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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2023. 8. 31. 선고 2019다295278 판결 -
무단임대행위 후 유치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제3자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
대상판결은 유치권자의 무단임대행위 후 유치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제3자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이와 같이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그러나 민법 제324조 제3항의 해석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유치권자의 무단임대행위 등을 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 무단임대행위 등 당시 유치권자와 새로운 소유자 간에는 아무런 권리의무관계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새로운 소유자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판결이 타당한 것으로 사료된다. 1. 사안의 요지 A는 부산 부산진구 일대 주상복합 아파트 신축 분양 사업의 시행자이다. A는 2003. 3.경 B를 시공사로 선정하여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였다. B는 피고를 포함한 18업체에 공정별로 하도급을 주었다. B는 2005. 10.경 기성고율 92.41% 상태에서 부도가 났다. 피고는 공사비를 직접 부담하며 2006. 7.경 공사를 모두 마쳤고 2006. 12.경부터 위 주상복합 아파트 제1305호(이하 “본건 부동산”)를 포함한 6세대에 대하여 유치권을 행사하였다. A는 2006. 2. 23.경 본건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보존등기를 하였다. 이후 2010. 3. 12. C, 2013. 2. 23. D, 2013. 6. 28. F, 2018. 5. 21. 원고 순으로 본건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가 각 이루어졌다. 한편, 피고는 2007. 10. 4.부터 2012. 2. 3.까지 A, C의 동의 없이 G에게 본건 부동산을 무단 임대하였다가 2012. 2. 4.부터 다시 본건 부동산을 직접 점유하였다. 2. 본건의 쟁점 본건의 쟁점은 2018. 5. 21. 본건 소유권을 취득한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2007. 10. 4.부터 2012. 2. 23.까지 이루어진 피고의 무단 임대행위를 이유로, 민법 제324조 제3항에 의한 유치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3. 소송의 경과 가. 원심판결의 요지 원심은 “피고가 G에게 이 사건 부동산을 임차한 것은 2007. 10. 4.부터 2012. 2. 3.까지이므로, 2018. 5. 21.에 이 사건 부동산을 취득한 원고에게는 위 사유로 인한 유치권소멸청구권이 있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다(부산지방법원 2019나46459 판결, 선고일자는 생략하였음, 이하 같음). 나.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원심판결과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324조 제2항을 위반한 임대행위가 있고 난 뒤에 유치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제3자도 유치권소멸청구를 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였다. 4.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가. 민법 제324조 유치권자의 선관의무 유치권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유치물을 점유하여야 하고, 채무자의 승낙 없이 유치물을 보존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 사용하거나 대여 또는 담보제공을 할 수 없다(민법 제324조 제1, 2항). 유치권자가 제324조 제2항을 위반하여 채무자의 승낙 없이 유치물을 사용, 대여, 담보제공 등을 한 경우 채무자는 유치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324조 제3항). 나. 채무자에 유치물 소유자도 포함되는지 민법 제324조는 “채무자”라고만 규정하고 있어서, 유치물 소유자도 위 채무자에 포함되는지를 견해 대립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민법 제324조 제2, 3항은 통상 채무자와 소유자가 동일한 경우를 예상하여 규정된 것일 뿐이고, 채무자와 소유자가 다를 경우에는 오히려 사용, 수익, 처분 권한을 가지고 있는 소유자만이 사용 승낙을 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며 소유자도 민법 제324조의 채무자에 포함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0다94700 판결 참조). 다. 소유권 변동시 새로운 소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 유치권자가 종전 소유자의 승낙을 받아 유치물을 사용, 대여 등을 하였으나 그 이후에 소유권의 변동이 발생하면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다시 얻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대법원 판례는 확인되지 아니한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유치권자가 소유권변동 사실을 알 수 없어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받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거나, 유치권자가 소유권변동을 알게 된 후 곧바로 유치물의 사용 등을 중단하거나, 새로운 소유자의 유치권 소멸청구가 신의칙에 위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유치권자는 종전 소유자의 승낙을 기초로 새로운 소유자에 대항할 수 없(다)”라고 판시하며, 원칙적으로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9나2006117 판결). 라. 유치권소멸청구권의 발생 시기 민법 제324조 제3항은 “유치권자가 전2항의 규정을 위반한 때에는 채무자는 유치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문리해석하면,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유치권자가 같은 조 제2항의 의무를 위반한 때 발생한다고 할 것이다. 마.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채무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만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형성권(形成權)이다[민법 물권 제3권, 김용덕, 한국사법행정학회(2019. 5.) 제529쪽]. 다만 민법은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법률에 존속기간의 정함이 없는 민사상 형성권에 관하여 그 존속기간을 10년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88다카25342 판결, 대법원 90다카4409 판결 등 참조). 이에 민사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은 10년이라 할 것이다. 한편 상사유치권의 경우 민법상 유치권 규정이 준용될 것이므로(상법 제1조) 상사유치권에 대하여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은 상법상 형성권은 상법 제64조를 유추적용하여 제척기간을 5년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2019다271661 판결). 상법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은 5년이라 할 것이다. 바. 대상판결에 대한 의견 1)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할 법률상 근거와 논리에 대한 의문점 대상판결에 관하여 여러 가지 의문점이 있다. 먼저 새로운 소유자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할 수 있는 법률상 근거와 논리가 무엇인가이다. 대상판결은 민법 제324조가 유치물의 소유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므로 새로운 소유자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치물의 소유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민법 제324조의 입법취지가 될 수 있을지라도 이것만으로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모르겠다. 위반행위 당시 유치권자는 새로운 소유자에게 의무를 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률관계’란 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사람과 사람 또는 사람과 물건 사이의 관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법률관계의 핵심은 권리와 의무인데 원칙적으로 권리와 의무는 상응한다. 일반적으로 법률은 어떠한 의무를 부담하는 일방이 이를 위반하였을 시 그 의무의 수혜자인 상대방에게 해제권, 취소권, 손해배상청구권 등의 권리를 인정한다. 본 사안에서 유치권자인 피고는 무단임대행위를 할 당시 원고에게 어떠한 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하였고, 원고도 유치물에 대하여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었다. 앞서 인용한 ‘서울고등법원 2019나2006117 판결’은 소유자의 변경 시 유치권자로 하여금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얻도록 하였는데,이는 유치권자와 종전 소유자 사이에 성립되었던 권리의무관계가 새로운 소유자에게 승계되지 않고 소유권 취득시부터 유치권자가 새로운 소유자에 대해 의무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위반행위 당시 피고가 원고와의 관계에서 의무위반을 하지 아니하였음에도 어떠한 법리에 의해 원고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2) 새로운 소유자의 유치권소멸청구권 취득방법과 이에 관련된 의문점 대상판결은 새로운 소유자가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원시취득하는 것인지 아니면 종전 소유자로부터 승계취득이라는 것인지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판시하지 아니하였다. 대상판결의 정확한 입장을 알 수 없지만, 원시취득으로 본다면 아래와 같은 문제점이 있다. 앞서 기재한 바와 같이, 민법 제324조 제3항의 해석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유치권자가 민법 제324조 제2항의 의무를 위반한 때” 발생한다. 그럼에도 새로운 소유자가 소유권을 취득한 때 유치권소멸청구권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원시취득)은 민법 제324조 제3항의 문언에도 반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유치권소멸청구권은 형성권으로서 제척기간은 유치권소멸청구권이 발생한 날로부터 10년(민사) 또는 5년(상사)이다. 원시취득으로 본다면, 새로운 소유자는 소유권을 취득한 날에 유치권소멸청구권이 발생하므로 소유권 취득시부터 10년 또는 5년 동안 유치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소유자가 변경될 때마다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이 계속 연장되므로 부당하다. 그런데 승계취득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포괄승계와 승계취득으로 나눠서 생각해보자. 포괄승계는 당사자 지위 승계를 위한 유치권자, 채무자(또는 종전 소유자), 새로운 소유자 3인의 합의가 없거나 상속, 합병,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대인 지위 승계 등과 같은 법률상 근거가 없으면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정승계로 유치권소멸청구권이 새로운 소유자에게 이전된다는 논리를 구성한다면, 먼저 형성권인 유치권소멸청구권이 특정승계 방식으로 양도가능한 지부터가 문제된다. 특정승계가 가능하다고 가정하더라도, 대상판결과 원심판결을 보면 무단임대행위 당시 소유자인 A, C가 양수인 D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양도의사표시를 하였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 종전 소유자가 새로운 소유자에게 양도의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이 승계된다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3) 사견 대상판결은 새로운 소유자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였지만, 민법 제324조 입법취지만 근거로 들고 있을 뿐 이외 다른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하여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물론 대법원이 대상판결이 기재하지 아니한 다른 법률적 근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민법 제324조 제3항의 해석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유치권자의 무단임대행위 등을 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 무단임대행위 등 당시 유치권자와 새로운 소유자 간에는 아무런 권리의무관계가 없다는 점, 위에서 서술한 여러 가지 의문점 등을 고려하면, 새로운 소유자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판결이 타당한 것으로 사료된다. 배상현 변호사(OCI홀딩스 주식회사)
유치물
무단임대
유치권소멸청구
배상현 변호사(OCI홀딩스 주식회사)
2023-11-09
금융·보험
민사일반
- 대법원 2023. 4. 27. 선고 2017다227264 판결(판례공보 2023년, 885면) -
표의자의 중과실 있는 착오와 상대방의 악의 등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평석에 필요한 한도에서 요약하기로 한다. 1. 원고 증권회사(이 사건 소 제기 후에 파산하여 파산관재인이 소송을 수계하였으나, 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는 싱가포르 법인인 피고 회사 등과의 사이에 인터넷을 통하여 파생상품거래를 하였다. 원고는 이를 위하여 다른 소프트웨어 제작회사로부터 시스템거래의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다음, 그 회사의 직원으로 하여금 이자율 등 변수를 입력하고 그 입력된 조건에 따라 호가(呼價)가 자동적으로 생성 및 제출되도록 하였다. 2. 2013년 12월 어느 날 파생상품시장 개장 전에 위 직원이 입력할 변수 중 이자율 계산을 위한 설정값을 잘못 입력하였고, 원고는 그로써 생성된 호가를 그대로 제출하였다. 그에 따라서 피고와의 사이에 코스피 200옵션에 대하여 매우 많은 수의 주가지수옵션매수거래가 성립되었고, 그 대금 584억원이 종국적으로 피고에게 지급되었다. 3. 원고는 착오를 이유로 위 매매를 취소하는 의사표시를 하고 그 대금 중 우선 100억원의 반환을 청구하였다. 제1심법원(서울남부지법 2015. 8. 21. 선고 2014가합3413 판결)은 원고의 중과실로 인한 착오라는 것 등을 이유로 하여 그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법원(서울고등법원 2017. 4. 7. 선고 2015나2055371 판결)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우선 원고의 이 사건 의사표시가 그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이를 취소할 수 없다고 하고, 나아가 여러 가지 사정을 들어 피고가 “피고가 상대방의 착오를 이용하여 부정한 이익을 취득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거래 프로그램을 사용하거나, 착오로 인한 호가 제출 사실을 아는 피고 직원이 개입하여 원고의 착오를 유발하거나 그의 중과실을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가 체결되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 [판결 취지] “민법 제109조 제1항은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같은 항 단서에서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대한 과실’이란 표의자의 직업, 행위의 종류, 목적 등에 비추어 보통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것을 의미한다[참조 재판례들 인용]. 한편 위 단서 규정은 표의자의 상대방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표의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대법원 1955. 11. 10. 선고 4288민상321 판결,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 판결 등 참조). 다만 한국거래소가 설치한 파생상품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파생상품거래와 관련하여 상대방 투자중개업자나 그 위탁자가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파생상품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계약이 체결되는 방식, 당시의 시장상황이나 거래관행, 거래량, 관련 당사자 사이의 구체적인 거래형태와 호가 제출의 선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단순히 표의자가 제출한 호가가 당시 시장가격에 비추어 이례적이라는 사정만으로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평 석] 1. 