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고 집회라도 공공질서에 명백한 위험이 없다면 해산명령 불응죄의 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해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사전 신고 없이 열렸다는 이유만으로는 해산명령 불응죄 대상 집회로 볼 수 없다"고 판결(2010도6388)한 데 따른 것이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지난달 24일 용산참사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미신고 집회를 개최한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이수호(64)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등 4명에 대한 상고심(2011도4460)에서 벌금 50만원씩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씨 등이 주최한 모임은 외형상 기자회견이지만 용산 철거를 둘러싸고 철거민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내용의 공동의견을 형성해 이를 대외적으로 표명할 목적 아래 일시적으로 일정한 장소에 모인 것으로 사전신고를 해야 하는 옥외집회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신고는 행정관청에 집회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공공질서의 유지에 협력하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으로 집회의 허가를 구하는 신청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며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헌법의 보호 범위를 벗어나 개최가 허용되지 않는 집회 내지 시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집시법이 미신고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해산명령 대상으로 하면서 별도의 해산 요건을 정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 옥외집회 또는 시위로 인해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에 한해 해산을 명할 수 있고, 이러한 요건을 갖춘 해산명령에 불응하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며 "이씨가 주최한 모임이 미신고 옥외집회라는 이유만으로 해산을 명할 수 있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은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이명박 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 50명과 함께 2009년 10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정부는 용산참사 즉각 해결하라'고 기재된 대형 플래카드와 '용산참사 해결촉구 단식농성'이라고 기재된 피켓을 들고 연좌농성을 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자진해산요청을 시작으로 3차례에 걸쳐 해산명령을 내렸으나 이씨 등은 계속 농성을 벌였다.
1, 2심은 "불법집회에 대해 해산명령을 발함에 있어 부가적인 요건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신고의무를 규정한 집시법이 실효성을 잃게 된다"며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