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행정법원의 발자취
행정소송에서 보다 충실한 권리보장과 본격적인 전문법원 시대의 개막을 알리며 1998년 3월1일 출범한 서울행정법원이 올해로 개원 10주년을 맞았다. 서울행정법원의 출범으로 그 동안 2심제이던 행정소송이 3심제로 바뀜에 따라 국민의 권리구제기회가 확대됐고, 또 행정처분의 범위를 점진적으로 넓혀 와 국민의 권리의식을 높이는데도 기여해 왔다.
국민의 권리의식 향상으로 그 동안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국가작용에 대해 소송을 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실제로 개원초기 3,026건이던 접수건수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해 작년에는 4,190건을 기록했다.
행정법원 출범전에는 고등법원이 5개소뿐이어서 국민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데 많은 불편이 있었고, 법관들도 고등법원에 발령을 받아야 비로소 행정사건을 접하게 돼 행정소송사건에 관한 실무경험과 전문지식을 쌓기 어려웠다. 또 판례를 통한 법형성의 측면에서도 3심제를 취하는 민사소송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었다.
이에 법원은 '행정소송 3심제'의 조속한 정착을 위해 개원초기부터 판사들 중 우수 인력을 집중배치하며 전문성을 제고해왔다. 그 결과 큰 파장을 일으키며 세간의 이목을 끈 많은 판결들을 쏟아냈고, 부장들이 줄줄이 고등부장으로 승진해 '행정불패'라는 말을 낳으며 주변 법조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 성과 및 판결의 경향
행정법원은 10년동안 조세·노동·산재·토지수용 등 전담부를 구성해 전문적이고 다양한 판결을 해왔고 최근에는 지방자치시대에 발맞춰 주민소송 전담재판부를 만들기도 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복잡·다양해지는 형태의 소송에 효율적으로 대처해오고 있다.
△행정소송의 대상 확대= 행정소송의 대상을 확대해 국민에게 점차적으로 문호를 개방해 왔다. '김민수교수사건'(☞99구683)에서 '교수재임용거부'를 행정처분으로 인정했고, 최근에는 덤핑방지관세를 부과하는 재정경제부령을 행정처분(☞2004구합5911)으로 인정하는가 하면 무역위원회의 불공정무역행위 판정에 대해서도 행정처분성을 인정해(☞2007구합825) 국민의 권리구제를 확대하고 나아가 법치행정구현에 기여해 왔다.
△전문성제고에 따른 변화= 행정법원이 들어선 이후로는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등으로 '자살'한 경우 예전보다 폭넓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주고 있고, 공무원과 달리 일반 근로자의 경우 출퇴근중의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주지 않는 대법원판결에 대해 지속적으로 예외의 근거(2000구31409)를 마련해 통근재해에 대한 소극적 입법에서 오는 근로자보호의 공백을 보완하려는 판결들을 시도하고 있다. 반면 의학계의 발표자료 등 연구결과를 판결에 적극 반영해 과로 등 업무로 인한 간질환 발생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과로사의 업무상 재해 인정에 대해서도 점점 엄격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는 추세다. 또 운전면허취소 등의 제재적 행정처분에 있어서도 점차 엄격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난민의 법적지위·국민의 알권리 충족에 기여= 행정법원은 또 난민의 권리와 법적지위를 향상시키는데 기여해 왔다. 방글라데시인을 난민으로 인정해 국내 처음으로 소송에서 난민을 인정한 사건(☞2004구합40051)을 시작으로 최근 파룬궁 수련자인 중국인을 난민으로 인정한 사례까지 콩고, 파키스탄 등 여러국가에서 정치적 박해 등의 이유로 국내에 망명을 신청한 여러 외국인들에게 난민지위를 인정해 그들의 권익을 향상시켜 왔다. 또 아시아 최초로 정보공개법의 제정과 함께 그 동안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에 조성원가와 분양원가를 공개하도록 했으며, 최근에는 수능시험의 원점수와 변환점수의 개인별 석차를 공개하도록 판결(2002구합42619)해 국민의 알권리 충족에 기여해 왔다.
또 행정법원 출범 전에는 해고무효소송 등이 들어오는 경우 온정적으로 노동자 입장에서 무조건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해 왔다면, 최근에는 불법적인 파업과 지나친 노조활동으로 국민경제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노동자와 사용자의 입장을 균형적으로 반영한 판결을 하고 있다.
3. 문제점 및 나아갈 방향
10년 동안 높은 성과를 올린 행정법원도 그에 따른 문제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사건처리건수에 비해 배치된 법관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업무과부하가 심각한 상태이다. 최근 법원이 '판결문 간이화'를 추진해 판사들의 판결문 작성시간을 줄여 근무시간 단축에 노력하고 있으나 행정법원은 예외이다. 행정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행정소송의 경우 행정청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논리적인 설득력과 법적근거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행정청이 쉽게 승복하지 않는다"면서 "또 의제자백이 없기 때문에 행정소송의 경우 판결문 간이화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 행정법원에 현재 5년 이상된 전문법관이 없는 상태이다. 2, 3년마다 법원인사에 따라 법관이 재배치되기 때문이다. 행정법원에 근무했던 서울고법 행정부의 한 부장판사는 "일본은 총괄재판장의 경우 10년씩 이동없이 근무하면서 매번 바뀌는 판사들의 중심축이 돼 조언을 하고 있다"면서 "현실상 행정법원의 모든 판사가 장기근무를 할 수는 없겠지만 수석부장급의 판사 몇 명은 10년 이상 근무해 전문화시키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