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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22. 12. 1. 선고 2022두39185 판결
‘학교 내 봉사’ 징계의 범위와 한계
학생징계는 징계권자인 학교의 장의 교육적 재량행위이지만, 학생의 지위에 관한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사법적 통제의 필요성이 매우 큰 분야이다. 대상판결은 학생징계에서의 ‘징계법정주의’를 전제로 하면서 학생징계는 학교교육제도의 유지 및 학생에 대한 교육적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으나, 법령이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은 징계내용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법리를 최초로 제시하였다. Ⅰ. 사실관계 1. 원고(중학교 재학생)는 2019. 10. 22. 7교시 수업 중 화장실을 간다고 하면서 당시 수업을 진행 중이던 교사의 허락을 받은 후 교실 밖으로 나왔다가, 같은 날 16:00경 재학중인 ○○중학교(학년 반 생략) 앞 복도에서 벽에 기대어 바닥에 앉아 휴대전화를 사용하여 카카오톡 메신저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다가 3학년 생활지도 담당 교사에게 적발되었다. 2. 생활지도 담당교사(이하 ‘해당 교사’)는 원고에게 휴대전화 제출을 요청하였으나 원고는 생활지도 담당 교사를 쳐다보지도 아니하고 대답하지도 아니한 채 계속하여 휴대전화를 사용하였다. 이에 생활지도 담당 교사는 원고에게 ‘생활지도교사로서 지도를 하는 것이고, 지도를 듣지 아니하면 지시 불이행이 된다’라는 취지로 경고하면서 두 번 더 휴대전화를 제출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원고는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아니하였다. 3. 해당 교사는 원고에게 학생부장교사를 데려오겠다고 한 후 학생부장교사를 데려왔고, 학생부장교사가 원고에게 사실 확인을 하는 중에도 원고는 휴대전화를 사용하면서 대답하지 아니하였고, 해당 교사는 학생부장교사에게 사안을 설명하고 학생부장교사가 원고에게 ‘휴대전화를 제출하라’는 취지로 말하는 중에도 원고는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아니하면서 ‘이런 분이셨구나. 학생들이 선생님에 관하여 말을 많이 하는데’라는 취지로 말하였다. 4. 이에 피고(○○중학교장)는 2019. 11. 5. ‘수업 시간 중 핸드폰 휴대 및 사용, 교사 지시 불이행 및 지도 불응’을 이유로 원고에게 ○○중학교 학교생활 규정 제8조 제2항, 제3항, ○○중학교 학생생활협약 1. 제3항, 강원도교육청 교권침해사안 처리 규정 제4조 제4호에 따라 교내봉사 2시간(교내환경정화활동 1시간, 사과편지작성 1시간)의 징계처분을 하였다. 5. 참고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 제1항은 학생징계의 유형으로서 학교 내의 봉사(제1호), 사회봉사(제2호), 특별교육이수(제3호), 1회 10일 이내 및 연간 30일 이내의 출석정지(제4호), 퇴학처분(제5호)을 규정하고 있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초·중등교육법 및 그 근간이 되는 교육기본법에 따르면, 학교교육은 학생의 창의력 계발 및 인성 함양을 포함한 전인적 교육을 중시하여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학생의 기본적 인권이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하며, 교원은 학생 개개인의 적성을 계발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고(교육기본법 제9조, 제12조, 제14조), 이러한 학교교육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령과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징계할 수 있되, 그 징계는 학생의 인격이 존중되는 교육적인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구 초·중등교육법(2021. 3. 23. 법률 제1795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8조 제1항 및 같은 법 시행령 제31조 제2항]. 그렇다면 의무교육대상자인 초등학교·중학교 학생의 신분적 특성과 학교교육의 목적에 비추어 교육의 담당자인 교원의 학교교육에 관한 폭넓은 재량권을 존중하더라도, 법령상 명문의 규정이 없는 징계처분의 효력을 긍정함에 있어서는 그 처분 내용의 자발적 수용성, 교육적·인격적 측면의 유익성, 헌법적 가치와의 정합성 등을 종합하여 엄격히 해석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원심[서울고법 2022. 1. 26. 선고 (춘천)2020누706 판결]은 원고의 행위가 ‘학교 내의 봉사’를 명하는 징계사유에 해당하고, ‘학교 내의 봉사’에 ‘심성교육’이 포함된 이상 ‘사과편지작성’도 징계내용에 포함되므로, 이 사건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하였다. Ⅲ.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1. 학생징계의 기본 방향과 법적 근거로서의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 대상판결은 학생징계의 직접적인 법적 근거로서의 초·중등교육법 제18조 제1항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교육제도와 그 운영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규정하는 교육기본법에서의 주요 규정을 학생징계의 기본 방향으로서 제시하면서 학생징계도 교육기본법의 기본취지와 이념에 부합하도록 하고 있다. 더 나아가 대상판결을 통하여 대법원이 학생징계도 교육기본법상 교육제도의 일환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는 타당하다. 2. 학생징계에서의 광범위한 재량 대상판결은 학생징계권 행사에서의 광범위한 재량권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는 초·중등교육법 제18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학교의 장은 교육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령과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징계할 수 있다.”는 규정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학생의 행위가 징계사유에 해당하더라도, 징계권자가 그에 대하여 징계처분을 할 것인지, 징계처분하면 어떠한 종류의 징계를 할 것인지는 징계권자인 학교의 장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이러한 재량은 해당 법 규정에서 도출되는 학교의 장의 교육적 재량행위뿐만 아니라, 학교교육제도의 유지를 위한 교육영역에서의 전문 판단의 관점에서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3. 학생징계의 한계 한편 대상판결은 학생징계에서의 폭넓은 재량을 인정하면서도 법령상 명문 규정이 없는 징계처분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문언적·체계적 해석을 통하여 대상판결에서 불이익처분인 학생징계와 관련한 ○○중학교 학교생활규정 제19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학교 내의 봉사’에는 ‘사과편지작성’이 포함되는 것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중학교 학교생활규정 제31조 제2항에서 ‘반성문 작성’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는 징계 외의 지도방법의 하나로 규정된 것이어서, 이를 근거로 명문의 규정이 없이도 ‘학교 내의 봉사’의 징계내용으로 ‘사과편지작성’이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도 없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즉 대상판결에서는 법령의 명시적 근거 없이 학생징계의 범위를 확대해석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Ⅳ. 대상판결의 의미 대법원은 대상판결에서 징계권자인 학교의 장의 징계에서의 광범위한 재량권을 인정하면서도 학생징계와 관련한 소위 ‘징계법정주의’를 채택함으로써 학생징계와 관련한 교육적 영역에서의 전문판단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대상판결에서는 학생징계가 학교교육제도의 유지 및 학생에 대한 교육적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으나, 법령이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은 징계내용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법리를 최초로 제시하였다. 학생에 대한 징계는 불이익처분이기 때문에 징계의 내용적 범위에 관한 유추해석이나 확장해석은 금지되어야 한다. 특히 이러한 해석으로 인하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의 향유 주체인 학생의 일반적 행동권이나 양심의 자유가 박탈되는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는 점을 대상판결에서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학생징계는 학교의 장의 교육적 재량행위이지만, 학생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사항으로 학생의 지위에 관한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사법적 통제의 필요성이 매우 크다. 앞으로 대상판결을 통하여 학생징계의 내용적 한계에 관한 법적 논의가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김봉철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교권
학생징계
학교
김봉철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
2024-01-21
- 대법원 2022. 3. 31.선고 2021두49888 판결 -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⑨ 행정처분의 이유제시와 하자의 치유
불법에 가담한 원장에게도 책임을 묻고 있는 대상판결은 그 방향성 측면에서 타당하고 의미가 적지 않다. 다만, 이유제시의 하자에 대한 판단은 법리적 관점에서 정치성이 아쉬워 보인다. 이러한 논리적 불완전함은 치유 규정의 미비에도 기인함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입법론적으로 조사 시기나 자료수집의 한계가 존재하고 그럼에도 처분을 늦출 수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 제1심 변론 종결 시까지 처분 근거의 보완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I. 사실관계 원고들 6인은 사립유치원의 각 원장이며, 모든 유치원은 설립자 1인에게 귀속되어 있다. 피고(부산광역시 교육감)는 2017. 2. 감사를 통해 2014∼2016년 원장들이 거액의 비자금을 설립자의 계좌로 전달한 정황을 확인한 후, 2017. 3. 설립자와는 별도로 원고들에게 다음 각호의 처분을 하였다(이하, 사안을 단순화함). 1. 방과 후 과정 운영비를 학부모에게 환불할 것 2. 정원 외 원아 운영으로 수령한 지원금을 교육청에 반환할 것 3. 미지급된 보결수당을 해당교원에게 환불할 것 4. 직원(설립자의 친인척)에게 부적절하게 지급한 금액을 교비회계로 회수할 것 5. 허위 또는 과다 회계서류를 작성하여 주거래업체로부터 부당하게 수령한 금액을 교비회계로 회수할 것 (항소심은 1∼5 모두 위법, 상고심은 1∼2는 위법, 3∼5는 적법으로 판단함) II. 대법원판결의 요지 원심(항소심)은 피고가 처분 시 총액만 제시하였고 금액 산정의 자료가 부족한 경우 추정을 가미하여 공백을 메우는 방식을 사용하는 등,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절차적 위법으로 보았다. 이에 반해 대법원은 “원고들이 그 산정방식 등을 충분히 알 수 있어서 불복하는 데에 별다른 지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처분의 근거와 이유제시가 불충분하여 행정절차법 제23조 제1항의 규정을 위반한 절차상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 추산의 방식으로 위반 금액을 특정하였다는 사정은 그 액수의 타당성 등에 관한 실체적 위법 사유에 해당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행정절차법 제23조 제1항에 따른 위반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한편 원심은 설립자가 자발적으로 응하지 않을 경우 원고들에 대한 시정명령은 이행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설립자에 대한 처분으로 족하다는 점에서 위법하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대법원은 “교비회계에 속하여야 할 수입이 결과적으로 설립자에게 귀속되었다고 하여 그 결과를 초래한 원장의 교비회계 관리 업무가 소멸되지는 않는다.… 설립자에 대한 시정명령으로 원장에 대한 시정명령이 실익이 없거나 법령상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III. 대상판결의 평석 1. 이 사건 판결의 의미 일반적으로 조세사건에서는 실질과세의 원칙에 따라서 형식적 명의자의 경우 구제를 해주는 것이 대법원의 기본입장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명의자인 유치원 원장이 불법에 적극 가담하였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항소심에서 원고들에 대한 이 사건 처분이 위법하다고 본 점에 비추어, 종래의 판례는 설립자에게만 책임을 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말미암아 과거 양자의 관계는 종속성이 강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 판결을 계기로 어느 정도 대등해짐으로써 유치원의 회계는 더욱 투명해질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시정명령의 대상에서 원장을 제외할 경우 불법 편취의 관행이 더욱 만연될 수 있음을 고려한 대법원의 판결은 의미가 크고 타당하다. 다만, 처분의 절차적 위법이 명확해 보임에도 적법하다고 결론지은 것은, 다분히 방향성 제시의 필요에 의한 정책적인 판단이라 평가할 수 있을듯 하다. 이하에서는 논제에 따라서 절차 하자의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2. 행정절차로서 이유제시제도와 하자에 대한 판례의 기본입장 처분의 이유(제시)는 “이유제시 사후추완”과 “처분 사유 추가변경”의 문제영역에서 공통분모에 해당한다. 이는 절차법과 실체법의 경계영역에 위치하며, 법도그마적 관심뿐만 아니라 실무상으로 중요성을 띠고 있다. 이유제시의 절차적 하자와 실체적 하자가 결합하는 경우도 충분히 상정 가능하나 본 판결은 전자와 관련된다. 불이익 처분에 대한 이유제시는 법치국가의 본질적 요소이다. 행정절차법 제23조 제1항은 처분에 있어 근거와 이유가 제시되어야 함을 예정하고 있다. 다만 이유제시의 정도, 하자가 있는 경우 치유가 가능한지 여부,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시기는 언제까지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 판례는 처분이 실체적으로 적법하여도 절차의 하자만으로 취소되는 것으로 보는 한편, 이유제시 하자의 치유는 행정쟁송제시 전까지로 제한함으로써, 판례가 행정절차를 중시한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인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현실과 부합하지 않으며 오히려 대법원이 행정절차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음을 본 판결에서 엿볼 수 있다. 3. 