착오에 관한 민법의 규정 (1) 어떠한 경우에 의사표시의 착오를 이유로 계약 기타 법률행위(이하에서는 그 중 계약만을 다루기로 한다)의 효력을 다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법의 역사에서 일찍부터 제기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새롭다. 우리 민법이 정면으로 정하는 바는 네 가지다. 첫째, 착오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있는 경우에만 그 효력이 다투어질 수 있다(제109조 제1항 본문). 여기에는, 세상사가 무릇 그러하듯이, 어떠한 잘못 또는 실수는 이를 범한 이가 그 귀결을 감당해야 한다는 원칙이 배경에 있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서 민법은 예외적으로 효력을 다툴 수 있게 하는 ‘본질적 착오’의 유형을 열거하는 스위스채무법 제24조와 같은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 둘째, 그 경우에도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착오를 들어 계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동항 단서). 셋째, 이상과 같은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표의자는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선택권을 가질 뿐이고, 애초부터 무효인 것은 아니다. 즉 계약은 표의자에게 취소권을 부여한다. 넷째, 표의자가 그 취소권을 행사하여 계약을 무효로 돌리더라도, 그 효력은 선의의 제3자에게는 미치지 않는 것으로 제한된다(동조 제2항). (2) 이러한 입법적 태도는 예를 들어 독일민법에서의 착오에 관한 입법과정(이에 대하여는 양창수, “독일민법전 제정과정에서의 법률행위 규정에 대한 논의 ― 의사흠결에 관한 규정을 중심으로”, 동 민법연구 제5권(1999), 49면 이하 참조)에 비교하여 보더라도,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 크게 탓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독일민법의 착오 규정이 우리 민법의 그것과 크게 다른 점은 거기서는 착오자의 중과실을 착오 취소의 소극요건으로 하지 않고 여전히 취소권을 착오자에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주지하는 대로 착오 취소자에게 신뢰이익의 배상책임을 부과한다(제122조). 이 책임은 착오자에게는 그의 유책사유를 요구하지 않고 인정되는데, 다만 상대방이 “취소의 원인을 알았거나 또는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경우”에는 이를 배제한다(동조 제2항). 그만큼 상대방의 악의 또는 과실은 착오법리의 범위 안에서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행태’는 입법적 차원에서 이미 그 한도에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아가 참조를 삼을 만한 것이 스위스법의 태도이다. 스위스채무법 제26조 역시 착오 취소자에게 “계약의 효력불발생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의 배상책임을 긍정한다. 그런데 그 요건에서는 독일민법과 달리 착오자의 과실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착오자를 알았거나 알았어야 하는 경우에는 그 책임을 배제한다.(이상 동조 제1항) 한편 여기서는 예외적으로 “형평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법관은 그 외의 손해의 배상을 인정할 수 있다.”(동조 제2항) 결국 이들 나라에서는 착오 취소자는 물론이고 나아가 상대방의 사정을 다양하게 고려하여 착오법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2. 상대방의 착오 ‘유발’의 문제 (1) 그렇지만 민법 소정의 여러 제도가 흔히 그러하듯 실제의 사건 맥락은 입법자가 예상하지 아니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 중요한 하나가 상대방의 ‘행태’를 고려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유발’ 내지 ‘야기’된 경우에도 위에서 본 요건이 갖추어져야만 표의자는 취소할 수 있는가? 그가 표의자를 착오로 빠뜨릴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였다면, 물론 이는 ‘사기’(민법 제110조)의 문제가 될 것이다(여기서는 ‘계약 내용의 중요부분’이나 표의자의 중과실 등은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러한 의도가 없이 그렇게 하였다면 어떠한가? 예를 들어 상대방이 사실이라고 잘못 알면서 표의자에게 사실 아닌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표의자가 이를 믿고 의사표시를 하게 되었다면?(이는 이른바 공통착오 중에서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된 유형에 해당한다). 또 나아가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강화’(이에도 여러 가지 정도가 있을 것이다)한 경우는 어떠한가? (2) 대법원이 민사사건에서 이와 같이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을 다룬 것은 대판 1978.7.11., 78다719(집 26-2, 209)이 처음이라고 생각된다(그 전에 귀속재산매각처분의 효력이 다투어진 행정사건에서 같은 취지로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대판 1970.2.24., 69누83(집 18-1, 행 36)이 있다). 이 판결은 귀속해제된 토지임에도 귀속재산인 줄 잘못 알고 피고(대한민국)에게 증여한 사안에서, “이러한 착오는 일종의 동기의 착오라고 할 것이나, 그 동기를 제공한 것이 피고 산하 관계 공무원이었고, 그러한 동기의 제공이 없었더라면 몇 십 년 경작해 온 상당한 가치의 본건 토지를 선뜻 피고에게 증여하지는 않았을 것인즉 그 동기는 본건 증여행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원고의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를 인용하였다(상고기각). 여기서는 동기착오이면서도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는 판단틀이 채택되고 있음이 주의를 끈다. 그 후에도 대판 1987. 7. 21., 85다카2339(집 35-2, 284)(이에 대한 평석으로서 양창수, “주채무자의 신용에 관한 보증인의 착오”, 동, 민법연구, 제2권(1991), 1면 이하가 있다. “채권자에 의한 착오의 유발과 보증인의 취소권”이라는 제목의 그 제3장이 종전에 별로 의식되지 아니하던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유형을 새로운 문제관점에서 제시하였다); 대판 1991. 3. 27., 90다카27440(공보 1276); 대판 1992. 2. 25., 91다38419(공보 1141); 대판 1993. 8. 13., 93다5871(공보 2419); 대판 1994. 9. 30., 94다11217(공보 하, 2841); 대판 1995. 11. 21., 95다5516(공보 1996상, 47), 대판 1996. 3. 26., 93다55487(공보 상, 1363); 대판 1997. 8. 26., 97다6063(집 45-3, 112); 대판 1997. 9. 30, 97다26210(공보 3286) 등 1990년대만 하더라도 많은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재판례가 일반적으로 착오 취소를 긍정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그 이유로, 문제의 착오가 동기착오인 경우에라도 ―동기착오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그 ‘표시’의 여부 등은 논의하지 아니하고― 그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는 사정을 들고서 바로 또는 다른 사정을 함께 그것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따라서 표의자는 계약을 적법하게 취소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표의자의 중과실 유무 등은 아예 논의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지만, 한편 앞의 대판 97다6063사건에서와 같이 “표의자로서는 그와 같은 착오가 없었더라면 그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고, 보통 일반인도 표의자의 처지에 섰더라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중요 부분’의 의미에 관한 판례 준칙을 그 중간항(中間項)으로 드는 예도 물론 있기는 하다. (3) 이러한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유형에 대한 판례의 태도에 대하여 학설은 대체로 지지한다. 그것은 “착오 취소의 요건은 표의자와 상대방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기 위한 기준인데, 표의자의 동기착오를 유발한 상대방의 보호가치가 부정된다는 점에서 판례의 태도는 충분히 수긍될 수 있다”고 하거나(지원림, 민법강의, 제20판(2023), 77면), 상대방에 의한 그 유발의 경우에 “그 착오의 위험을 생성 또는 실현케 한 상대방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이 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김상중, “동기의 착오에 관한 판례법리의 재구성을 위한 시론적 모색”, 사법(私法)질서의 변동과 현대화(김형배 교수 고희 기념)(2004), 15면). 한편 드물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행태를 기초로 취소의 위험을 부담시킬 수 있는 경우에는 민법 제109조가 아니라 민법 제110조에 의해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정성헌, “착오에 대한 민법상 규율의 재구성 ―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판결을 계기로”, 민사법학 제73호(2015), 265면 이하). 3. 상대방이 악의인 경우 ― 착오의 ‘이용’ (1)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이 맥락에서 상대방의 ‘악의’, 즉 표의자가 착오에 빠졌음을 안다는 사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점과 관련하여 다루어진다. 무엇보다도 「민법(채권법)개정검토위원회」가 2009년에 발간한 『채권법 개정의 기본방침』(별책 NBL 126호)은 (i)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있는 때, (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알지 못함에 대하여 중과실 있는 때, (i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일으킨 때, (iv) 상대방도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를 하고 있는 때에는, 표의자에게 중과실이 있더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동 방침, 28면 이하. 당시 고려되는 착오의 법률효과는 무효로 정해져 있었다). 이는 대체로 2017년 일본민법 개정에 반영되어(시행은 2020년 4월), ‘상대방이 표의자에게 착오 있음을 알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때’(제95조 제3항 제1호) 또는 ‘상대방이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에 빠져 있는 때’(동항 제2호)에는 표의자에 중과실 있는 경우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하였다(앞 (iii)의 착오 유발에는 언급이 없다). 위 개정 후의 일본민법 제95조는 제1항에서, 우선 행위착오 외에도 동기착오 중에서는 ‘표의자가 법률행위의 기초로 한 사정에 관하여 그 인식이 진실에 반하는’ 것(앞의 1.에서 든 스위스채무법 제24조 제1항의 제4호에서 정하는 “표의자에 의하여 신의성실에 비추어 계약의 불가결한 기초라고 여겨진 사정”에 관한 착오, 즉 기초착오(Grundlagenirrtum)를 연상시킨다. 이 점은 독일민법에서 2017년 대개정 후에 동기착오 중에서 “거래상 본질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이나 물건의 성상(性狀)에 관한 착오”를 내용착오로 보는 제119조 제2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을 고려되는 착오로 정한 다음, 나아가 ‘그 착오가 법률행위의 목적 및 거래상의 사회통념에 비추어 중요한 것인 때’에만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한다. 그리고 제3항은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표의자의 중과실의 경우에는 착오 취소가 배제된다고 하면서도, 동항의 위 두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취소할 수 있음을 정하는 것이다. (2) 대판 2014. 11. 27., 2013다49794(공보 2015상, 9)은 대상판결의 취지와 같이 판시하였다(이 판결은 ‘참조’로서 60년쯤 전의 대판 1955.11.10. 4288민상321을 인용한다. 그 제1심도, 항소심도 버젓이 인용하고 있는 이 판결에 접근할 방도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재판례의 ‘공개’ 내지 ‘접근가능성’이라는 ―민법 연구자인 나로서는 꽤나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는 양창수, “『법고을』 유감”, 동, 민법산책(2006), 274면 이하 참조 : “그것들이 재판 실무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나아가 변호사의 직무에 도움이 안 될 리 없고, 또 법학교수가 법을 연구하는 데 자료가 되지 않을 리 없다”). 위 판결은 대상판결의 사안과 유사하게, 원고 증권회사의 직원이 파생상품(미화달러 선물(先物)스프레드 1만 5000개) 계약의 매수주문을 개장 전에 입력하면서 0.80원이라고 할 것을 그 100배인 80원이라고 찍음으로써 결국 피고 증권회사와의 사이에 그 내용으로 매매계약이 체결된 사안에 대한 것이다. 원심판결은 그 계약의 착오 취소를 인정하고 원고의 매매대금반환청구를 인용하였는데,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그 이유로 우선 자본시장법상의 금융투자상품시장에서 일어나는 증권이나 파생상품의 거래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109조가 적용됨을 선언한 데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아가 착오 취소에 관하여는 대상판결과 같은 법리를 설시한 다음, 구체적으로는 원고 측의 착오에 중대한 과실이 있지만 “피고가 주문자의 착오로 인한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다른 매도자들보다 먼저 매매계약을 체결하여 시가와의 차액을 얻을 목적으로 단시간 내에 여러 차례 매도주문을 냄으로써 이 사건 거래를 성립시켰으므로” 원고의 중대한 과실에도 불구하고 취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대상판결은 표의자의 중과실에도 불구하고 의사표시의 취소를 긍정하는 추상적인 법리를 그대로 반복한다. 굳이 저 60년 전의 대법원판결과 합하지 않더라도 이제 최근 두 개의 대법원판결만으로 그 법리는 이제 우리 민법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법리는 착오 취소의 제한 요소로서의 표의자의 중과실을 ―법률 밖에서(praeter legem), 즉 법규정에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다시 제한하여 착오 취소의 범위를 확장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글은 이 점을 제시하여 의식하게 하려는 의도로 쓰였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몇 가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위의 두 선례는 단지 상대방의 악의에서 더 나아가 그가 표의자의 착오를 ‘이용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인가, 아니면 실제로 입증되어야 하는 취소 허용의 요건인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가 원고의 착오를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거래를 체결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상판결의 판단이 착오 취소를 부인하는 종국적인 이유인데, 그 ‘이용’ 여부를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제3자의 채권침해가 논의되는 사안유형 중 문제의 행위로 채무자의 책임재산이 감소된 경우에 대하여 대판 2007. 9. 6., 2005다25021(공보 1526) ; 대판 2019. 5. 10., 2017다239311(공보 1207) 등이 그 위법성 요건에 관하여 설시하는 대로 제3자가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존재 및 그 채권의 침해사실을 아는 것’ 외에도 ‘채무자와 적극 공모하거나 채권 행사를 방해할 의도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부정한 수단을 사용하는 등’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레벨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나아가 위의 두 판결은 모두 인터넷금융거래에서 증권회사의 ‘피용자’가 입력을 잘못하여 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정하여진 사안임에도 그 결론을 달리하여, 2014년 판결은 표의자의 착오 취소를 허용하여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고, 대상판결은 이를 부인하였다. 그 차이의 이유를 위 사건의 어떠한 사실관계로부터 찾을 수 있을까? 이것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나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상론하지 아니하기로 한다. 다만 하나만 지적하자면,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피고도 이 사건 매매거래 전부터 미리 정하여진 일정한 시스템거래 방식으로 기계적 호가를 계속하여 왔다는 것을 들 수 있을지 모른다.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중대한과실
