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사건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대구지법 민사8-2부(재판장 김대규 부장판사)는 '울릉도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인 서모씨의 조카 A씨(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대경종합법률사무소)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2018나319335)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1심을 깨고 "A씨에게 5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최근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1969년 5월 입대한 A씨는 1972년부터 2년 동안 베트남전에 참전해 화랑무공훈장을 받는 등 군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A씨의 숙부 서씨가 '울릉도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975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자, 별다른 이유없이 이듬해 4월 갑자기 강제전역처분을 받았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울릉도 간첩단 사건' 수사 당시 서씨가 중앙정보부 수사관에 의한 가혹행위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서씨의 아들은 재심을 청구해 2015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확정받았다. 이에 A씨도 "위법한 강제전역처분으로 인해 받은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A씨는 월남전에 파병돼 무공훈장을 받았고, 귀국 후 특전사 공수여단에서 정보·작전 업무를 수행하는 등 현역부적합 사유가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숙부 서씨의 형이 확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제전역 당한 것은 숙부에 대한 판결 때문인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구지법
"인권침해 사건
일반 국가배상 청구와 성격 달라"
이어 "강제전역처분이 있었던 때로부터 5년이 경과해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국가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2조 1항 4호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에 규정된 사건으로 인한 국가배상청구권은 일반적인 국가배상청구권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다"며 "국가기관이 무고한 국민을 범죄자로 만들고 사후에도 사건을 조작·은폐해 오랜 기간 진실규명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으므로, 민법 제166조 및 민법 제766조 2항에 따라 소멸시효 기산점을 불법행위일로 보는 것은 피해자 구제에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울릉도 간첩 조작사건은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에 속하고 이로 인해 발생한 A씨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는 민법 제766조 1항에 따라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으로 봐야 한다"며 "A씨는 2017년 12월 재심판결 결과를 알게 된 후 3년 이내인 지난해 5월 소송을 제기했으므로 A씨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가 경과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판단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지난해 8월 30일 민법 제166조 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사건(2014헌바148)에서 "과거사정리법 제2조 1항 4호에 규정된 사건은 국가가 진실을 규명하고 그 결과에 따라 피해자들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해야할 책임이 있는 사건"이라며 "이러한 사건에 일반적인 소멸시효 기산점인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5년'을 적용하는 것은 국가권력이 중대한 인권침해를 저지르고도 손해배상책임을 회피해 피해자의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으로 위헌"이라고 결정했었다.