로 비트코인에 초점을 맞추어 사실관계 소개 및 판례 평석을 하고자 한다. 2. 사실관계( 1심인 수원지법 2017고단2884 사건) 이 사건은 피고인은안 모 씨라는 사람이 음란성인사이트를 만들어서 음란한 영상 등을 배포하고, 그 사이트 등에 도박사이트나 불법 스포츠토토사이트를 홍보하는 배너를 만들어서 광고를 하여 그들 사이트를 홍보하여 아동 및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및 국민체육진흥법위반, 도박개장 방조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안이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범행을 전부 인정하여 자백을 하였고 범행자체에 대한 특별한 다툼은 없었습니다. 다만 음란동영상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컬쳐랜드 상품권이나 비트코인을 받았으며, 또한 도박사이트 광고로 받은 비트코인에 대하여도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에 관한법률에 근거하여 이를 몰수할지 있는지가 쟁점이 되었다. 3. 제1심 판결(수원지법 2017고단2884 판결) 이 사건 1심 판결은 위 비트코인이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에 관한법률상 몰수대상이 되는지 여부에 대하여 피고인이 보유한 216비트코인이 위 비트코인 중에서 범죄수익에 해당하는 부분을 특정하기 힘들고, 비트코인은 현금과는 달리 물리적인 실체가 없이 전자화된 파일의 형태로 되어 있어 몰수하기에 적절하지 아니하고, 위 범죄 수익을 추징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여 몰수부분에 대하여는 기각을 한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에 대하여 위 비트코인을 추징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로 받은 재산상이익이나 범죄수익에 해당하고, 위 비트코인이 특정현존하며 재산상 가치를 가지므로 몰수하는 것이 합당하다며 항소를 한 바 있다. 4. 항소심 판결(수원지법 2017노7120) 항소심 판결은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에 관한법률 제2조제1호, 제2호, 제8조제1항 제1호 및 별표를 인용하며, 동 법에서의 몰수대상은 물건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재산’으로 확장이 되었다. 재산이란 사회통념상 경제적 가치를 인정되는 이익일반을 의미한다. 그리고 비트코인은 게임머니와 유사하고 금전으로 거래가 되며, 미국, 독일, 호주, 프랑스에서도 이를 몰수한 사례가 존재한다고 하여 원심을 파기하고 비트코인의 몰수판결을 한바 있습니다. 다음은 재판부에서 인정한 비트코인의 특성이다. ① 가상화폐(비트코인) 는 ‘자연인 또는 법인이 교환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제적인 가치의 디지털 표상으로 그 경제적인 가치가 전자적으로 이전, 저장 또는 거래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비트코인은 2009년경 탄생한 비트코인 단위로 거래되는 암호화된 디지털 가상화폐로서, 기존의 가상화폐와 달리 발행이나 거래의 승인 등을 담당하는 일정한 발행기관이나 감독기관이 존재하지 않는 대신 P2P(Peer-To-Peer) 네트워크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여 거래 기록의 보관, 승인 등을 네트워크 참가자들이 공동으로 수행하는 점에 그 특이성이 있다. ② 비트코인의 거래자는 자신의 비트코인을 디지털 공간에 구현된 전자지갑에 보관할 수 있으며, 보관 중인 비트코인은 일종의 계좌번호에 해당하는 ‘공개주소’와 비밀번호에 해당하는 ‘비밀키’를 통해 거래된다. 거래자가 수취자의 ‘공개주소’와 이체할 비트코인의 액수를 입력하면, 수취자는 ‘비밀키’를 입력함으로써 위 비트코인을 수취하게 되는데, 이러한 모든 비트코인 거래는 약 10분마다 생성되는 ‘블록(block)’에 기록되어 기존 ‘블록’에 덧붙여짐으로써 확정되며(거래가 미확정된 상태에서 수취자는 이체 받은 비트코인을 사용할 수 없다), 이러한 거래기록의 집합을 ‘블록체인’이라 한다. 비트코인의 모든 거래는 일종의 공개 장부인 위 ‘블록체인’을 통해 네트워크상에 기록되어 공유되므로 비트코인의 복제 내지 이중사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③ 비트코인은 비트코인 거래기록들을 이용하여 일종의 수학문제를 푸는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채굴’을 통해 생성된다. 채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채굴과정에서 비트코인 네트워크 시스템의 운영에 기여하게 되며, 채굴에 성공하는 자에게는 새로 발행된 비트코인이 주어진다. 비트코인은 총 2100만 비트코인까지만 생성될 수 있도록 자체 설계되어 있고, 이에 따라 채굴의 성공에 따른 비트코인 보수도 계속하여 감소하고 있다. ④ 비트코인은 앞서 본 개별적인 거래 내지 채굴 작업을 통해 획득하는 것 외에도 거래소를 통해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며, 거래소의 중개를 통해 수요와 공급의 상대적인 규모에 의해 정해진 교환비율에 따라 법정통화로 비트코인을 구입할 수 있다. 5.