절차적 하자에 대한 비교법적 검토 절차의 하자로 위법하게 된 처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각국의 법체계마다 상이하다. 독일의 경우 실체적으로 올바른 결정이 있었는지가 중요하다는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그 결정에 도달하는 방법과 형태는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에 따라 법원은 우선적으로 행정청이 헌법과 수권 규범상의 내용을 준수하였는지를 심사한다. 독일 행정절차법상 절차의 하자는 사실심의 변론 종결 시까지 치유될 수 있고(제45조 제2항), - 더 나아가 치유되지 않거나 치유가 불가능한 경우에도 - 종국적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는 것이 명백할 경우에는 절차의 위반만을 이유로 한 취소를 인정하지 않는다(제46조). 다만, 절대적 절차 하자는 행정절차법 제46조가 적용되지 않는다. 예컨대, 환경영향평가 실시되지 않았고 치유되지 않은 경우, 사안 결정에 영향을 주었는지와는 무관하게 취소청구권이 존재한다(환경권리구제법 제4조 제1항). 이와 함께, 치유로 말미암아 인용되지 못해 발생한 손해는 행정청 측에서 부담토록 하여 행정능률 및 소송경제와 권리구제의 균형을 일정부분 도모하고 있다(행정절차법 제80조 제1항, 행정법원법 제155조 제4항, 제161조 제2항). 이에 반해 미국의 경우 절차를 통해 정의를 추구하며, 권리보호는 실체법보다는 권한 행사 때 요구되는 절차적 사항을 통해 실현된다는 특징이 있다. 즉, 수권 규범에는 행정청이 유념하여야 할 실체적 요구사항들이 거의 담겨져 있지 않으므로, 결국 행정 결정에 대한 법원의 감독은 내용에 대한 적법성 심사가 아니라 절차의 엄격한 통제에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은 어느 법체계에서도 절차법과 실체법 양자에 대한 통제를 동시에 극대화하기는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유럽연합에서는 인과관계의 요소를 고려하여 절차상의 하자가 없었더라도 계쟁 처분이 달라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명백히 존재할 때에는 권리 침해가 인정되지 않으며, 다만 그 입증책임은 행정청이나 법원이 부담해야 한다고 본다[유럽사법재판소 2020.5.20.(C-535/18): 2013.11.7(C-72/12) 참조]. 이는 독일의 입장과 괘를 같이 하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4. 절차적 하자에 대한 이 사건 판결의 평가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산출 근거를 누락함은 물론이고 몇몇 항목은 추산에 의한 방식으로 총액만을 제시한 처분에 이유제시의 하자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수긍키 어려우며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물론 대법원의 이와 같은 접근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만일 이유제시의 하자를 인정하고 절차적 위법만을 이유로 처분을 취소할 경우 소멸시효의 문제에 직면한다. 지방재정법상 금전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이며 이는 부정수급액을 지급한 때부터 진행한다는 점이다. 즉, 반환명령일을 기준으로 이미 시효가 지난 경우 회수가 불가능하게 된다. 사정판결의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물론 절차의 하자가 종국적 처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명백히 인정될 경우에는 이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서만 처분의 취소를 구하지 못한다는 논리에 입각하여 결정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판례가 절차하자의 독자적 위법성을 인정하고 행정절차를 중시한다는 인식이 정착되어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이에 배치되는 결정을 내리기도 어려웠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근래 불충분한 이유제시가 문제 된 대표적 사안에서 대법원은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조치의 의미를 알 수 있어서 불복에 별다른 지장이 없었으므로 처분의 이유제시 의무를 위반한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판지를 이어오고 있다(2007두20348: 2019두49359). 즉, 하자를 인정한 후 치유의 문제로 해결하는 대신, 아예 이유제시 하자의 위법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회수조치 시 총액만을 제시하였음에도 위 2007두20348판결을 인용하며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단정하였다. 이러한 상투적 논리라면 그 어떠한 처분도 이유제시에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적법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이와 같은 법리구성이 적절하지 않음은 다언을 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행정절차법 제23조 제1항의 입법 취지를 살려서 절차의 하자가 있음을 전제하고, 치유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올바르다. 즉, 본 사안에서는 제1심 변론 중반 이후 산출 근거가 제시되었으므로, 이유제시의 하자를 인정한 후 - 추완된 자료가 적정하다는 전제하에 - 그 하자가 치유되었다고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유제시 하자의 치유 시기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은 82누420판결 이후로 행정쟁송제기시까지인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이에 따를 경우 이 사건에서 치유는 불가능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하자의 치유 시기를 쟁송제기시까지로 하는 것이 모든 사안에서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행정청이 이유제시를 위한 자료확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 사건의 경우 편취금액의 항목이 다양하고 수십억에 이르는 등 사안이 복잡하여 산출 근거를 위한 처분청의 조사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반면 소송단계에서 법원이 증거를 보강하는 것은 용이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멸시효의 문제 등을 감안할 때 처분을 마냥 방치해 둘 수도 없다. 지출된 총액만을 기재하여 불가피하게 한 번에 처분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안에서는 소송 과정에서도 치유를 인정함으로써 그 시기를 늦추어 길을 열어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경우 소송의 어느 단계까지 허용할 것인가가 문제 된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처럼 절차 하자의 치유 시기를 사실심의 변론 종결 시까지를 하나의 대안으로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항소심 단계에서도 이유제시를 허용하자는 것인데 소송경제 또는 행정능률의 측면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1심부터 심리가 충실히 되어 당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1심의 변론 종결 시까지가 적절하다고 보인다. IV. 맺음말 “니 죄를 네가 알렸다!”라는 원님재판이 떠올려진다. 이 사건 대법원판결을 이에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무엇보다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은 별개로서 상호 구분되는 것이 마땅하다. 일벌백계의 명목으로 추산방식으로 총액만 기재한 행정처분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유제시의 하자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절차의 하자를 인정하고 치유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논리적, 법리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이 사건에서 절차 하자에 대한 대법원의 무리한 해석은 하자의 치유에 대한 명문 규정이 흠결된 점에 기인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입법적인 해결이 바람직하다. 치유 시기를 - 1심 변론 종결 시까지로 - 늦추는 한편, 치유로 패소한 원고의 손해는 피고가 부담하게 하는 보완이 필요하다. 이로써 일회적 분쟁 해결의 절차경제와 권리구제의 양 이념이 다소간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행정절차법 제23조 제1항 단서에, 이유제시를 위한 자료수집이 어렵고, 그럼에도 처분을 해야 할 부득이한 사정이 존재하는 경우 1심의 변론 종결 시까지 보완하여 제출 가능하다는 규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요컨대, 추산에 의한 처분으로 불가피하게 소송에 휘말리지 않도록 -법 위반의 정도와 비난 가능성의 경중을 떠나서- 행정청은 그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이에 관한 법적 분쟁의 판단에서도 법원 역시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이상학 교수(대구대 법학부)
이상학 교수(대구대 법학부)
2023-11-26
행정사건
대법원 2023.9.21. 선고 2023두39724판결
'텔레비전방송수신료부과처분취소'에 대한 헌법적 고찰
Ⅰ. 서설 최근 대법원은 “시원적 행정주체인 국가(대한민국)에 대한 침익적 행정처분의 경우에도 처분청은 행정절차법상의 절차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라는 취지의 매우 유의미한 판결(대법원 2023.9.21. 선고 2023두39724판결, 이하 ‘본 판결’이라 약칭합니다)을 선고했습니다. 이에 본 판결에 대한 사건의 경위 및 내용을 바탕으로 그간 헌법재판소에서 강조한 행정작용에 대한 적법절차원칙의 중요성 그리고 법적 효과가 귀속되는 당사자라는 지위로서의 국가(대한민국)에 대한 실질적 평등의 원칙이라는 논리와의 정합적 맥락에서 본 판결의 헌법적 의미를 고찰하고자 합니다. Ⅱ. 사건의 경위 대한민국은 “한국방송공사(KBS)로부터 수신료 징수업무를 위탁받은 한국전력공사가 공군 부대에 TV 수신료를 부과하기 위해서는 행정절차법에 따른 사전통지의무(§21), 의견제출기회의 보장(§22) 및 행정처분의 이유제시 (§ 23) 등의 절차를 이행해야 하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아 위법하다”라는 이유로 한국방송공사(KBS)를 피고로 해 공군 제11전투비행단 영내 독신자숙소 및 외래자숙소에 위치한 TV 수상기에 부과된 수신료 260여 만원의 부과처분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했습니다. Ⅲ. 판결의 내용 원고 대한민국은 1심과 2심 모두 승소했습니다. 이에 피고 한국방송공사(KBS)가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행정처분 대상이 되는 이해관계인의 범주에서 국가를 제외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하면서, 행정절차법의 예외 사유에 '국가를 상대로 한 행정행위'가 포함되지 않는바, 국가를 상대로 한 행정처분도 행정절차법을 준수해야 한다”라는 논지 하에 한국방송공사(KBS)의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대법원은 "행정절차법의 규정과 행정의 공정성·투명성 및 신뢰성 확보라는 행정절차법의 입법취지 등을 고려하면 행정기관의 처분으로 불이익을 입게 되는 국가를 일반 국민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라는 1심과 2심의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입니다. Ⅳ. 판결의 의미 1. 적법절차원칙의 보편적 규범성 확인 대륙법계에 속하는 우리 법제에 있어 영미법계의 적법절차원칙은 다소 어색한 측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형사소송법 제331조 단서 규정에 대한 위헌심판 (헌재 1992. 12. 24. 92헌가8) 결정에서 적법절차원칙을 과잉금지원칙과 독립된 위헌심사기준으로서 신체의 자유 영역을 넘어서 국가의 모든 공권력 작용을 지도하는 헌법 원리로 설시한 이래로 행정작용 전반에 대한 제한 및 심사기준으로서 적법절차원칙를 원용하고 있습니다. 적법절차원칙은 현재 형사절차와 관련된 사건뿐만 아니라 변호사나 공무원의 징계처분 등에서 적정성의 통제원리로, 조세법률주의 같은 실체적 합법성의 통제원리로 각각 적용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국회의 입법 작용에 대해서도 적법절차원칙의 준수가 요청되고 있습니다. 즉 적법절차원칙은 우리 헌법재판소 판례를 통해 국가작용 전반에 관한 일반적 규범 원리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최근(2023. 3. 24.) 개정 및 시행되고 있는 행정절차법(§22①3호)은 ‘인허가 등의 취소, 신분·자격의 박탈 등의 처분을 하는 경우 당사자의 신청이 없는 경우에도 청문을 시행’하도록 개정함으로써 행정의 공정성·투명성 및 신뢰성 확보라는 행정절차법의 입법취지 하에 ’적법절차원칙의 일반적 규범성’과 ‘사전적 권리구제 수단으로서의 행정절차의 중요성’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적법절차원칙은 행정의 법률적합성(행정기본법 §8)을 구성하는 핵심적 통제원리로서 그 체계적 지위는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본 판례는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침익적 행정처분의 경우에도 적법절차원칙이 그대로 적용되므로 행정절차법상의 사전통지 및 의견청취의무가 준수되어야 함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2. 당사자인 국가에 대한 실질적 평등의 실현 최근 헌법재판소 (헌재 2022. 2. 24. 2020헌가12)는 “국가를 상대로 하는 당사자소송의 경우에는 가집행선고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 행정소송법 §43는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라는 결정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재산권의 청구가 공법상 법률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점만으로 국가를 상대로 하는 당사자소송에서 국가를 우대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없으며, 집행가능성 여부에 있어서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심판대상조항은 국가가 당사자소송의 피고인 경우 가집행의 선고를 제한해, 국가가 아닌 공공단체 그 밖의 권리주체가 피고인 경우에 비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하고 있으므로 평등원칙에 반한다”라고 판시했습니다. 본 결정은 공법상의 법률관계에서 대등한 지위의 당사자에 불과한 국가에 대해 합리적 이유 없는 우대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한편, 본 판결은 통상적으로 행정기관의 국민에 대한 침익적 처분에 의해 법적 효과가 귀속되는 행정주체의 지위가 아니라, 국가가 행정기관의 침익적 처분의 수범자가 되는 경우에도 합리적 이유 없이 일반적 수범자와 달리 취급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최근 판례의 흐름은 국가가 침익적 행정처분과 소송의 당사자인 경우에도 합리적 이유 없이 국가라는 이유만으로 달리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 판결은 그러한 판례의 논리적 정합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신기훈 변호사(법무법인 클라스·한결)