착오
파생삼품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3-08-20
조세·부담금
행정사건
- 대법원 2022. 11. 17. 선고 2018두47714 판결 -
무상 수입물품에 대한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Ⅰ. 서론 대법원은 2003. 사업자등록명의를 대여해 준 형식상 수입신고 명의인이 관세납부의무자인 ‘물품을 수입한 화주’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면서 관세법에도 실질과세 원칙이 적용된다고 판시한 이래(대판 2003. 4. 11. 2002두8442), 실질과세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하지 않은 관세법에도 동 원칙이 적용됨을 거듭 밝혀왔다(대판 2010. 4. 15. 2009두21260, 2016. 9. 30. 2015두58591 등). 실질과세 원칙이 헌법상 기본이념인 평등의 원칙을 조세법률관계에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대판 2012. 1. 19. 2008두8499) 조세법률관계의 일종인 관세법률관계에도 적용됨은 당연하다. 최근 대법원은 관세의 과세표준인 수입물품의 가격에 실질과세 원칙을 적용하여 과세가격을 재구성한 판결(대판 2022. 11. 17. 2018두47714. 이하 ‘대상판결’)을 선고하였는바, 이를 살펴본다. 이하 필자의 사견임을 밝힌다. 대상판결은 실질과세 원칙을 관세법상 과세표준인 수입물품의 가격 결정에 적용한 많지 않은 판결 중 하나로서 그 의의가 있으나, 본건 물품의 무상계약으로서의 실질을 고려하지 않고 특약의 이행에 따른 사후적 결과만을 중시함으로써, 대법원이 그간 거듭 밝혀 온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한다는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기준에 벗어난 판시를 한 아쉬움이 있다. Ⅱ. 사실관계 및 소송의 경과 1. 사실관계 의약품 원료 등을 수입하여 의약품을 제조·판매하는 원고는 2004년 일본법인 A사와 효소계 원료의약품에 관한 독점구매계약(이하 ‘본건 계약’)을 체결하면서 연간 기준물량 이상을 구매하면 구입물량의 일정비율을 ‘무료샘플(Free Sample)’로 무상제공 받는 특약(이하 ‘본건 특약’. 원고는 그 후 4차에 걸쳐 무료샘플 제공 수량을 변경하는 내용으로 본건 특약을 갱신하였다.)을 하고, 2014년 무상제공 받은 원료의약품(이하 ‘본건 물품’)에 관하여 임의의 가격인 5000엔/BU(Billion Unit)을 수입신고가격으로 하여 수입신고를 하였다. 피고는 2015년 원고에 대한 관세조사 후 본건 물품이 무상 수입물품으로서 관세법 제30조 제1항의 ‘우리나라로 수출하기 위하여 판매되는 물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위 수입신고가격을 부인하고, 동법 제31조에 따라 유상구매한 원료의약품의 거래가격을 과세가격으로 하여 원고에 대하여 관세 등 합계 1억8291만4840원을 경정, 고지하였다(이하 ‘본건 과세처분’). 원고는, 본건 계약이 1년 단위로 잠정적인 기본가격을 설정하고 일정 수량 이상을 구입한 경우 사후적으로 할인물량을 추가 공급함으로써 최종 가격이 결정되는 연간 구매계약이고, 본건 특약은 ‘가격조정약관’으로서 ‘수량할인’을 규정한 것으로서, 본건 물품의 실제지급가격은 유상구매물량의 대가인 ‘총 지급액’을 유상구매물량과 무상제공물량(본건 물품)을 합한 ‘총 구매물량’으로 나눈 금액을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본건 과세처분에 불복하였다. 2. 원심판결(서울고판 2018. 5. 11. 2017누82446)의 요지 세계관세기구 관세평가기술위원회 예해 4.1이 규정하는 가격조정약관은, 수입물품의 가격결정 요소인 생산소요비용 등이 사후 변경되어 ‘수입물품의 대가’가 변경되는 경우로서 과세가격의 임의적인 변경을 방지하기 위해 수입 전에 계약상 그 취지가 명시되어 있어야 하는데, 본건 계약상 유상물품의 ‘기본가격(Base Price)’은 한화로 정하고‘실제가격(actual price)’은 기본가격에 발주 당시 환율을 적용한 일본 엔화로 계산하기로 약정하였을 뿐 기본가격이 구입물량에 따라 조정 가능함을 약정하지 않은 점, 그에 따라 유상 수입물품의 실제가격이 수입신고 되었을 뿐 가격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 원고는 본건 물품의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임의의 가격인 5000엔을 거래가격으로 수입신고한 점, 본건 물품의 무상제공으로 총 지급액이 낮아지더라도 이는 본건 특약에 따른 결과일 뿐인 점 등을 고려할 때 본건 특약은 가격조정약관에 해당하지 않는다. 세계관세기구 관세평가기술위원회 권고의견 15.1에 의하면 수량할인은 판매자가 기준연도 동안의 구매수량에 따라 물품가격에서 공제하기로 허용한 금액으로 고정가격표에 따라 물품가격을 책정한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경우에만 인정되는데, 본건 특약상 무료샘플 수량을 제외한 연간 구매수량을 기준으로 무료샘플 제공 수량을 정한 점, 본건 계약상 실제가격이 발주 당시 환율로 계산한 일본 엔화로 확정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본건 특약이 수량할인을 규정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이에 더하여 본건 특약이 본건 물품을 ‘무료샘플’로 표현하여 당사자 간 무상제공에 관하여 합의한 것으로 보이는 점, 본건 계약 무렵 본건 특약에 따라 무료샘플 공급과 선택적·병행적으로 판매사원들에게 무상 일본관광이 제공된 점 등을 보면, 본건 물품을 무상 수입물품으로 보고 관세법 제31조에 따라 동종·동질물품인 유상 구매물품의 수입신고가격으로 과세가격을 결정한 본건 과세처분은 적법하다. 3. 대상판결의 요지 본건 특약은 연간 구매수량이 1688 BU 미만인 경우 연간 구매수량의 10% 또는 11%, 그 이상인 경우 구간별로 더 큰 비율로 추가 공급함을 규정하여 반드시 일정 비율의 물품이 추가 공급됨을 예정하고 있어 본건 계약은 원고 주장과 같은 실제지급가격 산정 방식을 내용을 하는 연간 구매계약에 해당하고, 추가공급 물품이 연간 구매수량의 10% 이상으로 적지 않아 본건 물품이 대가 없이 공급된 무상 수입물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심판결에는 무상성, 실질과세 원칙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Ⅲ. 평석 1. 관세법상 무상 수입물품에 대한 과세가격 결정방법 관세의 과세표준은 수입물품의 가격 또는 수량으로 하고(관세법 제15조), 수입물품의 과세가격은 우리나라에 수출하기 위하여 판매되는 물품에 대하여 구매자가 실제로 지급하여야 할 가격에 구매자가 부담하는 수수료 등을 더하여 조정한 거래가격으로 한다(동법 제30조). 무상 수입물품은 우리나라에 수출하기 위하여 판매되는 물품에 포함되지 않는바(동법 시행령 제17조 제1호), ‘판매(sell)’는 대가를 지급하는 유상계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상 수입물품은 과세가격 결정의 원칙을 규정한 관세법 제30조가 아닌 동법 제31조부터 제35조까지에서 규정한 과세가격 결정방법을 순차적으로 적용하여 과세가격을 결정한다. 2. 본건 계약의 실질 내용 국세기본법 제14조 제2항은 “세법 중 과세표준의 계산에 관한 규정은 소득, 수익, 재산, 행위 또는 거래의 명칭이나 형식과 관계없이 그 실질 내용에 따라 적용한다”고 규정하는바, 관세법 중 ‘과세표준의 계산에 관한 규정’인 동법 제30조 이하의 규정, 특히 무상 수입물품인지 여부가 쟁점인 본건과 관련하여 동법 제30조, 동법 시행령 제17조 제1호의 규정은 본건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관계없이 본건 계약의 실질 내용에 따라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대법원은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기준과 관련하여, 납세의무자가 경제활동을 함에 있어서 동일한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법률관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그것이 가장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과세관청으로서는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하여야 함을 거듭 밝혀 왔는바[대판 1991. 5. 14. 90누 3207, 2009. 4. 9. 2007두26629, 2012. 1. 19. 2008두8499(전합) 등],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대상판결처럼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에 따라 납세자에게 유리한 결과가 될 수 있는 본건에서도 달리 볼 이유는 없으므로 위 판결 취지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본건 특약상 본건 물품은 ‘무료샘플’로서 원고가 이에 대하여 별도의 대가도 지급하지 않았는바, 본건 특약이 형식상 무상 수입물품에 관하여 규정한 것임은 다툼의 여지가 있기 어렵다. 원심판결이 인정한 앞서 본 사실관계에 더하여 원고가 본건 계약 당시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무상 수입물품에 대한 관세 부과 쟁점을 제외하고는, 원심판결처럼 본건 물품을 무상으로 보 든 대상판결처럼 유상으로 보든 원고의 총 지급액은 차이가 없어 원고가 달성하고자 하는 경제적 목적이 동일한 점을 고려할 때, 본건 계약 내지 특약의 실질 내용 역시 본건 물품을 무상제공하는 법률관계임이 명백하다 할 것이다. 아울러 의료법과 약사법은 2010. 경 부당한 경제적 이익 등을 제공한 의약품공급자와 더불어 이를 받은 의료인 등까지 처벌하도록 한 ‘리베이트 쌍벌제’를 시행하면서도 ‘견본품 제공’ 등에 대하여는 예외를 인정하였고(의료법 제23조의5, 제88조, 약사법 제47조, 제94조), 본건 무렵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제약기업에 의한 천문학적 액수의 무료샘플 제공이 이루어졌는바, “무료샘플藥, 결국은 약가부담 가중 ‘부메랑’”, 약업신문 2014. 4. 24.자 참조. 무료샘플의 제공이 제약업계의 오랜 관행임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사정들을 고려하지 아니하는 한편, 원고가 선택하였음이 명백한 본건 물품을 무상제공하는 법률관계를 부인하면서 본건 특약의 이행에 따른 사후적 결과만을 중시하는 판단을 하였는바, 이는 대법원이 그간 거듭 천명해 온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실질과세 원칙의 법리에 반하는 판단으로 보여진다. 3. 본건 물품의 과세가격 결정 위와 같이 본건 계약은 형식으로나 실질 내용으로나 본건 물품을 무상제공하는 법률관계임이 명백하므로, 원심이 적절히 설시한 바와 같이 가격조정약관 또는 수량할인의 법리를 적용하여 본건 물품을 유상물품이라 보기 어렵다 할 것이다. 따라서 관세법 제31조에 따라 동종·동질물품인, 본건 계약에 따라 공급된 유상물품의 거래가격을 기초로 과세가격을 정하여 한 본건 과세처분은 적법하다고 보아야 한다. Ⅳ. 결론 헌법상 기본이념인 평등의 원칙은 관세법률관계에서도 구현되어야 하므로 관세법에 명문 규정이 없더라도 실질과세 원칙이 적용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대상판결은 실질과세 원칙을 관세법상 과세표준인 수입물품의 가격 결정에 적용한 많지 않은 판결 중 하나로서 그 의의가 있으나, 본건 계약의 문언 및 이행 과정 등에서 드러난 본건 물품의 무상제공 계약으로서의 실질을 고려하지 않고 본건 특약의 이행에 따른 사후적 결과만을 중시함으로써, 대법원이 그간 거듭 밝혀 온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한다는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기준에 벗어난 판시를 한 아쉬움이 있다. 이상욱 법무담당관(관세청·변호사)
수입
관세
무료샘플
실질과세
이상욱 법무담당관(관세청·변호사)
2023-05-21
행정사건
- 대법원 2022. 3. 17. 선고 2021두53894 판결 -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③ 이의신청에 대한 거부와 항고소송의 대상적격
대상판결은 ‘이의신청’이라는 제목과 관계없이 당사자의 신청을 새로운 신청으로 선해하여 그에 대한 기각결정의 독자적 처분성을 인정하는 판례의 연장선에서 위 판례의 적용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특히 당사자가 법률에서 정한 이의신청을 한 경우에도 사안에 따라서는 그에 대한 기각결정을 새로운 처분으로 볼 수도 있음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Ⅰ. 사실관계 1. 원고는 당진시에 토지를 소유한 사람이다. 피고(당진시장)는 「지적재조사에 관한 특별법」(이하 ‘지적재조사법’)에 따라 지적재조사사업을 실시하고 토지의 경계를 확정하며 면적 증감에 따른 조정금을 산정하여 토지 소유자에게 징수하거나 지급하는 권한을 부여받은 지적소관청이다. 2. 피고는 지적재조사사업에 따라 원고 소유 토지의 지적공부상 면적이 감소되었음을 이유로, 당진시 지적재조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원고에게 조정금 62,865,000원의 수령을 통지하였다(‘1차 통지’). 3. 원고가 지적재조사법에 따른 이의신청 기간 내에 조정금에 대하여 이의를 신청하였으나, 피고는 원고에게 당진시 지적재조사위원회가 재감정을 거쳐 심의·의결한 내용을 첨부하여 기존과 동일한 액수의 조정금을 수령할 것을 통지하였다(‘2차 통지’). 4. 원고는 충청남도행정심판위원회에 2차 통지의 취소재결을 구하는 행정심판을 청구하였다가 기각되자, 2차 통지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Ⅱ. 대법원 판결 요지 1. 수익적 행정처분을 구하는 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이 있은 후 당사자가 다시 신청을 한 경우에는 신청의 제목 여하에 불구하고 그 내용이 새로운 신청을 하는 취지라면 관할 행정청이 이를 다시 거절하는 것은 새로운 거부처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나아가 어떠한 처분이 수익적 행정처분을 구하는 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해당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의 내용이 새로운 신청을 하는 취지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그 이의신청에 대한 결정의 통보를 새로운 처분으로 볼 수 있다. 2. ① 조정금에 대한 이의신청 절차는 지적재조사법에 따른 법률상 절차이므로 그에 관한 절차적 권리는 법률상 권리로 볼 수 있는 점, ② 원고가 이의신청을 하기 전에는 조정금 산정결과 및 수령을 통지한 1차 통지만 존재하였고 원고는 신청 자체를 한 적이 없으므로 원고의 이의신청은 새로운 신청으로 볼 수 있는 점, ③ 2차 통지서의 문언상 종전 통지와 별도로 심의·의결하였다는 내용이 명백하고, 단순히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내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정금에 대하여 다시 재산정, 심의·의결절차를 거친 결과, 그 조정금이 종전 금액과 동일하게 산정되었다는 내용을 알리는 것이므로, 2차 통지를 새로운 처분으로 볼 수 있는 점, ④ 피고가 1차 통지 시에 이의신청 절차만을 안내하고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에 대하여는 안내하지 않았으며 행정심판절차에서 심판청구의 대상적격에 대하여 전혀 다투지 아니한 이상 원고도 2차 통지를 행정소송의 대상인 처분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2차 통지는 1차 통지와 별도로 행정쟁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다. Ⅲ.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1. 이의신청의 의미 이의신청이란 넓게는 행정작용에 대하여 행정부 내부에 제기하는 불복절차를 통칭하는 것이지만, 이의신청을 일반행정심판 및 특별행정심판에 해당하지 않는 간이한 불복절차로 좁게 이해하는 것이 좀 더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3월 24일 시행된 행정기본법 제36조는 행정처분을 대상으로 하여 처분청에 불복하는 이의신청 절차의 원칙적 구조를 정한 일반법이다. 그러나, 제36조의 시행 이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법률에서 다양한 모습의 이의신청 절차를 두고 있다. 지적재조사법에 따른 이의신청도 그중 하나다. 2. 이의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판례의 변천 (1) 이의신청 기각결정의 처분성 부인 대상판결의 취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의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012년 대법원판결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구 「민원사무 처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거부처분에 대하여 제기하는 이의신청이 문제 된 사건에서 이의신청 기각결정이 “종전의 거부처분을 유지함을 전제로 한 것에 불과”하여 “이의신청인의 권리·의무에 새로운 변동을 초래하는 공권력의 행사나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0두8676 판결). 그런데, 위 판결에 따르면, 이의신청은 행정심판과 성질을 달리하는 것이므로, 행정심판청구를 거친 경우 행정심판재결서 정본을 송달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행정소송법 제20조 제1항 단서는 이의신청을 거쳐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 적용될 수 없다. 따라서, 이의신청의 결과를 기다리다 종전 처분이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이 지나버리면 이의신청인은 어떠한 불복도 불가능하게 된다. 종전 처분에 대한 취소의 소는 제소기간을 도과하였고, 이의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취소의 소는 대상적격이 부인되어 부적법하기 때문이다. 판례의 이러한 태도는 행정소송법 제20조 제1항 단서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여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를 방해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2) 이의신청 기각결정의 처분성을 인정한 판례의 등장 대법원은 이후 위와 같은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대법원은 2016년, 피고(LH공사)가 생활대책대상자 부적격통보에 대한 이의신청을 재심사하여 재심사 결과로도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재심사통보’를 한 사건에서, 위 재심사통보가 단순히 종전 처분을 유지하는 의사를 표시함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청에 대한 처분으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적격이 인정된다고 보았다(비교판례 1, 대법원 2016. 