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몰수의 대상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조직범죄·해외재산도피범죄 등 특정범죄에 의하여 발생한 범죄수익을 합법적인 수입으로 가장하거나 이를 은닉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한편, 당해 범죄수익의 몰수·추징에 관하여 형법 등에 대한 특례를 규정함으로써 반사회적인 범죄행위를 사전에 예방하고 범죄를 조장하는 경제적 요인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제정되었는바, 이러한 정책적 고려에서 몰수의 대상을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물건’에 제한하지 않고 ‘재산’으로 확장하였다. 한편,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은닉재산’을 ‘몰수·추징의 판결이 확정된 자가 은닉한 현금, 예금, 주식, 그 밖에 재산적 가치가 있는 유형·무형의 재산’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몰수의 대상이 되는 ‘재산’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바(위 시행령 제2조 제2항), 이에 따르면 결국 범죄수익을 이루는 ‘재산’이란 사회통념상 경제적 가치가 인정되는 이익 일반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6. 판단 이 사건에서 압수된 비트코인의 경우. ① 예정된 발행량이 정해져 있고 P2P 네트워크 및 블록체인 기술에 의하여 그 생성, 보관, 거래가 공인되는 가상화폐로서, 무한정 생성·복제·거래될 수 있는 디지털 데이터와는 차별화되는 점, ② 온라인 게임업체가 발급하는 것으로 온라인 게임상에서 게임 아이템을 거래하는 데 사용하는 ‘게임머니’도 ‘재산적 가치가 있는 모든 유체물과 무체물’을 의미하는 구 부가가치세법상의 ‘재화’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므로(대법원 2012. 4. 13. 선고 2011두30281 판결 참조), 물리적 실체가 없이 전자화된 파일의 형태로 되어있다는 사정만으로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는 점, ③ 수사기관은 피고인이 진술한 전자지갑의 주소 및 ‘비밀키’를 근거로 피고인이 보유하고 있던 비트코인을 특정한 다음, 위 비트코인을 수사기관이 생성한 전자지갑에 이체하여 보관하는 방법으로 압수하였고, 위와 같은 이체기록이 블록체인을 통해 공시되어 있으므로, 비트코인의 블록체인 정보가 10분마다 갱신된다는 점만으로는 압수된 비트코인의 동일성이 상실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④ 현재 비트코인은 거래소를 통해 일정한 교환비율에 따라 법정화폐로 환전하는 것이 가능하고, 법정화폐 대신 비트코인을 지급수단으로 인정하는 비트코인 가맹점이 존재하는 등 현실적으로 비트코인에 일정한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다양한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 ⑤ 미국 뉴욕지방법원이 2014년경 마약 밀거래 사이트인 ‘E’의 서버에서 위 사이트의 운영을 통해 취득한 것으로 확인된 14만4000비트코인을 몰수하여 경매를 통해 환가 처분한 다음 국고로 귀속하였던 사례가 있고, 그 밖에 독일, 호주,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비트코인을 몰수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는 점, ⑥ 피고인도 이 사건 음란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회원들부터 비트코인을 지급받는 대신 회원들에게 해당 비트코인의 가치에 상응하는 포인트를 지급함으로써 이 사건 음란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회원들로부터 취득한 비트코인 중 일부를 현금으로 환전하여 상당한 수익을 얻었던 점, ⑦ 압수된 비트코인을 몰수하지 않은 채 피고인에게 환부하는 것은, 사실상 피고인으로 하여금 이 사건 음란사이트 운영을 통해 얻은 이익을 그대로 보유하게 하는 것인바, 이는 앞서 살펴 본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제정취지에 비추어 보더라도 매우 불합리한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에서 압수된 비트코인은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산’에 해당하여 몰수의 대상이 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정준모 변호사 (법무법인 다빈치)
비트코인
몰수
가상화폐
범죄수익
정준모 변호사 (법무법인 다빈치)
2018-03-13
헌법사건
강해룡 변호사(서울회)
헌법재판소의 재판부구성에 관한 법리
