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하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통상의 일반 재판으로 1심을 진행했다면 재판이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형사8부(재판장 황한식 부장판사)는 지난 27일 10대 청소년들을 폭행·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김모(31)씨에 대한 항소심(2012노1456) 선고공판에서 "김씨의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1심은 위법해 무효"라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민참여재판 대상 사건은 법원이 피고인에게 참여재판을 원하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데, 1심은 변론 종결 후 제출된 변호인의 의견서만으로 김씨가 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고 보고 판결을 선고했다"면서 "더구나 김씨가 항소심에서 참여재판을 받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한 점에 비춰볼 때 1심에서 피고인의 권리가 침해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과 그 규칙에 따르면 피고인은 공소장 부본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지 여부를 기재한 서면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이 기간내에 서면을 제출하지 않으면 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법원은 피고인이 제출한 서면만으로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때에는 따로 심문기일을 열거나 다른 방법으로 피고인의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
김씨는 지난 1월 옆집 개 짖는 소리에 항의하러 갔다가 집에 있던 10대 두 명 중 한 명의 팔을 흉기로 베고 소주병으로 머리를 내리친 뒤 옆에 있던 다른 한 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과 신상정보 공개 5년,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김씨는 "술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였다"며 항소했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피고인이 석방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고 있는 만큼 국민참여재판 방식으로 심리를 다시 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 형사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지난 4월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통상의 1심 절차로 재판을 진행했다면 피고인이 2심에서 "이의가 없다"고 진술했더라도 공판절차의 하자가 치유되지 않아 무효라고 판결한 바 있다(2012도1225).
당시 재판부는 항소심 첫 공판기일에 피고인과 변호인이 "1심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아닌 통상 공판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은 것에 대해 이의가 없다"고 진술한 사실만으로는 1심의 공판절차상 하자가 치유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 형사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지난달 "1심 법원이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의사가 있는지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았더라도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명백히' 표시한 경우에는 재판 절차의 하자가 모두 치유된다"고 판결했다(2011도 15484).
재판부는 "1심 법원이 국민참여재판 대상사건임에도 통상의 공판절차에 따라 재판을 해 무효라고 봐야 하지만, 항소심 법원이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으로 재판 받기를 원하는지 물어보고 이후 피고인이 이를 원치 않는다는 확인서를 제출받는 등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 거부 의사를 명백히 확인했다"면서 "국민참여재판도 피고인의 의사에 반해 할 수 없는만큼 1심의 절차적 하자가 치유돼 공판절차 전체가 적법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대법원 입장은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것인지 여부를 제대로 명시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 의사를 묻지 않고 한 재판은 원칙적으로 모두 무효지만, 이후 항소심 절차 등에서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 거부 의사를 '명백히' 확인했다면 그 경우에 한해 재판 절차의 하자가 치유될 수 있다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서울고법 판결도 이같은 대법원의 입장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