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이후 사형의 집행이 단 한건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사형을 선고하기 위해서는 성행과 환경 등 피고인의 주관적인 양형요소를 심사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함은 물론 범행 전후에 걸친 정신상태나 심리상태의 변화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는 등 객관적인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다른 형의 선고와는 달리 사형을 선고할 때 양형에 관한 심리와 관련 자료 등의 조사가 보다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종전의 대법원 판례가 또한번 확인된 것으로 형법학계의 사형폐지 논쟁과 관련해 주목된다.
대법원 제2부(주심 李揆弘 대법관)는 13일 강간 살인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1,2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崔모(25)씨에 대한 상고심(☞2003도924)에서 양형에 관한 심리와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형 선고는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히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며 "법원은 기록에 나타난 양형조건들을 평면적으로만 참작하는 데서 나아가 피고인의 주관적인 양형요소인 성행과 환경, 지능, 재범의 위험성, 개선 교화 가능성 등을 심사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여 사형 선택 여부를 심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범행을 결의하고 준비하며 실행할 당시를 전후한 피고인의 정신상태나 심리상태의 변화 등에 대해서도 정신의학이나 심리학등 관련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는 등 깊이있는 심리를 해 본 다음 결과를 종합하여 양형에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사건의 경우 "피고인의 범행 전후에 걸친 정신상태나 심리상태의 변화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는 등 객관적인 조사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고, 피고인의 교통사고로 인한 병력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피고인의 심리상태나 정신상태에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의 여지도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나아가 "피고인이 20대의 젊은 나이이고 수사기관 이래 범행을 순순히 자백하면서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과 피고인의 성장환경등을 보면 피고인 어머니의 증언을 듣는 외에는 달리 피고인의 양형조건에 대한 조사나 심리를 별도로 해 보지 않고 수사기록에 나타난 양형자료만을 토대로 간이한 심리만을 끝으로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1심을 그대로 유지한 원심엔 사형의 양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형의 양정에 관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崔씨는 특수강도와 절도죄 등으로 형을 마치고 출소한 지 2년여 지난 2001년12월 교통사고를 당하여 뇌좌상등으로 2개월여동안 입원치료를 받고 2002년3월 퇴원한 직후 다방 여종업원에 대한 강도강간을 시작으로 약7개월의 단기간에 미수를 포함해 강간등 살인 3회, 특수강도강간 3회, 강도상해 5회 ,강도 2회등의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기소돼 1,2심에서 사형이 선고됐었다.
서울법대 申東雲교수(형법 · 형법학)는 "사형 선고를 신중히 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의지가 또한번 확인된 판결로 대단히 바람직한 판결로 평가하고 싶다"며 "범죄자라 할지라도 나라가 인명을 빼앗을때는 최선의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