- 헌법재판소 2017.3.10. 결정 2016헌나1 사건- 1. 기초사실 2017년 3월 13일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임기만료로 퇴임한 시점에서는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이 7인 뿐이다. 국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2016년 12년 9일에 의결했다. 그리고 박한철 헌법재판관의 임기만료일은 2017년 1일 31일이고,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만료일은 2017년 3월 13일이다. 그런데 그 간에 후임 재판관이 임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즉 재판부구성이 안 된 상태에서 2017년 3월 10일에 이르러 8인의 재판관 이름으로 2016헌나1 대통령탄핵사건의 심판결정을 선고했다. 왜 2017년 1월 31일 또는 2017년 3월 10일까지도 후임재판관이 임명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위 사건에서 재판부구성이 부적법하다는 피소추인 측의 본안 전 항변이 있었고 이에 대한 판단을 했으므로 그 내용을 보기로 한다. 판시요지는 다음과 같다. 2. 8인 재판관에 의한 탄핵심판 결정 가부 피청구인은, 현재 헌법재판관 1인이 결원된 상태여서 헌법재판소법 제23조에 따라 사건을 심리할 수는 있지만 8인의 재판관만으로는 탄핵심판 여부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없고, 8인의 재판관이 결정을 하는 것은 피청구인의 ‘9인으로 구성된 재판부로부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헌법 제111조 제2항과 제3항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가 선출하는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 등 모두 9인의 재판관으로 헌법재판소를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입법ㆍ사법ㆍ행정 3부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헌법재판소의 구성방식에 비추어 볼 때, 헌법재판은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재판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 중 결원이 발생한 경우에도 7명 이상의 재판관이 출석하면 사건을 심리하고 결정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수 없다는 견해를 따르면 헌법재판소장의 임기 만료로 발생한 현재의 재판관 공석 상태를 종결하고 9인재판부를 완성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이와 같이 헌법재판관 1인이 결원이 되어 8인의 재판관으로 재판부가 구성되더라도 탄핵심판을 심리하고 결정하는 데 헌법과 법률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탄핵의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결원 상태인 1인의 재판관은 사실상 탄핵에 찬성하지 않는 의견을 표명한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므로, 재판관 결원 상태가 오히려 피청구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피청구인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이 부분 피청구인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3. 본안전 항변의 취지 이 사건에서 피소추인은 “8인의 재판관만으로는 탄핵심판의 인용여부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없고, 8인의 재판관이 결정을 하는 것은 피소추인의 ‘9인으로 구성된 재판부로부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8인의 재판관이 결정을 해도 “피소추인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며 8인의 재판관은 피소추인의 본안 전 항변으로 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아니했다. 그러나 위 피소추인의 주장을 본안 전 항변으로 권리침해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보고 “권리가 침해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한 판단은 본안전항변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한 결정인 것 같다. 피소추인의 본안 전 항변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은 재판관 전원으로 구성되는 재판부에서 관장”하는 것이고, 재판부의 구성은 재판관 9인으로 구성하는데 그 9인은 3권분립의 이념에 따라 ‘재판관 3. 3. 3.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판관 7인 또는 8인으로는 재판부 구성을 할 수는 없다는 취지의 항변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재판부구성을 재판관 ‘3. 3. 2.’ 이거나 ‘3. 3. 1.’또는 ‘3. 2. 2.’로 할 수는 없다는 항변이다. 헌법에서는 ‘헌법재판소는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 한다’라고 규정했고(제111조) 헌법재판소법에서는 ‘헌법재판소의 심판은 재판관 전원으로 구성되는 재판부에서 관장 한다’라고 규정했다.(헌재법 제22조 제1항) 그러므로 여기에 다시 헌재법으로 ‘재판관 7인 이상이면 재판부를 구성할 수 있다’는 규정은 만들 수 없으며 또 그러한 취지로 ‘법의 해석’을 할 수도 없다는 주장이다. 이는 마치 법원의 합의재판부는 법관 3인으로 구성하는 것이므로 법관 2인으로는 합의부구성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4.