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판매업자가 하위 판매원에게 자격 유지나 유리한 수당 지급을 조건으로 방문판매법이 금지하는 연간 5만원을 초과하는 물품 구입 등의 부담을 지게했더라도 피해 판매원이 사측에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사측의 이 같은 방문판매법 위반 행위가 곧바로 피해 판매원에 대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서울고법 민사18부(재판장 정선재 부장판사)는 A씨 등 9명이 I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9나2056082)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최근 원고패소 판결했다.
A씨 등은 다단계판매업체인 I사에 2014~2016년 판매원으로 가입했다. A씨 등은 I사의 지역센터장 B씨로부터 "상위 직급으로 승급해야 더 많은 후원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권유를 받고 승급을 위해 I사가 판매하는 건강식품을 구입했다. 그런데 2018년 B씨는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방문판매법 제22조 1항 등은 '다단계판매업자는 다단계판매원이 되려는 사람 또는 다단계판매원에게 등록, 자격 유지 또는 유리한 후원수당 지급기준의 적용을 조건으로 연간 5만원을 초과한 부담을 지게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B씨는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고, A씨 등은 "B씨 등의 방문판매법 위반 행위로 총 13억원가량의 건강기능식품을 구매했다"며 I사와 B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관련법상 판매원에 일정수준 넘는
부담행위 금지는
판매원 모집으로 수익 얻는
사행적 조직 방지 취지
재판부는 "다단계판매업자의 방문판매법 제22조 1항 위반 행위가 다단계판매원에 대한 어떤 주의의무에 위반한 불법행위로 평가될 수 있으려면, 방문판매법 제22조 1항이 다단계판매원 개인의 재산상 이익을 보호하거나 손실을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방문판매법이 다단계판매원에게 일정 수준을 넘는 부담을 지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상품의 판매와 무관한 다단계판매원의 지위 그 자체와 관련해 대가가 지급됨으로써 다단계판매 조직이 상품의 판매가 아니라 판매원 모집으로 수익을 얻는 사행적 조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방지하려는 취지일 뿐"이라며 "다단계판매원의 재산상 이익을 보호하거나 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판매원의 재산상
이익보호·손실방지 규정으로 못 봐
또 "만약 A씨 등의 주장과 같이 다단계판매업자가 방문판매법 제22조 1항을 위반한 경우 판매원에 대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본다면, 판매원으로서는 더 많은 후원수당을 지급받는 등의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스스로 한도를 초과한 부담을 진 다음, 기대와 달리 이익을 얻지 못하고 손실을 입은 경우에는 판매업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서울고법,
원고패소 판결
그러면서 "지역센터장 등이 방문판매법을 위반했더라도 I사는 행정적 제재를 받거나, 센터장 등이 형사적 제재를 받을 뿐"이라며 "다단계판매원인 A씨 등에 대해 어떤 주의의무를 위반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앞서 1심은 센터장인 B씨 등의 방문판매법 위반 행위는 A씨 등 일부 판매원에 대한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I사는 B씨와 함께 공동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