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 장애인들이 영화 화면해설 음성 서비스와 한글 자막을 제공해 달라고 CGV 등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이 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고 있는 '간접차별'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8부(재판장 박우종 부장판사)는 김모씨 등 시·청각 장애인 4명이 CJ CGV와 롯데쇼핑, 메가박스 등을 상대로 낸 차별구제청구소송(2016가합508596)에서 최근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CGV 등은 장애인인 김씨 등을 형식상 불리하게 대하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동등하지 않은 영화관람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간접차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CGV 등은 자막 등이 포함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영화를 현저히 제한적으로 상영하고 있고, 대상 영화도 영화관이 지정하고 있다"며 "영화관이나 웹사이트에 점자 자료, 한국 수어 통역 등의 편의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CGV 등은 화면해설이나 자막 파일이 제공되는 영화의 경우 시각장애인인 김씨 등에게는 화면 해설을, 청각장애인인 오모씨 등에게는 자막과 FM 보청기기를 제공하라"며 "자막이나 화면 해설이 제공되는 영화 상영 정보를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하고 영화관에도 점자 자료나 큰 활자로 확대된 문서, 한국 수어 통역 등을 제공하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과도한 비용 문제를 거론한 영화관 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선 배리어 프리 영화를 상영할 때 스파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영화 화면 해설을 제공하고 있다"며 "자막을 재생할 수 있는 스마트 안경이 국내에 유통되고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좌석 뒤에 자막용 화면을 설치하는 방법 등 소수의 장비나 기기 설치로 장애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CGV 등의 국내 영화관 스크린 점유율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설치비용으로 영화관들이 입을 경제적 타격은 심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씨 등은 지난해 2월 "2011년 개봉한 영화 '도가니'가 청각장애인의 인권 침해에 관한 내용이었는데도 정작 청각장애인들은 이 영화를 볼 수 없었다"며 "시각장애인에게는 화면 해설을, 청각장애인에게는 한글 자막과 FM 시스템을 제공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번 소송을 대리한 김재왕(39·변호사시험 1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선고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시·청각 장애인들이 영화 관람에서 소외돼왔는데, 법원이 이런 상황이 계속돼선 안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CGV 등이 항소로 더 다투지 말고 판결대로 이행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도 앞을 볼 수 없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