TV수신료
방송법제64조
국가
당사자
신기훈 변호사(법무법인 클라스·한결)
2023-11-05
노동·근로
민사일반
서울동부지방법원 2023. 7. 20. 선고 2022가합100033 판결
적법한 쟁의행위로 인한 공연 취소에 관해 업무방해 및 조업방해를 불인정한 판결
비록 파업으로 공연을 취소하였더라도 적법한 쟁의행위로 보아 업무방해 및 조업 방해를 불인정한 판결쟁의행위 과정에서 취소된 공연의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최초 판결 1. 사실관계의 요지 원고 재단법인 강동문화재단은 지방출자출연법 및 강동구 조례에 의거 강동구가 출연·설립한 재단으로서 강동아트센터와 강동구 관내 공공도서관의 운영을 주 사업으로 하고, 피고들은 원고 재단의 근로자로서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본부 강동문화재단분회(이하 ‘이 사건 노동조합’)의 분회장 및 강동아트센터에 근무하는 무대·조명·음향·기계감독들이다. 이 사건 노동조합은 2020. 1. 강동문화재단 출범 이전의 호봉제 임금체계 복구 등을 주장하며 2021년도 임금협약 체결을 위해 교섭을 진행했으나 교섭이 결렬되자, 당시 상급단체인 서울일반노동조합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해 2021. 6. 21.자로 조정 종료 결정을 내렸고, 그 직후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쟁의행위가 가결되어 있었다. 이후 이 사건 노동조합은 2021. 11. 11. 오후경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 11. 12. 18:30시에 파업전야제 소집 공고를 올린 후, 2021. 11. 12. 오전경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소식지로 11. 13. (토)부터 11. 14. (일)까지 양일간 전면 파업에 돌입할 것을 공고했다. 한편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및 소극장에는 2021. 11. 12. (금) 저녁부터 같은 달 14. (일) 오후까지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고, 파업전야제가 예고된 2021. 11. 12. (금) 저녁 19:30시에는 각각 발레 <돈키호테>, 뮤지컬 <두근두근 움스프렌드> 공연이 대극장과 소극장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피고들은 위 11. 12. (금) 저녁 파업전야제 참석에 관해 확답하지 아니하고 있다가 18시경 대극장 및 소극장의 음향·조명·기계 등 장비 전원을 끄고 모두 퇴근했고, 원고 재단은 같은 날 15시경 ‘공연이 불완전한 상태로 진행되고 110% 환불을 하겠다’고 문자메시지로 공지했다가 17:58시경 발레 <돈키호테>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공지 문자메시지를 전송했다. 이후 피고들은 2021. 11. 13. (토) 오전 11:30시경 노동조합의 양해 하에 파업을 중단하고 사업장에 복귀했으나 원고 재단은 이날 공연도 모두 취소한 상태를 유지했고(소극장 공연 1회차는 비공식 초청 공연으로 진행했다), 11. 14. (일) 예정된 공연도 모두 취소되었다. 해를 넘겨 2022. 1. 3. 원고 재단은 피고들에게 이 사건 소 제기를 하는 한편, 거의 동시에 업무방해죄 혐의로 피고들을 고소했다. 2. 원·피고 주장의 요지 원고는 변론 전 과정에서 피고 1. 분회장이 파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나머지 피고들(공연감독들)과 순차 공모해 예정된 공연을 불가능하게 하도록 대극장과 소극장의 무대 메인 구동장치를 잠그고 철수함으로써 업무방해죄를 저지르고 원고 재단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가, 이후 이유없이 극장 장비의 전원을 끄고 퇴근함으로써 이를 다시 켜기 어렵도록 하는 방식으로 극장 장비의 사용을 불능케 했다고 주장했고, 이로 인해 공연 제작비용·티켓 환불 비용·재공연비용·지원금 반납금·장소변경에 따른 손해 등 합계 345,760,020 원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피고들은 파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극장 장비를 조작하는 등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상 ‘조업방해’를 저지른 바가 전혀 없고, 공연이 있다는 이유로 피고들이 연장근로를 할 의무 없이 퇴근하는 것은 위법하지 아니하며, 퇴근 시 각자 담당하는 극장 장비의 전원을 끄는 것은 극장 장비의 전문적인 유지·관리의 일환으로 적법하고, 이는 ‘점유를 배제’하거나 ‘폭행·협박’ 등 노동조합법이 정하는 ‘조업방해’의 요건을 충족하지도 못하며, 원고 재단은 피고들이 18시경 극장 장비 전원을 끄고 퇴근하기 전에 이미 공연 취소 결정을 내렸으므로 손해를 야기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주장하였다. 변론과정에서 특별한 어려움 없이 극장 장비의 전원을 다시 켤 수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피고들이 각자 담당한 장비 전원을 켜서 시연하는 동영상도 제출했다. 담당 재판부는 변론 막바지에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관한 대법원 판결에 따라 양측 주장을 정리해보라’는 취지로 지휘했고, 이에 원고 재단은 다수의 근로자가 상호 의사연락 하에 집단적으로 근로제공을 거부해 사용자의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저해하는 것 자체로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며, 피고들은 대법원 2011. 3. 17. 선고 2007도482 판결에 의거 이 사건 쟁의행위가 예측불가능하게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지 아니했으므로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불성립한다고 주장했다. 3. 대상판결의 요지 가. 피고들이 극장 장비 전원을 끄고 정시퇴근한 행위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는지 여부 대상판결은 이 사건 노동조합의 쟁의행위 돌입 경과에 비추어 원고 재단이 당시 파업전야제 개최 및 전면파업 돌입이나 피고들의 파업 참여를 전혀 예측할 수 없지 않았고, 파업전야제 참가시에는 극장 장비 전원을 끄는 조치도 예상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각 공연이 취소되었고 원고 재단에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단체행동권의 핵심인 쟁의행위에 의한 것이고 실제 재공연이 이루어진 점 등에 비추어 원고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가 초래되는 등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정도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피고들의 행위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했다. 나. 피고들이 집단적으로 극장 장비 전원을 끄고 퇴근을 한 것 자체가 위법한 조업방해에 해당하는지 여부 대상판결은 피고들이 공연을 앞두고 집단적으로 근로제공을 거부한 행위는 쟁의행위의 일환에 해당하고 이 사건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는 절차적으로나 실체적으로 정당성이 인정되며 피고 또한 이것이 적법한 쟁의행위임을 다투고 있지 아니하는 점, 피고들이 극장 장비 전원을 끄기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어떠한 무력행사나 원고의 소유권 침해 등이 수반되지는 않았던 점, 극장 장비의 전원을 다시 켜는 데는 특별한 용법이나 장애가 있었다고 보이지 않고 원고 측이 이를 다시 켜서 공연을 진행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쟁의행위의 수단과 방법이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고 보이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피고들이 극장 장비의 전원을 끄고 공연 직전에 퇴근했다고 하더라도 불법쟁의행위로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보지 아니했다. 다. 선고 이후의 경과 대상판결은 증인신문 등을 거쳐 소 제기일로부터 약 1년 6개월만에 판결이 선고되었고, 선고 직후 원고 재단이 항소했다가 이를 취하해 확정되었다. 위 민사소송이 계속될 동안 동일한 사실관계로 고소된 업무방해죄 형사사건은 2022년 말 불송치결정이 내려졌지만 원고 재단의 이의신청으로 재수사를 거친 후 2023년 8월 현재 아직도 기소여부가 결정되지 아니했다. 이는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및 업무방해죄 기소가 제도적이고 현실적인 위력 행사의 수단으로서 여전히 유효한 실태를 확인해 주었다. 4. 대상판결의 의의 가. ‘공연 취소’로 인해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끼쳤는지 여부에 대한 선례 이 사건 변론과정 및 관련 형사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원고 재단은 쟁의행위로 인해 발레·뮤지컬 등 공연이 취소된 경우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고, 이 사건과 같이 공연 직전인 약 1시간 30분 이전에 공연이 취소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파업중이라도 적어도 공연 진행만큼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공연을 장기간 준비한 공연단체 구성원들의 노력 등을 고려하면 그러한 주장에 일견 공감할 부분도 있고, 공연을 주요한 목적으로 하는 이 사건 사업장에서 공연 자체가 취소된다면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고도 보는 시각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주장이 타당하다면 공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경우 쟁의행위가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사용자의 업무 지장의 일환으로서 공연의 취소 내지 불완전한 진행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마치 공연만큼은 헌법상 단체행동권으로부터 불가침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부당성을 피할 수 없다. 대상판결은 비록 노무제공 거부가 위력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면서 설시한 부분이기는 하나, ‘쟁의행위는 사용자의 업무에 어느 정도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헌법상 기본권 행사에 본질적으로 수반되는 것으로서 정당화될 수 있는 업무의 지장 초래가 당연히 불법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점’을 분명히 확인했고, 이에 기초해 비록 예정된 공연들이 취소되었더라도 원고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가 초래되었다고 인정하지 아니했다. 이와 같은 대상판결의 설시는, 업무방해죄의 위력 판단에 있어 헌법상 기본권 행사인 쟁의행위로 초래된 결과를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로도 보인다. 또한 적어도 앞으로 공연노동자의 노무제공 거부로 인해 공연 진행에 지장이 발생해 취소가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또는 불법한 쟁의행위를 구성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선례로서 의의가 있다. 나. 근로자가 관리하는 장비 전원을 끄고 퇴근한 행위가 ‘조업방해’에 해당하는지 여부 대상판결은 원고 재단의 주장으로 인해 특이하게도 민사소송에서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면서도, 결국 피고들이 극장 장비의 전원을 끄고 정시에 퇴근한 행위가 노동조합법상 금지되는 쟁의행위의 방법으로서 ‘조업방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의의가 있다. 변론과정에서 피고들 또한 이 사건 쟁의행위의 정당성·적법성에 기초해 이로 인한 공연 취소에 관해서도 손해배상 청구가 제한되어야 하고(노동조합법 제3조), 피고들의 구체적인 행위가 노동조합법상 금지되는 ‘조업방해’의 요건 즉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거나(제37조 제3항), 쟁의행위와 관계없는 자 또는 근로를 제공하고자 하는 자의 출입·조업 기타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는 방법(제38조 제1항)에 해당될 수 없음을 구체적으로 주장·입증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노동조합법 제38조 제1항의 조업방해는 그 대상이 쟁의행위와 관계없는 자 또는 근로를 제공하고자 하는 해당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출입·조업 기타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해야 성립할 것인데(대체근로자는 대상의 예외로 보아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이 사건 피고들의 행위는 본래 자신이 관리하는 극장 장비의 전원을 끄고 퇴근한 것일 뿐 노동조합법이 규정하는 조업방해의 방법 또는 이에 준하는 방식의 방해에 이를 수 없음을 강조했다. 다.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 인정 범위의 제한 비록 대상판결은 원고 재단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면서 원고가 구하는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해 구체적으로 판단하는데 나아가지는 않았으나,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판단하면서 원고가 구하는 손해배상의 범위를 일부 제한하는 듯한 판시를 남겼다. 