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는 의미 이 사건 심판결정이유에서 8인의 재판관은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은 7명 이상의 재판관이 출석하면 사건을 심리하고 결정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헌재법은 “사건을 심리 한다”라고 했을 뿐 ‘결정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따라서 재판관 7명만으로도 재판부를 구성할 수 있고 그리하여 헌법재판소의 효과위사(결정 주문)를 결정하고 이를 대외에 표시(결정 선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건을 심리 한다”는 의미는 합의제기관인 재판부의 효과의사를 결정하기까지의 전 단계에서 증인신문이나 기타 증거조사 등을 하는 심리화동을 한다는 의미이다. 효과의사(결정 주문)를 결정하고 기관 외부에 대한 의사표시(결정 선고)를 하는 주체는 권리능력이 있는 9인의 재판부가 해야 한다. 성원미달로 재판부가 구성되지 않더라도 7인 이상이면 재판관의 이름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또한 이 사건 심판결정이유에서는 ‘헌법재판소장이 임기만료로 퇴임하여 공석이 발생한 현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가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수 없다는 견해에 따르면 9인 재판부를 완성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헌재소장은 ‘9인 재판부’의 구성원이 아닐 뿐 아니라 헌법재판소장이 궐위되거나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다른 재판관이 그 직무를 대행하므로(헌재법 제12조) 9인의 재판부 구성과는 무관한 일이다. 따라서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가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논란은 아무런 실익이 없다. 그런데 재판관의 경우는 다르다. 재판관은 그 임기가 만료되거나 정년이 도래하는 경우에는 임기만료일 또는 정년도래 일까지 후임자를 임명해야하므로(헌재법 제6조 제3항) 재판관이 임기만료로 퇴임하는 경우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상당기간 공석이 생길 여지는 없다. 그리고 재판관의 경우는 공석이 생기더라도 그 직무를 대행할 사람이 없으므로 재판관의 임기만료일까지에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가 그 후임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은 직무를 유기한 것이다. 이점에 관하여는 법률신문(2017. 2. 13.자)에 필자가 기고한 “헌법재판소는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 한다”는 제하의 논문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는 후임자를 선임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선임할 의무가 있으므로 이를 해태하면 직무유기가 된다는 법리를 설명한바 있다. 5. 심판정족수 헌재법은 제23조(심판정족수)제2항 단서에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한다”고 했는데 이는 재판부의 구성원인 재판관 과반수의 찬성이 아니고, 재판관 9인의 3분지 2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3분지 2 이상’이라고 하지 않고 '6명 이상'이라고 했다 해서 이를 재판관이 7명이면 7분의6, 8명이면 4분의 3의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라고 본다면 이는 그 문언의 자구해석에는 맞더라도 법의 올바른 해석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예컨대 회원 100명 중 과반수(51명)이상의 참석과 참석회원 과반수(26명)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하는 경우, 참석회원이 30명으로 성원미달이더라도 그 중 26명이상이 찬성하면 의결할 수 있다고 할 수는 없다. 6. 맺는 말 헌법재판소는 앞으로도 ‘법률의 위헌결정’, ‘탄핵의 결정’, ‘정당해산의 결정’ 또는 헌법소원에 관한 인용결정(認容決定)‘등의 다양한 심판을 해야 하므로 조속히 궐위된 재판관을 임명해 9인의 재판부가 구성돼야 한다. 이에는 국회의 인사청문을 거쳐야하므로 국회도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
탄핵소추
재판관
대통령탄핵
강해룡 변호사
2017-04-07
군사·병역
오재창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
국제인권법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 근거