7. 14. 선고 2015두58645 판결). 위 사건에서는 ① 피고가 원고들의 신청 없이 직권으로 원고들에게 최초의 처분을 하였고, 원고들이 이의신청을 통하여 비로소 생활대책대상자 지정 신청권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 ② 피고가 원고들이 새로이 제출한 자료를 고려하여 선정기준 충족 여부를 다시 심사하였다는 점, 그리고 ③ 피고가 재심사통보에 대하여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취지로 불복방법을 고지하였기에 위 고지에 따른 원고들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중요한 고려요소가 되었다. 대법원은 2019년 및 2021년, “거부처분이 있은 후 당사자가 다시 신청을 한 경우에는 신청의 제목 여하에 불구하고 그 내용이 새로운 신청을 하는 취지라면 행정청이 이를 다시 거절하는 것은 새로운 거부처분”으로 본다는 일반적인 법리를 근거로 ‘이의신청’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거부를 새로운 거부처분으로 보는 두 건의 판결을 선고하였다. 첫 번째는 예방접종 피해보상 기각결정을 받은 원고가 피고(질병관리본부장)의 내부절차에 따라 이의신청을 하였다가 기각된 사안이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①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및 그 시행령 등에 이의신청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없고 권리 행사기간의 제한에 관한 규정도 없으므로 원고가 언제든지 재신청을 할 수 있다는 점, ② 원고의 이의신청이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상 이의신청기간이 도과된 후에야 제기되어 위 법률에 따른 이의신청으로 볼 수도 없는 점 등을 들어 원고의 이의신청을 새로운 피해보상신청으로 보았다(비교판례 2, 대법원 2019. 4. 3. 선고 2017두52764 판결). 두 번째는 이주자택지공급대상자 선정 신청이 거부된 원고가 이의신청을 하였으나 이의신청 또한 기각된 사안이다. 대법원은 ① 공급대상자 선정 신청기간을 제한하는 특별규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규정이 있더라도 재신청이 신청기간을 도과하였는지 여부는 본안에서 재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이 적법한가를 판단하는 단계에서 고려할 요소이지 소송요건 심사단계에서 고려할 요소가 아닌 점, ② 피고 스스로도 이의신청을 수용하지 아니하는 결정이 별도의 처분에 해당한다고 보아 그에 따른 불복절차를 안내한 점을 들어 이의신청 불수용처분의 처분성을 인정하였다(비교판례 3, 대법원 2021. 1. 14. 선고 2020두50324 판결). 3. 대상판결이 주는 함의 대상판결은 ‘이의신청’이라는 제목과 관계없이 당사자의 신청을 새로운 신청으로 선해하여 그에 대한 기각결정의 독자적 처분성을 인정하는 판례의 연장선에서 위 판례의 적용범위를 확대하였다는 점에서 이의를 찾을 수 있다. 비교판례 1, 2, 3은 모두 수익적 처분의 발급을 구할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신청권이 인정되는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원고들의 신청은 ‘이의신청’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종전 처분에 대해 불복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적 처분의 발급을 구하는 새로운 신청을 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원고들이 이전에 신청권을 행사한 적이 없거나(비교판례 1), 이미 이의신청기간이 도과하였기 때문에 이를 새로운 신청으로 볼 수밖에 없거나(비교판례 2), 원고가 신청의 사유를 구체적으로 주장하고 증빙자료를 첨부하여 피고에게 새로운 심사를 촉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피고도 그에 따른 결정을 새로운 처분으로 보고 불복방법을 안내하였다는 점(비교판례 3)이 근거가 되었다. 이와 달리 대상판결에서는 원고에게 조정금의 지급을 신청할 법률상의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 지적재조사법은 지적소관청이 직권으로 지적재조사지구를 지정하고, 경계를 결정하고, 조정금을 산정하여 지급 또는 징수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고는 단지 지적소관청의 조정금산정 결과에 대해 이의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원고의 이의신청을 그 제목에도 불구하고 이의신청이 아닌 별개의 신청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피고가 최초의 조정금산정 시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조정금을 재산정하고 필요한 절차를 거쳤다는 점이 비교판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대상판결은 법률에서 정한 이의신청을 한 경우에도 종전 처분과 동일한 심사절차를 거쳤다면 이의신청에 대한 결정을 새로운 처분으로 볼 수 있다고 선언한 셈이다. 대상판결은 2012년 판결이 가져온 불합리한 결과를 완화하고 원고의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판결로 보인다. 대법원이 2012년 판결에서 제시한, 이의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은 종전의 거부처분을 유지함을 전제로 한 것으로서 별도의 처분으로 볼 수 없다는 법리가 폐기된 것은 아니지만, 비교판례에서 대상판결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위 법리의 적용범위를 상당부분 축소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4. 보론: 행정기본법상 이의신청 제도와 대상판결의 관계 행정기본법 제36조가 시행됨에 따라 이의신청절차를 거쳐 불복하는 경우의 제소기간 문제는 해결되었다. 제4항에서 이의신청인이 이의신청에 대한 결과를 통지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을 명시하였기 때문이다. 이의신청이 기각된 이후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다툼의 대상을 특정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굳이 이의신청 기각결정의 처분성을 인정할 필요성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행정심판위원회나 법원으로서는 석명권을 적절히 행사하거나 종전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것으로 원고의 의사를 선해하는 등으로 청구취지의 특정에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처분청으로서도 이의신청에 대한 결과를 통지할 때에 불복의 대상을 명확히 특정함으로써 이에 관한 논란을 방지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박현정 교수(한양대 로스쿨)
이의신청기각결정
이의신청
지적재조사
박현정 교수(한양대 로스쿨)
2023-04-26
형사일반
- 대법원 2022. 11. 17. 선고 2022도7290 판결 등-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②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 판단과 위법성 판단
Ⅰ. 판례평석의 배경과 쟁점의 소재 코로나 사태를 통하여 우리 사회에 많은 자유에 대한 제한 현상이 행정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역학조사를 둘러싼 자유의 제한과 처벌이 강화되고 있다. 동법상의 역학조사거부에 대한 대법원과 원심의 판결을 소개하고, 역학조사의 성격과 위법성 판단기준 등과 관련하여 비판적인 판례평석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대상판결은 형사법원의 처분 등에 대한 선결문제 심사문제를 담고 있으며, 형사법과 행정법의 학문접경지대의 간학문적인 영역에 위치하여 행정법적 쟁점을 많이 담고 있다. 소송물이론과 비례의 원칙, 행정절차 등 쟁점이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점들을 제대로 규명하고 있지 못한 대법원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Ⅱ. 사실관계 '○○○○○ 센터'(이하 '이 사건 센터'라고 한다)는 △△△△△회(명칭 생략)가 운영하는 수련시설이다. 2020년 11월 27일부터 2020년 11월 28일까지 이 사건 센터에서 '□□□□□□ 역량 개발 행사'(이하 '이 사건 행사'라고 한다)가 개최되었는데, 이 사건 행사에 참석한 공소외 1이 2020년 12월 3일 대구광역시 ◇◇구보건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라고 한다) 양성 확진 판정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 사건 센터 시설을 관리하던 피고인 1은, 2020년 12월 3일 상주시의 코로나19 관련 역학조사 담당자인 공소외 2로부터 이 사건 행사 기간에 이 사건 센터 시설에 출입한 자들의 명단과 해당 시설에 종사하는 자들의 명단(위 각 명단을 합하여 이하 '이 사건 명단'이라고 한다)을 제출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도 피고인 2와 공모한 대로 이 사건 '명단의 제출을 거부'하였다. 아울러 피고인 1은 2020년 12월 4일 이 사건 명단을 제출해 달라는 상주시장 명의의 공문을 받고도 피고인 2와 공모한 대로 이 사건 '명단의 제출을 거부'하였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상주시장의 '역학조사를 거부'하였다. 결국 피고인들은 역학조사 거부로 인한「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감염병예방법'이라고 한다) 위반죄로 기소되어 유무죄 판결에 대한 심리를 받게 되었다.[1] [각주1] 저자가 공소사실의 취지를 요약하였음을 밝힌다. 대법원은 코로나 시대에서는 법치주의에충실하되, 보다 행정법과 보건·위생법 등 개별분야에 대하여 법리검토의 전문성을 심화하여 판결할 수 있도록 심리방식과 내용을 개선하여야 한다. Ⅲ. 대법원 판결요지[2] 1. 침익적 행정행위와 행정형벌의 구성요건에 대한 엄격해석의 원칙[3] 헌법은 국가형벌권의 자의적인 행사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범죄와 형벌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헌법 제13조 제1항).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법률, 그중에서도 특히 형벌에 관한 법률은 국가기관이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하지 않도록 명확하여야 한다.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 법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결정해 나가기에 충분한 기준이 될 정도의 의미와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는 형벌법규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이 될 수 있으므로[4], 불명확한 규정을 헌법에 맞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내용인 확장해석금지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다.[5] [각주2] 대법원 2022. 11. 17. 선고 2022도7290 판결 [각주3]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저자가 역시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부기하였음을 밝힌다. [각주4] 헌법재판소 2016. 11. 24. 선고 2015헌가23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각주5] 대법원 2021. 1. 28. 선고 2020도2642 판결 참조 2. 감염병예방법의 역학조사에 관한 구성요건과 행정형벌 규정의 해석의 범위 감염병예방법상의 문언과 체계 등을 종합하면, 감염병예방법상 ‘역학조사’는 일반적으로 감염병예방법 제2조 제17호에서 정의한 활동을 말하고, 여기에는 관계자의 자발적인 협조를 얻어 실시하는 다양하고도 창의적인 활동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는 수범자의 예견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 그 범위가 명확히 정해져야 한다. 따라서 형벌법규의 구성요건적 요소에 해당하는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의 ‘역학조사’는, 감염병예방법 제2조 제17호의 정의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1항, 제2항과 제29조,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4항의 위임을 받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정한 주체, 시기, 대상, 내용, 방법 등의 요건을 충족하는 활동만을 의미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6] [각주6] 필요한 범위 내의 판결요지만 적시하기로 한다. ‘요구나 제의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침’을 뜻하는 ‘거부’의 사전적 의미 등을 고려하면,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가 성립하려면 행위자나 그의 공범에 대하여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에서 정한 ‘역학조사’가 실시되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3. 원심판결의 하자에 대한 법리상의 검토 (1) 원심판결인 대구지법 2022. 5. 26. 선고 2021노3395 판결은 상주시장 측의 위와 같은 요청을 거부한 피고인들의 행위는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7] [각주7] 저자가 원심판결을 축약하였다. (2) 그러나, 쟁점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피고인들의 행위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에 해당하려면, 상주시장 측의 이 사건 명단 제출 요구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에서 정한 '역학조사'에 해당하여야 한다.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상주시장 측의 이 사건 명단 제출 요구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1항, 제2항과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4항의 위임을 받은 구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정한 역학조사의 주체, 시기, 내용, 방법 등의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심리한 다음, 그 결과를 토대로 피고인들의 행위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였어야 한다. (3) 그런데도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피고인들의 행위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쟁점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에는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에서 정한 ‘역학조사’의 의미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 Ⅳ. 이 사건 판결에 대한 평석 1. 행정형벌에서 요건이 되는 처분의 위법성에 대한 판단가부 (1) 형사법원에서 처분의 위법성 판단가능성과 선결문제 형사법원이 처분의 위법성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는지 선결 문제가 걸려있다. 다수설에 의하면 처분의 구성요건적 효력으로 논의된다. 행정소송법 제11조에서 형사법원의 처분의 위법성 판단에 관한 직접적인 규정이 없지만, 다수설과 판례는 처분의 위법성을 심사하여 형벌부과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8] [각주8] 대법원 2017. 9. 21. 선고 2014도12230 판결, 대법원 2016. 12. 29. 선고 2014도16109 판결, 대법원 1992. 8. 18. 선고 90도1709 판결 등 (2) 범죄의 개방적 구성요건 행정형벌의 요건은 개방적 구성요건이다. 행정형벌을 부과하기 위해서는 형벌의 요건이 되는 처분의 위법성에 대한 행정법적 법리 검토가 필요하다. 역학조사 명령이 위법하다면 거부하더라도 무죄를 판결하여야 하고, 반대로 역학조사 명령이 적법하다면 이에 대한 거부는 유죄로 판결하여야 할 것이다. (3) 처분의 소송물과 법원의 처분의 위법성 심사 범위에 대한 비판 처분의 위법성에 관한 소송물은 견해의 대립이 있지만, 처분의 위법성일반이라고 보는 것이 다수설과 판례[9]의 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를 심리함에 있어서 처분의 위법성일반을 전반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것은 소송물에 관한 오해를 하고 있다. 행정소송의 소송물은병합 사건이라 하더라도 처분의 위법성일반이므로 대법원은 역학조사의 위법성 전반에 관한 법률을 검토하였어야 한다. [각주9] 대법원 2004. 3. 18. 선고 2001두1949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97. 5. 16. 선고 96누8796 판결, 대법원 1990. 3. 23. 선고 89누5386 판결, 대법원 1989. 4. 11. 선고 87누647 판결 등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역학조사 명령의 위법성을 다음과 같이 검토해 보았어야 한다. 대법원은 보다 행정법과 연결된 문제 있어서 전문적인 법리를 검토할 수 있도록 성숙하게 발전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2.