원고는 이 사건 공연 취소로 인해 ① 기 투입된 제작비용, ② 취소된 공연의 판매액 및 추가 환불금, ③ 재공연 비용, ④ 반환해야 할 공연 지원금 상당을 손해로 주장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재공연이 이루어졌거나 예정되어 있는 이상 이 사건 각 공연의 순수 제작비용이 원고의 손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재공연으로 인한 수익이 발생했을 것으로 보이는바 위 금액 전부를 원고가 입은 손해로 보기 어려워 보이는 점’이라고 판시하면서 제작비용을 손해로 불인정하는 한편 재공연 수익까지 손해 산정에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는 향후 유사한 공연 취소의 경우 뿐만 아니라 일정한 인적 용역의 결과물을 대상으로 한 쟁의행위의 손해 범위 판단에 관해 시사점을 제공하면서도, 만약 사용자가 임의로 재공연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그로 인해 손해의 범위가 변경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잔존가치가 측정될 수 있는 일정한 ‘재화’가 아닌 점에서 제작비용 전액이 손해로 계상되는 특성은 불가피할 수 있으나, 재공연을 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소극적 손해를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이를 전부 손해로 인정해야 하는지는 의문이 있다. 라. 원고 재단이 공연 취소를 스스로 결정한 점에 관한 판단의 한계 한편 피고들은 변론과정에서, 2021. 11. 12. (금) 오후경 원고 재단이 피고들의 파업 전야제 참여 ‘가능성’만을 인지한 상태에서 이미 당일 19:30시에 예정된 공연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리고 17:58경 관객들에게 공지했으므로, 이러한 원고의 결정과 피고들이 극장 장비 전원을 끄고 퇴근한 행위는 선후관계로나 인과관계상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이러한 사실관계 판단에는 구체적으로 나아가지 않은 채, 다만 피고들의 적법한 쟁의행위의 일환인 파업전야제 참석으로 인해 원고 재단이 공연을 취소하게 되었다는 인과관계를 전제하고 손해배상책임을 판단했다. 원고 재단이 스스로 내린 공연 취소 결정은 피고들의 일부 내지 전부 근로제공 거부 가능성을 예상해 공연의 정상적인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고, 이는 사용자로서 내린 일종의 경영판단으로서 그에 대한 손해를 노동자들에게 귀속시키는 것은 당연히 부당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점에 관해 구체적으로 판단되지 아니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5. 결어 대상판결은 소극적 근로제공의 거부 및 이에 수반되는 관리행위로써 사용자가 예정된 공연을 취소해야 하는 등 업무상 차질이 발생하더라도 이는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 또는 노동조합법상 조업방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단체행동권의 행사에 의한 적법한 쟁의행위의 보장 차원에서 업무방해 및 조업방해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설시한 의의가 있다. 향후 공공영역·문화계 뿐만 아니라 다른 업무영역에서도 적법한 행의행위와 조업방해를 구분하는 하나의 선례가 마련되었다고 보인다. 최종연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노동쟁의
파업
업무방해
조업방해
공연취소
최종연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2023-10-22
민사소송·집행
민사일반
대상판결 대판 2023.4.27. 2019다24793
외국국가에 대한 민사재판권의 면제
I. 사실 및 쟁점 피고는 몽골 공화국이다. 피고는 1998년경 서울 용산구에 있는 토지 1필지와 지상 건물을 매수해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고 그 무렵부터 줄곧 주한몽골대사관으로 사용해 왔다. 원고는 2015년경 이후 피고 건물이 원고 소유 토지 중 약 11㎡를 침범한 상태로 건축되어 있고 원고 소유 토지 중 약 19.9㎡가 피고 건물의 창고 부지 등 부속토지로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이유로 피고에 대해 피고 건물 중 원고 소유 토지 침범 부분의 철거 및 해당 토지부분의 인도 및 해당 토지 부분에 관한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했다. 법원은 원고의 외국공관에 대한 이 사건 청구에 대해 민사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 II. 대법원판결이유의 요지 [1] 국제관습법에 의하면 국가의 주권적 행위는 다른 국가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영토 내에서 행해진 외국의 사법적(私法的) 행위에 대해서는 그것이 주권적 활동에 속하는 것이거나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이에 대한 재판권의 행사가 외국의 주권적 활동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될 우려가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국가를 피고로 해 우리나라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 [2] 외교공관은 한 국가가 자국을 대표해 외교 활동을 하고 자국민을 보호하며 영사 사무 등을 처리하기 위해 다른 국가에 설치한 기관이므로, 외국이 부동산을 공관지역으로 점유하는 것은 그 성질과 목적에 비추어 주권적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고, 국제법상 외국의 공관지역은 원칙적으로 불가침이며 접수국은 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외국이 부동산을 공관지역으로 점유하는 것과 관련해 해당 국가를 피고로 해 제기된 소송이 외교공관의 직무 수행을 방해할 우려가 있는 때에는 그에 대한 우리나라 법원의 재판권 행사가 제한되고, 이때 그 소송이 외교공관의 직무 수행을 방해할 우려가 있는지 여부는 원고가 주장하는 청구 권원과 내용, 그에 근거한 승소판결의 효력, 그 청구나 판결과 외교공관 또는 공관직무의 관련성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3] 피고가 토지의 경계를 침범해 인접한 원고 소유 토지 일부를 피고의 주한대사관 건물의 부지 또는 그 부속토지로 사용하고 있는 피고 건물의 일부 철거 및 이 사건 계쟁토지의 인도 청구 부분에 대한 원심의 주권면제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으나, 외국의 공관지역 점유로 부동산에 관한 사적 권리나 이익이 침해되었음을 이유로 해당 국가를 상대로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을 구하는 판결절차는 그 자체로 외국의 공관지역 점유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고, 그 청구나 그에 근거한 판결이 외교공관의 직무 수행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이러한 금전지급을 청구하는 판결절차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외교공관의 직무 수행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고 할 수 없어 주권면제를 인정할 수 없다. III. 논점의 제기 1. 재판권과 주권면제의 개념 (1) 재판권은 재판에 의해 법적 쟁송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국가권력 또는 법질서 실현을 위한 국가의 권능으로서 사법권이라고도 한다. 재판권은 그 대상에 따라 민사, 형사 및 헌법재판권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바 여기에서는 민사재판권을 대상으로 하므로 이를 판결절차상의 것과 민사집행절차상의 것으로 구별한다. (2) 대전판 1998.12.17. 97다39216은 “국제관습법에 의하면 국가의 주권적 행위는 다른 국가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이 원칙이라할 것이나, ... 외국의 사법적 행위에 대해서는 당해 국가를 피고로 해 우리나라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시해 주권(적 행위) 면제는 재판권 면제라고 선언함으로써 재판권의 유무를 판단하기 위한 전제, 즉 주권면제를 인정하기 위한 전제로서 법정지국인 우리나라에 당해 사건에서 국제재판관할권을 요구하지 않는다. 2. 주권면제론의 범위 (1) 절대적 주권면제론과 제한적 주권면제론 국가는 일반적으로 자국의 영토에 관한 한 배타적 재판권을 가지므로 다른 국가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인정된다. 이를 절대적 주권면제론( absolute theory of sovereign immunity)라고 한다. 그 근거는 주권평등 및 독립의 원칙에 있다. 그러나 19세기 이래 국가도 국제적 상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부터 절대적 주권면제론을 고수하다보면 외국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법정지(法定地)국의 법원에 제소해 이를 해결할 수 없는 결과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의 행위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주권적 행위와 비주권적 행위로 구분하고 뒤의 행위에 대해서는 주권면제를 부인함으로써 제소와 응소의 길을 터놓았다. 이를 제한적 주권면제론(restrictive theory of sovereign immunity)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위 대전판 97다39216호에 의해 종전의 절대적 주권면제론을 취했던 대결 1975.5.23. 74마281을 변경함으로써 이제는 주권면제에 관해서는 제한적 주권면제의 입장에 있다. (2) 제한적 주권면제의 범위(절대적 주권면제와의 구별) (가) 의의 제한적 주권면제론에서는 주권면제가 인정되는 행위를 ‘acta jure imperti’라고 해 ‘주권적 행위’ ‘고권적 행위’ 또는 ‘권력행위’라고 번역하고, 주권면제가 인정되지 않는 상업적 활동 기타 행위를 ‘acta jure gestonis’라고 해 ‘비주권적 행위’ ‘비고권적 행위’‘사법적 행위’라고 번역한다. (나) 주권적 행위와 사법적 행위의 구별에 관한 학설 (a) 행위 성질 기준설(객관적 기준설) 외국의 활동이나 목적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외국이 행한 행위 또는 그로부터 발생하는 법률관계의 성질을 기준으로 해 국가가 개인처럼 사법적 행위를 한 것인지 아니면 주권을 행사한 것인지에 따라 구별한다는 견해이다 정동윤외2 122면. 김홍엽, 37면. 이 견해는 주관적 목적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객관적 기준설이라고도 한다. (b) 목적기준설(주관적 기준설) 외국이 주권자로서 국방, 재해구제, 외교 등과 관련된 행위 등 공적인 목적을 가지고 활동이나 거래를 한 경우에 주권적 행위로 보고, 해운업의 경영과 같이 개인으로 행동한 경우 이를 사법적 행위로 본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목적이나 동기의 주관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주관적 기준설이라고도 한다. 3. 판결절차상의 주권면제에 관한 판례 (a) 절대적 주권면제론에서는 국가의 주권면제 대상이 되는 행위를 따로 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제한적 주권면제론에서는 주권면제의 대상을 정할 필요가 있다. 행위의 성질기준설에 의한다면 국가가 상업적 활동 기타 일정한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주권면제가 인정되지 않는데 이를 비주권적 행위 또는 사법적 행위로 보고, 주권면제가 인정되는 행위를 주권적 행위라고 한다. (b) 그런데 대전판 97다39216은, 외국국가의 행위가 성질상 사법적 행위라고 하더라도 바로 주권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그 행위가 「외국의 주권적 활동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될 우려가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비로소 주권면제가 된다고 해 앞의 학설들과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c) 이러한 판례의 기준에 따라 대상판결은, 외교공관은 한 국가가 자국을 대표해 외교 활동을 하고 자국민을 보호하며, 영사 사무 등을 처리하기 위해 다른 국가에 설치한 기관이므로, 외국이 부동산을 공관지역으로 점유하는 것은 그 성질과 목적에 비추어 주권적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고, 국제법상 외국의 공관지역은 원칙적으로 불가침이며 접수국은 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따라서 외국이 부동산을 공관지역으로 점유하는 것과 관련해 해당 국가를 피고로 해 제기된 소송이 외교공관의 직무 수행을 방해할 우려가 있는 때에는 그에 대한 우리나라 법원의 재판권 행사가 제한되고, 이때 그 소송이 외교공관의 직무 수행을 방해할 우려가 있는지 여부는 원고가 주장하는 청구 권원과 내용, 그에 근거한 승소판결의 효력, 그 청구나 판결과 외교공관 또는 공관직무의 관련성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하면서, 피고가 토지의 경계를 침범해 인접한 원고 소유 토지 일부를 피고의 주한대사관 건물의 부지 또는 그 부속토지로 사용하고 있는 피고 건물의 일부 철거 및 이 사건 계쟁토지의 인도 청구 부분에 대한 원심의 주권면제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으나, 외국의 공관지역 점유로 부동산에 관한 사적 권리나 이익이 침해되었음을 이유로 해당 국가를 상대로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을 구하는 판결절차는 그 자체로 외국의 공관지역 점유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고, 그 청구나 그에 근거한 판결이 외교공관의 직무 수행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이러한 금전지급을 청구하는 판결절차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외교공관의 직무 수행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고 할 수 없어 주권면제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d) 따라서 우리 판례의 입장은 주권면제여부에 관해서는 행위성질설에 의하기 보다는 그 행위가 「외국의 주권적 활동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될 우려가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비로소 주권면제가 된다고 하는 입장이라고 할 것이다. 4. 강제집행절차상의 주권면제에 관한 판례 관련해 강제집행절차상의 주권면제에 관한 판례를 검토한다. (a) 대판 2011.12.13. 2009다16766에 의하면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 압류 및 추심명령(민집 제223조 및 제232조)은 제3채무자에 대한 집행권원이 아니라 집행채권자의 채무자에 대한 집행권원만으로 발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3채무자를 외국국가로 하는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의 재판권 행사는 외국을 피고로 하는 판결절차의 재판권행사보다 더 신중하게 행사할 것이 요구되므로, 제3채무자가 되는 외국이 강제집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명시적인 동의를 했거나 재판권면제주장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 한정해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 판결에 대해서는, 만일 채무자가 해당 외국국가에 대해서 소를 제기한 경우 이것이 주권면제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채무자의 소제기는 적법했을 것인데도 여기서는 주권면제여부를 따지지 않고 강제집행을 불허하는 것은 문제라는 시각이 있다 석광현, 국제민사소송법(2012, 박영사) 56면.. 또한 압류 · 추심명령은 외국국가에 대한 집행이 아니라 채무자를 집행채무자로 삼은 집행이고, 압류추심명령은 제3채무자에게 물리적인 강제조치를 행사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권면제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도 있다 전원렬, 102면참조. (b) 생각건대 원고가 외국국가를 피고로 해 소송을 제기한 결과 승소판결이 확정되면 외국국가에 대한 재판권이 면제되지 않는 범위에서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강제집행은 외국국가의 주권과 권위에 대한 심각한 침해가 예상되므로 당연히 외교적 측면에서 신중한 배려가 요청된다. 그래서 외국국가가 재판권 면제를 포기한 경우에도 강제집행을 하는 데는 재판권면제와 별개의 명시적인 포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국제관습법이다. 따라서 판례의 입장은 외국국가에 대한 강제집행에 관한 한 판결절차와 달리 재판권면제와 별개의 명시적인 포기가 없는 한 물리적인 강제조치의 유무나 민사판결절차에서 요구되는 「외국의 주권적 활동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될 우려가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따지지 말고 주권면제를 인정하라는 입장일 것이다. 강현중 변호사 (법무법인 에이펙스·전 사법정책연구원장)