- 광주지방법원 2015노1181, 1535, 1668 판결 -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판결 - 1. 사실관계 및 항소의 요지 피고인들은 원심에서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수령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3일이 지나도록 입영하지 아니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이하 ‘이 사건 법률’이라고만 함) 위반으로 유죄선고를 받았는바, 이에 대하여 피고인들은 우리나라가 가입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규약’이라고만 함) 제18조 및 헌법 제19조에 의한 양심의 자유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였고, 이러한 행위는 이 사건 법률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함에도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본 원심은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는 취지로 항소를 하였다. 2. 관련 대법원 판결들의 요지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관한 사건에 관하여 2004년 “헌법 제19조(양심의 자유), 제20조(종교의 자유)가 보호하는 자유는 헌법 제29조 제1항(국방의 의무) 및 제37조 제2항에 의하여 제한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헌법상 허용된 정당한 제한이어서 이 사건 법률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피고들이 주장하는 양심의 자유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하면서 규약 제18조 규정도 헌법 제19조(양심의 자유), 제20조(종교의 자유)의 해석상 보장되는 기본권의 보호 범위와 동일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규약의 위 조항으로부터 이 사건 법률조항의 적용을 면제받을 수 있는 권리가 도출된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04. 7. 15. 선고 2004도2965 전원합의체 판결), 2007년 “규약 제18조는 물론 규약의 다른 조문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고 규약의 제정 과정에서 규약 제18조에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포함시키자는 논의에 대하여 관여 국가들의 의사가 부정적인 점 등을 근거로 규약 제18조로부터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도출될 수 없다”고(대법원 2007. 12. 27. 선고 2007도7941 판결) 각각 판시하였다. 3. 국제인권법의 국내법 적용에 관한 항소심(대상판결)의 판단의 요지 및 근거 대상판결은 우리 헌법 제6조 제1항의 국제법 존중주의원칙에 따라 국가가 체결 공포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가입한 자유권규약 및 그 선택의 정서상 보장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아야 하고 자유권규약 제18조는 특별한 입법 조치 없이 우리 국민에 대하여 직접 적용되는 법률에 해당한다는 것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의견인 점 등을 종합하여 이 사건 법률상의 ‘정당한 사유’를 해석함에 있어서 규약 제18조가 일종의 특별법으로서 그 법원(法源), 즉 재판규범이 된다고 할 것이라고 전제하였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자유권규약위원회가 2006. 11. 3. 이후 5차례 채택한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제기한 4건의 사건에서 연속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가 규약 제18조에 의하여 보호된다는 의견을 밝혀 왔는바, 국제인권규약에 대하여는 제정 당시 문헌에 구속되지 않고 시대정신에 맞게 이를 해석하여야 한다는 소위 ‘살아 있는 문서이론’을 고려하여 명문의 규정이 없다고 하여 기본권을 도출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자유권규약위원회 자체의 규약에 관한 해석은 ‘상당한 설득적 권위’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결론적으로 대상판결은 동 위원회의 제18조에 관한 해석이나 유럽인권재판소의 2011년 바야탄 사건의 판단에서 관련 인권규약에 명문으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규정하지 않았어도 해석상 이를 권리로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상 신의성실원칙에 따라 국내 사법부도 국제조약에 대한 이행의무가 있으므로, 결국 규약 제18조 규정과 동 위원회의 위 규정에 관한 해석이 헌법 제6조 제1항에 따라 이 사건 법률의 정당한 사유를 해석함에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사건 법률의 정당한 사유에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4. 평석 (1) 전통국제법의 한계 및 이에 따른 사법부 소극주의 국제인권법은 전통 국제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특히 1945년 2차 세계대전 후 도입되었다. 즉 전통 국제법은 전적으로 주권국가들의 행위만을 규율하고 다른 국가와 사이의 “양자적” 성격의 법률관계를 토대로 조약을 통하여 상호 권리, 의무를 주고받는 “상호적” 성격, 그 조약위반에 대한 집행도 해당 조약위반으로 피해를 본 상대 국가에게만 인정되는 “주관적” 성격이 특징이었다. 