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출생지와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켜 잠시 사육하다 도축한 경우 도축지를 원산지로 표기했더라도 원산지를 허위표시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다만 이번 판결의 법리는 지난해 5월 소고기의 원산지 표시 기준이 생기기 전에 기소된 사건에만 적용된다.
축산물의 원산지 표시와 관련해 논란이 일자 국회가 2010년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정부가 지난해 5월 '소고기의 경우 도축일을 기준으로 12개월 이상 사육해야 도축지를 원산지를 표시할 수 있다'는 고시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지난달 25일 다른 지역에서 태어난 한우 500여마리를 횡성으로 가져와 일정기간 사육한 뒤 원산지를 횡성으로 표기한 혐의(농산물품질관리법 위반)로 기소된 동횡성농협 김모(53) 조합장 등 10명에 대한 상고심(2012도3575)에서 김씨에게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하는 등 유죄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춘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토지에 부속된 식물 등 농산물이나 임산물은 수확이나 채취 이전에 원래 장소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이식되는 경우가 아닌 한 그 수확 또는 채취장소를 원산지로 보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으나, 이동이 가능한 가축의 고기는 출생 후 다른 곳으로 이동해 사육되거나 도축될 가능성이 있어 출생과 사육 또는 도축 중 어느 요소를 어느 정도로 고려할 것인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가 출생·사육·도축된 지역과 전혀 무관한 지역을 원산지로 표시하거나 출생·사육은 타지역에서 이뤄진 후 오로지 도축만을 위해 도축지로 이동된 후 곧바로 도축된 소고기의 원산지를 도축지로 표시했다면 이는 농산물품질관리법상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하거나 이를 혼동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시를 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국내산 소를 도축을 위해 이동시켰다면 이를 도축준비행위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사육으로 볼 것인지는 소의 건강상태와 도축시까지의 기간, 체중의 변동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별 사안에 따라 판단할 수 밖에 없는데도 소를 이동시킨 뒤 도축할 때까지의 기간이 2개월 미만인 경우 일률적으로 단순한 보관행위를 한 것으로 보고 김씨 등이 원산지 표시를 허위로 표시했다고 판단한 원심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조합장 등은 2006년 고급 한우 브랜드로 '횡성한우'가 유명해지자 전국 76개 판매처를 통해 횡성한우 직거래 판매사업을 시작했다. 김씨 등은 횡성군에서 출생·사육된 소의 물량이 한정돼 공급이 달리자 공주시 등 횡성군이 아닌 지역에서 출생한 한우를 구매해 도축한 후 '횡성한우'로 이름을 붙여 판매한 혐의로 2009년 12월 기소됐다.
1심은 "한우 판매 당시 국내 축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없었던 만큼 횡성군에서 일정기간 사육된 소는 횡성한우로 볼 수 있다"며 무죄 판결했으나, 2심은 "소를 이동시킨 후 2개월도 안 되는 기간 내에 도축한 경우는 사육행위로 보기 어렵다"며 김 조합장에게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동횡성농협 조합팀장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는 등 유죄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