외교공관
민사재판권
주권면제
강현중 변호사 (법무법인 에이펙스·전 사법정책연구원장)
2023-10-15
헌법사건
헌법재판소 2004. 10. 28. 선고 99헌바91 결정 <br>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 등 위헌소원 사건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⑦ 위임입법의 형식과 한계
현대사회의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Ⅰ. 사실관계 1. 금융감독위원회는 ○○생명보험 주식회사(이하 ‘○○생명’이라 한다)에 대해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을 근거로 ‘경영상태를 실사한 결과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하고, 자본감소 등을 명령했다. 위 회사의 이사인 청구인들 및 ○○생명은 서울행정법원에 부실금융기관 결정 및 감자명령 등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다음, 그 소송에 적용될 수 있는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 제10조 제1항 제2호, 제2항 및 제12조 제2항 내지 제4항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위헌심판제청신청을 해 기각되자,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2. 입법권자가 위임법률을 제정하면서 입법사항을 대통령령이나 부령이 아닌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할 수 있는지 여부 및 그러한 위임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이며, 재판의 전제성 등 다른 쟁점들도 있으나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는 여기서 상론하지 아니한다. Ⅱ. 결정요지 1. 오늘날 의회의 입법독점주의에서 입법중심주의로 전환해 일정한 범위 내에서 행정입법을 허용하게 된 동기가 사회적 변화에 대응한 입법수요의 급증과 종래의 형식적 권력분립주의로는 현대사회에 대응할 수 없다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헌법 제40조와 헌법 제75조, 제95조의 의미를 살펴보면, 국회입법에 의한 수권이 입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에게 법률 등으로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위임한 사항에 관해서는 당해 행정기관에게 법정립의 권한을 갖게 되고, 입법자가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도 있다 할 것이므로,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위임입법의 형식은 예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것은 법률이 행정규칙에 위임하더라도 그 행정규칙은 위임된 사항만을 규율할 수 있으므로, 국회입법의 원칙과 상치되지도 않는다. 2. 행정규칙은 법규명령과 같은 엄격한 제정 및 개정절차를 요하지 아니하므로, 재산권 등과 같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작용을 하는 법률이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법규명령에 위임함이 바람직하고, 금융감독위원회의 고시와 같은 형식으로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적어도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 제2항 단서에서 정한 바와 같이 법령이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으로서 업무의 성질상 위임이 불가피한 사항에 한정된다 할 것이고, 그러한 사항이라 하더라도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상 법률의 위임은 반드시 구체적·개별적으로 한정된 사항에 대해 행해져야 한다. Ⅲ. 판례평석 1. 대상결정의 의미와 쟁점 헌법재판소는 2004. 10. 28. 선고 99헌바91 결정에서 법률이 입법사항을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하는 것이 헌법 제40조, 제75조와 제95조 등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다. 이 결정은 20년 정도 지난 다소 오래된 판례이나 그 의미나 중요성에 비해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이 기회에 그 결정의 의미와 향후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법령보충행정규칙 이론의 정립과정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이란 법령의 위임에 근거해 법령의 내용을 구체화한 행정규칙으로, 행정규칙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그 실질내용은 근거가 되는 법령의 규정과 결합해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기능을 갖는 경우를 말한다. 대상판결이 내려지기 오래전부터 행정실무를 비롯한 법실무에서는 광범하게 소위 행정규칙 형식에 해당하는 고시, 훈령 등에 법령을 보충하는 내용의 입법을 위임하는 관행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에 관한 리딩케이스에 해당하는 대법원 1987.9.29. 선고 86누484 판결은 국세청장의 훈령이 상위 법령과 결합해 일체가 되는 한도에서 상위법령의 일부가 됨으로써 대외적 구속력이 발생된다고 보아 이러한 행정실무와 법실무의 관행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위 판결 이후로 대법원은 다수의 사건에서 법령의 위임에 따라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행정규칙, 특히 고시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판시를 했고, 이는 현재 ‘법령보충적 행정규칙(고시)’이론으로 자리잡아 판례가 인정하는 위임형식이자 규범형식의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이론에 대한 평가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을 긍정하는 견해는 기본적으로 입법권을 가진 입법권자의 의사를 중시해,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입법권자는 필요에 따라서 입법사항을 고시, 훈령 등의 방식으로 위임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반해 부정하는 견해는 법규명령과 행정규칙은 준별되는 개념 범주이므로 입법사항을 위임하는 경우에도 법규명령으로 제정되어야 하고, 우리 헌법상 행정권이 제정할 수 있는 법규명령의 형식은 헌법 제75조, 제9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에 한정된다고 본다. 대상판결에서 다수의견은 현대사회에서 광범한 입법수요가 존재한다는 점, 현대국가에서 의회가 입법을 독점할 수 없고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 현대적 권력분립론은 견제와 균형을 핵심으로 하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 등을 적시하면서,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헌법 제75조, 제95조의 행정입법의 형식을 예시적인 것이라 판시하였다. 이에 반해 소수의견은 “우리 헌법의 경우에는 법규명령의 형식이 헌법상으로 확정되어 있고 구체적으로 법규명령의 종류·위임범위·요건·절차 등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있으므로 그 이외의 법규명령의 종류를 법률로써 인정할 수 없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법률은 행정규칙에 법규사항을 위임해서는 아니 된다 할 것이다.”고 설시하고 있다. 대상판결에서 소수의견은 ‘법규’ 개념을 기준으로 의회의 입법사항과 행정의 입법사항을 구분하고, 행정에 의해 제정되는 구속력 있는 규범은 전적으로 의회의 입법권이 위임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보아 법규명령의 형식으로만 발해질 수 있다고 보는 독일 헌법 및 공법의 해석론과 같은 관점에서 우리 헌법을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헌법은 독일과 달리 ‘법규명령’이나 ‘행정규칙’ 개념을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헌법 어디에서도 ‘법규’ 개념을 전제한 규정은 찾을 수 없다. ‘법규’나 ‘법규명령’ 개념은 독일 공법의 역사에서 비롯된 독일의 고유한 개념으로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은 이러한 관념이 없으며, 헌법상 법규명령 정립권에 관한 규정의 편장도 독일과 우리나라가 명백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1] 우리 헌법 규정을 독일 헌법 규정과 동일하게 해석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2] [각주1]독일은 의회 입법권의 장에 두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행정부의 장에 두고 있다. 즉 독일은 법규명령의 제정을 ‘전적으로’ 의회입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각주2] 독일에서 전통적인‘법규’ 개념은 의회 입법사항과 행정의 권한을 가르는 핵심 개념이었으나, 기본법 제80조가 적용되는 법규명령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법규 개념의 본래적 기능이 상실되고 이를 법률유보이론이 대체했다. 그러나 여전 ‘법규명령’이라는 용어가 유지되어 법규명령으로 제정된 사항만이 구속력 있는 법규로 관념된다. 독일의 ‘법규’ 개념의 역사와 현재적 유용성, 그리고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의 행정의 규범제정의 현황에 관해 자세히는 박정훈, “법규명령 형식의 행정규칙과 행정규칙 형식의 법규명령 - ‘법규’개념 및 형식/실질 이원론의 극복을 위하여 -”, 행정법학 제5호, 2013.09. 참조. 박정훈 교수는 위의 논문에서 문제의 쟁점을 근본적인 관점에서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설명하고 있다. 동 교수는 법규명령, 행정규칙 개념이 모순에 처한 근본이유는 ‘법규’ 개념의 기능이 변하고 상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규’ 개념을 전제로 한 ‘법규명령’의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행정이 정립하는 규범의 성질과 구속력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법규명령 또는 행정규칙이라는 형식/실질의 이분론을 폐기하고 형식과 실질을 종합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에 이르는 매우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Ⅳ. 맺음말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이론은 우리 법제 실무의 혼란을 판례가 실천적으로 수용한 개념이며, 대상판결에서 헌법재판소에 의해 헌법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의회와 행정의 관계는 변화를 거듭해 왔고, 현대사회에서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다만, 행정이 정립하는 다양한 형식의 규범과 Rule들에는 그 내용과 실질에 부합하는 적절한 통제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이는 앞으로 행정의 입법 내지 규범제정 영역에 놓인 학문과 실무의 과제라 할 것이다.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행정규칙
위임입법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제2조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2023-09-28
금융·보험
기업법무
주주평등의 원칙 관련 최근 대법원 판례와 포이즌 필의 도입 가능성