전통 국제법은 그 단점으로 국제법상 의무위반 집행을 각국 스스로 해결하여야 하기 때문에 약소국가는 강대국의 국제법상 위반에 제대로 집행을 할 수 없게 되고 다른 국가들에 의한 침략, 인권침해로 인하여 자국 내지 타국내의 인간이 수백만 명 단위로 전쟁으로 죽는 등 인간의 존엄성이 엄청난 규모와 심각한 정도로 훼손된 경우에도 조약을 맺지 않은 국가들은 이에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국제적 차원에서 전통 국제법은 가치몰각적(價値沒却的) 국제법이 되고 말았다. 나아가 전통 국제법은 국가의 국제법상 권리, 의무를 해석하고 집행함에 있어서 조약 또는 국내법상 규정의 해석을 자구 그대로 존중하는 소위 실증법적 태도, 자구중심의 해석에 충실할 수밖에 없어 결국 사법부의 국제법의 국내적용 시 소극주의로 귀착되었다. (2) 국제인권법 제정 목적에 따른 국내법 적용· 해석원칙 - 사법부 적극주의 국제인권법은 전통 국제법에서 단지 객체 또는 대상에 불과했던 개인, 인간의 존엄성 그 자체 혹은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인정되고 보호되어야 하는 가치를 국제법 차원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고안되었기 때문에 국제인권법상 인권은 본질적으로 국가의 동의나 국가의 조약체결에 의하여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개념을 전제로 하였다. 나아가 국제인권법(조약)에 따른 국가의 인권보장의무는 전통 국제법상 체약국가의 다른 조약 가입국에 대한 양자적, 상호적, 주관적 성격이 아니고 국제공동체(국제연합 등)의 평화, 인권 등 공공질서 내지 기본가치를 공동체를 대신하여 수호하는 ‘객관적’, ‘통합적’ 성격을 지닌다고 본다. 위와 같은 국제인권법의 도입목적, 성격에 따라 국제인권법은 사법부가 국제인권법 또는 조약 조문상 인권내용이 불분명한 경우에도 그 인정을 위하여 관련 조약 내용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입장, 달리 말하면 탈실증법적 태도, 자구 중심의 해석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인권친화적 해석을 요청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법부가 국제인권법을 국내법에 적용·해석하는 경우 적극적, 발전적 태도를 취할 것을 요청한다. 다만 현재 국제공동체의 발전단계 내지 모습이 국내공동체(국가) 또는 발전된 공동체(유럽연합)에 비해 미약하고, 특히 우리나라가 가입하고 있는 국제연합(유엔)차원의 국제공동체는 국제인권법을 창설할 당시부터 국제인권법에 따른 국가의 인권보장의무의 국내적 효력인정 여부에 관하여 즉시 국가에 대해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하지 않고 해당 권리의 보편적 인정 여부, 그 피해자의 숫자, 피해의 심각성 정도, 각 회원국의 국내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해당 국가가 이를 점진적, 발전적으로 이행, 집행하는 재량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3) 대법원의 국제인권조약의 해석에 관한 문제점 대법원은 위와 같은 2004년, 2007년 판결에서 규약 제18조 조문에 명문으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권리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국내법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계속 판시함으로써 자유권규약 등 국제인권규범의 국내적용·해석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전통 국제법에 따른 실증법적 태도, 자구해석에 충실한 태도, 나아가 사법부 소극주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대법원은 국제인권법의 국내법 적용에 관한 해석원리, 즉 국내법상 권리처럼 명문 규정의 구체적 근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관련 인권이 국제공동체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지 여부 등을 고려하여 적극적, 발전적으로 해석하여야 하는 원칙, 헌법 제6조의 국제법 존중주의 원칙을 간과 내지 위반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5. 결론 대상판결은 유럽인권재판소에서 널리 인용되고 있는 ‘살아있는 문서이론’을 원용하여 규약 제18조 조문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위 규정에서 양심적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고 판시함으로써 국제인권법의 제정목적에 따라 요청되는 적극적, 발전적인 태도를 충실히 반영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권규약이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상 신의성실의 원칙 등을 근거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이 사건 법률을 적용ㆍ해석함에 있어 일종의 특별법으로서 그 법원(法源), 재판규범이 된다고 판시함으로써 헌법 제6조 제1항의 국제법 존중주의 원칙을 제대로 존중하는 판결을 하였다. 특히 대상판결은 국제인권규약이 국내 사건에 구속력을 가질 수 있는 논거를 국내 법원 차원에서 최초로 설득력 있게 밝힌 획기적 판결로서 앞으로 대법원을 비롯한 사법부가 국제인권법을 국내법에 적용·해석하는 경우 선례로 자리 잡기를 소망해 본다.
