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로 아동·청소년을 속여 성관계에 동의하게 만들고 미성년자를 간음했다면 '위계에 의한 간음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착각·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해 간음의 목적을 달성했다면 위계와 간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한다는 것으로, 이에 따르면 성관계를 맺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속였을 뿐 성관계 자체는 미성년자의 동의하에 맺은 경우라도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한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말하는 위계는 성관계 자체에 대한 오인·착각·부지를 말하는 것으로, 다른 조건에 관한 오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는데 이를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7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위계 등 간음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2015도9436).
30대 남성인 A씨는 2014년 스마트폰 채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알게 된 미성년자 B(당시 14세·여)양에게 자신을 '고등학교 2학년생'이라고 속이고 온라인 상에서 사귀었다. A씨는 2014년 8월 B양에게 '사실은 나를 스토킹하는 여성이 있는데, 나에게 집착해서 너무 힘들고 죽고 싶다. 우리 그냥 헤어질까'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스토킹하는 여성을 떼어내려면 (네가) 나의 선배와 성관계를 하면 된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B양은 A씨와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 제안을 승낙했고, A씨는 마치 자신이 그 '선배'인 것처럼 행세하며 B양과 만나 성관계를 맺었다. 검찰은 "A씨가 위계로 미성년자인 B양을 간음했다"며 기소했다.
재판에서는 A씨의 행위를 위계에 의한 간음죄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행위자(A씨)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B양)에게 오인·착각·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했다면, 위계와 간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위계적 언동의 내용 중에 피해자가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를 이룰만한 사정이 포함되어 있어 피해자의 자발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없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위계에 의한 간음죄 피해자들의 성적 자기결정 능력은 나이, 성장과정, 환경, 지능 내지 정신기능 장애의 정도 등에 따라 개인별로 차이가 있으므로, 간음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 위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범행 상황에 놓인 피해자의 입장과 관점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B양은 A씨에게 속아 성관계를 한 것"이라며 "B양이 오인한 상황은 간음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가 된 것으로, 이를 자발적이고 진지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따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앞서 1,2심은 "B씨는 A씨를 좋아하는 마음에 A씨가 요구하는대로 '선배'와 성관계할 것을 승낙했다"며 "스스로 성관계에 응했고 거부하지 않았다"면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오인·착각·부지의 대상을 간음행위 자체 내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는 다른 조건에 한정하지 않고, 간음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 대상으로 확장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