1. 들어가며 최근 대법원은 주주평등의 원칙과 관련해 2건의 중요한 판결(대법원 2023. 7. 13. 선고 2021다293213 판결, 대법원 2023. 7. 13. 선고 2022다224986 판결, 이하 위 두 대법원 판결을 포괄해 “대상판결들”이라 함)을 선고했다. 대상판결들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반하는지 여부에 관해 원심과 달리 판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판결이라 할 수도 있지만, 주주평등의 원칙의 예외와 그 판단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포이즌 필(Poison Pill)이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한 하급심 또는 대법원 판결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상판결들의 타당성을 떠나 대상판결이 판시한 주주평등의 원칙 예외의 판단기준을 보면, 조심스럽게 ‘포이즌 필(Poison Pill)이 주주평등의 원칙의 예외로 인정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2. 주주평등의 원칙의 예외에 관한 판례 변경 가. 주주평등의 원칙 주주평등의 원칙이란, 주주는 회사와의 법률관계에서는 그가 가진 주식의 수에 따라 평등한 취급을 받아야 함을 의미한다(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8다9920, 9937 판결 등). 우리나라 상법은 주주평등의 원칙을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1주 1의결권(상법 제369조 제1항), 이익배당청구권(상법 제464조), 잔여재산분배(상법 제538조) 등에서 이 원칙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다[정찬형, 상법(상) 제21판(2018), p.711]. 주주평등의 원칙은 강행규정적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원칙을 위반한 약정이나 정관의 규정, 주주총회 또는 이사회의 결의, 대표이사의 업무집행 등은 법률상 무효에 해당한다(대법원 2020. 8. 13. 선고 2018다236241 판결 등). 나. 주주평등의 원칙의 예외에 관한 종전 법원 판결 대상판결들이 선고되기 전까지는, 주주평등의 원칙의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판시한 대법원 판결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하급심 판결이기는 하나, 제주지방법원 2008. 6. 12. 선고 2007가합1636 판결은 “(주주평등의 원칙의) 예외는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하여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 인정(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4. 2. 선고 2014가합578492 판결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대한 예외는 오직 법률에 의해서만 인정되며 그 이외에 정관의 규정이나 주주총회의 결의로는 인정될 수 없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05. 11. 29. 선고 2005가단105918,2005가단105925(병합) 판결은 “상법에서 인정하는 예외의 경우 이외에는 (중략)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반하는 때에는 회사의 선의·악의를 불문하고 무효라고 볼 것이다.”라고 각 판시했다. 즉, 종전 법원은 상법 등 법률에서 규정한 경우가 아니면, 주주평등의 원칙의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대상판결들은 종전 하급심 법원 판결과 달리, “법률이 허용하는 절차와 방식에 따르거나 그 차등적 취급을 정당화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허용할 수 있다.”라고 판시했다. 즉, 대상판결은 법률의 근거가 없더라도 차등적 취급을 정당화할 수 있는 특정한 사유가 인정되면 주주평등의 원칙의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 주주평등의 원칙의 예외에 관한 판단기준 주주평등의 원칙의 예외에 관한 판단기준과 관련해, 대상판결들은 “차등적 취급을 허용할 수 있는지 여부는, 차등적 취급의 구체적 내용, 회사가 차등적 취급을 하게 된 경위와 목적, 차등적 취급이 회사 및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필요했는지 여부와 정도, 일부 주주에 대한 차등적 취급이 상법 등 관계 법령에 근거를 두었는지 아니면 강행법규에 저촉되거나 채권자보다 후순위에 있는 주주의 본질적 지위를 부정하는지 여부, 일부 주주에게 회사의 경영참여 및 감독과 관련해 특별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회사의 기관이 가지는 의사결정 권한을 제한해 종국적으로 주주의 의결권이 침해되는지 여부를 비롯해 차등적 취급에 따라 다른 주주가 입는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개별 주주가 처분할 수 있는 사항에 관한 차등적 취급으로 불이익을 입게 되는 주주의 동의 여부와 전반적인 동의율, 그 밖에 회사의 상장 여부, 사업목적, 지배구조, 사업현황, 재무상태 등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일부 주주에게 우월적 권리나 이익을 부여해 주주를 차등 취급하는 것이 주주와 회사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따져서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비추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라고 판시했다. 3. 대상판결에 따라 포이즌 필을 주주평등의 원칙의 예외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 가.포이즌 필의 의의와 우리나라의 포이즌 필 제도의 도입 시도 포이즌 필이란 적대적 M&A가 이루어지는 경우 인수자를 제외한 나머지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포이즌 필은 기존주주들로 하여금 시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신주를 인수하게 함으로 해서 인수자의 지분율을 희석시키고 인수자의 인수비용을 증가시켜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박정국, 포이즌 필에 관한 소고 -신주인수선택권의 도입을 중심으로 -, 법학논고 제40집(2012. 10.)(이하 “박정국 논문”), p506].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포이즌 필을 도입해 적대적 M&A에 대한 강력한 방어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IMF 당시 외국기업의 적대적 M&A를 겪으며 포이즌 필 도입에 관 본격적으로 논의했다[최완진, 포이즌 필 도입에 관해 본격적으로 논의했다[최완진, 포이즌 필의 도입이 시급하다, KERI Column(2016-07-08)p.1-2]. 포이즌 필의 도입을 위해, 법무부는 2010. 3. 10. 국회에 상법 제3편 회사편 제4장 제4절의2(신주인수선택권)을 신설하는 상법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반대하는 강한 반론이 있어 입법에 이르지 못했다[임재연, 회사법I, 개정5판(박영사, 2018), p.202]. 나. 포이즌 필의 필요성 포이즌 필을 찬성하는 견해는 (1) 현재 상법상 외국인의 국내기업에 대한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수단이 존재하지 아니해 방어회사가 불리한 입장이고, (2) 생산적 투자에 사용될 재원이 경영권 방어에 낭비될 수 있으며, (3) 경영자들의 경영권이 안정적으로 확보되면 중장기적으로 주주가치가 상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박정국 논문 p526). 다. 포이즌 필 도입에 관한 최근 법원의 입장 2020. 11. 17.에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서, 법원행정처는 "(포이즌 필 도입은) 적대적 M&A의 역기능 억제 등 긍정적 측면도 있다.", "적대적 M&A는 무능하고 비효율적인 경영진 해임 등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등 순기능도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입법정책적 결정이 필요하다.”라는 입장을 밝혔다<2020년 11월 20일자 법률신문(대법원, ‘대주주 3%룰’ 상법 개정안에 “신중한 검토 필요”)>. 법원행정처가 “입법정책적 결정이 필요하다”라고 한 점에서, 법원행정처는 포이즌 필의 장점과 적대적 M&A의 순기능 등을 고려한 포이즌 필 도입에 찬성한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생각된다. 라. 포이즌 필이 주주평등의 원칙의 예외로 인정될 수 있는지 포이즌 필은 신주인수권을 적대적 M&A 대상회사 주주에게만 인정하고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인수자에게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반되고,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신주를 발행한다는 점에서 자본충실의 원칙에도 위반되므로 현행법 하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견해가 존재한다. 또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종전 법원 판결과 같은 입장을 취할 시, 포이즌 필은 법률에 규정되어 있지 아니하므로 주주평등의 원칙의 예외로 인정할 수 없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법원은 종전 법원 판결과 달리 ‘차등적 취급을 하게 된 경위와 목적, 차등적 취급이 회사 및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필요했는지 여부와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차등적 취급을 정당화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주주평등의 원칙의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포이즌 필의 종류도 다양하고, 포이즌 필의 발동 요건을 각 회사 정관마다 달리 정할 수도 있겠지만, (1) 회사가 포이즌 필의 도입에 관해 주주 전체의 의사를 확인하고, (2) 대다수의 주주들이 포이즌 필의 도입에 찬성하며, (3) 포이즌 필 도입이 대주주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재무적 투자자(FI, Financial Investor)의 적대적 M&A로부터 회사와 기존 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 등 회사와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4) 대다수의 주주들이 해당 인수행위나 경영권자의 변경을 반대하고, (5) 정관에서 인정하는 주주들의 신주인수선택권이 인정하는 사유가 매우 제한적이고 예외적이며, (6) 주주들이 신주인수선택권을 통해 매수할 수 있는 주식 수가 합리적으로 제한되고 (7) 신주인수선택권 행사에 따른 주주들의 신주 인수가격이 시세보다는 낮되 자본충실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 정도이며, (8) 주주들이 신주인수선택권 행사를 하는 경우보다 포이즌 필을 도입하지 않을 시 경영권 방어에 들어갈 비용이 과도해 회사에 더 큰 손해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고, (9) 신주인수선택권 부여를 하려고 할 시 이사회의 의결뿐만 아니라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차등적 취급으로 불이익을 받는 인수자의 동의 여부와 다른 주주들의 동의율을 확인해 인수자를 제외한 다른 주주들의 압도적인 찬성을 얻는 등 주주와 회사의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정이 존재한다면 대상판결에 따라 주주평등의 원칙의 예외로 인정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본다. 배상현 변호사(OCI홀딩스 주식회사)
투자계약
포이즌필
주주평등의원칙
배상현 변호사(OCI홀딩스 주식회사)
2023-09-24
행정사건
- 대법원 2022. 1. 27. 2019두59851 판결-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⑥ 독서실 남녀좌석 구분을 강제하는 조례의 위헌성
대상판례는 학교 밖의 교육영역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여 우선적으로 결정할 것이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개입할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국가 등의 후견적 간섭에 대한 한계(기준)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Ⅰ. 사실관계 원고는 전주시에서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및 같은 법 시행령에 따른 ‘학습장소로 제공되는 학원인 시설’에 해당하는 독서실을 등록하여 운영하였다. 원고는 이 사건 독서실 등록 당시 이 사건 조례 제3조의3 제2호에 따라 남녀 좌석이 구분 배열된 열람실 배치도를 제출하였다. 피고는 이 독서실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하여 열람실의 남녀좌석 구분 배열이 준수되지 않고, 남녀 이용자가 뒤섞여 있는 것을 적발하였다. 피고는 2017. 12. 6. 원고에 대하여 학원법 제17조, 이 사건 조례 조항에 따라 10일간 교습정지를 명하는 처분(‘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이에 원고는 교습정지처분이 근거한 조례가 위헌, 위법하다는 이유로 이 사건 처분은 취소되어야 한다며 이 사건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전라북도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 【제3조의3】 법 제8조에 따른 학원의 단위시설별 시설기준은 다음과 같다. 2. 열람실 : 열람실은 60제곱미터 이상으로 하되, 1제곱미터당 수용인원이 0.8명 이하가 되도록 하고, 남녀별로 좌석이 구분되도록 배열할 것. Ⅱ. 대상판결의 요지 이 사건 조례 조항은 학원법상 학원으로 등록된 독서실의 운영자로 하여금 열람실의 남녀 좌석을 구분하여 배열하도록 하고 위반 시 교습정지처분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독서실 운영자는 자신의 영업장소인 독서실 열람실 내의 좌석 배열을 자유롭게 할 수 없게 되므로 직업수행의 자유를 제한받는다. 한편 독서실 이용자는 독서실 열람실 내에서 성별의 구분 없이 자유롭게 좌석을 선택하는 등 학습방법에 관한 사항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되므로 자기결정권을 제한받는다. 먼저 목적의 정당성이 있는지 보면, 이 사건 조례조항은 독서실 내에서 이성과 불필요한 접촉을 차단하여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고 성범죄를 예방하는 것을 입법목적으로 하지만 열람실의 남녀좌석을 구분하여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고 학습효과를 높인다는 것은 독서실 운영자와 이용자의 자율이 보장되어야 하는 사적 영역에 지방자치단체가 지나치게 후견적으로 개입하는 것으로서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또한 수단의 적합성 역시 같은 열람실 내에서 남녀좌석을 구별하는 것이 그 목적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인지는 의문이다. 열람실 자체를 분리하지 않으면서 동일한 열람실에서 남녀의 좌석 배열만 구별하는 경우, 남녀가 바로 옆자리에 앉을 수 없을 뿐 앞뒤의 다른 열 책상에는 앉을 수 있고, 동일한 출입문을 사용하므로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다.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 역시 이 사건 조례 조항은 독서실 운영자에게 남녀좌석을 구분 배열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별도의 경고 조치 없이 바로 10일 이상의 교습정지 처분을 하면서도, 독서실의 운영 시간이나 열람실의 구조, 주된 이용자의 성별과 연령, 관리감독 상황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아니하여 독서실 운영자의 직업의 자유를 필요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다. 반면, 독서실의 남녀좌석을 구분 배열함으로 인해 달성할 수 있는 면학분위기 조성이나 성범죄 예방이라는 효과는 불확실하거나 미미하다. Ⅲ. 평석 1. 법원의 명령, 규칙, 조례에 대한 부수적 규범통제 명령·규칙이나 조례가 개별 사건의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 문제된 명령·규칙이나 조례가 모법에 위배되는지 여부 등에 대한 위법 심사, 평등원칙이나 신뢰보호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나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 등 위헌 심사를 행한다. 