양심적병역거부
국제인권법
병역
2016-12-05
공정거래
손계준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사법상 분쟁과 공정거래법 : 거래질서와의 관련성
- 대법원 2015. 9. 10. 선고 2012두18325 판결 - Ⅰ.사실관계와 원심판결 1. 원고는 '체육시설의 설치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체육시설법')에 따라 등록하고 회원제골프장을 운영하는 체육시설업자이다. 원고는 2003년 경 주주회원제에서 예탁금회원제로 변경하고 정회원과 평일회원으로 구분ㆍ모집하여 골프장을 운영해 왔다. 이후 2008년 경 회칙을 개정하여 시행(이하 '이 사건 행위')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평일회원 자격기간을 종전 5년에서 1년으로 축소하고, ② 평일회원 자격 연장요건을 종전 탈회의사를 서면으로 표시하지 아니하는 한 자동으로 연장되는 방식에서 연장의사를 서면으로 표시하면 심사 후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며, ③ 종전과 달리 평일회원에 대해 소멸성 연회비를 부과하는 조항을 신설하였다. 2. 공정거래위원회는 원고의 이 사건 행위가 계약기간 중에 거래상대방에게 불이익이 되도록 거래조건을 일방적으로 변경한 행위로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4호 및 같은 법 시행령 제36조 제1항에서 금지하고 있는 거래상 지위남용행위(불이익제공)에 해당된다고 보고 시정명령과 과징금납부명령을 부과하였다. 3. 원심은 원고의 평일회원에 대한 거래상 지위를 인정하였으며, 원고가 종전 회칙상 보장되던 평일회원 자격을 일방적으로 제한하고 소멸성 연회비를 신설한 것은 정상적인 거래관행을 벗어나 불이익을 가한 것으로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라고 판단하였다. Ⅱ. 대법원 판결(이하 '대상판결')의 요지 1.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환송하면서, 원고의 이 사건 행위가 평일회원들에게 다소 불이익하다고 볼 수 있지만,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2. 대상판결은 우선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의 요건으로서 '거래질서와의 관련성'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의 상대방이 경쟁자 또는 사업자가 아니라 일반 소비자인 경우에는 단순히 거래관계에서 문제될 수 있는 행태 그 자체가 아니라, 널리 거래질서에 미칠 수 있는 파급효과라는 측면에서 거래상 지위를 가지는 사업자의 불이익 제공행위 등으로 인하여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힐 우려가 있거나, 유사한 위반행위 유형이 계속적ㆍ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등 거래질서와의 관련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판결하였다. 3. 그리고 이 사건에서 "평일회원들이 불특정다수의 소비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원고 뿐 아니라 다른 골프장 경영 회사와 소속 회원들 사이에 이 사건 행위와 유사한 형태의 행위가 계속적ㆍ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등 거래질서와의 관련성을 인정하기 부족하며, 또한 평일회원들은 체육시설법에 따라 약정이 변경되었음을 이유로 자유롭게 탈퇴하고 입회금을 반환받을 수 있으므로 평일회원들의 사법적 보호도 불충분하지 않고, 원고의 이 사건 행위는 외형상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의 형식적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거래질서와의 관련성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Ⅲ. 평석 대상판결의 의의 가. 민사 분쟁 중에서 공정거래법 제23조(불공정거래행위 금지)가 적용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는 어려운 문제이다. 미국의 Sherman Act나 Clayton Act 및 EU의 TFEU 조약은 주로 경쟁제한적 기업결합, 독점력의 남용 및 카르텔 등을 금지하고 있으며 불공정거래행위에 관한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미국의 FTC Act 제5조를 계수한 일본의 '私的?占の禁止及び公正取引の確保に關する法律'(이하 '사적독점금지법') 제19조의 영향을 받아 공정거래법 제23조에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규정을 두게 되었고, 민사 분쟁에 대한 공정거래법 적용 한계가 문제되어 왔다. 특히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에 관한 대부분의 판례들은 계약 내지 거래조건의 설정 및 변경과 그 이행과정에 관한 것인데, 법원은 사안에 따라 민사상 계약 위반의 문제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판결하거나 민사상 채무불이행을 넘어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라고 판결해왔으며, 공정거래법 제23조가 적용되는 범위에 관하여 명확한 기준을 정립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나. 대상판결은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에서 '거래질서와의 관련성'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공정거래저해성)가 인정된다는 기준을 새롭게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구체적으로 거래상대방이 소비자인 경우에는 사업자의 불이익 제공행위 등으로 ①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힐 우려가 있거나, ② 유사한 위반행위 유형이 계속적ㆍ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경우에만 거래질서와의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하였다. 