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 판단을 위한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 심사기준 (1) 역학조사의 성격 역학조사는 행정법상 행정조사에 해당한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약칭: 감염병예방법) 제18조에 의하면 역학조사는감염병이 발생하여 유행할 우려가 있거나, 감염병 여부가 불분명하나 발병원인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행정청이 지체 없이 역학조사를 하여야 하도록 하고 있다. 역학조사는 비권력적 사실행위인 임의조사가 아니라 권력적 사실행위인 강제조사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동법 제18조 제3항에 의하면 1호상의 정당한 사유 없이 역학조사를 거부·방해 또는 회피하는 행위, 2호상의 거짓으로 진술하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하는 행위, 3호상의 고의적으로 사실을 누락·은폐하는 행위 등에 대하여는 동법 제79조에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학조사는 그 자체는 권력적 사실행위로서 수인하명과 순수사실행위가 결합된 합성행위로서 전체적으로 행정소송법 제2조의 처분과 동일한 성격에 해당하는 기타 행정작용에 속한다. 역학조사를 명령의 형태로 발부하는 경우에는 행정청의 행정행위로서 처분에 해당하게 된다. (2) 역학조사의 내용상의 위법성과 비례의 원칙 등 역학조사와 같은 행정조사는 실정법상으로는 「행정조사기본법」의 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 행정조사는 법률의 우위원칙상 동 법 등을 위반해서는 안 되고, 나아가 법률의 규정이 있어야만 하는 법률유보의 원칙의 적용을 받는다. 다만 역학조사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제18조에 규정이 있다. 그밖에도 비례의 원칙에 의하여 행정조사가 과잉조사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동법은 제4조 제1항에서 행정조사는 조사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실시하여야 하도록 비례의 원칙을 준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한 동 규정은 다른 목적 등을 위하여 조사권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되도록 목적구속성의 원칙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대법원이나 원심은 단순히 역학조사명령이 있었는지 여부만 심리해서는 안 되고,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에 관하여 법리를 검토하여 유무죄를 판단하였어야 한다. (3) 역학조사의 절차상의 위법성과 감염병예방법 및 행정조사기본법 준수 등 역학조사는 행정조사기본법 제9조 내지 제13조상의 다양한 조사방법으로 수행될 수 있다. 「행정조사기본법」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일반법과 특별법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역학조사는 「행정조사기본법」제17조상의 서면에 의한 사전통지, 제24조 등에 의한 조사결과의 통지 등의 절차준수가 적법절차의 원리상 요구된다. 대법원이나 원심은 역시 이 부분을 포함하여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에 걸쳐 심리하였어야 한다. Ⅴ. 결론 대법원은 코로나 시대에서는 법치주의에 임하는 자세를 견지하여야 하며, 보다 행정법과 보건·위생법 등 개별분야에 대하여 법리검토의 전문성을 심화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대법원이나 원심이나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역학조사명령이 있었는지 여부만 심리해서는 안 되고,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에 관하여 보다 행정법적으로 전문적인 법리를 검토하여 유무죄를 판단하였어야 한다. 성봉근 교수(서경대)
신천지
코로나
역학조사
성봉근 교수(서경대)
2023-03-09
행정사건
대법원 2022.3.17. 선고 2021두53894판결 등
이의신청기각결정의 법적 성질 문제
Ⅰ. 사안 1. 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0두8676 판결 甲은 A 시장에게 주택건설사업계획승인신청을 하였으나, A 시장은 2008년 7월 31일 이를 불허가하였다(이하 '이 사건 제1처분'이라고 한다.). 甲은 2008년 10월 27일 A에게 민원법에 따라 이 사건 제1처분의 취소와 함께 위 주택건설사업계획의 승인을 구하는 내용의 이의신청을 하였고, 이에 대하여 A는 2008년 11월 25일 甲에게 이 사건 이의신청을 수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결정을 통지하였다(이하 '이 사건 제2처분'이라고 한다). 이 사건 제2처분은 독립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2. 대법원 2021. 1. 14. 선고 2020두50324 판결 B 공사가 2017년 7월 28일에 乙에 대하여 이주대책 대상자 제외결정(1차결정)을 통보하면서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또한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안내하였고, 이에 乙이 이의신청을 하자 2017년 12월 6일에 乙에게 다시 이주대책 대상자 제외결정(2차결정)을 통보하면서 '다시 이의가 있는 경우 본 처분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안내하였다. 2차결정이 1차결정과 별도로 행정쟁송의 대상이 되는가? 3. 대법원 2022. 3. 17. 선고 2021두53894 판결 C 시장이 丙 소유 토지의 경계확정으로 지적공부상 면적이 감소되었다는 이유로 지적재조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丙에게 조정금 수령을 2018년 1월 9일에 통지하자(1차 통지), 丙이 구체적인 이의신청 사유와 소명자료를 첨부하여 이의를 신청하였으나, C 시장이 지적재조사위원회의 재산정심의·의결을 거쳐 종전과 동일한 액수의 조정금 수령을 2018년 6월 12일에 통지한(2차 통지) 사안에서, 새로운 처분으로서 2차 통지는 1차 통지와 별도로 행정쟁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Ⅱ. 제 판결의 주요요지 1. 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0두8676 판결 구 민원사무처리법 제18조 제1항에서 정한 거부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이하 '민원 이의신청'이라 한다)은 행정청의 위법 또는 부당한 처분이나 부작위로 침해된 국민의 권리 또는 이익을 구제함을 목적으로 하여 행정청과 별도의 행정심판기관에 대하여 불복할 수 있도록 한 절차인 행정심판과는 달리 민원사무처리법에 의하여 민원사무처리를 거부한 처분청이 민원인의 신청 사항을 다시 심사하여 잘못이 있는 경우 스스로 시정하도록 한 절차이다. 이에 따라 민원 이의신청을 받아들이는 경우에는 이의신청 대상인 거부처분을 취소하지 않고 바로 최초의 신청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처분을 하여야 하지만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에는 다시 거부처분을 하지 않고 그 결과를 통지함에 그칠 뿐이다. 따라서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취지의 기각 결정 내지는 그 취지의 통지는 종전의 거부처분을 유지함을 전제로 한 것에 불과하고 또한 거부처분에 대한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의 제기에도 영향을 주지 못하므로 결국 민원 이의신청인의 권리·의무에 새로운 변동을 가져오는 공권력의 행사나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이라고 할 수 없어 독자적인 항고소송의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 2. 대법원 2021. 1. 14. 선고 2020두50324 판결 수익적 행정처분을 구하는 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은 당사자의 신청에 대하여 관할 행정청이 이를 거절하는 의사를 대외적으로 명백히 표시함으로써 성립된다. 거부처분이 있은 후 당사자가 다시 신청을 한 경우에는 신청의 제목 여하에 불구하고 그 내용이 새로운 신청을 하는 취지라면 관할 행정청이 이를 다시 거절하는 것은 새로운 거부처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관계 법령이나 행정청이 사전에 공표한 처분기준에 신청기간을 제한하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이상 재신청을 불허할 법적 근거가 없으며, 설령 신청기간을 제한하는 특별한 규정이 있더라도 재신청이 신청기간을 도과하였는지는 본안에서 재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이 적법한가를 판단하는 단계에서 고려할 요소이지, 소송요건 심사단계에서 고려할 요소가 아니다. 3. 대법원 2022. 3. 17. 선고 2021두53894 판결 구 지적재조사법 제21조의2가 신설되면서 조정금에 대한 이의신청 절차가 법률상 절차로 변경되었으므로 그에 관한 절차적 권리는 법률상 권리로 볼 수 있는 점, 丙이 이의신청을 하기 전에는 조정금 산정결과 및 수령을 통지한 1차 통지만 존재하였고 丙은 신청 자체를 한 적이 없으므로 丙의 이의신청은 새로운 신청으로 볼 수 있는 점, 2차 통지서의 문언상 종전 통지와 별도로 심의·의결하였다는 내용이 명백하고 단순히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내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정금에 대하여 다시 재산정, 심의·의결절차를 거친 결과, 그 조정금이 종전 금액과 동일하게 산정되었다는 내용을 알리는 것이므로 2차 통지를 새로운 처분으로 볼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2차 통지는 1차 통지와 별도로 행정쟁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함에도 2차통지의 처분성을 부정한 원심판단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 이의신청에 대한 기각결정의 독립된 처분성과 관련해 판례가 적잖이 혼란을 자아내고 있다. 행정기본법이 ‘이의신청에 대한 결과 통지받을 날’을 권리구제의 기산점으로 규정한 이상, 권리구제의 공백은 앞으로 생길 수가 없다. 대법원 판결이 조화될 수 없게 병존하는 것에 대한 문제 인식이 시급하다. Ⅲ. 문제의 제기 - 혼재된 판례 상황 이의신청에 대한 기각결정의 독립된 처분성 문제와 관련하여 판례가 적잖이 혼란을 자아내고 있다. 일찍이 대법원 2010두8676 판결은 부인하였는데, 최근의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과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은 대법원 2010두8676 판결과 다른 논거를 내세우면서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판례상으로 긍정설과 부정설이 혼재하고 있는 셈이다. 정반대의 상황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안과 법제의 차원에서 양자 사이에 분명하고 설득력 있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기왕의 판례를 변경하는 절차를 밟아 새로운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은 대법원 2010두8676 판결과 다른 접근을 나름의 근거로 정당화시켰고 이것이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에 이어졌다(긍정하는 문헌으로 임재남, 한국행정판례연구회 제380차 월례발표회 발표문, 2022. 10. 21.) Ⅳ.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의 논증의 타당성 여부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은 원심(서울고법 2020누30162판결)이 원용한 대법원 2010두8676 판결이 구 민원사무처리법 제18조에 근거한 '이의신청'에서 접근한 것을 문제 삼아, 대법원 2010두8676 판결의 사안에서는 행정청이 기각결정에 대하여 행정쟁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불복방법 안내를 하지 않았던 것과 대비시켜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의 사안에서는 불복방법 안내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이런 차이에 의거하여 대법원 2010두8676 판결을 원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의 사안에서의 이의신청은 일종의 임의적이다. 그것에 대한 기각결정에서의 불복방법의 안내가 기각결정의 법적 성질을 결정적으로 가늠한다는 것은 사리에 어긋난다. 행정청의 친절이 기각결정을 새로운 독립된 처분으로 접근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인데, 불복방법의 안내의 존재가 처분성을 인정하는 착안점이 될 수 있으나, 그것은 대상행위의 처분성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수범자에게 유리하게'라는 권리구제에 친화적 해석의 방법에 따른 것이다. 이미 당초결정의 처분성이 확고한 이상, 불복방법의 안내의 존재로 기각결정을 새로운 2차결정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한편 "우리 공사의 이의신청 불수용처분에 대하여 다시 이의가 있으신 경우 행정소송법에 따라 본 처분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을 알려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구와 관련해서,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의 논증과는 달리 이 불복안내의 문구는 '본처분'인 1차결정에 관한 것이지, 결코 이의신청기각결정인 2차결정에 관한 것이 아니다. Ⅴ.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의 논증의 타당성 여부 원심(대전고등법원 2021. 9. 30. 선고 2021누10048 판결)이 2차 통지가 1차 통지의 조정금 수령통지를 재차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1심(대전지방법원 2020. 12. 17. 선고 2019구합101143 판결)과는 달리 독립된 처분성을 부인한 데 대해서,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은 2차 통지를 독립된 새로운 거부처분으로 접근하였다.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의 논증 가운데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구 지적재조사법 제21조의2가 신설되면서 조정금에 대한 이의신청절차가 법률상 절차로 변경되었으므로 그에 관한 절차적 권리는 법률상 권리로 볼 수 있는 점"이다. 이의신청절차의 법정화가 이의신청절차를 새로운 신청절차로 보게 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 매우 회의적이다. 한편 지적재조사법상으로 조정금의 수령통지 또는 납부고지는 지적소관청에 의해 일방적으로 행해지고 결코 신청절차가 진행되지 않는다.따라서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이 이의신청을 -기왕의 신청과 구분된 의미에서의- 새로운 신청절차로 접근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Ⅵ. 맺으면서 - 조화될 수 없는 병존에 대한 문제 인식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과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이 기왕의 대법원 2010두8676 판결과 다른 접근을 강구하기 위해 전개한 논증은 이상에서 본 대로 수긍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런 접근이 가져다줄 정(+)의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의신청의 기각결정이 내려진 시점에 이미 1차결정에 대해 불가쟁력이 발생하여 권리구제의 공백이 빚어진 상황이 타개될 수 있다.그런데 행정기본법 제36조 제4항이 이의신청에 대한 결과 통지받을 날을 권리구제의 기산점으로 규정한 이상,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과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이 염려한 듯한권리구제의 공백은 앞으로 생길 수가 없다. 변화된 법상황에서 대법원 2010두8676 판결,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과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이 조화될 수 없게 병존하는 것에 대한 문제 인식이 시급하다. 김중권 교수(중앙대 로스쿨)
이의신청기각결정
이의신청
지적재조사
김중권 교수(중앙대 로스쿨)
2022-11-17
민사일반
대법원 2022. 8. 19. 선고 2020다220140 판결(판례공보 2022년, 1865면)
임치물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