처분은 법령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데, 처분의 취소 등을 구하는 항고소송에서 법원은 근거법률에 위헌의 합리적 의심이 있으면 헌재에 심판제청을 하여야 하지만(헌법 제107조 제1항), 명령, 규칙, 조례 등의 위헌, 위법 여부는 직접 심사를 하게 되고(헌법 제107조 제2항), 심사결과 대통령령 등이 위헌, 위법이라고 판단되면 그러한 행정입법과 조례 등은 효력이 없고, 일반적인 효력을 부정하는 설도 있으나 통상 당해 사안의 적용 배제에 그친다는 설이 다수설이다. 대통령령 등은 대법원 판결로 위헌·위법이 확정되어야 관보에 게재된다(행정소송법 제6조) 그에 근거한 처분 또한 위헌, 위법한 처분이 된다. 2. 자기결정권과 자기책임의 원리 자기결정권은 이성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의 자기의 운명에 관한 결정·선택권을 존중하되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부담함을 전제로 하는 자기책임의 원리에서 비롯된다. 개인이 자유의사에 따라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때만 원칙적으로 자기결정에 따른 책임과 위험부담이 부과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에서 파생되는 자기결정권은 사람의 자기의 운명에 대한 결정·선택을 존중하되 그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부담함을 전제로 한다. 자기책임의 원리는 이와 같이 자기결정권의 한계논리로서 책임부담의 근거로 기능하는 동시에 자기가 결정하지 않은 것이나 결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책임을 지지 않고 책임부담의 범위도 스스로 결정한 결과 내지 그와 상관관계가 있는 부분에 국한됨을 의미하는 책임의 한정원리로 기능한다. 이러한 자기책임의 원리는 법치주의에 당연히 내재하는 원리로서, 자기책임의 원리에 반하는 제재는 그 자체로서 위헌이다(헌재 2001헌가25).”라고 판시하여 자기책임의 원리는 자기결정권의 한계 논리 내지 책임부담의 근거일 뿐만 아니라 책임의 한정 원리로 기능한다고 보고 있다. 3. 국가 후견주의의 한계 국가 후견주의의 구체적인 유형 구분은 학자마다 상이하나, 결국에는 자기 결정권의 제약원리로서 개인의 자율영역에서 자신의 이익이나 보호를 위하여 자기 결정권에 대해 국가권력이 개입·간섭하는 경우를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일치한다. 드워킨은 후견주의와 관련하여 “강제를 받는 사람의 복지, 행복, 필요, 이익 또는 가치와 관계하는 이유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과 같은 어떤 사람의 행동의 자유에 대한 간섭”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파인버그는 강한 후견주의와 약한 후견주의로 구분하고 있는데 강한 후견주의는 개입·간섭을 받는 자의 선택이나 행동이 완전히 임의적이라 하더라도 개입·간섭을 하는 데 반해, 약한 후견주의는 개입·간섭을 받는 자가 어떤 이유에 의해 적절한 판단 능력을 결여하여 실질적으로 비자발적이거나 그렇다고 추정될 경우에만 간섭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또한 데블린은 신체적·물질적 후견주의와 정신적·도덕적 후견주의로 구분하기도 한다. 결국, 자기결정권에도 내재적 한계가 있으므로 인격적 자율 그 자체를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영속적으로 해치는 경우 국가가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견주의라는 명목하에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간섭이 지나치게 확대됨은 경계하여야 한다. 4. 평등원칙 위반 대상판결에서 검토된 것은 아니나, 이 사건 조례조항은 평등원칙위반 소지도 있다. 1970년 10월부터 시행된 사설강습소에 관한 법률 시행령부터 “남녀공용인 독서실에 있어서는 열람실을 남녀별로 구분하고, 출입문도 따로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되다가 1985.5. 해당 조항은 없어졌으며 1996.1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부터 “남녀별로 좌석이 구분되도록 배열할 것“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후 2007.3. 시행된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규정이 삭제되었고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열람실 남녀 구분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사설 열람실의 경우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성인인 경우라도 남녀좌석을 의무적으로 구분하여야 하며 이를 위반 할 경우 교습정지 등 행정처분의 대상이 된다. 반면 스터디카페, 공공도서관, 공동주택 독서실 등은 남녀좌석을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사설 열람실의 경우와 차이가 있다. 여기서 평등원칙 위반의 소지가 발생하는데, 스터디카페, 공공도서관, 공동주택 독서실 등도 면학분위기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학원법에 따라 등록된 열람실과 실질적으로 차이는 없다. 그런데 위 공간들은 남녀좌석을 구분하여 운영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 않는 반면 이 사건 조례조항에 따르면 남녀좌석을 구분하여 운영할 의무를 부과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1회 적발시 10일간 교습정지, 2회 적발시 폐쇄명령을 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명백히 차별 대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평등원칙이 의미하는 상대적 평등, 즉 실질적으로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근거 없이 차별을 위반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상당하다. 5. 결론 급변하는 사회상을 반영하여 법령을 적시에 변경할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조례조항은 1970.10.27. 사설강습소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규정된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여 유지해 왔다. 대상판결은 사적 공간에서 학습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타인의 법익과 특별한 관련이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므로 이용자 각자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 미성년 학생이라도 학교 밖의 교육영역에 속하는 경우에는 부모가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여 우선적으로 결정할 것이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개입할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힘으로써 국가 등의 후견적 간섭에 한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국가 후견주의가 인정된다고 할지라도 헌법상 보장된 자기결정권의 본질을 침해해서는 아니되며, 필요 최소한도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 사건 조례조항은 학원법에서 규율하는 장소를 스터디카페 등 학원법에서 규율하지 않는 장소와 비교하여 볼 때 실질적인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고 있다. 이 사건 판결로 유사 조항을 두고 있는 다른 지자체의 지방자치단체의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 역시 헌법에 위반되는 것으로 추후 관련 소송이나 조례 개정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상판례는 학교 밖의 교육영역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여 우선적으로 결정할 것이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개입할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국가 등의 후견적 간섭에 대한 한계(기준)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성중탁 교수(경북대 로스쿨)
남녀구분
과잉금지원칙
독서실
열람실
성중탁 교수(경북대 로스쿨)
2023-08-30
가사·상속
민사일반
- 대법원 2023. 5. 18. 선고 2019다222867 판결 -
수증자가 증여받은 재산을 상속개시 전에 처분하였거나 수용된 경우 유류분 산정의 기준시기
(사실관계 및 대법원 판결) 1. 사실관계 소외 1은 2014. 9. 12. 사망하였는데, 자녀인 원고들과 피고가 망인을 공동상속하였다. 소외 1은 1995. 5. 30.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이 사건 각 토지에 관하여 1995. 5. 25. 증여를 원인으로 하여 피고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주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2009. 11. 3. 이 사건 각 토지를 수용하였고, 피고는 2009. 12. 11. 한국토지주택공사로부터 수용보상금 5,118,316,500원을 수령하였다. 2. 원심판결 원심은 이 사건 각 토지의 증여로 인하여 원고들의 유류분이 침해되었다고 인정하고 피고에게 유류분 반환을 명하였는데, 이를 산정함에 있어서 위 토지의 가액을 상속개시시를 기준으로 하여 7,233,034,000 원으로 인정하였다. 3. 대법원 판결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민법 문언의 해석과 유류분 제도의 입법취지 등을 종합할 때 피상속인이 상속개시 전에 재산을 증여하여 그 재산이 유류분반환청구의 대상이 된 경우, 수증자가 증여받은 재산을 상속개시 전에 처분하였거나 수용되었다면 민법 제1113조 제1항에 따라 유류분을 산정함에 있어서 그 증여재산의 가액은 증여재산의 현실 가치인 처분 당시의 가액을 기준으로 상속개시까지 사이의 물가변동률을 반영하는 방법으로 산정하여야 한다.” 대법원은 위와 같이 보아야 할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연구) 1. 서론 대법원 판결에 찬성한다. 필자는 위 대법원 판결과 같은 취지로 논문을 발표한 바 있고(윤진수, 유류분반환청구에서 공동상속인에 대한 증여의 시기와 증여 가액의 산정 시점, 비교사법 29권 4호, 2022), 또 이 사건에 관하여도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으며, 이 의견서가 참고된 것으로 보인다. 2. 종전의 판례 대법원 2005. 6. 23. 선고 2004다51887 판결은, 유류분액을 산정함에 있어 피고들이 증여받은 재산의 시가는 상속개시 당시를 기준으로 산정하여야 하고, 당해 피고에 대하여 반환하여야 할 재산의 범위를 확정한 다음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 원물반환이 불가능하여 가액반환을 명하는 경우에는 그 가액은 사실심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산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 사건은 피고가 피상속인으로부터 주식을 증여받았는데, 원고가 유류분 반환청구를 하였고, 피고는 당시 증여받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던 경우였다. 그러나 위 판결에서 원물반환이 불가능하게 된 시점이 상속개시 전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다. 또 대법원 2021. 6. 10. 선고 2021다213514 판결도 이를 재확인하면서, 원물반환이 불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반환할 가액의 산정 기준이 달라지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유류분권리자와 반환의무자가 모두 가액반환에 동의한 사건이었다. 한편 대상결정과 같이 부동산이 수용된 경우에 관하여는 대법원의 명시적인 판례는 없다. 다만 서울고등법원 2018. 10. 17. 선고 2017나2065297 판결은, 상속개시 전에 증여된 부동산이 수용된 경우에 대하여, 상속개시 당시 시가를 반환하여야 할 증여재산으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2010. 4. 29. 선고 2007헌바144 결정은, 유류분산정의 기초재산에 가산되는 증여재산의 평가시기를 증여재산이 피상속인 사망 전에 처분되거나 수용되었는지를 묻지 않고 모두 상속개시시로 하는 것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3. 학설 이처럼 상속개시 전에 증여받은 목적물의 원물반환이 이미 불가능하게 된 경우에 증여재산의 가액 산정 기준시에 관하여는 몇 가지 학설이 주장되고 있다. 제1설은 유류분액을 산정하여 유류분 침해의 유무를 판단하는 제1단계와, 원물반환이 불가능하여 그 가액을 산정하는 제2단계에서 모두 상속개시시를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2설은 제1단계에서는 상속개시시가 기준이 되지만, 제2단계에서는 원물반환이 불가능하게 된 때, 즉 처분시 또는 멸실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3설은 제2단계의 유류분 산정시에는 수증재산의 대상인 처분대가가 상속개시시에 갖는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제2설과 마찬가지이지만, 1단계에서도 상속개시시가 아니라 수증재산의 처분시 시가에 상속개시 시까지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금액을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에 산입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4. 검토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수증재산의 가액이 변동하는 경우에, 그 변동의 이익 또는 위험을 유류분을 반환하여야 하는 수증자에게 귀속시킬 것인가 아니면 유류분권리자에게 귀속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수증자가 수증재산을 처분한 후 유류분 반환이 청구된다면, 그 수증재산의 가액을 반환함에 있어서 목적물의 가치 산정은 수증재산을 처분한 때를 기준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상속개시 전에 수증자가 수증재산을 처분한 경우에는 유류분부족액을 산정하는 제1단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다만 수증자가 수증재산을 처분한 것이 상속개시 후라면, 유류분부족액을 산정하는 제1단계에서는 상속개시 시의 수증재산의 가액을 산정하고, 반환하여야 할 가액을 산정하는 제2단계에서는 처분시를 기준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먼저 제2단계를 중심으로 하여 살펴본다. 