민사 분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과의 구별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실무상 중요한 지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 종래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불이익제공)에 해당하려면, ① 사업자의 거래상 지위 즉,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 또는 적어도 상대방과의 거래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를 이용하여, ② 정상적인 거래관행에 비추어 부당하게, ③ 상대방에게 불이익이 되도록 거래조건을 성정 또는 변경하거나 그 이행과정에서 불이익을 주는 행위로서, ④ 공정한 거래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때 '거래'란 개별적인 계약보다 넓은 의미로서 사업활동을 위한 수단 일반 또는 거래질서를 뜻하는 것이므로(대법원 2010. 1. 14. 선고 2008두14739 판결),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해당 여부를 판단할 때 거래질서와의 관련성은 당연히 고려해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상판결은 '거래'라는 문언이 거래질서를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한 것에서 나아가 거래질서와의 관련성까지 인정되어야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에 해당한다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당사자 간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널리 거래'질서'에 파급효과를 미치는 경우에만 공정거래저해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로 보인다. 이제까지 공정거래저해성에 관한 다수의 판례들이 선고되었는데, 대상판결은 거래상대방이 소비자인 경우 공정거래저해성이 인정되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라. 대상판결은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중 불이익제공행위의 상대방에 사업자나 경쟁자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도 포함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과거 대법원 1993. 7. 27. 선고 93누4984 판결은 사업자간의 거래에 적용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한편 대법원 2006. 11. 9. 선고 2003두15225 판결은 사업자간 거래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하였고, 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7두20812 판결 등은 개인과의 거래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으나 소비자도 포함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것은 아니었다. 한편 일본의 사적독점금지법은 문언해석상 거래상대방에서 소비자가 제외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실제로 문제된 사례들은 사업자간의 거래라고 한다(村上政博 編集代表, ?解 ?占禁止法, 弘文堂, 2014, 171면). 2. 대상판결의 한계 '사법적 보호의 불충분성'을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의 위법성 판단 과정에서 고려하는 것이 정당한지는 보다 검토가 필요하다. 대상판결은 이 사건에서 거래질서와의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서 평일회원들이 체육시설법에 따라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점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다른 방법에 의한 사법적 보호 가능 여부가 거래질서와 구체적으로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대상판결이 과연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규정은 다른 수단에 의하여 권리구제가 가능하지 않을 경우에 보충적으로 적용된다는 추상적 법률론을 제시한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그 논증과정에서 이론적인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실제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가 문제되는 사례들에서 다른 법률에 따른 구제수단이 존재하는 경우가 상당수이기 때문에, 다른 구제수단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고 위법성 판단 과정에서의 체계상 위치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3. 결어 향후 공정거래법 제23조의 적용범위는 대상판결에 의해 상당한 정도로 제한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대법원은 이후 구체적인 사안에서 판결례를 축적함으로써 위법성 요건을 보다 명확하게 정립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비자와의 거래가 아닌 사업자 간의 거래에서 공정거래저해성이 인정되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불공정거래행위 심사지침'을 개정하여 대상판결이 판시한 위법성 판단기준을 반영하였다.
공정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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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익제공
거래상지위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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