[사실관계] 평석을 위하여 필요한 한도에서 사실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원고 회사는 A 자동차 회사와 사이에 배기가스 촉매제(‘촉매제’)를 제조·납품하는 계약을, 피고 회사도 A와 사이에 촉매제를 가공하여 촉매정화장치를 제조·납품하는 계약을 각 체결하였다. 2. 2012년경부터 2017년경까지 원고는 A와의 합의 아래 촉매제를 피고에게 직접 인도하였고, 피고는 그것을 사용하여 정화장치를 제조해서 A에 납품하였다. A는 원고가 인도한 촉매제의 수량이 아니라 A가 피고로부터 납품받은 정화장치에 들어간 촉매제의 수량에 따라 원고에게 촉매제 대금을 지급하였다. 3. 원심이 인정하고 대법원이 그대로 수긍한 바에 의하면, 원고가 인도한 촉매제 중 피고가 사용하지 않고 여전히 보관하고 있는 촉매제 1만9천여 개에 대하여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묵시적으로 임치계약이 성립하였다. [소송의 경과] 원고는 이 사건에서 위 남은 촉매제의 반환을 청구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이 중 일부에 대하여 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 완성을 항변하였다. 즉 “위 남은 촉매제에 대한 임치물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촉매제 인도시점부터 진행”하므로, 이 사건 소 제기로부터 소급하여 상사소멸시효기간인 5년보다 전에 인도받은 촉매제에 대한 임치물반환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원심은 그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치물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임치계약관계가 종료하여 수치인이 반환의무를 지게 되는 때, 즉 임치기한이 도래하거나 임치인이 해지권을 행사하여 그 반환청구권이 발생한 때부터 진행”하는데, “임치계약은 이 사건 소 제기 이후에 해지되었으므로, 임치물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판결 취지] “임치계약 해지에 따른 임치물의 반환청구는 임치계약 성립시부터 당연히 예정된 것이고, 임치계약에서 임치인은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하고 임치물의 반환을 구할 수 있는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치물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임치계약이 성립하여 임치물이 수치인에게 인도된 때부터 진행하는 것이고, 임치인이 임치계약을 해지한 때부터 진행한다고 볼 수 없다.”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잔여 촉매제에 대한 임치계약의 성립시점이 언제인지, 이 사건 잔여 촉매제가 피고에게 인도된 날이 언제인지, 그로부터 소멸시효기간이 도과하였는지 등을 심리한 다음, 소멸시효 완성 여부에 관하여 판단했어야 했다. 원심판결에는 임치물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평석] 1. 대상판결의 취지에는 찬성할 수 없다. 임치계약 자체에 관한 법리를 보다 실제에 맞게 전개한다는 관점, 특히 유상 또는/및 기한부 임치계약의 보편화 등의 관점에서도 문제될 수 있을 것이지만, 여기서는 아래의 두 가지 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대상판결은 형성권의 제척기간과 그 권리의 행사로 발생하는 청구권의 소멸시효에 대한 종전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뒤엎는 것으로서 그 타당성을 쉽사리 발견하기 어렵다(아래 2. 및 3.). 나아가 대상판결은 그 문언으로 보면 임치계약 외에도 당사자가 처음부터 계약을 해지할 권리를 가지고 그 권리가 행사되면 해지자가 원상회복청구권, 즉 계약상 급부의 반환청구권을 가지는 다른 계약유형들에 관하여도 그대로 발언력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그러한 귀결은 타당하지 아니하다(아래 4. 및 5.). 2. 해지권을 포함한 형성권 일반의 존속기간과 그 행사로 인한 원상회복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에 대하여 보기로 한다. (1) 해지권을 포함하여 이른바 형성권 그 자체에 대하여는 ―뒤의 3.에서 보는 대로 유류분반환청구에서와 같이 명문의 규정이 있는 등의 사정이 없는 한― 제척기간의 법제도에 의하여 그 존속기간의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 이유는, 최근의 문헌에 의하면, “형성권은 상대방의 채무 이행 등 협력 없이도 당사자 일방의 의사표시만으로 목적하는 법률관계가 형성되므로 형성권의 행사에 의하여 권리행사기간이 중단된다는 것은 관념할 여지가 없다. 또한 너무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다면 상대방과 제3자의 지위가 극히 불안해지므로 일정 기간 내에 이를 행사할 것이 요청된다. 이러한 특성상 형성권을 규율하는 데에는 대체로 제척기간이 어울”린다는 것이다(양창수 편집대표, 민법주해[IV], 제2판(2022), 358면(오영준 집필부분)). 그리하여 그 권리의 행사 없이 제척기간이 도과하면, 그 권리는 당사자의 원용이 없어도 당연히 소멸한다. 즉 취소, 해제·해지, 상계 등의 형성권은 권리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만에 의하여 직접 권리 변동이 일어나므로, 중단 등을 문제로 삼을 것도 없이 행사만 있으면 목적을 달하여 소멸한다. 한편 그 권리의 행사로 인하여 비로소 발생하는 ―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장래를 향한 원상회복청구권, 즉 당해 계약관계의 ‘청산’을 청구할 권리(민법 제550조, 제549조 제1항 참조. 이하 민법의 조항은 법명을 제시함이 없이 인용한다)에 대하여는 소멸시효의 제도가 적용된다. 그리고 그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당해 청구권이 발생한 때, 즉 일반적으로는 형성권이 그 권리자의 일방적 의사표시로 유효하게 행사된 때(이로써 형성권은 소멸하고 이제 당사자의 법률관계는 종국적으로 앞서 본 원상회복청구권으로 변화한다)로부터 기산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상판결은 단지 “임치계약 해지에 따른 임치물반환청구는 임치계약 성립시부터 당연히 예정된 것” 운운하는 것 외에 별다른 이유 제시 없이 종전의 법리를 기초에서부터 뒤엎고 있다. (2)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해지권을 포함하여 형성권의 특성은 그것을 행사하는 의사표시에 의하여 직접 법률관계(이하에서는 계약관계에 논의를 한정하고자 한다)의 변동이 일어나고 이로써 그 권리 자체는 소멸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권리자는 이를 행사하여 자신의 계약관계의 새로운 ‘형성’으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널 것인지 여부를 정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다는 것이 그 권리의 특징이다. 그러한 권리가 어떠한 기간만큼 존속하는가는 결국 어떠한 기간만큼 그러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그리하여 이는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 결정하여 이를 실행한 후에 발생하는 법률관계, 특히 그 일부로서의 계약정산청구권을 어떠한 기간 내에 행사하여야 하는가의 문제와는 별개라는 것이 통설의 이해이다. 이는 임치계약의 해지에서도 다를 바 없다. 임치인이 ‘언제라도’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것(제699조, 제698조 단서)은 임치관계의 유지 여부에 관한 의사결정 가능성에 관한 문제이다. 이는 이를 해소하는 것으로 결정한 다음에 그로써 발생하는 임치물반환청구권을 어떠한 기간 내에 행사하여야 하는가와는 별개인 것이다. 대상판결은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해지권이 있다고 하여 바로 임치물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이 기산된다고 한다. 우선 해지권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제척기간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그것은 돌연 소멸시효의 문제에 해소되어서 후자만이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더욱 결정적인 난점은 위와 같은 의사결정 가능성과 그 권리를 행사하는 방향으로의 결정 후의 계약관계 처리문제를 그 존속기간의 점에서 뒤섞고 있다는 데 있다. 3. 종전의 판례도 형성권의 제척기간과 그 행사로 인한 원상회복청구권에 대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은 태도를 취하여 온 것으로 이해된다. 예를 들면, 대법원 1991. 2. 22. 선고 90다13420(대법원판례집 39권 1집, 172면)은 '징발재산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20조 소정의 환매권(“이 법에 의하여 매수한 징발재산의 매수대금으로 지급한 증권의 상환이 종료되기 전 또는 그 상환이 종료된 날로부터 5년 이내에 당해 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가 군사상 필요 없게 된 때에는 피징발자 또는 그 상속인은 이를 우선매수할 수 있다”)에 대하여 “이는 형성권으로서 그 존속기간[위 법률상 일반적으로 10년]은 제척기간으로 보아야 한다”(다수의 대법원 판결을 인용한다. 꺾음괄호 안은 인용자가 가한 것이다)고 전제한 다음, “환매권의 행사로 발생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은 위 기간 제한과는 별도로 환매권을 행사한 때로부터 일반 채권과 같이 민법 제162조 제1항 소정의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진행되는 것이지 위 제척기간 내에 이를 행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한다. 또한 판례는 유류분반환청구권은 민법의 법문(제1117조 : “시효에 의하여 소멸한다”)에 좇아 소멸시효에 걸리는 것으로 보는 듯한데, 그 행사의 효과로 발생하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등에 대하여 대법원 2015. 11. 12. 선고 2011다55092 판결(법고을)은 “유류분반환청구권을 행사함으로써 발생하는 목적물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등은 전자의 청구권과는 다른 권리이므로, 그 이전등기청구권 등에 대하여는 민법 제1117조 소정의 유류분반환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가 적용될 여지가 없고, 그 권리의 성질과 내용 등에 따라 별도로 소멸시효의 적용 여부와 기간 등을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리고 위 이전등기청구권이 제1117조에 정하는 1년의 기간 내에 행사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그 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4. 그런데 앞서 본 대상판결의 판시는 상당한 파괴력을 가질 수도 있다. 그 판결의 문언은, 이 사건에서 문제된 임치계약뿐만 아니라 계약의 성립 당시부터 원칙적으로 일방 또는 쌍방의 당사자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다른 계약유형에서도 그 해지로 인하여 발생하는 원상회복청구권의 소멸시효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1) 그러한 계약유형의 대표적인 예로서는 기간의 약정이 없는 임대차계약을 들 수 있다. “임대차기간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 해지의 통고를 할 수 있다.”(제635조 제1항) 결국 그 경우에도 임대인의 목적물반환청구권은 “임대차계약 해지에 따른 임대차목적물반환청구는 임대차계약이 성립한 때로부터 당연히 예정된 것이고, 임대차계약에서 임대인은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하고 목적물의 반환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임대인의 목적물반환청구권은 임대차계약이 성립하여 애초 목적물이 임차인에게 인도된 때로부터 진행한다고 할 것인가? 임대차계약관계가 ―이 사건에서와 같이 그 계약이 상행위에 해당한다면― 5년, 아니라도 민법상의 원칙적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을 이미 넘긴 경우에 이는 명백히 부당하지 아니한가? 여기서 주의할 것은, 대상판결이 임치관계의 존속기간 유무 등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 없고 그 법리를 일반적인 형태로 설시하고 있으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어떠한 경우가 그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는 말이 없다는 점이다. 또한 우리의 통설은 동산뿐만 아니라 부동산도 임치의 목적물이 될 수 있다고 하므로, 그 점에서는 임대차계약과 다를 바 없다. (2) 나아가 조합계약에서는 어떤가? 조합계약은 “존속기간을 정하지 아니하거나 조합원의 종신까지 존속할 것을 정한 때”에는 각 조합원은 원칙적으로 언제든지 탈퇴, 즉 자신과의 관계에서 계약의 효력을 장래를 향하여 소멸시킬 수 있다(제716조 제1항. 동항 단서는 그 경우의 예외를 “부득이한 사유 없이 조합에 불리한 시기에 탈퇴하지 못한다”라고 정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조합계약에서도 “계약의 해지에 따른 정산청구는 계약 성립시부터 당연히 예정된 것으로서, 각 조합원은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하고 정산, 즉 조합재산의 지분의 계산(제719조 참조)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조합원의 정산청구권도 조합계약이 성립하고 이제 탈퇴하는 조합원이 애초 출자한 때로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하는가? 이 역시 조합계약관계가 5년 또는 10년 이상 유지된 경우에는 명백히 부당하지 아니한가? (3) 이러한 문제는 역시 무상임이 원칙으로 민법상 정하여진 위임계약에서도 제기될 수 있다. 위임계약은 일반적으로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제689조 제1항) 그러므로 이 경우에도 해지에 의하여 계약상 급부의 반환청구권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만일 위임인이 수임인에게 위임사무의 처리에 필요한 서류 기타 물품을 제공한 경우라면, 그것이 해지 당시 수임인에게 남아 있는 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임인에게 반환되어야 할 것이다. 위임인의 그 반환청구권도 대상판결의 판시가 요구하는 대로 역시 위임계약이 체결되고 물품이 인도된 때로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할 것인가? 위임계약이 그때로부터 기산하여 5년 또는 10년 이상 존속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어서, 그 기간의 경과로 위 반환청구권은 시효로 소멸하는가? 이와 같은 의문은 고용계약에 관하여도 제기될 수 있는데, 거기에서는 다른 측면의 난점도 있다. 고용기간의 정함이 없는 때에는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데, 해지의 의사표시가 있으면 그 의사표시가 도달한 때로부터 1개월의 경과로 해지의 효력이 생긴다(제659조 제1항, 제2항). 고용계약이 해지되고 1개월이 경과하여 해지의 효력이 발생하면, 사용자는 노무자에 대하여 그가 제공 또는 인도받은 공간이나 도구 등의 반환을 계약상 급부의 원상회복으로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고용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계약(아마도 보다 통상적이리라)에서 사용자가 가지는 그러한 계약상 급부의 원상회복청구권은 언제부터 기산된다고 할 것인가? 대상판결의 취지대로 계약이 체결되고 계약상 급부로서 공간이나 도구 등이 인도된 때로부터 해지의 효력이 발생하는 시기로 법이 정하는 그 1개월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그리하여 해지의 의사표시가 있었던 때로부터가 아니라 위 급부가 있고 1개월이 경과한 때로부터 소멸시효는 기산된다고 할 것인가? 5. 앞의 4.에서 본 계약유형들에서 계약 성립의 당초부터 그 일방 또는 쌍방에 해지권을 부여하는 규정은 일반적으로 임의규정의 성질을 가진다. 그러므로 그 외의 계약유형들에서도 당사자들은 그 일방 또는 쌍방에게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약정을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민법 제543조 제1항은 법률의 규정 외에도 계약에 의하여 해제 또는 해지의 권리, 즉 약정해제권과 약정해지권이 발생할 수 있음을 정면에서 정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가장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경우, 즉 매매계약에서 매도인에게 약정해제권이 부여된 경우를 전제로 하여 논의하여 보자.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도 ―대상판결의 문언을 그대로 빌리자면― “매매계약 해제에 따른 매매목적물의 반환청구는 매매계약 성립시부터 당연히 예정된 것이고, 매도인은 언제든지 계약을 해제하고 목적물의 반환을 구할 수 있는 것”임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도 매매계약의 해제에 따른 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은 매매계약이 성립하고 목적물이 매수인에게 인도된 때로부터 기산된다고 할 것인가? 만일 해제권의 발생이 일정한 요건에 걸려 있는 것으로 약정된 경우(아마도 이것이 보다 통상적이라고 하여야 할는지도 모른다)라고 하더라도, 그 요건이 충족되어 해제권이 발생한 때로부터는 매도인은 역시 “언제든지 계약을 해제하고 목적물의 반환을 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상판결의 취지에 의하면 이번에는 ―계약상 급부가 전부 또는 일부 행하여진 것을 전제로 한다면― 해제권이 발생한 때로부터 해제로 인한 급부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이 기산된다고 하는 말이 된다. 과연 그렇게 보아야 할까? 6. 결론적으로 종합하면, 이상의 여러 계약유형의 경우에 역시 임대인, 조합원, 위임인 및 노무자 등은 계약 성립 후(또는 그로부터 일정 기간이 경과한 후)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해지로 인한 원상회복청구권은 계약 해지의 의사표시를 한 때에 발생한다. 또한 약정해제권 또는 약정해지권이 부여된 경우에는 그 권리자는 언제든지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음은 물론이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여 해제 등의 의사표시를 한 때에 비로소 원상회복청구권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새로 발생한 원상회복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원칙으로 돌아가 응당 그 발생시부터 기산된다고 할 것이다. 임치의 경우라고 해서 달리 볼 이유는 쉽사리 찾을 수 없다. 양창수 석좌교수(한양대 로스쿨·전 대법관)
임치물반환청구권
소멸시효
임치계약
양창수 석좌교수(한양대 로스쿨·전 대법관)
2022-10-27
민사일반
대법원 2021. 12. 23.자 2018스5 전원합의체 결정
친손입양, 어제까지는 엄마 오늘부터 언니?