수증자가 수증재산을 더 이상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그 후의 수증재산의 가치 변동은 더 이상 수증자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사항이고, 따라서 이로 인하여 수증자가 불이익을 받거나 이익을 받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수증자가 수증재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후 수증재산의 시가가 올랐다면, 그 오른 가격을 수증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프랑스의 문헌이 설명하는 것처럼, 증여에 의하여 받은 이익과 관계없는 것까지 청구함으로써 수증자를 파산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은 불공정(injuste)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반대로 수증자가 수증재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후 목적물의 시가가 떨어졌다고 하여 시가가 떨어진 시점의 가액만을 반환하게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합리하다. 그러므로 수증자가 수증재산을 처분함으로써 이를 반환하지 못하게 되었다면 그 처분 시점의 수증재산의 가액만큼을 반환하는 것이 공평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처분이 상속개시 전에 이루어졌을 때에는 처분 당시의 수증재산의 가액에 상속개시 당시까지 사이의 물가변동률을 반영하는 방법으로 산정하여야 한다. 이는 수증자가 금전을 증여받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취급하는 것이 된다. 반면 처분이 상속개시 후에 이루어졌다면, 이때에는 처분 당시의 증여 목적물 가액이 기준이 될 것이다. 이 때 수증재산을 대가를 받고 처분하였다면, 통상적으로는 그 대가를 그 처분 시점의 수증재산의 가액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5. 대법원 판결에 대하여 대법원 판결도 기본적으로 같은 취지이다. 즉 수증자가 재산을 처분한 후 상속개시 사이에 그 재산의 가치가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것은 수증자나 기타 공동상속인들이 관여할 수 없는 우연한 사정인데, 그럼에도 상속개시시까지 처분재산의 가치가 증가하면 그 증가분만큼의 이익을 향유하지 못하였던 수증자가 부담하여야 하고, 감소하면 그 감소분만큼의 위험을 유류분청구자가 부담하여야 한다면 상속인간 형평을 위하여 마련된 유류분제도의 입법취지에 부합하지 않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피상속인이 생전에 증여를 한 다음 수증자에 의하여 처분되거나 수용되었다고 하여 그 재산의 시가상승 이익을 유류분 반환대상에 포함시키도록 재산가액을 산정한다면 수증자의 재산 처분을 제재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필자의 표현(위 논문 279면)을 원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위 대법원 2005. 6. 23. 선고 2004다51887 판결과의 관계를 명확히 하지 않은 것은 아쉽게 생각한다. 6. 여론 대상판결에서 문제가 된 증여는 1995. 5. 25. 있었고, 상속 개시는 2014. 9. 12.이었다. 종래 판례(대법원 1995. 6. 30. 선고 93다11715 판결 등)와 통설은, 공동상속인에 대한 증여는 그것이 특별수익에 해당할 때에는 민법 1118조가 특별수익에 관한 1008조를 준용하고 있으므로, 증여는 상속개시전의 1년간에 행한 것에 한하여 그 가액을 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1114조 본문에도 불구하고 증여 시기를 불문하고 유류분산정의 기초재산에 산입한다고 보고 있다. 대상 판결도 같은 전제에 서 있다. 그러나 필자는 1118조로부터는 그러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유류분으로 인한 분쟁을 조장하는 것이다. 윤진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유류분
증여
유류분산정
윤진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3-08-27
인터넷
헌법사건
헌재 2022. 12. 22. 선고 2019헌마654 결정
공공기관등 게시판 인터넷실명제 사건
1. 대상결정의 개요 가. 사건개요 청구인은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 자유토론 게시판’, ‘서울 동작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그 밖에 공기업·준정부기관 및 지방공사·지방공단 등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자신의 의견을 게시하려고 하였으나, 위 각 게시판의 운영자들이 게시판 이용자가 본인임을 확인하도록 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어서 곧바로 의견을 게시하지 못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심판대상조항이 자신의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대상조항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5(게시판 이용자의 본인 확인)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게시판을 설치·운영하려면 그 게시판 이용자의 본인 확인을 위한 방법 및 절차의 마련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필요한 조치(이하 “본인확인조치”라 한다)를 하여야 한다. 1.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제3항에 따른 공기업·준정부기관 및 「지방공기업법」에 따른 지방공사·지방공단(이하 “공공기관등”이라 한다) 다. 결정요지 공공기관등이 설치·운영하는 게시판에 언어폭력, 명예훼손, 불법정보 등이 포함된 정보가 게시될 경우 그 게시판에 대한 신뢰성이 저하되고 결국에는 게시판 이용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으며, 공공기관등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등이 설치·운영하는 게시판의 경우 본인확인조치를 통해 책임성과 건전성을 사전에 확보함으로써 해당 게시판에 대한 공공성과 신뢰성을 유지할 필요성이 크며, 그 이용 조건으로 본인확인을 요구하는 것이 과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게시판의 활용이 공공기관등을 상대방으로 한 익명표현의 유일한 방법은 아닌 점, 공공기관등에 게시판을 설치·운영할 일반적인 법률상 의무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 심판대상조항은 공공기관등이 설치·운영하는 게시판이라는 한정적 공간에 적용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한 기본권 제한의 정도가 크지 않다. 그에 반해 공공기관등이 설치·운영하는 게시판에 언어폭력, 명예훼손, 불법정보의 유통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얻게 되는 건전한 인터넷 문화 조성이라는 공익은 중요하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청구인의 익명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 [반대의견(재판관 4인)] 심판대상조항은 공공기관등이 설치·운영하는 모든 게시판에서 본인확인을 한 경우에만 정보를 게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본인확인을 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공공기관등이 설치·운영하는 게시판에서 표현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고, 게시판에 자신의 사상이나 견해를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표현의 내용과 수위 등에 대해 자기검열을 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서, 익명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어 청구인의 익명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2. 평석 가. 인터넷실명제의 의의 및 연혁 인터넷실명제 또는 본인확인제란 인터넷 이용자가 인터넷상의 게시판에 글을 게시하거나 자료를 등록하는 경우 또는 뉴스 기사 등에 대하여 댓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 서비스 이용자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등 신원정보가 확인된 경우에 한하여 글을 등록하거나 자료를 올릴 수 있게 하여 글의 작성자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입된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실명제의 주요 연혁은 아래와 같다. 나. 익명표현의 자유의 사회적 기능 헌법 제21조 제1항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고자 하는 핵심가치가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나 의견을 외부에 표명하는 데에 있다고 한다면, 익명성이 보장되는 경우에 더 잘 실현될 수 있고, 그것이 실명으로 표현되든 익명으로 표현되든 그 표현방식이나 표현방법은 의사표현자의 선택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표현의 경우, 보복이나 차별의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전파하여 국가권력이나 다수의견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하며, 이를 통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의사를 국가의 정책결정 등에 반영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의 핵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익명표현은 인터넷이 가지는 정보전달의 신속성 및 상호성과 결합하여 현실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다양한 계층의 국민 의사를 평등하게 반영하여 현실 공간에서의 경제력이나 권력에 의한 위계구조를 극복하여 계층·지위·나이·성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다양한 계층의 국민 의사를 평등하게 반영하여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되게 한다. 따라서 비록 인터넷 공간에서의 익명표현이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갖는 헌법적 가치를 중시하여 강하게 보호되어야 한다(헌재 2012. 8. 23. 2010헌마47등). 다. 대상결정의 한계와 입법론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익명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위 〈표〉에서 보듯이, 2012. 8. 23. 인터넷게시판을 설치·운영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본인확인조치의무를 부과한 조항에 대하여(2010헌마47등), 2021. 1. 28. 인터넷언론사가 선거운동기간 중 당해 홈페이지의 게시판을 운영하는 경우 실명을 확인받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의무를 부과한 조항에 대하여(2018헌마456등) 각 위헌결정을 하였다. 그런데 대상결정은 이러한 익명표현의 자유 강화에 역행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상결정에서 실명게시판 유지의 이유로 우선, 게시판에 언어폭력, 명예훼손, 불법정보 등이 포함된 정보가 게시될 경우 그 게시판에 대한 신뢰성이 저하되고 결국에는 게시판 이용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으며, 공공기관등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음을 들었다. 그러나 반대의견이 지적한 것처럼, 심판대상조항과 달리 본인확인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본인확인을 할 수 있도록 하여 공공기관등의 신뢰성과 원활한 업무수행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등이 설치·운영하는 모든 게시판에서 이용자에 대한 본인확인조치를 요구하고, 결과적으로 본인확인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게시판에서 표현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써 입법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 청구인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사건 심판과정에서 게시판 운영에 대해, 외교부는 실명제 폐지의사를, 경찰청은 실명제 유지의사를, 다수의 지방자치단체는 실명제이든 익명제이든 무차별하다는 의사를 각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인터넷의 동시성, 전파성, 시간·공간의 무제약성이라는 상황적 조건으로 인해 게시판에 위법한 내용이 게시되면 그로 인한 피해가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고, 이는 공공기관등의 게시판에 게시된 내용이 추후 삭제되더라도 마찬가지일 수 있음을 들었다. 그러나 익명표현의 자유가 지니는 사회적 기능을 고려하면, 심판대상조항이 규율하고 있는 공적 영역은 그렇지 않은 영역에 비하여 오히려 자기검열로 위축될 우려가 크므로 익명표현의 자유가 더욱 강하게 보장될 필요가 있는 곳이다. 따라서 반대의견이 밝힌 것처럼 익명표현으로 인한 피해가 우려되더라도, 이는 관리자에 의한 해당 정보의 삭제, 게시판 관리·운영자에 대한 불법정보 취급의 거부·정지 또는 제한명령(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제2항, 제3항), 위 정보를 게시한 이용자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의 추궁 등의 방법을 강구하는 방식으로 대처하여야지 익명표현의 자유 자체를 제한하는 방식을 택해서는 아니된다. 위 [표]에서 나타나듯, 헌법재판소가 선거운동기간 중 게시판 인터넷실명제에 대해 3차결정에서 위헌으로 선고한 것처럼 심판대상조항 역시 향후 2차, 3차결정에서 위헌으로 변경될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 국민의 익명표현의 자유가 계속 침해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헌법재판소의 기각결정에는 위헌결정과 달리 기속력이 인정되지 않는 점, 공공기관의 특성에 따라서는 익명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성을 부인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일률적·필요적 실명확인제를 선택적·임의적 실명확인제로 개선함이 타당하다. 현행법하에서는 게시판을 익명제로 운영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 본인확인조치를 할 수 있다”라고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김광재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인터넷실명제
정보통신망법제44조의5
표현의자유
김광재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202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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