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중이나 종중원은 다른 종중의 족보 내용을 변경 또는 삭제하라고 할 권리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3부(재판장 문용선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경주김씨 계림군파 대종회와 종원들이 경주김씨 태자파 대종회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행위 금지 및 위자료청구소송 항소심(2011나97968)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가 부적법한 것으로 보아 각하했다.
고려 초기 대장군을 지낸 김순웅을 시조로 모시는 경주김씨 대장군공파의 일부 종원들은 2003년 김순웅이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김일(마의태자)의 차남이라는 서울대 규장각 자료를 발견해 마의태자를 시조로 하는 경주김씨 태자파를 구성해 새로운 족보를 만들었다.
그러자 경주김씨 대장군공파의 분파 중 하나인 경주김씨 계림군파는 시조인 김순웅은 마의태자의 차남이 아닌데 새 족보를 만들어 계림군파 종중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2005년 법원에 새로운 족보를 만들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했다. 하지만 법원은 2007년 "김순웅이 마의태자의 차남이라는 역사적 문건들은 진본이지만 이를 반박할만한 관련 문건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계림군파는 지난해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종중과 종원은 법인격을 달리하는 별개의 법률상 주체"라며 "계림군파는 태자파가 계림군파 종원에게 일정한 행위를 하거나 하지말 것을 직접 구할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종중의 족보에 기재된 사항의 변경·삭제를 구하는 청구는 재산상이나 신분상의 어떤 권리관계의 주장에 관한 것이 되지 못해 법률상 권리보호 이익이 없어 허용될 수 없어 부적법한 것으로 각하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1심은 "태자파가 계림군파의 시조인 김순웅을 마의태자의 차남이라고 주장하면서 새로운 족보를 만든 행위가 계림군파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신라를 건국한 김알지를 시조로 삼는 경주김씨는 현재 전국에 약 157만명이 있으며, 그 중 12만명이 태자파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