Ⅰ. 사실관계와 법원의 판단 1996년생인 친생모는 2014년 혼인신고를 하고 같은 달 사건 본인(이하 본인)을 낳았다. 외조부모(재항고인)는게 친생모가 생후 7개월이 된 본인을 두고 떠난 때부터 본인을 양육하고 있다. 외조부모는 그들이 친생부모와 교류가 없고 본인이 그들을 부모로 여기며 가족, 친척과 주변사람들도 부모로 대한다고 주장하여 일반입양의 허가를 청구하였다. 2015년 협의이혼한 친생부모는 입양에 동의하였다. 원심(울산지법 2017. 12. 18.자 2017브10 결정)은 1. 친손입양으로 가족 내부질서와 친족관계의 혼란이 분명하고 2. 후견으로 본인의 양육에 관한 법률상·사실상 장애를 제거할 수 있으며, 3. 후일 진실을 안 본인이 받을 충격 등을 고려하면 신분관계를 정확하게 하는 것이 그에게 이롭고, 4. 입양으로 친생부모가 본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게 하는 것이 본인의 복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입양허가의 청구를 기각한 제1심결정을 유지하였다. 외조부모는 친생부모의 입양동의를 내세워 재항고하였다. 대법원은 친생부모의 생존이 입양장애사유가 아니고 입양이 본인의 복리에 더 이익이 되면 이를 허가하여야 함을 이유로 파기환송하였다. 이로써 외손입양을 불허한 대법원 2010. 12. 24.자 2010스151 결정(친양자입양)과 대법원 2017. 03. 27.자 2016스138 결정(일반입양)은 폐기되었다. Ⅱ. 친손입양의 근거와 판단기준 대상결정은 외관과 달리 만장일치의 결정례이다. 반대의견도 친손입양이 법정친자관계의 의미와 자연스럽게 부합하지 않으며 친생부모의 열악한 사회적·경제적 지위로 인한 양육부족을 이유로 그 지위를 대체하는 입양이 옳지 않고 비밀입양이 장래 본인의 정체성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크므로 그것이 해소될 수 있음이 밝혀진 때에만 이를 허가하여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의 채용을 역설할 뿐이다. 대법원 1991. 05. 28. 선고 90므347 결정은 대를 잇기 위한 재종손의 사후입양이 소목지서에 기초한 관습에 어긋나지만 민법이 입양요건을 완화하고 조손입양이 공서양속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친손입양이 전통과 관습에 반하지 않고 민법도 이를 금지하지 않는다는 대상결정은 그 발전형이다. 그러나 친손입양의 관습에 대한 증거가 없다. 입양이 가족관계의 주춧돌이었던 조선사회도 항렬(行列)을 지키면서 백골입양 등 방계손의 입양사례를 전함에 그친다. 친손입양을 금지하는 법률규정의 존부와 강행법규 위반은 별개의 문제이다. 법률의 금지가 없으므로 친손입양이 허용된다는 주장은 법실증주의적이다. 대상결정은 신분법규정이 강행규정이고 민법에 근거 없는 양손입양은 그 위반으로 무효라는 대법원 1988. 03. 02. 선고 87므105 판결을 살피지 않는다. 대상결정이 언급한 미국과 독일의 혈족입양도 친손입양과 관계없다. 혈족입양이 입양의 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외국법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인식이 있어야 한다. 1. 입양아동의 복리(the best interest of the child): 친손입양의 무게는 본인의 복리에 집중된다. 공익적·후견적 견지에서 이를 강조한 대법원도 정작 이를 개념정의하지 않는다. 친생부모가 양육·부양하지 않는 이유, 입양의 정보제공과 자발적·확정적 입양동의의사, 양육의사의 부존재, 그리고 입양하는 조부모와 친생부모의 관계 등 대상결정이 서술한 입양요건은 일반입양에서와 같다. 본인의 복리는 객관화하여 검증할 수 없다. 이는 입양으로 자녀의 삶의 조건이 현격히 변경되어 그 인격의 향상이 기대될 때에 긍정된다. 입양은 본인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 본인의 윤리적·정서적 복리가 입양의 물질적·기능적 효용에 앞서므로 원가정양육이 친손입양에 우선한다(2018. 03. 12. 오스트리아최고법원[OGH] 3 Ob 198/17i 판결). 멀쩡히 친생부모가 있음에도 나은 양육환경을 강조하는 것은 본인의 심리적·정신적 정체성보호에 소홀한 유물론적 태도이다. 그리고 양부모가 제대로 부모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겨질 때에만 입양을 허가하여야 한다. 입양전 친족관계가 존속하고 본인의 성과 본이 바뀌지 않는 일반입양에서 본인의 정서적 불안은 불 보듯 뻔하다. 부모라 하기에 나이가 많고 게다가 성도 다른 조부모가 버젓이 학부모회에 참석하는 광경은 본인의 행복과 거리가 멀다. 입양전 친족관계의 완전단절을 가져오는 완전입양만을 가진 국가도 한결같이 본인-친생부모관계의 완전절연을 친손입양의 승인조건으로 하고 생부모가 생존한 직계손의 입양을 주저한다. 2010. 08. 23. 스위스연방법원(Bundesgericht) 5A_198/2010판결, 성년의 친손입양을 다룬 2001. 05. 17. 독일 Celle고등법원(OLG) 17 30/01결정과 2016. 02. 23. Koblenz고등법원 7 UF 758/15결정은 조부모가 본인이 출생한 때부터 양육하는 등 부모-자녀관계가 장기간 고착화되고 갈등발생의 염려가 더 이상 없어 친손입양이 윤리적으로 정당화되고 친생부모가 인근에 거주하거나 본인을 방문하는 등 관계를 계속하거나 그의 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중대한 갈등위험을 들어 이를 단호히 불허한다. 미국도 친생부모의 부재, 조부모-본인의 특별관계와 법원에 의한 친권박탈명령을 거쳐 친손입양에 문을 열지만 가족갈등의 위험 때문에 특별후견명령(Social Guardianship Order)이 훨씬 선호된다. 2. 친손입양의 이익: 입양은 침해된 과거의 복리를 제거하고 장래의 복리를 위한 제도이고 가정법원의 허가는 그에 개입하는 국가의 후견이다. 미성년후견의 존재는 입양의 장애사유가 아니다. 영속적 부모·자녀관계를 맺는 입양과 친권자 없는 미성년자를 보호·감독하고 대리하는 후견은 다르다. 친손입양으로 후견을 넘는 개선된 환경이 주어져야 하지만 손자녀를 자녀로 바꾸는 이익이 분명하지 않다. 친손입양으로 조부모는 친권자로서 본인의 신원을 확보하여 양육하고 의료결정을 한다. 그뿐이다. 부모·자녀관계의 형성 외에 친손입양의 효과는 미성년후견과 동일하며, 조부모의 양육비부담은 오히려 가중된다. 미국과 유럽의 친손입양은 의료와 자녀수당과 주거수당 등 복지를 위한 사회보장의 혜택과 상속법적 이익을 동반한다. 친손입양은 국가가 최종후견인의 지위에서 아동의 복리를 수호할 의무를 조부모에게 떠넘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 Ⅲ. 대상결정(2018스5)의 검토와 평가 대상결정은 일반관념과 동떨어지고 이론의 완성도가 낮다. 가르치겠다는 의욕과 사명감에 사로잡힌 공자님 말씀으로 채워진 이유(4. 나, 다, 마, 반대의견 나-마, 바)는 계몽주의적이며 심지어 주석서의 느낌마저 준다. 재판활동은 법률가의 교육을 목적하지 않으며 하여서도 아니된다. 길게 설명한 '아동권리협약'과 '입양특례법'도 친손입양과 직접 관계없는 뻔한 사설이다. 1. 시간의 실패: 본인의 복리는 입양으로 드디어 본격화된다. 친손의 일반입양으로 초래될 수 있는 가족의 내부질서와 친족관계의 혼란을 가볍게 보고 입양후의 복리를 소홀히 한 대상결정은 부주의하고 무책임하다. 친족관계의 존속과 본인의 복리는 조화되기 어렵다. 친손입양으로 어제의 부모가 오늘의 형제자매가 되고 어제의 형제자매가 오늘의 숙질이 되는 잡탕친족관계가 불가피하다. 이는 조부모-본인간에 진정한 부모·자녀관계의 자연스러운 형성을 막는 걸림돌이다. 2. 법이론의 실패: 대상결정은 주로 친양자입양(제908조의2, 완전입양)이 문제된 종전 결정례와 달리 일반입양(제867조)을 관심사로 한다. 이들은 거의 어김없이 '어린 외손' 입양을 청구원인으로 한다. 친손입양된 본인은 친생부모에 대하여 자녀와 형제자매의 이중신분을 가지므로 친족관계의 혼란과 불협화음을 막을 길이 없다. 이를 직면한 대법원은 가족의 내부질서와 친족관계에 혼란이 일어날 수 있음을 들어 친손입양을 불허한 대법원 2017. 03. 17.자 2016스138 결정을 구시대의 관념으로 몰고 불분명한 본인의 복리를 최우선가치로 내세운다. 이어서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개인과 가족의 자율적 결정권의 존중을 판시한 대법원 2019. 10. 23. 선고 2016므2510 전원합의체판결을 제시하여 그러한 혼란과 본인정서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추단하여 입양을 불허하는 것은 입양관계인의 판단과 선택권을 무시하는 결과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입양관계인이 본인은 아니다. 대상결정에서 친손입양의 요건이 되는 부모관계의 완전한 단절에 관한 논거가 부족하다. 또한 입양의 무효, 취소와 파양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다. 끝으로 대상결정을 관철하려면 입양하는 조부모측의 종전 친족관계가 종료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Ⅳ. 마치며 대상결정은 본인의 복리의 이름으로 일반입양에 의한 친손입양을 일반화한다. 그러나 친손의 일반입양을 배척하고 친양자 입양으로 유도함이 옳았다는 아쉬움이 든다. 의욕을 앞세워 신분세탁을 용인한 대상결정은 법실증주의적이며 계몽주의적·유물적이다. 재판은 미래를 선도하는 정책이 아니다. 법관은 조리(Natur der Dinge)와 자연법적 질서에 터잡은 일반상식을 가져야 한다. 이진기 교수(성균관대 로스쿨)
친부모
손주
조부모
복리
입양
이진기 교수(성균관대 로스쿨)
2022-04-18
민사일반
- 대법원 2020. 2. 27. 선고 2019다223747 판결 -
증권발행시장에서의 전문가책임
[사안의 개요] 1. XX이쿼티는 M&A를 목적으로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된 회사로, 2009년 11월 상장회사인 주식회사 씨모텍의 최대주주로부터 지분과 경영권을 300억원에 매수하였다. XX이쿼티는 인수자금 대부분을 차입금으로 조달하였으나 자본금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공시하였다. XX이쿼티가 씨모텍의 이사회를 장악한 다음 씨모텍은 바로 약 300억원을 유상증자하였고, 다시 유상증자를 계획하여 2011년 1월 약 286억원을 유상증자하였다. 2차 유상증자 직후 씨모텍은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매매거래가 정지되고 상장폐지되었다. 그 과정에서 XX이쿼티의 실제 사주들이 1차 및 2차 유상증자 대금을 포함, 씨모텍의 자산에 대해 거액의 횡령, 배임행위를 하였음이 밝혀졌다. 씨모텍은 기업회생을 신청하였으나 결국 청산되었다. 2. 2차 유상증자 당시 D증권은 증권인수인으로서 증권신고서에 인수인 의견을 작성하였는데, 씨모텍의 최대주주 변경에 따른 경영불안 리스크를 언급하면서 특히 XX이쿼티의 인수자금 조달에 대하여 "전체 300억원에 대해서 30억원 자기자본과 270억원 외부차입금으로 조달하였음. 외부조달자금 270억원은 220억원이 자본금으로 전환되었고, 나머지 50억원에 대해서도 자본금으로 전환할 예정임"이라고 기재하였다. 그런데 XX이쿼티는 외부차입금이 전혀 자본금으로 전환되지 않은 상태였다. 금융감독원은 D증권에 대하여 기업실사과정에서 최대주주의 차입금의 자본금 전환여부를 등기부등본 등으로 확인하지 않은 채 관련자의 보고만 믿고 인수인 의견란에 사실과 다르게 기재하였다는 이유로 기관주의 및 과태료 5000만원을 부과하였다. 또한 증권선물위원회는 D증권에 대하여 과징금 4억여원을 부과하였다. [소송의 경과] 1. 2차 유상증자에 참여하였다가 손해를 본 186명은 2011년 10월 D증권을 상대로 증권관련 집단소송을 제기하였다. 집단소송에 대한 법원 허가를 거쳐 본안판결이 2020년 2월 27일 대법원에서 확정되었고, 2021년 5월 분배절차가 종료되었다. 2. 법원은 증권신고서에 기재된 최대주주인 XX이쿼티의 자본금 전환 여부는 투자자들의 투자판단에 영향을 주는 중요사항에 해당한다고 보고, D증권이 법인등기부등본을 확인하지도 아니한 것은 증권인수인으로서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고 하여 D증권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한편, 집단소송으로 청구할 수 있는 총원의 범위는 2차 유상증자에 참여해 씨모텍 주식을 취득하여 매매거래정지일까지 계속 보유한 자로 한정하였다. 손해액은 발행가액(2390원)과 청산금(약 6원)의 차액을 총원의 보유주식수에 곱한 145억원이며, 법원은 손해분담의 공평을 이유로 D증권의 손해배상책임을 총 손해의 10%로 제한하였다. [평석] 1. 사안은 증권사기에 대하여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담당한 증권회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증권관련 집단소송으로, 실제 위법행위자들의 책임재산이 부족하여 인수인인 증권사에게 책임을 물었다. 거의 10년의 소송 끝에, 법원은 인수인 증권사가 책임이 있다고 하였으나, 286억원 유상증자에 9000여명이 참여한 증권사기에 대하여 인정된 손해액수는 145억원에 불과하고 증권사는 그 중 10%만 책임을 지게 되었다. 2. 이론적으로는 주식발행시장에서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모두 공시되면 투자자들이 이를 읽고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하여 증권사기꾼이나 경제성 없는 회사에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투자자들은 스스로 판단을 하지 않고 증권시장의 여러 전문가들에게 기댄다. 재무정보에 대하여는 회계법인의 감사의견을, 공모주식의 가치와 위험에 대하여는 인수증권사의 의견을, 채무증권의 상환가능성은 신용평가기관의 신용평가를, 구조화증권의 구조는 법무법인의 법률의견서를 믿고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문가들이 발행시장의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수행하여 증권사기꾼의 시장진입을 사전에 걸러낼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반면, 문지기 역할을 제대로 못한 전문가들에게 지나치게 엄중한 책임을 물으면 전문가의 활동비용을 증가시켜 자본시장을 위축시키게 된다. 대상판결이 D증권에게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책임액수를 손해의 10%로 한정한 것은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고려한 것이다. 3. 대상판결은 손해배상액의 제한요소로 다음을 들었다. ① 손해의 상당 부분은 XX이쿼티 측의 씨모텍 자산에 대한 대규모 횡령, 배임행위로 인한 것이다. ② D증권이 XX이쿼티 측의 횡령, 배임행위에 관여하거나 알고도 방치한 것은 아니다. D증권이 기업실사 과정에서 주의를 소홀히 한 잘못이 있어도 손해 전부를 배상케 하는 것은 공평에 반한다. ③ D증권은 증권인수업무의 대가로 수수료 약 4억8000만원을 받기로 했고 씨모텍이 회생절차에 들어가 이 중 약 1억원만을 받았으며, 이 금액을 초과하는 과태료 및 과징금을 냈다. 그런데 D증권의 인수인으로서의 문지기책임은 이 사건 유상증자와 같은 증권사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실사를 철저히 하는 것이고 단순히 '인수인의 의견'에 잘못 기재한 책임만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사유는 90%의 책임을 면할 정도는 아니다. 증권사들이 사용하는 인수계약서에는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경우 책임을 발행인에게 전가하는 면책약정(indemnification)을 두는데, 상대적 이익비율(발행인의 공모금액과 인수증권사의 수수료수익의 비율)에 따라 책임을 분담하기로 하거나, 인수증권사는 수수료 금액을 한도로 책임을 진다고 정하기도 한다. 미국 SEC와 법원은 이러한 면책약정은 문지기책임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공서에 반하여 무효라고 본다. 이 점에서 책임감경이유로 D증권의 수수료 수익을 언급한 것은 아쉽다. 또한 D증권의 잘못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것을 감경사유로 인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4. 법원은 다양한 사건에서 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증권소송이나 금융투자상품소송에서는 피해자에게 전혀 과실이 없는데도 또는 위반자의 행위와 비교할 때 지나치게 약한 사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책임 원칙'의 논리로 투자 액수가 크거나 투자대상이 복잡할수록, 위험한 투자대상에 투자할수록 책임제한비율이 커지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피고가 그러한 위험한 투자대상에 투자하도록 원고들을 위법하게 유인한 행위자 아닌가? 