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 목적물이 화재로 소실된 경우 매수인은 화재사고로 매도인이 지급받게 될 보험금이나 공제금 '전부'에 대해 대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상청구권이란 채무자에게 이행불능이 발생한 것과 동일한 원인에 의해 채무자가 이행의 목적물에 갈음하는 이익을 얻었을 경우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그 이익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냉동육류 유통회사인 A사가 농업협동중앙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2013다7769)에서 원심이 원고패소 판결한 부분을 파기해 최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농협은 매년 정부를 대신해 농축산물을 사들여 이를 대량으로 중간 도매상에게 판매해왔다. A사는 2008년 8월 농협에서 1㎏당 1400원에 냉동 닭고기 309만1331㎏을 사기로 했다. 그런데 그해 12월 이 닭고기들이 보관된 농협 창고에서 화재가 나 이 가운데 12만633㎏이 타버렸다. 농협은 화제공재에 가입이 돼 있어 타버린 닭고기에 대해 1㎏당 2405원씩 총 2억9000여만원의 화재보험금을 받았다.
그런데 농협은 A사에 타버린 냉동 닭고기 6만㎏에 대해서는 1㎏당 2050원으로 계산한 보상금 1억2000만원을 지급하고 나머지 6만633㎏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상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A사는 화재공제금 전부에 대한 대상청구권을 주장하며 농협이 받은 화제공제금 2억9000만원에서 자신들이 이미 받은 보상금 1억2000만원을 뺀 나머지 1억7000만원을 달라며 소송을 냈다. 자신들이 농협에서 냉동 닭고기를 1㎏당 1400원을 주고 샀어도 농협이 1㎏당 2405원씩 보상받은 금액 전부에 대해 대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대법원은 A사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매매의 목적물이 화재로 소실됨으로써 채무자인 매도인의 매매목적물에 대한 인도의무가 이행불능이 되었다면, 채권자인 매수인은 화재사고로 매도인이 지급받게 되는 화재보험금, 화재공제금에 대해 대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손해보험은 본래 보험사고로 생길 피보험자의 재산상 손해의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상법 제665조), 보험자가 보상할 손해액은 당사자 간에 다른 약정이 없는 이상 그 손해가 발생한 때와 곳의 가액에 의해 산정하는 것이고(상법 제676조 1항), 이 같은 점은 손해공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화재보험금, 화재공제금에 대해 매수인의 대상청구권이 인정되는 이상, 매수인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목적물에 대해 지급되는 화재보험금, 화재공제금 전부에 대해 대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인도의무의 이행불능 당시 매수인이 지급했거나 지급하기로 약정한 매매대금 상당액의 한도 내로 그 범위가 제한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1심은 A사의 대상청구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원고패소 판결했다. 2심은 대상청구권 자체는 인정했지만 "A사가 농협에 매매대금으로 1㎏당 1400원을 지급했으므로 대상청구권의 범위도 매매대금 상당액으로 제한된다"며 "농협은 8751만원을 A사에 지급하라"고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