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증거가 제출됐음에도 중재판정에서 청구 부분에 따라 인용과 기각 등 서로 다른 결과가 나왔더라도 이 같은 판정이 명백하게 비합리적이거나 모순이 아니라면 해당 판정을 취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6부(재판장 이원석 부장판사)는 이스라엘 해운대리점업체인 A사가 한진해운 파산관재인 B씨를 상대로 낸 중재판정 취소소송(2020가합536840)에서 최근 원고패소 판결했다.
A사는 2015년 한진해운이 이스라엘에서 운항하는 선박들에 대해 대리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약을 맺었는데, 한진해운이 2017년 2월 파산선고를 받자 2016년 12월 종료된 대리점 계약에 따른 대리점 서비스 비용을 B씨에게 청구했다. 하지만 B씨가 거부하자 A사는 2018년 4월 대한상사중재원에 중재판정을 신청했다.
대한상사중재원 중재판정부는 2020년 1월 A사가 중재를 신청한 금액 160여만 달러 중 운영비용 53만여 달러만 인용하는 판정을 내렸다. 이에 A사는 "중재판정은 우리 운영비용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터미널비용 32만여 달러에 대해서는 인보이스(소장)와 관련자의 진술서 제출에도 불구하고 증명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이는 증거들의 증명력을 비합리적 이유로 무시한 것으로서 취소돼야 한다"고 소송을 냈다. 또 "채권 존재에 대한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청구가 기각된 것은 사적자치 원칙을 기반으로 한 경제질서에 반한다"고도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한진해운 파산관재인 승소판결
재판부는 "중재법 제36조 2항은 중재판정을 취소할 수 있는 사유의 하나로 '중재절차가 이 법의 강행규정에 반하지 않는 당사자 간 합의에 따르지 않거나 그러한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이 법에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경우'를 들고 있다"며 "당사자 간에 이유의 기재를 요하지 않는다는 합의가 없는데도 중재판정에 이유를 기재하지 않은 때에는 중재판정의 취소사유가 된다"고 밝혔다.
이어 "중재판정부는 '터미널비용에 대해서는 A사의 채권목록표에 명시되지 않았고, A사가 송장들에 대한 실제 지급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본다'고 판단한 사실을 알 수 있다"며 "이러한 기준 설정이나 판단이 명백하게 비상식적이라고 보이지 않고, 인용 부분과 기각 부분에서 동일한 증거가 제출됐음에도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유만으로 중재판정이 명백하게 모순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재판정에서 터미널비용의 지급을 구하는 부분에 대한 신청을 기각한 것은 파산관재인 B씨가 A사에 대한 금전지급 의무를 면하게 되는 것에 불과하다"며 "그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는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려워 중재법 제36조 2항 2호에 따른 취소사유도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