자기책임 원칙은 투자자가 애초에 인수하려고 한 위험을 넘어서까지 손해배상을 해 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 인수한다고 인식한 위험의 범위에 대해 피고가 사기를 친 경우에 적용될 것은 아니다. 또한, 증권의 유통구조상 다액의 피해에 불구하고 극히 일부 피해자들만 소를 제기하므로, 지나친 책임제한은 시장참여자들에게 위법행위를 해도 제한된 책임만 진다는 잘못된 인식을 준다. 전문가들에게 적극적으로 문지기 역할을 장려하려면 오히려 징벌적 손해배상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5.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원고들에게는 과실이나 손해방지가 가능한 지위가 전혀 인정되지 않는데도 손해액의 90%를 부담시켰다. 고의의 위법행위자가 별도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D증권에게 손해 전체를 배상하라는 것은 일견 형평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D증권이 부담하지 아니하는 손해는 위법행위자가 아니라 결국 피해자들이 고스란히 부담하는 결과에 비추어 볼 때, D증권의 입장이 아니라 전체의 맥락에서 형평에 대해 고민하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6. 마지막으로, 동일한 주식을 유통시장에서 취득한 자는 자본시장법의 특칙과 집단소송을 이용할 수 없어 배상을 받는 데에 한계가 있다. 사안에서 집단소송의 총원을 2차 유상증자 참여자 중 거래정지일까지 주식을 보유한 자로 한정하였는데, 거래정지일 이전에 주식을 처분한 자는 손해가 없으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그러면 이 주식에 대한 손해는 누가 구할 수 있는가? 법원은 자본시장법 제125조의 특칙을 발행시장 취득자에게 한정하므로(대법원 2015. 12. 23. 선고 2013다88447판결 등) 전득자는 민법 제750조로 손해배상을 구해야 하는데, 유통시장 취득의 경우 증권신고서를 믿고 거래한 것이 아니어서 인과관계가 부정된다. 그러나 상장법인이 추가로 유상증자를 하는 경우 추가 유상증자분이 상장되면 기존 주식과 구분되지 않고 동일한 가격에 거래되므로, 추가 유상증자를 위한 증권신고서의 부실기재 내용은 해당 종목의 시장가격에 완전히 반영된다. 부실기재 발각 전 부양된 주가에 주식을 취득한 자들은 손해배상청구권이 인정되는 투자자의 지위를 취득한 자로 볼 수도 있다. 전득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지 아니하면 위법은 있는데 아무도 배상을 못받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김연미 교수(성균관대 로스쿨)
자본시장법
집단소송
주가조작
씨모텍
증권거래
김연미 교수(성균관대 로스쿨)
2021-12-23
형사일반
- 대법원 2021. 9. 9. 선고 2020도12630 전원합의체 판결 -
공동 거주자 1인의 승낙을 얻어 주거에 들어간 행위가 다른 공동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 주거침입죄의 성립 여부
Ⅰ. 들어가며 불륜(혼외 성관계)의 목적으로 일방 배우자의 승낙을 받아 그 집에 들어간 경우 주거침입죄 성립 여부에 대해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종래 대법원 견해를 변경, 주거침입죄 성립을 부정하였다. 다수의견은 전체 판결문 90여 페이지 중 단 3페이지에 불과한 다소 기이한 판결이다. 그 결론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으며, 오히려 문제되는 구체적 사례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상세한 논증은 '공판알리미' 9월호(대구지검)에 실린 '공동 거주자 1인의 승낙을 얻어 주거에 들어간 행위가 다른 공동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 주거침입죄의 성부'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Ⅱ. 대법원 판결의 요지 피해자의 처(妻) A와 내연관계에 있는 남성 피고인이 불륜 목적으로 피해자의 집에 (A가 문을 열어 주어) 3회에 걸쳐 들어간 사안에서 다수의견은 ①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은 '사실상의 평온', ② '침입'은 '사실상의 평온을 해치는 행위 태양'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③ 공동 거주자는 상호간 법익이 일정 부분 제약될 수밖에 없음을 용인한 것이므로, 공동 거주자의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 방법'에 따라 들어갔다면 다른 거주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한다는 사정만으로는 사실상의 평온을 깨뜨린 것으로 볼 수는 없어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김재형 대법관의 별개의견은 보호법익을 주거권으로 보고, 침입은 주거권자의 의사에 반하여 들어가는 것으로 보면서도 일방 공동 거주자의 승낙을 다른 공동 거주자가 용인하여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안철상 대법관은 외부인의 출입을 반대하는 공동 거주자가 그 주거 내에 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다른 공동 거주자의 승낙을 용인하여야 한다는 취지에서 같은 결론이다). 반면, 이기택·이동원 대법관의 반대의견은 종래 대법원 판례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공동거주자 중 한 사람의 승낙이 있더라도 다른 거주자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는 경우 그 거주자의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해치는 결과가 되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였다. Ⅲ. 평석 1. 일방 배우자의 불륜을 위한 외부인의 출입은 다른 일방 배우자의 추정적 의사가 아닌, 명시적·묵시적 의사에 반하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거주자의 명시적·묵시적 의사에 반하는 경우에만 주거침입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시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일방 배우자의 불륜을 대비하여, 예컨대, 미리 '관계자 외(外) 출입금지'처럼 표시를 하거나, 배우자에게 (불륜을 예상하고) 사전에 '불륜 상대를 집에 들이지 말라'고 명시토록 요구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 하겠다. 2. 불륜을 위해 주거에 들어가는 행위 자체로 다른 일방 배우자의 '주거의 사실상의 평온'은 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불륜을 위해 외부인이 들어와 거실, 주방, 욕실은 물론 내밀한 공간인 침실에 이르기까지 누빈(?) 사실을 알았다면 통상적인 출입 방법이라 하여 그 주거의 평온이 유지된 것인지 의문이다. 사실상의 평온은 현실적 평온뿐만 아니라 잠재적 평온(기대되는 사실상의 평온, 안철상 대법관 표현으로는 심리적 평온)도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거주자 현존 여부 불문 그의 평온은 침해될 수 있고, 따라서 빈 집에 '평온하게' 들어가는 것도 주거침입이 됨을 설명할 수 있다. 3. '침입'의 의미는 거주자의 의사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다수의견은 거주자의 의사에는 반하지만 평온하게 들어간 경우 주거침입죄 성립을 부정하게 되는데, ① 평소 자유롭게 드나들던 사람이라도 집주인은 언제든 그 출입을 허락하지 않을 자유가 있고, ② 외부인이 (특히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 자신의 의사에 반해 들어오는 것까지 수인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③ 빈 집에 통상적인 방법으로 평온하게 들어가는 경우에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점에서 '침입'은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여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사실상의 평온을 침해하는 태양'으로 침입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일반인은 물론, 법조인들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개념은 지나치게 불명확하다. '침입' 여부는 거주자의 의사에 따라야 하고, 그것이 사회통념상 사실상의 평온을 깨뜨렸는지 여부는 법률적·규범적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공동 거주자의 일상생활의 경험칙상 사회상규의 범위 내라면 다른 공동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주거침입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부부 일방이 정말로 싫어하는 사람을 집에 초대하는 것이나, 처(妻)가 부부간 불화 중 시댁 식구들의 출입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시댁 식구들이 남편 허락을 받아 집에 들어가는 것 등은 사실상의 평온을 깨뜨린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4. 범죄 목적 또는 그에 준하는 가벌성 있는 행위에 대한 처벌 공백이 생긴다. 목적이 불순하면 대체로 거주자의 의사에 반한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해석이며, 그 의사에 반한 침입은 대체로 주거의 사실상의 평온을 해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히 범죄의 목적으로 타인의 주거 등에 들어가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종래 통설과 판례, 일본 판례). 다수의견에 따르면, 범죄 목적 침입 시 목적된 범죄를 실행하지 못한 경우 주거침입으로도 처벌할 수 없게 되어 처벌의 공백이 발생한다. 범죄는 아니라도 공동 거주자의 명백한 의사에 반하여 들어가 사실상 평온을 깨뜨릴 수 있는 경우도 가벌성이 있다(일본 판례도 주거침입죄 성립을 인정). 예컨대, ① 불륜의 증거를 잡으려고 타인의 주거에 들어간 경우(판례상 인정되었음). ② 룸메이트를 왕따시키려고 다른 일방 룸메이트의 동의를 얻어 집안에 들어가 몰카를 설치한 경우, ② 학생이 교사의 승낙을 얻어 교무실에 들어와 시험문제 답을 모두 암기하여 돌아가 암기한 내용으로 시험을 치른 경우 등도 가벌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5. 주거침입죄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확장된다고 볼 수 없다. 범죄 목적 또는 거주자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는 경우를 침입의 기준으로 삼더라도 이에 대한 입증책임이 검사에게 있고, 그것이 규범적으로 사회통념상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 국민의 기준에서) 사실상 평온을 침해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통계상 2019년 한해 전체 범죄 발생 건수는 176만7684건임에 반해 주거침입 범죄 발생 건수는 1만7181건(0.97%)에 불과(이 중 공동거주자 일방의 승낙만을 받고 다른 일방의 의사에 반하여 침입한 사례는 더욱 소수일 것이다)하다. 과연, 가벌성의 범위가 부당하게 확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6. 공동 거주자의 법익 보호 비교형량에 실패하였다. 공동 거주자 일방의 권리가 제한될 수 있음을 용인하거나, 어느 일방의 권리가 우선할 수 없다는 논리는 통상적인 공동생활에 적용되는 것일 뿐이다. 사회통념상 허용된 범위를 넘는 경우에까지 적용된다고 보면 이는 수인한계를 넘는 것이다. 특히 부부 사이는 배우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자의적으로 주거 내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으며, 특히 가정 내 주거의 평온을 명백히 해친다고 볼 만한 경우까지 부부 일방이 용인하여야 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별개의견은 남편 허락으로 집에 들어온 친구를 처(妻)의 의사에 반한다고 하여 처벌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하나, 종래 대법원도 이러한 경우까지 처벌하는 취지가 아닐 뿐만 아니라, 불륜을 목적으로 집에 들어온 외부인을 용인하여야 한다는 견해가 오히려 상식에 맞지 않는다). 불륜을 저지르면서 그 와중에 상대방의 집까지 들어오는 극소수의 사람과 하루하루를 가정에 충실하면서 생활하는 대다수의 사람들 중 누구를 더 보호해야 하는가? 의문의 아닐 수 없다. 7. 사회통념,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 국민의 법감정에 반하는 해석이다. 일반인들에게 "누가 당신 배우자랑 바람을 피우려고 집에 들어왔다면 나쁜 짓이긴 해도 그것이 당신 주거의 사실상의 평온을 해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한다면 이를 수긍할 일반 국민들이 과연 있을까? 필자도 이 사건과 같은 상황을 실제로 직접 경험한다면 "내 사실상의 평온은 그대로 유지된 것이니, 주거침입 고소는 어렵고, 손해배상이나 위자료나 많이 받으면 되겠다"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8. 퇴거불응죄와의 관계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다수의견(또는 별개의견)은 일방의 승낙이 있으면 현존하는 다른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주거침입을 부정하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에 따르면, 주거 내 현존하는 거주자가 명시적으로 퇴거를 요구한 경우 그 거주자의 사실상 평온은 이미 깨어진 상황임에도 불구, 이에 불응하더라도 퇴거불응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Ⅳ. 맺으며 다수의견은 이 판결로 인하여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의문들에 대해 침묵하고 있으며, 어느 범위에서 종전 판례가 변경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아 향후 혼란이 예상될 뿐이다. 처벌 범위를 오히려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가벌성 있는 행위조차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이러한 행위로 처벌받는 사람이 극소수임에도,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예전에는 주거침입으로 처벌되지 않기 위해 그나마 은밀하게 자행되었지만)로 적발된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줌으로써, 이제는 당당하게 이를 저지르게 하면서까지 지금도 가정을 지키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의 '마음의 사실상의 평온'을 깨뜨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결론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이 사건 주임검사가 되었을 때 "대법원 판례가 있으니 기소할 수 없다"면서 과감히 불기소결정서를 쓸 수 있을지 도무지 자신이 없다. 백승주 부장검사 (대구지검 공판제1부)
주거침입
주거침입죄
내연녀
불륜남
유부녀
백승주 부장검사 (대구지검 공판제1부)
202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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