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에서 지면 변호사가 소송비용을 전부 부담하기로 위임계약을 맺은 상황에서 변호사 잘못으로 위임계약이 해지됐더라도 변호사가 이미 지출한 소송비용은 의뢰인이 보전해줘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A변호사가 B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낸 약정금 청구소송(2016다200538)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최근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변호사 A씨는 2012년 3월 입주자대표회의와 아파트 분양사들을 상대로 아파트 하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위한 위임계약을 체결했다. 양 측은 인지대, 송달료 등 소송 관련 비용과 하자진단비용 등을 A씨가 먼저 지급하고 승소금에서 정산하기로 했다. 또 소송에 패소하면 A씨가 소송비용을 모두 부담하고, 승소하면 입주자대표회의가 소송비용은 물론 성공보수를 지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정당한 이유없이 계약을 해지하면 승소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후 A씨는 소송을 위해 인지대 등 280여만원을 사용했고, 조사 업체에 하자진단비로 3300만원을 지급한 뒤 보고서를 작성해 입주자대표회의에 제출했다. 하지만 입주자대표회의는 2013년 5월 A씨의 업무태만 및 부실한 하자조사 등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다. 이에 A씨는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을 해지했으므로 대납한 소송 관련 비용 3580여만원과 성공보수금, 입주자대표회의가 빌려간 차용금 1억원 등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A씨가 위임계약에 반해 소송수행을 현저히 게을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소송비용 3580여만원과 입주자대표회의가 A씨에게 빌린 1억원을 갚으라고 판결했다. 다만 성공보수금에 대해서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아직 아파트 하자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하지 않았으므로 지급 의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2심은 "A씨가 아파트에 관한 세대전수 하자 조사를 게을리해 입주자대표회의가 위임계약을 정당하게 해지했다"며 성공보수금 및 소송비용 3580여만원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A씨에게 빌린 차용금 1억원에 대해서는 1심과 같이 갚으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변호사 잘못으로 도중에 계약을 해지했더라도 이미 지출한 소송 비용 등은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소송위임계약과 관련해 위임사무 처리 도중에 수임인의 귀책사유로 신뢰관계가 훼손되어 더 이상 소송위임사무를 처리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계약이 종료됐더라도, 위임인은 수임인이 계약종료 당시까지 이행한 사무처리 부분에 관해서 △수임인이 처리한 사무의 정도와 난이도 △사무처리를 위해 수임인이 기울인 노력의 정도 △처리된 사무에 대해 가지는 위임인의 이익 등 여러 사정을 참작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보수 금액 및 사무처리비용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소송 위임계약이 A씨의 귀책 사유로 해지됐더라도 A씨가 소송 수행을 위해 입주민 약 78%로부터 손해배상 채권을 양도받았고 세대하자 전수조사를 실시한 세대가 약 61.6%에 이르는 등 위임사무 처리를 위해 기울인 노력이 상당하다"며 "처리된 사무가 주민들에게도 상당한 이익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소송비용 280여만원과 하자진단비 3300만원은 A씨가 위임계약 종료 당시까지 이행한 사무처리를 위해 필요한 상당한 비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수임인이 위임사무 처리를 위해 지출한 필요비는 위임인에게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 민법 제688조 1항에 따라 입주자대표회의가 그 비용을 상환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